부버 교육 연설에 관한 기말 과제과목명: 교육사?교육철학부버는 낭만주의 교육관에서 아동이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교육의 목표를 아동 내부에 있는 창조적 힘을 재현하는 것으로 삼은 것에 대하여 교육의 현실을 망각한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낭만주의 교육관에서는 아동 내부에 있는 창조적 힘이란 인간의 자발성을 뜻하고, 그 자발성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교육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그 자발성이 실제 교육을 정당화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일례로, 수업 중에는 교사의 비판과 안내가 학생들에게 더 중요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이 때 교사의 가치 척도가 아동에게 주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자연과 사회, 즉, 환경이 개인의 인격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의도된 교육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선택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육은 교육자 속에 선택된 세계를 통해 결정적인 영향력을 주게 된다.교육자가 필요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 때엔 철학자, 거장이 있었고, 도제나 제자들은 그들의 작업에 동참하는 것을 통해 배웠다. 그 거장들도 여전히 교사의 모범으로 남아있는 것을 볼 때, 교육자는 아동 교육의 중요한 한 요소를 감당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겠다.‘자유’라는 것은 ‘강제’라는 부정적 현실의 반대인 ‘맺어짐’을 위한 전제가 된다. 인간은 함께 맺어지기 위해서 먼저 독립을 해야 하고 이 때문에 자유는 인격적 책임을 의미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통해서 우리는 생각하고 말하며 영향을 주는 등 의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만큼, 우리의 의지(依支)는 보장된다.구교육상에서의 교육자는 피교육자에게 역사적 가치의 전달자였다. 이에 비해서 신교육상에서 교육자는 피교육자 중에서 사랑 받는 자를 가려 뽑는 에로스, 즉 선택하는 존재인 것이다.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교육의 지향점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현대에서는 비권력적이고 비에로스적 교육상황을 지향한다. 교육의 관계는 일종의 순수한 대화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대화적 관계에서 담화의 진실성은 담화 파트너의 본질에 대해 인정할 때 일어난다. 이러한 포용의 요소가 곧 교육적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대화적 관계는 추상적?양방적 포용경험과 구체적?일방적 포용 경험, 구체적?양방적 포용 경험인 우정, 이렇게 세 가지 형태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이 중에서 우정이 진정한 상호 포용인 것이다.상대의 경험을 해보려고 노력하는 교육자는 두 가지를 경험하게 되는데, 하나는 타자성에 대한 자신의 한계이고, 다른 하나는 타자와의 맺어짐에서 자신이 누리는 은총이다. 또한 교육자는 이 영혼에 대한 책임 때문에 자기 교육을 필요로 하는데, 이것은 세계와의 교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지금까지의 논의는 교육 현실을 시작하게 하는 원리에 대한 것이었다.교육이 어디를 향해 이루어져야 할지는 개개인이 내면에 이형태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잘못된 질문이다. 다만, 어디로 갈지 모르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향은 신을 향한 것이며, 이것은 배반하지 않고 책임진다는 점에서 진정한 자유의 산물이다.요컨대, 피조물들인 인간은 창조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 각자는 다른 피조물인 인간을 위해 기도하는 방법 등으로, 창조성을 향해 자신과 타인을 개방시킬 수 있는 것이다.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부버는 낭만주의가 아동 내부의 창조적 힘을 과신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교육은 교육자 등의 환경에 큰 영향을 받으며, 피조물인 인간은 다만 다른 피조물인 인간을 인정?포용하고, 교육의 토양이 되는 자유에 대한 책임은 신에게 지우자는 것이다.부버의 논지가 인간의 불완전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이렇게 불확실한 존재가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는 책임을 지는 것은 분명히 무책임한 결과를 야기할 것이다. 따라서, 교육자가 교육의 가치와 방향 문제를 제시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교육 보편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한 국면에 해당해서 이루어질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인간은 다만 삶의 구체적 양상을 향해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Vygotsky가 생각은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교사와 학생 간에 상호작용에 의해 수업이 형성되지만, 교사는 학생이 스스로 사고하게 하기 위해서, 학생이 근접발달 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 내에 존재하기 위한 발판(scaffolding)역할 정도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도, 부버와 같은 정도로 교사의 역할을 이야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의 영향이 작용하되, 간섭이 일어나지 않도록 학생 주도적인 사고가 일어날 수 있도록 교사는 학생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Vygotsky의 교사에 대한 입장과 같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1920년대의 미국 사회는 전후의 경제적 풍요와 더불어 물질주의와 소비주의 사회로 탈바꿈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이 새로운 시대적 조류에 적응하지 못하는 '잃어버린 세대) 제 1차 대전의 발발에 의해 전쟁의 체험을 겪게 되었고, 종전 후에 절망과 몰락의 의식으로서 작품을 쓴 미국의 작가들을 가리킨다. 그 말은 "당신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의 사람들입니다"라고 가트루드 스타인이 말한 데서 유래하였다.http://hanlover.new21.org/munhak/lista100.htm들은 개인적 소외감, 물질주의에 대한 환멸,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 등을 표출하였고, 그들은 흑인들의 원초적인 아름다움에서 그 대안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여기에 1차대전의 경험으로 자의식이 강하고 능동적인 '새로운 흑인'들이 등장하였고 이들은 백인들의 경제적인 후원하에 흑인 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것은 뉴욕의 할렘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났기에, 할렘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새로운 흑인'들은 할렘르네상스를 통하여 흑인들의 인종적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흑인들도 존경받을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아프리카적 뿌리로부터 많은 영감을 끌어냈다.할렘르네상스는 20세기 전후에 태어난 흑인 작가들에 의해 주도된 양상을 띤다. 그 중에서도 결정적인 추진력은 '새로운 흑인'들로부터 나왔다. 이 '새로운 흑인'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출현한 인종적인 자부심과 자의식을 지닌 흑인들을 말한다. 우선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에 수많은 흑인들이 남부에서 북부로 이주하였고 이는 그들에게 보다 많은 자유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여기에 20만 명 정도의 흑인 병사들이 프랑스에 파견되었고, 그곳에서의 경험은 그들의 의식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흑인 병사들은 인종적인 관용에 접했고, 먼 거리에서 미국 사회의 인종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으며, 이에 대한 그들의 혐오 또한 증폭되었다. 이와 더불어 세계의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에 참여한 흑인들은 이 전쟁으로 미국 사회의 민주주이 미약하나마 보여준 경제적인 향상, 태도의 변화, 그리고 자의식의 증대가 문화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 이전에 이미 개별적인 차원에서 문화적 기초작업이 다져졌기에 가능하였다. 우선, 윌리암 두 보이즈(William Edward Du Bois), 제임스 존슨(James Weldon Johnson), 찰스 존슨(Charles S. Johnson) 등의 저명한 흑인지도자들이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오고 있었으며, 일군의 흑인 문인들과 지성인들이 각기 또는 흑인 지위 향상을 위해 설립된 기구들과 관련을 맺으며 활동하고 있었다. 여기에 흑인 정기간행물들, 즉 『크라이시스』, 『오포튜니티』를 비롯하여 『뉴욕 에이지(New York Age)』, 『메신저(Messemger)』, 『해방자(The Emancipator)』, 『도전(The Challenge)』 등의 일간지나 잡지들이 흑인 독자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에는 책이 비쌌기 때문에 정기 간행물들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따라서 1920년대 초에 재능을 꽃 피운 젊은 흑인작가들은 이전 세대가 이룩해 놓은 조직과 출판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Watson, The Harlem Renaissance, 16-18.이렇게 문화적인 기초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앨런 로크(Alain Locke)의 『새로운 흑인(New Negro)』은 할렘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에서 로크는 할렘르네상스를 이끌어 갈 젊은 세대의 작가들을 강조했다. 이 책은 당시 흑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새로운 흑인(New Negro)', '니그로 르네상스(Negro Renaissance)'라는 용어로 구체화시키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새로운 흑인』과 더불어 시작을 알린 할렘르네상스는 처음부터 '남성적'인 운동으로 가정되었다. 비록 앨런 로크가 자신의 글에서 직접적으로 젠더 문제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할렘르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할렘르네상스에 내재한 권력의 담론을 이해하여야 한다.우선 할렘르네상스 시기의 문화, 예술활동은 재정적인 후원을 필요로 하였다. 아직 흑인 출판사와 흑인 독자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흑인 작가들이 작품을 출판하려면 그들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주고 출판업자에게 그들을 소개해 줄 백인 후견인이 필요하였다.) 이 시기에 흑인 작가들을 재정적으로 도와준 백인 후견인들 중 칼 베쳔, 페니아 마리노프, 샤로테 메이슨, 레니 허스트, 애미 스핑그램, 그리고 아더 스핑그램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따라서 이 시기에 출판된 소설 대부분이 뉴욕의 유명한 출판사에서 발간 되었는데, 바로 앨런 로크가 백인 후견인들과 흑인작가들을 연결시켜 주는 중개자 역할을 하였다. 『새로운 흑인』의 출판으로 흑인 작가들의 대부로 부상한 그는 새로운 세대의 흑인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하바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하워드 대학교 철학교수이자 문화비평가이기도 했던 그는 유연한 매너와 박학함으로 재능있는 흑인들과 백인 편집인, 출판사, 그리고 재정적인 후견인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는 많은 젊은 작가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돈뿐만 아니라 충고, 후원, 도움을 주고 있었다.) Watson, The Harlem Renaissance, 23-25.그런데 문제는 그가 "공인된 여성 혐오자"로 여자를 싫어하고 남자를 좋아한다는 데 있었다. 그는 수업 첫 시간에 여학생들에게 C학점을 줄 것이라 위협하여 여학생들을 내쫓았다. 당시 그의 학생이었던 오웬 도슨(Owen Dodson)은 "그는 여성 해방을 믿지 않았다. 만약 여학생이 자신의 수업에 등록을 하면 그는 '각오하라'고 말하곤 했다"고 회상하였다. 그는 여성의 지적 능력에 대해 경멸하고 불신했다. 이렇게 여성을 싫어하는 그의 태도는, '로크는 흑인들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데… 만약 그의 도움없이 성공할 수 있다면 신이 도운 것'으로 생각되던 당시에 흑인여성작가들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였던 것이다.더욱이 있었다. 뉴욕으로 이사한 그는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의 음악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흑인 예술가들과 만났고, 백인들에게 재즈를 열정적으로 알리고, 재능있는 흑인 문학가들을 발굴하기도 한다. 그 후, 그는 1926년 할렘 흑인들의 삶과 문화를 그린 『니그로 천국(Nigger Heaven)』을 출판하고 사진작가로 활약하면서 재능 있고 유명한 흑인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알렸다.이와 같은 방법으로 베쳔은 젊은 흑인 작가들을 백인 출판사와 후견인에게 소개하는데 있어서 가장 많은 공헌을 세웠다. 그러나 그 역시 개인적 후견관계를 통해서 할렘의 권력과 모호한 우정을 중심으로 맺어진 남성 중심적인 집단을 더욱 공고하게 하였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우선 호모로 알려진 그에게 젊은 남성작가들이 소개되었고, 베쳔은 그들을 유명한 출판업자, 편집인에게 소개하였다.칼 베쳔의 후원을 기반으로 한 할렘르네상스는 '문학적 인식, 조속한 관음증, 인종의식, 성적매력, 유행에 민감한 취향의 혼합물'이라는 평이 있기도 하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랭스턴 휴즈, 클라우드 멕케이, 진 투머 등의 젊은 남성 작가들은 매우 운이 좋은 작가들이었다. 그들은 백인 후견인 덕분에 재정적인 후원을 받으면서 안락한 분위기에서 글을 쓸 수 있었고, 그들이 쓴 글은 큰 비판 없이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행운은 여성작가들에게는 돌아오지 않았다.결국 할렘르네상스 시기의 남성작가들이 형성한 끈끈한 우정과 백인과의 미묘한 후원관계, 후견인의 개인적인 취향 등은 모두 흑인 여성작가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할렘의 주요 흑인 남성작가들 중에서 상당수가 호모 또는 양성 연애자였다는 사실은 당시의 흑인의 문학작품의 출판이 권력관계와 "침실에서의 정치학" 또는 "성적 편애주의"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그 결과, 여성작가들의 목소리는 가려졌다. 더욱이 시대적인 분위기 역시 흑인 여성작가들을 '여분의 존재'로 분류하게 만들었다. 1920년대에는 후래퍼(flapper)라 불리우는 신여성들이 출현하는데, 한편으로 볼 때에, 1920년대는 인종문제가 매우 불거진 시기였다. 따라서 흑인 여성작가들은 여성차별주의(sexism)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려웠다. 삼보 타입의 흑인들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의식을 지닌 새로운 흑인이라는 인종적인 정체성을 재정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에 성차별 문제는 사소한 문제로 여겨졌고, 이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마치 인종에 대한 배신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므로 "페미니스트들조차도 여성들의 순종적인 위치를 가정하였고, 주로 인종적인 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게다가 당시 문학 비평가들은 여성작가들의 글은 단선적이고 주제가 이례적이어서 대표성이 없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지 않는다고 평가하였다. 비평가 벤자민 브로리(Benjamin Brawley)는 조라 허스턴에 대하여 그녀의 글은 인종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지나치게 사적이라고까지 혹평하였다.) Gerda Lerner, Black Women in White America: A Documentary History (New York: Random House, Inc., 1972), 17; Wall, Women of the Harlem Renaissance, 7.이처럼 전반적으로 여성들의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시대적 상황에서 흑인 여성작가들은 꾸준히 글을 통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였다. 특히 그들은 『크라이시스』와 『오포튜니티』를 통하여 많을 글들을 실었다. 그러나 출판사와의 중개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책으로 출판된 글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성작가들은 독자적으로 개인화된 내면적인 글을 쓸 수가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여성작가들의 주제는 소위 백인 출판사를 통해 글을 출판하던 '주류의 흑인 남성작가들'이 다루는 주제와 상당히 달랐다.할렘르네상스 시기의 흑인 여성작가들의 글을 이해하기 위하여 남성작가들이 다룬 주제를 크게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아프리카를 인종적인 자긍심의 원천으로 그리고 있으며, 둘째로 그들은 흑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