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성- 배수아 배수아의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라는 소설은 대체로 내가 읽기에 이해하기 난해하였다. 시간의 흐름이 주인공의 생각에 따라 흘렀기 때문에 분명하게 나뉘어 지지도 않았고 명확한 주제를 알 수 있지도 않았다. 문학 평론가인 우찬제는 배수아의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에서 파편화된 단독자로서 삶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인물들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며 배수아의 소설에 나오는 일련의 「아이들」은 이데올로기는 물론이거니와 인간과 세상의 파격적인 세대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리비도에 경제는 폭발적이다.「섹스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고등학교 이 학년의 남자아이와 애정 결핍으로 영원한 불치병에 걸린 여섯 살 여자아이가 손을 잡고 호텔방을」나서는 장면처럼, 그들의 행태는 본능이나 무의식적 욕망에 자기 제어 없이 알몸으로 노출된다. 따라서 그들의 사고나 행위는 전에 사용하던 어법으로 구성화 하거나 질서화 할 수 없다. 담론의 질서를 넘어서는 그들만의 현실의 혼돈을 어찌 질서정연하게 담을 수 있겠는가. 이 소설이 낯설게 튀는 것도 실은 그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카오스적 에너지 때문이다. 이미 말한 대로 그들에게 있어서 관계의 사고나 공감의 감각은 한갓 박물관의 유물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된다.'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의 주인공은 대학을 중퇴하고 가출하여 백화점의 점원으로 근무하는 20대 중반의 여성이다. 그녀는 '생은 내가 원하는 것처럼은 하나도 돼 주지를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집에서도 언제나 오빠의 존재에 가려져 뒷전이었고 성적도 좋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집을 나와 백화점 여점원으로 살아간다. 때때로 남자를 만나지만 누구에게서도 사랑을 찾지 못하는 쓸쓸한 삶이다. 그녀는 그녀의 말대로 너무 외로워서 상처를 입었다. 그녀의 실재는 애정 결핍인 여섯 살 난 여자아이였다.주인공은 자동차를 타고 가다 자신도 언젠가는 먼지투성이의 길가에서 푸른 사과를 파는 초라한 여인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녀에게 삶은 '나른한 생의 권태'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습을 만나기도 한다. 20대 중반의 백화점 여점원과 먼지투성이의 푸른 사과를 파는 늙은 여인 사이에는 뿌연 안개같은 생의 불안이 함께하고 있다. 즉, 인생은 사소한, 그러나 회피할 수 없는 불행으로 점철돼 있으며 그녀는 그런 불행에 선험적으로 익숙해 있다. '생은 변경될 수 없는 것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선험적 불행들은 어린 시절 부모의 불화가 주인공의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부부간의 애정이 없이도 가정이 이루어 지는 것을 보아온 주인공은 자신이 어떤 노력을 하여도 부모들의 관계가 나아짐이 없고, 그들의 사랑이 오빠에게만 쏟아지는 것을 보고 생은 노력해도 변경 될 수 없는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성은 부부간의 사랑이 없이도 이루어진다고 보고 성이 더 이상 가족의 성립과 유지를 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의 불화를 겪은 그녀가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은 대체로 평범한 젊은이의 전형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여주인공의 모습은 1990년대의 한국 사회에 새로이 등장한 신세대의 감수성과 의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그녀가 부모의 불화 말고도 사회적 환경 속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 할 수 있게 하는데 80년대의 청년들은 자신이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를 위해 투쟁하고 싸우며 살아왔다. 그러나, 현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말한 것처럼 '하얀 면 코트를 입은 채 젖은 밤거리에 서서, 길 건너편에 편의점 불빛을 바라보면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너무나도 멋있다' 같은 개인적인 것이다. 예전의 젊은이들과 달리 이들은 낡은 가족주의로부터 상당히 해방되어 있으며, 이데올로기적인 문제에 큰 관심이 없고, 이른바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일방적인 집착으로부터도 벗어나 있다. 그들은 세계화 혹은 국제화라는 개념이 일상적인 것으로 자리잡은 가운데 자연스럽게 합리적인 개인주의를 몸에 익힌 세대이다.아가고 미래에 대해 확실함도 없이 사는 이 시대의 젊은이 들이다. 이 글 속의 지문을 인용하여 살펴보자.'너에 대해 말해 줘.'그가 차의 시동을 걸면서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하고싶은 일들에 대해서.''나는 아침에 담배 피우는 것과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해. 그리고 비오는 것을 넒은 유리창을 통해서 내다 보는 것도 좋아하고.''그런 것 뿐이야?''응. 그런 것 뿐이야.''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다든가, 그런 건 있니?''아, 그런 것?'나는 러시아워가 시작되어 정체되고 있는 원효대교를 원망스럽게 바라본다.'앞으로의 일은 생각하지 않아. 너도 그렇잖아. 죽음밖에 생각나지 않아.''내 말을 듣고 있는 거니?'신오는 가볍게 내 팔을 건드렸다.'아, 뭐라고 했는데? 차들의 불빛이 너무 눈이 부셔서 몰랐어.'위의 지문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주인공은 타자에 대한 관심은 물론 자아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다. 더구나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획은 전무하다. 현재 시간을 유희적으로 소비하면 그뿐이다. 그들의 삶은 당연히 가볍고 건조하다. 그들은 서로 가볍게 만나고 가볍게 헤어진다. 그들에게는 죽음조차도 상대적으로 가벼운 느낌을 준다. 주인공은 뜬금없이 죽음으로 이끌리기도 한다. 리비도의 극점에 죽음의 전이는 아주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양상은 낡은 정치 경제적 이데올로기나 가부장적 가족주의, 제도 관리 사회의 억압 상, 시간적 인과율 등을 효율적으로 전복시키는 짜릿한 신세대적 수사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이 글에서 볼 수 있는 주인공의 건조하고 가벼운 삶은 구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진 것인지, 개인주의적인 인스턴트식의 소통 방식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알아보고 친밀감으로서 사랑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 생각해 보자.구시대의 삶을 지배했던 여러 가지 부정적인 힘들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는 점에서, 그들은 더 행복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일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 항상 불안하였다' 라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90년대의 우리 현실이 70∼80년대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여전히 출구 없는 미로요 불모의 공간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의 성 의식은 요즘 젊은이들이라면 그리 부정적이지 않게 받아 들일만 하다. 그들이 즐기는 일회적이고 건조한 성생활은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성생활은 우선 성감을 만족시키는 일면에서 생리적으로 필요한 것이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성적인 욕구는 윤리적, 사회적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또한 생리적으로 필요한 육체적, 정신적 욕구는 섹스를 통해서 만족시킬 수 있다. 그래서 혼자 하는 자위행위보다는 이성을 상대하는 편이 성적 정서발달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세대에서는 결혼을 약속하기 전에 섹스를 통해서 서로 어울리며 성적으로 만족 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살필 수도 있다는 점에서 혼전 성 관계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인스턴트식의 사랑은 책임감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란 것은 인스턴트식의 사랑과 친밀감으로서의 사랑이 차이를 보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부정적인 측면 중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인해 당사자를 불행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피해 여성 혼자만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낙태나 유아 유기등의 윤리적, 사회적 문제를 만들게 된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도덕적, 윤리적, 법률적인 규범을 건강한 지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어긴 것에 대한 죄의식을 갖게 되는 것도 또 하나의 부정적 측면이다. 또한 남성은 이미 성 관계를 가진 상대와 결혼을 바라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반면에 여성은 성 관계를 가진 상대가 자신과의 결혼을 원치 않을 까봐 고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적 인식과 서로 다른 남녀의 의식구조로 인해 섣부른 혼전 성 관계는 남녀 서로에우리는 고정 관념을 깨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에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것이 선이고 악인지 구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성이라는 것을 개인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을 위한 것일 수 있다. 결혼하기 전 동거라는 것을 통해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고 신중을 기하고자 한다는 것도 일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결혼을 했지만 다른 이성과의 관계도 "합의"로 면죄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이러한 현상들이 긍정적인 측면이 적은 것 같다. 마가렛 미드는 자신의 유명한 저서 "레드북(Redbook)의 1966년 7월 항목에서 미국인들은 형식적으로나마 또 하나의 자유로운 결혼 양식 , 즉 '2단계의 결혼'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드는 자녀의 출생에 대하여 당장은 아무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젊은 부부는, 처음에는 자녀의 출산도 고려되지 않고 평생동안의 상호 헌신도 적용되지 않으며 어떤 경제적 손실도 그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하나의 법적 구속인 '개별적 결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녀는 이들 부부가 자녀를 낳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은 장기간의 결속을 확인하고 그들이 이혼했을 때의 자녀들에 대한 규정 등을 정식으로 마련한 하나의 법적 부부관계인 '부모의 결혼 생활'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제안은 1960년대에 전위적인 생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이유는 미드가 제안한 1단계 결혼이 동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미드와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뒤집어 놓고 보면 더 나은 결혼생활을 위한 신중이지 결코 자신의 성적 해방을 위한 탈출구로 삼는 경향은 아직은 적은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앞으로 닥칠 정보화 사회에서 우리에게 혼란을 줄 부분인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에서 성에대한 기준을 제공해 주던 결혼이 일생에서 꼭 거쳐야하는 과정에서 빠지게 된다면 또한 그러한 사회적 상황에서 성에 대한 욕구를 해소해야 한다면 매춘이 필요악이었듯이 정보화사회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