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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스트잇]포스트잇 활용사례
    포스트잇, 다양한 활용 방안(The Practical Use of Post-it)1. 서론2. 포스트잇의 활용 방안- 포스트잇 노트- 꿈의 피라미드- 역할 분담- 외국어 공부- 냉장고 음식 관리- 시간표 작성- 일회용 과자 스푼- 댄스 스텝 연습3. 결론1. 서론오늘날 사람들의 일상생활뿐 아니라 비즈니스 상의 업무가 복잡해져 감에 따라 포스트잇의 사용이 증대되고 있다. 정보를 하나씩 적어두기에 적당한 크기와 표면에 쉽게 붙으면서 붙여둔 자리에 그대로 붙일 수 있는 점, 쉽고 신속하게 떼어낼 수 있으며 여러 번 다시 붙일 수 있다는 포스트잇의 특성으로 효율적이면서도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 적당한 크기의 포스트잇은 꼭 필요한 정보만을 간략하게 기입할 수 있으며 업무에 사용되는 책상에서 비교적 적은 공간만을 차지한다. 또한 어디든 붙일 수 있다는 특징은 한 자리에 고정시킬 수 있어 정보를 잃어버리는 경우나 어지럽게 뒤섞인 정보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러 번 다시 붙일 수 있는 특성으로 정보의 배치 및 변경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이러한 포스트잇의 특성을 이용하여 개인의 일상생활, 학습과정에서부터 자신이 맡은 직업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까지 어떻게 하면 포스트잇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조사해 보았다.2. 포스트잇의 활용 방안■ 포스트잇 노트낱장의 포스트잇을 노트에 부착함으로써 업무의 효율성 증진을 꾀하는 방안. 비서 업무 혹은 사무 보조 업무를 하다 보면 고정적으로 수행하는 과업 외에 여러 사람으로부터 일을 부여 받는 경우가 발생한다. 때에 따라서 동시에 여러 가지 업무를 할당 받는 경우도 있는데, 신입 비서 또는 실무 경험이 적은 인턴 학생이 부여 받은 일을 빠르게 파악한 후 우선순위를 매겨 신속히 수행하기란 쉽지 만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신속하게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업무를 부여 받은 순간 쉽게 손 닫는 곳에 있는 포스트잇에 기입해 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다음과 같여 받은 일의 시간적 흐름을 알 수 있게 한다. 노트에 부착할 때에는 급한 대로 순서에 개의치 않고 부착한 후 나중에 여유가 생겼을 때 상단의 시간대와 일의 중요도를 고려하여 재배치한다. 완성한 업무에 해당하는 포스트잇은 없애버린다. 당일 완성하지 못한 업무 혹은 다음날까지 계속 진행되어야 하는 업무가 적혀있는 포스트잇은 노트에 남아있으므로 후일 참조한다.그림1. 포스트잇 노트■ 꿈의 피라미드포스트잇을 통한 목표설정 및 단기계획 수립 방안. 인간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 보일 때 큰 효과를 얻는 경우가 있다. 수험생들의 책상 앞에 붙어 있는 “필승”, “서울대”라는 단어,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이들의 냉장고 앞에 붙어 있는 단호한 결심이 적힌 어구들은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효과적인 도구들이다. 하나의 큰 목표를 달성하려면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소 계획이 따르기 마련인데,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포스트잇을 이용한 “꿈의 피라미드”를 소개하고자 한다.자신의 계획이 얼마나 세부적인가에 따라 피라미드를 그릴 종이의 크기를 결정한다. 비교적 큰 목표 하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것이라면 4절지 이상의 종이를 선택하여 큰 삼각형을 그린다. 한 장의 포스트잇에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적어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붙인다. 이어서 맨 위에 있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소규모 계획을 세워 아래 피라미드를 채워나간다. 한층 씩 내려갈 때마다 계획이 세분화 되고 세분화 된 계획들은 아래로 내려올수록 더욱 현실을 반영하여 작성한다. 계획을 하나씩 실행할 때마다 포스트잇을 띄어가면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최후에 한가지 목표, 즉 한 피라미드가 다 완성되었을 때에는 모든 포스트잇을 제거한 뒤 배경그림(피라미드) 위에 또 다시 새로운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포스트잇을 이용한 “꿈의 피라미드” 방법은 포스트잇의 특성상 이동, 변경 및 삭제가 용이하기 때문에 계획이 수시로 바뀌는 단기 계획을 세울 때 좀더 유용하게 사용할고객의 만족도 조사, 나아질 수 있는 방안 연구 등이 이루어 져야 한다. 이렇게 나누어진 업무들 하나하나를 포스트잇에 기입하여 화이트 보드에 붙여 놓는다. 이들 중 자신이 맡고 싶거나 자신 있는 분야의 포스트잇을 떼어내고 그 아래 자신의 이름을 기입한다. 이 후 업무가 완수되면 자신의 이름이 기입되어있던 화이트보드에 다른 색깔의 포스트잇을 붙여 놓는다. 이 방법을 통해 모든 직원들은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기 쉬우며, 누가 각각의 분야에 책임을 지고 있으며, 현재의 진행상태를 한눈에 알 수 있다.노동 수요에 비해 공급의 초과로 계약직을 통한 교대근무가 늘어나고 있다. 교대근무의 경우 매끄러운 업무의 전달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서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고, 매일매일 교대할 사람에게 업무를 설명해야 하는 것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다.이러한 번거로움을 줄이면서 업무 전달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 먼저 온 직원 또는 그날 업무를 마무리 하는 직원이 오늘(다음날) 해야 할 업무들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 놓고 다음날 그 중 자신이 맡아서 할 업무를 선택하여 수행한 후 처리된 업무의 포스트잇은 제거한다. 그 다음 교대한 직원은 남아있는 포스트잇의 업무만을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 출근하는 사람이 업무의 연관성 유지하면서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중복된 업무의 수를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서로의 업무에 대한 성향과 능력을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외국어 공부요즘 학생들뿐만 아니라 직장인들까지 제2외국어 하나씩 습득하는 것은 거의 필수에 가깝다. 그러나 모국어가 아닌 제 2외국어를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습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학연수로 외국에 나가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나라의 언어를 생활에서 직접 접하면서 습득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따르는 많은 시간과 비용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외국에 나가 한국사람과 어울리다 보면 그리 많은 실력이 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음은기더라도 붙여진 단어가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것을 외운 후에 그 단어를 활용하여 다른 문장을 구사하거나 해당 숙어, 표현을 익힐 수 있다. 텔레비전에 ‘TV’라 붙여 놓고 머리 속으로 ‘TV를 켜다, 끄다’, ‘소리를 높이다, 줄이다, 없애다’ 표현을 생각하며 소리로 크게 말해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외국어를 매일 접하면서 연습하다 보면 언어에 대한 감각을 잊지 않을 것이며, 일상생활에서의 회화도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꾸준히 하다 보면 곧 나중에 자신의 언어능력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그림3. 포스트잇 활용 외국어 공부■ 냉장고 음식관리맞벌이 부부와 자취생들 등 바쁜 현대인들의 경우 음식의 유통기한을 제때 체크하지 못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음식을 담아 놓은 용기 위에 간단하게 포스트잇을 붙여 이를 효율적으로 방지할 수가 있다. 견출지나 메모지에 써서 스카치테이프로 붙이면 되지 꼭 포스트잇을 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을 할 수 도 있지만, 전자의 경우는 스카치테이프의 끈끈한 성분이 용기에 남아 설거지 할 때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으므로 포스트잇이 가장 적합하다.포스트잇에 ①음식을 만든 날짜 (또는 구입날짜, 제조날짜) ②보관되어야 할 기간 (또는 폐기처분 되어야 할 날짜)를 적어 놓을 수가 있으며 혼자 식사를 차려 먹어야 하는 자녀들을 위해 음식마다 렌즈에 돌려야 하는 적당 시간 또는 간단한 조리 방법 등을 메모해 놓을 수가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냉장고 문을 열 때 마다, 특정 음식을 먹을 때 마다 뚜껑 또는 용기 벽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통해 체계적으로 보관기간 관리를 할 수가 있다.정보제공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냉장고안 음식관리가 주부들 만의 몫에서 남편은 물론 어린 자녀들에게도 분담될 수가 있다. 즉, 냉장고안의 음식들이 폐기처분 되어야 할 시기에 대한 의사결정을 주부뿐만 아니라 가족내의 모든 구성원이 할 수 있게 되면서 주부의 업무가 경감될 수 있으며, 자녀있는 특성을 활용할 수 있다. 먼저 A4용지에 시간표의 틀을 그린다. 그리고 나서는 5~6개정도(자기가 들을 과목수만큼)의 색깔별로 작은 포스트잇을 준비한다. 각각의 포스트잇에 과목명을 쓰고, 각각의 수업시간 종류별로 미리 그려 놓은 틀에 포스트잇을 쉽게 옮겨가며 배열을 해볼 수가 있다. 쉽게 배열을 하고 다시 다른 곳으로 옮길 수가 있으므로 가장 이상적인 시간표를 한눈에 보기가 훨씬 쉽고, 시간표 작성시 드는 시간을 훨씬 줄일 수가 있다.■ 일회용 과자 스푼포스트잇으로 간이스푼을 만들어 컴퓨터 작업 시 키보드 안에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게 하는 방안. 컴퓨터 사용을 하면서 간단한 과자를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동시에 과자를 먹게 되면 그 부스러기가 키보드 안으로 들어가서 컴퓨터 고장의 원인이 되는데, 그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손으로 직접 과자를 집지 않고 포스트잇으로 만든 간이스푼을 이용해볼 수 있다.포스트잇을 고깔 모자 형식으로 살짝 접은 뒤 접착력이 있는 부분을 다른 쪽 끝에 붙이면 봉지과자를 담을 수 있는 모양이 된다. 단, 포스트잇은 위생적이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일반 포스트잇 보다는 뽑아서 쓰는 형을 권장하며 되도록이면 입에 닿지 않도록 한다.■ 댄스 스텝 연습포스트잇을 바닥에 부착하여 스텝을 표현, 춤 연습에 도움이 되는 방안. 문근영 주연, 영화 ‘댄서의 순정’에서 남자주인공이 문근영의 춤 연습을 위해 바닥에 밟아야 할 포지션을 페인트로 칠해준 것에서 착안하여 이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방법은 밟아야 할 곳을 포스트잇으로 붙이는 것이다. 포스트잇에 여러 가지 색깔이 있으므로 색깔 별로 발이 머물러있어야 할 시간을 정한 뒤 붙이는 방법도 있고 두 가지 색깔을 이용하여 왼발 오른발을 나누는 방법, 포스트잇에 스텝 순서를 숫자로 표현하는 방법 등이 있다.포스트잇으로 스텝을 표시하면 바닥에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을 뿐더러 한 그룹의 스텝이 완성되면 다른 스텝으로 쉽게 바꿀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은 취미로 무용을 배우는 일반인들은 집에GE 8
    경영/경제| 2006.05.08| 8페이지| 1,000원| 조회(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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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의 유럽 침공 이후의 반목의 역사와 화해의 가능성
    Ⅰ. 서론Ⅱ 본론1 아랍제국 유럽 지배(1) 아랍제국의 건설1) 에미르(회교 왕국)시대2) 칼리프(회교국 왕)3) 타이프(소회교왕국)시대(2) 십자군 전쟁(3) 오스만 제국2. 근대 유럽의 반격(1) 유럽의 빠른 성장(2) 오스만 제국의 붕괴3. 현대의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의 분쟁(1) 냉전시대에서 중동이 갖는 의미(2) 냉전시대의 이스라엘과 미국(3) 이라크 전쟁과 미국4. 문명 간의 화해의 가능성(1) 문화적(2) 종교적Ⅲ. 결론Ⅰ. 서론오늘날 세계에서 이슬람과 서구는 상호 화합보다는 대립하고 상호 존중보다는 갈등하는 듯 보인다. 부시 대통령과 서방 지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들은 테러 응징을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주장하며 중동지역의 끊임없는 분쟁을 정당화하고 있으며,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뿐 아니라 중동의 몇몇 친미 정권을 제외한 많은 아랍인들은 이러한 분쟁을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그 힘을 이용하여 중동을 억압하려는 패권주의의 발호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특히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와 팬타곤에 민간 항공기들이 충돌한 후 미국인들은 고뇌에 찬 질문을 던졌다. 왜 이슬람은 서구를 증오하는가? 이러한 테러는 서구 문명 전체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다는 점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러한 갈등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의한 20세기의 분쟁의 양상으로 볼 수 있지만, 이슬람 테러리즘의 원천인 증오의 샘을 내려다보면 이슬람과 기독교, 즉 이슬람 세계와 서구 세계 사이의 13세기 동안의 분쟁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아라비아 반도에 이슬람이 출현한 지 1세기도 되지 않아 아랍 군대는 거의 모든 기독교 세계를 정복하였고, 프랑스 서부에 가서야 그 진행이 멈추었다. 몇 세기 후 유럽 기독교도들은 십자군 전쟁에서 복수를 꾀하였으며 이에 대한 복수로 터키 이슬람교도들이 유럽으로 쳐들어가는 등의 분쟁의 역사였다. 그 후 유럽은 자본주의와 과학의 결합을 통하여 부유하고 강력해졌으며 20세기 초반에는 대부분의 이슬람 세계가 유럽의 직 된 15세기 말에는 이슬람에 대해 적대적이며 호전적인 태도가 있었지만 그 사이의 기간 동안 대부분은 합리적이고 우호적인 태도가 주를 이루었다. 실제로 당시의 스페인에서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사라져,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슬람 문화에 젖어들게 되었다. 찬란한 이슬람 문화를 몸소 체험한 스페인 사람들은 다른 유럽의 이에 대한 시각과는 달리 이슬람 세계 속에서 독특한 이슬람 문화와 종교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일반적인 유럽의 시각은 무하마드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고, 꾸란이나 이슬람교도 학자들이 작성한 전기들을 구해서 읽지도 않았으며 주변의 이슬람 인들에 대한 이해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무지와 무관심이 기독교 유럽 문명으로 하여금 이슬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편견과 오해 속에 사로잡혀 이슬람으로부터 도망치고 배척하기만 했던 것이다.(2) 십자군 전쟁젊은 시절 무하마드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나오는 상품의 교역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 무하마드는 예루살렘의 세련된 문화와 종교적 유적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솔로몬 사원에서 천국으로 가는 꿈을 꾸었고 통곡의 벽(Wailing Wall)을 깊게 각인 시켰다. 그리하여 무하마드 사후에 아랍인들이 제국을 개척하는 모험을 시작했을 때 예루살렘은 아랍인들의 최우선의 목표가 되었다. 638년 예루살렘을 정복한 아랍인들은 오마르 사원과 알-아끄샤(al-Aqsa) 사원을 통곡의 벽 가까운 곳에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슬람교 정복자들은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기독교 순례자들에게 아무런 제약을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상실은 다른 지역 기독교도들에게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이후 1071년 아랍의 확대로 제국이 크게 줄어든 콘스탄티노플의 기독교 황제는 새로운 이슬람 왕조인 셀주크 사람들에게 패배를 겪었고 이에 따라 생존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는 성지순례 루트까지도 봉쇄하지 않을까 우려하게 되었다. 그래서 콘스탄티노플 황제는 로마의 교황과 서유럽의 기독교 통치자들에로 이해하려고 설명하려는 시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고 고착하였다. ‘타자’로서 이질성과 적대성을 가진 이슬람 아랍 문화권과의 만남이 서유럽의 세계관과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겠다. 요컨대 중세의 상당기간 동안 서유럽은 이슬람 세계에 대해 군사력의 열세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열등감을 느껴야만 했다.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내려오기도 하는 이슬람에 대한 유럽의 부정적 견해는 주로 십자군 전쟁과 같은 정치 군사적 갈등의 부산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열등감 때문에 더욱 강화되어 왔다. 유럽 기독교 사회가 이슬람에 대해 더 이상 군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열등감을 가지지 않게 된 것은 둘 사이의 역학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17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이른 바 "이슬람공포증(Islamophobia)"은 극복될 수 있었고 이러한 자신감과 경제 문화 과학적 능력을 바탕으로 이슬람에 대한 반격을 하게 된다.2. 근대 유럽의 반격(1) 유럽의 빠른 성장일단 서유럽 측의 경제력 상승을 들 수 있다. 경제력을 보자면 신항로 개척 이후, 신대륙에서의 금과 은의 유입으로 유럽의 경제력은 매우 향상되었고, 신대륙의 발견과 유럽-인도, 동남아, 중국 과의 직거래 항로의 개척으로 유럽에 큰 부를 안겨준 반면 이슬람 쪽에는 엄청난 이익을 남겨 주었던 중개 거래도 많이 감소했고, 부도 감소하게 되었다.스페인,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유럽 여러 국가들은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에 무수히 많은 식민지들을 두어서 그들에게 노동력과 자원을 거의 무료로 사들여와 자국의 공장에서 무한 생산한 뒤, 식민지 국가들에게 대량 판매함으로써 식민지를 정치적, 경제적 포로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20세기 제국주의 시대 때 유럽 국가들이 동양 국가들에게 입힌 피해와 유사하다.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를 확대하였고 그 식민지에서 철저한 수탈정책을 통해서 아랍 이슬람 국가의 양적 우위에 대항하여 성장할 수 있었다.그리고, 효율성을 끌어올 증대시켰고 이는 곧 유럽에게는 절호의 기회를 오스만에게는 쇠락으로 가는 갈림길이 되었다. 이에 반해 포르투칼의 항해왕 엔리케는 아프리카 넘어 인도를 가는 길에 투자를 하였고 마침내 희망봉을 발견해 인도를 돌아가는 길을 마련했다. 즉, 독점적이었던 동양무역이 소규모로나마 깨진 시발점이다. 이 깨진 틈을 이용하여 서양인들은 동양과 직접 교역을 시행하였고 여기에 신대륙 정복 후에 들어오는 부를 바탕으로 오히려 동방지역을 정복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제국시대의 개막입니다.(2) 오스만 제국의 붕괴중세 아랍문명의 종주국은 오스만 제국임을 부인할 수 없다. 천년 가까이 지속되어 오던 우위를 지키는 아랍문명과 이에 종속되어있던 유럽 문명사이의 관계가 역전되는 상황은 오스만 제국의 흥망에 의해서 살펴볼 수 있다.오스만 제국의 셀림 1세는 이란 ·시리아 ·아라비아를 제압하고 이집트를 정복하여, 마지막 아바스왕조로부터 칼리프 칭호를 물려받아 이슬람교의 종주권을 장악함으로써, 술탄 칼리프제를 확립하였다(1517). 쉴레이만 1세 치하(治下)에 극성기에 달하여, 영토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3대륙에 걸쳤으며, 그 군대는 한때 빈(오스트리아)까지 육박하였다(1529). 또한 국내에서는 군사적 봉건제에 입각한 국가체제를 확립하고, 법률 ·학예 ·건축 ·공예 등 각 분야에 걸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으나,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이슬람과 유럽의 희비가 교차하게 되는 17세기 이후로는 점점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중기에 전체주의적 개혁에 의하여 질서를 회복, 강경한 외교정책을 펴서 한때 부흥하였으나, 제2차 빈 포위공격에 실패(1683)하고부터는 오스트리아 ·러시아 ·폴란드 등 열강의 진출이 활발하여 17세기 말에 헝가리의 대부분을 오스트리아에, 18세기 후반에는 흑해 북안을 러시아에 빼앗겼다. 19세기에 들어서자,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1789∼1801)을 계기로 열강의 압력은 더욱 격화되어 그리스의 독립, 이집트의 이탈, 프랑스의 알제리 점령, 영국의 아덴 지원이 증가하면서 경제 및 군사적 지원이 병행되었고 그것은 기하학적으로 늘어갔다. 키신저는 “중동 국가의 현실에 직면하게 되자 닉슨정부는 소련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아랍 급진주의자들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아랍 온건주의자들을 격려하고 이스라엘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전략을 추구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1973년 전쟁에서 패배할 위기에 처하자 닉슨은 800%를 늘린 유례없는 미국 최대의 공수로 전면적인 군사지원과 총 20억달러가 넘는 군사지원을 명령했다. 1973년 전쟁은 그 어느 때보다 중동에서 소련과 미국의 입지를 양극화했다. 전쟁이 종결될 시점에서 이스라엘은 미국의 냉전 동맹으로 확고하게 신임 받았고 점차 관대한 경제적 이익을 보상받게 되었다.(3) 이라크 전쟁과 미국?2003년 5월 1일 이라크전의 종결 선언 이후, 이라크 전후복구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시점에서 미국의 다음 목표가 시리아, 이란이라는 주장이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목적은 공식적으로 이라크의 무장해제와 사담 후세인의 23년 철권통치 종식에 있었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의 독재체제를 무너뜨리긴 했으나 대량살상무기는 아직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중동의 몇몇 국가들이 미국의 다음 공격목표로 등장하는 것은 이라크전의 본질적인 목표와 관련되어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는 여러 목적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수립하여 이후 이라크를 통해 효율적이고 광범위한 중동지배를 추진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활용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시리아, 이집트 등 주변 중동국가들의 변화를 추진하여 과거 친미국가와 반미국가로 양분된 구조를 뛰어넘어 보다 더 포괄적인 중동질서의 재편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친미연합전선을 확대시켜 나가는 것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입지를 강화시켜 중동의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라크전은 미국의 중동질서 재편을 위한 첫 단계임과 동시에 그 변화의 기반구축을 의미한다. 기독교 .
    인문/어학| 2007.12.16| 16페이지| 1,000원| 조회(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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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털권력 이대로 좋은가?-현재의현상과 앞으로의 발전방안 모색-과목 : 언론학 원론제출일자 : 2007. 01. 21담당교수님: 정영희 교수님제출자 : 2000130409 강태원- 목 차 -Ⅰ.서- 포털뉴스의 거대 권력화Ⅱ. 본론1 -포털 저널리즘에서 나타나는 뉴스효과와 이를 나타내게 된 원인1.포털의 뉴스효과1) 프라이밍(priming) 연구2) 이용과 충족3) 아젠다 세팅(Agenda-setting)2. 포털 저널리즘의 거대화 원인1) 매체자체의 특성2) 수용자들의 특성3) 현대 사회의 특성Ⅲ. 본론 2 -포털 저널리즘의 권력화의 명과 암1. 포털 저널리즘의 권력화의 긍정적 측면1) 언론의 다양성- 자유주의 언론모델 실현가능2) 뉴스의 빠른 전파3) 댓글기능-자유로운 공론의 장4) 매체의 융합2. 포털 저널리즘의 권력화의 부정적 측면1) 사회적 책임의 문제 - 사회책임 모델 관점에서2) 포털 저널리즘의 선정성을 강조하는 옐로우 페이퍼化 -다양성을 훼손하는 측면3) 포털 저널리즘의 공정성 문제-촘스키의 선전모델Ⅳ. 본론 3- 포털의 독점적기능화 해결책1. 편집자들에 대한 윤리적 기준 설정2. 구글의 기술적 특성 적용3. 통합적 관리 기구 마련 법제도정비Ⅴ. 결론 - 포털의 자발적 변화와 수용자의 변화 필요@. 연구소회-참고문헌-Ⅰ.서- 포털뉴스의 거대 권력화‘인쇄할 만한 모든 뉴스(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문 중에 하나이며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신문인 뉴욕타임즈 (NewYork Times)의 사시(社是)이다. 이 문구에서 보듯 활자 뉴스의 역사는 인쇄매체의 발달과 함께 발전해왔다. 그러나 라디오나 TV등의 속보성을 가진 매체의 빠른 발전에 따르지 못한 신문은 점차 그 영향력을 상실해가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PC의 보급과 이에 수반된 인터넷 서비스가 발전하여 그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는 가운데 신문이 제공하는 활자 형태의 뉴스가 각광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저널효과를 잘 보여준다. 특정 이슈가 부각될 시에는 그에 대한 뉴스를 계속적으로 첫 화면에 게재하여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다른 뉴스가 부각 될 시에는 다른 사건으로 메인화면을 도배하여 이전에 떠들썩했던 사건들에 대한 관심을 돌린다. 그 일례로 최근에 벌어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보도이다. 2007년 1월 8일의 대부분의 포털사이트의 메인화면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일정상회담 과정에서 언급한 평화의 바다 제안 발언으로 도배되었다. 그러나 다음 날 발표한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관련 국민성명으로 인해서 사회에 대한 관심이 개헌에 대해 집중되었고 포털사이트의 메인 뉴스는 개헌관련 논의로 집중되었다. 그에 따라 “평화의 바다”발언 사건은 이를 찾기 힘들 정도로 축소되었고, 사회의 관심에도 멀어지게 되었다.이와 같이 포털 뉴스는 메인화면의 제한으로 인해서 특정이슈 중심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이에 집중함으로서 사회의 이슈를 부각시킨다. 또한 매체가 가진 속보성으로 인해 사건 발생 시 특정이슈에서 다른 이슈로 전환이 빠르므로 이러한 프라이밍 효과가 더욱 빠르고 강력하게 나타난다.2) 이용과 충족매스미디어의 중효과 연구에서 이용과 충족 이론은 “매스미디어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사람들은 매스미디어를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 라는 수용자 중심의 질문을 제기하면서 등장했다. 즉 사람들이 어떤 동기를 가지고 매스미디어를 이용하며 그것으로부터 어떤 만족을 느끼는가를 분석한다. 따라서 이용과 충족이론은 수용자는 능동적이며, 목적 지향적이라는 가정 하에, 수용자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능동적으로 매스미디어를 선택한다는 점을 강조한다.)이러한 적극적 매스미디어의 수용자의 측면에서 포털의 저널리즘은 이용과 충족 이론을 적절히 충족시켜주는 매체이다. 예를 들어 아이돌 가수출신의 문희준)의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희준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록 자격증이 있다면 그렇게라도 해서 인정을 받고 싶다는 문희준의 절박한 심정을 보여줬다. 직대량 인쇄는 그러한 지식의 수용자 계층의 광범위하게 퍼져있었으므로 수요에 따라 공급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TV와 라디오의 컨텐츠의 발달 역시 이를 받아들이는 소비자가 기기를 갖추고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 때 비로소 발전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매체의 발달 역시도 수요와 공급의 일치라는 경제학적 논리를 철저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포털 저널리즘의 거대화되는 맥락 역시도 이와 유사하다. 컴퓨터의 초기 사용자들과 지금 현재의 주된 사용 계층은 10대 20대의 젊은 계층이다. 이러한 젊은 계층들에게 활자로 된 신문은 이전 세대와는 달리 크게 어필하지 못하였다. 이에 반해 포털 저널리즘은 그 속보성과 빠른 폐기, 선택의 자유, 선정성 등으로 인해 젊은 층의 욕구와 맞물려 성장하게 된 것이다.3) 현대 사회의 특성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욕구가 다원화됨에 따라서 모더니즘 시기의 지배적인 담론을 거부하고 모더니즘이 확립하여 놓은 도그마, 원리, 형식 따위에 대한 거부 및 반작용(反作用)으로 일어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기로 볼 수 있다. 과거의 조선·동아·중앙·한겨레 등의 시장 지배적인 신문들이 가졌던 일관된 경향 및 메타네러티브(meta-narrative)가 포스트모더니즘 시기를 살아가는 사회와 융합되기 힘들었다. 이에 따라 다양성을 기본으로 하고 일정한 형식없이 정보가 자유롭게 떠다니는 인터넷 사회 속에서의 뉴스의 주된 지향은 포털 서비스에 향했던 것이다.Ⅲ. 본론 2 -포털 저널리즘의 권력화의 명과 암앞에서 살펴본 포털 저널리즘의 인터넷 뉴스 매체의 독점 현상은 매체자체의 특성과,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특성, 그리고 사회 현상적 특성으로 인해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적 흐름이 되었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따르기 보다는 장단점의 구분을 통한 올바른 매체의 사용의 방법을 찾아보기 위하여 우선 포털 저널리즘의 독점화에 따른 명과 암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1. 포털 저널리즘의 권력화의 긍정적 측면1) 언론의 다양성- 자유주의 언론모델 실현가능인터넷이 문자와 음성, 그리고 동화상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인터넷 신문은 매체 융합의 최정점에 서 있다고 하겠다.) 포털 저널리즘은 단순히 활자적 매체에 의한 정보의 제공뿐 아니라 음성 및 동영상 데이터를 같이 구동시킬 수 있어 생동감 있는 정보를 전달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2. 포털 저널리즘의 권력화의 부정적 측면1) 사회적 책임의 문제 - 사회책임 모델 관점에서사상의 공개시장을 주장한 자유주의 모델의 측면에서 보았던 포털 권력의 자유로운 활동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하여 공익의 이익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포털 저널리즘이 많은 기사에 대한 중간역할을 하여 이를 선정하고 게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기사를 접하는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큰 영향을 미치는 언론 활동이다. 그러나 포털은 저작권이 해당 신문사에게 있음을 명시함으로서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한다. 이는 사회책임주의에서 말하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명백히 회피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의 포털 저널리즘에는 언론으로서의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공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대전제가 빠져있다.이러한 기본적 전제 이외에도 일부 인터넷 매체들의 기사 중에는 상식 이하의 기사들이 판치고 있다. 어떤 특정 언론사에서 오류를 보이는 기사를 검색한 결과 2006년 1월 1일∼31일까지 한달 간 무려 112건이 검색되었다. 기본적 사실관계 외에 사실오기도 적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연합뉴스의 오보 또는 오탈자 기사에 대한 비난가능성이 적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1시간 이내에 기사를 내보냈기 때문이다. 오보를 했어도 즉각 수정하는 것은 다매체 다채널로 상징되는 뉴미디어 시대의 기본이다. 문제는 포털사이트에서는 뉴스 기사의 경우에는 최초 기사와 고침 기사가 동시에 검색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수용자는 오보를 접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매체의 신뢰도 하락은 물론이고 명예훼손 내지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위험요소가 명백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터넷 매체의 신뢰도 하락은 다음의 조사에 있는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 뉴스가 ‘여과과정’ 거쳐서 대중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과장치들은 뉴스의 원료를 연속적으로 걸러내어 그들의 목적에 알맞게 이를 세탁한다. 또한 담론과 해석의 전제를 규정하고, 뉴스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며, 아울러 선전캠페인의 원칙과 역할도 설명한다.현재의 포털 저널리즘에서도 제한된 공간과 지면으로 인하여 게이트 키퍼로 작용하고 있는 포털이 독점력을 갖고 여론조작이 가능한 구조이다. 어떤 사건이 뉴스가 되느냐의 여부는 편집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과거의 언론들이 자체적 기준을 가진 게이트키퍼를 거쳐 기사를 생산했지만 포털은 자체 생산보다는 편집자로서 주된 게이트 키퍼 기능을 담당하는데 이러한 역할을 편향적 관점으로 남용하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이해찬 전 총리의 ‘황제 골프'와 이명박 전 시장의 '황제 테니스'로 장군 멍군식 공방을 벌인 사건이 그러한 예가 될 수 있다. 이해찬 총리가 재난 상황에서 골프 모임을 감행했다는 비판으로 인해 궁지에 몰려있는 상태에서 이명박 '황제 테니스' 논란이 터져나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뉴스 포털들은 '이명박 죽이기'에 나섰고, 이해찬 총리가 사임하자 '황제 골프' 논란과 관련된 모든 컨텐츠들을 슬그머니 메인에서 내려버렸다. 이는 포털이 특정 관점에 따라 편향적 편집권을 남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포털은 이와 같이 독점적 뉴스 편집권을 가지고 뉴스를 제공하나 이는 독점력을 갖고 있어 특정 의도에 따라 편향적으로 보도하여 여론을 조작 및 호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를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Ⅳ. 본론 3- 포털의 독점적기능화 해결책포털 저널리즘이 보여주는 하나의 특성이 장점과 단점이 혼재되어 있어 하나의 특성을 제거함으로서 단점을 제거하고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의 개혁은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일례로 포털저널리즘이 가지는 속보성은 독자들에게 정보를 빠르게 가져다주는 장점을 갖지만 이로 인해 선정성과 기
    사회과학| 2007.01.26| 16페이지| 1,000원| 조회(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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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raby
    ArabyJames joyceNorth Richmond가는 막다른 골목으로, Christian Brothers' 방과 후에 아이들을 돌려보내는 시간 이외에는 조용한 거리였다. 그 막다른 골목 끝에 사람이 살지 않는 이층집 한 채가 광장 마당에 있는 이웃집들로부터 떨어진 채 서 있었다. 이 거리의 다른 집들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점잖은 삶을 의식이나 하는 듯, 태연한 얼굴로 서로 마주보고 서 있었다.우리 집에 전에 세 들었던 사람은 신부였는데, 그는 뒤쪽 다용도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오랫동안 닫혀 있어서 곰팡이 냄새를 풍기는 공기가 방마다 어려 있었고, 부엌 뒤에 있는 창고에는 낡고 쓸모없는 휴지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이들 가운데서 나는 몇 권의 문고판 책들을 찾아냈는데, 책장들이 돌돌 말려 있었고 습기로 축축해져 있었다. 나는 마지막 책을 제일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책장이 노랗기 때문이었다. 집 뒤에 있는 가꾸지 않은 정원 한가운데에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포함하여 덤불숲이 몇 군데 흩어져 있었다. 나는 그 중의 어떤 덤불숲 밑에서 전에 세 들어 살던 사람이 쓰던 녹슨 자전거펌프를 찾아냈다. 그는 대단히 자선심이 강한 신부였다. 유서에 그의 전 재산을 자선 기광에 기증하고 그리고 집에서 쓰던 가구들은 그의 누이에게 모두 물려준다고 써놓았다.겨울해가 짧아지자, 저녁 식사를 먹기도 전에 땅거미가 졌다 우리가 거리에서 만났을 때, 집들은 벌써 어둠에 싸여 있었다. 머리위의 넓은 하늘은 끝없이 변해가는 보랏빛이었고, 그 하늘을 향해 가로등들이 희미한 불빛을 쳐들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살을 에는 듯했지만 우리는 몸이 달아오를 때까지 뛰어 놀았다. 우리들의 고함소리가 조용한 거리에 메아리쳤다. ‘우리가 놀고 다닌 길은 허름한 집에 사는 거친 패거리들에게서 곤욕을 치러야 하는, 집들 뒤쪽의 어두운 진흙탕 골목에서부터, 난로 잿구멍에서 악취가 올라오는 어둡고 질척거리는 정원들 뒷문까지, 그리고 마부가 말갈기를 쓰다듬고 빗질하거나 죔쇠 달린 마구를 흔들어 듣기부엌 창문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불빛이 그 근방 일대를 훤히 비추고 있었다. 아저씨가 길모퉁이를 돌아오는 것이 보이면, 그가 안전하게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때 까지 우리는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또는 Mangan의 누이가 문간에 나와 차를 마시라고 동생을 불러들일 때면, 우리는 그녀가 거리 위아래를 기웃거리는 것을 어둠 속에 숨어 살펴보았다. 우리는 그녀가 그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안으로 들어가는지를 보려고 기다리다가, 만일 그녀가 그대로 있으면 할 수 없이 어둠 속에서 나와 Mangan네 집 층계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반쯤 열린 문간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으로 몸매의 윤곽이 드러나 보였다. 그녀의 동생은 누나가 시키는 대로 하기 전에 언제나 그녀를 놀리곤 했고, 나는 그녀는 쳐다보며 난간 옆에 서 있었다.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옷이 한들거렸고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채가 좌우로 흔들렸다.매일 아침 나는 응접실 마루에 누워서 그녀의 집 문을 지켜보았다. 차일을 창틀로부터 1인치 정도 끌어내려 놓았기 때문에 나는 남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녀가 문간 층계로 나왔을 때, 나의 심장은 뛰었다. 현관으로 달려가서 책을 움켜쥐고 그녀 뒤를 따랐다. 나는 그녀의 갈색 몸에서 조금도 눈을 떼지 않고 있다가 길이 서로 갈라지는 지점까지 갔을 때, 발길을 재촉하여 그녀 곁을 지나쳤다. 이런 일이 매일 아침 일어났다. 우연히 몇 마디 말을 나눈 일 이외에는 결코 그녀에게 말을 건네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이름은 나의 온몸의 어리석은 피를 불러 일깨우는 소환장과 같았다.그녀의 영상은 로맨스와는 거리가 가장 먼 곳까지 나를 따라다녔다. 토요일 저녁마다 아주머니가 시장을 보러갈 때, 나는 짐 꾸러미들을 들어주기 위해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는 술주정꾼들과 물건을 흥정하는 여인들에게 떼밀리며, 일꾼들의 욕지거리, 돼지의 볼 살을 넣은 통 옆에서 지키고 서 있는 점원들이 되풀이하는 시끄러운 연도소리, O'Donovan Ross고통을 노래하는 민요를 부르는 거리의 가수들이 콧노래 소리와 시장의 갖가지 소음, 번지르르한 거리를 헤치며 걸어갔다. 나에게는 이러한 잡음들이 한데 모여서 생에 대한 안일한 감동으로 바뀌었다. 즉 나는 성배를 붙잡고 수많은 적의 무리 속을 뚫고 무사히 운반하고 있는 듯 상상했다. 이따금씩 그녀의 이름이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기도와 찬송이 순간순간 입술을 통해 튀어나왔다. 이따금 나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괴고(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때때로 나의 심장에서부터 홍수가 쏟아져 나와 가슴 속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앞일에 대해서 별로 생가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말을 걸어야 할 지 또는 말을 건다면 나의 혼란스런 연정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의 몸은 마치 하프와 같았고, 그녀의 말과 몸짓은 그 하프의 줄을 타는 손가락과 같았다.어느 날 저녁 나는 신부가 임종했던 뒤쪽 응접실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하고 비가 내리는 저녁이었으며, 집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깨진 창문으로부터 땅에 부딪치는 빗소리며 계속해서 내리는 바늘과 같은 가랑비로 함빡 젖은 화단 위에서 나는 듯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 아래쪽에서 등불인지 아니면 불을 켠 창문인지가 보였다. 나는 거의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이 고마웠다. 나의 모든 감각은 그 자체를 감추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듯 느껴졌고, 나 스스로 그 감각으로부터 빠져 나와야겠다는 느낌이 들자, 나는 손바닥이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두 손을 꽉 쥐며 “오, 사랑! 오, 사랑!”하고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마침내 그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녀가 첫 몇 마디 말을 내게 건넸을 때, 나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녀는 나에게 Araby에 갈 작정이냐고 물었다 나는 간다고 했는지 가지 않는다고 했는지 잊어버렸다. 참 멋진 장일 것이라며 그녀는 가고 싶다고 했다.“그런데 왜 못가지?” 나는 물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손목에 낀 팔찌를 뱅글뱅글 돌렸다. 그 주일 다른 두 남자 아이가 모자를 뺏기 싸움을 하고 있었고, 나는 난간에 혼자 있었다. 그녀는 내 쪽으로 머리를 숙인 채 난간의 기둥 하나를 붙잡고 있었다. 우리 집 문 맞은편에 있는 가로등 불빛이 그녀의 흰목덜미의 곡선을 지나 어깨위의 머리칼을 비추었고, 다시 그 빛은 난간위의 그녀의 손을 비추었다. 그 불빛은 그녀의 한쪽 옷자락을 비추었고, 그녀가 편안히 서 있을 때는 보일 듯 말 듯 속치마의 하얀 가장자리를 비추었다.“넌 참 좋겠다.”그녀가 말했다.“내가 가면 누나한테 뭘 사다 줄게요.” 나는 말했다.그날 저녁 이후로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생각들이 나의 의식과 무의식을 황폐하게 만들었던가! 나는 시장이 열리기까지의 지루한 나날을 한꺼번에 없애버리고 싶었다. 학업에도 짜증이 났다. 밤에는 침실에서, 낮에는 학교교실에서 그녀의 영상이 떠올라 내가 읽으려고 애쓰는 책장 사이에 나타났다. Araby라는 말의 음절이 나의 영혼이 즐기는 침묵을 통해서 내게 계속 들려왔고 나에게 일종의 동방적인 마법을 거는 것 같았다.나는 토요일 밤에 시장에 가게 허락해 달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이 말에 깜짝 놀라며 무슨 프리메이슨과 관련된 것이 아니기를 바랬다. 나는 교실에서 질문에 별반 대답도 잘 하지 못했다. 나는 선생님의 얼굴이 상냥한 표정에서 굳어져가는 것을 보았다. 선생님은 내가 게을러지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하고 염려했다. 나는 여러 가지 흩어진 생각들을 한 곳에 집중시킬 수가 없었다. 나는 인생의 심각한 일은 거의 견디어 낼 수가 없었다. 그것들은 나와 내 욕망을 가로막고 있었기에 나에게는 어린애 장난이나 보기 흉하고 단조로운 어린애 장난처럼 느껴졌다.토요일 아침, 나는 아저씨에게 오늘 저녁에 시장에 가고 싶다는 뜻을 상기시켰다. 그는 현관 서랍장에서 모자 솔을 찾느라고 부산을 떨고 있다가 내 말에 짧게 대답했다.“그래, 알아” 그가 현관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정면 응접실로 들어가서 창가에 드러누울 수가 없었다. 나는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을 느끼고 학교를 향해 천천 집에 들어갔을 때까지도 아저씨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시간이 일렀다. 나는 얼마동안 멍하니 시계를 쳐다보고 있다가, 그 짤깍하는 소리가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하자 방을 나와 버렸다. 층계를 올라 이층에 도달했다. 높고 춥고 텅 빈 우중충한 방이 나를 해방시켜주는 듯해서 나는 노래를 부르며 이방 저 방을 돌아다녔다. 앞쪽 창문으로 나는 아래쪽 길에서 놀고 있는 친구들을 보았다. 그들의 고함소리가 내게는 희미하고 어렴풋이 들려왔고 나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기댄 채 그녀가 사는 어두운 집을 건너다보았다. 나의 상상력이 그려낸, 가로등 목덜미의 곡선, 난간을 짚은 손, 그리고 속치마의 가장자리를 약간 드러낸 갈 색옷을 입은 그녀의 자태만을 마음속에 그리면서 나는 그곳에 한 시간 동안 서 있었던 것 같다.내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머서 부인이 난롯가에 앉아 있었다. 늙고 수다스런 이 부인은 전당포집 미망인 이였는데, 어떤 종교적 목적으로 헌 우표를 모으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차를 마시며 늘어놓는 수다를 참고 들어야만 했다. 저녁식사를 한 시간이상이나 늦추었는데도 여전히 아저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8시가 지나자 머서 부인은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밤공기가 건강에 좋지 않다며 밤늦게 나다니는 것을 싫어했다. 그녀가 가버리자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방안에서 이리저리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아주머니가 말했다.“너 오늘밤 장에 가는 것을 연기해야 할 것 같다.”9시가 되어서야 아저씨가 현관문을 여는 열쇠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저씨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었고, 옷걸이에 외투를 걸자 그 무게 때문에 그것이 마구 흔들리는 소리도 들었다. 나는 이러한 조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저씨가 한창 저녁을 드는 도중에 나는 장에 갈 돈을 달라고 했다. 그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사람들이 벌써 잠자리에 들어 한참 잤을 시간인데,” 그가 말했다.나는 웃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어요.
    인문/어학| 2007.01.26| 5페이지| 1,000원| 조회(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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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manm Melville과 Emily Dickinson의 비교
    Hermanm Melville과 Emily Dickinson의 비교-회의주의 관점에서-Final Essay?과 목 : 영미문학배경?교수님 :?제출일자:?이 름 :- Index -Ⅰ. 서론 ----------------------------------------------- 3Ⅱ. 본론1- 멜빌과 디킨슨의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회의주의1. 자연에 대한 작가의 인식 -------------------------------- 42. 신과 종교에 대한 인식 -------------------------------- 53. 사회계급에 대한 관심 -------------------------------- 74. 물질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 ------------------------------ 8Ⅲ. 본론 2 - 회의주의를 통한 작가의 문제의식 표현1. 회의를 통한 유미주의 --------------------------------- 102. 사회개혁의 지향점 표현-------------------------------- 113. 변증법(dialectic) 지양의 단계 --------------------------- 11Ⅳ. 결론 --------------------------------------------- 12* 참고문헌 -------------------------------------------- 13Ⅰ. 서론 - 의심하고 회의하는 작가로서의 허만 멜빌과 에밀리 디킨슨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초기 미국의 광활한 개척지는 각 개인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전례 없는 기회를 부여하였다. 미국의 건실한 개인주의적 청교도적 전통에 입각한 근면하고 창의성 있는 자신의 인간성을 바탕으로 하는 가능성이 미국인의 최대의 자산이었다. 그리고 농민적 개척시대에 있어서의 이러한 각 개인의 노력에 의한 성공은 곧 사회의 발전과 부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조화는 19세기 중반 들어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초기 미국의 청교도적 퓨리턴티즘)의 순수한 정신은 훼의 동시대 작가들과는 달리 자연을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이중적 존재로 인식하였다. 그들에게 자연은 아름다운 것이어서 이에 대해 감탄하면서도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순수한 파괴의 본성을 파악하고 있어 단순한 찬미의 노래로 그치지 않는 시각을 보인다.우선 멜빌의 작품 속에서의 배경은 주로 해양을 배경으로 한다. 이는 한때 선원 생활을 한 자신의 경험이 투영된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모비딕”, “베니토 세레노”, “빌리 버드” 등의 작품들에서 선원들이 주요등장인물이며 주된 활동의 배경이 바닷가 위의 선상으로 설정되어있다. 그러나 이들 작품에서의 자연은 지극한 아름다움으로 극한 선으로서의 자연이 아니고, 그 속에 인간의 조화되어서 이러한 자연적 감정을 공유하고 이를 개인적 감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그런 선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다. “모비딕”에서의 자연은 주인공들에게 끊임없이 시련을 주는 반동적 등장 요소로서 인간의 시련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자비한 존재로써 늘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베니토 세레노”에서는 배경적 요소로서 자연이 자주 등장하는데 초반부에 등장하는 자연에 대한 묘사는 “모든 것이 죽은 듯 고요했고 또 회색빛이었다”, “하늘은 회색망토 같았다”,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의...” “눈앞의 어둠은 이윽고 닥쳐올 더욱 더 깊은 어둠을 예시했다” 등의 음울하고 부정적인 이미지의 자연을 등장시킴으로서 자연에 대한 부정적 측면을 보여준다. 또한 “피아자”에서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요정의 나라로 여겨져 무지개 빛이 있는 그곳으로 향하게 되는 산길 여행은 그가 여행중에 겪는 자연에 의해 단조롭고 쓸쓸하며, 군데군데 어두운 전조들의 그에게 위험과 더 이상의 전진을 경고하여 나타나는 듯하며, 주인공은 잡목 덤불이 무성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가기도 하고 절벽사이로 난 위태로운 샛길을 오르기도 하는 등의 시련을 안겨다 주는 존재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디킨슨의 작품 속에서도 자연이 많이 등장하는 데 이는 그녀가 사회와 결별하고 자신의 정원과 2층 방에서 한가 선상 반란의 음모를 꾸몄다고 거짓으로 비어 함장에게 보고한다. 중립적 심판자인 함장은 두 당사자를 불러 대질시켜서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데, 뜻하지 않게 클래가트가 빌리의 주먹에 맞아 죽게 된다. 함장은 빌리의 무고함을 알고 있지만 군이라는 집단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 사건을 하극상으로 다루어 빌리를 교수형에 처한다. 작품 속에서 심판자인 비어 함장은 빌리의 본성을 잘 알고 하느님의 천사라고 표현하나 군대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서 목을 메달리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즉 순수한 청교도주의를 가진 인간이 그들의 삶이나 세상에서 항상 공정하지도 않고 선이 항상 악을 이기는 것도 아니고 이해할 수 없는 악의 힘에 의해 빌리같이 무구한 의인도 인간 사회의 유지라는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에 부당하게 희생된다는 것이다. 멜빌은 작품 속에서 이러한 인간의 필연적 비극성에 대해서 신은 절대자가 아닌 비어 함장과 같은 중립자이며, 오히려 순수성을 훼손시킨다는 측면에서는 부정적이지만, 빌리의 죽음의 순간을 부활한 예수의 모습으로 표현한다는 측면에서 죽음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자연인의 세계에서 신의 세계로 변신하여 희생하는 구세자의 모습으로 승화시켰다고 볼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적인 숭고한 정신이 남아있고 이를 추구해야 하는 종교적 정신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어 멜빌의 종교에 대한 양면적 의식과 이에 대한 회의를 통해 그의 종교관을 형성하였다고 여겨진다.디킨슨은 뉴잉글랜드의 철교도적인 배경에서 성장하였지만 청교도의 교리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시의 대부분은 종교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종교적이며 시의 기본 구상이나 틀은 청교도의 교리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녀는 죽음과 사후 세계에 대해 인정하였지만 청교도의 교리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였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녀는 현실 속에서 신의 침묵에 실망하며 신의 대답의 거부에서 느끼는 거리감으로 말미암아 신이 스스로 존재함으로써 신성 그 자체나 신의 세계에 대한 인멜빌은 높은 계급에서 지배하는 입장으로 흑백과 인종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면, 디킨슨은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인식하고 여성으로서의 현실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멜빌은 자유의 자유로운 신장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하고자하는 욕망을 가장 최우선 적인 가치로 여긴 것으로 보여 진다. 그러나 “베니토 세레노”의 소재가 되는 노예제도 및 신분 차별은 인간이 같은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지극히 비인간적인 행위이면서도, 19세기 중반까지도 백인들은 이제도를 무비판적으로 당연시하고 있었다. 초기 미국의 모든 인간은 신 앞에 동등하다는 고귀한 이념이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사회의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한 가치관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데서 발생한 비인간적 노예제도의 허구성에 대한 모순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멜빌은 작품 속에서 세 명의 주된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당대 미국인의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관의 화자로서의 딜라노 선장과, 노예제도의 모순 관계를 보여주는 전환적인 인물로서 스페인선장인 돈 베니토와 세네갈 출신의 흑인노예인 바보가 그들이다. 그들은 작품속에서 노예제도에 대한 멜빌의 비판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노예제의 근간인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특히 당시 남부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와 같은 가족 관계나 타고난 능력에 따른 당연한 위계질서 관계가 아니라 지배와 종속의 권력관계임을 드러낸데 있다고 하겠다. 흑인 노예 지도자 바보의 연출로 이루어진 산 도미니크호 선상의 연극은 주인과 노예의 역할이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바뀔 수 있는 것임을 환기하면서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 온 주종의 흑백관계의 당연함을 파기시킨 것이다. 돈 베니토에게 주인의 역할을 할당하고 그 역을 충실히 할 것을 조종함으로서 바보는 노예제를 정당화 해온 가부장적인 권위주의를 해체하고 노예 제도에 대한 허구성을 비추는 것이다. 또한 소설의 대부분에서의 화자인 딜라노 선장은 남부 노예제 옹호자들에 대한 분신으로서 철저한 편견 속에 사로잡혀 본질을 보지 못하는 인물로 등장시켜 사회에 대한 전 존재함을 인지하고 작품 속에 담아내는 것을 할 뿐이었다.멜빌과 디킨슨은 각자의 사회적 위치에서 느꼈던 당대사회의 신분의 문제에 대한 모순성을 자각하고 끊임없는 회의를 통한 허구성을 작품 속에서 드러내어 소외되고 있는 계층의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4. 물질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19세기 중반의 미국은 초기의 청빈한 청교도주의적 검소함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적 팽창의 분위기 속에 사로잡혀 있었다. 도시생활의 핵심인 물질문명은 신선한 활력으로 넘치던 개인주의적 전통 속에 세속적 성공을 위한 효용성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하는 속물근성을 깊이 뿌리내리게 하고 있었다. 사회적 성공과 금전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성적이고 비판적인 자아의 세계를 버리고 물질주의에 기초한 획일적 가치관의 노예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경향은 작품들 속에서도 드러나 순수한 예술성을 지향하는 작품들이 대중적으로 소외되는 반면에 대중의 기호에 영합한 통속적 로망스 소설들이 각광을 받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소외되는 작품을 창작한 멜빌과 디킨슨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당대 물질만능주의 세태를 비판한다.멜빌은 “바틀비” 속에서 편집적으로 자아의 세계만을 고집하며 사회의 배척을 받는 바틀비와 월 스트리트의 세속적 성공에 자만하는 변호사의 천박한 가치관을 대립시키면서 더 이상 한 인간의 개성 속에 조화롭게 공존할 수 없게 된 사적인 세계와 공적인 세계간의 치유될 수 없는 균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욱 더 절망적인 것은 그들 중 어느 한쪽도 진실된 삶의 길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틀비는 비타협적인 자아의 의지에 따라 예기된 죽음을 향해 미련없이 삶을 버렸고 점차로 소멸해 가는 자아의 소리를 듣지 못한 채 변호사는 반쪽 난 기형적인 이성의 횡포 속에 자신의 삶이 분열되어 가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러한 변호사의 특징은 소위 도금시대(gilded age)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미국인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물질만능, 조작만능다.
    인문/어학| 2006.12.25| 13페이지| 1,000원| 조회(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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