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교육의 개념적 기준1.교육의 개념철학자들이 다루어온 정의나 지식과 같은 말은 여러 가지 상이한 용도를 가지고 있으며 소크라테스에서 무어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은 이런 여러 가지 용도를 공식화하려 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이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말의 용도는 하나의 정의로 포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복잡한 유사성으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교육이라는 용어(활동으로서의 교육이 아닌 용어로서의 교육)의 용도 또한 명확한 정의로 포괄될 수 없는 용도가 있음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이란 말의 핵심적 어의에 부합하는 사용기준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용어의 용도중에서 근본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을 분간하고 어떤 용어를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때 그 용도사이의 같은 점 뿐만아니라 다른 점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용어의 사용기준을 공식화하는 일은 용어의 여러 가지 용도를 함께 묶는 그 용어의 명백한 의미를 제시하려는 노력이다.-비트겐슈타인이 지적한 의미에 관한 사람들의 오류-모든 단어는 사물의 이름이 그 전형적인 지시대상과 관련하여 의미를 가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교육이 이런 용어에 속한다. 예컨대 교육이라는 용어는 재배라는 단어와 달리 어떤 특정한 활동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교육은 교화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활동이나 과정을 꼬집어서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활동이나 과정이 갖추어야 하는 기준을 명시하는 것이다.2.교육의 규범적 측면교화와 교육이 같다고 보는 또 하나의 이유는 두 개념 모두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이 달성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과 가치있는 것과의 관련은 특정한 내용을 개입시키지 않고도 성립한다.(가)교육의 과업·성취분석교육이라는 말속에는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이 전달되거나 촉진된다는 뜻이 들어있기 때문에 교육은 라일이 말한바대로 성취어의 특수한 경우가 된다.라일의 과업어와 성취어의 구별-과업어:탐색하다. 경주하다. 추리하다. 경청하다.-성취어:발견하다리하다. 결론맺다. 이해하다.교육과 라일의 성취어와의 차이점1성취어는 과업어의 활동이나 과정이외의 부가적 활동이나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성취가 반드시 가치있다거나 과업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뜻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육의 경우에는 그런뜻이 들어있다. 왜냐하면 누구를 교육한다고 하는 것은 비단 어떤 일을 성취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일이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의미하다.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하는 방법이 도덕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는 뜻도 그 속에 들어있다.2또한 교육이란 말은 성취뿐만 아니라 여러 중류의 과업도 포함한다. 즉, 교육은 노력의 뜻과 성공의 뜻을 모두 포함한다.3교육이란 말이 어떤 특수한 상황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듯이 교육이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있는 것에도 수많은 종류의 성취, 가치있는 정신상태가 포함되어있다. 이것이 교육목적에 관한 논의가 분분한 근본적 이유이다.반면 라일의 성취어중 대부분은 보다 특수한 정신상태를 가리키며 과업또한 특수한 활동들로 되어있다.(나)교육의 목적·교육의 내재적 목적:개인의 잠재능력의 발달이나 지력과 인격의 발달.지력과 인격을 개발한다는 것은 곧 가치있는 것을 개발한다고 하는 말의 구체적인 내용을 명시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어떤 사람을 교육한다는 말의 의미이다. 따라서 교육목적은 특정한 성취 또는 정신상태를 명백히 규정함으로써 교육받는 사람 이라는 형식적인 개념에 실질적인 내용을 부여한다.이러한 결론은 목적의 개념을 잘 분석해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목적이란 말은 추진 중인 활동의 초점이 되는 것에 주의를 집중한다는 뜻과 그 일을 이룩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 동시에 들어있다.교육과 관련하여 목적이 그토록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교육이라는 활동은 사람들이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통하여 무엇을 성취하고자하는가를 언제나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진정한 성취를 하기가 그다지 쉽지 않은 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취할 가치가 있는것에 관하여 명확한 인식을 가지게 하고 그것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한가지 방법이다.반면 외재적 목표를 알고 싶을 때 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그일을 하는 동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교육자체에 관해 물을때는 이상하다. 왜냐하면 교육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가치있는 것을 전달하는 일이며 따라서 그 질문은 마치 좋은 삶을 사는 의도를 묻는 것 같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질문은 교육에 속하는 여러 가지 세부적인 활동에 관해서는 충분히 물어 볼 수 있는 질문이다. 흔히 교육의 목적과 의도사이의 혼란은 교육적 가치를 가질 수 있고 또 통상 가지고 있는 활동에 관하여 말해야 할 내용을 교육 그 자체에 관하여 말하기 때문에 빚어진다.3.교육의 인지적 측면-교육을 여러 가지 과업들의 모임으로 볼 때 교육이 갖추어야 할 과정상의 기준을 고찰하기 앞서 교육의 과업적 측면에 관한 지식과 이해의 요건에 대해 생각해 보자.(가)지식과 이해교육받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술 내지 방법상의 요령을 터득하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교육받은 사람이 되는 데는 또한 일군의 지식과 모종의 개념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방법상의 요령을 잡다한 사실 수집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사실을 전체적으로 조직하는 원리에 관하여 다소간의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교육받은 사람에게 필요한 지식의 요건(화이트헤드)-무기력한 지식이서는 안된다. 이의미는 첫째, 지식은 서로 유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물을 보는 안목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교육받은 사람의 지식은 어떤 사고의 형식안에 들어와 있다는 데서 당연히 따라오는 그러한 확신을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확신이 없을 때 사고의 형식이란 전혀 무의미해 진다. 이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지식은 덕 이라고 한 말에서 확인 할 수 있다.(나)안목안목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관해 아주 제한된 생각가지고 있지 않다.과학자로 예로 들면 안목이 부족한 그 사람은 과학에 관련된 일을 하면서도 과학과 과학 이외의 여러 가지 다른 것들과의 관련, 말하자면 삶의 정연한 패턴 속에서 과학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볼수 없다. 이런 사람에게 우리는 교육받은 사람이라는 칭호를 붙일 수 없다.우리는 철학자로서 과학자로서 또는 요리사로서 각각의 분야에 필요한 능력을 길러주는 일에 관심을 가질 경우에는 훈련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교육의 경우에는 철학자로서 과학자로서 또는 요리사로서 교육받았다고는 하지 않는다. 교육이라는 것은 이와같이 전문화된 능력에 국한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그와 같은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동시에 교육받은 사람이기도 한가를 물을 수 있다. 이것을 물을 때 우리는 적어도 그러한 전문적인 직업인으로서 그들의 안목이 어느정도 넓은가를 따지는 것이다.(다)교육과 훈련훈련이라는 것은 제한된 기술이나 사고방식을 길러주는 것임에 비해 교육은 보다 넓은 개념체계를 다룬다. 훈련받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앞에 놓인 특정한 문제를 꼼꼼하게 또 유능하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받은 마음이라고 말할 경우에는 그러한 분위기의 여러 국면 내지 차원을 넓게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 들어있다.다시 말해 훈련은 제한된 상례적 상황에서 적절한 상황파악 내지 습관적인 반응을 하도록 하는 것이며 교육에서와 같은 보다 넓은 인지적 의미가 없다. 따라서 훈련의 개념은 특수한 목적 내지 기능을 위하여 또는 제한된 범위의 사고방식이나 실천기준에 맞게 사용될 것을 전제로 하여 기능이나 능력이 습득되는 경우에 적용된다.4.교육적 과정의 기준교육이라는 것은 가치 있는 것을 전수하는 작용 을 말한다. 따라서 교육의 목적은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따져보고 교사는 가치있는 일을 날인하여 주고, 교실수업을 통해 또는 체벌과 같은 강제 수법을 통해 마음의 틀에 가치있는 일을 채워넣는 일이라는 교육적인 작용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이에 반해 아동중심 교육은 교육 내용의 가치를시하면서 교육의 내용 보다는 방법 에 주의를 집중 시킨 것이다. 따라서 교사에게 요구된 것은 아동존중과 최대한의 불간섭, 아동의 흥미, 필요, 발달단계에 대한 이해였다. 교사는 아동이 경험을 통해 학습하게 하고 선택하게 하여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그러나 아동의 교육내용의 가치문제에 대해 도외시해도 좋은 것은 아닌데, 그것은 아동의 성장이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아동의 흥미 중에서 어떤 것이 개발되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아동 중심 교육에서의 교육내용의 가치이다.과거의 형식적인 면을 강조한 교육자들은 내용 에 집중한 나머지 방법'에 대한 융통성이 부족하였다.아동중심 의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교육 이라는 말을 이끌어낸다 라는 말과 관련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스티븐슨은 안에 있는 것을 계발한다는 의미로 설득적 정의 라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안에서 이끌어내는 과정적 원리에 따라 질시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든지 교육으로 간주될 수 없다 고 하였다.교육 이라는 말은 어떤 활동이 만족시켜야 하는 기준을 명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기준 중의 하나는 교육활동 속에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이 내재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하나의 기준은 이해와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가치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에 흥미를 가지며, 나아가서 그것을 잘 알고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예를 들어 과학자가 과학을 물질적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교육 받은 사람이 아니다.교육과 이끌어 낸다 라는 관련을 확고하게 하는 개념적 사실은 과업 이라는 말인데, 여기서 교육의 과업이라는 말은 학생, 교사의 과업 둘 다 가리킨다. 교사의 과업은 학습과정과 뗄 수가 없는데, 학습과정은 마지막 과정인 성취와의 관련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성취는 반드시 학생의 성취라야 하는데, 교사의 성취는 오직 학생의 성취로만 정의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훌륭한 교사란 아이들이 처음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에 계속 전념하도록 할 수 있는 사람들
1.그리스 연극이란?기록에 의하면 BC 534년에 비극의 창시자로 전해진 테스피스가 합창단을 중심으로 배우 한 사람과의 문답형식의 상연을 시도하였다는 유럽 최고(最古)의 기록이 있다. 그리스 연극은 BC 5세기를 전성기로, BC 3세기경까지 행해진 고대극(古代劇)의 전통이 로마를 거쳐 서(西)유럽 전체에 퍼져 유럽 연극의 원류(源流)가 되었다.아테네의 최성기인 BC 5세기는 세계 연극 사상의 황금기였다. 당시는 매년 3월에 행하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제사인 춘기대제(春期大祭:大디오니시아祭)에 비극을, 겨울에 행하는 전원제(田園祭:레나이나祭)에 희극을, 각기 3인 또는 5인 작자의 경작형식(競作形式)으로 상연하였다. 이것은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신전에 딸린 디오니소스극장에서 신관(神官)의 주관하에 1만 7000명이 넘는 관중을 모아 행하는 국가적 행사였다. 5인의 심판관이 평가하여 1등을 한 작자는 커다란 명예를 얻었다. 특히, 예선을 통과한 작자에게는 각각 돈 많은 사람이 딸려서 일체의 상연 비용을 부담하고, 합창대의 편성, 의상의 준비 등을 담당하였다. 작자는 합창대의 훈련, 가면을 쓰고 반장화를 신은 배우의 연기지도, 가창부(歌唱部)의 작곡 등 연출 전반을 담당하였다.극장의 구조는 경사면을 이용한 부채꼴 계단상의 관객석(테아트론) 아래에, 반원형 또는 원형으로 합창대의 무용장(오르케스트라)이 설치되었다. 무대 의 어원(語源) 스케네는 그 배후에 있는 의상실 분장실을 가리킨 말이다. 그 앞(프로스케니언)이 배우가 연기하는 장소로서 약간의 무대장치가 있었다. 배우는 채색된 삼베에 진흙을 발라서 굳힌 가면, 또는 목제 가면을 쓰고 높다란 관객석에서 잘 보이게 하기 위하여 굽 높은 반장화를 착용하였다. 합창대의 연기 부분이 많았던 초기에는, 합창대와 그 중에서 나온 한 사람의 배우와의 문답이 극적 요소를 강하게 하였으리라고 생각된다. 이것을 한층 높이고 연극으로 완성시킨 것은 아이스킬로스이다. 그는 배우를 두 사람으로 하였고, 또 훗날 소포클레스는 제3의 배우를 등장시켰다. 물론 한 사람의 배우가 가면을 바꿈으로써 복수의 등장인물로 분장할 수도 있었다. BC 4세기 말에는 제4의 배우도 나왔다고 하지만 대사가 없는 배우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배우 합창대는 모두 남성이었고, 비극에서는 처음 12명이었으나 소포클레스는 이를 15명으로 증원하여 그 중 1명을 합창대장(코리파이오스)으로 독립시켰다. 이들 합창대는 서사(序詞) 뒤에 등장하여 피리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었고, 배우의 연기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에페이소디온과 번갈아 4회 반복하고는 대단원(엑소더스)에 이른다. 이것이 5막으로 된 로마 연극에 인계되어 르네상스기(期) 이후 고전 비극의 정형(定形)이 되었다.그 밖에 콤모스라고 하는 배우와 합창대가 주고받는 낭송부(朗誦部)가 있었다. 한편, 희극의 합창대는 24명으로 구성되어 비극 합창대에 준하는 역할을 하였고, 달리 본줄거리와 직접 관계가 없이 작자가 제멋대로 하는 발언을 대변하는 부분(파라바시스)을 연출하였다.2.그리스연극의 비극신주(新酒)의 술통을 따는 봄의 대축제에는 비극을 상연하였고, 이것은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합창찬가(디티람보스)가 토대이다. 전승(傳承)에 의하면 테스피스가 BC 6세기 후반에 원형적(原形的)인 비극을 상연했다고 하나 비극의 창시자는 아이스킬로스(BC 525 BC 456)였다. 그는 90여 편의 작품을 썼다고 하며 경연(競演)에서 13회(1회에 4편 상연)나 우승하였다고 하였는데 후세에 남아 있는 것은 7편에 불과하다.한 사람의 작가가 상연하는 4부작은 사티로스극(劇) 1편을 포함하여 모두 3편이다. 그 3부작이 완전히 전해지는 유일한 것으로 《오레스티아》가 있고 각 부작의 이름은 이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민족의식이 고양된 시기의 애국 시인이며, BC 6세기의 신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 가득 찼던 그의 작풍은 성장기에서 뒤떨어졌던 극작술(劇作術) 때문에 르네상스 시기에는 3대 비극시인 중 가장 낮게 평가되었으나 19세기 이후 그의 작가적 역량이 재발견되었다.소포클레스는 페리클레스 시대를 대표하는 원숙한 시인이며 비극의 완성자로 같은 시대 사람들 사이에서나, 르네상스 이후에 있어서나 그 성가(聲價)가 높다. 그는 123편의 작품을 써서 18회(일설에는 24회)나 우승하였으며, 3위 이하로 떨어진 일이 없었다고 한다. 전해오는 7편 중 세계 연극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오이디푸스왕(王)》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는 이를 격찬하여 비극의 전형(典型)이라고 하였다. 인간성을 강조하는 소포클레스의 작품은 숙명과 싸우는 인간의 무력과 비참을 그리다가 마침내 영웅적인 죽음으로써 정화(淨化:카타르시스)되는 과정으로,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가장 잘 실현하였다. 말년의 소포클레스에게 영향을 준 점도 있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은 92편 중 완전한 형태인 단 하나의 사티로스극(劇) 《키클로프스(외눈박이 도깨비)》와 17편의 비극, 위작(僞作) 1편이 전해진다.그의 작품에는 극작술상(劇作術上)의 여러 연구가 엿보인다. 그는 다채로운 작풍을 찾아볼 수 있는 그리스 비극에서 바로크적(的) 경향의 대표자이다. 합리주의에 입각한 전통 비판이 심판관의 비위에 거슬렸는지 우승 횟수는 그가 죽은 후 주어진 것을 합해서 5회에 불과하나 《메데이아》와 《트로야의 여인》이 후세에 남긴 비장미(悲壯美)는 유럽 근대 연극의 한 계보(系譜)이다. BC 386년 대(大)디오니시아제(祭)가 전기 3대 시인의 재연만을 상례로 하여 창작활동은 쇠퇴하고, BC 4세기의 관객층은 다른 스펙터클로 눈을 돌리게 되어 비극의 장르는 독서의 대상으로 고정되었다. 나중에 라틴문학으로 오비디우스나 세네카의 낭독을 위한 작품이 나온 것도 그 예이다.3.그리스연극의 희극그리스 희극은 비극보다 계속성이 풍부하며, 특히 도리스 지방에 오랜 전통이 있어 BC 6세기의 에피카르모스는 이미 그리스 희극의 특색인 토론(討論:agon) 형식의 작품을 썼다. 아테네의 고희극(古喜劇)은 BC 487년부터 주신(酒神)의 제사에 공식으로 상연되었다. 동물로 분장한 합창대나 제사의 비속한 소란 속에도 당연히 위정자 권력자에 대한 민중의 해학 풍자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BC 5세기의 그리스 최대의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에서 절정에 달하였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 평화론자로서 시류에 대한 혹심한 풍자를 작품 속에 전개하였다.전해오는 11편의 작품 중에는 가련한 꿈을 실은 《새》 《여자의 평화》가 있다. 그의 작품은 《아카르나이인(人)》 《기사》 《구름》 《벌》 《평화》 《여자의 제사》 《개구리》까지가 고희극이며, 《여자의 의회》에서 고희극의 색채가 엷어지고 최후의 《복신(福神)》에서 중기(中期) 희극이 되었다. BC 4세기에 들어가 중기 희극에서 합창대는 이미 퇴화되고 정치 비판은 사라져 풍속 희극화의 경향이 보인다. 안티파네스의 작품명은 많이 알려졌으나 완전히 전하는 것은 없다.BC 4세기 후반에는 메난드로스를 대표로 하는 신희극(新喜劇)이 대두하여, 시정(市井) 사건을 다루면서 교묘한 줄거리를 가미하여 인물의 유형화를 완성하였다. 이것은 로마의 고희극으로 이어지고 프라투스나 테렌티우스에 의하여 라틴어로 이식(移植)되었다. 그 밖에 미무스라고 하는 흉내를 주제로 하는 기예(技藝)가 시정의 구경거리로 성행하였다. 이는 로마에서 중세로 잠정적인 즉흥적 대중예능으로 흘러내려와 근세 이탈리아의 콤메디아 델 라르테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