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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 환경오염피해사례
    Ⅰ. 서론서울 아이들은 얼굴이 하얗다 라는 말이 흔하게 쓰인다. 같은 하늘아래 같은 조국에서 살고 있는데 왜 유독 서울아이의 얼굴이 희다는 말이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있을까?비록 지금은 많이 오염되었지만 약 20여년전의 충주는 어느 개울에서나 수영하고 놀 정도로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었다. 여타 일명 시골 이라고 불리우는 도시들은 거의 충주와 같은 생활상을 보이고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서울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대기오염도시였고 심하게 쌓인 먼지들이 태양빛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아이들의 얼굴은 잘 타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모두다가 그런 것이 아니겠지만 서울에서 전학 오는 친구들의 모습은 거의 단정한 옷차림과 하얀 얼굴의 소유자였고 또한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서울아이들의 모습을 그와 같이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의 대표성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산업이 발전해서 경제가 윤택해지고 나아가 나라가 발전한다면 정말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무분별한 발전은 오히려 막심한 피해를 낳을 수 있다. 비록 대단한 피해는 아니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환경오염이 나에게 주었던 가혹한 피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Ⅱ1. 정신적 충격나는 태어날 때부터 충주에 살아온 충주 토박이 이다. 남들의 대부분의 타지 생활인 군복무와 대학생활 또한 여기 충주에서 하고 있으니 주위 친구들은 나를 충주 지킴이 라고 부르곤 한다. 충주는 다른 대도시에 비하면 시골이다. 어렸을 적 방학을 이용해서 외갓집(서울)에 1주일정도 다녀오곤 했었는데 시골에서만 자라다 보면 식견이 좁아질 것을 우려하셨던 부모님의 우려와 자녀들을 서울에 보내고 당신들만의 오붓한 시간을 위한 방법이 합쳐져서 낳은 최선책이었다(훗날 어머니께서 고백하셨음).어느 날 외갓집 근처의 슈퍼에 무엇인가를 사러갔는데 아줌마께서 물어보지도 않으시고 너, 시골에서 놀러왔구나∼ 라고 하셨다. 당시 나는 어린 마음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데 내가 그렇게 촌스러운가? 라고 생각하며 그 때부터 머리를 빗어 넘기는 등 멋을 내기 시작하였고 초등학교 5학년에 이르러서는 가르마를 타고 다닐 정도로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항상 최상위권을 맴돌던 나의 성적은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그때마다 아버지께서는 나를 두들기셨다.서울 아이와 너무나도 다른 외모, 서울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새카만 얼굴..... 눈치 빠르신 슈퍼아줌마의 한마디 말씀과 대기오염이 낳은 지역적 편차의 희생양이 된 것이 나의 첫 번째 피해사례이다.2. 나를 힘들게 했던 환경오염들충주 지킴이 는 군복무도 역시 충주에서 하였다. 대한의 남아로써 국토방위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동사무소 공익근무요원으로 충실히 복무하였던 나는 동장님 이하 여러 직원의 전천후 심부름꾼이었다. 맡은 바 임무를 하나씩 하나씩 충실히 수행해 나가면서 보람도 느끼며 기분 좋게 일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십수 건의 긴급한 임무들이 한꺼번에 내려지면 신경도 날카로워지고 사람이 좀 사납게 변하게 된다.어느 날 단월동 신촌마을 안의(나의 근무지는 단월 충렬사 길 건너편의 달천동사무소였음) 논에 학생들이 마구 버린 불법쓰레기 청소를 마치고 복귀(?)를 했는데 동장님께서 청사 꼭대기의 태극기, 충주시기, 그리고 새마을기가 너무 더러우니 교체할 것을 명하셨으며(상당한 위험과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함. 깃대에 줄이 없어 깃봉까지 기어서 올라가야 함) 김대중 대통령의 경찰학교 방문이 있으니 오늘은 충주대학교에서 달천 로터리까지 그리고 내일은 달천로터리에서 동사무소까지 걸어서 양옆의 도로의 불순물들을 제거하라는 특명까지 내리셨다. 왜 학생들은 논에다가 쓰레기를 버리고, 왜 교체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깃발들은 더러워지며, 왜 차안에서 쓰레기를 밖으로 버리는 것인가!!! 이러저러한 일이 많았던 나의 2년 4개월의 공익생활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3. 오! 나의 3만원!나의 여자친구는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한다. 나의 외모며 나의 행동 심지어 그녀 앞에서 거침없이 행하는 나의 내적 갈등의 외적 표현(방X) 까지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도 한가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어렸을 적부터 해오던 혼자 놀기의 진수인 코후X기 이다. 그녀를 만난지 어언 3년째가 되어가지만 늘 해오던 대로 실행하였고 말리다 못한 그녀는 급기야 현장적발시 3만원의 벌금 을 나에게 부과하였다. 25만원의 용돈을 받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벌금이기에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한동안 잘 참아냈지만 세살 버릇 여든까지 라는 대한민국 최고의 유명 속담대로 그녀 몰래 간간히 실행하게 되었다.2003년 5월의 햇살 좋은 어느 날, 과외교습소를 하는 그녀의 요구에 따라 교습소에 필요한 물건과 사무기기를 구입하기 위해 용산을 가게 되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친구들도 만나는 등 볼일을 다 본 후,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콧속의 신호를 느꼈고 이내 참을 수가 없었던 나는 휴게소에 들러 음료수를 사다달라고 했다. 물론 음료수에 대한 갈증은 전혀 없었고 다만 뚫힘의 갈증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내리자마자 나는 곧 작업(?)을 시작했고 이내 나의 갈증을 해소할 찰나에 갑자기 문이 열리며 지갑을 가지러 온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다행히 손을 넣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색한 분위기와 흠칫 놀라는 나의 모습에 그녀는 상황을 눈치챘고 벌금을 요구하였다. 나는 아니라고 계속 우겼고 그녀는 손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였다. 맙소사 손가락 끝이 이렇듯 새까맣게 변할 수 있을까? 서울시내의 오염된 공기들이 나의 3만원을 앗아가 버렸다.
    자연과학| 2003.07.03| 3페이지| 1,000원| 조회(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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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생활과 동물] 애완동물기른경험담
    Ⅰ. 서론나에게 있어 애완동물을 키웠던 기억은 십 수년을 거슬러 올라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이다. 그때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당시 우리 집에서 키우던 애완동물에 대해서는 다른 것들보다 많은 기억이 남아있다. 그 만큼 정이 많이 들었던 녀석이고 아직도 우리 가족들은 심심찮게 옛날을 회상하며 녀석을 떠올리곤 한다.개 팔자가 상팔자 라는 말이 있듯이 요즘 사람들이 많이 키우는 애완동물은 예쁘게 옷도 입고 샤워도 하며 특별한 간식까지 먹으며 산다. 녀석은 이런 동물들과는 사뭇 처지(?)는 달랐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나에게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그런 특별한 동물이었다.흘러간 가요를 듣다보면 당시의 느낌이 새삼 기억나듯이 요즘같이 따뜻한 봄날의 밝은 햇빛을 바라보면 녀석에 대한 잊고 있던 기억이 마치 오래된 사진을 보듯 잔잔히 밀려오곤 한다. 6∼7세 때부터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의 어린 기억 속에 각인 되어 지금까지 나아가 앞으로 평생을 기억하게 될 나의 친구이자 보디가드, 그리고 우리 가족의 웃음과 눈물을 지우게 했던 존재인 우리집 Dog- 노라 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Ⅱ.1. 노라아쉽게도 노라가 어떻게, 언제 우리 집에 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부모님의 말씀에 따르면 유난히도 개를 좋아하셨던 할머니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시장에서 파는 일명 진돗개와 다른 종의 잡종 (시장에서 개를 파는 분들은 모든 강아지를 이렇게 말하신다)을 구입하셨다고 한다.1980년대 중반, 그 때의 개 이름 노라 는 멍멍이, 얼룩이, 바둑이 등에 비해 상당히 세련된 타입의 이름이었다. 옆집에서 녀석의 이름이 괜찮아 보였는지 그 집 개 이름을 보라 라고 지었을 정도니까... 그 이름은 할머니께서 지으셨는데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잔뜩 긴장을 해서 그런지 매일같이 마당에만 누워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께서 얘, 너 그렇게 있지만 말고 좀 놀아라! 뛰어 다니면서 놀아! 라고 하시던 것이 놀아→노라 가 되었다는 것이다.그 이름은 그렇게 지어졌지만 멋모르고 따라 불린 옆집 개 보라 는 도대체 무엇을 자꾸 보라 고 하는 건지 궁금했을 것이다.2. 진돗개의 피노라의 외모는 얼굴은 크고 다리는 정말 짧은 것이 좀 웃겼다. 어린 우리 삼남매의 눈에도 무엇인가 균형이 맞지 않다는 것이 보였을 정도로... 우리가 똥개 라고 놀릴 때마다 할머니께서는 꼬리가 저렇게 말린 것은 진돗개의 자식이라서 그렇다고 개장수 아저씨께서 하신 말씀을 찰떡같이 믿고 계셨다.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진돗개와는 다르지만 그 때는 우리도 동네 아이들에게 노라네 아빠는 진돗개야. 꼬리가 진돗개 꼬리잖아 라고 말하곤 했다. 더군다나 집의 대문을 열어놔도 저 혼자 나갔다가 해가 지기 전에는 항상 집에 들어는 것하고, 아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짖지 않으며, 먹을 것을 던져주면 뛰어올라서 받아먹는 등 녀석의 행동으로 당시 멍청함의 대명사였던 똥개 는 아니다라고 우리 삼남매는 굳세게 믿었었다.그렇지만 다른 집 똥개 도 그 정도의 행동은 다 했었을 것이다.3.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노라녀석은 내가 집에 들어오기 전에는 항상 대문에 매달려 나를 반기곤 했다. 몇 년만에 만나는 사람처럼 그렇게 반갑게 마중했는데 문이 열려 들어가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장서서 들어갔었다. 그때는 그게 약올라서 녀석을 많이 때리기도 했다.지금 생각하면 그 녀석은 나를 무서워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나를 반긴 것이 아니라 대문의 쇠창살을 믿고 나한테 덤빈 것은 아니었을까한다. 특히 한번 안아보려고 할 때는 몇 년만에 만난 원수처럼 도망갔다. 어머니께서는 더러우니까 안지 말라고 하셨지만 녀석이 나한테 안겨야 말이지.....4. 내 마음의 사진(1) - 아름다운 날노라는 유난히 물을 싫어했다. 마당의 수돗가에서 고무다라에 물 받는 소리만 들려도 제 집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를 목욕시키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요즘 같이 햇빛이 좋은 봄의 어느 날, 할머니께서 목욕을 시키시려고 강제로 물 속에 집어 넣으셨는데 그 속에서 몸부림치던 노라, 내리쬐는 햇살, 사방으로 튀던 봄 햇살 가득한 영롱한 물방울, 물을 뒤집어쓰신 할머니.... 그 장면이 마치 사진처럼 생생히 기억이 난다. 그 때의 나른한 오후의 느낌은 요즘의 날씨와 너무나도 비슷하기에 그 사진을 마음속에서 자주 꺼내보게 되고 그 사진은 노라에 대한 나의 가장 확실한 기억 중의 하나이다.5. 나의 보디가드우리 동네의 또래 남자아이들 중에서는 내가 가장 어렸다. 나와 세 살 차이가 나는 우리형은 동네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었지만 나와 이웃의 형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을 때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동네 형들에게 당할 때(?) 오히려 내 옆에서 나를 도와주는 것은 노라였다. 나 때문에 많이도 맞았지만 그들을 향해 계속 짖고 또 짖었다. 그러면 내가 기분이 좋아서 과자 등 먹을 것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노라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짖으면 먹을 것이 생긴다 라는 조건반사였던 것 같다. 그럴 때만 나한테 친한 척을 했으므로...6. 아침운동노라에게는 언제부터인가 아침마다 마당을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버릇이 생겼다. 가다가 벽에 다다르게 되면 재빨리 돌아서 다시 달리고... 그렇게 몇 번을 뛰고 나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나와 형은 그 광경을 보는 것을 항상 신기하면서도 재밌게 바라보았는데 그 짧은 다리가 어찌나 빨리 움직이는지 정말이지 대단했었다. 아버지께서는 아침에 운동을 하면 밥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고 하시면서 노라를 본받으라고 하셨고 그 후로 형과 나는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시작하였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매일 아침 오락실에 가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하게 되었다.7. 노라의 자식들나의 기억으로 노라는 우리 집에 있는 동안 두 번에 걸쳐 총 10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한번에 다섯 마리씩 낳았는데 그렇게 숭풍숭풍 낳는 것이 당시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아이를 낳아도 대부분이 한 명이고 많아야 두 명(쌍둥이)인 사실만을 알아왔던 나에게는 녀석이 신기해 보이기도 하고 대단해 보이기도 했었다. 처음 다섯 마리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는데 아마 누구에게 주었던지, 아님 팔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할 만한 새끼들은 두 번 째의 다섯 마리 중 세 마리였다. 우리 삼남매의 간곡한(?) 부탁으로 세 마리의 새끼들은 집에 남게 되었던 것이다. 형과 동생이 갈색의 강아지를 그리고 나는 검은색 강아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름은 삐꾸 였는데 그때는 왜 그런 이름으로 불렸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들 갈색강아지였는데 삐꾸 혼자만 새카만 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삐꾸 역시 할머니께서 이름을 지으셨는데 이름이 그래서 그런지 하는 행동도 자식들 중에서 가장 꺼벙했으며 먹을 것은 엄청나게 밝혔던 기억이 난다. 그 때를 생각하면 궁금한 것이 있다. 과연 이 녀석들의 아버지는 누구였을까? 설마 옆집 보라 는 아니겠지?8. 불효자식어느 날인가 동생의 강아지가 몹시 아프더니 곧 세상을 떠나게 된 일이 있었다. 그 때 동생의 슬픔은 물론이고 나와 형까지 한참을 울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슬퍼했던 것은 노라 였다. 새끼를 낳은 후에는 아침운동도 하지 않고 자식들을 돌보며 생활하던 노라는 며칠이나 제 집에 틀어박혀 슬퍼했다. 평소 노라에 대한 별 감정이 없으셨던 어머니께서도 제 자식이 어디로 가는지 아나보다. 딴 집으로 갈 때는 아무렇지도 않더니 저 세상으로 가니까 저렇게 슬퍼한다 며 속상해하셨다. 그 때의 기억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노라의 힘없는 모습 두 번째 중 첫 번째였다.
    자연과학| 2003.07.03| 5페이지| 1,000원| 조회(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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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야생초편지를 읽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존재의 이유가 다 있다고 위에서 언급하였다.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 볼 때,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은 조물주가 태초에 해당 생명을 창조하실 때 그 이유가 있어서 창조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사람들은 자신들의 얄팍한 지식과 정보에 근거해 존귀한 생명체를 놓고 짓고 까불고 한다.
    독후감/창작| 2003.05.22| 2페이지| 1,000원| 조회(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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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자와 노자] 공자와 노자
    Ⅰ. 서론 중국 역사상 사상의 꽃이 가장 찬란하게 피었던 때가 바로 춘추 전국 시대(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를 아울러 일컫는 용어)였다. 이 시기에 제자 백가라 일컬어지는 수많은 사상가들이 등장해, 저마다 사회와 인간에 대해 나름대로의 탁월한 견해들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상가는 춘추 시대에서 전국 시대로 넘어가던 혼란기를 살았던 공자와 노자였다. 이 두 사상가는 약육강식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는 혼란을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그러한 혼란을 극복할 대안을 나름대로 제시하려 노력했다. 우선 공자는 그 시대의 혼란을 직접 막아서면서, 주로 주나라의 예법을 되살리는 방법을 통해 혼란을 극복하고자 했다. 반면에 노자는 그 같은 세상의 혼란에 비켜서서, 자연의 법칙에 따라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는 방법을 통해 혼란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인문/어학| 2003.05.22| 3페이지| 1,500원| 조회(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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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 국악감상회를 다녀와서...
    요즘 여기저기에서 여러 가지 음악을 자주 접하게 된다. 가요와 팝송, 랩 등 많은 음악들이 우리들의 정서, 심금을 대변하며 울리고 있으며 또한 우리 생활과 너무나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은 우리의 음악인 국악에 좀 소홀한 편인데 국악이 졸리고 따분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홍수와 같이 밀려드는 미디어의 물결 속에서 국악이 제자리를 못찾고 있는 것 같다. 국악은 들으면 정말 좋다. 하지만 실제로 듣는 것이 녹음된 것보다 좋고 또한 실제로 연주를 해보면 실제로 듣는 것보다 더욱 좋고 흥이 난다.국악이 대중매체에서 점차 찾아보기 힘든 것이 국악에 대한 이해 부족과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우리들의 얼과 혼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지난 번 수업시간에 들었던 김덕수 사물놀이와 랩이 혼합된 음악은 국악의 새로운 활로를 찾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우리 나라에도 정말 좋은 악기, 훌륭한 악기가 있고 또한 그것을 양악과 함께 연주했을 때 어우러지는 조화는 우리 국악이 결코 서양의 음악에 비해 졸리거나 따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고 앞으로 우리 국악의 장점을 더욱 키워나간다면 국악의 부흥 또한 자연스럽게 이어지리라고 생각한다
    예체능| 2003.05.22| 3페이지| 1,000원| 조회(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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