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견유학파들어가는 말슈바이처 이후 주춤했었던 예수연구는 70년대에 이르러 다시금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예수를 묵시종말론적 인물, 사회혁명가, 마술사 등 여러 성격으로 규정하고 이를 논증하고 있는 연구들이 있는데 여기서는 주전 300년경부터 태동된 견유철학(犬儒哲學, Cynicism)을 토대로 예수를 제시하고자 한다. 예수를 견유철학자로 제시하기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것은 복음서의 본문 중 예수에게 귀결될 수 있는 구절들을 구분해야 하며, 우리가 Q라고 가정하고 있는 구절들 중 가장 초기의 전승층을 버튼 맥의 저서를 인용해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견유철학자들과 예수와의 비교할 것이다. 본 발제는 견유철학에 대한 제시선에서 한계를 지을 것이며 약간의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할 것이다.몸말견유철학(犬儒哲學, Cynicism)에 대한 이해견유철학은 디오게네스(Diogenes of Sinope))에 의해서 창건되었는데, 이 용어는 '개(犬)'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키온(kyon)'에서 나온 말인데, 아리스토텔레스가 디오게네스에 대해 말하면서 그에 대해 잘 알려져 있던 별명을 인용하듯 사용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원래는 모욕적인 뉘앙스의 용어이지만 디오게네스의 당시를 조롱하던 태도를 적절하게 표현한 용어이다.견유철학은 인간 내적인 자유와 개인적인 자족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을 세계를 포기하는 것(abandonment)에서 찾았다. 견유철학은 관념적이고 이상적이라기 보다 실천적이고 급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견유학파는 의도적으로 기본적인 예의범절, 습관, 인습등을 조롱하였으며 자신들이 소유하지 않았지만 마치 소유한 것처럼 되고자 하는 태도를 지니고 살았다. 이는 데메트리우스의 일화에서 잘 알 수 있다.가이우스 씨이저가 데메트리우스에게 20만냥을 주겠다고 하자, 그는 웃으며 거절하였는데, 심지어 그것을 거절하는 것에 대해 자랑할 가치도 없는 액수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말하기를 “만일 그가 나를 유혹하려 했다면, 그의 왕국 전체를 나에게 준다고 하면서 나를 시험했어야만 했다.” (Seneca, De Beneficii 7,11; Basore et al. 3.482-483)이에서 알 수 있듯이 견유학파는 사회 인습과 권력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조롱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비판은 제도적인 사회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연대로 살로고 하는 인간 개인을 향한 것이며, 용기를 가지고 개인의 적극적인 생활방식을 궤멸, 침묵시키려는 사회의 흐름에 거스르도록 초청하는 것이었다.)견유철학자들은 외투, 봇짐, 지팡이가 그들의 공식적인 복장이었고 신발을 신지 않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복장이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 다만 그 시대에서 바라보았을 때 기이한 복장이었다는 것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견유학파에 관한 대중적인 이미지는 빈궁한 생활의 미덕을 실천하기 위하여 인생을 쾌적하게 하는 모든 것과 절연한 고독한 구걸생활자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서로 존경하는 사람들의 계급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어떠한 운동에 소속한다거나, 모임에 참여한다거나, 사회적 의식에 따라 움직이는 집단을 형성하지는 않았다.예수 어록전승과 견유학파Q는 생동적이고 기억에 남는 말씀들로 채워져 있는데, 간결한 말로 표현하는 예수의 어록은 교활한 방법으로 살아가기 위한 현명한 결론과 충돌하고 있으며, 기존질서에 대해 도전하도록 부추기고 있고 당시의 인습에 반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복음서들에서 구분한 Q의 말씀들 가운데 학자들은 Q가 공통적 특징들을 가지는 일곱 개의 말씀 묶음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Q1전승들 가운데서 세트로 구분하였다. 이를 Q1의 말씀 묶음들로 명명하는데 일곱 개의 말씀 묶음)은 아래와 같다.1. 예수의 가르침 (미주 참조)QS 8. 운이 좋은 자에 관하여QS 9. 비난에 대한 응답에 관하여QS 10. 재판에 관하여QS 11. 스승과 제자에 관하여QS 12. 위선에 관하여QS 13. 성실함에 관하여QS 14. 실제적인 순종에 관하여2. 예수 운동을 위한 인스트럭션(교훈, 명령, 가르침)QS 19.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되는 일에 관하여QS 20.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것에 관하여 - mark 6,7-12 (변형)3. 아버지의 보살핌에 대한 신뢰QS 26. 기도할 때에는QS 27. 구하라4. 염려와 분명히 말하는 것에 관하여QS 35. 분명히 말하라 - mark 4,22-23QS 36. 두려워 말라5. 소유물에 관하여QS 38. 미련한 사람의 소유물에 관하여QS 39.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QS 40. 하늘에 있는 보화6.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QS 46. 겨자씨와 누룩7. 예수의 참된 추종자QS 50. 겸손에 관하여QS 51. 성대한 만찬QS 52. 제자가 되기 위한 대가(代價)에 관하여QS 53. 맛 잃은 소금상기의 말씀들은 격언과 명령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그 모든 것은 경구적인(aphoristic) 특성을 지니고 있다. Q1자료의 이러한 자료 묶음은 예수 운동의 가장 초기의 단계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경구적 담화가 최초의 예수운동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경구들은 일상적인 세계에 대해 비판적인 코멘트를 즐겨 쓰며, 반인습적인 행동을 권하고 있다.) 여기서는 일반적 삶의 방법이 재검토 되며 인습적 가치관이 비판을 받게 된다. 또한, Q1의 담화 주제는 그리스 로마시대에 대중적 철학자들이 주로 권고한 행동양식과 유사한 방식인데, Q1은 견유학파로 널리 알려진 그 시대의 실천적인 윤리생활의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며, 학자들도 Q1자료의 상당부분이 견유학파와 병행되고 있음을 종종 언급하고 있다. 견유학파는 물건을 구걸하는 일, 자진해서 가난한 사람이 되는 일, 필요한 것을 거절하는 일, 가족과의 유대를 끊는 일, 그리고 두려워하거나 주저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 일,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Q1의 주제들 또한 이런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견유학파의 발언 스타일 또한 Q1안에 나타난 것과 같이 경구적이었으며 비난받았을 때 대응 방법, 보복하지 않는 일, 진실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 등의 견유학파의 주제를 살펴볼 때도 상당부분 Q1과 유사한 면을 지니고 있다.견유학파와 예수예수 당시의 갈릴리 지방은 정치적으로 상당한 혼란한 상태에 있었다. 짧은 기간동안 계속해서 교체되는 통치자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였고 그들이 요구하는 충성을 이행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불안감과 불확실성의 의식이 강한 도전 의식으로 발전하고 예수 추종자들은 이러한 시대적 도전을 절실히 느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다민족 혼합이라는 상황에서 타민족을 재는 잣대가 된 문화적 전통의 권위를 꺽어버렸고 꾸밈없고 당당하며 정당한 생활방식을 추구하기 위해 서로 격려하는 길을 찾아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견유학파적 정신이 스며들어 있는 담화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면서 Q1을 볼때 Q1의 경구들은 견유학파적인 음색을 드러내고 있으며 Q1의 권고는 견유학파적인 생활방식에 호응하는 강력한 소명의식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Q1이 요구한 몇 가지 구체적 태도와 실천들 -가족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일, 자진해서 노숙자가 되는 것, 통상적인 정결의 표준을 무시하는 일, 검소한 복장을 하는 일, 구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 등-을 살펴보면 그 시대의 견유학파가 요구하는 것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그러나, 견유학파가 어떠한 집단을 형성하지 않은데 반하여 예수의 추종자들은 사회적인 단체를 형성했는데, Q1의 핵심적 경구들-규율로 지켜지는 단계 이전의 경구-에서 알 수 있다. 또한, 견유학파적인 경구들의 의미가 Q1에 있어서는 변형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QS 38속에 있는 ‘누가 나를 너희들의 재판관이나 변호사로 세웠느냐?’는 견유학파적 경구는 물질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부자의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도덕주의적 비유로 변형되는 것과 ‘자기 소유를 팔아서 남에게 베풀라’라는 말씀이 하늘에 저축되어지는 부의 약속으로 변형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또한, 견유학파가 자연의 질서와 그들이 대표하는 통치에 대해 신적인 측면을 강조하지 않는 반면에 Q 공동체의 사람들은 그들을 대표하는 통치라 ‘하느님의’ 통치임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상기의 변형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이 귀결되는 것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통치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Q에서는 종말론적인 성향, 메시아 대망사상, 새로운 종교의 태동-복음서 신학에서 나타난- 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인간에 대한 태도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상기의 제시들로 통해 우리는 예수의 경구들과 예수 추종자들의 삶의 양식과 태도로 볼 때 견유학파와 상당부분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Q공동체는 견유학파적인 권고들을 그들의 공동체의 규율로 삼아 Q1 가운데 정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예수의 경구들을 자신의 지침들을 삼아 공동체를 위한 물음의 응답으로 받아들였다. 중요한 것은 이들은 하느님의 통치를 갈망하고 있었고, 이러한 경구들은 하느님의 통치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이들이 스스로 선택한 길에 대해 비난을 받을 마땅한 각오가 되어 있었고, 이들이 따르고자 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이는 예수 운동이 퍼질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우리가 생각하듯이 신격화 된 예수, 즉 신의 아들로서 대속과 구원을 위해 이땅에 보내졌다는 후기의 신학적 진술에 반하는 것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믿음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즉, 현재의 상황에 대한 행동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믿음에 대한 강조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동양에도 신은 있는가...』▷ 신개념의 형성과 그 분석의 배경1. 동서양 신개념의 형성우선 인간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신에 대한 개념은 "인간이 삶의 터전으로서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있다. 일반적으로 '신'은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니고 자연계를 지배하며 인류에게 화복을 내린다고 믿어져 신앙의 대상이 되는 초월적 존재로 정의되어진다. 원시인들의 종교를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신의 기원에 서로 상이한 많은 의견들을 주장하지만, 원시인들의 종교경험이 다양한 원천에서 비롯되었다는 데 견해를 모으고 있다.신의 유형은 인간의 지적 수준이나 사회발전과 상응한다. 원시 시대에는 씨족신의 성격을 띠며, 사회발달에 따른 신분의 분화로 여러 기능신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다가 역사가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한정된 세계관으로부터 무한한 우주관으로 사고를 확대하게 됨으로 만유를 통일하여 일정한 질서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신의 유형에도 적용이 되어 잡다한 제신(諸神)들이 통일되어 유일의 초월신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즉 기능과 형태가 다른 독자적인 기능을 가진 신들로 구성돼 있다가, 지배적인 원리에 의해 신들의 세계가 정비됨에 따라 최고신의 관념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최고신의 성립은 사고의 발달과도 일치할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발전과도 상응한다.유대교 기독교의 신관과 중국의 신관의 발전 단계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유대 기독교의 신관은 처음 출발은 “창세기” 족장 시대의 ‘족장신’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후 모세의 지도에 의해 출애굽을 경험한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과 언약을 맺음으로써 ‘유일신’에게 배타적인 충성을 바치는 종교 형태를 성립한다. 기독교는 이 유태교의 유일신 신앙을 이어받어 그 바탕 위에 플라톤과 이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형이상학적 요소를 부분적으로 흡수하여 고유한 신관을 형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을 거쳐 삼위일체(三位一體)론을 형성한다.반면 중국의 신관은 이와는 다른 양상으이러한 사회 정치적 기반은 귀신신앙의 모든 요소의 긍정성을 조성하였다.2. 합리화와 신개념헤겔(Hegel: 1770~1831)은 동양인의 정신을 ‘정신의 자연 속으로의 침몰상태’라고 표현했다. 그의 동양관은 자신의 종교철학과 상통하는데, 그는 중국의 종교에서 최상의 종교인 일자(一者)는 곧 하늘(天)이며 이는 곧 자연 일반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는 종교를 자연종교, 예술종교, 계시종교로 나누고 중국의 ‘천’은 자연종교적 의미로 쓰여 졌다고 본다.한편 막스 베버(Max Webber)는 아시아 사회의 기본범주는 자연질서와 인간사회의 질서를 통합하는 데 머물렀기 때무에 현실의 모순을 이상적으로 전환하려는 긴장 없는 단순적응으로 통합되는 것으로 보았다.3. 신개념 분석의 방법론적 배경중국사상에서 천(신)개념에 대한 연구업적은 천개념을 사회변천의 역사성을 고려함 없이 규정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어느 시대 특정 사상을 역사성 배제하고는 볼 수 없는 것이며, 또 그 한 부분만 가지고 전 사상체계를 규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이 책에서는 중국의 신개념을 연구하는 방법론을 막스 셸러(Max Scheller: 1874~1928)의 체계를 채택해 두 개의 분류틀을 사용한다. 셸러는 현상학적 경험으로 가치 그 자체가 존재임을 알게 되고, 인간의 정신구조를 ‘이성’과 ‘감성’으로 구분한 이원론을 따르지 않고 ‘정서적인 것의 선천주의(ein Apriorismus des Emotinalen)를 주장했다. 또한 그는 “인간으로 됨”을 최고 순화인 동시에 자연의 모든 본질 영역들을 가장 내면적으로 통일함으로 이해하였다. 인간은 생명의 모든 본질적 단계를 자신 안에 총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막스 셸러는 존재의 본질적 단계를 무기적 형상-자기 존재가 없고, 매개 환경도 없는 존재-, 생명체(식물) 단계-생장과 번식에 대한 일반 의욕만을 가지며 번식과 죽음에 대한 모든 생명의 근원적 충동임을 증명해줌-, 동물적 단계-감각과 의식이 현존, 식물이 내적 존재와 감각의식이 겹쳐 있는 이중적 존재-, 인는 다르다. 인간의 노력으로 지선(至善)을 추구하지만 자연의 질서에는 어찌할 수 없다는 현실 긍정적 방법에 따라 그 문화성을 초월하지 않는다. 이것은 신 인 미분리, 육체와 정신의 미분리 상태에 남아 있는 중국 신개념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역사가 진행되면서 인간에 내재한 자연적 일반원리가 사회질서의 유지, 더 나은 현실상태로서 이상적 사회질서와 규범으로 지향되는 성격을 띠게 된다.▷ 고대 원시신앙의 신개념1. 소박한 원시종교원시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연과 사회현상을 인식하는 능력이 아직 발달하지 못해 그들의 능력을 넘어서는 모든 현상에 대해 두려움과 공포를 느껴 초인적 힘을 경외하고 숭배하였다. 이는 단순한 생존의 동기에서 요청된 것으로 보인다.원시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초자연적인 현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이러한 고유한 힘들과 결합해서 그 도움을 보증 받는 최고의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의식과 제사를 통해 이러한 정령들과 교제하였다. 그러므로 종교성의 기원은 우주 유지의 위탁으로부터 나온 의식임을 알 수 있다.원시종교의 관심은 현실적인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정령의 힘을 인간의 실리를 위해 끌어들이는 데는 무당(Shaman)의 힘이 필요했다.원시종교 신개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시종교의 신령에게는 각각 자신의 직무가 있다. 둘째, 원시종교의 신령들은 의인적이다. 셋째, 신령들이 비록 인간처럼 행동한다 해도 그들의 힘은 초인적이고 위대하며 가공할 만한 것이다. 넷째, 다신적 원시종교는 다양하고 신비로운 우주의 힘에서 오는 무질서의 특징을 갖는다.이러한 원시종교 신개념의 특징은 고대중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갖는다. 대표적인 자연물에 존재하는 영혼을 숭배한 것의 일례로 태양신 숭배를 들 수 있다. 이는 신석기 시대 기물의 장식도안 중에서 흔히 보이는 +자, 또는 +자 유형의 부호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자 도안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모두 흡사한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원시신앙의 신개념천, 즉 상제에 대한 신앙이다. 이는 사람은 모두 천(上帝)으로부터 태어났다고 하는 신앙, 다시 말해 인간의 조상은 천(天)이라고 믿는 신앙이 곧 중국 고대의 민족신앙이었다.하의 조상숭배는 정치적이거나 국가적인 공동행사를 거행할 때 구심적 역할을 했다. 반면 은의 통치자들은 이 조상숭배를 통해 절대왕권을 행사했다. 한편 조상숭배가 중국인의 종교를 강력히 지배해 온 것은 혈족관계의 중요성 때문이기도 하다.조상은 단순히 사자(死者)의 세계에 머무는 혼령이 아니라 살아 있는 후손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혼령이다. 중국의 조상숭배가 가지는 또 하나의 독특한 점은 신령한 영역과 인간세계 사이의 연결이다.조상신의 개념 이후 상제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는데, 이 상제는 다신에서 일신, 다시 지고신으로 발전한 개념으로써, 이것은 각종 현상의 배후에 일종의 보편적 연관성이 있음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제는 인격적 존재로서 인간과 자연을 포함한 우주 전체를 관장하는 최고의 신이다.이러한 상제의 현격한 권능과 권위는 통일왕국 형성의 근거가 되었다. 하대에 존재했던 것과 같은 조상숭배는 정치적 합법화의 원천으로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조상에 대한 관심은 특수성이라는 한계를 갖지만, 자연에 대한 관심은 그것을 뛰어넘는 보편성의 추구이기 때문이다.3. 원시종교의 변형과 퇴화천개념은 역사 속에서 발전한 개념이다. 이 천(天)은 처음에는 기복적 수호신의 성격을 갖지만 주대에 와서는 당위적 존재로 인간사회의 정치적 성쇠를 좌우하는 존재가 된다. 즉 천은 최고의 도덕적 의지이며 역사의 신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천명사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 천명은 천이 사람에게 부여한 명령이다.주는 은의 종교적 성격을 띤 천명을 민의에 의거한 도덕적 성격을 갖는 천명으로 발전시켰다. 주대의 천은, 주재적 인격적인 존재로, 이법성을 내재적으로 지닌 존재였다. 주대까지의 ‘천’에 대한 인식은 원시신앙적 요소가 우세한 의인성을 함유한 것으로 나타난다.4. 고대중국과 이스라엘의 원시막에서 살고 있던 셈족은 돌무더기와 돌기둥에 대한 신앙을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이같이 근동인에게도 원시종교 신개념의 특징인 애니미즘적 다신신앙의 요소가 있었다.또한 중국 주대와 이스라엘 원시종교의 유사점은 주왕조가 피정복민인 은인들의 지고신인 ‘상제’의 개념을 그들의 ‘천’개념에 흡수 혼합시킨 것과 이스라엘의 족장시대에 원시종교의 형태를 벗어나 주변국가의 자연종교와 혼합되어 다신종교가 성행한 것을 들 수 있다. 가나안 종교의 다신적 현상은 농업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다산(多産)의 신으로서, 중국의 천신 및 지기(地祇)와 비슷한 성격을 띠었다.그러나 히브리인의 신개념은 사막의 단순한 자연조건에 순응해 살던 그들이 출애굽해 가나안에 아주 정착하게 되면서부터 부단히 계속되는 선주민들과의 정치 경제적인 투쟁고 적응의 역사가 자신의 역사 사회적 토대에 적합하도록 더욱 세련된 유일신 신앙형태로서 신으로 합리화시켰다.▷ 유가의 신개념춘추전국시대는 정치적으로 혼란과 무질서가 난무한 격도의 시대였다. 따라서 이 시대의 정치는 도덕과 윤리와는 무관한 것이 되었으며 힘의 정치만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당시의 이러한 상황은 지식인과 사상가들에게 깊은 충격을 주어 역사상 전무후무한 학술과 사상이 일어나고 제자백가가 출현하기에 이른다. 이들의 이론에 근저를 이루는 것은 궁극자(신)에 대한 것이었다.유가에서 신개념의 전개는 ‘천’개념의 발전에서 볼 수 있다. 이 ‘천’은 본래 인간을 초월한 존재였는데, 이 ‘천’이 서서히 추상화되면서 인간세계로 근접해 때로는 인간의 ‘내면적인 것’으로까지 그 의미가 발전함과 동시에 사물의 객관적인 본연의 자세를 나타내는 의미로까지 되었다. 그러나 ‘천을 신으로 신앙하는 종교’라고 규정할 수 있는 종교는 유가에서 최후까지 형성되지 않는다.1. 공자의 신개념공자는 도덕과 예치에 입각한 도덕정치를 주장했으며, 이 예(禮)를 통해 인간의 도덕적 자제력과 극기를 함양하는 예치를 주장하였다. 그는 예의 절대성을 강화하기 위해 예의 기원과 역할을 천지자연의 이이다.
『청나라의 실학사상의 이해』1. 청나라 때 실학사상 형성의 사회적 배경청나라 때 실학사상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던 17세기의 중국은 사회 내부의 모순이 심화됨에 따라 배성들의 삶이 더욱더 어려워졌다. 백성들은 더 이상 명나라 왕조(王朝)에 희망을 가질 수 없어 자신들의 삶터를 떠나 유랑하기도하고, 반면 조직을 결성하여 항거를 하기도 했다. 농민군들은 ‘귀천균전(貴賤均田)’ ‘균전면부(均田免賦)’의 구호를 내걸고 봉기하여 명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농민군 역시 청나라의 복임(福臨)에의 점령당하였다.16세기 말기와 17세기에 강남 지역에 농업과 수공업 및 상품 경제가 소규모로 발달했으며 서양에 의해 천주교 사상과 자연 과학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학(氣學)의 발전과 자연 과학의 수용에 힘입어 경험과 검증을 중시하는 학풍이 위력을 발휘했다.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실학자들은 이전과 다른 세계관을 세워가며 실천적으로 대응했다. 그들은 그들이 살던 시대의 현실을 분석하며 새로운 세계관을 세워 나갔다. 실학자들은 대부분 형이상학적이고도 초역사적인 철학 이론들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취했다.그들의 학문 영역은 철학과 역사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학 등 광범위한 분야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선진 시대의 순자(荀子), 후한 시대의 왕충(王充), 북송의 장재(張載), 명나라 때의 왕정상(王廷相)등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그들의 학문적 경향은 현실을 배제하여 추상의 세계에만 머무르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현실 문제를 인식함과 아울러 그것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한 편이었다. 또한 그들은 앎과 행함의 유기적 관계와 통일을 주장했다.2. 청나라 실학사상의 특징중국철학사에서 ‘실학(實學)’사상은 전통의 ‘실사구시(實事求是)’사상에서 풍부하게 드러나는데, 최초의 ‘실사구시(實事求是)’ 개념은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 나타난다. 그러나 중국철학사에서 ‘실사구시’의 학풍은 춘추시대 공자에게로 연원한다. 공자의 이러한 학풍을 본받고자 하는 유학자들이 매 시대마다만 되어 있고, 도(道)란 이 기(器)의 조리(道)이기에 구체적인 사물(器)은 이 조리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2) 자연 법칙(天道)과 인간 도리(人道)의 통일청나라 때 실학자들은 객관 대상인 자연(天)의 법칙을 ‘천도(天道)’로 여기고, 인식 주체인 인간의 도리를 ‘인도(人道)’로 여기면서, 이 둘을 통일의 관계로 파악했다. 즉 그들은 자연에 대해 인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인간만 가능하다는 이론을 제기함으로써, 무위(無爲)의 자연과 유위(有爲)의 인간의 역할을 분별하였다.청나라 때 실학자들은 자연의 운행 결과로 나타나 일정한 질서를 ‘법칙(道)’으로 규정한다. 이 법칙은 결점이 하나 없어 인간이 본받아야 할 ‘자연 법칙(天道)’이다. 그들은 이 법칙을 ‘명(命)’으로 설명하기도 않다.실학자 중 왕부지는 ‘하늘(天)’를 기화(氣化) 발생의 기능으로서 자연의 조화(造花)라고 말한다. 하늘은 만문 화생(化生)의 시작이며, 만물이 자연적으로 조화되며 갖게 되는 특성이 바로 ‘명(命)’이다.왕부지는 ‘천명(天命)’을 견문(見聞)등의 감각에 의존하지 않으며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자연 법칙(天道)으로서, ‘인 의 예 지 신(仁 義 禮 智 信)’의 근거로 설정했다. 이는 항상 역동적인 자연(天)의 운행 결과로 나타나는 질서에 도덕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즉 왕부지는, 인간이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갖추어진 도덕성을 현실에 드러내어 자연 법칙과 통일하는 것을 이상적인 삶으로 생각했다.왕부지는 이러한 관점에서,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과 관련을 맺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이전 철학자들과는 구별되는 ‘통일’사상을 제기했다. 이는 자연 법칙인 천도와 인간의 삷을 주체적으로 연결시키려는 면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다.그는 인간 도리(人道)의 근거인 ‘본성’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새롭게 생성되기도 한다는 관점을 취한다. 또한 그는 본성(性)이 경험적인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이렇게 변화할 수 있는 ‘본성’이기의 합리적인 질서와 인간 삶의 합리적인 원리를 통일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 ‘자연 법칙’과 ‘인간 도리’의 주체적인 역량을 존중하는 가운데, ‘인간 도리’의 역할을 ‘다한’ 후에 ‘자연 법칙’과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왕부지의 이러한 사상은 자연의 법칙이 어떻게 인간의 도덕 법칙과 동일시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리적으로 불명확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과의 공존을 중시한 점에서 후대의 중국 철학자들에게 의미 있는 사상으로 받아들여졌다.3) 앎과 행함의 통일실학자들은 성리학이나 양명학이 행함을 선험적인 앎을 드러내는 것으로 취급한 것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취했다. 그들은 앎의 대상에 대해서도 선험적인 도덕 내용에 국한시키지 않고, 자연과 역사의 법칙 등으로 확장했으며, 앎의 방법과 과정에서도 감각과 지각을 근거로 하는 감성적 앎과 개념 판단 추론을 기초로 하는 이성적 앎의 통일을 중시했다.즉 그들은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사물을 성실하게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선인들이 쌓아 놓은 업적을 배우고 익힘은 물론, 그 내용에 대해 깊이 숙고하고 연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중국 철학사에서 앎과 행함의 관계 문제는 주로 앎과 행함 중, 앞섬과 뒤, 가벼움과 중요함, 어려움과 쉬움 등의 문제로 드러나지만, 청나라 때 실학자들은 궁극적으로 앎과 행함과 통일의 관계로 설정했다.(1) 앎과 행함의 앞섬과 뒤 문제앎과 행함에서 앞섬과 뒤의 문제는 앎과 행함의 근거를 해명하기 위한 것이다. 청나라 때 실학자들은 대부분 ‘행함과 앞섬과 앎의 뒤(行先知後)’성릐 기반 위에 행함의 앞섬에 대한 치밀한 논리를 전개했다. 그들은 생산 행위와 과학 실험 및 사회 변혁의 행함을 통해 정확한 앎이 도출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전통의 시대에 사회를 관념화시키지 않고, 역동적으로 자신의 시대 문제를 해결해 가는 이론 근거로 작용했던 ‘행함의 앞섬과 앎의 뒤’설을 현대 사회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키면서 현대의 문제를 풀어 가는 이론 근거의 하나로 설정관점에서 청나라 때 실학과 중국 현대 철학에서는 앎과 행함의 통일이라는 공통점을 드러낸다.4) 백성 중심의 사회 정치사상청나라 때 실하작들은 봉건 사회의 유지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으면서도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던 ‘백성’을 군자 계층과 함께 역사 발전의 주역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군주의 존귀함도 하늘의 신령함 때문이 아니라 모든 사람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라고 하면서 많은 백성들의 결집된 의견이 주요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고 말한다.청나라 때 실학자들의 이러한 민본사상은 맹자의 민본사상의 범주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천명(天命)’의 권위, 즉 ‘하늘(天)’의 권위로부터 독립된 ‘민본(民本)’을 토대로 하였다. 또한 실질적은 경제 활동의 의미를 찾음과 아울러 불평등한 신분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실제적인 삶의 의미를 중시했다.3. 청나라 때 실학사상의 의의와 한계청나라 때 실학자들의 사상 대부분이 공리공담의 허구를 비판하고 실제적인 일을 중시했다.청나라 때 실학자들의 이러한 세계관 정립은 진리에 대한 앎의 문제와 현실의 모순을 변혁하는 행함의 문제에서도 이전 시대와 다른 풍토를 조성했다. 그들은 어떠한 진리도 시대나 장소에 따라 유기적으로 전화될 수 있다는 상대적 윤리설에 기초하여 그들의 진리관을 새롭게 정립했던 것이다.또한 백성들의 사회 참여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으며, 공업과 상업의 활성화를 역설하여 경제 발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고자 했다.그러나 그들은 봉건 사회 자체, 즉 봉건 사회의 구조를 변혁시키려는 노력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였다.『조선후기의 실학사상』1. 조선후기 실학사상의 형성조선시대 후기에 실학이 발생한 계기는 세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첫째, 임진왜란과 병자혼란을 겪으면서 사회경제적인 구조의 변화 등이 사회적인 요인으로 크게 작용하였다. 둘째, 17~8세기에 유입된 중국실학의 영향과 중국을 통해 유입된 서학이 가져다준 새로운 세계상이 외적 요인이 되었다. 셋째, 성리학의 전개 과정에서 드러나 성리학의 한 이론적 탐구가 심화되면 될 수록 개념을 둘러싼 논쟁은 더욱 끊임없이 가열되기 마련이다.실학자들에게 있어서 모든 이론은 현실을 설명함에 있어서 검증 가능성이 있거나 아니면 생활상에 유용성이 있어야 한다. 담헌과 다산, 혜강은 리기철학의 한계를 자각하고, 리기를 기존의 성리학자들과는 다른 의미의 맥락에서 사용한다. 즉 실학자들에게 있어 리는 기의 현상에 내재하는 조리(條理)의 뜻으로 한정되어 사용되어 지는 경우가 많다.담헌은 우주의 기의 운동으로 설명한다. 리(理)는 단지 기 가운데 있을 뿐이다. 담헌에 있어서 리(理)는 독립적 실재성과 주재성이 부정되고 기 가운데의 리(氣中之理)로 인식된다. 이는 성리학적 주기론자와는 구별되는 기일원론의 철학에 근거하고 있다.다산은 독립적 실체(自有之物)는 오직 기(氣)일 뿐이고, 리(理)는 기에 붙어 있는 속성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다산은 천(天)을 비인격적인 리(理)로 이해하는 것을 비판하고, 상제(上帝)라는 유인격적 존재로 해석한다.혜강 역시 담헌과 같이 일체 존재를 기의 범주로 설명한다. 기는 ‘활동운화(活動運化)’하는 본성을 지니고 본다. 활동운화에서 활은 ‘생기(生氣)’, 동은 ‘상동(常動)’, 운은 ‘주운(周運)’, 화는 ‘대화(大化)’로 해석되며, 활동운화란 생생한 기운이 항상 움직여서 두루 운행하여 크게 변화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기의 역동적 변화는 그 자체의 내적 활동력 때문이지 결코 외부에서 운동을 가능케 하는 근원적 존재가 따로 있어서 그러한 것은 아니다.활동운화의 개념은 자연은 물론 인간과 사회의 변화하는 본성을 함께 아우르는 존재론적 개념이다. 혜강의 기학은 개인과 사회, 인간과 자연을 부단히 활동운화하는 역동적 실재로 파악하는 특성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다.활동운화하는 기에 내재하는 존재론적 법칙을 혜강은 ‘유행지리(流行之理)’라고 규정한다. 리는 철저하게 기에 내재하여 존재하는 기의 조리에 지나지 않는다.담헌과 다산과 혜강은 리기철학을 지탱해 주는 핵심 개념인 음양오행의 의미를 주희와재이다.
『중국의 고대사상』중국인들은 자연을 자신들의 농경생활과 긴밀하게 관련하여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사상을 발달시켰다. 중국인들의 사상은 ‘자연’을 모든 것의 원천으로 설정하고 그것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데에 인생의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관 또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현세적인 것이 특징이다.한편 고대 중국인들은 자연에 대해서 종속적이었으며, 자연 현상의 원인들을 단지 신비한 힘의 작용으로 돌렸다. 이에 더해 모든 자연물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생각되는 하늘에 대한 숭배가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하(夏)나라 때의 자연천에 대한 숭배이다. 또한 자연숭배의 일종으로 ‘토템숭배’가 있었는데, 부계씨족사회가 되면서 부족의 기원을 동물에서 남성 영웅으로 전이시켜 인간 자신으로부터 인간의 역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토템숭배에서 조상숭배로 넘어가는 과정이다.그 후 농업이 발달하여 곡물이 주식이 되었을 때는 사직(社稷)에 대한 제사가 있었는데, 이것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약화되었고, 특히 천에 대한 숭배가 중요시된 은(殷)나라에서는 ‘제(帝)’ 또는 ‘상제(上帝)’라고 하는 신을 숭배했다. 이는 은부족의 조상신과 같은 성격을 띤다. 반면 그 후 등장한 주나라에서 상제 대신 ‘천(天)’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이는 ‘가장 높은 신’을 뜻하는 것이다. 이는 후에 ‘천명(天命)’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1. 하(夏)나라의 사상하(夏)나라는 일찍이 농업에 들어가서 방적 및 목축과 건축, 도요 들이 발달한 곳으로 B.C 약 2300년부터 1800년으로 추정된다.하왕조는 부락연맹의 기초 위에서 최고신(자연천)에 대한 숭배를 그들의 통치 수단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연 중 하늘을 최고신으로 숭배했는데, 이는 이 ‘하늘’은 자연계를 운행시키는 중심적인 존재로서 다른 자연물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인식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숭배하는 ‘하늘’은 인격이라는 개념과는 다른 단순히 자연적인 의미의 천(天)이다. 그들은 자연의 운행과 생성의 질서 속에서 모든 대상을 이부패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주(周) 무왕(武王)에게 멸망되고, B.C. 1200년경에 주왕조가 건립되면서 중국 고대에 있어 최초의 봉건왕조가 출현하게 된다.주는 은의 상제를 ‘천(天)’이라 하였는데, 이 천은 우주 만물과 만사의 실질적 주재자로서 인간사회의 모든 일과 긴밀하게 연관된 것으로 여겨졌다. 주왕조는 그들이 모신 ‘천’이라는 최고신으로부터 명령을 받아 은을 멸망시킨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천’이라는 최고신으로부터 권력을 위탁받은 것이다.이렇게 ‘천’이 ‘상제’와 같은 절대적 권능을 가지게 된 것은 주나라에 이르러서이다. 이 천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덕 있는 자를 왕으로 세워 자신을 대신해 백성을 다스리게 한다. 이로부터 ‘천명(天命)’사상이 발전하게 된다.이러한 천명(天命)사상은 은나라의 탕이 하나라의 걸을 칠 때에 내세웠던 역성혁명의 명분이었으며, 그 후에 주나라가 은나라를 정복하는 데로 여전히 이 천명을 정당성의 명분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주나라는 이 천명을 민의(民意)에 의거한 도덕적 성격을 갖는 천명으로 발전시켰다.그리고 주나라에는 조상숭배 역시 변화시켰다. 주나라에서는 조상의 덕을 본받으려는 경향을 띠었으며, 이 조상숭배는 정치적, 도덕적 의의에 치중하였다. 그러나 자연신과 조상신들에 대한 제사는 여전히 중요했다. 이는 자연신과 조상신들의 위력이 소멸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이같이 볼 때 중국 고대사상은 모든 자연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자연물 숭배와 하늘에 대한 막연한 경외감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종족만을 비호한다고 믿는 조상신(상제)에 대한 신앙으로 발전하였고, 이후 민의에 의거한 보편성을 지닌 천명사상으로까지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조선 성리학의 이해』1. 퇴 율 성리학의 대두 이전1) 성리학의 개념 및 주자학 수용 이전의 상황선진(先秦)유학사상 중 특히 공자-맹자의 유학사상을 재건(再建)한 것인 송대-원대-명대의 신유학은 주장에 의해 완성된 신유학(주자학)과 왕양명(양명학)에 의해 완성된 신유된다.그 후 고려의 유학 사조는 무신정권기(1170-1270)와 원의 간섭기(1270-1350)를 거치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무신정권기의 100년간에 중앙에서는 문신들의 입지가 빈약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방에서는 꾸준히 송대의 신유학풍이 유지되고 발전해가고 있었다. 무신정권기에 이루어진 뚜렷한 변화는 불교계에서 선종을 지원함으로써 교종의 세력이 크게 타격을 받은 점과, 불교계와 유학계의 교류가 활발해진 점을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유학자들에게는 심성 수양의 공부에 주의를 기울이는 학문 경향을 갖게 됨으로 주자학의 수용을 용이하게 해주었다.원의 간섭기에는 친원파 세력인 권문세족이 등장하면서 불법과 탈법을 일삼아 민중들의 고통이 극에 달하였다. 이 고려후기의 이러한 상황 가운데 민중의 고통과 분노를 대변하는 지식인들이 불교계의 선승과 신진 사대부 계층이었다.고려 후기에 뚜렷하게 세력화한 신진 사대부 계층이란, 청렴함을 소중히 여기고 한국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을 중요시했던 유학계의 지식인들 가운데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고려사회에서 하나의 주권 세력으로 등장한 집단을 가리킨다. 이들은 권문세족들과 대립관계에 있었으며 대부분 향리 출신이 거나 미미한 가문 출신, 거의가 과거를 통해 입사한 사람들이고 현실사회에 대해 개혁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신유학에 조예가 깊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주자가 완성한 성리학이 고려의 유학계에 수용되게 된다.2) 고려 말 신진 사대부 계층의 주자학 수용주자학이 한국에 전래 된 시기는 안향(安珦, 1243~1306)과 백이정이 원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이들에 의해 주자학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주자학을 수용하여 적극 활용한 지식인들은 고려 후기의 신진 사대부 계층이다. 이들은 원의 간섭기를 지나 공민왕(1351-1374)이 일련의 개혁 정치를 시행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등자하게 되는데, 이들이 피폐한 고려 후기의 현실 사회에서 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정치적 이념으로 적극 활용한 것이 주자학이다.성리학은 어린사대부들은 전국의 산림으로 흩어지게 된다.3) 조선 전기의 성리학넓게 보면 조선 전기의 성리학은 새 왕조 출현에 참여한 중앙의 관학파 성리학과 이에 반대하여 향촌으로 흩어진 산림 유학자들의 성리학으로 나뉜다.관학파 성리학자들은 경세에 적극적이던 고려 후기의 성리학풍에 이어 유교 이념에 입각한 조선 사회의 유교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이 방향의 영도자 격이었던 사람은 삼봉 정도전이었다. 정도전은 불교를 비판하는 글을 썼는데, 그의 불교 비판은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그가 불교에 비판을 가한 저의는 윤리의식과 현실 사회의 책임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조선 개국의 상황에서 정도전과 더불어 쌍벽을 이룬 성리학자로 양촌 권근(양촌, 1352~1409)이 있다. 그는 역성혁명을 긍정한 참여파 성리학자이면서도 정도전과는 다소 방향이 다른 길로 나아갔다. 권근은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지도 않았으며 불교에 대해서도 정도전과는 달리 포용하려는 입장이었다. 권근의 성리학 사상이 갖는 최대의 특색은 주자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이해하였다는 점이다.정도전과 권근을 선구자로 볼 수 있는 조선 전기 관학파 진영의 성리학은 몇 가지 특색을 갖는다. 첫째 경세에 치중하였으며, 둘째 중앙집권적 관료 체제를 취한 점이다.중앙의 정계와 학계의 지평으로 보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사림파들은 퇴계 이황과 사단칠정 논변을 벌인 고봉 기대승을 대표로 하여 나름대로의 흩어진 지방에서 학통을 이어가고 있었다.이들 산림 성학자들의 성리학적 특성으로 대표적인 것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소학"을 매우 중요시 했다는 점이다. "소학"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을 위한 교재인데, 이들이 이것을 중요시 여겼다는 것은 이들이 일상생활에서의 오륜의 실천을 중요시하고 하나하나의 행동에서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바르게 갖는 것이 유학자의 길이라고 믿었다는 것을 말해준다.결론적으로 조선 전기 관학파 성리학과 산림 성리학 간의 학풍상의 차이로는 재야[산림] 성리학자들이 수기의 수양공부 및 실천의 면에서 관학파보다 더 엄격하고 여하게 된 점이다.사림 진영의 성리학자들이 성리학의 이론을 탐구하는 학풍으로 바뀜으로 해서 성리학의 이론인 리기심성론(理氣心性論)에서 수준 높은 성취를 냄으로써 동아시아의 주자학 전개에서 최정상의 지위를 갖게 된다.2. 퇴계 성리학과 율곡 성리학1) 사단칠정 논변의 관건 문제조선조의 성리학이 퇴계 성리학과 율곡 성리학의 성취를 낳게 된 것은 사림파의 지치주의 추진이 일련의 좌절을 겪으면서 이론의 필요성을 자각한데서 생겨나게 된 것이다.사림파 성리학 진영의 학자들이 리기심성론을 적극적으로 논구하게 됨에 있어 기폭제가 된 사건은 제 1, 2차 사단칠정 논변이다. 사단(四端)은 「맹자」에 나오는 사단설의 네 가지 단서를 가리키고, 칠정은 「중용」에 나오는 희로애락을 포함하여 「예기」에 나오는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의 일곱 가지 정을 가리킨다.사단과 칠정은 모두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 지평에서 일어나는 정서이다. 주자는 인간 내면의 정서를 총관하여 ‘정(情)’이라는 용어로 정리하였다. 주자철학에서는 사단도 정이고 칠정도 정인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부류는 그 성격이 크게 다른데, 사단은 도덕 감정(moral feeling)이고, 반면에 칠정은 비-도덕(non-moral)감정이다. 여기에서 논변의 발단이 나타나는데, 이 비-도덕정 감정의 칠정이 도덕가치에 포함 시킬것이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이다.2) 퇴계 성리학과 「성학십도」주자철학의 트레이드 마크는 리기론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리(理)와 기(氣)라는 두 개념으로 환원시켜 설명하는 것이 리기론이다. 사람에게 있어 리(理)의 실질적 내용은 인의 예지의 성이다.사단찰정론은 사단과 칠정을 리기론적으로 어떻게 규정하여야 타당한가의 문제이다. 주자철학의 리기론에 따른다면 어떠한 종류의 정이 되었든 모든 정의 근거는 인의예지의 성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칠정의 근거도 인의예지의 성인 것이다. 여기에서 사단칠정의 해석을 놓고 두 입장으로 갈라지게 되는 것인데, 하나는 도덕 감정인 사단과 비-도덕 감정은 한다.
『맹자의 사상』1. 맹자의 생애과목 : 유학사상 제출자 : 종교철학과 200003020 이준림맹자(B.C.372?~289?)는 공자 사후 100여 년이 지난 전국시대 중기의 추(鄒)나라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는 맹손격(孟孫激)과 장씨(氏), 이름은 가(軻)이다. 그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인에게 수업을 받았다. 맹자는 공자를 매우 흠모하여 “나는 공자의 제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를 사숙했다.”하였다.맹자는 사상가나 교육자로 만족하지 않고, 왕도정치 사상을 들어줄 제후를 찾아서 여러 나라를 주유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상을 진정으로 들어줄 제후를 만나지 못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시대에서는 그의 사상이 비현실적 이상주의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의 뒤를 따르는 제자가 수백 명이 될 정도로 그의 위세는 컸다.정치 현실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맹자는 만년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교육하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맹자」7편을 지어 자신의 사상을 정리하였다. 그는 인간의 참된 마음과 본성이 무엇이며,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 참된 정치에 대하여, 하늘과 백성과 군주의 바람직한 관계 등에 대해 고민하면서 공자의 사상을 널리 알리고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유학사상의 진흥에 크게 기여하였다.2. 맹자의 사상 체계1) 천(天)관맹자에게 있어 천(天)은 공자와 마찬가지로 자연과 인간세계를 주재하는 존재이다. 맹자에서 천은 인간 도덕성의 원천으로서 형이상학적도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또한 천은 최고실재이면서 최고선으로서 인간에게 성품을 부여하기 때문에 인간의 성품은 결코 악할 수가 없고, 선할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있어 하늘을 섬기는 방법은 하늘이 준 본래의 마음을 잘 보존하고, 하늘이 부여한 선한 본성을 잘 기르는 것이며, 하늘이 부여한 가치 즉 인의예지를 당위적으로 구현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위치이다. 이와 같이 맹자사상에 있어서 천(天) 즉 하늘은 인간에게 선한 성품을 부여한 ‘도덕적 천’으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부여받은 도덕적 성心)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드러난다고 보았다. 인의예지는 선천적인 도덕성이며, 마음은 인의예지의 발현작용이다. “마음을 극직힌 다하는 사람은 본성을 알고,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안다.” 이것은 심의 작용을 통하여 심의 본질인 성(性)이 인식되고, 본성을 통하여 천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맹자의 양지양능설(良知良能設)은 사유 이전에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도덕에 관한 앎과 능력을 인정한다. 맹자는 인간 도덕성의 원천을 선천적인 품성에서 찾고 있다. 육친을 친애하는 ‘친친(親親)’은 인, 어른을 공경하는 ‘경장(敬長)’은 의라고 하였는데, 이 인의(仁義)는 선천적 앎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의예지의 줄임 말이다.맹자는 밖에서 외부로부터 얻어지는 외래적 가치보다는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내면적내재적 갗에 주목할 것을 강조한다. 벼슬 역시 사람에게 주는 벼슬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벼슬은 하늘이 사람에게 준 벼슬이라고 보았다. 인간이 이러한 도덕적 가치를 자각하고 인지하여 발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적절한 자기 수양의 노력이 요구된다.맹자의 심학에서는 마음의 수양과 과욕(寡慾)을 매우 중시한다. 맹자에게 있어 천하만사의 근본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고, 자신을 지배하는 주체는 또한 마음이므로, 결론적으로 만사는 자신의 마음에 크게 의존한다고 여겼다. 맹자는 수신을 강조하면서, 수신에 있어서 마음을 잘 기르는 양심(養心)이 중요하다고 여김과 동시에 마음을 잘 기르기 위해서는 욕심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줄이는 과욕(寡慾)에 있다고 하였다.또한 도덕 수양의 방법으로 맹자는 자기 몸의 기를 잘 길러주는 ‘양기(養氣)’를 중시하였다. 맹자는 스스로도 언명하기를 자신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른다고 하였다. 호연지기는 의로움과 짝하고 도덕과 함께 하는 것이다. 호연지기를 잘 기르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대인(大人)또는 대장부가 될 수 있다. 참된 대장부는 그 어떠한 것에도 흔들림 없이, 오직 인(仁)이라는 천하의 넓은 집에 거처하고, 예(禮)라는 200003020 이준림3) 윤리학: 오륜과 사덕맹자의 윤리ㅣ학설에서 중요한 것은 오륜설이다. 오륜이란 다섯 가지의 인간관계의 규범으로서, 인간의 상호관계 윤리이다. 친애(親), 의리(義), 구별(別), 질서(序),믿음(信)의 오륜에서 친애와 구별과 질서는 가정윤리에 해당하고, 사회윤리는 의리와 믿음에 해당하는 것을 볼 때에, 가정윤리가 사회윤리에 비해 비중이 더욱 크다. 이는 효가 근본이요, 충의는 부차적이라는 인간관계 윤리의 특수성이 드러난다.한편 맹자의 사덕(四德)을 보면, 사덕이란 인의예지이다. 사덕을 양분하면 인의가 중심이고 예지는 형식이다. 이는 인을 중시했던 공자와는 달리 인의를 중심으로 자시 사상을 설명한 맹자 윤리학의 중요한 특성이다. 이것은 맹자가 행위의 결과가 가져오는 유용성보다도 행위 과정 그 자체가 옳고 정당한가를 매우 중시했다는 것으로 현대의 의무론적 윤리학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4) 정치사상: 왕도정치론공자는 “정치함에 덕으로 한다.”고 하였다. 이때 덕정의 덕은 곧 인과 다르지 않으므로, 맹자는 인정(仁政)으로 정치의 근본을 삼았다. 맹자의 인정은 다시 민본주의로 발전하고 왕도정치에 도달한다.나라는 군주보다 백성이 더욱 귀중하다는 맹자의 민본사상은, 경우 따라서 군주가 덕을 상실하고 정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백성을 위해 군주나 왕조를 교체할 수도 있다는 논리를 보여준다. 그리고 민본사상은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인 부의 균등 배분책으로서 정전(井田)을 주장하고, 교육 균등을 주장하여 인정(仁政)실현이 왕도라고 여긴다. 맹자에게 있어 참된 정치란 백성들의 기본 생활을 보장해 주어야 하고, 정치인은 백성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백성의 뜻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군주는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므로 백성을 자식처럼 보살피는 어진 정치를 베풀지 않으면 군주로서의 정치적 정당성을 상실하고 만다.맹자의 왕도 경제 사상을 보면, 맹자는 인정의 기초를 경제적인 균등에 두었다. “대저 인정은 반드시 정전(井田)소 마을 주민끼리 서로 우애 있게 지내고, 도적을 방어하는데 서로 돕고, 질병이 있으면 서로 주선하여 도우면서 주민들이 친목하는 가운데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순자의 사상』1. 순자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순자가 언제 태어나고 사망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여러 가지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조(趙)나라에서 B.C.313년경에 태어나 B.C.238년경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순자의 이름은 황(況), 자는 경(卿)이며 손경(孫卿)으로도 불렸다. 일찍이 제(濟)나라 직하(稷下)에서 공부하였고 나중에는 당시 학문의 중심지였던 제나라 직하학궁의 학사 가운데 원로 스승으로서 존경을 받아 좨주의 지위에 추대되었다. 순자는 유가의 입장에서 여러 사상을 비판하고 섭취하면서 자신의 사상체계를 완성하였다. 그는 자사와 맹자를 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학자 중에서도 자사나 맹자와는 다른 유파인 자하(子夏) 계통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2. 순자의 사상체계1) 천관: 자연과 인간의 분리고대 중국인들은 하늘(天)이 세계를 주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순자는 이러한 기존의 유학자와는 달리 하늘의 ‘자연성’을 강조하였다. 순자는 하늘을 의지를 지닌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와 행동에 의해 지배되는 자연현상으로 보았다. 그 작용은 신비롭지만 일정한 불변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더 이상 인간의 화복의 주재자가 아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와 행동에 의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순자는 천(天)과 인간을 분리시키고, 하늘에 의지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하늘과 땅의 운행 원리나 법칙은 사람의 의지나 행위와는 무관하게 객관적인 것으로 파악하였다.순자는 하늘과 인간의 구분을 중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늘을 이용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하늘이 인간의 도덕적 가치의 근원이라는 기존의 관념은 순자에게서 완전히 부정되었다. “하늘에 있는 것 중에는 해와 달이 가장 중심이고, 땅에 있는 것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인간인 성인(聖人)이 만들어낸 것이다.이처럼 순자의 천관 및 자연론은 인간을 하늘의 권위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적합리적인 정신을 가치 있게 여기게 하였다.2) 인성론: 성악설순자는 인간의 성을 악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순자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자연적 성향을 ‘성(性)’이라고 불렀다. 본성은 천성적으로 몸에 지니고 있는 고유한 것이다. 또 그 타고난 본래의 성이 여러 가지 대상과 접촉함으로써 자연적으로 파생된 것도 성에 포함시켰다.순자에게서 악은 이러한 본성 속에 있는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순자사상에서 본성이란 자연적으로 타고난 것이어서 배워서 행할 수도 없고,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도 없다. 반면에 예의란 성인이 만들어낸 것이어서 배우면 행할 수 있는 것이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것이다.순자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인간은 선해지고자 한다는 것이다. 즉 이것은 인간이 자신 안에 없는 것을 반드시 외부에서 구하려고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자는 이러한 본성이 발동할 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을 정(情)이라 불렀다. 인간은 마음의 작용으로 움직이는 정을 선택하여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 마음의 작용은 사려(慮)와 능력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려와 능력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소행, 즉 인위(爲)이다. 또 인간에게는 지각 작용을 담당하는 지식적 측면(知)이 있는데, 그것이 대상에 따라 적절히 움직이는 것을 지혜(智)라고 하며, 그렇게 움직이게 하는 힘을 능력(能)이라 부른다.순자는 인간의 선을 창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특정의 인물들, 즉 성인(聖人)이나 대인(大人), 지인(至人)만이 할 수 있다고 보았다.3) 예론: 예의예(禮)는 공자 이래로 유가에서 매우 중시되었지만, 공자와 맹자와 달리 순자는 예의 기능적형식적 측면을 강조하고 이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였다.순자에 의하면, 인간의 성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