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上海)상해(上海)는 중국 양쯔강 어귀에 있는 상공업 도시이다. 상해시는 중국의 3개 직할시 중의 하나로 중국 대륙연해부 최대의 도시이다.상하이항은 강어귀의 외항과 그 상류 약 39km까지의 내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수만 톤급의 외항선이 자유로이 드나드는 세계적인 무역항이다. 중국 최대의 도시이자 손꼽히는 공업 도시로 방직, 기계, 조선, 전기 기기, 화학, 비료 공업 등이 활발하다. 그리고 철도, 항공, 해상 교통의 중계, 집중지로 국내외로 통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예로부터 학술과 문화의 도시로 발달하여 대학, 도서관, 연구 기관 등이 많다. 또 대한 민국 임시 정부가 있었던 곳으로 우리 독립 운동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도시이다.경제의 중심지인 상해가 이전부터 이렇게 발전한 것은 아니고 중국이 서서히 개방화의 물결을 타면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조그만 어촌에 불과하던 상해가 국제적인 무역항으로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으로 아편전쟁 후 영국과 맺은 남경조약에 의해 개방된 후 외국세력에 의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오늘날 상해의 모습은 중국의 변화와 성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형적으로는 현대적인 호텔과 사무실 빌딩들이 솟아올라 시가지의 모습을 바꾸어 놓고 있으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공업들이 발달될 수 있도록 견고한 기술적 기반을 구축하고 있으며, 대외무역의 중요한 항구도시로 과학기술과 문화가 매우 발달한 세계적인 대도시로 발전하고 있다.상해는 지리적으로 동쪽으로는 바다와 접해 있으며 서쪽은 약간의 구릉지대가 있다. 기후는 아열대기후에 속하지만 사계절은 분명한 편이다. 봄에는 날씨는 따뜻하지만 기후 변화가 심한 편이며, 여름에는 습도가 높으며 때때로 40℃에 육박할 만큼 덥다. 겨울에는 평균 기온이 3℃를 기록할 정도로 수은주가 내려가며 눈은 거의 오지 않고 이슬비만 자주 내린다. 그러므로 상해를 여행하려면 봄이나 가을에 여행하는 것동차 등은 관광객의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또한 상해는 '자연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기 밖에 없다'고 할 정도의 상업도시이다. 상해의 면적은 5,800km2 이지만, 교외의 면적을 합친 것으로서 시내의 면적만을 따진다면 144km2밖에 안 되며 관광명소들이 시내에 밀집하여 있다. 상해의 가볼 만한 곳으로는 예원과 노신공원(홍구공원), 외탄, 황포공원, 상해임시정부청사, 상해 동물원 등이 있다.상해 인구는 현재 1300만명으로 중칭(중경·3000만명)에 이어 전국 2위이며, 면적은 서울특별시의 10배인 6340㎢. 신 개발지구인 푸동(522㎢) 지역의 넓이만 하더라도 여의도의 60배에 달한다.상해가 생산해 내는 GDP(국내총생산) 규모는 487억달러(99년 기준). 1인당 GDP는 3702달러로 중국 평균인 787달러의 5배가 넘는다. 황포강 동쪽 신개발지역인 푸동은 지난 1990년부터 개발이 시작됐다. 푸동 건설의 상징인 동방명주탑은 높이가 468m로 TV 송신탑 겸 관광 타워로 사용하고 있다. 지난 98년에는 88층짜리 진마오 빌딩(금무대하·480m)이 완공됐다. 중국에서 가장 높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건물이다. 외국기업들이 상하이에 투자한 금액은 99년 말 현재 300억달러(36조원)에 달한다. 미국 경제잡지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 100대 기업 가운데 57개 기업이 상하이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부를 두고 있다.1. 예 원상해의지도를 보면, 대부분의 도로는 동서(東西)나 남북(南北)으로 나있지만, 황포강 옆을 보면 원형의 길이 보인다. 이것은, 외적의 침입을 16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성벽의 흔적이다. 성벽은 주위는 약 5km, 높이는 8 m 의 높은 성벽이었지만, 1912년에 무너뜨리고, 현재는 인민로와 중화로라는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이 원형의 길 안쪽을 구상해라고 부르는데, 조계지 시대의 상해 때에도 중국인들만이 사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예원이 있다.1559년 명나라때 착공하여, 18년만에 완공한 상해의 명원이다. 명나라의 관료강남명원'이라 불린다. 예원이라는 이름은 '유열노친(부모를 기쁘게 한다.)'의 '유'자와 '예'자의 뜻이 같은데서 연유한 것이다.예원은 상하이시의 남시구(南市區)에 위치해 있고 2만여 평방미터를 차지하고 있다. 유명한 강남 고전원림으로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어있다. 1559년부터 1577년까지 만들어져 400여년 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기암괴석과 호수 등이 잘 어루어진 일종의 중국 고대 정원이다.예원은 외탄과 나란히 되는 상해 2대 관광명소 중의 하나이고, 상해에 방문하는 관광객들 중 대부분이 반드시 방문하는 장소이다. 면적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서둘러 돌면30분으로도 충분하지만, 좁은 공간에 아름답게 배치하여 놓았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려면 넉넉한 시간을 두고 관광하는 것이 좋다.▶예원상가(예원상성)예원상가 예원주변의 많은 상점이 밀집하여 있는 지역인데, 예원을 중심으로 한 인근의 상권 지역을 일컫는다. 고대 기풍의 건물에 기념품을 비롯해 많은 중국적인 물건들을 팔고있고, 상하이 특색의 먹거리가 집중되있어 상하이에 오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씩은 와보는 곳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상품이 있어 쇼핑에 손색이 없는 곳이다. 또, 골동품에 관심이 많으면 의외로 싼값에 원하는 물건을 구할 수 있는 곳도 있는데 가짜도 많으니 잘 살펴보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중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과 쇼핑을 하려는 사람들로 항상 붐비며 일요일의 오후 등은 걷기 힘들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호심정과 구곡교예원상성을 빠지면, 예원 입구의 앞에 작은 연못이 있다. 연못의 안에 세워져 있는 2층 건물의 정자는 호심정이라 불린다. 처음 세워진 것은 400년 전이었으나, 1784년에 재건된 것으로 현재는 찻집으로 이용되고 있다. 2층에 올라가면 서호 용정차를 마실 수 있다. 호심정 앞의 다리는 구곡교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돌로 만들어 졌었지만 1932년에 철근 콘크리트로 다시 만들어 졌다. 구불구불하게 만든 이유는, 귀신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중국의 귀신을 보면 앞한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구불구불하게 걸으면서 보는 경치가 여러 가지로 바뀌어 보이기에 구불구불하게 만든 것이다. 또한 9번 구비돌게 만든 이유는 9는 한지라 숫자 중 가장 큰 숫자이므로 규모가 크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이 구곡교를 지나면 예원의 정문이 보인다.▶ 삼수당(三穗堂)예원의 정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삼수당이다. 삼수당이란 풍작을 기념해 붙여진 이름이며, 건물의 문에는, 벼, 보리, 수수 등의 부조가 되어 있다. 전에는 락수당이라고 불리웠지만, 1760년에 재건되면서, 이름도 바꾸어졌다. 예원 중에 가장 낡은 건물 중의 하나이며 이고,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는 건축으로서도 유명하다. 삼수당에 들어서면 정면에 3 개의 커다란 액자를 볼 수가 있다. 이것은, 예원의 소유자가 몇 차례가 바뀌었나 알 수 있다.2. 상해임시정부청사임시정부는 상해의 어느 한 건물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며, 초기에는 부처마다 여러 개의 청사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임시정부 청사가 사용했던 건물들 대부분은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임시정부청사로 알고 찾아가는 곳은 마당로에 있는 3층 짜리 벽돌집으로 임시정부는 1926년부터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1932년 직후까지 이곳을 청사로 사용하였다. 1932년 임정요인들은 일본 군경의 감시로 상하이를 떠나게 되지만 상하이에서의 임시정부가 시간이 제일 길고, 보존 상태도 제일 완벽하다. 1층에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단체로 촬영한 사진이 걸려있고, 2층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 말고는 별 다른 볼거리가 없다. 비록 임시라고는 하나 한 나라의 정부였다고 생각하기에는 매우 초라하다. 현재는 어느 정도 수리가 되고 개방되었지만, 이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열쇠로 굳게 잠겨져 보고자 하는 사람은 허락을 받아야만 되었다. 이전에 중국인이 살고 있었지만 한국으로부터 많은 돈을 받고 타지역으로 이사를 하였고 현재는 한국 관광객을 위하여 개방되어있다. 관람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골목입구에 참 하게 되는데, 조선족 아가씨가 계속 따라 다니면서 안내를 하지만 설명은 녹음된 테이프를 틀어준다. 청결을 위해 비닐덧신을 신고 나오기 전에 기념품도 살 수 있다.3. 외탄남경동로를 따라 황포강으로 걸어가면 외탄이 나온다. 외탄은 황포강 제방과 중산동로 사이에 있는 상해 시민의 휴식처이다. 동쪽으로는 황포강에 면해 있고, 서쪽으로는 상해시 인민정부 청사를 비롯한 대형빌딩들이 늘어서 있다. 상해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외탄은 과거 100여년 간의 상해의 역사를 보여주는 축도이다. 1840년 아편전쟁의 결과 상해가 개방된 이후 외탄 일대는 외국의 조계가 되어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소련 등 열강의 각종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 1920년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고층 빌딩가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 건축물은 당시 서양의 복고주의 건축양식을 따른 것으로 그 숫자, 집중도, 다양성 면에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것이다.국내외에 널리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꼭 찾는 외탄은 고딕식ㆍ바로크식ㆍ로마식ㆍ고전식ㆍ문예부흥식ㆍ중서합벽식 등 풍격이 각이한 52동의 고층건물이 있다. 외탄은 상해 근대사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황포공원황포강가에는 황포공원이 있는데 이른 아침에는 많은 시민들이 건강을 위해 태극권을 연습하거나 조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886년 영국이 조성한 공원으로 상해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공원이다.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황포강 유람황포강 유람선은 황포강 남쪽의 부두를 출발해서 오송구까지의 구간을 왕복한다. 와이탄으로부터 우송(吳淞)까지 거리는 약 60km를 배를 타고 유람을 하는 코스이다. 겨울에도 결빙이 되지않기 때문에 언제든지 여행이 가능하다. 물을 따라 가다보면 바삐 움직이는 상하이항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나날이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이고, 여름에는 19:00시에도 편수가 있는데 유람시간은 1시간30분으로 줄어들며, 푸동
러시아의 음식문화Ⅰ. 서론음식이란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수단이다. 사람은 음식을 섭취하여, 에너지를 생산하고 그 에너지는 사람이 활동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힘이 된다. 이것이 우리가 음식을 섭취하는 이유이고, 음식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하지만 음식은 이런 단순히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음식을 통해 그 나라, 그 지역, 심지어는 한 개인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고, 각각 다른 특성들이 모이고 대립하여 고유한 문화가 형성된다. 인간은 문화적인 내용에 따라 식품을 선택하고 요리한다. 어느 때 어떤 음식을 먹느냐 하는 것은 그 사회가 갖고 있는 문화적 내용에 따라 결정되므로 인간의 음식은 그 시대의 문화적 산물이다. 또 각 사회는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음식을 만들고, 문화적 배경에 따라 요리법도 다르게 발달하게 된다. 이런 식문화가 형성되는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기후, 풍토 조건에 따른 자연적 요인. 종교, 전통이나 국제화에 따른 사회적 요인. 생활수준이나 소득수준에 따른 경제적 요인. 식품 산업의 발전 정도, 가공기술의 발전 정도에 따른 기술적 요인이 있다. 그밖에도 외부 교류, 욕구 충족을 위한 심리적 요인 등 매우 다양한 요인들을 통해 식문화는 형성된다. 그렇게 때문에 식문화를 통해 거꾸로 그 사회의 여러 가지 특색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나는 외식산업을 전공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나라의 음식문화에 대해 배운 적도 많고, 다른 나라의 음식문화에 대해 관심도 많다. 내가 러시아를 알아가는데,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음식에 관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러시아의 음식문화에 대해 조사해 보았다.Ⅱ. 본론1. 러시아 음식문화의 일반적 특징92년 초 구소련이 공식적으로 해체된 이후 러시아는 20개 자치공화국과 모스크바 시,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옛 레닌그라드)시로 구성된 공동체의 형태로 연방을 구축하고 있다. 이런 러시아 연방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약 77배에 달하는데 유럽에서 극야채가 양배추, 당근, 비트(사탕무)이다. 낙농국인 만큼 유제품들의 품질이 좋아 우유나 치즈 등도 즐겨 먹는다. 또 고기요리는 소금이나 후추 등 간단한 양념만을 사용해 고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등 자연미각을 중시하는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러시아 요리의 특징으로는 가공식품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러시아 요리는 비교적 시간과 수고가 많이 든다. 그러므로 레스토랑에서 수프를 먹을 때도 이것을 정성들여 익힌 음식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러시아 요리에서 스메타나(sour cream)는 약방의 감초이다. 러시아식 전통적인 소스인 스메타나는 마요네즈와 비슷한데 드레싱 대신 사용하고 있다. 스메타나는 만능 소스로 많은 러시아 요리에 첨가되는데, 이 스메타나를 홍당무로 만든 수프 '보르쉬'에 섞으면 깨끗한 분홍색을 띤 크림 같은 수프가 되며, 러시아 전통 핫케익인 '블린느이'에 바르면 산뜻한 오르되브르(전채)가 되기도 한다. '주리엥'이나 '바프 스트로게노프'의 화이트 소스로 하면 러시아다운 맛이 난다.2. 러시아의 자연적 & 경제적 요인러시아는 한랭하고 겨울이 길며 일조량이 적어, 토양이 척박한 툰드라와 타이가 지역에서는 농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남쪽의 혼합림, 낙엽수림지대와 스텝 지대에서만 농목업이 이루어진다. 스텝 지대는 러시아의 곡창지대로 밀, 사탕무, 해바라기 등의 농작물 재배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지만 러시아 인구에 비하여 많이 부족하다. 따라서 서민들은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살아왔으며, 비옥한 농토를 가졌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음식문화는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다만 18세기에 표트르 대제가 대대적인 서구화 개혁을 추진하면서 서유럽의 문물을 들여와 이때부터 상류층의 식탁은 서구화하기 시작하였다.3. 식생활의 특징1) 러시아의 식재료는 제한되어 있다.식재료는 일부의 남쪽을 제외하고는 생채소가 적기 때문에 양배추, 토마토, 감자, 양파, 당근, 사탕무, 오이와 같은 저장채소나 염장채소를 쓰는 요리가 많다. 육류로는 양고기를 많이 다.3) 예로부터 죽을 많이 먹었다죽은 최소한의 재료로 만들 수 있으며 배를 최대한 불릴 수 있는 음식이다. 곡물, 우유, 소금 등을 이용하여 끓인 죽을 러시아인들은 '카샤' 라고 하며, 중요한 자리에서는 항상 죽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4) 감자는 러시아인들의 기근을 해결하였다.1891년대 기근 후에 감자는 러시아인들의 주식과 같이 되어 삶고 튀기고 다른 채소나 고기요리에 곁들이는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감자요리를 한다.5) 육류와 감칠맛 있는 낙농품을 많이 사용한다.쇠고기, 송아지고기, 돼지고기 등을 주로 먹는다. 육류요리에는 소금과 후추 정도만 쓰고, 향이 강한 재료는 쓰지 않아 육류의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버터밀크, 치즈, 버터는 이들이 음식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재료이고, 많은 음식에 스메타나라고 하는 발효시킨 농후크림을 쳐서 먹는다.6) 아이스크림을 즐겨먹는다.러시아에서는 유지방이 덤뿍 '마로제노에(아이스크림)'을 길모퉁이나 키오스크에서 판다. 요즘은 외국 브랜드 아이스크림이 많이 들어와 전통 러시아 아이스크림이 많이 줄었지만 춘하추동,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러시아인은 마로제노에를 즐긴다. 초콜릿을 씌운 것은 에스키모, 과일맛이 나는 프룩토보에, 요구르트 음료인 케피르 등이 있다. 요구르트 음료는 신맛이 강하지만 건강에 좋은 유산균이 들어 있다.4. 식단구성러시아 요리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인 식단은 전채, 수프, 따뜻한 요리, 후식, 음료수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전채로는 각종 차가운 육류, 철갑상어알인 캐비아, 청어 절임에 야채 샐러드가 곁들여지며, 포도주나 보드카와 같은 알콜 음료도 함께 나온다. 수프로는 양배추를 넣어서 끓인 쉬와 쉬에 토마토를 넣어 붉게 물을 들인 보르쉬 그리고 잘게 썬 고기와 야채를 듬뿍 넣은 솔랸카, 생선을 우려낸 우하 등이 있다. 따뜻한 요리로는 쇠고기를 크림소스로 끓인 비프 스트로가노프, 양고기를 구워서 만든 샤실리크 등이 있다.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이나 각종 파이, 케이크와 잼을 전체에 걸쳐 널리 퍼져 있으나 러시아에서는 더욱 정교하며 복잡한 예술의 형태로 나타난다.오늘날에도 이 관습은 잘 지켜지고 있다. 성탄절에는 꿀죽(꾸찌야)와 과일즙(브즈바르)을 먹었다. 꿀죽은 성탄절에만 먹었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세례일 전야, 장례와 추도 때에도 먹었던 의식용 음식이다.부활절과 성탄절이 순수한 정교의 축일이라고 한다면 이교로부터 융합된 축일인 마슬레니차라고 불리는 사육제는 가장 활기찬 축일이라고 볼 수 있다. 다가올 대금식 기간 바로 이전에 일주일 동안 계속되는 사육제 때에는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버터로 만든 음식을 먹게 된다. 이 때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 바로 팬케이크(블리느이)와 만두(바레니끼)이다.6. 러시아인의 음료1) 청량음료 크바스크바스는 호밀이나 보리를 원료로 하여 효모나 발효시킨 설익은 호밀빵을 넣어 만든 러시아 특유의 갈색 청량음료로서 아주 오래 전 부터 마셔왔다. 제조법이 비교적 간단하기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가정에서도 손쉽게 만들어 마신다. 최근에 도시에서는 전문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여 여름철에는 크바스 전용 탱크차가 다니면서 길거리에서 판매하기도 한다. 탄산과 젖산 그리고 약간의 알콜 기운도 함유하고 있어 맛이 독특하지만 갈증을 푸는 데는 그만이다.2) 보드카러시아에서 가장 대중적인 술으로 전체 술 생산량의 70%정도를 차지하는 보드카(알코올 도수 35-50), 포도주 및 스프라이트, 맥주를 들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러시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술은 보드카라고 할 수 있다.러시아인은 자연스러움과 깨끗함을 의미하는 무색, 무취, 무미의 보드카를 유난스럽게 좋아한다. 보드카는 러시아인의 순수한 정신을 나타내주고, 이 정신을 마심으로써 사람들은 진짜 러시아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보드카가 사랑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러시아인들이 이 술을 신비한 힘과 효능을 믿고 있어서 보드카를 마취제로 의약품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보드카는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배고픔과 추위 그리고 삶의 질곡을 잊게 해주는 좋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국가가 보드카의 생산을 엄격하게 통제하였는데 황제가 인가한 선술집에서만 제조 판매되었다. 여제인 엘리자베스 1세 때부터 이런 독점법이 실시되었는데 이는 황가가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역대 차르들은 독점권을 통해 막대한 수입을 올렸으며 이 수입은 근위병과 사업을 유지하는데 그리고 통치자금으로 사용되었다.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공산혁명 때 그 제조기술이 백인 계통의 러시아인에 의하여 남유럽에 전해졌으며, 미국에는 금주법의 폐지와 더불어 알려지게 되었다. 1939년경부터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푸르트 쥬스를 섞어 칵테일베이스로 인기를 얻기 시작하여 폭발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붐이 일어났다.3)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료수, 차'17세기 몽고에서 들어온 차는 초기에는 주로 약으로 사용하였다. 지금은 약이라기보다는 기호식품으로 이용하고, 러시아인들은 '사모바르'라고 하는 차 끓이는 기구를 써서 차를 만들어 먹는다. 러시아에서는 차에 브랜디나 잼과 함께 마신다. 세계 3대 명차 중의 하나인 그루지아차를 즐겨 마시는데, 잼을 곁들인 홍차이다. 홍차와 함께 잼이 작은 그릇에 따로 나오는데 이것을 홍차에 넣어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잼을 조금씩 떠서 핥아먹으며 차를 마시는 것이 그들의 습성이다. 잼이 없을 경우에는 각설탕을 차에 적셔 갉아먹으면서 차를 마신다. 단맛과 쓴맛의 조화를 혀로 느낄 수 있다.4)커피러시아인들은 대체로 커피는 강한 블랙에 각설탕과 함께 큰 잔에 타서 마시는 것을 매우 즐긴다. 크림은 개방이후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대중적인 장소에서는 찾기가 힘들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설탕은 귀한 품목이어서 설탕 없이 완전 블랙으로 커피를 마셨다.7. 대표적인 음식과 요리표트르 대제 이후 러시아요리가 호화로웠다고 하지만 그것은 황제나 귀족, 군인, 부유한 상인들의 식탁이었을 뿐이고, 서민들의 식사는 극히 단조로웠다. 호밀이나 잡곡으로 만든 검은 빵과 죽, 양배추 절이, 소량의 우유 등이 일상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