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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족상속법]생활(드라마,영화,소설,속담 등)속에서 친족상속법과 관련된 논점 찾아 해결하기
    드라마 영화 책 등에서 친족상속법과 관련된 논점 찾아보기1. 형부와 처제간의 결혼 - 드라마 ‘ 눈사람 ’- 아내가 죽으면 남편은 죽은 아내의 동생, 즉 처제와 결혼할 수 있는가?민법 제809조 제2항에는 "남계혈족의 배우자, 부(夫)의 혈족 및 기타 8촌 이내의 인척이거나 이러한 인척이었던 자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의 인척이란 (1)혈족의 배우자(형제의 처, 고모의 부(夫), 자매의 부(夫), 질의 처, 질녀의 부(夫) 등),(2)배우자의 혈족(배우자측의 부모?조부모?형제자매?형제자매의 자?백숙부?종형제?고모?고모의 자 등), (3)배우자의 혈족의 배우자(배우자의 백숙부?형제의 처, 배우자의 고모?이모?자매의 부 등)를 말한다.민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학자들 간에 형부와 처제의 결혼에 대하여 학설이 대립되어 있었으나, 1991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개정 민법 제769조와 제777조 제2호에서 친족의 범위에 들어가는 인척의 범위를 4촌이내의 인척으로 규정하였고, 형부와 처제를 인척 2촌으로 명확히 하였으므로(민법 제771조), 이제는 논란의 여지없이 형부와 처제사이에서는 혼인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형부와 처제가 혼인하였다 할지라도 민법 제815조 제2호가 규정하고 있는 8촌이내 방계혈족 및 그 배우자인 친족관계가 있었던 때에 해당되어 무효인 혼인이다2. 어머니의 친권 인정 - 드라마 아름다운 유혹에서..(1) 드라마 내용 : 아내를 외도로 오해하여 그 이유로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은 아내로부터 독점적으로 자녀를 양육하려고 할 뿐 아니라, 아내에게 자녀 솔이를 절대 보여줄 수 없다고 하며 만나지도 못하게 한다. 아내는 그런 태도에 항변한번 못하고 마음아파 하는 상황이 나오는데, 아내의 입장에서 권리를 행사할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2) 해결 : 친권이란 미성년 자녀를 보호, 교양하고, 살 곳을 정하며, 교육을 시키고, 자녀의 재산을 관리하는 등 자녀에 대한 법적인 권리이자 의무이다. 양육권은 단지 자녀와 함께 살고 키울 수 있는 권리로서 친권과는 다르다. 종전의 가족법에서는 아버지만이 친권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개정가족법에서는 혼인 중이나 이혼할 때 부모가 공동으로 친권을 행사하되, 부모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가정법원에서 친권자를 정하도록 하였다. 또한 개정가족법에서는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쪽이 자녀를 만날 수 있는 면접교섭권이 신설되었다. 그러나 자녀양육과 교육상의 지장이 있을 때는 당사자의 청구에 의해 이 권리를 제한, 배제할 수 있다. 서자의 친권문제는 아버지와 생모가 협의해서 정하고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가정법원에서 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자녀양육과 교육상의 지장이 없음이 자명한 상황임으로 아내는 면접교섭권을 청구하여 자녀를 볼수 있다.3. 사위는 백년 손님 - 딸만 있는 집에서 사위가 호주승계가 가능한가?(1) 문제제기 :사위는 백년손님 사위는 백년 손님"이라고 한다. 어렵다는 의미와 대접을 잘 해야하는 존재라는 의미둘다 내포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속담의 의미를 가족법상으로 풀어보면 딸만 있는 집에 사위는 호주승계를 할 수 없기 때문인 듯 하기도 하다.(2) 해결 : 호주 승계 순위는 아들 (손자) -> 결혼 안 한 딸 (손녀) -> 부인 -> 어머니 (할머니) -> (손자)며느리 순이다. 딸만 있는 집이라면 결혼 안 한 딸이 호주승계할 수는 있다.며느리는 호주승계할 수 있는데 결혼한 딸이나 사위는 호주승계를 할수 없다.- 호주승계가 발생하는것은민법 제980조 호주승계개시의 원인에 의해1.호주가 사망하거나 국적을 상실한 때2.양자인 호주가 입양의 무효 또는 취소로 인하여 이적된 때3.여호주가 친가에 복적하거나 혼인으로 인하여 타가에 인적한 때에 해당된다.4. 드라마 애정의 조건 -(1) 문제제기 :은파가 결혼 전에 사귀던 사람과 동거했고 임신까지 했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결혼했고, 남편이 그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남편은 이를 이혼사유로 삼을 수 있을것인가?(2) 해결 : 이혼사유를 적어보면...①배우자의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②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③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④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⑤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⑥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가정법원에서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 애정의 조건에 이걸 맞추어 보면 은파의 입장에서 보면 3번과 6번이 해당되고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1번과 6번을 생각해 볼수 있지만,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는 결혼전 과거이므로 부정한 행위로 단정짓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고, 배우자를 속인 행위가 이혼사유가 된다고 본다. 과거 사실을 숨김으로 인해서 배우자가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되어 더 이상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라면 충분히 이혼사유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애정의 조건의 상황은 충분히 재판이혼이 가능하다.
    법학| 2006.06.10| 2페이지| 1,000원| 조회(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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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이용악의 시<오랑캐꽃>에 대한 분석
    오랑캐꽃-이용악 [李庸岳, 1914.11.23~1971]Ⅰ 시의 전체적인 분석원래 오랑캐꽃은 북방 오랑캐의 혈통이나 관습과는 관계없는 야생의 꽃(우리 나라에서는 이를 장수꽃 또는 제비꽃이라고 한다)이다. 오랑캐꽃이라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 오랑캐꽃은 서문에서 나와있듯이단지 오랑캐의 뒷머리 모습가 닮아서 오랑캐꽃이라고 불렀다 . 이시에서의 오랑캐꽃은 이름처럼 적대시되는 존재만은 아니다. 오히려 3연의 [목놓아 울어나 보렴]이라는 구절에서는 오랑캐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면서도 '오랑캐꽃'이라 불리게 된 데 화자는 극도로 슬픔을 느끼고 오랑캐꽃의 설움을 위로하고 있다 '오랑캐꽃'이라는 잘못된 명명이 일종의 억울함이라면, 화자의 슬픔은 이러한 억울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일제에 의해 오랑캐라고 천대받던 유이민 들이자, 더 나아가 전 조선 민중의 억울함과 비통함을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1연에서는 오랑캐꽃과 오랑캐를 동일선상에 놓고 그 의미를 역사적으로 조명했다 . 오랑캐는 여진족이고 고려와 싸우고 패주해 간 역사적 사실이 드러난다. 에서 알 수 있다. 윤관의 여진정벌로 대부분 여진족은 죽고 남은 이들은 머리를 깎인 종으로 천민집단에서 살아갔다. 1행에서 4행은 오랑캐가 쫓겨가는 상황을 말하고 있다. 쫓겨간 이후 5행과 6행은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알려준다. 로 보아 아주 긴 세월이다. 로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잘 말해준다. 화자는 분명 오랑캐꽃을 시적 청자로 하여 말을 한다. 이는 3연에서 확연히 드러나는데, 이 그것이다. 또 이부분은 오랑캐들이 사용하던 물건을 통해 오랑캐꽃과 오랑캐와 관련이 없음을 인식시켜주고 에서 오랑캐꽃에 대한 연민을 보여준다결국 화자는 처음에는 오랑캐와 오랑캐꽃을 동일 선상에 놓고 그 의미를 역사적으로 조명하였지만, 얼마 안가서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먼 옛날 고려 즉, 우리 민족에 의하여 쫓겨간 오랑캐(여진족)의 모습이 오늘에 와서 상황이 반전된 우리 민족의 모습과 묘하게 대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일제의 혹독한 압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정든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유랑민들의 비극적인 삶을 보여 준 시라고 할수 있다.* 도래샘 :빙 돌아서 흐르는 샘물. 도래 는 도랑의 함경도 방언Ⅱ 요약 정리.성격-낭만적, 민족적, 독백적.표현1이 시는 재래의 서정적 감정 처리 방식과 서사적인 표현 방식을 동시에 표용하고 있다.2이 시인은 오랑캐꽃을 마치 가깝게 다가가서 이야기하듯 의인화하여 표현했다.3간접 화법의 종결 어미 '갔단다'와 영탄적 종결 어미 '흘러갔나'로 시간의 경과를 나타낸다.4유사 어휘를 반복 사용하였다..제재-오랑캐꽃.주제-유이민들의 비극적인 삶과 비애. 숙명적인 슬픔의 한(恨).출전-(1947), (1940.10)Ⅲ 이용악의 생애이용악은 1914년 11월 23일 함북 경성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과 유랑, 가족의 해체와 같은 비극적 체험이 도드라지는 그의 시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는 가난에도 불구하고 경성보통하고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1934년 도일, 니혼(日本)대학 예술과를 잠시 다녔으며 죠오지(上智)대학 신문학과를 졸업했다. 이 기간 중 신인문학 1935년 3월호에 시「패배자의 무덤」을 발표하며 등단했다.잘 알려진 대로 그의 첫 시집 「분수령」과 제2시집 「낡은 집」(1938)은 모두 동경에서 간행되었다. 아용악을 두고 최재서는 "생활을 생활대로 생활에서 우러나는 말로 노래한다는 의미에 있어서의 인생파 시인"이라고 평했는데, 이런 시적 진실성이야말로 1930년대 후반 그가 서정주,오장환과 더불어 조선시를 걸머질 '시삼재(詩三才)'로 불리게 된 근본 이유였다.1939년 귀국한 후 최재서가 주관하던 "인문평론"의 편집기자로 근무하는 한편, 1940년 무렵에는 모종의 정치 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하기도 한다.일제의 폭압적 식민 지배가 극에 달해 가던 때인 1942년 고향 경성으로귀향했던 그는 해방이 되자마자 상경,'조선문학가동맹'의 맹원으로, "중앙신문"의 기자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그와중에서도 제3시집 『오랑캐꽃』(1947)과 제4시집 『이용악집』(1949)을 내는 등 왕성한 시작 활동을 수행한다. 1949년 모종의 정치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갇히게 된다.그러나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의 서울 점령과 함께 출옥, 1951년 3월부터 1952년 7월까지 '조선문학가동맹'시분과위원장 일을 보면서 한국전쟁기를 보낸다. 한국전쟁후 벌어진 남로당계 문인 숙청에서 살아 남은 그는, 1956년 11월부터 '조선작가동맹출판사'의 단행본 부주필을 역임하는 한편,『조선문학』1956년 9월호에 발표한「평남관개시초』로 1956년 조선인민군창건 5주년 기념 문학예술상 시부문 1등상을 받는다.Ⅳ 느낀점요즈음 독도문제로 나라 안이 시끄럽다. 당연히 우리땅이지 하는 생각은 하고 있으면서도 그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심을 가져본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우리나라, 나의 민족에 관한 자부심은 비단 올림픽이나 축구 경기를 통해서만 가끔씩 발견하게 되는 마음 그 이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시를 통해 한민족이라는 것에 대한 자각,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흥미와 관심, 조상들이 겪어야만 했던 삶의 한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억울하게 명명된 오랑캐꽃의 아픔과 비극적인 이미지를 통해 일제강점기시대의 유이민들의 뼈아픈 삶에 대해 다시한번 마음속 깊은곳으로 느끼고 공감할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데에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싶다.{{{{{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에 대해 극도의 비애감을 느끼고 있다. 즉, 오랑캐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면서도 '오랑캐꽃'이라 불리게 된 데 대해 화자는 극도의 슬픔을 느끼고 있다. 그러한 감정은 마침내 '울어 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이라는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 화자의 감정은 폭발되고 만다. '오랑캐꽃'이라는 잘못된 명명이 일종의 억울함이라면, 화자의 슬픔은 이러한 억울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일제에 의해 오랑캐라고 천대받던 유이민들이자, 더 나아가 전 조선 민중의 억울함과 비통함을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05.03.22| 3페이지| 1,000원| 조회(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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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피의 결혼 감상문
    < 무대예술 레포트 > 목요일 1시수업날짜 : 2004년 12월장소 : 동숭아트 센터누구와 : 무대예술의 이해 수업을 같이듣는 친구와기본줄거리 : 옛 애인과 도망친 신부를 신랑이 쫓아가고 두 남자가 격투 끝에 둘 다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아들을 잃은 어머니, 정부와 신랑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신부, 남편을 빼앗긴 아내의 슬픔이 교직 되는 비극이다.1. 극의 전체적인 감상오구와 같은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작품이라 같은 감흥이 주가 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전제 하에 피의 결혼이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다. 오구 에서 나오는 죽음에 대한 시선, 피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죽음의 이미지가 상징하는 바는 구체적으로 다르겠지만 같은 죽음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관람을 하고 난 후 나의 느낌은 이 두 작품은 나의 상상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의 분위기는 죽음을 밝은 분위기와 풀어간 오구와 다르게 전체적으로 무거웠다. 중간에 무거운 분위기를 상쇄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첨가되어있는 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극의 대부분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어투가 아니라 함축적인 대사들이 많아서 인물들의 대사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만 상황을 통해, 어머니의 아들이 죽었고 그 이유는 새 신부가 정부와 함께 도망갔기 때문이고 그 사실 때문에 인물들은 고통스러워하고 절규하는구나 하는 대략의 스토리말고는 대부분 은유로 되어 있는 대사를 다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어떠한 관점으로 어떠한 태도로 연극을 관람하여야 하는지 몰라서 처음부분에는 많이 헤맬 수밖에 없었다. 죽음으로 모든 인물들의 인생의 방향이 바뀌고, 주요 테마가 죽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감정상태와 상황의 전개라 분위기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보다 난해하게 느낀 실질적인 이유는 극속의 등장인물같은 애증과 고통의 실제적인 경험과 그에따른 깊은 고뇌를 해본적이 없었던 데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작품을 감상하더라도 나의 경험과 맞닿아있으면 그 속에서 느끼는 공감과 카타르시스는 클 수밖에 없는 반면 결혼할 남자가 있으면서도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의 입장도, 자신의 여자를 뺏기고 죽음을 무릅쓰고도 쫓아가고 싶은 남자의 심리 등 죽음과 맞닿아있는 인간의 감정을 어렴풋이라도 경험해보지 못한 내가 인물속의 감정을 제대로 전부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하지만 사랑과 증오 복수의 감정이 연극이라는 장르 안에서 극한의 모습을 보여준것일 뿐, 광기 어린 배우의 표정과 감정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어도 배우들이 궁극적으로 말하려고 한 감정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기에 어느정도의 공감은 이끌어낼수 있었다. 쫓고쫓기는 부분에서 느끼는 급박한 긴장감과, 사랑하는 사람과 남편을 둘다 하늘로 보낸 여인의 한, 집안을 이끌어나갈 유일한 아들의 죽음 때문에 마음아파하지만 운명적 삶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어머니의 모습은 일상에서 흔한 감정은 아니지만 마음의 동조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평소에 느끼는 감정을 영상매체등을 통해 통속적이고 직접적으로 보여지는데에 익숙해져서 그럴뿐이지 표현방법이 비장하고 분위기가 엄숙하다고 해서 인간 본연의 감정은 공감을 살수 없는건 아닌가보다. 이러한 보편적 감정을 한단계 승화시켜 인간의 감정속에 그리고 인생속에 내재되어 있는 숙명적인 '죽음과 피의 문화'를 도출해 낼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2. 연극 내용, 구성과 관련해 느낀점먼저 피의 결혼이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축복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결혼이라는 단어와 상처와 죽음의 이미지가 담겨있는 피의 의미의 결합이 독특하게 느껴졌다.여태까지 봤던 연극에서는 노래와 악기소리가 합쳐져 음향효과를 발생시켰는데 순전히 배우가 치는 북소리나 종소리에 모든 효과를 의지하는 듯 했고 오히려 제약된 음향효과가 극에 집중하는데에 더욱 더 도움을 주는 듯 하다.또한 무대 안의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대사가 끝나면 극 뒤쪽으로 퇴장하는 것이 아니라 양사이드로 자리를 옮겨 관객인 양 구경을 하고 노래를 하면서 음향효과를 내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배우도 되고 관객도 되는 특이한 발상을 통해 극을 좀더 신선한 느낌으로 관람할수 있었다. 이연극은 배우 또한 대사를 읊는 느낌이 달랐다. 항상 노래가 섞인 경쾌한 분위기의 극만 보다가 비극을 처음 보다 , 다른 장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연극틱한 발성이 인물들의 감정을 고조된 느낌으로 표현하기에 적당하게 보였다. 인물들의 행동도 행동과 대사도 구체적이기 보다는 상징적이어서(예를들면 배우들은 첫등장때 전부 검은색 옷을입고 등장- 죽음을 암시) 각 장면과 대사의 내용의 함축적인 의미를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이 연극에서 발견한 새로운 요소중의 하나는 오구에서와 같이 한국적인 이미지의 첨가이다. 배우가 부르는 노래의 대부분은 창과 결합된 방식었고, 북치는 소리, 흰색 검은색 한복의 복장을 통해 한국적 이미지를 발견할수 있었다. 또한 판소리, 굿판, 전통혼례식 등 우리 전통 요소를 극속에 용해되어 원작이 스페인이라는 번역극의 냄새가 없어지는 듯 했다..
    독후감/창작| 2004.12.21| 3페이지| 1,000원| 조회(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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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감상문] 오구 평가B괜찮아요
    < 오구 감상문 >부끄러운 얘기지만 난 대학을 입학한 후 3년 동안 단 한번도 연극을 본적이 없었다. 22년동안 영상문화에만 익숙해져있었던 나에게는 공연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공간의 제약을 받는 한정적이고 지루한 표현장르라는 혼자만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그런 나에게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보게된 4편의 공연(지하철 1호선,루트64,안악지애사,오구)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연극이라는 장르는 제약된 장소에서 공연되기 때문에 한정된 영역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장치가 집약된 삶의 진실을 보여주기에 더욱 효과적인 요소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4편의 연극(뮤지컬)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추천작이었던 오구였다.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 하나 없이 배우 강부자의 연기력만을 믿고 선택한 작품이라 별 기대는 없었는데, 기대가 없었다는 사실이 이 작품을 보고 난 후 남게된 긴 여운에도 큰 기여를 한 것 같았다.솔직히 들어 갈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정작 나올 때에는 죽음과 가족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엄청 꼬인 듯한 느낌이 들어서, 처음에는 마음속이 무작정 뭉클한 것만도 아니고, 감동적이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듯한 이 느낌이 참 낯설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이것이 연극의 매력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TV드라마나 영화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식상한 주제에서 벗어나 ,그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문이지만 표면화하기 힘든 소재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관점을 극으로 표현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문제의식을 가지도록 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어 삶의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 공연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시간에 배웠던 공연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을 실제 작품에서 적용해 볼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오구에 대한 구체적인 감상은 전체 8장중 각 장마다의 느낌을 나누어 설명해보도록 하겠다.제 1장 일상 :노모와 함께 사는 부부내외와 그의 딸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이 펼쳐진다. 아이들은 고무줄 놀이를 하고 아들+은 신문을 읽고 며느리는 다듬이질을 하고, 노모는 염불을 외우다가 잠이 드는 모습이 보인다. 평화롭고 한가로운 시골집의 풍경이 결코 지금의 핵가족 하에서는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지만, 몇십년 전만해도 한국인의 전형적인 삶의 모습이기에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도시에 살면서도 어렴풋이 그리는 마음의 고향같은 모습이었다. 한국인이라면 그리워 할만한 전형적인 따뜻한 가족의 풍경이면서, 저승과 대비되는 장소이기에 이승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이러한 풍경을 부각시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또 특이하게 느꼈던 점은 다른 연극에서는 장에 따라 배경이 되는 장소가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오구 에서는 극이 끝날 때까지 가족들의 집만을 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 특색 있게 다가왔다. 극 전반을 지배하는 주제가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므로 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전개시켜도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차피 극에서 등장하는 저승 사자등의 장치도 이승의 삶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므로 배경은 집 한곳으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듯하다..또 오구의 등장인물들은 구수한 사투리 대사를 구사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인물들의 육성을 통해 극의 분위기의 고조를 이끌어나간다. 지하철1호선은 락 뮤지컬이라서 그런지 분위기가 노래에 따라 절대적으로 좌우되고 노래를 통해 인물의 감정이 표출되었다면, 그래서 감정상태의 절정이나 클라이막스 부분을 음향효과로 짐작하였다면, 오구 에서는 인물들이 구사하는 대사와 그 내용 자체로 분위기를 판단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음향은 부수적인 효과로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좀더 인물들의 대사에 귀기울여보게 되고 보는 내내 대사를 곱씹어보게하는 효과가 있었다.2장 노모의 꿈속 풍경 (마임):보통사람들의 의식속에 담겨있는 귀신의 이미지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러한 기존의 관념을 뒤집었다는데에 2장의 특색이 있는 듯 했다. 빨래줄 뒤에 숨어서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움직이는 귀신의 표정, 거의 벌거벗은 모습의 저승사자 춤추는 귀신들의 모습은 귀신의 모습과 맞닿아있는 죽음의 이미지가 무조건적인 공포의 이미지는 아님을 암시해 주는 듯 했다. 내가 기존에 영화에서 보아왔던 절대적 두려움의 대상인 귀신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해학적인 모습으로 접근해 보았다는데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죽으면 귀신이 되기 때문에, 즉 죽음에 관한 무조건 적인 두려움 때문에 귀신을 무서워할 수밖에 없는 결론이 도출된 것이라면, 죽음에 대해 좀더 유연한 관점을 가질 수 있다면 해학적인 귀신도 충분히 설득력있게 다가올수 있을 것이다.3장 어머니와 아들노모는 저승갈 준비를 해달라고 떼를 쓰고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아들의 허락을 받아내고 산오구굿 허락을 받아내게 된다. 자식을 위해 한평생 뒷바라지를 하다가 모든 게 덧없음을 알게되고, 나의 죽음이 머지 않았음을 알게될 때 인간의 심리가 어떨까 생각하면서 극을 보니 ,노모의 모습이 가련하면서 한많은 한국의 어머니상이 그려져 마음이 애틋해졌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자식을 두고 임종을 앞두셨을 때 그런 생각을 하셨겠지 ,나의 부모님도 나도 언젠가는 그 순간을 맞이할것이라는 생각까지 다다르다보니 죽음이라는게 굴레처럼 생각하고 피하고 꺼려할 소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러한 상황을 맞이한다면 죽음을 앞에두고 체념을 한다해도, 삶에 대한 마지막 집착을 버리기란 정말 힘들것같다. 어쩌면 사후의 극락 왕생을 원하는 것도 이승에 대한 삶의 연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합리화 수단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승의 삶도 궁극적으로는 이승의 삶을 빛내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극 맨 마지막의 글귀가 더욱더 와닿는 순간이었다. 갈 때 되면 자연히 가는 것이 이치라면 현세의 삶에 충실하다가 되도록 죽음을 사는것과 앞뒷면 같은 사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편안하게 맞이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4장 나 갈란다 굿꽤 많은 시간 할애한 장이었다. 시간에서부터 장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극락왕생 기원하는 산오구굿이라 해서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굿이 진행될꺼라 예상했었는데,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겉으로 풍기는 분위기 상으로는 축제라고 느껴질만큼 흥겹고 신명나는 분위기였다. 뒷부분의 초상에서도 그렇고 죽은사람을 위한 의식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산사람들을 위한 놀이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의식이라는것도 결국 죽은사람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남은자들의 슬픔을 치료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또 특징은 여러 인물들의 등장이 (굿하는 사람들. 거지패거리 등) 관객석 뒤쪽에서부터 시작되어 무대와 관객석의 구분이 모호해짐으로써 좀더 극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관객과 배우의 사이가 좀더 가까워짐으로써 내가 굿판의 참여자이자 조연배우가 된듯한 효과도 느낄수 있었다. 거기다가 미리 준비해놓은 바구니에 돈까지 넣으면서 참여하다 보니 노모의 산오구 굿판에 내가 직접 초대손님이 된듯한 착각마저 느낄수가 있었다. 극 중반부의 노모의 죽음에 더욱더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극안에 관객이 참여할수 있었다는 점도 작용하였다고 본다.
    독후감/창작| 2004.12.21| 3페이지| 1,500원| 조회(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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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일본에 관한 책(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에대한 질문정리
    일본의 이해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 (박규태)제 6장 신종교의 시대에 대한 질문질문< 질문 1>공부를 하면서 느낀점 중 하나가 옴진리교라는 종교 자체가 겉으로 보여 지는 모습과 그 이면에 내재 되어있는 사고 사이에 모순이 크다는 점이었다. 가령 매스미디어를 혐오하는 모습을 표출해 냈으면서도 교세확장을 위해 매스미디어를 교묘히 이용해 선전하는 것, 겉으로는 현세부정적, 현세 이탈적 교의에 입각해 상업적인 활동과는 다른 공동체적 수행에 집중하는 듯 하고, 이상주의를 내세워 물질문명화에 찌든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였으면서도 업무 수행조직이 관료제 접합모델이 아닌 소비자 접합모델에 더 가까웠다는 사실등이 정말 놀라우면서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러한 상반된 속성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이유가 궁금하다. 어떻게 물질주의를 배타하는 집단이 종교의 소비상품화를 지향하고, 또 교인들은 그러한 모순 속에서도 그 종교에 빠져들 수 있었을까? (물질문명이 싫어서 종교에 가입한 사람들이 어떻게 종교에 투자의 형식을 취할수 있는것일까?) 교묘한 사기행각이라는 말로만 이해하기에는 그런 사고방식이 너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간 자체가 본질적으로 그렇게 모순된 속성을 가진 존재인지 , 아니면 일본인에게만 해당되는 특유한 사유방식이 무언가 있는것인지가 궁금하다< 질문 2>보고모토오리 노리나가의 초월적 선악관에서는 종의원리나 모노노아하레 가미의 마음들을 기준으로 선악을 나누었다.옴진리교에서는 바지라야나의 두 단계중에서 기본적으로 모든 유혹을 긍정하는 것은 선도 악도 아닌 것으로 보았고, 폭력도 때로는 선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취했으면서도, 악은 없애야 할 대상으로보았다.그렇다면 옴진리교에서 선과 악을 판단하는 전제,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내생각) 일본의 신종교와 신신종교의 대표적인 유형에서 가장 많이 난해하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점이 선과 악에 대한 사고방식이다. 항상 내가 살고 있는 배경 안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사고방식을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악에 관한 명백한 윤리적 기준이 있어야 하고, 선은 좋은 것 악은 언제나 나쁜것이라는 인식에 익숙해져여서인지 옴진리교의 선악관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옴진리교는 는 상대주의적 선악관념에서- 윤리적 역설로 < 악을 철저히 하면 선이 된다. 원리적으로 추구된 악은 선일수 있다.>>라고 포아의 원리를 도출해 내고 있다.상대적인 선악관념에 대해서는 심정적으로 일정부분 동의하는 입장이지만, 옴진리교의 논리에 따른다면 절대적 구루에 의해 행해진 포아의 폭력이 상대방 구제를 위한 원리적으로 추구된 악이이라는 구실만 들면 결국 구루가 행할수 없는 행위는 아무것도 없게 될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객관적으로 드러나있는 기준하에 선악을 판별하는 절대주의적 선악관념보다 훨씬 위험한 원리인 것 같다.상대주의적 선악관념으로부터 악이 선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면 선도 악이 될 수 있다는 결론도 낼수 있는것이고 , 구루가 상대방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났다면 폭력은 오히려 상대방의 선한업까지 악으로 바꿔 버릴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그러므로 아무리 선과 악이 상대적인 관념이라고 해도 폭력을 긍정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서, 즉 악이 선이 되기 위해서는 이론적으로 최소한의 객관적 전제나 기준 한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결론 그대로만 봐서 악이 웬만한 이유가 있으면 선이 될 수 있다고 본다면 너무 위험성이 크고, 결국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 식으로 유리한 결과쪽으로만 몰아붙이는것도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전제나 기준이 없다면 결국 금강심을 만들기 위해 수양하고 노력하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 될 뿐이다정리 : 선악의 판단기준이 실질적으로 구루에 의해 정해지는 것 같다. 과정은 상대주의적 선악관에서 도출되었다고는 하지만 결국 구루 마음대로 아닐까? 임의적인 판단의 우려가 있는 불확실한 기준하에서는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고, 오감을 통해 보편적원리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느끼는 것이 필요하듯이 구루에 의한 판단을 위해서는 제대로 상대방을 구제하기 위한다는 또는 좀더 확실한 전제가 필요할고 본다(솔직히 아직도 선악의 역설이라는 말이 아직 잘 완전히 0이해가 안된다)< 질문 3>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이라면 옴진리교 사건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하는 종교연구자의 물음에 예전에는 회의적으로 대답했지만 ,정보화 소비화의 진전으로 정보가 폭력의 상관관계를 이유로 한국에의 적용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발표자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구체적으로 사회 문화적인 요인은 차치하고라도,옴진리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원리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과도 호환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 맞지 않다면 어떤 점이 다르다고 생각하는지, 또한 만약 옴진리교의 교리가 우리나라에도 전파된다면 일본과 상황과 같은 결과를 도출해 낼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내생각)나로서도 여러모로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의 문화적인 영향을 받아 옴진리교를 수용하고 믿는 사람들도 극소수는 존재할 것 같다. 정보화되고 소비지향적인 생활양식의 변화에서 비롯된 사회적 측면을 일단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대부분에게서 옴진리교의 사상을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로서도 일본의 상대주의적 선악관 자체를 수용은커녕 이해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교리의 출발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와 맞지 않는 이상 보편적인 설득력을 갖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도 사회적인 원인이 옴진리교 사건이 만든 요인임에 분명하지만, 상대주의적 선악관이 기저에 깔려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수용될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아직 사고방식의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못한 청소년들이나 맹목적 일본문화 추종자에 의해서는 수용될수 있다고 본다.< 질문 4>기독교가 일본에서 정착되지 못한 이유중에 일본인은 절대적인 유일신을 인정하기 힘든 사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원인도 있다고 들었다.옴진리교는 어떤면에서 교주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강조하는 종적이고 집단적인 성향을 띄는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에게 전파될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내생각) 책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옴진리교라는 종교자체에서 기인한 속성들, 즉 바지라야나, 포아의 초인윤리, 현세부정적인 천년왕국주의적 종말관 등 여러 가지 내적 종교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일본의 신도적 사고인 상대주의적 선악관을 바탕으로 해서 나름대로 결론을 도출했기 때문에 일본사람들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고와 배치되지 않는 사고방식의 시작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한 식으로 자연스럽게 외부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주의에 녹아들어 다른면은 잘 발견하지 못했거나. 발견했더라도 간과하기 쉽도록 교묘하게 위장한 주동자들의 노력때문인 것 같다.
    인문/어학| 2004.05.21| 5페이지| 1,000원| 조회(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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