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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적예수논쟁에관하여_연구사를중심으로
    역사적 예수 논쟁에 관하여- 연구사를 중심으로 -Ⅰ. 들어가며기독교는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바탕을 둔 신앙이다. 진정한 기독교를 말하고자 한다면 결국 예수가 누구인가를 물어야 한다. 따라서 “예수는 진정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모든 기독교인은 물론이고 비 기독교인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중대한 물음이다. 바로 이것이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 에 대한 탐구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질문이다. ‘역사적 예수’ 논쟁은 다음과 같은 논지에서 출발한다.신약성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바로 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적 인물로서 공생애기간 동안 많은 사역을 한 구체적인 존재이다. 즉,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 전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어떠한 관계성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부활하기 전의 예수의 사역에 대해 분명하게 알 필요가 있다.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진짜 예수’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우고 알 수 있게 된다.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는 전통적인 교의학적 기독론에 대한 의혹과 더불어 예수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 관심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결과물이다. 과거에는 주로 독일의 ‘종교사학파(religious-geschichtliche Schule)’ 를 중심으로, 현대에 와서는 미국의 ‘예수 세미나(the Jesus Seminar)’ 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본 논고에서는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연구의 흐름을 시기적인 분류에 따라 살펴보고 그에 따른 평가와 제언을 하고자 한다.Ⅱ.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연구사1. ‘고전적 탐구(old quest)’의 시기이 시기는 일반적으로 라이마루스(Hermann S. Reimarus)에서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합리주의(rationalism)와 중세의 권위에서 벗어나 과연 기독교 신앙의 참된 근거가 무엇인가에 대해 추구하기 시작했던 시기이다. 그저 교회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신격 수 있는 가능성을 따라 살았던 많은 인물 중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예수는 위대한 종교적 천재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단정지었다. 스트라우스는 “신약의 기록이 역사적인 것으로 판단될 때까지는 신화이다”라는 태도를 취하며, 이렇듯 예수 전승이 신화적으로 변형된 것은 신화적 상상력의 무의식적 과정 때문이라고 하였다.슈바이처는 비종말론적 도덕가나 교사로서의 예수상(像)을 강조했던 ‘고전적 연구’ 학자들과 달리 예수를 하나님 나라의 임박한 도래를 믿었던 묵시적 종말론자로 규정하였다. 슈바이처는 『라이마루스에서 브레데까지』 (Von Reimarus zu Wrede, 1906)에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자기시대의 근대적 관념을 역사적 예수에게 투사하였다고 비판하였다. 곧, 지금까지의 연구는 “‘역사적 예수’ 상(像)이 아니라 단지 각 저자의 시대 정신과 이상이라는 의상을 예수에게 덧입힌, ‘현재적 예수’ 상(像)에 불과하다.”는 것이다.2. ‘무(無) 탐구(no quest)’ 의 시기슈바이처의 비판으로 1778년에 시작되어 1901년까지 전개된 역사적 예수 연구는 학계에서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예수를 특정한 유대적 존재로 인식하면서 우리와는 전혀 무관한 존재로 바라보았다. 따라서 예수보다는 복음서 자체에 관한 연구에 더 몰두하게 되었다. 대표적 학자로 불트만(Rudolf Bultmann)과 신 정통주의(neo-orthodoxy) 노선의 바르트(K. Barth), 틸리히(P. Tillich) 등이 있다. 이 시기를 거쳐 20세기 중반, 일군의 불트만의 제자들로 구성된 포스트 불트만 학파에 의해 ‘새로운 탐구(new quest)’의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3. ‘새로운 탐구(new quest)’의 시기‘새로운 탐구’의 시기는 역사적 예수 연구는 방법론적으로 가능한 것이며 신학적으로도 필요하다는 입장이 주를 이루고 있다. 곧 역사적 예수의 말과 행동 속에서 신앙적 예수(케리그마)의 근거를 찾고자 했던 시기이다. 이 시기의 연구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1956)가 있다. 보른캄은 이 저서에서 무조건적인 죄의 용서와 죄인들과의 식탁교제 및 여러 이적들을 여느 예언자나 랍비에게서는 볼 수 없는, 오직 예수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양태로 보았다.이 시기의 연구는 예수의 중요성을 단지 그의 죽음과 부활에만 국한시켰기 때문에 마치 부활 이전의 예수는 기독교 신앙의 시작과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만들어버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Ⅲ. ‘제3의 탐구(third quest)’ – ‘예수 르네상스’ 시기70년대의 데탕트(détente) 시대를 거치면서 학문간, 종교간의 대화 분위기가 형성되고 타 종교, 특히 유대교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상황을 맞으면서 1980년대 이후로 소위 ‘예수 르네상스’라 불리는 새로운 역사적 예수 연구가 일어났다. 이전까지의 연구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이 주를 이뤘다면 이 시기는 미국을 중심으로, 그리고 대학이나 메이저 단체가 아닌 군소 학회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그 중 ‘예수 세미나’의 연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1.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1985년에 시작된 이 학술적 운동의 이면에는 주로 교리상으로 고백되는 신앙의 예수 그리스도(케리그마)와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예수와는 커다란 틈이 있다는 의구심이 자리잡고 있다. 과연 신약에 기술된 예수의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초대교회의 신앙의 변천으로 생긴 루머이고 어디까지가 역사적인 사실인가? 이것이 예수 세미나가 가졌던 의문이었다. 이들의 연구는 복음서의 기록이 정확한 역사가 아니고 전승된 자료에서 문학적 기교와 신학적 동기에 따라 구성된 설화라는 전제하에 출발한다. 그러므로 복음서 내에서 전승의 분리된 경향과 각각의 경향을 역사성의 기준에 따라 식별하는 데 관심을 둔다. 또한 그들은 문헌을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하면 신화적 예수와 역사적 예수를 분리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이들은 연 2회에 걸친 모임에서 회원들의 토론과 투표를 거쳐 예수의 말씀의 진정성의 정도를 가장 확실한 것에서부터 가장 의심스러운 것까지 각각 순로 정경 복음서의 가치를 거부한다. 특히 바울서신을 예수에 대한 역사적 지식을 얻는데 있어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예수의 ‘참 모습’을 발견하려면 기독교인이 읽는 성경과는 다른 어떤 곳에서 발견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도마복음’나 ‘유다복음’ 같은 비정경 자료들도 활용한다. 셋째, 역사적 예수를 신앙의 그리스도에게 복속시키는 복음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교회의 모든 교리들을 역사적 탐구에서 제외시키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예수 세미나의 경우처럼 예수의 말씀과 행적들 가운데 진정한 것들을 가려내고자 시도한다. 방법론적으로는 ‘간(間)학문적(interdisciplinary)’ 연구의 경향으로 종교사학, 문화인류학, 사회과학 등으로부터 가져온 모델들을 체계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버나드 B. 스캇(Bernard Brandon Scott)은 “역사의 예수에 관한 역사적 질문은 이제 마감됐다. 그 대신 역사의 예수에 관한 간학문적 질문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표현했다.3. 연구의 결과들‘예수 르네상스’ 시기의 연구들은 예수의 인식에 있어서 이전 시기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 첫째, 종말론적 예언자로서의 예수가 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예수가 말한 종말은 연대기적 의미, 즉 실제 시간적인 마지막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었다고 보았다. 둘째, 예수를 교사로서, 특히 ‘체제 전복적인 교사(subversive wisdom)’로서 이해하였다. 이것은 예수의 말씀에 대한 양식들을 다루는 최근의 연구들, 특히 잠언, 비유, 금언 및 자연에 대한 말씀들 등 지혜 양식들에 대한 연구의 영향이다. 이는 이전까지의 전통적 지혜자(conventional wisdom)로써의 예수와 가장 두드러지게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교사로서 예수는 전통적 지혜를 전복시킬 뿐 아니라, 기성의 문화 속에서 안위하거나 정체성을 찾기보다는 하나님의 영 속에서 삶을 살아가라고 청중을 향해 촉구하는, 전복적인 현자로 나타난다. 셋째, 예수의 사회적 세계에 대한 연구가 주요 논제로 떠올랐다. 며 그것의 바탕 위에서 신앙적 체험과 확신에 대한 해석과 증언으로 이해되고 들려질 수 있는 것이다. 역사라는 방법이 예수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또한 역사적 실재가 유일한 진실이 될 수도 없다.2. 제언진정한 예수란 바로 신약성경 본문에서 만날 수 있다. 기독교 신학의 객관적 주제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신화나 어떤 추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속에서 살다가 그 역사적인 과정의 진행 속에 죽어야 했던 인물이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적인 탐구는 기독교 신앙 자체에 의하여 요구되는 것이다. 예수의 역사적 실존에 대한 역사성을 밝혀내는 작업은 정당하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에 관한 역사적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는 역사적 증거에 근거를 두고 예수를 믿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맺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그 증거를 뛰어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단지 예수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 이상이다. 예수를 올바로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시며 동시에 살아 있는 말씀 그 자체인 예수에 의해 신앙 안에서 붙잡히는 것이다.역사적 예수 논쟁에 대해 조사하면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는 빌립보서의 말씀이 내 가슴을 뛰게 한다. 우리의 신학함이 이 고백의 말씀 위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참고문헌1. 성서『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07.2. 단행본김진호 편. 『예수 르네상스: 역사의 예수연구의 새로운 지평』.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6.Ferdinand Hahn. Historical Investigation and New Testament Faith. 최재덕 역.『역사적 예수 연구와 신약성서신앙』 서울: 한국장로교 출판사, 1996.Gerd Theissen and Athens Mertz. Der Histo 1
    인문/어학| 2010.05.11| 10페이지| 2,000원| 조회(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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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영미소설]Obit for Comfort Woman 평가B괜찮아요
    Prologue- writing the obit‘나는 죽은 자의 삶을 기록한다.)’ 소설에서 ‘Beccah’는 죽은 자들에 대해 부고기사를 쓰는 사람이다. 이미 6년간이나 죽음을 기록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 앞에선 그간 공식처럼 사용해 왔던 각종 어구들을 한 줄도 쓸 수 없다. 그러한 ‘Beccah’의 모습은 바로 작가를 비롯하여 식민 지배, 종군위안부 등의 아픈 역사를 지닌 우리 한민족의 모습이다. 나는 이 작품이 소설 속 ‘Induk,’ ‘Akiko)’와 같이 육적으로, 영적으로 무참히 죽어간 많은 이들을 향한 부고라고 생각 한다.My own analysis- destructive image for men부고는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글이다. 작가는 이 부고를 쓰면서 단순히 앞서 죽어간 역사의 희생자만을 언급하고 있지만은 않다. 작가 또한 한민족의 피가 흐르는 한 명의 역사적 주인공으로서 역사적 아픔에 대해 몰랐던 자기 자신의 죽은 의식(意識)에 대한 것이요 동시에 읽는 독자에게도 의식의 죽음에 대해 알리는 부고인 것이다. 하지만 노라(Nora Okja Keller)가 말하는 부고는 단순히 알리는 것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이 제3자에 대한 것이 아니요 ‘Beccah’가 바로 나 자신, 그리고 ‘Akiko’가 바로 우리 어머니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더욱 극적으로 말하기 위해서 작가는 전쟁, 군인, 일본) 등으로 대표될 수 있는 남성적 이미지에 의해 파괴당한 여성의 이미지를 상당히 과감하게, 그리고 과도하게 드러내고 있다.작품에서 위안부에서 낙태를 시술하는 일본인 의사와 당하는 한국인 여성(Akiko), 그리고 그 장면을 잔인하리만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파괴당하는 쪽이 ‘Akiko’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잉태된 생명 또한 파괴당함으로써 그러한 역사적 사건이 당대 뿐 아니라 후대까지 파괴하는 것임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계성 때문인지 ‘Beccah’는 연신 자신의 가장 가까운 혈육인 아버지에게서 조차 남성의 파괴적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다. 학급에서 자작시를 낭독할 때 읊었던 냉소적인 내용의 시)가 그러했고 꿈에서 만난 아버지가 자신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태워 없애버리는 존재)로 묘사한 것이 그러하다.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일본이 보여준 남성적 파괴의 이미지는 계속적으로 ‘Akiko’의 삶을 통해 보여 지고 있다. ‘Akiko’가 부모님의 죽음 이 후 언니들과 헤어져 위안부로 끌려간 뒤로 그녀의 인생에서 다시는 만남이라는 희망은 없었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자리에서도 출산을 돕는 의사를 자신을 파괴시켰던 위안부에서의 의사 또는 군인으로 동일하게 인식한다.)작가는 이러한 남성의 파괴적 이미지들을 미국인 선교사 남편에게도 그대로 투영한다. 겉으로는 그녀를 구원하고자 하는 성직자처럼 굴지만 그 내면에는 그저 성적 탐닉을 위한 대상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이러한 이미지들(파괴당한 자신의 삶)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해결 방법을 작가는 ‘Beccah’를 통해 말하고 있다. ‘Beccah’는 사실 앞서 언급한 파괴적 이미지들의 결과로 태어나게 된 소산물이다. 때문에 어머니는 줄곧 ‘Beccah’가 자신과 같이 그러한 이미지들에 억눌리지 않고 탈피하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Induk’의 혼령을 받아들임으로 파괴적 이미지의 기억을 그대로 내재화하지만 딸 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Beccah’는 어머니의 그 파괴된 과거를 직시하게 된다. 그리고 염을 하며 어머니를 손수 씻기고 유골을 강물에 흘려보냄으로서 어머니가 늘 말해왔던 바리공주)로서의 역할을 의지적으로 실현한다.Criticism- How to recognize노라 옥자 켈러(Nora Okja Keller)는 우연하게 듣게 된 한 정신대 할머니의 증언으로부터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완성한 후 그제서야 거울 속 자신을 떳떳이 볼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한 작가와 그 작가의 자식과도 같은 작품의 관계에서 볼 때 그러한 과정과 탈고 이후의 정체성의 회복에 대한 일화는 상당히 고무적이며 감동적인 이야기임에 틀림없다.하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내내 줄곧 파괴하는 남성과 파괴당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너무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분명하고 강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하지만 ‘위안부’라는 그 소재를 살펴볼 때에 그러한 전개는 너무 이분법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위안부’라는 상황은 당시의 시대적 역사적 상황들과 연계되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들은 다루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Akiko’가 위안부로 끌려가는 장면)에서 단지 언니의 결혼 지참금 마련을 위한 한 가정의 개인적인 사정만을 이유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한 좁은 시각이 이 작품이 단순히 여성의 관점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더욱 폭넓게 논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다.Epilogue- obit for the Comfort woman작가는 작품의 후반부에 와서 지금까지 묘사해왔던 ‘Akiko’라는 일본식 이름을 지닌 여성에게 그녀의 죽음을 통해서 본래의 ’Soon Hyo’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한다. 이는 올바른 정체성을 지니지 못한 채 사회 저편에서 고통받아왔던 위안부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그들이 감추고 억눌러야만 했던 과거의 종식을 촉구하고자 하는 또 다른 형태의 ‘부고’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독후감/창작| 2007.06.20| 3페이지| 2,000원| 조회(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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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이츠의 시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
    예이츠의 시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예이츠의 시에 나타난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인들과의 관계에 따라 시에 등장하는 여성상이나 남성의 이미지가 변모하고 있다. 그가 가장 오래 마음에 품고 있었던 모드 곤(Maud Gonne), 셰익스피어 부인(Mrs. Olivia Shakespear)과 그의 부인 조지 하이드 리(George Hyde-Lees)를 살펴보면서 그들과의 관계가 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초기 시에 나타나는 여성은 그가 사랑했던 여인인 모드 곤(Maud Gonne)과 관련이 깊다. 'The Rose Of the World’'에서 예이츠가 노래하는 장미는 모드 곤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미의 상징이다.) 예이츠는 아름다움이 꿈처럼 사라지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름다웠던 헬렌으로 인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고, 아일랜드 신화에 나오는 우스나의 아이들도 죽었다는 것을 통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사라져도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이 외로운 얼굴이 영원히 살아있으며, 이에 더하여 고달프고 정에 겨운 미녀는 오래전부터 하나님 곁에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모드 곤이 이 미녀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변화하고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 많은 세상에서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대한 열정에 불타는 모드 곤에 대한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그녀는 다가갈 수 없는 여신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모드 곤에게 구혼했으나. 아일랜드를 정치적으로 해방시켜야 한다는 그녀의 신념으로 인해 그녀는 그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고 이는 예이츠의 가슴속에 거친 여신의 이미지로 남게 되고 그녀의 아름다움과 자신의 외로움을 찬양하게 된 것이다. 소유하기 힘든 그녀를 추구할수록 그의 심정은 슬프고 외롭기만 하지만 그녀에게 매혹되기만 한다. 이로 인해 더욱 허망하게 찬란하고 고혹적인 외로움을 가지고같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을 우러러볼 수밖에 없고 여신처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The White Birds'는 예이츠가 모드 곤에게 최초로 프로포즈를 거절당한 날 바닷가 벼랑 뒤를 거닐면서 그녀가 자기는 만일 새가 된다면 갈매기가 되고 싶다고 한 말을 염두에 두고서 쓴 시이다. 실연의 가슴 아픔과 덧없는 이 세상을 떠나 근심 걱정 없고 시간의 흐름도 없는 영원한 나라에서 살고 싶은 소망이 담겨있다.) 이슬 맺힌 백합과 장미, 꿈같은 것들에게선 피로가 온다고 하고 장미와 백합, 불길의 초조함에서 벗어나는 나라로 가고 싶다는 것은 어쩌면 그녀에게 강박관념과도 같은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에서 벗어나서 나와 사랑에 몰두하자는 말이 아닐는지.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은 피로가 될 것이니 아름다운 곳에서 근심 걱정 없이 살자는 의도라고 생각했다. 사라져 없어지는 유성, 바다의 물거품, 이슬 맺힌 백합꽃과 장미 등은 모드 곤의 아름다움과 관련된 듯싶다. 환상적이고 신비롭고 낭만적이며 세련된 시적 이미지는 나약해진 시인의 감수성과 연관되어진다. 분명 모드 곤은 그의 초기시의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은 예이츠가 34세 때에 쓰여진 시로 그가 한창 모드 곤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에 불타던, 그리고 꿈같은 막연한 상상력으로 화려하고 신비한 낭만세계를 노래하던 때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하늘나라의 수놓은 옷감이 있다면 그 옷감을 당신 발아래 깔아드리겠지만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뿐인지라 내 꿈을 당신 발아래 깔았으니 사뿐히 밟으시라는 내용이다. 빛과 색체의 영롱한 아름다운 이미지를 통한 사랑에 도취한 시인의 황홀한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금빛, 은빛, 파란 이미지와 하늘의 아름다운 이미지는 환상에 도취될 정도이다. 모드 곤이라는 여성이 시인의 시에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이미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시인에게 여성은 이와 같이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색깔과 빛으로 연결되고 자신은 그 형이기도 한데 ‘진달래꽃’의 화자도 떠나가는 여자를 붙잡지 못하고 단지 길에 진달래꽃을 뿌릴 뿐이다. 시의 등장하는 남자의 이미지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예이츠는 모드 곤에게 20년간 줄곧 구혼을 했고, 수많은 시를 바쳤으나 모두가 허사였다. 열혈의 여인인 모드 곤은 예이츠가 자기의 남편이 되기에는 너무나 나약하며 몽상적이고, 이상주의적이며, 소극적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예이츠 자신도 그녀가 좋아할 수 있는 그런 능동적 정치인이 되기 위하여 무한히 노력했으나 그의 평생에 회복할 수 없었던 커다란 충격을 남긴 채 존 맥브라이드(John MacBride) 소령과 결혼해 버렸다.) 그녀의 결혼은 그에게 큰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 울적한 마음은 에도 잘 나타나있다.나로서는 당신의 말만을 듣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그것은 당신이 아름다운 것, 나는 과거의 사랑 바른 길에 서서그 길에서 당신을 사랑할려고 노력한 것, 또한모든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둘이 함께 마음까지저 여윈 달과 같이 피곤하여 지쳐 버린 것입니다.사랑의 실패로 인해 지쳐버려 여위게 된 달에 자신을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에는 평온한 어조로 담담히 쓰여지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예이츠의 문체는 점점 더 쓰디 쓴 것으로 변모해 갔으나 사랑과 고뇌를 넘어서는 평온해진 마음으로 초기의 몽상적인 사랑의 시에서 정교하고 장식적인 이미지를 벗어나 현실적인 문제로 옮겨가게 된 것 같다.그러나 예이츠는 모드 곤에게 구애하고 있을 당시에도 이혼을 거절하는 남편이 있는 셰익스피어 부인(Mrs. Olivia Shakespear)과 복잡하고 열정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들은 사랑의 도피를 합의하기에 이르고 그들의 관계는 1년 정도 계속되었지만 셰익스피어 부인이 예이츠의 마음속에 모드 곤이 굳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고는 실망한 나머지 그를 떠나 버렸다. 몇 년 후 그들이 다시 화해했을 때, 그녀는 예이츠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으며, 서신왕래자로 변신해 있었던 것이다.)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그의 복잡한 솔직하고 예의 바르며 당당한 면모의 상반된 성격이 공존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 모드 곤의 사랑을 획득하기 위해 예이츠는 후자의 가면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모드 곤에게 부족한 사람인 것을 알고 있는 예이츠는 어떻게든 그녀와 어울릴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시에서도 부족하고 허약한 남성화자가 가면을 쓰면서 까지도 그녀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A Player for My Daughter'는 예이츠가 모드 곤에 대한 오랜 짝사랑을 청산하고 52세의 나이에 결혼하여 얻은 첫 딸 앤이 요람에서 잠들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 애의 장래를 걱정하는 자상한 부정을 드러낸 시이다.) ‘바라건데 이 애에게 아름다움이 주어지이다, 그러나 처음 보는 이의 눈을 어지럽히거나 거울 앞에서 제 모습에 제 눈이 놀라는 미는 아니기를. 그런 미인은, 그 미가 지나치기 때문에, 다만 아름다움만으로 족하다 생각하여 타고난 친절을 잃고, 또한 옳은 것을 택하는, 흉금을 털어놓는 친분을 잃어 결코 친구 하나 얻지 못하리라... 나는 이 애가 무성하면서도 눈에 뜨이지 않는 나무가 되고... 흥겨운 것은 좋지만 남자를 추적하는 일 없고 흥겨운 것은 좋지만 말다툼하는 일 없기를...’ 이런 구절들로 보아 예이츠는 딸 앤이 눈에 띠는 미인보다 고상한 홍방울새 같은 여자가 되기를 바란다. 미인들은 비극의 운명을 지닌다고 생각하였는데, 헬렌은 ‘한 바보녀석’이라고 표현된 남편을 만나서 큰 환난을 겪었고,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는 다리가 굽은 대장장이가 남편이었다. 예이츠는 딸이 이와 같은 미인이 되기보다 예절 바르고 고결하고 친절한 전통적인 여성의 미덕을 갖추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작가가 생각하는 이들과 같은 미인은 모드 곤과 관련 있을 것이다.이지적인 증오심이 가장 나쁜 것이다.그러니 이 애에게 고집은 저주스러운 것임을 알리자.‘풍요의 뿔’의 입에서 태어난 절세의 미인도독단적인 고집 때문에,그 ’풍요의 뿔‘과, 차분한 천성으로써살면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아일랜드의 현실에 분노를 느끼고 고집스럽게 독립운동하고 있는 모습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물론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아 자기의 평생을 망친 모드 곤을 원망하여서 나온 감정이 나올 수도 있으나 나이가 들면서 고집이라든지 복수라는 감정이 무의미하다는 초월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그리고 나는 이 애의 신랑이, 이 애를 만사가 관습화되고의식화된 집으로 데려가 주기를 바란다.왜냐하면, 오만과 증오는 거리에서 팔리는 상품이니.관습과 의식에서가 아니고야 어떻게 순수와 미가 생겨나겠는가.의식은 풍요의 보가의 별명이고,관습은 가지 뻗은 월계수의 별명이다.그는 교만, 증오심, 고집 같은 악덕을 가진 모드 곤과는 달리 딸이 전통적인 여성이 되어 조용하고 평범하게 하지만 고결하고 품위 있는 귀족적인 정신적 가치를 가지고 살기를 바라고 있다. 모드 곤의 외적인 아름다움 이상으로 내면적인 아름다움이라 생각했던 고귀하고 준엄한 이상을 끌리던 예이츠는 이런 것들이 오히려 고통스럽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없게 하는 불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즉, 딸 앤은 이런 요소를 가지면 활동적일 수밖에 없어서 남편과 평범하게 살 수 없으므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서 고상하게 살기를 바란 것이다.그러나 미 그 자체를 위하여 바보짓을 한여인들도 매력으로써 현명하게 산 사람이 많다.그리고 방황하면서 사랑하고 사랑을 받았다고생각한 많은 가엾은 남자들은즐거운 친절에서 눈을 돌이키질 못한다.여기서의 ‘즐거운 친절’이란 예이츠의 부인인 조지 하이드 리(George Hyde-Lees)에 대한 언급이다. 자신과 결혼해준 것에 대한 감사와 그녀와의 평온한 생활에 대한 따뜻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모드 곤에 의해 흐트러지고 시달린 마음을 달래 준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평온하고 평범한 가정생활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좋아하게 되어서 딸도 이런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여성상이 젊었을 때와 많이 .
    인문/어학| 2007.03.27| 4페이지| 2,000원| 조회(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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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문화와 영화]미국 문화와 영화
    Ⅰ. 미국 생성 초기의 역사ⅰ) 1492년 Christopher Columbus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인류 최초의 벤처사업가라고 칭할 만한 콜럼버스는 아시아-유럽간의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자하는 강한 자신감과 의지(Marco Polo의 동방견문록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로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당시 영국은 막강한 해상력을 구축하고 있던 나라였고 포르투갈 역시 해상무역으로 마카오까지 진출해 있었으며 프랑스는 그다지 콜럼버스의 제안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국 해상진출을 통해서 부국강병에의 길을 모색하던 스페인 여왕 Queen Isabella에게 당시 유럽에서 고갈되어가던 금, 은이나 향신료 등의 자원과 가깝고도 안전한 새로운 항로 개척을 약속하며 재정적 지원을 얻어내게 된다. 당시 각 나라의 해상진출의 원동력은 바로 나침반과 천문관측기 등의 과학 기술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콜럼버스는 세척의 배(Pinta/Nina/Santa Maria)를 이끌고 아시아 대륙을 향해 서로 계속 항해한 결과 지금의 Cuba에 해당하는 곳에 도달(encounter)하게 된다. 그곳이 아시아 대륙인줄로만 알았던 그는 그곳의 원주민들의 피부색이 황색임을 보고 los-indios 라고 불렀다.Florentine Amerigo Vespucci 역시 1499년에 콜럼버스가 당도하였던 곳에 다녀왔는데 그곳이 아시아대륙이 아닌 신대륙(New Land)이라고 주장하게 되고 후에 독일의 한 지도 제작자가 그 의견을 받아들여 그의 이름을 따서 America라고 명명하게 된다. 이로써 아메리카 대륙은 처음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1506년에 사망할 당시까지도 자신이 다녀온 곳이 신대륙인지 모른 채 아시아대륙인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사고의 전환이 바로 현재 미국 문화의 장점(Crossover적인 문화요소나 재창조적인 부분들을 예로 들 수 있는)들을 형성하게 된 시초가 되었고 이것이 바로 미국 역사에 있어서 콜럼버스의 항해가 가지는 큰 해상 기술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하며 gentry(향사) 계급을 형성하게 되었고 막강한 세력권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로마 카톨릭의 무거운 조세제도와 정치적 억압 및 면죄부 판매 등으로 인한 횡포로 이들의 입지는 점점 불안해져만 갔다.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1607년 메이플라워호에 102명의 청교도들이 승선한 것을 시작으로 약 500여명의 사람들이 James Town(버지니아주)에 이주했지만 토착병으로 인하여 1610년 즈음에는 60여명만이 생존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이 후 1776년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등을 근간으로 미국이 건국되었다. 이는 이주 당시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루터와 칼빈(이들은 교회 내 자율적/민주적 조직의 형성과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였다)의 영향으로 미국 건국의 정신적 근간이 되었다.ⅲ) 미국문화의 태생적 과오청교도들의 이주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 거주하던 토착민(Native America)들은 자연을 숭상하는 샤머니즘적 신앙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인간은 자연에 동화되어 친화적으로 살아야 하며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단지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주민들은 청교도의 영향으로 자연을 지배하고 다스리고자 하는 자연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이주는 곧 토착민들과의 갈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초기에는 토착민들과 서로 물물교환을 통해 공생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지만 자연/종교관의 대립과 더불어 1700년대 서구의 식민지화 전쟁으로 갈등이 더욱 심화되며 토착민들의 문화를 짓밟게 성장하게 된다. 또한 흑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발전, 성장함으로 건국에 이르게 되는데 이 두가지가 바로 미국 문화가 지닌 부정할 수 없는 태생적 과오라 할 수 있다.ⅳ) 초기 미국사를 보여주는 영화들① ? The Last of the Mohicans ?(1992)- James Fenimore Cooper의 소설을 원작으로 함- 1700년대 영국과 프랑스사성을 잘 재현했는가에대한 문제와 로맨스를 너무 과도하게 다룬 것 아닌가 하는 비평을 받았다.② ? Pocahontas ?(1995)- 디즈니의 작품들 중 유일하게 실화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현실을 많이 왜곡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포카혼타스 : 추장이었던 Powaton의 딸인 Matohok의 별명.장난꾸러기의 의미.- 포카혼타스가 존스미스 선장의 목숨을 구해주면서 서구에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이 둘 사이에 로맨스가 있었을것이라는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John Barth의 '연초 도매상(The Scot-weed Factor)' 같 은 작품이 등장하기도 했다.③ ? The Scarlet Letter ?(1995)- Nathaniel Hawthorne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함(1850년 작)- 작품에 등장하는 A의 의미 : Adultery(간음)의 의미외에 Angel/Artist/Able 등의 의미로까지 발전- 헤스터 프린 : 청교도 사회에 맞서 홀로서기를 성공한 여성으로서진정한 American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집단과 개인의 갈등을 잘 조명한 영화④ ? The Crucible ?(1996)- Arthur Miller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1692년 메사추세츠 주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인‘세일럼 마녀 사냥’을 소재로 하고 있다.⑤ 영화의 한계- 90년대 영화에 등장하는 인디언들은 비교적 noble한 캐릭터로 나타나지만 그 이전까 지는 상당히 미개하고 야만적이며 호전적인 민족으로 그려짐.- 역사적인 사실과 의미보다는 남녀의 로맨스에 치중.- 영화 매체 이전의 시대 즉, 미국문화의 정체성이 성립되기 이전의 시대를 영화를 통 해 조명하다보니 원작 자체의 내용이나 역사적 실재를 많이 왜곡하여 표현하였다.Ⅱ. 미국 영화의 탄생ⅰ) 영화의 발명영화의 발상은 에디슨(Thomas Edison)의 축음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은 있는데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줄 무언가는 없을까?’ 라는 고민 끝에 에디슨과 그의 조수 딕슨(Lau작으로 사진, 타자기, 전화기, 축음기, Kodak 카메라, 그리고 1889년 George Eastman의 활동사진에 이르기까지의 기술의 발전이 영화라는 매체의 탄생을 도운 셈이다.카메라로 찍은 필름을 영사기에 넣고 돌리면 여러 개의 상이 겹쳐지면서 상이 움직이는 듯한 착시현상이 일어나는데 움직인다(motion picture)는 것 때문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895년에는 이것을 보여주는 곳도 생겼다. 에디슨은 이 기계가 혼자서 돌리면서 봐야한다는 한계가 있음을 알았지만 상업적인 기계의 판매를 위해 의도적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계로 발전시키지 않았다. 이때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벽에 상을 쏘아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하였고 1895년에 특허신청을 함으로서 영화의 공식적인 발명은 뤼미에르 형제에게 돌아가게 되었다.에서와 같이 에디슨의 것과 뤼미에르 형제의 것은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뤼미에르 형제의 것이 더 많은 필름 수용이 가능했고 4배 더 빠른 프레임의 구현으로 더 자연스러운 상을 보여줬다. 형태에 있어서도 에디슨의 것은 peepshow의 형태로 다분히 개인적인 측면이 많았다면 뤼미에르는 집단적인 엔터테인먼트의 형태로 발전하였고 이는 대량소비가 가능해지면서 후에 극장의 등장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향유 계층에 있어서도 에디슨의 경우엔 문화적으로 개방적이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던 소수의 계층이었지만 뤼미에르의 경우는 노동자층으로까지 확대된 다수의 향유 계층을 보유했었다. 또 뤼미에르 형제는 에디슨의 것보다 더 작은 카메라도 개발해서 스튜디오 밖의 이미지(기차, 파도, 길거리...)도 구현했다. 이점이 바로 둘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외부로의 이동 가능한 점 때문에 단체상영이 가능했고 이는 곧 대량생산/소비 체제로 이어지게 되었다.에디슨(kinetoscope/kinetograph)뤼미에르(cinetoscope/cinematograph)시기1891~1892년1895년사양35mm 필름, 46 fr/s16 fr/s상의 크기1oon?을 제작했지만 활동사진 정도의 수준이었다. 또 Melies의 직업이 마술사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초창기 영화는 단순히 ‘신기한 마술’ 정도로만 여겨졌다. 1896년경부터 미국에선 중산층의 오락으로 등장하면서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처형?, ?코끼리 전기 사형?, ?쇼걸에서 스트립쇼의 여왕이 되기까지? 등과 같은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짧은 시간 동안 상영되다 보니 선정적인 내용과 제목이 대부분이었다. 영화학자인 톰 거닝의 표현을 빌리자면 초창기 영화는 단지 보여주기를 강조한 ‘전시용 영화’ 였다.ⅲ) 니클로디언(Nickelodeon)1905년에는 상점을 급조해서 만든 120~130석 규모의 소규모 영화관이 등장했다. 반복적으로 하루에 여러번 상영했는데 5센트 정도의 저렴한 입장료로 노동자 계층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1910년경까지 북부를 중심으로 10000여개의 상영관이 생길 정도로 성행했다. 이는 곧 다른 배경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영화를 보면서 문화적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비록 연극을 찍어서 상영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Story 영화가 제작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1906년경부터 제작 되서 1908년 통계에 의하면 98%의 영화가 Story 영화였다.ⅳ) MPPC(Motion Picture Patents Community)의 설립1908년 에디슨을 중심으로 동부의 여러 제작자들이 불법복제나 불법상영, 제작/배급을 통제하기 위해 설립하였으나 비판적 시각으로 보자면 가진 자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모임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와중에 1910년 뉴욕시장이 니클로디언의 폐쇄 명령을 내리면서 영화 내에서의 특정 종족의 등장이나 외국 노래의 삽입, 이민자 계층의 공감대적인 요소를 배제시키도록 함에 따라 제작자들이 영화의 내용과 극장 환경을 바꿈으로 관람객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 검열 위원회에 검토를 받아야 했다. 극장의 입장료를 올려서 중산층을 타겟으로 잡고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할인
    인문/어학| 2005.10.02| 6페이지| 1,000원| 조회(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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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볼링 스코어 계산법
    Ⅰ. 시작하며처음 볼링을 접했을 때 볼링점수는 핀을 넘어뜨린 숫자만 계산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초보자에겐 참 난감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이 점수 계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핀을 넘어뜨린 숫자만을 점수로 하여 게임을 진행하면 카운트는 쉽고 편하겠지만, 지금처럼 볼링 경기를 보며 스릴감이나 역전의 쾌감은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볼링게임에서 스트라이크와 스페어에 가산되는 보너스 점수가 바로 볼링의 여러 매력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우선 볼링의 점수 계산하는 방법을 알기에 앞서 미리 알아 두어야 할 용어와 그것에 관련된 점수 계산법을 따로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것 같다.Ⅱ. 용어와 관련 점수ⅰ. 스트라이크각 프레임의 제1투구에서 10개 핀이 전부 넘어지게 되면 "스트라이크"가 된다. 이 때, 스트라이크의 득점은 10점이며, 보너스 점수로서 다음의 프레임의 투구의 득점을 가산하게 된다. 적용을 해 보면 처음 3프레임에서 스트라이크를 치면 1프레임 점수에 30점이 기록된다. 4프레임에서 스트라이크를 기록하면 2프레임 점수가 60점이 된다. 계속해서 10프레임까지 10번의 스트라이크를 기록하면 8프레임의 점수가 240점이 됩니다. 보너스 두 번의 기회모두 스트라이크일 때 9프레임 역시 270점이 되고, 마지막 10프레임까지 누적 300점이 돼서 만점을 기록하게 된다. 곧, 12번 던져서 모두 스크라이크일 때가 만점으로 획득점수는 300점이 된다.ⅱ. 스페어각 프레임의 제1투구에서 남은 핀을, 제2투구에서 전부 넘어뜨리면 "스페어"가 된다. 이 때, 스페어의 득점10점, 보너스점수로서 다음의 투구의 득점을 가산하게 된다.ⅲ. 오픈한 프레임에서 두 번의 기회동안 10개의 핀을 다 넘어뜨리지 못한 경우를 "오픈"이라 한다. 이 경우에는 그 프레임에서 넘어뜨린 핀 수만큼 점수로 기록됩니다.ⅳ. 가트각 프레임의 제1투구가 도랑(가트, Gutter) 에 떨어져 버렸을 때, 득점은 0점 처리가 된다.ⅴ. 파울볼이 손으로부터 떨어지거나, 발끝 등의 신체의 일부가 파울라인을 넘어갔을 때에 파울이 되어 「F」가 표시되며. 이때, 득점은 0점이 되고 핀은 모두 리셋 처리 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파울과 낙구(洛求)는 모두 파울로 취급된다는 것이며, 특히 스페어 뒤의 파울은 어떤 경우라도 보너스점수가 붙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파울라인은 라인의 연장선상에 있는 벽과 기둥에도 적용되기 때문, 볼이 릴리즈되고 나서 파울라인보다도 안쪽의 벽과 기둥에 신체의 일부가 접촉했을 때에도 파울이 되어 버린다. 만약 볼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면 신체의 일부가 파울라인을 넘어가도 파울로는 인정하지 않는다.ⅵ. 미스각 프레임의 제1투구에서 남은 핀을, 제2투구에서 1개도 넘어뜨리지 못하면 미스가 되고 「-」가 표시되며, 이때의 득점은 0점이 된다. 미스는 제2투구시에만 적용되는 것이며, 제2투구에 파울이 되어 버린 경우도 미스가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F」가 표시된다.ⅶ. 스플릿각 프레임의 제1투구에서 헤드핀(1번핀) 이 넘어지고, 2개 이상 남은 핀이 다음과 같은 경우에 "스플릿"이 된다.- 남은 핀의 사이의 중간 핀이 적어도 1개가 넘어진 상태 (예를 들면 7·9혹은 3·10)- 남은 핀 바로 앞의 핀이 적어도 1개가 넘어진 상태 (예를 들면 2·3혹은 5·6)이 때, 제1투구로 넘어진 핀을 빼고. 제2투구에서 남은 핀을 전부 넘어뜨리면 스페어이고, 1개도 넘어뜨리지 못하면 미스가 된다. 또한, 볼링은 무엇보다 헤드핀을 넘어뜨리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볼링 특유의 경기방식 때문에, 제1투구에서 헤드핀을 넘어뜨리지 못한 경우에는, 아무리 남은 핀이 벌어져 있어도 스플릿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1·7·9)Ⅲ. 실제 적용1프레임 - 제1구에서는 9핀을 쓰러뜨리고 제2구에서는 남은 핀을 쓰러뜨리지 못해서 9점이 된다.
    예체능| 2004.07.08| 3페이지| 1,000원| 조회(4,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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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20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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