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phist (궤변론자) - 물질적 기회주의, 도덕적 상대주의원래 智者 또는 賢者라는 뜻의 말로서, 문법, 수사학, 변론, 웅변 등 여러 가지 지식과 기능을 교수하며 일정한 급료를 받는 직업적인 철학자의 총칭이다. 고대 그리스 후기의 개인주의, 주관주의, 주지주의적 경향을 대표하며, 지식은 감각을 통해 획득되는 것으로서 진리, 도덕은 상대적인 것이며, 가치의 기준을 개인의 복리와 영당에 두고, 공리주의를 주장하였다. 아테네 후기에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사상을 시민들에게 교육하여 아테네 몰락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학예의 보급에 기여하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으며, 지식의 상대주의도 높이 평가된다. 소피스트의 교육에 대한 영향은 개인주의로의 교육, 정치적 수단주의로서의 교육, 수사학 및 웅변술 중심의 교육, 직업적 수단으로서의 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Protagoras - 소피스트의 대표자. "만물은 유전하며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Epicurs - 정원학파의 시조. 쾌락주의Zenon - 스토아 학파의 시조. 금욕주의 제창Socrates다른 소피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문제를 사고의 출발점으로 삼아, 특히 프로타고라스의 인본주의적 명제인 '인간은 만물의 척도'를 자신의 철학적 사고의 출발점으로 삼고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인간 자신을 알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소피스트의 물질적 기회주의와 물질적 상대주의는 거부하고, 보편타당한 지식이 있다고 보고, 지덕합일성을 통해 행위의 기초가 되는 참된 지식의 획득을 주장하였다.그의 철학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로서 요약되는데, 이는 만물의 척도인 '인간'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며, 동시에 안다는 것은 단순한 앎이 아니고, 보편타당한 진리에 대한 자기인식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서 행위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 知=德이요, 德=知이며, 악행은 무지의 결과이다. 知德一致, 知行合一과 같은 도덕교육을 강조하였으며, 교육을 통해서 인간의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탁월한 인간상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Aristo - 선을 안다고 해서 반드시 선을 행하는 것을 아니다)))따라서 그의 교육목적은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무지의 세계에서 벗어나, 애지의 세계로 나아가게 함으로서 진리를 보급시키고 그럼으로써 윤리적, 도덕적 인간을 양성하는데 있었다.교육방법으로는 대화법 또는 문답법을 사용하였는데, 이 문답법을 통하여 학생이 스스로 인생의 의미나 진리의 정의에 대한 항구적인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였다. 문답법은 2단계를 거쳐 진리에 이르게 하는데, 제1단계로 학습자의 무의식적 무지에서 의식적 무지로 이끄는 반어법이 있고, 제2단계로 무지의 자각으로부터 참다운 지식, 보편타당한 지식, 합리적 진리로 인도하는 산파술이 있다. 계발적 교수법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문답법은 대화를 통해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게 하고, 보다 높은 참된 의식에 이르는 방법이다. 대화법의 교육적 의의는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니라 진리의 공동 생산이라는 점에 잇다.Platon과 Aristo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철학적 입장이데아론-관념론의 선구국가론-이상국가론 및 국가주의 교육제도academia 창설실재론-우주의 본질은 자연 또는 개개의 실체논리적(합리적,과학적) 철학의 창시-스콜라 철학, 실학주의에 큰 영향을 미침.소요학교(Lyceum) 창설교육목적이데아의 실현-진선미의 절대적 가치추구지혜,절제,용기,정의의 4대덕을 조화롭게 구비한 선미한 인간 양성가치,지혜,봉사,정치적 재능의 미덕을 겸비한 유능한 시민 육성이성의 훈련을 통하여 중용의 덕을 닦음으로서 행복한 생활을 실현한다.교육대상 및내용엘리트교육,철인교육-국가를 통치하는 소수의 철인교육에 중점직업훈련,전문교육보다는 교양교육,도덕교육 중시국가주의 교육-국민을 유덕하게 하기 위하여 국가가 교육기관을 운영해야 함귀족주의 교육-서민계급의 교육 무시자유인으로서의 교양을 중시하여 교양교육, 자유교육교육방법대화법에 의하여 명상력을 계발하고 이를 통하여 이데아를 인식케 함강술법을 통해서 이성을 단련철학적 입장소피스트들의 물질적 기회주의, 도덕적 상대주의, 직업 전문 교육 거부회상설이상국가 3계급은 각기 직분에 맞는 교육을 받는다(이상주의의 위계적 관점)진리=일관성,체계적,질서정연한 관계성교육의 주된 목적 : 학습자가 절대 정신과 대우주를 완전히 인식하는 데 있다. 따라서 학습과정은 포괄적 안목과 통찰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학습자의 정신적인 인식 수준을 높여서 학습자의 자아가 우주나 절대정신으로 향할 수 있도록....모든 것의 실재를 두 가지의 구성요소로 보는 이원론적 관점.인간의 마음도 욕망과 지성으로 구성되는데, 교육된 사람은 윤리적 행동과 정치적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형상(완벽,완전/구상) -질료(완전해질수 있는 가능성 / 실재)==> 교육실제에 있어서도 다원론적으로 나누어져 추상, 이론, 순수, 인문 교육은 상위에 실제, 응용, 실업 교육은 하위에 배치된다.교육이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인 인간을 돕는 역할.교육과정은 인간의 성장 발전에 맞춰야 한다.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차이플라톤은 국가의 이념을 도덕의 실천에 두고 교육을 통한 철인 정치의 이상을 꿈구었으며, 교육을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논하고 있다. 이는 그의 저서 '국가론'에 잘 나타나 있다. 아테네가 필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한 이후, 아테네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국가질서 확립과 의식주 문제 확립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관념적 사상을 전개할 수 없었던 플라톤은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 즉 철인들에 의해 지배되는 강력한 국가체제를 요청한다. 플라톤은 국가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 덕목을 공정성, 정당성으로 보았으며, 그의 이상국가에는 지배계급, 군인계급, 생산계급이 있는데 서로 넘나들 수 없고 각 계급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교육의 기회도 제한함으로써 소수의 지적 엘리트 교육을 추구하였다. 플라톤은 국가론 7편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교육의 본질을 인간에게 원래 선천적으로 내재해 있는 힘을 잘 개발하여 스스로 이데아의 세계를 볼 수 있도록 인간의 영혼을 전향시키는 일로 규정하였다. 즉, 교육이란 단순한 지식을 학생의 머리에 주입시키는 일방적 작용이 아니라, 잠자는 영혼을 자극하여 구가 사회에서 자신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일깨워 주는 일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면서도 플라톤의 이상주의적 관념을 배격, 존재의 기반을 사물세계로 끌어내렸다. 즉 실재하는 것은 현실의 사실 세계일 뿐이며, 인간 존재 규명에서도 인간을 사회적, 정치적 동물이라 하였다. 플라톤의 사고가 형이상학적 깊이와 사변적 대담성으로 대변되고 최초로 교육적 유토피아를 제시한 반면 그는 냉정한 현실감각, 긴장된 연구정신, 자료수집의 열정으로 특징지어진다. 플라톤을 관념적 이상론자라 한다면 그는 실증주의적 경험론자이며, 교육의 궁극적 목적을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인간의 육성에 두고 행복을 최고선으로 보았다. 이의 실천을 위하여 그는 중용의 덕을 지키는 이성적 삶을 요구하는데 이는 과학 철학을 통한 이성의 훈련을 통하여 가능하며, 이성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본요소로 보았다. 그의 교육방법은 논리학을 기초로 하며, 사물을 다루는데 있어서 귀납적 방법을 사용하여 전통적 논리학의 창시자가 되었다.중세 시민계급의 출현과 대학교육의 연관성십자군 원정은 사라센 문화의 유입과 상공업의 발달을 통한 자유도시 형성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사라센 문화의 유입은 중세 시기에 잊혀졌던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일으켰으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통한 신학과 철학의 만남 혹은 융성이 이루어져 한편으로는 수도원 교육의 발전이 대학교육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11세기-13세기에 걸친 십자권 원정은 수많은 인구의 이동을 가져와 상인계급의 성장을 북돋아오며 이들 부를 축적한 상인 계급은 상업도시와 함께 발전해 나간다. (상업도시는 왕이나 영주가 지배하는 도시가 아니며, 상업인과 공업인으로 구성된 시민이 공동통치하는 시민사회, 시민국가로의 도시였다) 이들 근대적 의미의 이들 시민계급은 자치권 행사를 위해 조합(guild)를 형성했으며, 그네들의 자제들을 위해 비공식적 교육으로서의 도제교육을 확립한다. (도제, 지공을 거치면 조합의 승인아해 주인(마이스터)이 될 수 있다)중세말 십자군 전쟁을 통하여 이탈리아 남부 항구 도시를 중심으로 무역과 상업이 번창하는 신흥도시에서 신흥시민계급이 형성되었다. 십자군 원정 결과 봉건제도가 몰락, 시민사회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시민계급은 영주의 세력으로부터 독립하였고, 교회의 권위는 실추되었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실 생활에서의 힘이 관념적 권위나 전통적 질서보다 우세하게 되엇고, 자유롭고 창조적인 인간상을 되찾자는 운동이 발생하였다. 이같이 실질적 세력을 장악한 시민계급은 자신들의 실생활에 필요하고 알맞은 교육, 즉 직업적이고 생산적인 교육을 요구하게 되엇다. 중세말 도시의 새로운 시민정신과 시민 문화가 형성됨으로써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시민교육이 요청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요구 속에 생겨난 것이 조합학교이며, 도제교육제도이다.이러한 시대의 객관적 상황 변화로 인하여 지적 욕구가 충만한 학생들이 유명한 스승을 찾아 집결함으로써 각지에 자생적으로 대학이 생겨났다. 즉 처음에는 일종의 사숙 형태로 출발한 것이다. 최초의 대학은 1088년에 설립된 이탈리아 북부지방의 볼로냐 대학인데 이는 학생조합에 의해 형성되어 법학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1158년 프리드리히 1세가 정식 승인하고 13세기 교황청의 승인을 받았다. 이탈리아 남부의 살레르노 대학은 의학을 중심으로 하며 1060년에 세워져 가장 오래 되었으나, 1231년 공인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109년 파리대학이, 영국에서는 1167년 옥스퍼드 대학, 독일은 1348년 프라하 대학이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