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정의 비쥬얼 베이직을 이용해서 로또 프로그램을 완성한다. 주어진 조건은 다음과 같다. ▷MDI(Multi Document Interface) Form 으로 작성 - 하나의 parent form과 2개의 child form으로 구성 ▷Parent form - 필수 메뉴 "Lotto 구입하기", "Lotto 당첨확인", "종료" 메뉴에 해당하는 툴바 또는 쿨바 생성시 추가 점수.. ▷Child form - "Lotto 구입하기" 자동 번호 / 수동 번호 생성 기능 구입한 번호는 저장되어야 한다. (파일에 저장) 여러 장 구입 가능 해야 함 (최대 5매까지 구입가능) - "Lotto 당첨확인" 당첨확인 form이 생성되면 이미 구입한 Lotto번호를 출력한다. 당첨번호를 입력하고, 당첨확인을 하면 - 각 매수 별로 당첨된 번호를 체크하여 주고, - 등수를 확인하여 준다.
유네스코 지정 아시아 세계문화유산 (한국-창덕궁, 인도-아잔타 동굴)▣한국-창덕궁(사적122호)[창덕궁 개요] 창덕궁은 조선조 태종 5년(1405)에 지어진 경복궁의 이궁으로 사적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광해군 때부터 경복궁 재건 전까지 약 270년 간 법궁의 역할을 대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창건 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중요 전각을 한꺼번에 완성시켰다. 그 뒤 태종 12년 (1412)에는 돈화문이 건립되었고 세조 9년(1463)에는 약 6만 2천 평이던 후원(현재의 후원)을 넓혀 15만여 평의 규모로 영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40년(1607)에 중건하기 시작해 광해군 5년(1613)에 공사가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1623년 인조반정 때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어 인조 25년(1647)에 복구되었다. 현재 조선시대 궁궐 후원 (뒤쪽에 자리잡은 정원을 말하며 왕가에서 휴식을 취하던 곳)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창덕궁으로, 그 아름다움은 세계 어느 곳의 전통 정원에 비할 수가 없다고 한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 위원회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선정)[창덕궁 가는길] ▶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2-71 ▶ 교통안내 지하철 : 3호선 안국역에서 걸어서 5분 쯤, 또는 5호선 종로3가역에서 10분 쯤. 시내버스 : 2, 6, 8, 20, 84, 153, 205, 543번[창덕궁의 현황] 현재 사적 122호로 지정된 창덕궁의 면적은 후원을 포함하여 57만 9584평방 미터(약 17만 5300여 평) 이고, 후원을 제외한 궁의 면적은 대략 12만 2000평방 미터(약 3만 7000여 평) 정도로서 전체 면적의 5분의 1정도이다. 전체적인 배치의 구분을 하면 인정전의 동쪽에 외청(外廳)과 선원전이 있고 중앙부는 인정전 일곽의 외전이 되며, 동쪽에는 대조전 일곽의 내전이 배치되고 북쪽으로는 후원의 경관이 펼양풍이 도입되어 침실에 침대가 놓여있고 중국풍 의자가 놓인 응접실이 꾸며져있다.▶ 어차고 본래는 대신들이 국왕을 만나기 위해 모이는 장소이며 때로는 외국 사진이 임금을 접견하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곳이었으나 국가의 실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차고로 사용하게되었다. 현재는 고종과 순종이 사용하던 가마와 승용차들이 전시되어있다.[창덕궁 주요시설]▶ 경훈각 대조전 서북쪽에 위치한 경훈각은 현재는 단층 건물이지만 원래 는 2층 건물이었으며 위층이 징광루이고 아래층은 경훈각이라 하였다. 세조 7년(1461)에 전각 명칭을 바꿀때에 누상을 징광루, 누하를 광세전이라 하였으므로 그 이전부터 2층 건물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뒤로 인조반정 때에 소실되고 또 다시 이듬해에 중 건된다. 순조 때 화재가 발생하기 전인 1826년에서 1830년 사이 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동궐도'에서는 경훈각이 2층에 청색 기 와로 그려져 있으므로 인조 연간의 중건 때에 청기와로 지붕을 이은 것으로 추측된다.▶ 부용지 일대 부용지 일대. 이 일대의 모습은 창덕궁 후원의 백미(白眉). 어수문과 주합루, 서향각이 보인다. 부용지는 가로세로 30미터의 커다란 사각형 연못이다. 부용지 안에는 동그란 섬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전통적 우주관에 따른 것이다.[창덕궁 주요시설]▶ 어수문 임금을 물에, 신하를 물고기에 비유하여 군신의 융화적 관계를 함축하는 뜻을 담고있다. 임금은 어수문으로, 신하는 그 옆의 작은 문으로 출입하였다.▶ 낙선재 낙선재 전경. 국상을 당한 왕후와 후궁들이 거저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전하고 있다. 궁궐지 에는 창경궁에 속한 건물로 기록되 고고 있으며, 창덕궁의 동남쪽에 창경궁과 이웃해있다. 이방자 여사가 이곳에서 생활하다가 1989년 타계한 뒤로 일반인 에게 공개되고 있다.▶ 연경당 1828년(순조28년) 궁궐안에 지은 120여칸 민가형식의 집이다.[창덕궁 주요시설]▶ 승화루와 상량정 왼쪽에 지붕만 보이는 것이 승화루. 오른쪽이 상량정이다. 승화루는없는 걸작으로, 그 양식은 중앙아시아-중국을 거쳐 한국에도 전해졌다. 이 동굴은 1983년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록되었다.[아잔타 동굴 전설] 전설에 의하면 힌두교의 신과 님프가 땅에서 밤에 달빛에 비추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하늘의 신 인드라에게 허락 받았다고 말한다. 엘로라의 언덕에서 떠들다가 해가 뜨기 전에 떠난다는 약속을 깨고 춤과 사랑의 구애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이들은 돌로 변했다. 시바와 비슈 그리고 다른 신들의 이미지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살아있는 조각에 거주하는데 사원은 인도의 서쪽에 있는 엘로라의 언덕 중 턱에 조각되었다. 힌두교 신전은 불교 사원과 자이나교의 신전과 함께 가파르고 길게 같이 있다.세 개의 신앙 예술가들은 6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모든 기둥,모든 여신, 코끼리 그리고 암상에 피어난 로더스를 34개의 수도원과 다수의 분회당을 조각했다. 카일라사 사원은 창조와 파괴의 신인 시바에게 헌정되었다. 벽은 힌두신화의 주체인 3차원적 시각을 표현했다. 시바는 음악을 우주에 창조하고 현악기를 연주 하기위해 나타났다. 조갈술이 있기전인 6세기에는 엘로라에서 바위를 치기 전인 6세기에는 부처의 수사 는 북동쪽에서 4마일 떨어진 아잔타에서 조각하고 그리기 시작 했다. 기원 후 1세기에 와고다 강과 측면에서 올려다 보이는 언덕 주위에 460년과 480년 사이에 더 정성들인 이 신성한 곳은 창조되었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만큼 절묘하게 잘 보존되어진 아잔타의 벽은 인도와 아시아를 거쳐 유럽에 영향을 주었다. 이 예술은 부처의 삶과 초기의 화신을 표현한다. 어떤 동굴은 이교도를 개종시키고 감동시키기 위해 그 자신을 1000개의 이미지로 하늘에 덮고있는 것을 표현했다. 앞에서 부처의 거주지의 외면인 궁전 장면은 아잔타의 수도사와 예술가들에게 제작되었고 5세기의 예술적인 천재성을 보여 주고 있다. 아잔타가 순례자와 예술가를 계속해서 끌었을지 몰라도 아잔타는 5세기동안 그곳의 거주자들을 잃었다. 1400년후에 재발견되기 전까지 박쥐와 호랑이의 은 감실이 있다. 오른쪽과 왼쪽 각각에는 하리티 Harti 와 야차 Yaksa 의 그림과 23마리의 거위들이 그려져 있어 환상적인 하늘세계를 묘사해 준다. 붓다 탄생과 관련된 마야 부인의 꿈이야기, 그네 타는 여인과 제2굴에서 가장 중요한 인상깊은 내부 감실 오른쪽 입구에 그려진 과거천불의 형상이 눈에 띈다.▶제4굴 아잔타에서 최대의 비하라로서 28개의 기둥에 의해 전체 공간이 지탱되어 있다. 비록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8개의 위험으로부터 부처의 보호를 받고자 달아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제6굴 아잔타에서 유일하게 2층으로 만들어진 비하라인데, 아래층은 많이 붕괴되었다. 위층에는 문쪽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승방들로 둘러쌓여 있다. 또한 두드리면 공명현상을 일으키는 기둥이 있어서 Music Pillar 라고 불린다▶제7굴 이 굴은 뒤쪽의 사당과 아래편의 승방이 메인 홀과 연결이 되지 않는 특이한 스타일의 사원이다. 승원 입구 뒷편에 성도 후 부처님을 뇌성벽력으로 보호하는 무칠린다 용왕을 묘사한 부조가 있다.▶제9굴 가장 초기에 조성된 것중의 하나인 제 9굴은 차이티야 동굴(차이티야란 붓다의 사리를 봉안한 스투파를 뜻하는 것으로 예배를 볼 수 있는 사원이라 이해하면 된다) 로 10굴과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입구에 있는 두개의 불상은 후대에 첨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제16굴 16굴은 그 우아함과 건축상의 활기가 함께 어우러진 특징적인 건축물이라 말할 수 있다. 동굴의 오른쪽 벽에 난타 Nanda 의 약혼녀 아름다운 순다리 Sundari 가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수행자가 되는 이야기를 듣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는 Dying Princess 그림이 있다. 그리고 난타의 삭발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이것은 난타의 출가에 대한 그 교훈적인 이야기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 외에 부처님 생애와 관련된 많은 사건들이 남아있다▶제10굴 9굴보다 더 오래된, 아잔타의 동굴사원중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역시 차이팅 동굴로 아잔타에 있는 4개의 차이티화이다.[아잔타 동굴벽화] 동굴을 자연 물감으로 그렸다는 화려한 프레스코 벽화들은 돌벽위에 쌀겨가루나 돌가루 반죽 또는 점토 등을 두텁게 덧칠하여 그림을 그릴 바탕을 만든 다음 다람쥐 털로 만든 붓을 사용하여 황토흙이나 조약돌등의 가루에서 만들어낸 색을 칠하는 과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아잔타 동굴 안에 있는 벽화들[아잔타 석굴조각] 아잔타 석굴은 조성 시기에 따라 보통 3기로 나눠진다. 제1기는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에 속하는 것들로 중앙의 제8굴~13굴 까지의 6개굴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가운데 제9굴과 제13굴은 차이탸굴(내부에 스투파가 있는 예배당)이고, 나머지는 비하라굴 (僧院窟)로 스님들이 살았다. 4세기에 시작된 굽타왕조(기원후 320 ~ 500) 당시 개착된 제2기 아잔타 석굴은 제6굴, 제7굴, 제14굴~ 제20굴 등 9개 굴. 이 중 제19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차이탸굴이다. 나머지 제1굴~제5굴, 제21굴~제29굴은 제3기 즉 굽타시대 이후 조성된 석굴들이다.[관련인터넷 사이트] 아잔타 동굴 가는길 http://www.withindoro.com/ajanta.htm http://www.indiary.net/travel/index_travel.htm 아잔타 동굴 설명 http://www.chingutours.com/spguest/spguest.cgi?id=b3 http://harijan.hihome.com/ajanta.htm 아잔타 동굴사진 http://www.koreaface.com/indiap5.html http://www.anthroarcheart.org/ajanta.htm 아잔타 동굴 http://www.indiantravelportal.com/maharashtra/caves/ajanta-caves.html 아잔타 벽화 http://www.anthroarcheart.org/ajanta4.htm[과제소감] 위 두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은 저에게 정말로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먼저, 창덕궁 답사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자ow}
세계의 문화유산1.이탈리아 Holy See Vatican City(바티칸)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 안에는 바티칸이라는 또 하나의 국가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 곳은 전세계 카톨릭의 총본산이라는 성스러운 의미 외에도 미켈란젤로의 불굴의 명작인 천지창조 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등 책에서만 볼 수 있었던 홀륭한 예술작품들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이탈리아 미술의 보고이기도 하다. ◈ 수도 : 바티칸 ◈ 인구 : 약 천명 ◈ 면적 : 0.44 km2 ◈ 주요언어 : 라틴어, 이탈리아어, 불어, 영어 ◈ 종교 : 카톨릭(Roman Catholic)바티칸 시티는 이탈리아 로마 시내 북서부 테베강 서안에 위치한다. 1929년 이탈리아와 교황청 주변의 지역에 대해 주권을 인정하는 라테라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영토 0.44㎢의 세계에서 가장 조그만 독립국이 되었다. .◎ 바티칸으로 가기 Walking 베네치아 광장에서 Via Plebisito를 따라 20~30분 정도 걸으면 테베레 강이 나오고 엠마누엘교를 건너가면 웅장한 산 피에트로 성당이 보인다. Bus 테르미니역 광장에서 64, 492번 버스를 타면 약15분 정도 걸린다. Metro 메트로 A선을 타고 종점인 Ottaviano역에 하차한 후 좌측(Via Ottaviano)으로 10-15분정도 들어가면 된다.◎ 바티칸으로 기후 및 지형 기후는 5~9월은 덥고 건조한 여름이며, 9~5월 중순까지는 따뜻한 기온을 나타내며 연평균 기온은 15℃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734㎜이다 지형 대부분 바위와 산악지형이며 해안 쪽에 저지대와 평원이 있고 지역적으로 산사태,토사 ,눈사태, 지진, 화산분출, 홍수가 있으며, 베니스지역의 침하가 자연 재해이다.성베드로 광장 중앙에 보이는 높은 탑같은 것은 오벨리스크바티칸 경비◎ 바티칸 현재 상황 바티칸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로마에 거주하는 추기경과 국무장관 또는 지사의 허가를 얻어 바티칸시국에 정주하는 교황청봉사진이다.◎ 바티칸 박물관 작품들아래자료는 유럽여행 중 찍은 사진미켈란 젤로의 작품-최후의 심판라파엘로-아테네 학당 여기 나와있는 인물은 총 54명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학자들을 그렸다고 한다. 대표적인 학자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헤라클레이토스,피타고라스 디오게네스,유클리드,조로아스터,프톨레마이오스, 페루지노, 라파엘로미켈란젤로-토르소 미켈란젤로가 매우 좋아한 조각품. 발견당시 몸통만 있어서 미켈란젤로 에게 조각의 나머지부분을 완성시켜달라 했는데 미켈란젤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손을 댈 수 없다. 이 자체만으로 완벽하다♣ 관련 Internet Site http://www.nextour.co.kr/Guide/WD/Data/E1700002048.htm 바티칸 시국 주변 정보 http://www.hakane.com/museum/vaticanno/vaticannojo.htm 바티칸 박물관의 조형예술품 소개 http://pro.gjue.ac.kr/%7Ekang/nation/vatican/vatican.htm 바티칸 시국 정보 http://www.vatican.va/phome_en.htm 바티칸 소식지 http://www.tourtotal.com/asp/information/info-hw/if-12000.asp?country_code=VA 바티칸 여행정보2. 멕시코 남부 팔렝케 마야 고대도시 (Pre-Hispanic City and National Park of Palenque)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선정)신비스럽고,엄숙하고, 잘 보존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정글을 배경으로 하는 팔렝케는 고고학 유적지가 갖춰야 할 것은 모두 갖추고 있다. 마야가 이곳에 처음 정착한 것은 일찍이 BC100년부터, 그리고 도시가 절정에 달한 것은 AD600에서 800년 사이 지역의 수도 역할을 하면서 부터였다. 녹색 정글로 둘러싸인 팔렝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배경을 가지고 있고 마야 건축물과 장식도 아주 훌륭하다. 도기 파편의 증거로부터 이 장소에 처음 사계수와 달과 금성 태양을 나타내는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치아파스주의 습도 높은 정글지대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보존되었다는 평가를 얻는 팔렝케 마야 유적은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다른 유적들과는 달리 복잡한 배열로 정리되어 있다. 각 건물에는 궁전, 비명의 신전, 태양의 신전, 십자가의 신전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팔렝케 지역에 남아 있는 건축물은 대부분 파칸왕(603~683년)과 그의 아들 찬-발룸에 지시에 따라 세워졌다. 황금시기였던 이시기에 미심쩍은 자신의 왕위 계승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 예술과 건축도 공들여 육성되었다. 역사 조작의 도구로써 예술의 잠재력이 극한까지 발휘 된 것이다.◎ 파칸왕과 팔렝케◎ 비문사원팔렝케 에서 가장 높고 위압적인 건물로 그 지붕 빗을 완전하게 복원한 모습이다.이 건물은 6세기 파갈 왕이 세웠고 이곳에 그의 시체가 매장되어있다. 이 사실은 1952년 '알베루또 루쓰 루이예르'가 극적으로 그의 무덤을 발견하면서 밝혀 졌다. 무덤에서 발견된 많은 유물과 보석들은 멕시코시티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팔렝케의 유적지는 생동감 넘치는 색채의 치장 벽토로 장식되어있다.파갈 왕의 무덤으로 가는 입구 25M 아래로 내려가는 가파른 두 개의 돌 계단이 있다. 1949년 이 계단이 발견 됏을 당시, 그곳은 돌로 뒤덮혀 있었다.파갈의 무덤 높이가 거의7M이며, 가로9M세로4M인 둥근 천장이 있는 바이다. 건대 왕 들을 나타낸 9개의치장 회반죽 인물들이 벽을 장식한다. 석관의 무거운 돌 뚜껑은 파갈 왕이 저승 문턱에서 부활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장식되어있다.층계 위의 두 통로는 피라미드 안에 빛과 공기가 유입되도록 한다.지붕 빗에는 신과 동물 모티브를 새겼을 것 이라고 추측된다.사원 사원의 벽에서 볼 수 있는 이 비문은 3개의 석판 위에 모두 677개의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지금까지 그 일부분만 해석됐다.국립 인류학 박물관 위치 Gandhi 와 Paseo de la Reoforma모퉁이에 위치 Call 55 53 63 81 개장 화~굴 http://blog.naver.com/iguruguru/140000321639 팔렌케 여행기 http://www.precisa.gob.mx 멕시코 정부 http://www.shoestring.co.kr/destinations/america/mex.htm 멕시코 여행 안내 http://www.matuk.com/palenque/index.html 팔렝케 사진자료3. 스페인 살라망카 구도시 (Old City of Salamanca)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 개요 - 마드리드의 북서쪽에 있는 고대 대학 타운 - 로마네스크, 고딕, 무어식, 르네상스, 바로크 건물 기념물들이 즐비함 ◎살라망카 지역 설명 에스파냐 중서부, 레온 지방 살라망카 주의 주도. 인구 16만 7316(1995). 두에로강 지류인 토르메스강 우안, 해발고도 803m에 있다. 주변의 광대한 메세타에서 재배하는 소맥·두류 등 농산물의 집산지로 상업·농산물가공 및 화학·섬유공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13세기 초 알폰소 9세가 창설한 살라망카 대학은 옥스퍼드·파리·볼로냐와 함께 제 1 급의 대학으로서 널리 알려졌으며, 유럽에서 손꼽히는 학술·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다.살라망카세고비아똘레도에스뚜라마두라까스피아 레온쏘리아꾸엥카◎ 도시 개요 마드리드 북서쪽 208Km의 거리에 있다. 1218년에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세워졌고,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당초 로마인에 의해 세워진 이 살라망카 역시 서고트족 과 이슬람교도의 지배를 받았다. 일찍이 11세기에 그리스도 교도에 의한 국토 회복이 이루어진 도시이다. ◎ 교통 마드리드의 노르테 역에서 특급열차가 1일 2∼3편 있다. 소요시간은 아빌라 경유 약 3시간30분정도 역에서 시내 중심지인 마요르 역까 지 걸어서 5∼6분 걸린다. ◎ 기차 마드리드까지는 3시간반정도 소요되고 요금은 1560ptas가 든다. 아빌라까지 가는데는 755ptas가 든다.마요르 광장뽄세카 궁전 1538년알론소데 뽄세끼에 의해 건축됨산마르rvings Over the Fade of Salamanca's University. 플라테레스코 양식의 걸작이다. 전면이 마치 돌로 만든 제단 장식벽 같은 장엄하고 화려한 돋을새김이며, 수많은 인물과 문장이 그려져 있다.살라망카 대학의 모습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수사 '루이스 데 레온' 동상이 보인다.◎ 살라망카 대성당 (비에바 대성당과 누에바 성) 옛 대성당은 12세기 초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짓기 시작했는데, 13세기에 완성되었을 때에는 일부분이 고딕 양식으로 바뀌었다. 에스파냐인은 물론, 프랑스인과 이탈리아인까지 건설에 관여한 이 대성당은 삼랑식 구조이다. '수탉의 탑'이 유명하며, 내부에는 뛰어난 예술 작품과 장례 의식에 쓰이는 문화재가 있다Plans of the Cathedrals of SalamancaRelieves en fachada sobre la puerta al patio Chico Relieves of the Fa?de Over the Gate of the Small Patio살라망카 구성당 전경◎거대한 새 대성당 고딕 양식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 새 대성당 파사드의 최대 특징은 장황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장식을 들 수 있다. 파사드가 완성된 것은 18세기에 들어서였다. 그래서 바로크 양식을 비롯해 모든 양식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새 대성당 안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건물은 예전에는 예수회의 참사회 성당이었는데, 1940년부터는 폰티피시아 대학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그 거대한 규모가 구 시가지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아서 '젠 체하는 꼬락서니'라고 불리고 있다. 결국 예수회의 오만함을 상징하는 듯하기 때문이다.새 대성당의 용서의문 상부 조각 용서의 문'이라고도 부르는 새 대성당 파사드에 있는 풍부한 장식 가운데 그리스도 탄생과 공현 모습을 묘사한 부분. 새 대성당은 전체가 후기 고딕 양식의 걸작이며, 건설 공사가 18세기까지 이어졌다.◎ 산에스테반 수도원 성당 산에스테반 수도원 성당은 16~17세기에 지었다. 라틴w}
헤게모니의 분석헤게모니란 그 당시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지배적인 세력을 뜻한다. 헤게모니는 이데올로기와 같이 단순하게 부차적이거나 상부구조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포괄적이며 전체적인 것이다. 이것은 생활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서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상식의 한계를 설정해주며,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의 도식으로부터 도출되는 어떠한 개념보다도 우리들이 체념하고 있는 사회현실과 일치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로서 경험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것이 현실이며 절대적이라는 의식을 갖게 하여 그것을 떠나서는 생활하기 어렵게 만든다.학교는 문화적 이념적 헤게모니의 전수자이며 선택의 전통이며, 문화의 ‘통합자’이다. 즉 현존하는 지배, 피지배 계급의 능동적인 동의를 얻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실제적 행위의 총체적 복합체로서 피지배 계급 에 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즉 상위계급의 지배방식은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물리적 힘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회체제의 질서유지 존속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기존의 이데올로기 질서들이 사회 전 영역에 지배계급의 가치관을 확산시켜 타 계급에 받아들여지면 이들의 권력은 합리적인 것이 되기 때문에 더 이상 강제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여기에 교육의 중요성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헤게모니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장치가바로 학교의 교육인 것이다. 학교교육은 지배문화에 적합한 교과를 선택하여 그것에 대한 의미와 가치관을 가르침으로써 현존하는 경제적 문화적 체제와는 다른 체제의 존재 가능성을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을 만들어 버린다.교육에 있어서 중립성이란, 교육이 정치적 파당·종교적 파벌·사상적 노선 등 특정한 가치관 또는 이데올로기의 실현을 위한 수단에 이용되지 않고, 모든 가치관적·이데올로기적 편견이나 입장에 대하여 중립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중립성은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특성인데, 실제 학교교육제도는 그렇지 못하다.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교육의 중립성에 대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첫째로, 계층화된 사회에서 학교는 문화적 계급관계를 재생산하는 강력한 기관의 역할을 하는 것,둘째로,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지식이 사회적으로 선택된 것이기 때문이다.즉,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지식은 우리 사회의 어딘가로 부터 나온 문화자본으로서 그것은 보통 우리 사회에서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의 관점과 신념을 반영하고 있다.상황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어 의문시되지 않았던 것이 무엇인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사회 전체의 문화 중에서 특정한 문화만이 학교에서 객관적이며 정당한 지식으로 가르쳐지는데 이러한 특정한 문화는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결정하게 된다. 이 같이 불평등을 유지하는 데에는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분배의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다. 지식이 특정집단에만 분배되는 현상을 연구하면 어느 정도 교육과정의 정치적인 행위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다. 학교가 대중문화와 엘리트 문화를 분배하는 방식을 세밀하게 연구하여 교육정책과 교육과정을 지배하고 있는 자유주의적 전통과는 상반된 정치적인 신념을 갖는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다.교육이 사회변화를 창조하고 유지한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학교교육이 어떻게 반영되느냐에 따라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나올 수 있고, 그 영향으로 현재의 이데올로기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유추해낼 수 있다. 이런 가정들은 첫째, 학교에서 가르치는 기술교육이 경제성장과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교육 기회의 평등을 통하여 삶의 기회를 공평하게 분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교육과정 개혁을 통하여 지식을 생산하고 지식인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데 있다. 사회를 발전시키고, 기회를 공평하게 분배하여 발전의 기회를 만들고, 창조적인 지식인을 양성하는데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이데올로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를 뿌리로 두고 나오는 잎새들은 당연히 이데올로기가 될 수밖에 없다.이데올로기가 사회적 실재에 대한 사상, 신념, 기본적인 관념 혹은 가치관의 체계라는 점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합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의 개념에 대하여 ‘무엇이다!’ 라고 규정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해석은 실제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