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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잔하지만 어려운 사랑 이야기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을 보고 - (영화 감상문)
    잔잔하지만 어려운 사랑 이야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을 보고 -영화는 별 것 아닌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새벽마다 정체 불명의 유모차를 몰고 다니는 할머니에 대해, 시시껄렁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마작방의 손님들과 그것을 들어주는 츠네오. 그 유모차 안의 정체를 우연찮게 확인하게 되고, 그렇게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화 시작을 강렬하게 장식한 FWB부터 영화 내내 좋다고 따라다니는 여자친구(훗날 어마어마하게 유명해지는 노다메의 그분이 맞다), 조제까지 남자 주인공의 여복이 왠지 부럽지만, 영화 내 모든 등장인물을 압도할 정도로 잘생겼으니 이는 넘어가도록 하자.지금의 시각으로 봤을때는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 속의 갈등은 크게 표출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탁한다던가, 물건을 집어던진다던가, 따귀를 주고받거나. 이는 조제의 목소리가 놀랄 정도로 차분하기 때문에 더 크게 느껴진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의 감정선, 특히 두 주인공의 감정의 변화는 어떻게 두시간이라는 러닝타임에 담아냈는지 신기할 정도로 애절하다. 주인공 남자친구를 ‘필살기로’ 유혹하는 여학생에 대해 말하는 FWB, 손녀를 아끼지만 몸이 불편한 손녀가 현실을 마주했을 때 받을 상처가 두려운 조제의 할머니. 조제의 할머니나 조제의 어조는 영화 속에서 대부분 느릿느릿하고 변화가 없지만, 똑 같은 말 안에서는 고마움부터 미워하는 마음까지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욕이 아닌 말을 하는 법이 없지만 알고보면 애꿎은 자기 차만 발로 찰 정도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조제에 대한 마음이 복잡한 보육원 동기는 조제와는 정 반대에 서있는 캐릭터.그 중의 백미는 짧은 여행을 다룬 에피소드이다. 대사 한마디에 서로의 마음을 어느정도 눈치채고, 마음은 변했지만 짐짓 더 격렬한 애정 표현을 통해 이를 덮으려는 둘의 행동. 이별은 몇 달 뒤였지만, 네비게이션을 끄고 ‘바다로 가자’고 하는 순간 조제와 츠네오 모두 이별이 머지 않았음을 직감하지 않았을까.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영화 속 호랑이와 물고기는 대사를 통해 그 의미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지만 영화를 보면서 내 눈에 가장 크게 보인 것은 조제 집의 문이었다. 조제의 할머니가 츠네오에게 식사를 권하며 열어준 문은 그 둘의 마음과 같았다. 마음을 열어갈 때는 츠네오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지만, 바깥의 습격이나 츠네오의 실수로 조제의 마음이 닫힐 때는 절대 들어갈 수 없는 문. 결국 츠네오와 조제의 1년 남짓한 연애는, 츠네오가 조제의 이별 선물을 받고 문을 나서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두꺼운 철문도 아닌 얇은 문은, 조제의 바깥 세상에 대한 마음과 같다.영화 속 츠네오의 행동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츠네오는 언제나 진심을 다해 행동했고 조제에 대한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몸이 불편한 조제와의 사랑을 시작할 때, 조제의 마음이 더 다치기 쉽고, 닫히기 쉽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을 뿐. 제사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전화를 할 때 동생이 질문처럼, 츠네오도 지친 것이다.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보고싶다는, 그래서 영원히 보지 못할지도 모를 호랑이를 보았지만 아쉽게도 수족관이 휴관하는 바람에 조제는 자신의 처지와 같다는 물고기를 볼 수는 없었다. 항상 칼을 품고 다니고, 독한 말을 거침없이 하지만 ‘가란다고 진짜 가는 놈이면 빨리 가버리라고!’ 하며 오열하는 조제는, 어쩌면 츠네오에게 온전히 마음을 열었을 지도 모른다. 츠네오에게 의지하고 싶어서 휠체어도 마다하던 조제는, 결국 전동휠체어를 사면서 의지할 사람을 찾는 것을 단념한 것일 지도 모른다.이 영화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할머니가 주워온 몇 안되는 책의 내용을 외울 때까지 읽으며, ‘고양이와 꽃을 보기 위해’ 산책하고 싶다는 조제의 대사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내 삶에 미안해질 정도로 조제의 장애와, 그로 인한 마음의 문에 대한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심지어 조제의 장애만 빼고 본다면 여느 청춘 남녀의 러브스토리로도 손색이 없다. 1년 몇 개월의 뜨거웠다 천천히 식어가는 사랑은 우연스럽게도 ‘500일의 썸머’의 기간과도 비슷하다. 어쩌면 두 청춘남녀의 사랑이 불타오르고 식어가는 시기가 500일 전후이지 않을까. 여담으로, ‘심야식당’이나 ‘리틀포레스트’ 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요리 장면도 중간중간 들어가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20년이 다 되어 가는 영화이지만 지금 보아도 촌스럽지 않고 여러 장르로 바라봐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탄탄한 연출력은 감독이 새삼 대단해 보일 뿐.영화 속 주인공들은 나이를 먹어 이제 청춘이라 보기 어려운 불혹에 가까운 나이지만, 오늘 만난 츠네오와 조제는 사랑에 서툰 전형적인 청춘남녀이다. 장애가 있지만 항상 바깥을 바라보고, 결국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한 조제를 만나 잠시나마 뜨겁게 사랑했던 츠네오가, 어딘지 모르게 부러워지는 밤이다.
    독후감/창작| 2020.02.10| 2페이지| 1,000원| 조회(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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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독후감] 칼의 노래
    [독후감] 칼의 노래 평가B괜찮아요
    철갑 속에서 순결함을 엿보다1991년, 부모님께서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사주신 위인전에서 이순신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멋있는 투구를 쓰고 길고 멋있는 칼을 찬 용감한 장군으로 묘사된 표지부터,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라는 명언과 함께 한 죽음마저 장렬할 정도로 용맹으로 일관한 위인전 속의 이순신과, 지나가며 가끔 마주치는 광화문 앞에 키만한 칼을 찬 채 위엄 있는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이순신 동상은, 어린 나에게 여리고 나약한 내 모습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강인한 영웅의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하지만 위인전 표지나 광화문 앞 동상의 위엄이 넘치는 모습과는 달리, 종종 TV나 신문에서 접할 수 있었던 그의 영정은, 그간 가지고 있었던 내 이미지 속의 용맹한 무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낄 정도로 온화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지난 10여 년간, 위인전 속의 용맹한 이순신과 영정 속의 온화한 이순신은 나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고, 어느 쪽이 이순신의 참 모습인지 알 수 없었다. 2004년,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읽었다. 10여 년간 종잡을 수 없었던 이순신의 참모습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이 책에서의 이순신은 더 이상 연전연승의 영웅이 아니었다. 싸울때 마다 승리를 거두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니라 이길 수 있는 싸움만 싸워 이긴 것이었다. 철저한 사전준비 후 유리한 위치로 적은 유인한 후, 적을 섬멸시키는 그의 전법은 지금도 해전의 교과서적인 전술로 이용될 만큼 그에겐 천부적인 군사적 재능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바다를 건너오는 왜적 말고도 적이면서도 베어버릴 수 없는 적이 너무 많았다. 굶주림이 그러했고, 의주로 피난 간 임금의 끝을 모를 의심이, 하는 일 없이 거들먹거리기만 하는 명의 수군이 그러했다. 국문을 받아서, 적의 탄환에 맞아서 생긴, 고질이 되어버린 그의 통증이 그러했다. 그의 칼은, 그의 내면은 그러한 적을 맞을 때 마다 그에게 베어버리라고 말하였지만, 베어지지 않는 굶주림을 벨 수는 없었다. 굶주림에 쓰러져가는 병사들을 벨 수도 없었다. 베어서는 안돼는 임금을, 명의 장군을 벨 수도 없었다. 다만 공포에 떠는 호통의 미사여구로 가득 찬 임금의 교서에 자신감 넘치는 장계로 답을 하고, 명의 장군과 함께 먹은 술과 고기를 반쯤 삭힌 채 토해 내는 것이 그가 벨 수 없는 적들에게 할 수 있었던 유일한 헛칼질 이었다.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적은 바다건너의 왜군이 아닌 임금이었다. 모함에 의해 국문을 받고, 백의종군하게 된 이후로 이순신은 가장 큰 지원을 받아도 부족할 임금을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부리는 주인으로부터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신하는, 결국 적의 전체와 맞붙은 마지막 전투에서 그의 소원대로 자연사를 맞이했지만, 그 장면은 어쩐지 허전하고 씁쓸했다.벨 수 없는 적을 무수히 둔 그였지만, 그 적을 맞는 그의 자세는 결연하고, 진지했다. 백의종군 중 모친상을 당했을 때도, 사랑하던 여인의 시체를 적선에서 찾았을 때도, 고향을 지키던 아들의 부고를 맞이할 때도 그는 산처럼 무덤덤할 뿐이었다. 이름뿐인 삼도수군통제사를 맡아 칠천량 전투에서 전멸한 수군을 이끌게 되었을 때도, 그는 침착했다. 초인적인 능력으로, 최악의 조건에서 결국 승리를 이끌어 내었지만, 당연해 보이는 승리의 과정은, 그 승리를 이끌어 가는 이순신의 내면은 결코 무덤덤하지 않았다. 야음을 틈타 몰래 배를 띄워 지형을 정찰할 때, 적이 우글거리는 사지 속에서 그의 갑옷 안은 식은땀으로 가득했고, 아들의 부고를 접하고선 그는 꿈에 나온 아들 앞에서까지 담담해지려 애를 쓰지만 결국 돌아선 아들을 꿈속에서 부르고, 아무도 없는 소금창고에서 흐느껴 울었다. 폭풍 앞의 촛불과도 같은 조선수군의 운명을, 한줌 군사와 배로 지켜나가며 그는 끊임없이 왜군의 공격을 걱정하고, 조선 수군의 앞날을 고민했다. 그가 가진 한줌의 병력은 조선 수군의 전체였다. 그것으로 적의 전체를 상대하지 않으면, 조선의 앞날이 위태로웠다. 조선의 운명이 어깨에 걸린 상황에서, 내가 지금껏 알아왔던 영웅 이순신은 모든 적들을 초인적인 능력으로 손쉽게 제압해왔다. 하지만 소설 속의 그는, 그 막중한 책임을 버거워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 책임을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최선은 언제나 성공으로 이어졌다.보이는 적과 보이지 않는 적, 벨 수 있는 적과 벨 수 없는 적을 앞에 둔 소설 속 이순신은 언제나 고뇌한다. 고뇌하는 영웅의 모습은 나에게 영웅의 다른 모습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병사들 앞에서, 백성들 앞에서, 임금 아래에서 그는 갈등 하나 없는 탁월한 지도자요, 연전연승의 장수였지만, 장수의 의무를 벗어던진 아들로서, 아버지로서의 그는 더 이상 후세가 기억할 구국의 영웅이 아닌 여느 효자요,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일 뿐이었다. 이순신이 아들 면의 부고를 받고 죽음의 과정을 모두 들을 때 까지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지키다, 아무도 보지 않을 깊은 밤에 홀로 소금창고에서 흐느끼는 장면을 읽으며, 문득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2001년, 갑작스러운 화재사고로 작은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탓에 가족 모두는 혼비백산하여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고 허둥댔지만, 집안의 장남이셨던 아버지만이 그 아수라장 속에서 흔들림이 없는 듯 보이셨다. 밟아야 할 모든 절차를 혼자서 처리하다시피 하셨고, 모두가 눈물을 흘리고 곡하는 동안에 아버지께서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으셨다. 눈시울이 조금 붉어지시고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듯 했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이제 가족들의 슬픔이 한풀 사그라질 때, 마침내 아버지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친동생을 잃어놓고도, 책임 때문에 마음 놓고 울 수도 없었던 아버지께서는 그동안 애써 절제한 감정을 한꺼번에 터뜨리듯이, 서럽게 우셨다. 그렇게까지 아버지께서 목 놓아 우시는 것은, 그때 처음 보았고, 그 뒤로도 지금껏 한번도 볼 수 없었다. 내가 이제껏 본 처음이자 마지막 아버지의 눈물이었지만, 그 눈물은 아버지가 내게 막연한 만능 영웅이 아닌 나와의 동질성을 느낄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독후감/창작| 2004.06.24| 3페이지| 1,000원| 조회(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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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에 관한 글
    1년에 영화관 가는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고, 그나마 본 몇편의 영화의 내용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영화를 본다고 말하기란 약간 무리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몇 안되는 영화라도 재미있게 보고, 보고 싶은 영화라면 인터넷이나 비디오를 통해서라도 꼭 구해 보기 때문에, 나는 영화를 보고,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영화를 왜 보는가? 지금까지 영화를 아무 생각 없이 봐왔던 나에게,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란 쉽지 않았다. 내가 지금껏 영화를 왜 봤지? 하고 생각해 보니, 단지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서, 친구와의 친목 도모를 위해 영화를 봐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고싶은 영화보다는 남들이 많이 본 영화, 평론가들이 신문에서 좋다고 쓴 영화를 주로 보았고, 이마저도 혼자서는 가기를 꺼려 친구와 함께 보게 되었다. 영화를 왜 보는가? 라는 심오한 질문에 재밌으니까! 라는 어이없는 대답을 뒤로 한 채, 나는 오늘도 어디 재미있는 영화 없나 하며 신문을 보고, TV를 보며, 인터넷을 뒤진다.내가 영화를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때였다. 당시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던 을 보기 위해, 혼자서 동네 영화관을 찾았고, 지금 보면 엉성하기 그지없는 컴퓨터 그래픽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인공들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남몰래 눈물 흘렸다. 하지만 그 뒤로도 몇번이나 더 본 그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주인공들이 나온 장면이 아니라 침몰하는 배에서 현악단원들이 승객들의 안정을 위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이었다. 당시 영화관에서 그 장면이 나올 때 다른 관객들 사이에서는 웃음이 새어나왔지만, 난 죽음을 앞에 두고도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는 그 모습에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비디오로, 케이블 TV로, 우리말 녹음이 된 공중파 방송 등으로 몇번이나 더 본 그 영화에서 난 한 시점이 아닌 각기 다른 시선에서 그 영화를 보게 되었고, 시나리오를 외웠을 법도 하지만 각기 다른 시선으로 봐서인지 다시 볼 때마다 매번 새로운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 본 영화 은, 나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게 되었고, 무의식중에 한국영화는 헐리우드 영화보다 못하다 는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막견한 동경과 선입견 마저 가지게 되었다.국내 흥행 실적에서 을 꺾으면서 유명해진 , 어떤 사람들은 를 헐리우드에 맞설 한국 영화의 자존심이라 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지만, 나의 시선에서 본 는 남북관계라는 우리 민족의 특수성에 헐리우드식 액션을 어정쩡하게 가미한 작품에 지나지 않았다. 역시 2번 볼 기회가 있었지만, 이 볼때마다 다른 감동을 안겨 준 반면 는 처음 볼때에 비해 2번째는 꽤나 재미가 없었다.영화 관련 서적을 보며, 한국형 블록버스터 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로 시작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모방하여, 거액의 제작비와 방대한 스케일로 흥행의 승부수를 띄우는 영화를 일컫는 말인데, 거액의 제작비가 들어간 만큼 흥행의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고, 때문에 이전의 영화가 가지고 있던 예술성보다는 호쾌한 액션 등 관객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볼거리를 전진 배치하기 마련이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해 그 역사가 짧아서 인지는 몰라도, 소위 한국형 블록버스터 라고 자부하는 작품 중에는 영화 초반과 끝의 이야기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어, 아쉬움이 있다.나는 헐리우드에 적극적으로 맞설 수 있는 영화로 보다는 를 꼽고싶다. 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형식에 한국적 정서를 가미한 것이라면, 는 한국적 정서에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형식을 가미한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JSA라는 특수한 공간 속에서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대립하는 한민족끼리 벌어지는 갈등, 화해를 시도해 보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젊은이들이 스스로 택한 죽음의 이야기인 는 아무런 설명 없이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북한을 먹고사는 문제에서 해방하기 위해 공멸의 지름길인 전쟁을 택한다 는 돌이켜보면 어이없는 북한 공작원이 등장하는-반쯤은 007 영화에 가까운-보다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이해하기도 쉽다.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화려한 액션이 있는 영화보다는 잔잔하지만 스토리가 탄탄한 영화, 갈등구조가 확실한 영화보다는 보일 듯 말 듯 한 미묘한 갈등이 영화 후반부까지 지속되어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영화, 끝나고 나왔을 때 가슴에 퍼지는 감동이나 교훈, 아쉬울 듯 말 듯 한 여운이 있는 영화이다. 때문에 선 굵은 감독의 작품보다는 섬세한 감독의 작품, 잘생기고 예쁜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보다는 수수한 외모지만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연기하는 작품을 선호한다. 가장 감명깊게 본 영화 세편을 꼽으라면 난 주저없이 , , 그리고 을 꼽겠다.은 스토리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수준의 영화다.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 농촌에 도시출신의 유능한 형사가 투입되지만 결국 범인은 밝혀내지 못한다 정도로 영화 전체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할 수 있지만, 관객들은 상영시간 내내 긴장을 풀 수가 없다. 가끔 실소를 자아낼 정도로 웃긴 부분도 있지만, 3명의 용의자들을 수사하면서 실마리를 잡을 듯 말 듯 하다 결국 실패하는 장면, 확실히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장면은 지금껏 내가 보아온 영화 중 최고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5년 전만 해도 스크린 쿼터 수호를 위해 영화인들이 삭발운동까지 할 정도로 한국 영화는 헐리우드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멀티플렉스 극장의 확산과 대형 영화 배급사의 배급망 확충으로 다수의 상영관을 확보하기가 용이해지고, 대기업의 투자, 영화 펀드 조성등으로 풍족해진 자금이 제작비로 이용되어 평균 제작비가 오름으로써 전반적인 작품의 질이 상승함으로써 한국 영화는 점유율 50%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수치상의 선전이 한국영화의 질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점유율 50% 의 대기록은 절반정도는 외적인 요인이 기인한 것으로, 아직까지 한국영화가 나아가야 할 길은 멀다. 가장 큰 문제점은, 거대 자본을 앞세운 블록버스터에 밀려 소자본 영화가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소자본 영화가 멸종한 채 블록버스터만이 존재한다면, 한국영화의 다양성이 상실되어 관객의 취향 변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못할 것이다.지금에야 한국영화가 머니게임에 의한 블록버스터로 재미를 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한국 영화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맹목적인 헐리우드 방식의 추종보다는 우리만의 독창적인 방식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계승해야 할 모범적인 영화는 처럼 헐리우드 영화에 한국만의 특수한 요소를 가미한 것이 아닌 처럼 한국적인 정서에 기반한 영화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는 말처럼, 세계시장 확보를 위해서도 우리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또, 광고나 배급에서 거대자본에 밀릴 수밖에 없는 소자본 영화를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하여, 한 복합상영관 내에서 동일 영화를 2개 이상의 상영관에서 상영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복합 상영관 내 일정 수를 소자본 예술 영화에 할애하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인문/어학| 2004.06.24| 3페이지| 1,000원| 조회(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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