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언론의 이론4이론들을 살펴 보려한다. 역사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의 언론현상이 있겠지만 대부분 이 네 가지 이론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네가지 이론은 권위주의 이론 자유주의 이론 사회책임주의 이론 소비에트 공산주의 이론이 있다. 이 네가지를 역사적 현상을 바탕으로 현실에 비추어 보기로 하겠다.먼저 권위주의이론에 대해서 설명하겠다.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볼 때 가장 폭 넓게 퍼져 있는 것이 이 권위주의라 하겠다. 이 이론은 16 ~ 17세기영국에서 발달하여 광범위하게 수용되고 현재도 많은 지역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이 권위주의에 목적은 집권정부의 정책을 지지하고 진전시키는 것과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권위주의에 기본전제를 살펴보면 국가 내부에서 국가를 통하여 인간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국가 없이는 인간은 원시적인 존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국가는 인간의 참된 발전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다. 이런 것을 통해 국가는 개개인의 구성원으로부터는 독립된 전능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권위주의이론을 설명한 학자는 수세기에 걸쳐서 여럿 학자들이나 철학자가 있었다. 먼저 플라톤은 국가의 목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의견이나 토론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이야기 하였고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는 권위에 복종하는 철학적 필요를 인정했다. 이후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안정과 전진이 최고지 시민 개개인의 사정 등은 2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했다. 그 후에 학자 토마스홉스는 질서와 평화를 확립하고 유지하는 권력은 최고의 가치이고 권력이 이룩한 특정한 행동이 옳은가 어떤가에 대해서 여론에 따르는 일이 없다고 했다. 또한 게오르그 헤겔은 근대의 권위주의 정치이론의 대표적 전형인데 그는 진정한 자유란 국가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국가내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플라톤이래 수많은 사회철학자나 정치 철학자들이 직.간접적으로 권위주의 원리를 지지해 왔다. 이런 권위주의는 파시즘 국가에서도 많이 보여졌는데 대표적없어 보였다. 우리나라 자체도 지금 권력자를 문제 삼는것에 대해 그리 자유로워 보이지 만은 않아 보인다. 그 예로 에전에 김영삼 대통령시절 어느 기자가 김영삼 비리를 폭로했다가 그 기자 혼자만 김영삼 기자회견때 프레스 카드를 받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권위주의와 다른 이론들의 관계를 살펴 보면 공통점도 많고 차이점도 많다. 소비에트 제도와는 거의 비슷하지만 두 가지가 다르다 하나는 권위주의는 매스미디어에 대해 통제 위주이고 소비에트는 도구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이고 하나는 사유와 국유라는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 자유주의 와는 상이한 차이를 보인다. 그에 반해 사회 책임 이론과는 몇 가지 비슷한 점이 보인다. 두 이론 모두국가의 문화타락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과 사회의 확실한 목적을 매스미디어가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권위주의는 우리나라에서도 박정희 시절이나 땡전 뉴스(전두환)처럼 예전에 존재 했었다. 이러한 권위주의의 모습은 이제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잔존해있는 것만큼은 사실인 것같다. 뉴스의 객관성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정부기관의 출입기자를 통한 언론 통제 방법이 생각이 났는데 이 역시 권위주의의 한 단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다음으로 언론의 자유주의 이론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자유주의 이론은 1688년 이후의 영국 및 미국에서 채택되고 그밖에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목적은 보도, 오락, 판매의목적, 그러나 주로 진리의 발견을 도와주고, 정부를 감시하는 것이다. 이 이론의 기본적 전제가 되는 것은 바로 사람의 이성적 판단에 대한 믿음과 개개인의행복이다. 이 전제에 대한 믿음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였다. 17세기에 과학에 대한 발달로 인간은 신의 섭리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신뢰하게 만들었다. 또 하나의 요인을 살펴보면 중산 계급의 출현이다. 이 중산 계급은 왕권과 귀족의 특권을 제한할 것을 요구하며 경제 자유주의 기반을 쌓았다. 마지막으로 로크의 사회계약설인데 이 사회 계약설을 통해서 로크는 국가는 국급이라고 할 수가 있다. 위 과정을 통해서 자유주의 이론은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이러한 자유주의 속에서 매스미디어의 기능은 보도와 오락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제적 존립을 위해서 제3의 기능 발전했는데 그것이 바로 광고 기능이다. 이런 광고문제의 도입은 필수 불가결 한 것이지만 요즘 미디어가 보여지는 문제점을 잉태하게 만들었다. 바로 소유주에 의한 언론 통제이다. 이러한 사실은 자유주의자들이 간과하고 있었다. 이문제 말고도 자유주의 이론에서는 언론이 전달하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공중에게 전달되는 정보나 의견중에 허위사실이나 불건전한 의도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자유주의 학자들은 이런 것은 자동조정 즉 스스로 개인의 판단의 의해서 걸러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개개인 능력에 대한 강한 믿음 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래서 자유주의 제도 하에서도 미약하게 나마 법률적인 제제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또 이런 자유주의가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설정 하는 것에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명예 훼손법과 음란이나 외설 사항 배포 금지법을 통해 자유주의 원칙에 모순되지 않는 것으로 몇가지 제한을 두게 되었다. 이런 자유주의는 2번의 세계대전을 통해서도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긴급시 국가에 존립을 위태롭게 할만한 문제에 대한 자유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심한 격론이 벌어지는데 하나는 국가적 긴급시에 일련의 자유를 인정하자는 쪽이고 하나는 자유주의 원칙을 깨는일이라며 반박했다.이러한 자유주의 속에서 인쇄미디어는 객관 보도의 이론을 발달시킨다. 이는 자유주의 원칙상 미디어의 소유주는 사유가 되어야한다. 이런 미디어의 사유화는 재정의 문제를 가져오게 되고 인쇄미디어는 자연스럽게 광고를 쓰게 된다. 이런 광고 수입은 발행 부수에 좌우 되는데 따라서 인쇄미디어는 발행 부수를 늘리기 위해서 어느쪽에 비위도 건드리지 않는 불편부당한 기사를 써서 사실만 있고 생각은 없는 기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정보원제도의 문해 큰 사회적 파장(다시 전체주의의 도래)을 막겠다는 것이었다.20세기에 들어서면서 발행인들은 자기들의 자유를 행사할 권리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자유의 행사에 수반하는 책임에 대해서도 언급하기 시작했고 업계 단체는 스스로 윤리적인 행동강령을 제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윤리강령은 사회가 요구하는 언론을 보증하기에는 아직 불충분 한 것이었다.이 강령은 고용인이 아니라 사용자에 의해서 만들어진데다가 그것은 강제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락 할 수 있는 최저 한도의 기준을 정하고 있는 것이지 책임의 기준을 정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에 대해 언론자유 위원회는 현대사회가 언론에 요구 하고있는 5가지를 발표한다. 그 첫째는 "그날의 사건에 과난 진시되고 종합적이고 이지적인 기사를 그들 사건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있는 문맥으로"보도하는 것이다 이는 언론에 정확할 것과 허위를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로는 언론은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대기관은 스스로를 공공 논의의 공공적인 전달기관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언론에 관한 세 번째요청은 "언론은 사회를 대표하고 있는 각 집단의 대표상"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요청과 밀접한 관련을 유지하면서 이 요청은 언론에 인간은 때때로 자기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이미지와 그릇된 상에 따라서 정확한 판단을 해치는 결정을 내릴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요청은 언론은"사회의 목표나 가치를 제시하고 분명히 밝히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무자들은 이 요청도 또한 거의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마지막 요청은 언론은"그 날의 정보에 접근하는 충분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시민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더 현재의 정보를 요구하고있기 때문에, 뉴스나 의견은 광범하게 배포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위원회는 언급했다.그러나 위원회는 언론이 이러한 기준을 승인하고 있다는 것과 실제로 행하고 있는 것과의 사이에는도 현실적이고 좋은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볼 때 실제 사회 현상에서는 허는 한쪽으로 치우쳐져서 일어나기 때문에 권위주의적 사회책임주의 자유주의적 사회책임주의 이런식으로 나타나는 듯하다. 우리 언론의 현실을 나는 후자라고 말하고 싶다. 자유언론위원회가 비판한 언론의 소수집중화나 엘로우 저널리즘의 성행, 객관적인 신문보도등은 자유주의의 부정적인면을 너무 닮아있다.마지막으로 다룰 내용은 소비에트공산주의 이론이다. 이 이론은 읽으면서 이해하기 너무힘들었다. 흔히 접하는 이론체계가 아니라서 그런지 앞에 자유주의나 권위주의에 비해 이해하는데 꽤나 많은 시간이 소비되어 졌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책에서도 그러하였지만 맑스에 대한 기초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가 꽤나 힘들다. 맑스는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헤겔의 제자이면서도 그가 펼친 사상은 헤겔의 사상을 뒤짚어 엎은 것으로 관념적인 것을 현실적인 것으로 바꾸었다. 즉 물질에 기초를 두고 보다 현실적인 입장에서 국가를 이해 하였다. 당연히 이 이론은 공산주의 진영에서 사용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언론기관은 공동의 소유이다. 하지만 이 공동의 소유란 개념은 당의 소유와도 같은 개념인데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 맑스 사상에 기초가 되는 것이 통일(unity)에 관련 된 것이다. 모두다 같은 생각 같은 목표를 향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적 힘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당이다. 이 당이라는 개념은 바로 그들을 대표하는 자화상 어차피 하나의 생각이니 당이 곧 인민이요 인민이 당인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틀리게도 소비에트 공산주의이론에서는 언론의 자유를 주창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는 언론의 자유를 소유에서 찾고있는데 자유주의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채널에 진정한 의미로 접근하기에는 너무 멀다. 하지만 공산주의에서 노동자 계급이 커뮤니케이션의 물질적 소유권을 쥐고 있어서, 접근하기도 쉽다 라고 말하고 있으며 진정한 자유로 걱정이 없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그럼 이러한 소비
순수 서정시와 음악성1930년 3월, 박용철이 편집인 겸 발행인이 되어 시문학을 창간하여 시작된 시문학파는 1920년대의 계급문학논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이 문학을 방법적인 존재로 생각한 데 대하여 항거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문학의 순수한 기능을 존중하되 해외문학의 지배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해외문학파의 정신을 부분적으로 부정하며 또한 부분적으로는 계승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여러 문인들이 시문학지에 참여하여 나름대로의 문학활동을 전개하였고, 단합된 힘으로 1930년대의 순수서정시 운동을 일으킨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 부분에서는 박용철, 창작의 실제 부분에서는 김영랑이 순수서정시 운동의 요체를 구축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1930년대의 우리 시단에서 진정한 의미의 순수서정시 이론을 전개한 사람은 바로 박용철이고, 그 박용철의 순수서정시 이론을 작품으로 훌륭하게 실천해 보인 사람은 박용철 자신이 아니라 김영랑인 것이다.- 창작과정의 측면에서 (박용철의 창작과정론)1) 시인은 신의 창조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2) 서정시인은 재료를 배합한 후 가능한한 오랜 시간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3)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린 후에 비로소 최후의 열 줄의 시를 얻을 수 있다.- 박용철은 존재론의 측면에서 시를 하나의 자족적이며 독립적인 존재, 그리고 시의 자리를 일상과 구별되는 높은 자리로 설정했으며, 시를 어느 것도 간섭할 수 없고, 어느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이며 자족적인 실체로 상정했다.- 박용철은 기능의 측면에서 서정시는 독자들의 가슴에 저릿저릿한 기쁨을 일어나게 만드는 것이며, 감정이나 느낌을 유발시키는 것이 시의 고유한 기능이라고 했다.- 순수서정시의 특징1) 단형의 추구 : 김영랑이 단형의 시를 창작한 점과 관련시켜 제시할 수 있는 점은, 그가 노래하는 시로서 음악성을 특별히 중시했다는 점이다. 시가 외워서 부르는 음악의 상태를 지향할 때, 그 가사는 자연 짧아질 수밖에 없다. 박용철은 시문학지 창간호의 편집후기에서 “···우리르르르’, ‘도른도른’, ‘찌르르’, ‘흐렁흐렁’ 등 수없이 많은 음성상징의 표현들, ‘보드레한’, ‘오날하로 하날을’, ‘조매로운’, ‘애끈한’ 등의 토속적 언어들이다.김영랑 (1903 ~ 1950)본명은 允植. 시의 본도가 서정에 놓여져야 하며 그것은 언어의 섬세한 조탁에 의해 미학적 수준으로 상승되어야 함을 강조함으로써 이 땅의 시를 생경한 관념이나 도식적인 이데올로기의 수준에서 예술적인 차원으로 상승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마련했던 시인으로 평가됨. 1903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5백석 지주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남. 14세 되던 1916년 상경하여 YMCA에서 영어를 배우다가 이듬해에 휘문의숙에 입학함. 그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대략 이 무렵(1917-9)인 듯함. 3·1운동 때 그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6개월간 옥고를 치룸. 그러나 이 경험이 뒷날의 생애나 시작생활에 어떤 방식으로 살아 움직이는지 확인할 만한 단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음. 1920년 도일하여 청산학원 중등부와 영문과에 다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중도 귀국한 1923년 이후 1925년 재혼하기까지 기간동안 “신흥 사회주의적 분위기에 젖어 문화운동에 전력을 다했다”고 하나 현재로서는 입증할만한 아무런 근거도 없고 개연성도 희박함. 1925년 이후 1925년까지의 20년, 23세에서 43세에 이르는 동안 그는 시우, 친지를 만나거나 소일삼아 나들이하는 이외에는 강진을 떠나지 않았다함. 시골집에 정구장을 마련하여 자주 정구를 쳤고 음악에 조예가 깊어 국악, 양악을 모두 즐겼으며 거문고와 북을 다루는 데 빼어난 솜씨를 지님. 집 뜰에 300그루의 모란을 가꾸며 즐겼고 서울서 음악회가 있다하면 올라가서 듣곤 했다함. 1930년 박용철 등과 더불어 ‘시문학’지를 창간, 주재함으로써 1930년대 이 땅의 서정시 운동을 본격화하였음. 1935년 첫시집 ‘영랑시집’을 시문학사에서 간행함. 해방 직후 고향 강진에서 보수 우익단체인 대한독립촉성회 단장으로 활약했고, 1948년 초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행씩 결합된다.- 1·2행과 3·4행앞의 행이 길이가 짧고 뒤의 행이 길이가 길어서 느리게 시작해서 빠르게 끝나는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1행보다는 3행이 길이가 길기 때문에 낭송의 속도는 3행이 다소 빠르게 된다. 이것을 감정의 변화 상태에 대입하면, 1행에서 여유있게 시작된 정서는 2행에서 절실한 감정으로 바뀌고 3행에서 다소 이완되었던 정서가 다시 4행에서 정점을 향해 고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5~8행세 행의 길이나 정서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대등한 관계로 사실이 서술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즉 모란이 졌을 때의 허전함과 서운함을 유사한 어조로 표현한 것이다.- 9~10행9행의 길이는 길고 10행의 길이는 그것에 비해 짧은데 이것은 9행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말하기 위해 감정이 고조되고 10행에서 그것이 짧게 언급되면서 감정이 이완되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시의 형식이 그러한 율독을 지시하고 있으며 그런 방식으로 읽어야 이 시의 의미와 질감이 제대로 살아나는 것이다.- 11행갑자기 새행의 길이가 짧아졌다. 이것은 그 형태만으로 보면 1행과 같은 말을 반복한 것이지만, 앞에서 지속된 감정의 파동과 관련지어 보면 1행과는 그 시적 의미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2행과 4행에서 감정이 고조되어 5~8행에서 그것이 지속되고 9행에서 한 차례 상승했다가 10행에서 다소 이완된 정서가 11행에서 하강하면서 화자의 내면에서 정돈되는 모습을 나타낸다.- 12행그 어느 행보다도 길이가 긴데 이것은 짧은 행 다음에 긴 행을 배치하여 감정의 응축과 의미의 긴장을 꾀함으로써 아주 중요한 말을 던지려고 하는 시인의 의도적 방책이다. 말하자면 9행에서 비애의 감정이 고조되고 10행에서 그것을 수용하고 11행에서 거기에 안주하는 듯하다가 12행에서 다시 감정과 의미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시상이 종결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즉, 이 시의 구조는 음악적으로 완벽한 상승과 하강, 이완과 응축의 과정을 포유하고 있을 뿐더러 의미론적으로도 감정의 제시와 그 변화 과정에 맞는로 해석해도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시의 언술적 문맥 속에서 파악할 때 봄은 화자가 소망하는 궁극의 어떤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자신이 소망하는 최고의 것이 조국의 광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시를 그런 각도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의 의미 구조를 따라 보면 그런 식의 독법으로는 해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2행에 나오는 ‘아직’이라는 말에는 주위에 봄은 왔지만 나에게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나의 봄은 모란이 찬란히 피는 그 시점에 국한되어 있다. 봄바람이 불고 나비가 날고 잡다한 꽃이 피지만 그것은 나의 봄이 아니다. 나의 봄은 오로지 모란이 피는 그 순간뿐이다. 그런데 모란은 지상에 그렇게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 아름다움은 일순간 찬란한 빛을 발하다가 천지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실상 우리가 기다리는 모든 것은 어느 한 순간 우리 앞에 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다림을 포기해 버릴 수는 없다. 기다림을 포기하게 되면 삶의 의미와 보람도 없어지고 세상은 온통 사막과 같은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이다. 봄을 기다리며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인고(忍苦)의 시간을 통하여 모란은 생에 의미를 주는 존재로 변화하는 것이다.시인은 그 모란이 사라져 버리고 자신의 마음에 비탄과 상실의 감정이 남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해 놓았다. ‘뚝뚝’이라는 시어는 자신이 기다리던 대상이 무정하게 사라져 버리는 정경을 소리로써 나타낸다. 천지에 모란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과정을 시인은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이라고 말했다. 줄기 위에 핀 꽃은 물론 땅 위에 떨어진 꽃잎마저 사라져 버리는 그 처절한 상실의 순간을 시인은 포착한 것이다. 이 구절에는 자신이 소망하는 마지막 한까지 잃지 않으려는 구도자적인 간절함과 그 최후의 한 순간마저 사라진 다음에 오는 형언할 수 없는 비탄의 정서가 담겨 있다.그는 자신의 허망하고 비통한 심정을 9, 10행에서 과장되게 드러내었다. 평범한 독하지 않는다. 비록 그것이 사라진 다음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이 몰아닥친다고 해도 찬란한 어느 한 순간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삶이란 이렇듯 모순된 것이다.인간이 이루고 싶은 세계가 저마다 쉽게 이룩되고 한 번 이룩된 세계는 철옹성처럼 영구불변하다면 이와 같은 시는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설사 나왔다 하더라도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간 범사에 있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기다림과 안타까움의 수 없는 반복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영랑의 이 작품은 모란과 봄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소재를 통하여 인간의 보편적 감정과 삶의 보편적 현상을 드러낸 것이다.2. 그대는 호령도 하실 만하다창랑에 잠방거리는 섬들을 길러그대는 탈도 없이 태연스럽다마을을 휩쓸고 목숨 앗아간간밤 풍랑도 가소롭구나아침 날빛에 돛 높이 달고청산아 봐란 듯 떠나가는 배바람은 차고 물결은 치고그대는 호령도 하실 만하다이 시는 1935년에 간행된 ‘영랑시집’에 실린 작품인데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이 모두 그렇듯이 제목은 없이 일련 번호만 표시되어 있었다. 위의 제목은 1949년에 간행된 ‘영랑시선’에 붙여진 것이다. 이 작품은 ‘영랑시선’에 수록되면서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는데 그 가칠이 편집자인 서정주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지 김영랑이 직접 한 것인지 분명치 않을뿐더러 원래의 작품이 오히려 천연의 운율미를 잘 드러내고 있어서 발표 당시의 작품을 원전으로 삼는 것이 좋을 듯하다.이 시의 첫 행에 나오는 ‘잠방거리다’라는 말은 아주 재미있다. 이 말은 원래 작은 물건이 물에 잠겼다 뜨는 모습을 의미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섬들은 고정되어 있고 물결이 움직일 따름이다. 시인은 이것을 섬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동적인 양태로 표현한 것이다. 아울러 그것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들을 굽어보며 마치 그 섬들을 길러내듯이 바다에서 살아가는 그대의 늠름함을 드러낸다. 여기서 ‘길러’를 ‘가로질러’의 뜻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해석하면 이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