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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마태복음 내용 정리
    마 태 복 음한국교회의 마태복음이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교회 안에 문제점(성도)을 보고 슬퍼하는 마태(교회안의 거짓 성도)마태복음의 역사와 배경막QM1. 마태복음의 역사적 배경1) 저자 : 전통적으로는 사도 마태에 의해서 쓰여 졌다.학자들 : 사도 마태가 아닐 가능성 있음└> 이유 : 자료설. 대부분의 학자들 자료설이 일리(근거)가 있다.▶ 신학에서는 보수적인 학자들을 빼고는 거의 모든 학자들은 사도 마태가 저자가 아니라고함▶ [“파피아스”(초대교회)글에서…] 마태가 아람어로 예수의 말을 증언했다. 파피아스의 글(유세비우스)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유세비우스는 초대교회에서 예수를 알고 “교회사”라는 책을 저술함. 여기에 파피아스가 그런 말을 했다라고 글을 남겼을 뿐이다.▶ 마태복음은 헬라어 인데 “아람어”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음.▶ 어쩌면 그것은 Q자료가(아람어로 기록) 아닌가? 라고 생각되어짐▶ Q자료가 진짜 있었는지 학자들 간에 논란이 많음.2. 시기와 장소 (80년대, 시리아 안디옥?)1) 시기▶ 시기는 자료설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에 다르다.▶ 70년 전 후(대부분) 어떤 학자는 60~70년▶ 일반적인 학자들의 견해는 마가복음 다음에 쓰여졌다고 말함.▶ 마태복음을 인용한 초대교회 교부들이 마태복음을 인용한 글이 발견→ “이나티우스” (안디옥 교회 감독)가 115년에 쓴 글을 보면 마태복음을 인용한 글이 있기 때문에 115년전에 쓰여 졌음을 추측▶ 80년대(가장 많은 학자들이 인정)2) 장소(시리아 안디옥)▶ 이유 : 시리아 지방에서 나온 문헌에서 많이 발견▶ 초대교회 12사도의 글(디다케)가 시리아에서 나옴. (마태복음 적용)▶ 렙돈(눅), 고드란트(마) => 눅과 화폐의 단위가 차이가 나며 “마”가 화폐단위가 높다.└> 농촌이 아닌 제정적으로 부유한 곳에서 쓰여 졌음.3. 마태복음이 쓰여진 역사적 상황(동기 및 목적)▶ 유대교와 갈등 관계가 있었다. (Davies) - "산상설교의 정황“에서 말함.▶ 마태가 있었던 그리스도교 공동체 이방인들이 먼저 동방박사(영접)▶ 십자가의 고백▶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두 사람 - 백부장과 가나안 여인▶ 선교명령 - 이방인들에게 가라(18장)=> 다른 입장 : 그러므로 가서 모든 족속으로 가서 제자를 삼으라.(28장)▣ 학자들의 견해▶ 마태는 이방인 사람이 썼을 것이다.▶ 첫 번째 쓴 사람이 두 번째 쓴 사람이 덧붙였다.▶ 논문주제 : 2가지 성질이 가진 핵심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2. 교사로서의 예수님의 모습(교사로서의 예수) - 율법의 바른 해석자▶ 예수님의 공생애 요약 기사 (4:23 ~ 9:35) ① 회당에서 가르침 ② 천국복음└> 똑같은 구절이 두 번 나온다.▶ 교육, 선포, 치유 => 예수님의 공적 생애 요약▶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교육 : 교회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선포 : 주제에 맞게 가르침 (5대 교훈 집)치유 : 율법의 바른 해석▶ 예수님의 가르침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맹세하지 마라” 절대적으로└> 율법을 폐하러 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선포(완성)하러 왔다.”◈ 율법의 바른 해석자▶ 하나님의 율법의 근원적인 목적 - 율법을 바르게 해석하고 가르쳐야 함을 묘사▶ 선생은 오직 한분(예수님) - 23장3. 종말과 심판에 대한 강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 종말의 현재성보다는 미래적인 종말에 대해 더 강조└> 심판으로 강조▷ 마태복음은 온통 심판을 강조 - 148개의 단화 중 60개가 심판에 관해 나온다.▷ 막 = 90개중 10개 심판, 눅 = 146개중 26개 심판▷ 심판을 통해서 영광의 나라에 가는 것보다 심판의 징벌에 치중▶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심판을 강조하는 것은 => 그리스도 안에서 조차도 바르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행동에 대한 심판의 징벌을 강조4. 교회에 대한 관심▶ “에클레시아” - 4복음 중 마태복음(16장, 18장)에만 나온다.▷16장 18절 : 베드로의 반석, 18장 17절 : 교회에서 잘못한 사람▶ 18장 전체가 “교회 가?※ 예수님의 상징(학자들의 견해)견해 1견해 2각각 상지의 의미의 견해를 학자들은더 선호한다.황금 : 왕유향 : 제사장몰약 : 죽음황금 : 왕유향 : 신성몰약 : 예수의 인성▶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의 첫인상 => 마태복음 전체를 주도하는 이야기 걸이└> 성경해석자 : 헤롯이 부른 종교지도자들이 말하길 “미5:2” 구약에 관한(예언한) 말씀을 말한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정확히 해석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께 전혀 경배하지 않고 헤롯 편에 섰다. 성경해석자의 “특권”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cf)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말과(교훈) 행동은 다르기 때문이다. “교훈은 받아들이고 행동은 본받지 말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을 배격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특권을 가졌는데 예수님께 경배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이것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현실이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설교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는데 일부분 배타적인 우리의 특권자들이 반성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특권을 누리는 우리의 모습을 바로 인식하고 올바른 특권자로서 살아야 한다.) 유대인에 대한 잘못을 3장에서 자세히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1, 2장에 유대인의 잘못이 명시되어 있다.▶ 복음서를 읽을 대 역사적?단편적으로 읽지 않아야 한다.▷ 문학적(narrative)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문학적 구조로 읽어야 한다.└> Story 형식▷ 마태는 분명 story 형식으로 무엇인가 문학적인 형태로 말하고 있다. 그것은 인과관계 형태로 복음서를 전개하고 있다.▷ 예수님의 이야기도 인과관계 형식으로 말하고 있다.▶ 서사, 서식, 비평▶ 유대인들이 메시아, 참된 왕을 받아들이지 않는 걸 1,2장에 나와 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 회개와 천국을 동시에 다룬다.▷ “천국”, “하나님의 통치” 마태복음의 주된 요인 (총 50번) ① 천국 32번 ② 하나님의 나라 5번 ③ 하나님의 왕국 1로 십자가의 길 외에는 입증할 것이 없다.③ 사탄과의 타협 => 십자가의 길을 예시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산상 수훈(설교(5~7장) - 산상설교, 산상보훈▶ 신약 성경 책 중 많이 읽혀지는 책이 마태이며 마태에서 제일 많이 읽는 본문은 “산상수훈”(5~7장)이다.▶ 이 산상수훈은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읽혀지고 있다.▶ 신앙은 결코 윤리가 아니다. - 신앙은 윤리와 구별된다.▷ 윤리 없는 신앙은(종교) 창 신앙, 참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윤리는 아니다. 그러나 윤리 없는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니다.▶ 마태복음 구조 안에 굉장한 의미를 주고 있다.▶ 3장 -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 - 독자들에게 흥미를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 개인에게 말씀하셨다.▷ “천국” 3:2 - 천국의 임박함이 느껴진다.(세례요한의 메시지 보다)└> 예수님의 핵심 메시지 (반복되어지는 핵심내용)└> 말을 들으면, “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누가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을까?=> 독자들의 관심. 예수님의 관심을 말씀하고 있다.▶ 5, 6, 7절은 누가 천국의 백성인가?▣ 산상설교의 주제 5:17~20 => 의로운 사람이 가는 “천국”을 말씀하고 있다.▶ 선포의 핵심 : “천국이 가까이 왔다.▶ 산상설교는 “의”를 강조한다.└> 마태의 “의”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인간의 “행위”이다.▶ 산상설교는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5:1 ~ => 제자들을 부르시고, 제자들은 부름 받았다. (택함 받음)▷ 택함 받은 자로 바른 응답을 하며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마태 5대 교훈집1) 5 ~ 7장 산상 설교 => “Narrative discourse"▶ “너희”를 너희에게 - 3인칭 ……… 3인칭 단수나 복수로 끝남▷ 7:21까지 3인칭 단수나 복수로 끝남▷ 독자인 나 자신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는 Discourse의 장점이다.5:17 ~ 20 주제 제시5:20 ~ 5:49 주제 설명6:1 ~ 6:8 2번 주제 구제, 기도, 금식6:19 ~ 7:12 되게 한 것은 이유가 있다.▶ 11~16:24 - 세 인물(예수님, 제자들, 종교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마태복음은 전개되고 있다.예수님 - 하나님의 뜻에 철저한 순종(이상적 동일시)제자들 - 현실적인 동일시 (cf : 주후 1세기 박해당하는 그 당시 상황 비슷)긍정적, 부정적인면 동시에 보여줌종교지도들 -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철저한 순종의 모범을 닮아가는 삶으로 묘사.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인 불순종을 닮아가지 말아야 하며, 제자들은 긍정적,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보여줌으로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마태복음은 독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글이 짜여 있다.cf) 독자 반응 비평 - 독자의 중심이 아닌 독자 자기와 동일시하며 읽는 것∴ 동일시적인 ┌>이상적 동일시 - 본받고 싶은 이상형두 가지 방법 └>현실적 동일시 - 자기와 현실적인 모습과 가장 가까운 것▷ 마태복음은 믿는 공동체를 위해 써졌다. - “예수님처럼 살고 싶다.(예수님과 동일시적인 삶)▷ 제자들을 자기 자신들과 (현실적인 그리스도인) 현재 상황과 비슷하게 쓰여짐.(대표적인 모델)▣ 세 인물 묘사1) 예수님 : 순종의 모범 “하나님의 왕적 통치” - 하나님의 나라▷ 마태복음은 순종을 강조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결정적 요인은?=>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면서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 독자들이 이상적인 모습으로 따르기 원하는 하나님의 순종을 1차적으로 마태는 강조└> 마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대속물의 구속, 구주로 오심.… , 여러 가지를 강조하면서 천국을 더 강조하면서 더 특별히 “예수님의 순종”을 더 강조하고 있다.▷ 구약 성경의 인용은 독자들에게 ① 예수님은 예언을 성취하심, ② “예수님은 메시아다”라는 것을 구약에서 예언의 성취됨을 강조하려 한다. ③ 하나님의 뜻에 대해 철저히 순종함을 강조하기 위해 구약을 인용하고 있다.ex)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순종하며 살아가신다.”라는 것을 강조※▷ 하나님의 종으로 묘사(8위이다.
    인문/어학| 2005.06.15| 17페이지| 1,500원| 조회(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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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21세기 한국교회의 사명
    21세기 한국교회의 사명(사회개혁)Ⅰ. 들어가는 말요즈음 한국교회는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교회가 양적, 질적인 면에서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는 교회 내적인 위기의식에 더하여 한국교회가 사회적 공신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교회 외적인 위기의식도 팽배해있다. 교회를 떠나가는 교인은 늘어나고 있으나 교회로 들어오는 사람은 줄어들어 그 동안 그토록 놀랍게 성장했던 한국교회가 이제는 성장을 멈추게 되었다.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보여 주고 있는 여러 가지 반사회적 태도는 교회가 사회적 기능을 올바로 수행할 것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특히 IMF 경제 한파를 맞으면서 제기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도덕 불감증에 대하여, 그리고 공동체성 상실의 위기에 대하여 그 동안 한국교회의 역할은 너무도 미미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오히려 한국사회에서 가장 개혁이 안 되는 집단이 바로 종교집단이라는 질타가 한국교회를 향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교회 개혁이나 갱신에 대한 요구가 교회의 안과 밖에서 커지고 있다.한국교회의 급성장에 따른 병리 현상은 무엇인가? 그러한 병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가? 본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관하여 논해 보고자 한다.Ⅱ. 본론1장 교회 개혁의 기초들1. 교회 구조는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구조는 다른 어떤 조직을 능가하는 천부적인 이점이 있다. 두 날개를 가진 교회의 다른 주된 이점은, 그 구조에 의해서, 하나님의 속성이신 초월성(위대하심)과 내재성(가까우심)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이는 교회를 위한 신학적인 패러다임으로서 제안된다.(1) 패커(J. I. Packer)의 초월성과 내재성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시다. 그는 영원하시고, 무한하시며, 전능하시다. 그는 위를 그의 손안에 갖고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결코 우리의 소유로 삼을 수 없다. 우리와 같이 하나님은 인격적이시지만, 우리와는 다르게, 그는 위대하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향한 개인적인 관심의 실체와, 친절함, 부드러움, 연키프리안서구 신학의 교회론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다른 천상의 영역에서 인식되는 이상적이 교회에 대해 말하지 않고, 경험적이고 지리적인 영역에서 인식되는 교회에 대해 언급한다. 지상의 영역에서 교회의 본질과 단합이 인식되고 유지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는 당시 교회의 분파로 박해에도 타락하지 않았던 사람, 즉 거룩한 자의 교회로 하나의 진실한 교회가 있을 뿐이라는 노바티안주의자들의 주장에 맞서서 물론 교회는 하나뿐이지만, 그러나 이 교회는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감독의 직위를 계승한 감독들과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 교회여야 한다 고 주장한다. 그는 노바티안주의자 등 그 어떤 집단도 이유를 막론하고 감독제도하에 일치되고 있는 교회들로부터 자신들을 분리한다면, 이를 교회의 일원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밖에 거하는 자들이며, 구원의 가능성이 박탈된 자들이었다. 키프리안의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 는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다.2) 어거스틴어거스틴의 교회론의 형성은 도나투스파와의 논쟁을 통해 교회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반성을 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논쟁은 당시 교회 사이에 벌어진 논쟁으로 교회의 순수성과 규율에 관한 문제였는데, 도나투스파는 보이는 교회 는 순수해야 하며, 엄격한 규율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반대해서 어거스틴은 교회의 규율은 인정했으나, 절대적 순수성을 지상에 있는 교회가 이룰 수 없음을 강조했다. 그는 교회의 분명한 두 가지 표지는 절대적 거룩성이나 순수성이라기보다는 보편성 과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들과 연결된다는 의미의 사도적 연대성 을 주장했다.어거스틴을 포함한 교부들의 관점에서 보면, 노바티안과 도나투스파는 교회의 거룩성을 위해서 보편성을 희생시킨 결과를 초래했다. 고대 교회의 교부들은 이 같은 위험에 대항해서 점차 교회의 감독제도에 강조점을 두게 되었다. 그 결과 감독들에 의해 인도되는 교회는 진리의 유일한 수호자요, 선포자라는 사상이 생기게 되었으며, 결국 교회는 구원의 꼭 필요한 것으로 오직 교회 개혁만이 이들의 과제였다. 즉 사회 개혁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2) 18세기 혁명과 영적 각성18세기의 계몽주의 교회는 이성을 계시로부터, 자연을 초자연으로부터, 사회를 교회로부터 해방시켰다. 이것은 17세기의 교리 절대화에 반대하였고, 종교 전쟁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성경, 교회, 신학 대신 이성과 이성적 종교를 내세웠다.즉 16세기에는 교회개혁에 주력했지만 17세기에는 둘 다 무시했고, 18세기에 들어와서 는 성경과 교회를 무시한 사회개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스스로 자체 개혁에 힘차게 몰입해서 개신교의 선교가 활성화 됐다. 즉 계몽주의와 경건주의가 서로 항상 상반되어가면서 19세기로 넘어간 것이다.3) 19세기 이후의 개혁18세기의 경건주의와 복음주의적 부흥 운동은 기성교회의 갱신은 물론 선교적 열정과 사회개혁에 이바지했고, 19세기의 선교활동은 지구촌의 교회로 하여금 사귐과 일치를 지향하게 하였고, 보다 짙은 에큐메니칼 차원의 선교와 사회봉사 (개혁)를 일어나게 했다.이것은 다시 20세기로 이어져서 20세기의 사회를 변혁시킨 20세기 교회사의 특징인 사회개혁을 일으켰다. 개신교의 6차에 걸친 W.C.C 의 사회개혁 역대 분과 보고서들이 2천년 교회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교회의 사회 개혁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로마 카톨릭의 제 2차 바티칸공의회가 교회의 사회참여를 강조하고 있고, 사회 개혁과 교회 개혁을 주장하고있다.교회가 역사 속에서 기존해 있는 사회적 제도로서 세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따라서 교회의 현실 참여와 사회 개혁은 그 정당성이 계속 이어지고 앞으로 많은 과제를 줄 것이다.2장 한국 교회의 병리 현상한국교회의 목회 현장은 한국 교회가 있는 자리이며, 목회자 개인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다. 개혁이 필수적이며, 다가오는 미래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모델이 개발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 목회구조의 개혁을 위하여 먼7%)보다 도시(65.5%)에 종교인이 더 많은 것도 흥미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종교적 현상은 종교다원화가 한국인의 과제인 것을 말해 준다.한국인에게 종교다원화는 한국인의 혼합된 세계관에 연유한다. 한국인의 종교적 바탕 또는 정신적 바탕은 근본적으로 무당종교에 의거해 있다. 한국인은 어떤 종교를 가지든 그 중심은 무속적 요소가 있고 불교나 유교나 기독교 할 것 없이 한국에서는 무당종교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유동식, [한국종교와 기독교], 21-22.5) 의존적 신앙일반적으로 무당종교의 특징을 현실성, 의존성, 기복성이라고 한다. 한편 한국 무교의 특징은 의타성, 보수성, 현실성, 오락성이다.{) 유동식, [한국종교와 기독교], 34-37이러한 무당종교의 특징은 한국 교회의 특징적 요소가 되었고 동시에 한국 교회의 비판의 요소가 되었다. 무당종교는 샤먼이 있어야 비로서 종교행위가 형성되며, 샤먼을 통한 종교행위의 주요 관심은 인간의 윤리가 아니라 영계가 조작하는 재액으로부터의 인간 해방이다.{) 위의 책, 19무당종교란 엑스타시를 자유로이 반복하는 샤먼 중심의 종교 현상이며, 샤먼은 엑스타시의 기술자로서 엑스타시 속에서 신령과 직접 교섭하고, 신령과의 교섭을 통하여 자연과 인생의 화복운명을 조절하려는 주술적 종교 현상이다.{) 유동식,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 63-64이와 같은 무당종교의 특징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현실성을 가지게 하며, 기복적이며 의존적인 성격을 가지게 한다.한국 기독인의 의존성은 전통종교의 영향으로 한국 교인들에게 깊이 잔재하고 있는 병리현상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개인의 신앙을 강조하고, 개신교의 신학에서 만인제사장설 을 말하지만 한국 교인들은 상당히 많은 부분을 목회자에게 의존한다. 개인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할 수 있는 것도 목회자가 와서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이러한 의존성은 목회자의 권위를 더해 주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목회자는 마치 샤면과 같이 하나님과 만날 수 잇고 그들에게 재앙을 제거하고 복을 불러들이는 이내로 교회를 얼마큼 성장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목회에 임하기 때문에 상당한 긴장감을 가진다. 또 새로운 임지에 부임한 목회자는 주위 동료나 교인들로부터 많이 성장했지요? 하는 질문을 어김없이 받게 된다. 이러한 성장 강요는 자연히 목회자로 하여금 탈진 상태에 이르게 하고 재충전 없는 끝없는 소모를 계속하게 한다.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는 착상이 되지 않으면 멀리 여행을 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작가의 사정으로 방송을 연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목회자는 설교의 착상이 되지 않는다고 멀리 떠날 수도 없고 예배를 없앨 수도, 연기할 수도 없다. 더구나 교인들은 항상 목회자의 설교의 새로운 이미지와 영감을 기대한다. 그리하여 목회자의 목양은 교인들의 기대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충족시켜 주느냐 하는 것이다.한국 교회의 성장을 부정하거나 성장의 미래 전망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1960년대로부토 1980년대까지의 한국교회 성장은 한국 교회의복이며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기를 맞이해서 사회 변화에 적응력을 갖춘 새로운 목회의 모델을 찾아 사회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사회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목회 모델이란 목회자의 탈진을 방지할 수 있고 효율적인 목회 구조가 되어야 할 것이다.3장 21세기 한국 교회의 나아갈 길본 내용은 고영근 목사의 저서를 중심으로 우리 기독인들이 생각해 봐야할 만한 교회개혁 및 사회개혁에 필요할 만한 글들을 정리해본 것이다.1. 한국 교회는 십계명을 중심으로 국민윤리를 확립하자.지금 우리 겨레는 양심과 도덕의 표준이 없고 제각기 자기 마음이 양심과 윤리의 표준이 되고 있기 때문에 가공할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 그 이유는 기독교가 선교 110주년을 맞으면서도 유교의 삼강오륜을 대체하여 십계명으로 국민윤리를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지금 우리나라는 민주화의 통일을 성취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데 그보다 더욱 시급한 것은 민주 국민이 갖추어야 할 국민윤리가 결여되어 있으므로 기독교는 하루속히 십계명을 기초로 하여 국민윤다.
    인문/어학| 2003.06.12| 17페이지| 1,000원| 조회(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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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동학혁명과 기독교 관계
    東學革命 이란 무엇인가?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군에서 시작된 동학계(東學系) 농민의 혁명운동.그 규모와 이념적인 면에서 농민봉기로 보지 않고 정치개혁을 외친 하나의 혁명으로 간주하며, 또 농민들이 궐기하여 부정과 외세(外勢)에 항거하였으므로 갑오농민전쟁이라고도 한다.{1. 역사적 배경19세기 중엽에 우리 나라에서 동학이 태동된 이유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주요 역사적 배경이 있다. 먼저 18세기 이후 변질된 조선 왕조양반 사회의 제반 정치적 모순, 둘째 국가에의 납세제도인 삼정 문란 셋째 19세기 이후 서세도점의 위기 속에서 국가보위의식의 팽배 넷째 전통적인 유교·불교·도교 등의 여러 가지 폐단에 따른 지도이념의 퇴색 다섯째 서학의 도전을 민족적 주체의식으로 대응하려는 자세 여섯째 실학에서의 현실비판 및 개혁사상에 영향받은 피지배민중의 의식 수준의 향상과 높아진 자가가도 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1) 사회적 상황조선사회는 후기로 오면서 생산력 증대와 생산관계의 모순으로 점차 해체 과정에 직면하였다. 여기에 부세운영의 문란과 군사력·치안의 공백까지 겹쳐 체제는 심각한 위기에 몰렸다. 이에 따라 통치기강은 날로 해이해졌고, 농촌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농민항쟁과 변란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와해되어가고 있던 체제에 재차 타격을 가했다. 조선사회는 이러한 내적 도전뿐만 아니라 회적 충격에까지 노출되어 체제붕괴가 점차 가속화되었다. 자본주의 상품은 19세기 중엽부터 벌써 중국과의 밀무역을 통하여 침투해 있었다. 그리하여 서울 장안의 시장과 지방 장터에는 버젓이 외국 상품들이 공개 리에 판매되고 있었다. 여기에 전염병의 만연이라는 자연적 재해까지 겹쳐 농촌인구를 앗아감으로써 사회적 위기의식을 부채질하였다. 1821년과 1822년의 콜레라는 전국에서 수십만 명의 사망자를 내었고, 1859년 9월 말(양력)에는 서울에 콜레라가 침입하여 많은 사람이 희생되기도 하였다.중국은 1839∼1841년 아편전쟁을.또한 차함(借啣) 벼슬이라는 일종의 특례의 수단이 있었는데 고종 조에 오면서 더욱 성행하였고 철종 말년에는 벼슬자리를 매매대정(賣買代定)하는 폐풍이 공공연히 자행되었다. 이에 관한 대책으로 암행어사 제가 있었으나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수령향리의 구조적 부정부패 비리행위는 근절되지 못하였다. 이같은 관기의 문란과 탐관오리의 횡포 속에의 양반사회의 질서를 파탄케 하여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것은 궁극적으로 는 평민(民衆)들이었다. 더욱이 양반의 축재수단으로 고리대가 나타났다. 이 당시 채송(債訟)이 양민 사이에 많았던 이유도 고리대에 의해 평민들이 받은 침탈이 현저하였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삼정 가운데 전정(田政)의 문란은 극심하였다. 본래 20년마다 실시하던 양전이 철종 때에는 130년이나 중지되어 전지의 경계가 혼미해졌었다. 지역적으로는 곡창 호남이 더욱 자심하여 [민생이 도탄에서 허덕이기에 비록 어떤 양책(良策)이 있어도 수습할 수 없다] 하는 말이 그 대책의 제시와 함께 정부 고위공직자의 입에서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따라서 몰락양반 후예는 잔반한사(殘班寒士)가 되었다. 설상가상 격으로 기근과 질병 한발 등이 겹쳐 기우제가 성행하였으며, 주술적 기원행위가 있었다.따라서 이 어려운 상태는 더욱 위협을 받았으며 천변지재·괴질 등은 귀신 신앙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는 악성 유언비어가 속출하였다. 또한 화적 등 도적이 빈발하며 요언괘서(妖言掛書) 사건 등이 발생하여 민심은 더욱 흉흉해졌다.이런 시기에 홍경래의 저항(1811), 화성(華城)의 괘흉서(掛凶書)사건(1819), 철종 때의 민투(民鬪)등이 일어나 더욱 어지러운 사회를 혼란의 와중으로 몰아 넣었다. 이같은 모순을 치유하기 위한 제도적 대책도 있었으나 근치되지 못하였다. 이같은 상태는 도하의 도적 떼의 횡행을 조장하는 결과가 되므로 써 이미 철종 때는 이에 대한 특식(特飾)을 내린 일도 있었던 것이다.한편 서세(英·佛·美 등)의 동점적 위협은 이웃인 중국·일본 등에 미쳐 반강제적인 조약이나 화적화(火賊化)되거나 민투(民鬪)의 주역이 되었음은 불가피한 현실적 결과이기도 하였다.한편 조선왕조는 억불장유(抑佛奬儒)정책을 전개하였음에도 불교는 종교적 기능을 담당해 왔다. 사망후의 기원이나 치병(治病)등 불교 행사를 통해 이 신앙이 민중사이에 계승되어 왔다.도교는 초기부터 발전하여 천신(天神) 등에 초제(醮祭)행사를 행하다가 불교와 복합되므로 서 사찰에 칠성각 등이 건립되었다. 도교사상은 노장사상의 한국적 재현으로 은둔사상과 연결되어 선비들의 선처(仙處)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토속신앙과 연결되어 주술적 민간신앙으로 유행을 보았던 것인데 이 같은 사상이나 풍조가 곧 동학을 농민 속으로 뿌리내리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생각된다.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17세기 양란 이후 현저해지자 자각 비판 반성의 계기로서 실학이 대두하였는바 양반지배의 모순 속에서 요언(妖言)이나 참언 같은 것이 횡행하기가 일수였다. 이는 19세기초로 오면서 더욱 뚜렷이 나타나 흉서·괘서의 유행을 가져왔고 도참설에서 연유한 비기나 도참서가 앞으로의 운명을 예언하는 민간 신앙으로까지 심층적으로 확산 침투되었다. 이 같은 풍조는 잔반한사들이 모의하여 병화9兵禍)를 일으킬 때 술수나 참위설로 이용되어 민중을 동참시키는 호소력 설득의 자료가 되었으며 철종·고종년간에 특히 자심하였다. 이런 흐름은 잔반의 입장에서 혁명 확산적 도구로 이용되었고 정부로서는 부도덕한 혹세 무민적 차원에서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2. 제1차 농민운동1876년 개항 이후 일본은 조선에 대한 경제적 침투를 감행하여 조선을 일본의 시장화하는 한편, 조선에서 쌀을 반출해 감으로써 물가를 자극하여 농민들의 생활을 이중으로 억압하였고, 일본인 어부들의 횡포는 조선 어민의 생활을 위협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본 기선(汽船)이 조선 연안에서 무역에 종사함은 물론, 세미(歲米) 운송을 위한 기선의 도입으로 종래의 조군(漕軍)과 선상(船商)은 몰락하게 되었고, 그 위에 세미운송의 책임자인 전운사(轉運使)의 횡포 또한 막심하저 점령한 백산(白山)으로 모여드니, 그 수가 1만 명에 가까웠다고 한다.전봉준은 대오를 정비한 다음 거사의 대의를 선포하였다. 곧,1 사람을 죽이지 말고 재물을 손상시키지 말 것,2 충효를 다하여 제세안민(濟世安民)할 것,3 왜적을 몰아내고 성도(聖道)를 밝힐 것,4 병(兵)을 몰아 서울에 들어가 권귀(權貴)를 진멸(盡滅)시킬 것 등의 4대강령이다.이 소식이 전해지자 관리들의 탐학에 시달리던 인근 각처의 동학군과 농민들은 새로운 희망을 품고 앞을 다투어 백산으로 모여들었다. 태인의 동학군은 3월 29일 자발적으로 관아를 습격하여 관속(官屬)들을 응징하고 무기를 탈취하니 혁명군의 기세는 한층 더 충천하였다.급보에 접한 전라감사 김문현(金文鉉)은 영장(營將) 이광양(李光陽)˙이재섭(李在燮) 등에게 명하여 영병(領兵) 250명과 보부상대(褓負商隊) 수천 명을 이끌고 동학군을 섬멸하라고 하였다.4월 6일부터 7일 새벽까지 관군은 도교산(道橋山)에 진을 치고 있던 동학군과 황토현(黃土峴)에서 싸움을 벌였다. 관군은 철저히 참패하여 이광양을 비롯한 대부분의 장병이 전사하였다. 사기충천한 동학군은 불과 한 달 만에 호남 일대를 휩쓸면서 관아를 습격하고 옥문을 부수어 죄수를 방면하였으며, 무기와 탄약을 빼앗고 이서가(吏胥家)에 방화하였다. 이러한 소식에 당황한 조정에서는 전라병사 홍계훈(洪啓薰)을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에 임명하고 군사 800을 파견하여 난을 진압하도록 하였다.전주성(全州城)에 입성한 초토사 홍계훈의 경군(京軍)과 동학군은 월평리(月平里)의 황룡촌(黃龍村)에서 첫 대전을 벌였다. 일대 격전의 결과 경군은 대패하였고 동학군은 정읍 방면으로 북상, 4월 27일에는 초토사가 출진한 뒤 방비가 허술한 전주성을 쉽게 함락시켰다.한편 홍계훈의 경군은 28일에야 전주성밖에 이르러 완산(完山)에 포진하고 포격을 가하였다. 동학군은 여러 차례 반격을 가하였으나 소총과 죽창만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차차 수세에 몰려 500명의 전사자를 내는 참패를 당하고 전의를 상실하게 왜놈 손에 떨어진다. 돌격!" "어휴, 저 녀석들. 죽이고 또 죽여도 밀려오잖아." 최신 무기를 갖춘 일본군에게 참패하고 14일에 후퇴했다.(우금치싸움)한편, 김개남 부대는 10월 14일에 남원을 출발하여, 11월 14일에 청주싸움에서 패배하고 태인으로 후퇴했다. 나주의 손화중 부대도 나주성 공략에 실패한 뒤 부대를 해산하고 흥덕으로 피했다.전봉준 부대마저 우금치 전투를 계기로 전력이 약화, 논산*금구에서의 싸움에서도 패하여 농민군은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일본군*관군, 그리고 각지에서 만들어진 양반 유생들의 민보군은 후퇴하는 농민군을 철저히 진압했고, 김개남은 12월 1일 태인에서, 전봉준은 12월 2일 순창에서, 손화중은 1895년 1월 6일 흥덕에서 각각 붙잡혔다.김개남은 전주에서 처형되었고, 전봉준*손화중은 한양으로 압송되어 처형됨으로서 동학혁명은 막을 내렸다.4. 농민군의 폐정개혁 활동1) 전주화약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정부는 농민군을 회유하는 한편 청에 군대 파견을 요청했다.5월 5일에 청군이 아산만에 상륙하자, 조선 침략의 기회를 엿보던 일본도 톈진 조약을 구실로 5월 6일에 군대를 인천에 상륙시켰다.농민군은 전주성을 점령한 뒤 정부군과 두 차례의 전투를 치러 큰 피해를 입고, 청*일 외국 세력이 개입하자 27개조의 폐정개혁안을 제시하며 휴전을 제의했다.5월 7일에 정부는 농민군의 제안을 받아들여 전주화약을 맺었고, 이튿날 농민군은 전주성을 떠났다.2) 집강소 활동전주성에서 철수한 뒤 농민군은 각 군에 도소(都所)를 설치하고 정부에 폐정개혁을 거듭 요구하며 각종 개혁을 실시하고 감독했다.전봉준은 지방을 돌아다니며 폐정 개혁을 추진했고, 손화중은 광주*장성으로 내려가 전라우도를, 김개남은 남원에서 전라좌도를 장악했다. 한편, 새로 부임한 전라감사 김학진은 정부 주도로 치안 질서를 회복할 목적으로 농민군에게 치안을 담당할 집강을 임명하도록 했다. 농민군은 폐정개혁을 실시하고 신변안전을 보장하라며 이 제의를 거절했다.6월 21일에 일본군이 경복하였다.
    인문/어학| 2003.06.12| 10페이지| 1,000원| 조회(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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