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문 경영과 광고시장의현황과 문제점차 례{Ⅰ.머 리 말1Ⅱ.신 문 광 고 시 장 의 문 제 점 1 : 세 부 적 문 제21)신 문 부 수 와 광 고 수 입 과 의 관 계22)불 합 리 한 광 고 료 책 정33)광 고 비 대 지 대 의 불 균 형4Ⅲ.신 문 광 고 시 장 의 문 제 점 2 : 구 조 적 문 제61)신 문 광 고 의 정 치 성7(1)재 벌 의 신 문 사 유 화7(2)언 론 자 본 의 권 력 화7(3)광 고 주 의 영 향 력 증 대92)과 열 경 쟁 과 광 고 시 장 의 왜 곡9Ⅳ.시 장 의 합 리 화 방 안101)신 문 의 사 유 화 나 정 치 적 이 용 배 제102)합 리 적 인 시 장 의 조 성103)유 통 망 개 선114)상 품 의 차 별 화125)광 고 가 치 의 합 리 화13Ⅴ.맺 음 말15Ⅰ. 머리말한국 신문 산업의 광고는 1980년대에 들어 언론 통폐합으로 독점적인 카르텔을 구축하고 정부로부터 받은 다양한 특혜와 함께 경제 성장에 따른 광고 시장 확대의 확대로 급성장을 하였다. 구체적으로 1980년의 신문 광고비는 989억원이었으나 1987년에는 3,398억원으로 3배 이상 성장하였으며, 1994년에는 무려 1조7,778억원을 달성함으로써 1980년에 비하여 약 17배, 1987년에 비하여 약 6배의 급성장을 하였다.{)「미디어 오늘」, 1996년 5월22일자.그러나, 세계적인 경기 후퇴와 뉴미디어의 출현 등으로 신문 광고는 차츰 감소되어 가고 있는데, 국제신문발행인협회(FIEJ)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43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각국에서 매년 신문 광고가 총광고비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 미국 : 1990년 24.9%, 1991년 24.1%, 1993년 23.3%, 일본 : 24.4%, 23.5%, 22.3%.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한국의 경우 신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40.5%로 매우 높은 편이지만 계속 감소가 예상되고 있다.{) 김정기, 95년 언론 전망-신문(중략), 「신문되는 셈이다.{) 정연구, 위기 탈출 지름길은 공동판매제 , 한국언론연구원, 신문과 방송, 1998년 3월, 25-26쪽.따라서 무조건적인 신문 부수의 확장보다는 독자의 성격을 파악한 부수 조정이 필요하다.또한 98년의 경우, 발행 부수 200만 부인 신문을 예를 할 때 1면 당 제작원가는 대략 10-12원 정도이다. 32면 기준으로 볼 때 신문제작 원가는 400원 선이다. 이를 한달 발행일수 28일로 치면 210억이고 연간 2,500억 원 정도의 원가가 든다. 이중에서 구독료 수입으로 500억 원 정도를 벌여들이고 나머지 2000억은 광고 수익으로 채워야 한다. 그런데 2000억 원의 광고 수익을 채우려면 대행사 수수료를 포함하여 2500억 원 정도의 광고 매출액이 있어야 한다. 이를 하루로 계산하면 7억 5,00만원의 광고 수주가 있어야 하고, 광고 비율을 50%로 볼 때 1단 1cm에 8만 5,000원이 되야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 광고 수주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해봐야 적자 구조가 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차입 금융에 따른 이자, 리스 비용에 따른 환차 부담 등을 더하면 적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손병기, 무리한 확장 결과 파는 만큼 손해, 원가절감 실현 후 올린다면 합당: 신문 구독료 얼마가 합당할 까 , 신문과 방송, 1998년 11월호.따라서 한국 신문 기업의 구조는 근본적으로 적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2) 불합리한 광고료 책정한국의 광고 요금은 상당히 높게 책정되어 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광고료는 그 신문의 가치에 의해 산정되어야 하나 한국의 신문들은 구체적 근거 없이 광고료가 높게 책정되어 있다. 광고료 산정의 가장 기본이 되는 부수 산정과 독자층 분석에 있어서 지극히 자의적이다. 부수 산정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자료가 되는 ABC에 의한 부수 산정이 아직도 정착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부수 산정은 지극히 비과학적이고 전근대적인 방식이다. 또한 광고의 직접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독자층의 분포에 있어서도 구체적인 자료를 .035.231.733.834.5198843.144.344.444.239.839.342.519894849494848.5199557.257.249.156.343.045.139.143.643.848.1199653.251.850.251.7199750.151.048.649.9199844.945.446.245.5출처: 1975-1995 한국언론연구원, 한국신문 과당경쟁 구조와 개혁방안, 1996. 9, 41쪽.1996-1998 신문과 방송, 98, 8, 7쪽.더욱이 요사이는 기사와 광고를 구분할 수 없는 광고 아닌 광고를 발견할 수 있다. 이름하여 기사성 광고인데 광고 자체를 기사처럼 포장하여 광고를 하고 그 옆에 진짜 광고(?)를 내는 형식이다. 일반 독자들은 일반 기사인지 광고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기사와 광고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신문 지면이 광고화 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경향은 한 중앙일간지 판매이사의 자탄에서도 드러난다. 신문판매는 광고를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첨병이고 길을 닦는 일꾼이다. 그러므로 신문사의 수익구조는 내용상으로는 판매 수입 0%, 광고수입 100%이다. {) 박성득, 푼돈 으로 경영해야 싸구려 면한다 , 한국언론연구원, 신문과 방송, 1998년 3월, 28쪽.이는 신문의 독립성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광고주의 압력으로부터 신문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Ⅲ. 신문광고 시장의 문제점 2 : 구조적 문제1) 신문광고의 정치성신문사의 생산 과잉 현상은 한국의 신문사들이 정상적인 시장 상황에서 태동하였기보다는 재벌이나 종교 단체의 정치적 계산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신생 신문의 경우 재벌이나 종교 단체가 신문의 경영 악화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이전, 부당 내부 거래, 광고 지원, 자기 재벌이나 종교 단체의 소속원들에게 신문 구독의 강요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신문사를 운영하여 왔다. 한국 신문 산업의 내재적 문제점중 하나는 소유 형태로 소유와 경영구조가 불합리하다는 점으로 즉 사유화 와 독점화 위하여 홍보성 기사로 광고국 직원을 측면 지원하는가 하면 일반 기사 옆에 기사성 광고를 채우는 편법도 동원하고 있다. 종전에도 이런 지면 형태가 있었지만 그 때는 활자를 달리해 일반 기사와 구별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요즘 일부 기 사들은 일반 기사와 기사성 광고가 똑같은 활자로 제작되는 경우가 다반사로 목격되고 있 다. 기사인양 독자가 현혹될 소지가 있는 광고를 신문사들이 공공연하게 제공하고 있는 것 이다.{) 문주용, 광고성 기획 기사 범람, 도둑맞는 지면 , 신문과 방송, 99년 6월.프랑스 르몽드의 경우, 우리의 오늘 부수는 42만 5천부라는 식으로 정확하게 부수의 공개 가 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한 광고비의 책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우리 나라의 신문들은 정확한 신문의 부수를 공개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광고비의 산정 근거가 되는 독자의 계층별 분포 등의 데이터를 내놓은 적이 없다. 근거도 없이 광고비를 책정하는 것 자체가 기업에 대하여 정치적 거래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에 다름없다.(3) 광고주의 영향력 증대또한 신문 매출수입의 70%가량을 광고판매에 의존하다 보니 신문에 대한 광고주의 영향력 도 막강하다. 그래서 광고주의 이익과 배치되는 경제기사를 축소하거나 아예 취급하지 않기 도 한다. 그 반대를 광고주의 이익과 합치되는 기사를 부각시킴으로써 경제정책을 재벌위주 로 유도한다. 금융-산업-환경-토지정책에서 그 같은 사례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소비자 사회가 도래했지만 아직도 경제관련기사가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 위주로 작성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영호, 앞의 글, 12-13쪽.2) 과열경쟁과 광고 시장의 왜곡한국 신문의 공급 체제는 1987년부터 무너지기 시작하여 1987년 당시 일간지의 수가 28개 (중앙 18개, 지방 10개)였던 것이, 1998년 8월에는 에는 110개 (중앙 45개 지방 65개)로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2000년 7월 현재 115개 (중앙 62개, 지방지 53개)로 계속 늘어나 생산의 과잉이 일없다. 엄청난 양의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오늘날의 시장에서도 그 기업이 망하거나 막바지에 몰리지 않는 한 자기의 상품을 덤핑 상품처럼 취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신문 스스로는 자기 상품을 덤핑 상품처럼 취급하여 시장에서의 교환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다. 한번 잘못 인식된 소비자의 마음을 되돌려 놓기란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신문은 자기의 가치를 스스로 보존하는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당분간은 어렵더라도 신문의 수입 중에서 구독료의 비중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구독료 중심의 경영은 광고료 중심의 경영보다 안정적이고 광고주의 압력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지금의 왜곡된 한국 신문 시장에서는 신문의 광고 가치가 상당히 있는 듯이 과대 포장되어 있지만 이는 순수한 시장 원리에서 비롯된 상품 가치라기 보다는 강압적인 광고 수주에서 나오고 있다. 오두범 교수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 신문 광고에 대한 인식은 광고주가 필요해서 광고를 내는 것이 아니라 신문 발행비를 조달 할 수 있는 재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한 두개 신문사를 빼고는 광고 확보에 혈안이 되고 있으며 언론의 권력을 이용하여 광고주들로부터 광고를 강요하는 식으로 시장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 오두범, 한국의 신문산업 , 한국언론연구원, 신문의 소유구조와 정책, 1997. 5, 277쪽.이는 광고주협회가 실시한 방송 및 인쇄 매체 집행에 관한 회원사의 의견 조사 결과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광고주들의 원하지 않는 인쇄광고 집행은 전문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신년이나 신문사의 창간기념일, 회사의 창립기념일, 특집, 기사 게재 및 누락을 전제로 한 광고 집행 요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광고주들은 대부분이 매체사의 힘 때문에 나눠주기식 광고를 집행할 수밖에 없는 점과 광고 청탁 및 강요가 지나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광고주협회, KAA저널, 1997. 4, 6-7쪽.따라서 신문 기업은 자기의 상품 가치를 스스로 올리기 위해서도 건전한 시장 논리에 입각한 상품 판
에 나타난 환상고골의 는 넵스끼 거리, 초상화, 광인일기, 코, 외투 등 다섯편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 작품들은 뻬쩨르부르그라는 동일한 공간적 배경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리얼리티와 환상의 조합을 통해 독특한 고골적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하나의 범주로 분 류되어 왔다.그러나 고골 자신은 이들을 묶어서 그렇게 이름 붙인 일도 없거니와 창작 연도를 조사해보아도 그 기간이 1835년 아라베스크에 실렸던 넵스끼 거리, 초상화, 광인일기에서 시작하여 후기로 분류되는 외투와 개작된 초상화가 1842년에 쓰이는 등 시간의 범위가 꽤 넓다.그런데도 이들을 라는 이름으로 묶는 이유는 우선 소설의 무대가 뻬쩨르부르그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뻬쩨르부르그라는 공간 말고 이 다섯 작품을 하나로 합칠 수 있는 공통분모가 또 있다. 바로 환상과 언어 스타일이다. 이번 리포트에서는 의 기저에 공통으로 흐르는 환상이라는 요소와 고골 작품의 특징이기도한 언어사용의 독창적인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특히 고골의 독특한 언어사용이 환상성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어떻게 작품 속에서 이용되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자.에 나타난 환상에 대하여·시공간의 비틀림을 통한 환상성 확립시간과 공간은 문학 작품 속에서 별개의 것으로 분리되기 보다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다. 시공간이라는 요소는 그 위에서 발생하는 문학적 사건의 필수 요소이자 배경으로 작용한다. 하나의 움직임, 하나의 인물, 하나의 묘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도 표면적으로든 음성적으로든 시공간이 함께 유기적으로 존재하므로 환상과 관련해서도 시공간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에서 고골이 택한 공간에 어울리는 시간은 대개가 밤이다. 더 이상의 구체적인 시간, 날짜나 계절, 연도 등은 그의 작품에 적용되지 않는다. 사실 계절이나 하루의 아침, 낮, 밤, 더 잘게는 몇 시 몇 분을 엄격하게 짜맞추고 따지는 것은 고골과 어울리지 않는다. 고골은 흔히 앞뒤가 맞지 않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예를 들자면 외투상적이지만 스페인이라는 공간의 환상성을 부각시키며 이를 통해 주인공의 혼란된 정신 상태를 단적으로 가리키는 지표 역할을 한다.이 같은 논의를 통해 볼 때 의 다른 작품에서 발견되는 시공간의 불일치의 이유{) 코에서는 시간 배경은 뻬쩨르부르그의 3월, 겨울인데 코발료프는 길거리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보고, 코 역시 외투도 안 입고 제복만 입은 채 돌아다닌다.를 작가가 시공간을 일관되게 정확히 맞추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지적은 설득력을 잃는다.{) 고골의 에 나타난 환상, 고려대학교 석사논문, 윤새라(1995)도리어 시공간의 불일치는 해당하는 시공간 뿐만 아니라 그 작품의 환상성을 조성하는 작가의 기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그러나 어둠이 집과 거리에 내려 앉자마자 멍석을 뒤집어 쓴 점등인은 가로등을 켜려 고 사다리를 오른다. ..... 그 때 넵스끼 거리는 다시 살아나 떠들썩해지기 시작한다. 램프가 뭔가 비밀스럽고 멋진 빛을 모두에게 나눠줄 때, 그 때 신비한 시간이 시작된 다.(넵스끼 거리)위의 예문에서 본 것처럼 고골의 작품들에서 환상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때는 예외없이 약한 불빛이 있는 밤이다. 피스까료프는 가물거리는 가로등 불빛 아래서 본 미녀의 미소에 홀리고, 촛불이 고요히 타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꿈을 꾼다. 차르뜨코프 역시 달빛이 흐르는 밤, 세 겹의 꿈{) 세겹의 꿈, 즉 깨도 깨도 꿈이었다는 것은 곧 그 이후의 사건도 결국 꿈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을 통해 초상화 속의 인물을 만난다. 그리고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도 자정이 넘어 가로등 불빛이 아물거리는 광장에서 정체 모를 괴한들에게 외투를 빼앗긴다. 시간의 질서 정연한 흐름에 의미를 두지 않는 일반적인 고골의 기법과는 달리 넵스끼 거리와 외투에서는 12시반을 알리는 종루 , 자정을 치는 종소리 가 분명히 삽입되어 환상의 시공간이 열림을 알리는 지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공간에 있어서도 고골은 뻬쩨르부르그를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한다. 이곳에서 득세하는 아름다움마나 많은 변화를 겪는지!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거리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 같지만 그것들마저도 한낱 환영이며 허상인 것이다.고골의 뻬쩨르부르그는 실재하는 수도의 이름을 빌린 비실재의 도시라 할 수 있다. 우선 고골은 뻬쩨르부르그의 가장 뚜렷한 지표인 백야나 운하, 네바강을 거의 등장시키지 않는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실제 지명은 넵스끼 거리, 메샨스까야 거리, 콜롬나 지구 등 주로 거리에 몰려 있다. 이처럼 네바강을 거의 등장시키지 않고 거리나 지역만을 되풀이 해 언급함으로써 도시가 뭍으로 이루어진, 여타 도시들처럼 평면적이고 닫혀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강은 바로 유동성, 더 넓은 곳으로 흘러들어가는 움직임을 뜻한다. 딱 한번 코에서만 네바강이 등장하는데 이발사가 처치곤란한 코를 결국 네바강에 떨어뜨린다는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그 러나 이 때 네바강은 다른 작가들의 네바강이 환상을 불러 일으키는데 비해 버릴 곳을 찾다 찾다 겨우 코를 빠뜨린 곳이라는 코믹한 성격을 띤다.(고골의 에 나타 난 환상, 고려대학교 석사논문, 윤새라(1995)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뻬쩨르부르그는 마법에 걸린 땅이 된다. 그리고 마법의 땅에는 악마가 등장한다. 넵스끼 거리에서 피스까료프를 유혹하고 환상에 빠뜨리는 여자의 미소는 마치 마법과도 같고 악마적이다. 또한 초상화에서 악마의 형상으로 나오는 고리대금업자가 악마의 형상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 뿐 아니라 코에서 코발료프가 자신의 코가 없어진 사건을 음모로 간주하고 배후에는 포드토치나가 마녀를 사주했으리라 생각하는 것처럼 등장 인물들도 악마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인정한다.이처럼 악마에 의해 마법이 걸린 땅처럼 변화하는 공간과 그에 담긴 혼재된 시간에 대해 로트만도 고골의 에 나타나는 공간이 환상적이고 비실재적인 사건들로 채워진 비공간이라고 지적한바 있다.{) 고골의 에 나타난 환상, 고려대학교 석사논문, 윤새라(1995)일상 공간이 허구로 또 비공간으로 변하는 의 세계는 지역의 구체성 속에 딱딱하게 굳고 공간적으로도 닫서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고 명시해 놓고 이야기를 풀어 나간 다. 오늘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광인일기) / 3월 25일 뻬쩨르부르그에서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코)그런데 다섯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사건들은 모두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걸쳐있다. 현실성과 초현실성이 충돌하며 넵스끼 거리나 초상화처럼 환상적인 사건이 꿈으로 밝혀져서 논리적인 설명이 가능해지더라도 그것이 현실의 행로를 바꾸고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그 둘 사이의 경계는 더욱 유동적이고 모호하다.넵스끼 거리에서 가장 두드러진 환상은 피스까료프의 꿈이다. 그는 천상에서 내려온 미의 화신으로 여겼던 여자가 실은 사창가의 여자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괴로워하다 잠이 든다. 꿈속에서 그는 꼭 현실인 것처럼 그녀의 초대를 받아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피스까료프가 처음 생각한 모습으로, 말하기 어려운 비밀로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것은 한낱 꿈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는 아름답고 가련한 그녀를 다시 보고 싶어서 계속 잠을 청하게 되고 얼마후에는 밤낮이 바뀌고 급기야는 아편에 손을 대게 된다. 결국 자신의 구혼을 그녀가 거절하자 피스까료프는 비탄에 잠겨 자살하고 만다.그에게 꿈은 단순히 꿈으로 머물지 않고 현실의 경계선 안으로 밀고 들어와 결국은 그의 삶을 잠식하고 그를 이 현실로부터 앗아가 버린 것이다.꿈속에서 보았던 사건이 그대로 현실로 이어지면서 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선이 모호해진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자연적인 해석이나 초자연적인 해석 중 어느 것도 단정지을 수 없게함으로써 환상적이 된다.초상화에서도 1부에서 차르뜨꼬프가 꾸는 꿈이 환상적인 사건이다. 초상화에서 노인이 튀어나와 돈을 세고 그 중 한 꾸러미를 자신이 챙긴 꿈을 꾼 차르뜨꼬프는 실제로 꿈에서 깬 그 날 아침 초상화 액자에 끼여 있는 돈꾸러미를 발견한다. 그 돈으로 밀린 집세를 지불하고 차르뜨꼬프는 몇 년간 그림 그리는 일에만 전념하겠다고 마음먹지만 곧 호화로운 집과 값싼 명예심에 술은 주로 아라베스끄 에 실린 초기 3작품에 적절한 표현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이후 작품들의 특징적인 징후를 볼 수 있다. 특징적인 징후라 함은, 본론에서 그 작품을 중심으로 다면적으로 살펴보겠지만, 고골의 의도를 단적으로 시사해주는 그의 언어사용의 독창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골의 언어사용의 독창성은 꿈과 환상을 사용한 사실감각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으며, 환상성을 더욱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골의 텍스트를 이루는 언어에 대한 연구는 에이헨바움을 비롯하여 벨르이 등에 의해 이루어져 왔지만, 사실 자연주의의 맥락에서 고골의 텍스트를 조명한 비노그라도프나 그로테스크 개념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 유리 만 등의 저작에서도 그의 언어는 주요한 연구 대상이 된다.{) 고골의 에 나타난 분열의 양상, 고려대학교 석사논문, 이장욱(1995)이러한 사실은 고골의 텍스트에 있어서 언어 스타일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독창적인 언어사용 스타일고골의 작품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고골적 언어사용의 스타일을 차례로 살펴보자.{) 흔히들 고골의 언어유희와 독특한 스타일은 원문으로 읽어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지적이 많 다. 물론 그런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부족한 러시아어 실력으로 인해 본 리포트에서는 한 글 텍스트를 기본으로 번역본에서도 느낄 수 있는 부분 위주로 살펴본다.우선 확정적 의미와 일대 일로 대응되지 않는 어휘들, 특히 부사나 소사 등의 품사들의 빈번한 사용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외투의 주인공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화법은 무슨 말을 할 때면 대개 전치사라든지 부사라든지, 또는 전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조사 따위를 늘어놓는 것이다. 예를 들면그런데, 저 그것이, 뻬뜨로비치..... 외투가 말이야. 나사지가.... 자, 봐, 다른 데는 아직 멀쩡한데 말이야. 먼지가 좀 묻어서 허름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새거야. 다만 한 군데 가 약간, 저... 등이야. 그리고 또 어깨가 한 군데 좀 해졌어, 알았지, 그것 뿐이야. 간 단한 일이
머리글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며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의약분업과 의료계 파업으로 인해 첨예한 대립이 진행중이다. 연일 뉴스의 첫머리를 차지하는 관련소식을 통해 시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의료개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많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를 단순한 이익집단의 이권다툼으로 치부하는 시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현실은 이번 사태의 많은 원인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 부재에 기인한다. 특히 이번 논란의 주요한 이유 중에 하나인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1977년 의료보험 실시이래 누적되어온 한국 의료보험체계의 모순점들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나라 의료의 제반 현상과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소득 1만달러 시대에 걸맞도록 의료보험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의료개혁의 핵심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의 현황과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고 어떤 방향으로 의료보험제도가 개선되어야 하는지 살펴봄으로서 이번 사태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모색해보고자 한다.의료보험제도의 역사 및 현황우리나라에 의료보험제도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이다. 국민들이 질병에 걸려 의료혜택을 받고 싶어도 돈을 마련하기 어려워 병원을 이용하기 어렵던 우리나라에 1977년 7월 근로자 500인 이상을 고용하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된 것이다. 이때 생계능력이 없는 저소득자에 대하여는 정부 지원에 의하여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의료보호제도도 함께 도입되었다. 1977년 이후 의료보험의 적용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함으로써 12년만인 1989년 7월에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을 적용하게 되었다.이처럼 짧은 기간에 전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성과였다. 짧은 기간동안에 이룩한 전국민의료보험제도는 후발주자인 다른 후진국들이 부러워하는 사회보장제도이다. 이 제도는 짧은 역사에 비하면 모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크게 공헌한 것 또한 사실가면서 재원조달방식도 혼합방식으로서의 특성을 띠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의료보험제도의 문제점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1. 보장성 보험이면서도 보장성이 없다.의료 보험은 대부분의 나라가 선택하고 있는 제도로 강제성이 있어서 사회 보험이며 동시에 보장성 보험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은 보장성보험이면서도 보장성이 없다. 감기 등의 가벼운 병으로 병원에 가면 의사에게 미안할 정도로 적은 본인 부담금을 내게 된다. 분만의 경우 강아지의 절반만 내면 된다. 그러나 암과 같은 중병에 걸리게 되면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부분이 커져서 본인 부담이 전체 의료비의 50%를 넘어간다. 즉 스스로 부담할 수 있는 경우는(감기) 보험에서 도와주지만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부담(암이나 만성 질환)은 보장성 보험이 보장할 수 없다는 현실이 우리나라의 의료 보험 제도이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서비스 항목의 과다에 따라 의료기관의 이용시에 환자 본인의 부담이 너무 높아져, 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매우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 제한되어 있어 이를 초과하여 장기 입원하는 경우 입원비 부담이 과중하다. 결과적으로 전체 진료비의 약 50%정도만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고 나머지는 환자가 직접 부담하여야 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던 주요 항목으로서 CT 촬영, MRI, SONO등 고가검사, 예방접종등 예방급여, 식대, 상급병실료차액, 180일 초과 진료, 치과급여 등이 있었으며, 그 외 약국 및 한방에 대한 보험급여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다.이러한 본인부담의 과중은 저소득계층의 의료이용기회를 제한함으로써 사회보험으로서의 본래 기능에 대한 회의를 가지게 한다. 특히, 국민의 소득수준이 향상되고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의료욕구는 더욱 커지고 있으나, 의료보험에서 제공되는 급여범위는 여전히 제한적인 것이다.2. 저수가 저부담 정책이다.의료보험에 대한 불만은 소비자뿐 아니라 의료공급자인 병원과 의사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의료서비스원에 비해 미국은 7만원, 프랑스 3만원, 일본, 싱가폴은 모두 2 만원 선으로 우리나라의 4-14 배에 이른다. 중환자실 입원비는 미국이 104배, 프랑스 60배, 일본 18배, 대만도 5.8배이다. 수술료는 미국이 15배, 싱가폴 10배, 일본 6배, 프랑스 3배이며 주사수기료는 미국이 95배로 조사되었다. 1977년 당시 통상 수가의 55% 선에서 출발한 보험 수가는 선시행 후보완을 약속한 정부의 23년간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부의 주장으로도 진료 원가의 80% (의료계 주장 65%) 선에 불과하다. 정부에 돈이 없으면서도 정치적인 논리로 의료보험을 시행하고 확대하는 과정에 불가피하게 나타난 현상이다. 대외적으로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평균수가(보험공단이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금액)는 미국의 1/35, 싱가폴의 1/15 이며 일본의 1/5, 대만의 1/4 에 불과하다. 원가를 밑도는 수가로 인한 경영 압박은 비보험 진료의 확대, 진료외 수입(영안실, 주차장, 임대), 약가 마진 등을 통한 병원 유지로 이어졌으며 위와 같은 법 테두리 내의 편법 외에도 각종 불법 행위가 조장되었으나 속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정부는 방조하였다. 우리나라 제왕절개 수술률은 43%(세계 1위), 병.의원에 큰 수입을 주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장치 보급률은 1백명당 4.7대(세계 3위)라는 기형적 기록을 갖고 있다.즉, 의료보험과 관련한 문제들의 많은 부분은 우리 나라의 보험료 수준과 연계되어 있으며, 이는 다른 국가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급속하게 확대된 의료보험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정부에서는 저보험료 정책을 고집했으며, 결국 급여의 범위를 제한할 수밖에 없어 의료보험 수가를 낮게 책정하게 된 것이다.3. 보험료 청구심사 과정의 전문성과 공정성 결여의료 보험 제도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의료보험 공단의 보험료 청구 심사 과정의 전문성과 공정성의 결여이다. 우리나라 의료보험 지급 구조는 돈 줄 사람이 얼마를 줄 것인가를 심사하여 결정하는장별 조합과 지역별 조합으로 분립되어 있어 소득수준이 낮고 젊은 층이 도시로 빠져나가 노인이 많이 사는 농어촌지역의 조합재정이 불안정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관리운영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는 결국 적정수준의 의료보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조달의 문제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의료보험제도 개선의 기본방향의료보험제도가 지향하는 기본목표는 뜻하지 않은 질병으로 말미암은 과다한 치료비때문에 개인이나 가정이 파탄되는 것을 막고, 질병의 치료와 회복을 통하여 정상적인 사회활동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에 있다. 더 나아가서는 질병의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고 모든 국민이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기본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의료보험제도가 추구해야 할 기본방향은 다음과 같다.1. 포괄적인 의료서비스를 통한 국민건강의 증진국민누구나 생명과 직결되는 질병의 치료와 회복에 필요한 포괄적인 의료서비스를 소득이나 재산 등의 유무에 따른 차별없이 보장받으며, 나아가 건강증진으로 쾌적한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료보험제도의 기본적 방향이 되어야 한다.2. 국민누구나 공평한 의료혜택 향유질병과 사고의 발생으로 인한 위험에 공동 대처함으로써 누구나 공평하게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민 각자의 부담능력에 맞추어 보험료를 갹출함으로써 제도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한다.3. 적은 비용으로 질 높은 의료서비스 제공모든 국민에게 포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이 소요된다. 그러나 국가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의료서비스 뿐 아니라 국가가 제공하는 여러 서비스들간에 우선순위의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의료보험을 위하여 할당되는 국민부담 및 정부예산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보다 적은 비용으로 보다 질 높은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가급적 줄여야 한다.4. 제도의 건실한 운영아무리 좋은 목표를 지향하더라도 제도가 로 실제로 보험혜택을 받기를 원하는 첩약과 한방물리요법에 대한 보험적용방안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2. 민간보험의 보충적인 역할 담당공공보험만으로 개개인마다 다양한 의료욕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의료의 본질과는 큰 관계가 없는 고급 시설 혹은 쾌적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욕구까지 포괄하는 것은 사회보험의 역할을 벗어난다고 볼 수 있다.따라서 이러한 공공보험의 역할 한계를 벗어나는 의료서비스에 대하여는 민간보험이 참여함으로써 공공보험에 대한 보충적인 역할을 담당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1∼2인 병실 혹은 고급병실 입원료, 환자의 치료에 직결되지 않는 고급 식사의 제공, 치료효과와는 관계없이 환자의 통증을 완화시키는 시술방법, 아직 보편적으로 적용하기에는 곤란한 새로운 의료기술 등에 대해서는 민간보험의 참여를 권장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하지만 보충적 민간의료보험의 확대는 의료비 지출의 증가라는 부정적 효과가 있으며, 의료이용의 비형평성이 문제될 수 있고, 보험운영의 관리운영비가 증대된다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외국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민간의료보험 도입은 그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매우 다양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갑작스럽게 도입을 검토하는 정부의 의도가 순수하지 못한 것이라면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나쁘게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료보험재정의 부족분을 극복하려는 의도라면,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된다고 해도 부실하게 출발할 수밖에 없고 향후 더 많은 문제들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모든 경우에나 그렇지만, 민간의료보험 도입 문제에 있어서도 성급한 결론은 위험하다. 그러므로, 총체적이면서도 면밀한 검토 후에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3. 의료서비스 가격의 현실화의료보험제도 도입 당시 국민의 보험료 부담수준을 감안하여 병의원에게 진료의 대가로 지불하는 보험수가를 낮게 책정하였다. 이에 따라 낮은 수가로 인한 병의원 경영난에 대처하기 위하여 진료량을 인위적으로 늘리거나, 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한다.
다의어와 동음이의어의 의미와 경계 설정1. 단의어하나의 의미를 가지는 단어들의 특성, 즉 단의성을 갖고 대상과의 상호관련성이 분명하게 나타나며, 그것들의 의미적인 경계가 완전히 정의되는 단어들을 말한다.◇ 특징: 하나의 내용측면, 한 종류의 실제 대상을 지칭, 명명적으로 일방향적임.2.다의어( )다의어란 단의어와 대응된 개념으로서 하나의 단어가 둘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둘 이상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를 가지는 단어이다. 통시적으로 특정 단어의 의미가 분화된 결과로써 원래 의미 이외에 여러 개의 파생의미가 병존하는 현상이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언어에 존재하며 자주 사용되는 단어들의 경우에 특징적인 것으로서 이런 단어들은 여러 종류의 실제 대상들을 지칭한다. 따라서 단의어에 비해 다방향적이다. 다의어의 모든 의미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함께 매우 복잡한 단어의 의미구조를 형성한다. 다시 말해 다의어의 경우 한 단어의 여러 의미들이 어떤 공통성을 보존한다.의미적 유사의 정도와 한계는 주관적은 것으로서 그 명확한 구분은 쉽지 않다. 특히 다의어와 의미 전이, 다의어와 동음어와 동의어의 구별은 실제로는 어려울 때가 많으나 이론상으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동의어와 다의어의 구분은 동의어가 하나의 의미(대상)를 나타내는 여러개의 단어를 가리키는데 반해 다의어는 하나의 명칭에 둘 이상의 의미가 결합되어 있으면서 이들은 어원적으로는 같은데서 시작되었으나 약간은 다른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을 말한다.전이와 다의도 이론상으로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전자는 하나의 의소와 그 변이의미들의 관계로서 어디까지나 이것은 하나의 의미이지 둘 이상의 다른 의미를 아니다. 하나의 주의미에 나타난 부차적 의미에 불과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다의는 하나의 단어가 둘 이상의 다른 의미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한 단어의 다른 의미들 간에는 어원적으로 하나의 의미에서 나누어져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전혀 다른의적인 의미들은 간접적으로, 즉 다른 단어들에 대한 대비를 통해서 이 관계를 반영한다. 전의적인 의미들은 상이한 연상들에 근거하여, 즉 한 대상, 현상, 특성 등의 다른 대상으로의 명명적 전이가 일어남으로써 발생한다.한 대상, 특성, 현상 등에서 다른 것으로 명명적 전이가 일어날 경우, 그 기저에 어떤 자질이 놓여 있는가에 따라서 의미 전이의 2가지 기본적인 방법들이 구별된다.1) 은유적 전이은유( )는 한 대상, 현상, 특성에서 다른 대상, 특성, 현상으로 명명이 전이 되는 것으로서 유사성에 따른 상이한 실제 대상들의 관계에 근거한다. 유사성은 외적인 자질들 (형태, 색깔, 크기 등), 내적인 특성, 상이한 다른 연상들과 관련하여 설정된다. 다시 말하 면, 외적인 특성, 분포 장소, 대상의 형태, 맛, 그리고 수행되는 기능의 유사성에 의한 명 명의 전이는 이미 존재하는 대상과 명명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새로운 대상 사이에 유사한 비유적 연상이 생김으로써 발생한다. 다음과 같은 단어들의 전이적 의미가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ex) - : 분포 장소의 유사성- : 형태의 유사성은유적 의미는 평가의 수단으로서 기능할 뿐 아니라, 낡은 기존의 단어에 의해 새로운 영 역에 생활의 새로운 현상들을 끌어 넣으면서 명명 기능도 수행한다. 가끔 비활성 대상에 대한 명명이 생물에 고유한 특성이나 행위로 전이되는 은유가 관찰된다:ex) ---은유적 전이의 변이형으로 대상들의 부차적인(이차적인) 명명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수 행되는 기능의 유사성에 기인한다.- 1) 회계 2) 계산기- 1) 새의 날개 2) 비행기의 날개- 1) 말의 안장 2) 자전거 안장은유적 전이와 기능적 전이는 어휘 체계에서 계속적으로 일어나지만, 모든 단어가 동일하 게 그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전이들은 특히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의 auda여과 관련된 어휘 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ex) - :분포 장소의 유사성- : 형태의 유사성2) 환유적 전이현대적 어휘 체계의 발전과 조직에서 인접않으며, 흔히 새로운 의미가 이전의 의미를 대치하거나 부차적 위치로 밀어내기 때문.2) 새 우리만 큰 사전 : 기본 뜻을 앞세우고 번져나간 차례로 배열한다.→ 문제점 : 현대 한국어 어휘의 공시적 체계성을 제시해야 하는 뜻풀이 사전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받아들이기가 어렵다.3) 그렇다면 1 빈도수가 많은 것부터 배열하는 방법과 2 기본의미에서 특수한 의미 순으로 배열한다.→ 문제점 : 1의 경우 공시적 관점에서 볼 때 어휘의미들 사이에 존재하는 한 언어의 어 휘적 체계성의 실상이 왜곡됨은 물론, 어휘의 통시적인 발전에 의해 규정되는 단어의 의미적 관련성이 파괴된다.2의 경우 어떤 다의어가 하나의 기본의미와 다른 하나의 파생의미만을 가질 경우에는 의미 배열에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많은 다의어들이 하나의 기본 의미와 둘 이상의 파생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이며, 여러 파생 의미들이 나타날 경우, 이 파생 의미를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는 이론적인 틀이 규명되어야 한다.단어의 모든 의미가 동일하지 않으며, 어휘의미의 여러유형의 구조에서 질적인 차이에 대한 문제를 가장 완벽하고 심도있게 연구한 사람이 비노그라도프이다. 그가 분류한 어휘 의미의 유형은 다의어에서 어떤 의미를 하나의 독립적인 의미로 보느냐 하는 점에 대해 훌륭한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한다.종합적으로 정리해 본다면 다의어의 의미 배열 순서에 대한 기준은 두가지 경우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빈도수에 의한 방법의 경우 어휘의미 배열의 원칙이 가장 객관적으로 보장된다. 또한 실제 사용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의미가 먼저 배열됨으로써 이용자에게 큰 편의를 제공하는 잇점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 배열의 원칙을 고수할 경우 공시적 관점에서 볼 때 어휘의 의미들 사이에 존재하는 한 언어의 어휘적 체계성의 실상이 왜곡됨은 물론, 어휘의 통시적인 발전에 의해 규정되는 단어의 의미적 관련성이 파괴된다. 따라서 빈도수에 따른 의미 배열의 원칙은 실용성이 강조되는 학습 사전의 경우에는 한 대안이 될 수 있으나, 한 언어의 규범성을 : 동음 형태부는 동일하거나 서로 다른 품사에 속하는 상이 한 단어들이 개별적인 문법적 형태에서만 소리와 표기법이 일치하는 경우를 지칭한다. 다시 말해 품사도 다르고 형태적 카테고리도 달리하지만 그 변화 형태 가운데 하나가 다른 단어의 형태와 같은 형태동음어로 나누어진다ex) (여성명사 단수 주격) / (남성명사 단수 생격)(동사의 미정형)와 (명사)(수사) / (동사 의 명령형)(미정형) / (3인칭 단수 현재)(동사 굽다 ) / (명사 난로 )(동사 알다 ) / (삽입어 아마도 )(형용사 간단한 ) / (명사 정박 )4) 동음 형태소 : 동음 형태소는 소리와 표기법에서 서로 일치하는 상이한 형태소를 의미 한다. 접두사와 접미사, 단어의 어간들, 대상의 의미를 지니는 접미사 - -과 과거시제의 의미를 나타내는 접미사 - -이 여기에 해당한다.ex) - - / - -어간을 구성하는 형태소들의 동음이의성은 흔히 상이한 구조적 분절, 그 형태소적 구성의 불일치를 나타낸다.ex) - (총의 폐쇄장치 부분) - (돌격대원)부분의 동음이의성은 전체의 동음이의성으로 귀결되므로 동음이의적 형태소와 소리에서 일치하는 언어단위들은 동음이의어가 되는 것이다.5) 이철동음어(동음이형) : 소리에서는 일치하지만, 상이하게 표기되는 단어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철자는 다르지만 여러 가지 음운현상, 이를테면 동화작용이나 묵음현상 등에 의해 같은 발음을 가지게 된 것을 말한다.ex) --(비스듬한) / (뼈의)(운명) / (락음악)(무도회) / (기압, 지진의 단위)이 단어들은 음성적 동음이의어로서 동일하게 발음된다.동음이의어는 그 구조에 따라 근원적(비파생적) 동음이의어( . )와 파생적 동음이의어( )로도 나뉜다. 근원적 동음이의어는 근 원적 어간을 가진다.ex) 1(평화) - 2(세계)반면에 파생적 동음이의어는 조어의 결과로 발생하기 때문에 파생어간을 가지며, 조어적 동음이의어( )라고도 한다.ex) 1(조립) - 2(주름)조어적 동음이의어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발의어(또는 동음이의어)가 생긴다.단어의 의미 발전과정에서 언어 외적인 원인들도 영향을 주었다.즉, 명명이 전의됨으로써 새로운 의미가 발생하였다. 명명이 전의되는 기저에 어떤 특성이 놓여 있는가와 전의의 경계들이 어떠한가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10. 동음이의성과 다의성의 구분.동음이의성을 다의성으로부터 구별하는 문제는 다의어 의미가 분열하여 동음이의어가 발생하는 경우에 일어날 수 있다. 이 경우에 한 단어의 여러 의미에 근거하여 완전히 다른 단어들이 형성된다. 그것들 사이의 이전 의미적 관계는 사라지며, 단지 어원적인 분석만이 그것들의 동일한 역사적 뿌리에 대해 증명해주는, 한때의 공통의 의미자질을 설정할 수 있게 해준다.ex) 1(환경) - 2(수요일); 1(욕설) - 2(전쟁)다의어의 의미적 분화는 매우 천천히, 그리고 긴 과정에 걸쳐 일어난다. 따라서 동음이의 어의 출현은 항상 완성된 과정으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동음이의어의 출현은 항상 완성된 과정으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과도적인 경우가 가능하 며, 따라서 많은 경우에 다의성과 동음이의성 사이의 명확한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 국 다의어와 동음이의어를 구분하는 문제는 많은 어려움을 야기하며, 항상 동일하게 수행 될 수는 없다.이러한 두 현상들을 정확하고, 일관성 있게 구별하는 어려움은 특히 실제의 사전 편찬에 서 나타난다. 그래서 많은 단어들이 어떤 사전에서는 다의어로 다루어지고, 또 다른 사전 에서는 다의어로 다루어지고, 또 다른 사전에서는 서로서로 동음이의적인 다른 단어들로 취급된다.한 단어의 여러 의미가 어떤 공통성을 지닌다는 사실에 의해서 다의어는 동음이의어로부 터 구별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이 의미들의 뜻풀이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동음이의 어의 경우 의미들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적인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다.동음이의어와 다의어의 상호관계를 고찰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임무중의 하나는 그것들 을 구분짓는 기준을 정하는 일이다. 이 두 언어 현상을 구별하는 방진다.
머리말러시아는 그들의 대륙의 크기만큼이나 폭이 넓은 문화 예술의 수준으로 볼 때에도 매우 깊이 있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그들의 문화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종교이다. 그래서 러시아의 역사나 문화를 이해하는데 종교, 특히 러시아 정교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는 전통적인 이교신앙을 바탕으로 러시아 정교라는 독특한 양식의 기독교 문화가 혼합되어 러시아 특유의 종교적 색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여기서는 먼저 러시아 특유의 이교신앙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러시아 정교를 중심으로 그 기원과 발전과정을 러시아 역사의 진행 과정 별로 살펴보고자 한다.(이후 박해기라 불리는 시기부터 최근까지의 상황은 다루지 않고, 1800년대까지의 러시아 정교역사를 살펴볼 것이다.)러시아 종교의 태동과 발전과정, 그리고 민간신앙과 러시아 정교회의 독특한 조화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러시아 정교회의 역사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 역사에 대한 이해도 넓힐 수 있을 것이다.전통적인 러시아의 이교신앙비잔틴 정교를 수용하기 전에 동슬라브에 속했던 러시아는 다른 슬라브족들과 마찬가지로 풍요로운 이교신앙 을 가지고 있었다. 슬라브인들은 9세기 이전에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이교신앙 및 그들 나름의 신화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남기고 있지 않다. 현재 슬라브족의 이교신앙의 제례와 의식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신앙이 자연의 현상을 신격화한 다신교였음을 각종 자료를 통해 추론할 수 있다.원초 연대기에 따르면 블라지미르공은 궁전 뜰 밖의 언덕 위에 금빛 수염을 한 번개의 신 페룬 의 목조상을 비롯하여, 태양신 다쥐보그 와 호르스 , 바람의 신 스트리보그 , 여상 노동의 수호신 모코쉬 , 일곱 개의 머리를 한 시마글 등의 상을 세운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번개, 바람, 태양, 대지의 생산력 등 자연의 힘을 숭배하고 신격화한 슬라브족의 공식적 이교외에도 슬라브 민중들은 여러 신들을 숭배하고 있었다. 판료들은 그녀의 공의롭고 공평한 통치에 대한 칭송이 높았다. 그녀는 957년에 대주교의 손에 세례를 받을 결심으로 콘스탄티노플로 여행하였다. 세례식은 호화 찬란하게 거행되었다. 그러나 만사가 이 왕녀의 계획대로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귀국하여 보니 귀족들이 순순히 그녀를 따라 교회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올가가 서로마 황제 오토에게 사신을 파견하여 감독의 파송을 요청한 것 자체가 그 당시의 혼란상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오토는 즉각 감독을 파견했으나 감독이 끼예프에 도착하기 전에 끼예프의 사정은 달라지고 말았다. 올가의 아들 스비아토스라프가 어머니의 권력을 인수하여 철저히 반기독교적 노선에 전념했던 것이다.그러나 러시아가 철저하고 영속적인 그리스도국으로 굳어진 것은 스비아토슬라프의 아들인 블라지미르에 의해서였다. 러시아의 가장 오래된 사료인 네스토의 연대기(The Chronicle of Nestor)를 보면 블라지미르가 자신의 신민에게 가장 숭고한 종교를 채택해주기 위해 사방으로 사신을 파견하여 종교들을 조사해 오도록 한 흥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슬람교, 유대교, 서방교회를 돌아봤지만, 콘스탄티노플에 이르러서야 그들이 찾고 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절들의 편지는 다음과 같았다.우리는 우리가 하늘에 왔는지 땅에 왔는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지 구상에서 이보다 더 웅장한 광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필설로서는 설명할 수 없다.... 너무나도 아름다와서 도무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위의 연대기에 나오는 이야기가 비록 전설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그 의미에 있어서는 많은 사실성을 지니고 있다.블라지미르는 비잔틴 제국과 평화적인 관계를 강화하려고 노력하면서 비잔틴 제국의 황녀 안나와 결혼을 하고 기독교를 수용하였다. 988년 블라지미르는 자신의 모든 신민들에게 기독교를 믿도록 명령하였으며,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초빙되어 온 성직자들은 주민들에게 세례 의식을 거행하였다. 나무로된 이교신의 우상들은 불태워지거나 강에 던져졌다. 많은 슬라브인들은 자Council of Russian Bishops)에 의해 추인 되었다.1380년 쿨리보코 폴레 전투와 1480년 타타르족 지배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사이의 100년은 러시아의 운명에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당시 연속적으로 일어난 몇 가지 사건들은 러시아인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즉 러시아인은 1380년에는 타타르족을 최초로 이겼고, 1439년에는 동방 정교 두 기둥인 비쟌틴 황제와 콘스탄티노풀 총주교가 플로렌스 공의회에서 라틴 이단에게 굴복했다는 실망스런 소식을 들었다. 한편 동방 기독교 진영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터키인에게 함락 당했다. 이어 1472년에 이반3세는 마지막 비잔틴 황제의 딸인 소피아 팔레오로고스와 결혼했으며, 비잔틴의 쌍두독수리를 자기의 문장으로 삼았다. 1480년 이반 3세는 마침내 타타르의 지배를 종식시켰고, 짜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인은 다른 동방 기독교인과 마찬가지로 교회와 황제가 모두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종교의 존속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제도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콘스탄티노플의 몰락은 놀라운 충격이었고, 그 여파로 최후의 심판이 다가왔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는 현상이 나타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러시아를 택하여 비잔틴 황제의 배교와 콘스탄티노플의 몰락으로 인해 제대로 수행되지 않고 있는 임무를 떠맡길 것이라는 희망이 점점 커져 갔기 때문이다.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 정교회 신학자들이 세운 가장 흥미로운 설은 제3의 로마론 이다. 그 설에 따르면 제1의 로마, 즉 로마 제국은 이단화 하였고 그 벌로 만족(蠻族)에 의해 멸망당했다. 제2의 로마인 비잔티움도 1438년에 있었던 피렌체 종교회의서 교황의 지상권을 인정함으로서 이단이 되고 그로 말미암아 터키인에 유린되는 바 되었다. 그러나 제1,2의 로마는 비록 망했어도 제3의 로마는 건재한다. 제4의 로마는 출현하지 않으리라 . 제3의 로마가 모스크바로서 지상 러시아인의 전 생활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이것을 통해 교회는 사람들에게 정의라는 보다 높은 차원의 이상, 약자에 대한 정당한 대우, 복수가 아닌 용서 등을 가르쳤다.즉 기독교가 러시아 민중들에게는 교조의 체계나 제도로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인생의 지표로 이해되었다. 수도원 제도의 설립자인 성 데오도시우스는 사제들의 사회 활동을 크게 강조했으며, 끼예프 부근에 있던 그의 유명한 동굴 수도원은 진실된 우애와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관대한 도움의 모범이 되었다. 데오도시우스 자신도 사회문제에 왕성한 관심을 기울였으며, 대공들간의 갈등에 개입하여 러시아를 내란의 위기에서 수차례 구해냈다. 이러한 주교들의 사회생활에 적극적인 참여로 전체 공동체의 이익을 대표했기 때문에 공후들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9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는 러시아 역사에서 끼예프 시대의 러시아 문화는 정교회가 주도했다.2) 속령 러시아 시대의 교회끼예프 러시아의 두 가지 공포, 즉 내부적 분열과 외국으로부터의 침략이 끼예프 국가의 몰락에 뒤이은 시대 동안 횡행하였다. 그 새로운 시대는 우젤리, 즉 공 개개인의 개별적인 보유지인 속령(appanage)의 의미를 갖는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Riasanovsky, p. 91.이러한 속령시대의 특징은 지방 분권화의 심화로 인한 불안과 1237년 몽고족의 침입으로 약 250년간 몽고족의 통치를 받게 된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의 흐름에 미친 몽고족의 침략은 그 자체가 러시아에 대규모의 황폐화와 학살을 초래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러시아 내에서의 주도권 다툼 끝에 결국 모스크바가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 모스크바의 성공적인 러시아 통합 은 속령시기의 종말과 새로운 시대의 여명을 기록했다.속령 러시아의 사회구조의 문제는 러시아 역사 속에서의 봉건제도라는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봉건제도는 초기의 미발달된 봉건제로, 이 시대의 상류층은 토지를 가진 지주들이었다. 상인들과 장인들 그리고 중간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나아가 이단자들에 대한 견해에서는 기독교 국가에서는 어느 누구도 잘못된 교리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당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다.라는 별명으로 불린 다른 학파는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자애롭고 자유롭게 하나님께 복종하려는 겸손하면서 회개하는 마음 이상으로 하나님을 흡족하게 해 주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가르쳤다.그러나 이 두학파의 공존은 짜르 바실3세의 재혼에 대한 상반된 견해로 짜르의 재혼을 동조한 소유파가 기득권을 장악하여 균형이 깨졌고, 이로 인해 기독교내의 균형이 깨어졌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자유를 침범한 결과 교회와 국가 사이의 관계는 악화되고 러시아는 붕괴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3) 모스크바 러시아 시대의 교회뇌제(雷帝,The Terrible) 이반 4세의 통치와 더불어 속령시대는 지나가고 모스크바의 전제권력은 완전히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이반4세는 황제로 즉위하고 자신을 공식적으로 짜르라는 칭호를 사용하는 것을 동방 교회의 총주교들에 의해 승인을 받아 냈다. 그는 불행한 어린 시절의 영향으로 13세부터 권력을 잡고 비정상적인 잔인성을 보여 왔다. 그러나 1547년 모스크바의 대화재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내린 재앙으로 생각하고 참회하였다. 이때 사제 실베스터가 이반에게 접근하여 러시아의 번영과 개혁을 이끌어 냈다. 1549년 젬스끼 쏘보르(zemskii sobor: 일종의 신분제 의회로서 전국 회의 혹은 제죽회의라고 번역할 수 있다)가 소집되었고, 1551년에는 100개 조항 평의회로 알려진 거대한 교회 평의회(공의회)가 생겼다. 전자를 통해서는 이반4세 자신이 계획한 개혁들을 승인 받았고, 후자는 교회의 고유 업무들의 통제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와 관련하여 교회의 지위를 통제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Riasanovsky, pp. 202-203.이 기간에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에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를 대변하고, 러시아가 아시아인에게 밝은 빛과도 같은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떠맡고 있다는 확신을 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