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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감상문] 전시회 미술 감상문 평가C아쉬워요
    요즘은 미술관에 가면 흔히 그 동안 우리가 미술이라고 생각했던 형식을 갖춘 작품들이 바뀌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대신 새롭게 자리메김을 하고있는 작품들의 형식적 특징중의 하나가 인스톨레이션 즉 설치작품을 볼 수 있다. 내가 대학에 들어 올 때만 해도 설치미술이라는 말은 그렇게 대중적이지 않았던 것 같은 데, 이번 전시를 관람하면서도 여지 없이 설치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설치 미술하면 이미 완성된 작품을 전시 공간에 놓아 두는 것이 아니라 전시공간의 여건에 맞추어 작품을 설치하는 이른바 현장위주의 작업을 가리킨다. 따라서 설치작업에 있어서는 어디에다 꾸미느냐 하는 장소의 문제, 그리고 무엇을 보여 주는가 하는 발상의 문제가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나 자신 또한 설치미술에 관심이 간다. 인사 아트센타 3층에 가면 정육점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광경들이 보여진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돼지나 소들이 아닌 2m크기의 한지들이 말아져 꾀어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지속에는 먹으로 그린 암울한 느낌의 도시들이 그려져 있었다. 아쉽게도 팜플렛이 없어서 작가의 어떠한 표현을 했는지 정확히는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작가는 쉽게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그 의도를 쉽게 전 할 수 있을 꺼라 생각된다. 또 달동네를 연상케 하듯 한 벽면을 가득체운 한지에 먹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동네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작품이 아닌 그야말로 산에서부터 비스듬히 내려오듯 작가는 대각선 방향으로 한지를 늘어 뜨리고 있었다. 다른 작품들 또한 정형화된 틀안에 도시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이 작가는 설치 작품을 적절하게 잘 이용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쇠고리에 고깃 덩어리가 아닌 도시들이 걸려있는 것은 사회 부조리를 풍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작가 생각을 엿 볼 수 있었다. 아님 죽은 고깃덩어리(한지) 자체가 우리 현대 사회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전시장 분위기도 다른 특별한 조명이 갖추어 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품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작품에 크게 감흥을 느껴서 인정하기에는 주제자체도 일부 사람들이 많이 느끼는 평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표피적인 느낌과 스펙타클한 작업성향? 하지만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주제를 각인 시켜 주는 점에서는 좋은 평을 내리고 싶다. 주제가 넘지 않는다면 말이다...이번 한 주에는 도자 전시가 많지는 않았지만 회화 작품전 들에서는 격동적인 작품들이 있는반면에 봄의 향연을 알리는, 보는 것 만으로도 따뜻한 봄 햇살을 느낄 수있는 작품의 주제들이 많았다.3년....숱하게 인사동 전시를 보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나는 전시를 보면서 무엇을 얻고 왔는가 새삼스럽게 생각이 든다. 4학년이 되고 졸업 작품구상을 앞두고 벼랑에 선 기분이랄까 다급하면서도 초조한 맘을 감출 길이없다. 나는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만약 전시회를 보러 가는데 아무런 감흥도 없다면 나도 그랬었다고 그리고 지속적인 관심만 있다면 아무리 난해한 작품이라도 언젠가는 그 민살을 드러내고 말 것이므로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지금 내가 대학이라는 곳에 와서 흙이라는 수업과 재료를 다루면서 느껴지는 재료의 맛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래서 도자 전시회를 둘러보면 이렇게 작품이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이 되기까지 수업을 통해서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에 도자나 금속 작품을 보면 정감이 간다고 해야 할까! 물론 다른 회화나 조각 작품들도 그러하겠지만 내가 다루고 있는 성질만큼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말이다. 작가의 의도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까 하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독후감/창작| 2002.05.26| 2페이지| 1,000원| 조회(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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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회 감상문] 전시회 감상문(인사동을다녀오며) 평가C아쉬워요
    요즘은 날씨가 정말 후덥지근하다. 이번 주말시간의 짬을 이용하여 인사동에를 갔다. 날씨 또한 30도를 웃도는 더위어서 사람들의 표정이 다들 더위에 지친 표정이었다.이번 전시회는 유난히 유료화 전시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입장료 500원부터 어른 2000원까지 '추억의 만화 캐릭터 전시회며 가수 조영남의 유료 전시회인데도 불구하고 의외로 관람객들이 많았다.가수라는 대중적인 인물이라서 그런가 솔직히 볼 것은 없었는데,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조영남씨 전시회는 관람객들이 유난히 많았던 것 갔다. 또한 감상하고 나온 관람객들도 뭐 별 다른 것이 없다면서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이번 전시회에서 유난히 나의 이목을 끌었던 전시회는 '칼' 전시회다.명목이 전시회지 솔직히 보면 판매 목적을 둔 전시회인 것 같았다. 하지만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사진기를 들고 가지 않은 게 그렇게 후회될 수 가 없었다. 판매 위주 전시회라 장소도 협소하고 팜플랫도 없었고 학생들이 오면 보지도 않다가 중년의 나이 지긋하신 분이 오시면 칼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몹시 불쾌 했지만 내가 그렇게 한 전시회에서 아쉬움을 남기면서 오래 감상하기는 처음이었다.칼 전시회 또한 처음이라서 장소가 구석진데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이 붐비었다. 다들 신기해하고 칼 전시회에 대해 유심히 보는 것 같았다.각 나라들의 여러 칼들을 종류별로 전시회 났으며 우리 나라의 예전에 불리었던 식칼이며 은장도의 종류가 그렇게 많을지 처음 보았다. 또한 오락이나 만화에서 봤음 직한 그런 칼도 여러 종류가 있어 신기함을 감추지 못하였고 칼의 대공들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분들의 사진까지 놓여 있어 보는데 더 도움이 되었는데, 조금 아쉬었던 점은 칼 하나하나에 가격표가 있어서 작품이 아닌 상품 가치로 전락시키는 이미지를 받았다. 그래도 처음 접해보는 '칼' 전시회는 대단히 인상적이어서 팜플랫이나마 남기고 싶었는데 없어서 유감스러웠다. 또한 자수로 음양각을 주어서 자수실이 아닌 사진같은 느낌을 주었고 12병풍에 실로 한문을 새긴 작품과 마찬가지로 12병풍에 신선들의 풍류를 자수로한 작품이 대작 인 것 같다. 자수 작품 또한 인상적이었다.그리고 경기 대학교의 모던 조형전에서는 그 말 그대로 너무 모던 함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냥 가볍게 보고 지나갈 정도의 느낌이랄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작품들) 특별하게 인상적이었던 작품들도 없었고 솔직히 말하면 이런 것도 작품이구나 하는 작품 또한 있었다.마지막으로 인사 갤러리의 오명희씨의 작품을 보았는데 정말 눈속임이었다. 작품에 실수할뻔했으니 말이다. 그냥 종이 작업전이라는 표구에 이끌려 보았는데 들어가니 오래된 유물같은 항아리가 눈에 띄었었는데(도예를 전공한다는 특성으로) 그냥 별다른 생각없이 부채질하며 벽을 타고 감상하다가 10개넘짓한 항아리들이 흔들리는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너무 놀라서 도자기로 만든 항아리를 쌓아 놓은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지 않아도 흔들림 하나만으로 종이라는 것을 인식 할 수 있었다. 정말 어의가 없었다.
    독후감/창작| 2002.05.26| 2페이지| 1,000원| 조회(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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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색체이론] 색의 3속성(색채에 관하여) 평가D별로예요
    색에는 세가지 요소가 있다. 색상, 명도, 채도 이것을 '색의 3속성'이라 한다. 색은 이 요소의 차이로 구별된다. 이 관계를 입체로 나타낸 것을 색입체라 하며 세로축이 명도, 가로축이 채도 그리고 구를 가로로 반을 나눈 단면의 원주를 색상(환)이라 할 수 있다.▶색상색상은 유채색에만 있으며, 여러가지 유채색을 체계적으로 둥글게 배열해놓은 것을 색상환이라고 한다. 색상환에서 바로 옆이나 이웃자리(근거리)에 있는 색을 유사색(비슷한 색)이라고한다. 색상환에서 서로 반대쪽에 있는 색을 보색(반대색)이라고 한다.색상은 우리가 보는 색의 이름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색은 가장 두드러져 보이거나 지배적인 색상의 이름으로 불리 운다. 눈으로 들어 온 빛은 망막 신경 신호로 변환된 다음, 시신경을 통하여 뇌로 전달된다. 눈은 가산 컬러인 빨강, 녹색, 파랑의 삼원색에 반응하고, 뇌에서는 이 세 가지 신호를 조합하여 컬러를 인식한다. 이때 외적 환경에 따라 컬러가 다르게 보이는데, 같은 컬러라도 햇빛에서 볼 때와 촛불 밑에서 볼 때 서로 다르게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각 기관은 광원에 순응하기 때문에, 이 컬러를 동일한 컬러로 인식하게 된다. 인간은 미각, 청각, 후각, 기타 감각에 따라서도 색을 다르게 인식한다. 색채에 따라 따뜻하거나 차갑게, 무겁거나 가볍게, 부드럽거나 강하게, 자극적이거나 편안하게, 생동감이 있거나 차분하게 느껴지는 컬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도 문화, 언어, 나이, 성, 생활 환경, 경험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같은 색채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인식할 수 있으며, 볼 수 있는 빛의 범위도 개인에 따라 다르다.또한, 개체의 크기에 따라서도 색채가 다르게 보인다. 조그만 컬러 견본만을 보고 옷이나 가구를 선택했다가, 나중에 실물의 컬러와 견본의 컬러가 서로 달라 보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개체에서 반사된 빛을 통해 개체를 감지하므로 빛은 일종의 중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즉, 개체에 반사된 빛이 시신경을 자극하면 인간은 스펙트럼(색상환)아티스트 스펙트럼은 지각 가능한 색상의 전 범위를 그린 원이다. 동의어로 색상환이라고도 한다. 가장 간단한 스펙트럼은 균등한 색상간격에 따라 이름 붙여진 여섯가지 색상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로 이루어 진다. 스펙트럼은 6단계에서 12단계로 확장될 때도 있지만 새로운 색이름을 추가하지는 않는다. 아티스트 스펙트럼은 원형이며 연속적이다. 예로 보라는 빨강과 파랑을 이어준다. 가시광선 스펙트럼의 경우는 선으로 되어 있으며 빛의 짧은 파장(보라)으로부터 긴 파장(빨강)으로 움직인다.▶원색과 2차색빨강 노랑 파랑은 아티스트 스펙트럼의 원색들이다. 이 원색은 가장 단순한 색상을 갖고 있으며 원색에는 마젠타(Magenta), 시안(Cyan), 옐로우(Yellow)의 3색이 있다. 원색은 어떠한 색을 섞어도 만들 수 없는 색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많은 사람들이 빨강을 원색이라고 생각하는데 빨강은 원색의 노랑과 자주를 섞어서 만들어진 색이다. 모든색은 3원색으로써 다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섞는 색 수를 늘릴수록 색은 어둡고 흐려진다. 그리고 3원색을 똑같은 양으로 섞으면 검정에 가까운 회색이 되고 만다.빛의 3원색은 빨강(Red), 초록(Green), 파랑(Blue)이다. 2차색으로는 초록 주황 보라가 있다각각은 두 원색 사이의 시각적인 중간지점이다 2차색은 시각적으로 양쪽 원색의 50%씩을 갖고있다.▶순색순색은 가능한 한 가장 강렬하게 표현된 색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붉은 빨강 또는 가장 파란 파랑이 순색이라 정의 할 수 있으며, 순색은 또 완전색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색상환에서 순색들간의 모든 중간색 또한 순색이다. 각 색상 중에서 채도가 가장 높아 깨끗하고 선명한 색이다. 다시 요약해보면 어떤 색이 한가지나 두 가지 원색을 포함하고 있고 검정,흰색,회색에 의해 희석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순색이라 말한다. 순색(무채색과 섞이지 않은 순수한 색)이라고 한다. 유채색에 무채색(흰색,회색검정색)이 많이 섞여 채도가 낮아진다.라나 빨강이 가장 낮다▶또 다른 스펙트럼,또 다른 원색아티스트 스펙트럼은 하나의 색채구조 시스템을 보여 준다.그것은 친숙하며, 시각적으로 논리적이고, 평면으로 손쉽게 표현할 수 있으며,이론적인 제한을 받지 않고 확대될 수 있다.하나의 스펙트럼 대신 다른 스펙트럼을 선택하는 것은 분명히 일종의 선택이다. 어떤 스펙트럼도 다른 스펙트럼에 비해 본질적으로 더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스펙트럼의 목적은 지각 가능한 색상의 전 범위를 그리는 것이다. 노랑과 빨강, 또는 노랑과 파랑 사이의 공간에 간격이 얼마나 늘어나건 상관없이 또 다른 새로운 색상을 도입하지는 않는다.단지 명도의 간격이 늘어날 수 있다. 노랑-빨강과 노랑-파랑 사이에 순색 단계가 더 있다고 말하는 것은 스펙트럼의 본질과 목적을 오해한 것이다.▶색단계색상이 원형의 형태가 아니라 선의 형태로 연속된 것을 색 단계라고 한다. 색단계는 순색으로 만들 수도 좀더 복잡하고 혼합된 색으로 만들 수도 있다. 진행중인 각 단계가 색상의 변화를 나타낸다는 것이 특징이다.▶따뜻한 색상과 차가운 색상색상은 따뜻하거나 차가운 것으로 설명된다. 따뜻한 색은 빨강, 주황, 노랑 그리고 그사이에 있는 색이다. 차가운 색은 파랑,초록,보라 그리고 그사이에 있는 색을 포함한다. 색에서 따뜻함과 차가움은 고정된 성질이 아니다.같은 색이라도 배색에 따라 더 따뜻해질 수도 더 차가워질 수도 있다.▶유사색유사색은 스펙트럼 상에서 서로 인접해 있는 색채이다.파란보라와 파란 파랑-보라는 원색도 2차색도 아니지만 스펙트럼 상에서 인접해 있으며 유사하다. 유사색은 스펙트럼 상에서 범위가 좁다.그룹으로 묶여진 모든 색들에 지배적인 하나의 색상이 드러난다. 유사색은 항상 두가지 원색을 포함하고 있지만 3가지 원색을 포함하고 있는일은 없다. 또한 유사성은 순색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순색과 약화된 색상,즉 흰색이나 검정에 의해 희석된 색상도 서로 유사색이 될 수 있다.-색상의 차이가 크지 않는색들▶보색색상환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색상을 보색이라 말을 연결하고 있다. 보색을 정의 하면 혼합하였을 때 그 색상을 완전히 잃게 되는 결과를 낳는 색들의 쌍이다.▶평형상태평형상태 이론은 삼원색이 시야에 존재할 때 눈이 평형상태 또는 휴식 상태에 처하게 된는 주장이다. 실제로 평형상태는 시각영역에서 가산혼합의 존재에 의존한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빨강 노랑 파랑의 감산혼합 원색들은 필요한 파장들을 반사하며 효과가 동일하다.▶색상 대비같은 컬러라도 인접해 있는 컬러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빨간색 배경 위에 있는 적황색은 더 노랗게 보이고 노란색 배경 위에 있는 적황색은 더 붉게 보인다.▶잔상과 반전대비잔상은 동시대비와 동일한 현상이지만 보다 제한된 조건하에서 일어난다. 동시대비는 시야에 하나의 자극적인 색상과 인접해서 무채색이 존재하기만 하면 항상 일어나는 현상이고▶보색대비같은 음영의 회색을 파란색 배경과 적황색 배경 위에 각각 놓았을 때, 파란색 배경 위에 있는 회색에는 적황색이 엷게 칠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고, 적황색 배경 위에 있는 회색에는 파란색이 엷게 칠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3차색: 약화된 색과 갈색▶무채색: 순회색과 이론적 회색▶명도▶명도와 이미지▶이미지 바꾸기▶순색과 명도▶틴트와 셰이드▶톤▶단색의 명도단계▶명도와 색상의 유사성▶다른 색상들 간의 명도 비교▶채도▶순색을 회색으로 희석하기▶순색을 보색으로 희석하기무채색과 유채색{무채색은 흰색,회색,검정처럼 색기미가 없는 색이며, 유채색은 무채색을 제외한빨강,노랑,파랑 등과 같이 색기미를 띄고 있는 색이다.3 속 성빨강,노랑,녹색,파랑,보라 등의 표정과 성질이 다른 색을 구별하기 위해 필요한색의 명칭이나 다른 색과 구별되는 성질을 색상, 색의 밝고 어두운 정도를 명도,색의 맑고 탁한 정도의 정도의 차를 채도라고 하며, 이 3가지 색의 속성을색의 3속성 또는 색의 3요소라고 한다.명도"V"로 표시한다.명도는 색의 밝고 어두운 정도로서 무채색과 유채색에 모두 있다.무채색(흰색,회색검정색)을 명도의 기준으로 삼아 가장 어두운 검정을{명도 01단계로 나누어서 명도를 판단하고 있으나,검정(0)과 흰색(11)은 이상적인 완전한 흑과 백을 뜻하며 현실적으로 얻을 수 없는 색이다.채도"C"로표시한다.유채색의 순수한 정도를 뜻하기 때문에 순도라고도 하며, 한 색상에서 채도가 가장 높은 색을채도 번호는 1에서 14 까지 14단계로 구분하며, 색입체의 중심축인 무채색의 축에서 바깥쪽으로멀어질수록 채도번호는 점점 높아지고, 반대로 색입체의 중심축인 무채색의 축에 가까울수록채도번호는점점 낮아진다.위가 밝고 아래가 어둡다.색입체의 중앙은 무채색이고 이 중앙의 가장 위는 흰색 가장 아래는 검정이다.명도란 글자 그대로 색의 밝은 정도를 말한다.같은 빨강이라도 명도가 변하면 밝은 빨강, 어두운 빨강으로 달라져 보인다. 무채{색은 명도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명도가 가장 높은 색은 흰색, 가장 낮은 색은 검정이다.명도는 흰색에 가까울수록 높고 검정에 가까울수록 낮다라고 표현한다. 명도가 {높다고 하는 것은 색이 밝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흰색이나 검정이 섞이지 않아도 색은 모두 각자의 밝기를 가진다.명도대비는 명도가 다른 색을 조합했을 때 명도가 높은 색은 보다 높게 느껴지고 명도가 낮은 쪽은 보다 낮게 느껴지는 효과를 말한다. 그리고 이 효과를 확실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조합한 색의 명도차가 클수록 좋다.예를 들면 방의 조명은 바깥이 어두울수록 밝게 느껴진다. 낮에 밖에서 손전등을 비추었을 때는 조금도 밝게 느껴지지 않는다. 별의 색은 같은 밝기인데도 주위의 색이 어두울수록 더욱 밝게 보인다원색(마젠타,옐로우,시안)중 2색을 섞어서 만들어지는 색을 말한다.2색의 비율에 따라 빨강 주황 연두 녹색 보라 등의 색이 만들어진다.흰색,회색,검정인 무채색을 조금도 함유하지 않은 색이다. {물건을 본 후 잠깐 남는 감각을 잔상이라 하며, 어떤 색을 본 후 그 보색이 잔상으로서 보이는 것을 보색잔상 또는 심리적보색이라 한다. 초록의 잔상은 엷은 빨강, 반대로 빨강의 잔상은 엷은 청록으로 보인다고 한다. 보색잔상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때이다.
    예체능| 2002.05.26| 7페이지| 1,000원| 조회(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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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미술사(북위)] 북위의 불교조각에 관하여(중국미술사) 평가B괜찮아요
    1. 북위의 불교 조각1. 첫 번째 단계386년 탁발족은 북중국에 북위를 세우고 대동에 도읍을 정하였다. 북위 통치자들은 인도의 쿠샨 왕조같이 열렬히 불교를 옹호 하였다. 그것은 이민족이었던 그들이 정복지의 전통적인 사회, 종교적 체제 속으로 동화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460년후 직후 승단을 관리하는 사(沙)문(門)통(統)담(曇)요(曜)의 주창하에, 북위 통치자들은 운강에 있는 절벽을 깎아서 일련의 석굴사원과 거대한 상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불교뿐만 아니라 황실 자체의 영광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494년 수도를 남쪽의 낙양으로 옮기기 전까지 운강에는 20개의 커다란 굴과 작은 굴들이 개(開)착(鑿)되었으며, 수대에 다시 계속되었고, 후에 대동이 요대의 서경이 되었던 916년부터 1125년 사이에도 석굴이 개착되었다. 제 16굴에서 20굴까지 가장 오래된 석굴(담요 5굴)은 황제 자신과 그 이전의 네 명의 북위 황제들에게 봉헌된 것인데, 이는 아마도 444년 도교 신자였던 조부가 행한 가혹한 폐불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서 봉헌되어진 듯하다. 이 다섯 개의 굴에는 자연 암벽을 깎아서 만든 거대한 불좌상과 불입상이 있는데, 20굴의 불좌상의 경우 15미터 높이의 거대한 상으로 선정의 자세로 앉아 있으며, 원래는 여러 층으로 된 목조 가구(架構)로 보호되어 있었다. 불좌상의 어깨와 가슴은 양감이 있고 뱝례가 잘 맞으며, 얼굴의 윤곽이 뚜렷한데 간다라 조각에서 흔히 발견되는 가면과 같이 생경한 느낌도 약간 나타난다. 반면 옷주름은 평평하고 가죽 혁대 같은 띠모양으로 표현되었는데 팔이나 어깨의 윤곽을 돌아서 지나갈때는 뾰족한 끝으로 사라진다. 이런 묘한 표현 습관은 어쩌면 시크만이 지적했듯이, 조각가가 범본으로 삼았던 서역이나 인도에서 전래한 필선으로 스케치된 도상을 따라 만들면서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기인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유명한 예배 존상들의 양식을 가능한 한 똑같이 모사한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5세기 말이 되면 운강다. 중앙과 아래쪽에는 극락을 주제로 한 단순한 표현으로 보살들이 불상을 협시하고 있다. 측면에는 (왼쪽 아래로 내려감)석가모니가 돌아가신 어머니 마야 부인에게 도솔천에서 설법을 하고 내려오는 장면과 젊은 왕자로 표현된 석가모니, 출가, 녹야원에서의 초전법륜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나무 아래에서 명상에 잠긴 보살, 열반의 장면, 코끼리좌 위에 앉은 보현보살과 마라의 유혹, 그리고 문수보살과 유마거사(부채를 잡고 있음) 사이에 벌어진 교리 논쟁의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이 시기에 조성된 커다란 금동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것은 간헐적으로 중국 불교사에 상처를 남겼던 폐불기때 거의 다 파괴되었거나 녹아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북위대의 선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불단에 모셔진 상을 보려면, 우리는 일본으로 여행을 가야한다.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으나 크기가 가장 큰 예로 일본의 나라 법륭사 금당에 커다란 삼존불상이 있다. 이것은 623년 한반도에서 이주해 온 조각가에 의해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6세기 중엽 양식이 늦게까지 남아있다. 한편 대체로 집안에 있는 불당에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진 몇몇 작은 금동상들은 파괴를 면하였다. 단순한 불좌상에서부터 대좌에 화염광배, 협시상까지 완벽하게 갖춘 금동상들이 남아있는데, 그 조형적인 정확성이나 재료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이 금동상들은 중국 불교 미술의 가장 우수한 예로 꼽힌다. 성숙기 북위의 양식을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예는 파리 기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석가모니가 과거불인 다보불과 나란히 앉아 있는 518년 명의 정교한 이불병좌상이다. 이 상의 형태는 세장하며 눈은 비스듬히 올라갔고, 입가에는 부드럽고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반면 신체는 옷주름 밑으로 거의 사라져 버려, 더 이상 신체는 표현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무아삭이나 베즈레이의 로마네스크 조각에서와 같이 종교적 황홀감의 상태를 표현함에 있어서 신체 그 자체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는 굽이 치는이다.그렇다면 북향당산석굴의 나체형 보살상에서 지적되는 이러한 이질적인 표현은 도대체 어느 지역의 조각을 수용함으로써 성립한 것일까. 이 이질적인 조각의 원류를 살펴볼 때 대단히 주목을 끄는 것이 성도 만불사지에서 출토된 군상(群像) 조각으로, 북향당산석굴의 나체형 보살상과 유사한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우선 만불사 군상을 검토한다.○성도 만불사지 출토 군상성도 만불사 군상 조각은 원통형 서재 둘레에 높은 돌을 새김으로 6구의 존상을 표현하고 이들 존상 사이에는 그보다 작은 공양(供養)자(者)상(像)을 돌려새긴 극히 복잡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처럼 원통형 석재 둘레에 많은 인물상을 돌리는 구성은 당시까지의 중국조각사에서는 볼 수 없던 극히 드문 구성이다.6구의 존상의 표현은 북향당산석굴의 나체형 보살상과 매우 흡사하다. 즉 신체의 노출이 명료하고 복부가 이상하게 팽창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요포도 U자형을 그리면서 흘러내리고 있다. 또한 다리 하나를 유족으로 한 점도 똑같다. 이에 덧붙여 각각의 존상은 당시까지의 중국 조각에서는 물론 북향당산석굴의 나체상에서조차 볼수 없는 변화가 풍부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자유로운 포즈가 앞서 설명한 유족 및 풍만한 양감표현과 결합되어 이 조각에 더 한층 이국적인 느낌을 부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서이도 만불사지에서 출토된 군상에는 북위 후기 이후 중국 조각을 지배해 온 직립의 부(不)동(動)성(性)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자유로운 움직임과 구체적인 운동감, 경쾌함 등이 넘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가장 중요한 점은, 존상의 다채로운 포즈와 지(持)물(物), 존상사이에 서 있는 공양자상의 이국적인 용모에 성도 만불사 군상과 나아가 북향당산석굴상의 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도상학적인 비밀이 숨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에 성도 많불사 군사의 원류에 대하여 표현상의 관점에서 검토하기 전에 도상학적인 분석을 가하고자 한다.○공양자상존상사이에 그보다 작게 표현된 공양자상의 용모를 보면, 어깨까지 늘어진 웨이브 같이 원통형 석재의 둘레에 많은 인물상을 둘러 새기는 표현은, 그 때까지의 중국조각사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지극히 이례적인 구성이다. 군상 가운데 확인 가능한 6체의 존상에 있어서는 신체부의 노출이 대담하고, 복부가 이상하게 부풀어 있고, 그에 따라서 허리에 두른 요포도 배 위에 U자형을 그리며 흘러 내리고 있다. 또 한 쪽 다리를 유족(한 쪽 다리에서 체중을 뺀 자세)으로 하고 있다. 거기다가 각각의 인물상은 그 때까지 중국 조각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변화에 넘치는 다양한 포즈를 보이고 있고, 그 자유로운 포즈가 앞서 설명한 유족이나 풍부한 양감표현과 결합해서 이 조각에 한층 이국적인 느낌을 부여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성도 만불사지로부터 출토한 나체상에는, 북위 후기 이래의 중국 조각을 지배해 온 직립형의 부동성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는 대신, 자유로우운 움직임과 구체적인 운동감, 경쾌함 등이 넘쳐흐르고 있는 것이다.1. 신체의 공간분리6체의 나체상은 그 때까지의 중국 조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움직임이 풍부한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데, 어느 상에 있어서도 양 팔은 동체(胴體)로부터 공간적으로 명료하게 분리되어 있다. 바꾸어 말하면, 양자는 상당한 간격(공간적인 거리)을 가지고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슴으로부터 허리에 이르는 변화에 가득찬 동체의 선이 그대로 노출되는 결과가 되고 있다. 또 하반신에서는 유족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유족을 한다리와 직립한 다리와의 사이에도 상당한 공간적인 거리가 확립되어 있다. 바꾸어 말하면 나체상의 신체는 미리 주어진 개념적인 형태틀에 같혀 있는 것이 아니고, 상하좌우로 자유로운 벌림을 보이는 것이다.2. 양감표현만불사 나체상에 있어서는, 어깨, 팔, 다리에 이르기까지 포동포동한 살붙임이 베풀어져 있다. 특히 팔과 동체, 다리와 다리 사이가 명료하게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신체의 각각의 부분의 양감이 구체적이고 또 명료한 점도 커다란 특징이다. 이와같이 신체 각 부분의 양감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양감표현도 신체의 표 수 있는 춤추는 자세를 연상시키는면이 있다. 같은 나체조각이라도 만불사 나체상에서는 체중이 실린 다리를 곧게 폄으로써 하반신의 쭉 뻗은 느낌을 주는 데 비해, 북향당산 나체상에서는 체중이 실린 다리조차 구부림으로써 하반신이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두 나체상의 인상이 현저하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곧 입각을 직립시킨 만불사 나체상이 성인(成人)의 신체 비례를 연상시키는데 비해, 북향당산 북동 나체상은 어린아이의 단구(短軀)비례(比例)를 연상시키고 있다.만불사 나체상과 마찬가지로, 하반신에는 유족이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체중을 싣는 입각의 무릎을 살짝 굽힘으로써, 다소 엉거주춤한 자세가 성립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동남아시아 조각에 흔히 볼 수 있는 춤추는 모습을 모방한 것처럼 보인다. 또 상반신에서는 만불사 나체상에 볼 수 있었던, 한 팔을 머리 위로 높이 쳐든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대담한 손의 포즈는 완전히 방기되고 있다. 더욱이 양 손을 동체에 대는 경우에 있어서도 양 팔과 동체와의 사이에 생기는 간격을 가능한 한 억제하기 때문에, 바꾸어 말하면 양 팔을 동체에 붙이기 때문에, 만불사 나체상에 비해서 전체적으로 오무린 것고 같이 얌전한 신체의 윤곽이 성립하고 있다.(4) 복장등 장식모티프의 묘사북동 방주 정면상은 만불사 나체상과 마찬가지로 한 장의 긴 요포를 착용하는데 대하여, 남면과 북면의 보살상에서는 발목까지 내려온 요포위에 무릎까지 걸리는 짧은 요포가 덧입혀져 있고, 따라서 요포는 이중으로 되어있다. 이중의 요포는 중인도 조각에는 그 작품례를 볼수 없다.신체를 꾸미는 장신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다. 곧 북동 방주 북면의 좌우 협시상이 만불사상과 마찬가지로 신체에 장신구를 전혀 하지 않은 데 대하여, 남면의 좌협시상은 가슴을 비스듬하게 가로지르는 흉(胸)식(飾)을, 방주의 정면 우협시상은 가슴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흉식을 하고 있다.2.중동 입구의 나체상(1) 신체의 공간분리향(向)우
    예체능| 2002.05.26| 11페이지| 1,000원| 조회(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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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시대 화풍과 화가들 평가A좋아요
    명대에는 활발한 작품활동을 한 화가의 수가 증가하였고 다양한 양식과 화풍, 화파가 나타나 이 시기의 회화는 매우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 준다. 바다를 통한 항로 개발로 동서 문화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으며, 건축과 회화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또한 현존하는 작품의 수도 이전 시대에 비해 상당히 많다. 명대에 송나라의 한림 도화원을 부활시켜 원체화풍의 궁정미술이 발달하였으며, 중기부터는 수묵 담채의 남종 문인화가 발달하였다. 또한 송의 원체화풍을 계승한 절파와 문인화풍을 계승한 오파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대진과 문징명, 심주, 동기창 등이 대표적이다.명대의 회화에서는 대립하는 두 개의 화풍이 인식된다. 하나는 궁정을 중심으로 하는 직업화가의 화풍, 즉 북종으로 남송의 원체화나 수묵화의 흐름을 받아들이거나 또는 원의 이곽파에 연결되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문인들인 원 4대가를 스승으로 했던 화풍이다.대략 1500년 경을 경계로 해서 전자는 명의 전반기에, 후자는 그 후반기에 성행하였지만 그 교체기의 전후에는 양자의 화풍상의 교섭과 영향관계가 인정되며 절충적 화풍도 나타난다.화는 말기에 이르기까지 원대 회화의 연장선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원말의 혼란에 의해 강남지방이 황폐해지면서 일찍이 화가들의 후원자였던 부호· 사원· 도관 등은 쑤저우를 필두로 그 지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따라서 영락연간(永樂年間:1403~24)에 이르러 궁정화원제가 정비될 때까지 명대 화단은 주로 중앙보다는 재야에 있었으며, 그리 두드러지지 못했다. 이 시기가 명대 미술의 제1기이다.◆궁정회화와 궁정화가들편의상 여기에서 궁정화가들을 인물화, 산수화, 화조화의 세가지 주요 분야에 따라 검토하고자 한다.궁정 초상화- 명대에 궁정화가들의 주요 업무는 황제와 황후, 비빈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었으므로, 궁정 초상화에는 정치적 특성이 짙게 베어 있었다. 현재 거의 모든 명대 화가들의 초상화가 전하고 있다 초상화는 과거의 지혜롭고 덕이 많은 군주와 고관들을 묘사함으로써 교화의 목적도 수행할 수 있었것이다. 배들이 많은 강가에 산이 사방으로 겹겹히 둘러쳐있고 그 한가운데 왕족의 집처럼 생긴 웅장한 전각과 정자에서 사람들이 거닐고 있다. 강 저편에는 마을과 점점이 흩어져 있는 산들이 멀리 사라지는 듯 보인다. 화가의 섬세한 필법 덕분에 세세한 풍경들이 많이 묘사되기는 했지만 일부러 그림에 손을대 북송대 연문귀의 작품처럼 보이도록 했다.궁정 화조화-명대의 궁정회화에서 비록 산수화가 지배적인 주제이긴 했지만 화려하고 인상적인 화조화도 변경소,임량,여기, 등에 의해 인정받기 시작했다. 자(字)가 문진(文進)인 변경소邊景昭(약1426~1435활동)는 성조(宬祖)때 궁정화가로 무영전 대조를 지냈고 이 분야에서 탁월한 화가였다. 그는 오대의 화가 황전의 주제와 기법을 이어 받았으며, 작품에서는 사실주의와 정확한 윤곽선, 밝은 색채가 두드려 졌다. 또 임량의 화조화는 다른 궁정회화와는 완전히 다르다. 주로 수묵 사의화를 그렸는데 수묵만을 써서 마치 초서를 쓰듯 붓을 움직여, 거침없는 인상을 준다. 그는 용안도와 같이 힘센 독수리나 매를 즐겨 그렸다.◆절파와 강하파선덕연간(宣德年間)에서 천순연간(天順年間)에 이르는 시기(1426∼64)는 명대 회화의 제2기에 해당되는데, 화원을 중심으로 하는 절파계(浙派系) 화가가 융성했다. 대진이 이끈 절파와 오위가 주도한 강하파가 그것이다. 대진과 오위는 둘다 직업 화가 였으며 두 사람의 화풍은 궁정화가들의 화풍이 그렇듯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흔히 사람들은 그들을 합해서 '원체 절파'로 분류한다. 대진戴進(1388~1462)은 전당錢塘(오늘날의 항주)출신으로 선덕연간에 천거되어 궁정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소문에 의하면 그를 질투한 다른 궁정화가들이 황제에게 그를 모함해서 궁정에서 쫑겨 났다고 한다. 대진은 기교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인물.산수.화조 등의 온갖 주제에 능했으며 게다가 중국회화의 역사적 유산을 폭넓게 이용할 줄도 알았다. 그의 는 특히 소나무 묘사에서 마원의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다른 한편 는 이당과 유송년의 양식에훨씬 더 자유스러웠다. 그러나 문인화가들의 필법과 비교해보면, 오위의 필법은 방종하고 함축미가 없다. 그의 산수화는 꾸밈없고 적나라하고 깊이가 없으며, 그의 작품들은 세련되고 우아한 형상에 정치적 의미를 담은 정신적 이상 세계를 그리기보다 실제 생활에 좀더 가깝다. 대진이 이끈 절파와 오위 화풍을 바탕으로 한 강하파는 궁정화가들과 함께 명대 초기와 중기를 지배했다. 그러나 그들의 유리한 지위는 오파가 일어나면서 문인화가들의 도전을 받았다. 직업화가들의 양식은 끊임없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동기창의 비평이 가장 신랄했다. 이러한 비판이 거세어 지면서 직업화가들은 점차 시장을 잃었고 생계 수단을 빼앗기고 말았다. 살아 남기 위해, 남영과 같은 일부화가들은 화풍을 바꿔 문인화가의 양식에 좀더 가까이 접근하였고, 또 어떤 이들은 새로운 출구를 찾아 대중에게로 눈을 돌렸으므로, 명대 말기에 민간 연화와 목판화가 성행하게 되었다. 이것으로 명대 회화의 특색이 더욱 강조되었다.◆오파와 사대가명대 회화의 제3기는 성화연간(成化年間)에서 가정연간(嘉靖年間) 중반 시기(1465∼1540경)를 가리키는데, 그 전반기에는 절파와 오파(吳派)가 병존했고 그 후반기에는 문인화파가 융성했다. 특히 오파의 문인화는 성화연간에서부터 홍치연간(弘治年間:1465∼1505)까지 활약한 심주(沈周)에 의해 그 기초가 놓여졌다고 할 수 있다. 그가 태어나고 활동한 소주의 옛 지명인 '오'를 따라 오파라고 하였다. 오파 문인화의 형성기에 나타난 원파(院派)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이다. 문징명은 심주에게 그림을 배웠고 그와 함께 오파의 창시자라고 여겨지지만 구체적인 작품표현과 양식에서는 심주와 다른 개성을 보여 준다. 그의 작품들은 균형 잡힌 구도, 세심한 필법, 고상한 채색으로 유명하며 이러한 특징이 잘 나타나는 작품이 1533년에 그리기 시작하여1535년에 완성한이다. 본래 미가 산수는 짙은 먹과 대담한 필치로 대상을 간략하게 즉흥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특징으로, 송대 이전의 전통 산영역을 이룩하였다.◆동기창과 화정화파제4기(1567∼1643)의 명대 화단은 보수적인 회화활동과 새로운 창작활동이 병존했다. 화풍뿐만 아니라 매화(賣畵) 방면에 있어서도 직업화가와 문인화가의 동질화 현상이 진행되었다. 오파의 그림은 명대 후기에 이르러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반복적인 화풍을 답습하여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였고 이러한 오파 화풍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문인화의 기치를 내세웠다. 또한 동기창에 의해 방고주의(傍古主義)와 전형주의(典型主義)가 제창되었다. 그는 이전의 화법을 두루 익히며 전해 내려온 고법(古法)을 집대성하고 변화시켜 새로운 생명력을 지닌 화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고, 산수화에서 다양한 필묵법의 구사와 시화(詩畵)의 융합을 통해 단순하게 자연의 경관을 그려내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계에 이르는 것을 추구하였다. 또한 불교의 선종(禪宗)이 명대까지의 중국회화를 남북종(南北宗)으로 나뉘는것에 비유하여 남종과 북종으로 구분하는 독특한 관점에 의해 회화사를 새롭게 구축하고자 하였다. 당대(唐代)의 시인이며 화가였던 왕유王維(699~755) 이래의 문인화를 남종으로, 그 밖의 회화를 북종으로 분류하고 남종화의 절대적인 우위를 주장한 그의 회화사적 입장은 상당히 주관적인 것이지만 그의 화풍과 문화 이론은 17세기 이후 중국회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한편 문인화가들은 원대의 묵매도와 묵죽도의 전통을 이어받아 제작을 계속했다.◆명대 말기의 초상 인물화명대 말기에는 왕조 말기의 정치적 부패와 사회적 혼란이라는 배경에서 기존의 그림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롭고 특이한 이색적인 화풍이 나타났다. 명이 존속한 270여 년간은 궁정회화와 문인화 모두가 상당한 발전을 이룬 시기였다. 화원제(畵院制)가 미정비된 초기에 전국 각지의 화가들을 궁정으로 불러들여 인지(仁智)·무영(武英)·문화(文華) 등의 궁전이나 문연각(文淵閣)의 예인(藝人)으로 배치하기도 하고, 또는 금의위지휘(錦衣衛指揮)·진무(鎭撫)·천호(千戶)·백호(白戶) 등의 직함을 주어 대우했으畵)·마화(馬畵), 대진(戴進)의 도인(道人)·승려·산수·화훼화(花卉畵), 석예(石銳)의 금벽산수화(金碧山水畵), 그리고 이재(李在)·주문정(周文靖)·오위(吳偉)·왕악 등의 그림은 모두 일세를 풍미한 것들이다. 또한 손륭(孫隆)의 몰골법(윤곽이나 선을 그리지 않고 곧장 채색하는 화조화의 묘사기법 가운데 하나)을 이용한 화훼화, 임량(林良)·여기(呂紀)의 화조화(花鳥畵) 등도 모두 독특한 특징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러나 곧 문인화가 크게 일어나자 궁정회화는 점차 쇠퇴하게 되었고, 다만 만력연간(萬曆年間:1573∼1619)·천계연간(天啓年間:1621∼27)의 오삼(吳彬)이 독특한 산수와 불상(佛像)을 그려냈을 뿐이다. 이즈음 대진은 동료들의 시기 때문에 고향으로 쫓겨가게 되었으나, 남송의 마원(馬遠)·하규(夏珪)의 원체화(院體畵)를 숭상했던 그는 웅건한 기상이 담긴 필묵(筆墨)으로 궁정 안팎에 큰 영향을 끼쳐 '절파'(浙派)의 창시자라고 일컬어진다. 명 초기의 명의(名醫)인 왕리(王履)도 역시 마하체(馬夏體)의 산수화에 능했으며, 왕불·하창(夏昶)은 대나무를 잘 그려 명성을 얻었다. 강남(江南)의 경제가 회복되어가면서부터는 쑤저우[蘇州]의 문인화가들이 점차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유각(劉珏)·두경(杜瓊)·요수(姚綬) 등이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그 뒤를 이어 심주(沈周)가 나타났다. 심주는 동원(董源)·거연(巨然) 및 원4대가(元四大家)의 화풍을 계승·발전시켰으며, 중년 이후에는 황자구(黃子久)와 오진(吳鎭)에 심취해 '오파'(吳派)의 창시자가 되었다. 쑤저우의 명사인 문징명(文徵明)과 당인(唐寅) 등도 모두 심주의 화풍을 이어받았다. 이후 오파는 궁정회화와 절파를 제치고 명대 회화의 주류를 이루었다. 문징명의 산수화·화훼화는 섬세하고도 온아(溫雅)하며 여유로운 기품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화풍을 따른 화가들이 대단히 많았다. 그의 아들인 문팽(文彭)·문가(文嘉)와 조카인 문백인(文伯仁)이 모두 그의 화풍을 이어받았다. 제자인 진순(陳淳)·육되었다.
    예체능| 2002.05.26| 4페이지| 1,000원| 조회(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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