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 , , 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글은 플라톤에 의해 각색되어 대화체로 쓰여졌다. 은 '신을 믿지 않고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로 고발당한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변호하는 글이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소위 현자라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무지함을 밝혀내려 했었다. 당시의 학자 혹은 정치가 혹은 어느분야의 전문가들은 '삼단논법' 으로 무장한 소크라테스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었고 대부분 패했다.끊임없이 이어지는 논리의 공격을 당해낼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는가? 소크라테스의 무기는 오직 '무지에 대한 깨달음' 이였다. "나는 내가 무지한 것을 안다. 너도 무지한 것을 깨달아라." 상대의 무지함이 드러날때까지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소크라테스가 여러사람들의 분노와 미움을 사게 된 것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 아니였다.그토록 집요하게 그가 '소피스트' 들의 궤변을 깨려고 했던 것은 그저 순수한 지혜의 추구였을까, 아니면 또 다른 '현자' 를 가장한 '언어적 폭력' 이였을까.'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본인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무지의 깨달음"을 주기 위해 노력하였는지, 그것이 얼마나 올바른 행동이였는가에 대해 피력한다. 심지어 자신을 벌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후회할 행동인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판결전에도, 사형선고 이후에도 소크라테스는 자기 확신으로 가득차 있다. 본인의 뜻을 목숨을 걸고 끝까지 관철시키는 것. 2천년간 회자되어 온 소크라테스의 지혜는 이런 꼬장꼬장함 속에 있었다.p.18그 사람도 나도 아름다움이나 선을 사실상 모르고 있지만 나는 그보다는 현명하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알지도 못하고 또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에서 소크라테스의 절친인 크리톤은 그에게 탈옥을 권유한다. 소크라테스는 국법의 권위와 본인의 명예를 위해 탈옥을 거부한다. 그의 유명한 말인 ㅡ 과연 그가 이런말을 했을까 싶다. 아마 후세 사람들에 의해서 드라마틱 하게 쓰여지지 않았을까 ㅡ "악법도 법이다." 가 떠오른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행동의 일관성과 신의를 지키려는 그의 모습은 용기 있어 보였다. 은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던 그날에 있었던 대화들이다. 친구와 제자들은 앞으로 일어날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 한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의 감옥이던 육체에서 벗어나 완전한 지혜의 길로 갈 수 있는 철학의 궁극적인 목적지라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로 소크라테스는 영혼의 불멸성과 지혜의 절대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가 즐겨하던 문답법은 너무 길고 추상적이라 완전히 그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지혜를 사랑하는 것(philosopy)' 도 결국 정신적인 쾌락을 위한 또 다른 절제가 아닌가 싶다.p.103사람들은 방종하기 때문에 절제를 요구하는 것이야.(중략) 그들에게는 잃어버리기 싫은 쾌락이 있고, 이 쾌락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몇 가지 쾌락을 삼가는데 이는 다른 쾌락에 압도당했기 때문이야. 은 에로스를 찬미하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들의 대화이다. 뮤지컬 '헤드윅' 의 주제가 "The origin of Love" 로 유명한 "해님, 달님, 땅님의 아이들" 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있다. 소크라테스는 특유의 문답법으로 에로스가 아름다움을 결여한 존재라는 놀라운 이론을 이끌어 낸다. Bravo~! 그의 논증법을 보자니 세상에 입증시키지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
파우스트는 구전(口傳)으로 전해져 오던 이야기를 후세의 사람들이 책으로 엮고 각색한 것이다. 괴테는 60여년간 파우스트를 집필하며 그리스로마 신화, 기독교 사상을 함께 더했다. 책의 원어(原語)인 독일어로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느낌을 알 수는 없지만, 괴테의 파우스트는 문학적으로 운율(韻律)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뽐내었을거라 짐작한다. 아쉽게도 한국어 해석본으로 읽어야 하는 지라, 책은 무언가 어색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정철의 청산별곡(靑山別曲)을 번역한다면 외국인들이 느끼는 재미없음이 이런것이렸다.?한국어로 읽는 파우스트는 한편의 오페라 같았다. 배우가 아리아(aria)를 부르는 동안 옆에서 해설자가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오페라. 많은 주석(註釋)들을 읽다보면, 책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그리스로마 신화 사전편을 보는듯한 착각에 빠질 것이다.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고 자꾸 옆으로 새어나가는 나를 발견했다. 상상을 너무 많이 하면 몸처럼 머리도 지치는지 쏟아지는 잠에 나도 모르게 머리가 책상에 닿아있다. 그리고 깨어나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읽었더라? 내용이 가물가물했다.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가 끝난뒤. 해설편의 정리되어 있는 파우스트의 줄거리를 보고서야, 아~ 이런 이야기였구나. 재밌는걸? 싶었다. 줄거리를 읽으며 산산히 조각나 있던 그림퍼즐을 하나씩 맞추었다.1700년대의 남성(男性)인 괴테는 그 당시의 여성관을 기록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꼬셔 인간의 원죄(原罪)를 만들어 내었던 여성에 대한 분노 때문일까. 그가 기록하는 여성은 유혹에 흔들리기 쉽고 아둔하며 그저 허영에 들떠 쾌락을 쫓는 생명체이다. 악마 메피스토의 도움으로 파우스트가 새로운 젊음을 얻게 된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동네 순진한 처녀 그레트헨을 꼬시는 일이였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깨달아 이제는 삶이 허무하여 자살을 기도하던 대학자(大學者) 파우스트가 젊음을 얻게 되니 진정 하고 싶었던 것이 여자를 아름다운 꽃으로 부르고 그 꽂을 꺾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라니! 지식이나 지혜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나. 본능은 그 모든 것을 압도한다. 결국 파우스트의 사랑은 그레트헨의 집안을 풍지박산 내고 여자의 삶을 끝냈을 뿐. 여자는 아름다운 꽃이되 꺾이지 말아야 했다. 꺾이는 것이 바로 죄이다. 그리고 새 날이 밝아오고 잠깐의 괴로움 후에 파우스트는 또 절대미녀 헬레나와 사랑에 빠지고 이런저런 세속적 욕망을 충족한 후에 죽기 전 깨달음이“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이렇다.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Tenthdimension10차원0. A point (no dimension)We start with a point. Like the “point” we know from geometry, it has no size, no dimension. It’s just an imaginary idea that indicates a position in a system.점으로 시작합니다. 기하학에서 우리가 배운 "점" 과 같이, 이것은 사이즈도 치수(폭,두께) 도 없습니다. 이것은 시스템에서 위치를 가리키는 단지 가상의 개념일 뿐입니다.1. The first dimension ? a lineA second point, then, can be used to indicate a different position, but it, too, is of indeterminate size. To create the first dimension, all we need is a line joining any two points. A first dimensional object has length only, no width or depth.1. 일차원 - 선그리고 두 번째 점은 다른 위치를 가리키는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확정한 크기입니다. 1차원을 창조하기 위해서, 우리가 필요한 것은 첫 번째 점과 두 번째 점을 이어주는 것입니다. 1차원 물체는 길이는 가지고 있으나 폭이나 깊이는 없습니다.2. The Second Dimension ? A Split이차원 - 분할If we now take our first dimensional line and draw a second line crossing the first, we’ve entered the second dimension. The object we’re representing now has a length and a width, but no depth. To help us with imagining the higherr which is lying on a table, we can pretend that the ant is a Flatlander, walking along on a flat two-dimensional newspaper world. If that paper is now folded in the middle, we create a way for our Flatlander Ant to “magically” disappear from one position in his two-dimensional world and be instantly transported to another. We can imagine that we did this by taking a two-dimensional object and folding it through the dimension above, which is our third dimension. Once again, it’ll be more convenient for us as we imagine the higher dimensions if we can think of the third dimension in this way: the third dimension is what you “fold through” to jump from one point to another in the dimension below.3차원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3차원을 상상하는 것은 가장 쉽습니다. 3차원의 물체는 길이, 폭, 높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3차원을 묘사하는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탁자위에 올려있는 신문을 걸어다니는 개미를 상상한다면, 우리는 평면의 2차원의 신문을 걸어다니는 개미를 Flatlander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신문의 중앙이 접힌다면, 평면개미(Flatlander Ant)가 마법처럼 사라져 2차원세계의 한 지점에서 즉시 다른 지점으로 이동되게 됩니다. 우리는 2차원적 물체를 3차원적으로 ides of the paper before it meets back with itself. It appears, somewhat amazingly, that the strip has only one side, so it must be a representation of a two-dimensional object. And this means that a two-dimensional Flatlander traveling down the line we just drew would end up back where they started without ever feeling like they had left the second dimension. In reality, they would be looping and twisting in the third dimension, even though to them it felt like they were traveling in a straight line.다른 곳에서 1차원의 흔적이 존재하는 가장 흥미있는 모습 중 하나는, 상위 차원의 행동으로 인식되어 지지 않는 것이 아래 차원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단순한 예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뫼비우스의 띠(긴 종이, 한 쪽을 꼬아서 끝과 연결시킨)를 만들고 세로로 선을 긋는다면, 종이의 양쪽면을 지나 결국 그 선은 자신과 만나게 된다. 그것은 다소 놀랍게 보여지는데, 종이는 오직 한면만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것은 2차원 물체의 설명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그린 선을 따라 아래로 여행하는 2차원의 Flatlander가 2차원을 떠났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도 그들이 출발한 곳에서 여행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들이 일직선을 여행한다해도, 그들은 연결되고 꼬이는 삼차원에 있다는 것이다.The fourth dimension, time, feels like a straight line to us, moving from the past to the future. Bulable options in your current version of time -- “you can’t get there from here” -- no matter how much choice, chance, and the actions of others become involved.만약 당신이 어린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우리는 접혀진 4차원에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5차원을 통하는 상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과거로 돌아가 위대한 방명품을 창조한 아이가 되어 현재 유명하고 부자로 살고 싶다면 어떨까? 우리는 자신의 4차원 가지를 현재에서 5차원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위대한 아동 발명가" 에서 어디를 갈것인지 그것은 현재에서 당신에게 가능한 선택은 아니다. 당신은 여기서 그곳으로 갈 수 없다. 아무리 그것에 관련된 많은 선택과 기회, 행동이 있더라도 말이다.There are only two ways you could get to that world ? one would be to travel back in time, somehow trigger the key events that caused you to come up with your invention, then travel forward in the fifth dimension to see one of the possible new worlds that might have resulted. But that would be taking the long way. The shortcut we could take would involve us folding the fifth dimension through the sixth dimension, which allows us to instantly jump from our current position to a different fifth dimensional line.당신이 그쪽 세계로 갈 수 있는 2가지 방법이 있다o be, because that’s what our line is going to be joined to. But how can there be anything more than infinity?우리가 7차원에서 '한 점' 으로써 '무한'을 묘사할 때, 우리는 그림의 한부분을 상상한다. 만약 우리가 7차원선을 그린다면, 우리는 상상할 필요가 있다. 7차원에서 무엇이 다른 '점'이 될 것인지. 왜냐하면 우리의 선들은 합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한이상의 것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The answer is, there can be other completely different infinities created through initial conditions which are different from our own big bang. Different initial conditions will create different universes where the basic physical laws such as gravity or the speed of light are not the same as ours, and the resulting branching timelines from that universe’s beginning to all of its possible endings will create an infinity which is completely separate from the one which is associated with our own universe.우리의 빅뱅과는 다른 최초의 상태를 통해 창조된 완전히 다른 '무한(infinities)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대답이다. 다른 태초의 상태는 다른 우주를 창조할 것이다. 그 우주에서 중력, 빛의 속도 같은 기초 물리법칙들은 우리의 것과는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뻗어진 시간선들은 그 우주들의 시작에서 부터 출발하여 모든 가능한 끝(ending)으로 '무한'을 창조할 것이것이다.
사랑의 묘약 감상문2007년 타계한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의 ‘남몰래 흘리는 눈물 (Una furtiva lagrima)’ 을 듣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였다. 음반가게에서 들려오는 부드러우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한참을 그 자리에 멈춰 서있었다. 전혀 알 수 없는 이탈리어로 된 이 아리아는 왠지 슬프기도 했고 아름답기도 했다. 어떤 가슴 저린 이야기이일까 궁금해지는 오페라였다. 오페라의 제목은 ‘사랑의 묘약’ 이라고 했다.‘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 은 예상외로 아기자기한 오페라였다. 극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첫사랑처럼 어설프고 풋풋하면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의 슬픔으로 가슴이 아련해지기도 했다. 주인공 ‘네모리노’는 순진하고 평범한 농부이다. 그는 농장주의 딸 ‘아디나’를 사랑하면서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아디나’는 자기와는 다르게 배운 것도 많고 책도 읽을 수 있는데다 누구나 사랑하는 아름다운 미모의 여성이다.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해보고자 하지만 그녀는 이리저리 말을 돌릴 뿐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던 중 마을에 ‘둘까마라’가 들어온다. 그는 교묘한 말솜씨로 사람들을 꼬여 가짜 약들을 팔아치우는 엉터리 약장수이다. 네모리노는 그에게 ‘사랑의 묘약’을 산다. 이 약만 마시면 꿈에도 그리던 ‘아디나’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그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기쁨에 넘쳤다. 하지만 실은 그 사랑의 묘약이란 건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보통 포도주였다. 가짜 사랑의 묘약을 마신 네모리노는 아디나의 사랑을 당연히 얻을 거라 믿고 그녀에게 우쭐대며 거들먹거렸고, 그에게 토라진 난 아디나는 홧김에 ‘벨코레’ 중사의 청혼을 허락한다. 갑작스러운 군대의 출동명령의 아디나와 벨코레의 결혼은 서둘러 진행되게 되고 당황한 네모리노는 약장수 둘까마라에게 다시 한번 사랑의 묘약을 사려한다. 돈이 없는 네모리노는 약을 사기 위해 벨코레의 군대로 들어가기로 계약을 하고 약을 사 마신다. 그러던 중 마을처녀들 사이에 네모리노가 숙부의 유산을 물려받아 큰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게 되고 처녀들은 갑자기 그에게 접근해 유혹하려 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네모리노는 갑작스러운 처녀들의 행동이 사랑의 묘약의 효과라 믿고 쾌재를 부른다. 이 모습을 본 아디나는 불안한 마음에 둘까마라에게 찾아갔다가 네모리노가 자신을 위해 사랑의 묘약을 샀고 부족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군에 입대까지 한 사실을 알게되고, 그의 진실한 사랑에 감동하며 눈물 짓는다. 아디나를 숨어 지켜보던 네모리노는 마침내 그녀의 사랑을 얻었음에 감동하여 ‘남몰래 흘리는 눈물 (Una furtiva lagrima)’을 노래한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1막에서 ‘아, 어쩌면 저토록 아름다운가!(Quanto e bella!)’ 라고 숨어서 노래하던 소심한 네모리노가 ‘사랑의 묘약’ 이라는 가짜 약 한병에 자신감을 얻어 돌변하는 모습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사실 사랑의 묘약은 누구나 가슴속에 한병씩 지니고 있으며 오직 그 사람을 향한 진실한 마음으로만 그 약효를 이끌어 낼 수 있음을 작곡가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또한,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교만은 금물이라는 것. 가짜 사랑의 묘약의 약효만을 믿고 거들먹거렸던 네모리노는 하마터면 아디나를 놓칠 뻔했다. 사람들은 처음엔 조건없이 사랑을 갈구하다 사랑이 오는 듯 싶으면 쉽게 자만에 빠진다. 영어속담에 "Easy come, easy go." 라는 말이 있듯이 사랑에서 약간의 고난이나 시련은 필요하다. 연애에서 밀고 당기는 감정의 줄다리기는 좀 필요하다는 말이다. ‘아디나’도 ‘네모리노’가 계속 저자세로 사랑을 구걸했다면, 그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항상 잘해주고 헌신적이기 보다는 때론 상대의 애를 태우는 것도 연애의 기술이라는 것을 200년 전의 ‘도니제티’ 가 말해주고 있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사랑은 영원한 인류의 흥미로운 이야기거리이자 가슴 절절한 고민거리가 아닌가 싶다.
< 포레스트 검프 영화 감상문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라고 하면 좀 어둡거나 심각해지기 쉬운데 '포레스트 검프'는 시종일관 밝은 수채화 같은 분위기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선천적으로 IQ75의 지적장애와 척추이상으로 뛸 수 없는 신체장애까지 가졌다. 세상 사람들에 눈에는 머리가 모자라는 바보에 신체장애까지 가진 불쌍한 아이였다. 그런 그에게 희망을 잃지 않게 도와줬던 사람은 바로 그의 어머니였다. 장애로 의기소침한 포레스트에게 어머니는 누구도 그보다 나은 사람은 없는 것이고, 그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별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친구들의 놀림을 피해 도망 다니던 어린 포레스트는 어느날 기적적으로 뛸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의지로 운명을 헤쳐나가며 흥미진진한 인생이 펼쳐지게 된다. 초등교육도 받지 못할 것 같던 그는 대학까지 가서 제일 빠른 미식축구선수로 활약한다. 베트남전에서는 동료를 구하는 용감한 군인으로 국가 훈장도 받고, 세계평화의 사명을 이어받은 국제적인 탁구선수가 되기도 한다. 전쟁터에서 잃은 친한 친구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시작한 새우잡이 사업은 초기엔 망할듯 보이더니, 하늘이 그를 돕는지 갑작스러운 허리케인의 등장으로 그는 백만장자가 된다. 하지만, 포레스트 인생에 하나뿐인 '제니' 와의 사랑은 순탄치 않았다. 다른 모든 일들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웠지만, 진정 포레스트가 원했던 '제니'와의 운명은 항상 엇갈려만 갔다. 포레스트가 할 수 있었던 건 단지 바람처럼 잠깐씩 왔다가는 제니를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제니도 포레스트를 사랑했지만, 그녀에게 포레스트는 가슴으로는 넘치지만 현실적으로는 부족한 사람이였다. 백만장자가 되기 전의 포레스트는 그녀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부족해 보였다. 제니는 유명한 포크가수가 되고 싶었고 포레스트는 그것을 이루게 도와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하지만 떠난다는 흔한 유행가 가사처럼 제니는 포레스트의 곁을 떠났다. 영화에서는 제니가 속물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우리 대부분의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과 지적장애에 가진 것 없는 평범한 듯 조금 모자란 남자의 사랑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장애인은 우리와 다르고 열등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는 선택받은 정상인들이고 그들은 장애의 저주를 안고 태어난 불운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뿌리깊은 나무처럼 포레스트는 항상 그 자리에서 제니를 기다렸다. 포레스트는 똑똑하진 않지만 사랑이 뭔지는 아는 사람이였다. 매번 그랬듯이 어느날 제니는 또 바람같이 포레스트에게 다가온다. 단 하룻밤의 사랑의 결실로 얻은 포레스트의 2세와 함께. 이제는 병이 들어 얼마 살지 못하는 제니는 늦게나마 포레스트의 진실한 사랑을 깨닫고 그들은 짧지만 행복한 결혼을 올리게 된다.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고통을 다 알 수 없다. 지적장애로 보통사람들보다 어눌한 말투와 흐릿한 기억력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두 다리를 움직이지 못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알기 힘들다. 영화 후반부 포레스트가 자신의 아들을 처음만나는 장면에서, 포레스트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제니에게 아들도 혹시 지적장애가 있지 않은지 묻는다. 담담하게 큰 고통없이 살아온 것 같았던 그의 삶이 사실은 순탄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장애인들의 장애에 대한 편견과 혐오스런 시선들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을까. 사람들은 미지(未知)의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그러기에 일반적이지 않고 자신과 다른 모습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의학적 지식이 별로 없었던 과거에는 장애가 전염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로 장애인들을 배척하였고, 지금은 선택받은 유전자라는 자만심으로 이웃 장애인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장애를 갖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체적 장애이던 정신적 장애이던지 남들보다 불편하고 부족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때론 사람들은 포레스트처럼 태어날 때부터 원치 않은 장애를 갖고 태어나기도 한다. 또는 어떤 사람들은 포레스트가 베트남전에서 구해낸 댄 중위처럼 살다가 어떤 사고에 의해 장애를 얻기도 한다. 댄 중위는 포레스트에 의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건졌지만 두 다리를 잃었다. 댄 중위는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죽었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포레스트가 망쳐놓았다며 그를 원망한다. 괴로워하는 댄 중위를 보면서 난 섬뜩했다. 내가 만약 댄 중위처럼 갑작스런 장애를 얻게 된다면? 잘려진 두 다리를 바라보며 절망에 빠져 괴로워하던 댄중위의 입장이 백번 이해되었다. 가끔 매스컴에서 간혹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장애를 극복해야하는 인생의 장애물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댄 중위는 사고 이전의 자신의 모습이 진정한 자신이였다고 절망한다. 포레스트는 그의 곁에서 장애를 얻게 된 이후의 댄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인간임을 일깨워 준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조금 다른 신체적, 정신적 차이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의 차이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포레스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장애가 있건 없건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간다. 특정한 신체적, 정신적 조건을 충족해야만 우리가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긴 마라톤과 같아서 끝까지 달리지 않고는 아무도 그 결말을 알 수 없다. 분명한건 인생은 혼자만의 달리기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 친구, 이 사회에 함께하는 동시대의 많은 이웃들과 함께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쓰러지면 곁에서 일으켜 세워주고 내가 힘들 때 곁에서 잡아주는 사람들이 있을 때 모두가 결승점까지 들어올 수 있는 아름다운 경주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