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는 어떠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는가? 자연 선택의 단위는 무엇인가?' 이 문제에서는 아직도 많은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group selection, individual selection, gene selection 등이 이 논에서 언급되고 있는 설들이다. '이기적인 유전자'에서는 그 중에서 gene selection을 자세히 설명한 책이다.왜 이런 논쟁이 생기는지 이해하려면 우선 자연 선택의 개념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자연 선택 또는 자연 도태란 간단히 얘기하자면 자연에 더 잘 적응한 것만이 생존하여 자손을 남긴다는 것이다.생존 경쟁을 하자면 환경의 수용력보다 더 많은 개체들이 태어나야 한다. 모든 개체들이 살기에 충분한 자원이 존재한다면 서로 경쟁할 이유도 선택될 이유도 없다. 또 개체들이 서로 조금씩 다른 변이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모두 같다면 선택의 의미가 없다. 그리고 그 변이는 유전되어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이 충족했을 때 자연 선택이 일어나고 진화가 일어난다.이것이 자연선택이면 도대체 무엇에 관해서 과학자들이 토론하고 있는 것인가?그것은 자연 선택에서 살아남는 것이 최적 개체를 얘기하는 것인지, 최적 집단 혹은 최적 종을 얘기하는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에서는 자연선택에서 무시무시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유전자이고 살아남는 유전자가 더 많은 복제자를 남김으로써 진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그렇다면 개체는 무엇인가? 유전자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은, 고양이는 물고기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리처드 도킨스는 우리는 그런 이기적 유전자들의 생존 기계, 설계된 대로 움직이는 로봇이라고 감히 이야기한다.솔직히 자연 선택은 표면상으로 보면 개체수준에서 일어나는 것이 자명한 것처럼 보인다. 자연선택으로 죽은 것은 개체이기 때문이다. 개체가 죽으면 그 개체를 이루던 유전자도 모두 공멸한다. 그 유전자들 사이에서는 경쟁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 커야 한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도킨스는 자연 선택으로서 최대인 유전자는 시스트론과 염색체 사이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하는 크기라고 하였다.여기서 나의 첫 번째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영원불멸성을 견지하면서도 어떤 의미로서 역할 수 있는 유전자(도킨스의 임의적으로 규정된 유전자 혹은 gene complex)가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단위로서의 유전자라면 나의 생각에는 한 염색체 내에서 연속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몇 개의 (혹은 몇 십 개의 ) 시스트론 정도로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그렇지만 자연선택에서 살아남은 개체들의 특징들, 다른 개체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특징들은 한 염색체 위에 있는 시스트론들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겸형적혈구병을 만드는 유전자는 열성이다. 그래서 정상 유전자와 짝을 이룰 때는 그 병이 나타나지 않는다. 겸형적혈구병을 만드는 유전자만을 양친에게 받은 사람은 빈혈로 인해 자연에서 제거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정상유전자만을 받은 순종인간이 우세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말라리아 병에 대한 저항성이 겸형적혈구병을 지닌 보인자보다 작아서 역시나 자연 도태되기 쉽다.겸형적혈구병을 만드는 유전자와 정상 유전자를 각각 하나씩 가진 헤테로와 각각의 순종을 세 개의 gene complex 로 생각하여 자연 선택의 단위라고 생각해 볼 수 도 있겠다. 그러면 내 생각에 약간은 우스운 상황이 생길 것 같다.우선은 한 염색체 위에 있는 시스트론 몇 개의 묶음을 자연 선택의 단위 유전자로 생각한다면 자신과 대립하는 유전자가 완전히 gene pool에서 사라지게 되면 자신은 승리하고 자연선택은 그 gene complex에 대해서는 끝나게 된다. 다른 돌연변이가 일어날 때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겸형적혈구병처럼 상동염색체 위에 쌍으로 존재하는 대립되는 locus에 위치한 유전자를 (겸형적혈구병의 유전자처럼) 하나의 gene complex로 상정하게 되면 자연선택은 끊임없이 일어나나 진화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 벌어지게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예가 있는지 모르겠다. 우습고 극단적인 예이겠지만 대머리 아저씨가 대머리가 아닌 자기 자식보다는 대머리인 조카를 더 아낀다던지 하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자신과 같은 phenotype을 가진 개체들에만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그렇지 않은 개체들에게는 이기적으로만 행동하는 phenotype이 가장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와 많은 차이가 난다.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자연 선택의 단위가 무엇인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다고 하니 이쯤에서 접어두고 리처드 도킨스의 생각으로 돌아가자. 어쨌든 리처드 도킨스는 시스트론보다는 크고 염색체보다는 작은 크기의 유전자라는 정도의 자연 선택의 단위를 정의했다. (그가 이런 얘기를 했을 때 다른 염색체 사이에서의 gene complex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워낙 일반사람들도 쉽게 읽게 하기 위한 책이라 사람들이 간단하게 이해하기 쉽도록 쓰기 위해서 이런 개념을 도입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한다. 생물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자신을 지배하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 더 많이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들이 의식적으로 유전자를 더 많이 남기려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행동하는 생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생물도 있을 수 있지만 - 그런 유전자를 가질 수도 있고 안 가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 그렇게 하지 않는 생물은 유전자를 남길 수 없기 때문에 이미 멸종했거나 소수로 남아 있다. 따라서 자기 희생적인 행동들은 곰곰이 따져보면 자신이 이기적으로 살아남을 때보다 확률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남길 수 있는 경우일 뿐이다. 그렇지 못한 자기희생의 행동들은 유전자를 남기지 못해 결국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individual selection 이나 group selection을 가지고는 이것을 설명할 수 없다. 개체수준에서 보면 자기희생은 아무런 이득도 없다. group s음을 보였다. 사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좀 더 온건한 단어로 표현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가 아무리 '이기적'이라는 단어를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책에서 쓰였다고 항변했어도 그의 다른 올바른 주장들까지 싸잡아 비난의 대상이 되는 요인이지는 않았는지..'이기적인 유전자'에서 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대한 세심한 고찰이다. 책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의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할 수 있다.'라는 소단원을 따로 둘 정도로 인간이 동물들의 예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언급해왔다. 그런데도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사실 복지정책을 공격한 부분에서는 대단히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그가 무슨 의도로 그 얘기를 썼던 상당히 오해받을 만 하다고 생각한다.미국의 경우 백인가정보다 흑인 가정에서 더 많은 자식을 낳는다. 실제로 할렘가의 흑인여성들은 자신의 부양능력 이상으로 자식을 낳는 게 사실이다. 이들은 이타적 시스템(복지정책)을 이용하는 이기적 개체들이기 때문에 그러한가? 농업사회에서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은 자식들을 낳았다. 그들에게는 복지 혜택이라는 것도 없었다. 단지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이 농사일에 도움이 되고 이후의 노후를 보장하는데 더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되고 복지혜택이 늘어가면서 이제 많은 자식을 낳기보다는 한두 명의 자식에게 많은 투자를 하여 그들이 도시 속에서 좀더 낳은 직업을 얻게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자식의 수가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산아제한 캠페인이 아니더라도 더디게 그런 움직임은 생겼을 것이다.미국의 할렘가 흑인 여성들은 깽들이 활보하는 위험한 환경에서 자신을 보호해주고 노후를 보장해줄 든든한 자식들을 많이 필요로 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작은 인간'에서 마빈 해리슨이 주장한 것인데 상당히 옳은 얘기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복지정책이 더 잘 되어 있는 국가(가 조금 더 남기려 애쓰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이기적 유전자'의 1장의 제목은 '인간이 왜 존재하나?'였지만 그리고 이 제목이 그 책을 쓰는 이유처럼 보였지만 이 책의 내용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음을 인정했는데도 불구하고 책의 대부분은 동물들의 행동들을 통해 그들이 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유리한지 공들여 설명했다. 그러나 그런 예들을 인간에게 적용해보려고 하기에는 무리가 많은 것들이었다.사실 유전자의 이야기를 빼놓고 자연선택이나 진화의 얘기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화를 gene pool의 변화라고 한다면 말이다. 그런데도 리처드 도킨스 류의 주장이 많은 논란을 몰고 다니는 것은 또한 극단적인 환원주의 때문이기도 하다.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많은 것들도 유전자로만 그 원인을 설명하려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모든 것을 유전자라는 유일한 원인 하나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남성이 공격적이고 더 가정적이지 못하며 활동적인 것은 남성의 유전자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방인에게 적개심을 가지는 것도 유전자 때문이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유전자 때문이다 남성을 여성과 구별하게 하는 유전자는 240개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유전자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할 수 없겠지만 extended phenotype이라는 것으로 설명 될 수 있다.남성은 유전적으로 여성보다 근력이 뛰어나고 임신과 육아의 책임이 적다. 이는 직접적인 phenotype이다. 그러나 이러한 structure 때문에 사냥을 전담하게 되었고, 공격적이고 지리를 잘 파악하는 등의 extended phenotype을 가지게 되었다. 여성은 근력의 부족과 임신과 육아라는 제약 때문에 채집을 전담하게 되었고 더 정적이며 관찰력이 뛰어나게 되는 등의 extended phenotype을 가지게 되었다. 즉 structure에 의해 behavior가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뭔가 이상하다. 기계의 발달로 이제 여
Ⅰ. 서론천년 역사가 새로 시작되는 21세기는 첨단과학기술과 정보 그리고 지식의 사회다. 어쩌면 21세기의 한 단면은 현대인의 상상의 한계를 초월하는 새로운 개념의 세상일지도 모른다.이러한 미래사회의 급격한 변화의 요체는 가속적인 과학기술의 발달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산업의 예를 들면 우리 인류는 5천년을 문자와 함께 하여 5백년 인쇄술의 시대를 열었고, 5십년 시청각 기술과 컴퓨터 시대를 통하여 5년만에 디지털 네트웍의 시대를 꽃피웠다. 이와 같은 속도로 정보통신, 교통운송, 재료소재, 환경에너지, 생명과학 등 산업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 이제 불과 반년후의 세계를 예측하기조차 어려운 초가속화 된 기술발전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미래가 외계의 문명처럼 현대와 완전히 단절된 다른 세상일수는 없다. 다만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현대인의 상상과 이해의 범위를 넘어설 따름이다. 농촌 사람에게 도시는 새로운 세상일 것이요, 중세 사람에게 현대 문명사회는 완전히 별천지일 것이다. 그러나 도시가 농촌으로부터 발전하였고 현대 문명 또한 중세로부터 진화하여 왔듯이 21세기의 어떤 멋진 신세계의 출현도 우리의 과거가 현대를 거쳐 발전해간 것일 따름이다. 다만 그 발전의 정도가 5천년 농경 사회의 '수평적 정체기'에서 3백년 산업사회의 '단계적 발전기'로 그리고 미래 첨단기술사회의 '수직적 상승기'로 기하급수적으로 변화해가고 있을 따름이다.따라서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을 갖지 못한 우리 우매한 인류가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로부터 현대를 잇는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언제나 승리자의 논리로 기록된 역사는 정의나 평화와 같은 명분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그 실체는 기득권을 가진 선진집단(선진국)과 이에 도전하는 신흥집단(후발국)간의 갈등과 투쟁의 기록이다. 이러한 갈등의 원인이자 곧 투쟁의 목표는 다음과 같이 축약 할 수 있다.첫째, 노동, 에너지, 원자재 같은 투입요소의 경제 사실이 핀 공장에서 효율을 240배나 향상시킨 것으로 증명된 셈이다. 그리고 이런 분업의 효율을 국가간에 적용한 것이 바로 절대우위론(Law of Absolute Advantage)이다.절대우위론에 의하면 국내 생산비보다 수입가격이 더 싼 물건은 수입하는 것이 더 유리하며 자유무역에 의한 국제분업은 쌍방에게 모두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국 농부는 양모를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프랑스 농부는 포도주를 더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고 하면 각국의 농부가 제한된 투입요소를 갖고 각기 포도주와 양모를 모두 생산하는 것보다는 영국 농부는 양모만을 그리고 프랑스 농부는 포도주만을 생산하면 총량적으로도 더 많은 양모와 포도주의 생산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을 서로 교환하면 양국에서 모두 더 많은 양모와 더 많은 포도주를 소비할 수 있다.[표 1] 절대우위단위생산 소요시간각각생산국제분업영국프랑스영국 프랑스 계영국 프랑스 계양모1210 + 5 = 1520 + 0 = 20포도주215 + 10 = 200 + 20 = 20※ 각 국 농부가 20시간씩 (상품당 10시간)일한다고 가정절대우위론에 의한 자유무역의 효율은 쌍방이 생산효율의 우위를 점하는 상품을 한가지씩 나누어 갖고 있다는 가정 하에 성립한다. 그런데 선진국과 후발국 사이에서는 선진국이 대다수의 상품에 있어 생산효율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절대우위론이 적용 될 수 없다.데이비드 리카르도(David Ricardo)는 이렇게 한 국가가 두 가지 상품을 모두 더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경우에도 이론적으로 자유무역에 의한 국제 분업이 더 효율적일 수 있음을 비교우위론(Law of Comparative Advantage)으로 증명하였다. 선진국과 후발국이 쌀과 철강을 생산한다고 가정할 때 선진국이 두 가지 상품을 모두 더 효율적으로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후발국은 한가지 상품에서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고, 따라서 각국이 두 가지 상품을 각각 생산하는 것보다는 비교우위가 있는 상품만을 생산한다면 총량적 생산을 포기하고 쌀만 생산할 것인가? 그리고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만일 선진국이 철강을 기꺼이 포기해주지 않으면 후발국은 철강을 원가이하로 수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국내 시장에서 선진국 철강의 수입금지 또는 고율 관세로 국내 철강산업에 독점 이윤을 보장하며 수출에서 입은 손질을 보상받도록 할 수밖에 없다. 만일 이러한 보상 체계가 작동하지 않으면 후발국이 전략산업으로 육성한 철강산업은 결손의 누적으로 부실화하고 결국 도산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이제 앞서 지적한 비교우위론의 3가지 문제점에 다른 사항을 추가하고자 한다.넷째, 설혹 후발국이 고부가가치산업에 비교우위를 달성했다고 하더라도 선진국은 생산효율성이 높은 고부가가치산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자유무역체제 하에서는 후발국이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다섯째, 선진국의 비교열위산업이 노동집약산업이 아닌 기술집약산업인 경우 자본과 기술의 투입으로 노동을 대체할 수 있어 선진국이 애당초 생산효율성 우위에 있는 비교열위산업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결국 자유무역체제 하에서는 선진국은 산출이 체증하는 부가가치가 높은 기술집약산업으로, 그리고 후발국은 수확이 체감하며 부가가치가 낮은 노동집약산업으로 산업구조가 전문화될 수밖에 없다.Ⅳ. 체감의 시대와 체증의 시대5천년 농경사회는 노동력을 투입하여 농산품을 생산하는 "수확체감의 시대"이다. 일정한 면적의 농토에 종자를 두배 뿌려도 수확은 두배가 되지 않으며 노동을 두배 투입해도 산출은 두배가 되지 않는다. 또 농토만 2배로 늘려도 산출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산출이 투입과 같은 비율로 늘어날 수는 없다. 따라서 농경사회는 체감의 사회이며 체감의 사회에서는 개인간, 국가간의 빈부격차가 확대되기 어려운 안정된 사회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이는 가진 자 또는 선진국이 수확체감에 의한 생산효율의 하락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설령 생산을 늘렸다 할지라도 의식주 위주의 농업생산품의 특성상 새로운 수요를 계속 창출해 낼 수 없어서 확대재생대한 로열티를 많이 부과하거나 국유화 조치를 단행하는 등 자원민족주의의 기치 하에 선진국에 대항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OPEC와 같은 카르텔을 형성하여 공급을 줄이고 가격을 높이는 등 독점력 행사를 시도하여 국지적, 단기적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원보유국의 정치적 후진성, 사회적 불안정, 국방력의 한계, 자원보유국의 분열 등 다양한 이유로 장기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으나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이유는 체증하는 산업 사회의 체감하는 사회에 대한 구조적 우위 때문이라 할 수 있다.선진국에 대한 자원공급처로서의 후발국의 역할은 일단 후발국의 생산규모를 확대하여 후발국에 안정적인 수입원을 제공하고 후발국 근로자에게 노동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많이 있다. 그러나 선진국의 상품시장으로서의 후발국은 소수의 특권층과 부유층이 선진국 우수상품을 엄청난 이윤과 함께 환수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국부가 유출되고 국내산업기반이 와해되는 등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된다.후발국은 통상 특정 품목들에 대한 수입을 금지하거나 고율의 관제를 붙여 수입상품의 국내 경쟁력을 낮추거나 또는 통관 및 검사제도를 까다롭게 하여 수입 상품에 부수적인 비용과 부담을 가중시키는 등 다양한 대응책을 강구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후발국이나 가지고있는 값싼 노동력을 배경으로, 불완전하나마 선진기술을 모방하고, 국내 소규모자본으로 산업화를 시도하게 된다. 이러한 후발국의 2등 상품이 국내시장에서 일부 저가 상품수요계층을 대상으로 명맥을 유지하거나, 정부의 효율적인 수입제한 조치로 인하여 내수시장을 독점하여 이윤을 확보 할 수는 있어도, 내수시장의 규모나 구매력의 한계 때문에 산업이 성숙되어 국제 경쟁에 뛰어들 만큼 자본과 기술을 축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이러한 시점에서 후발국은 기존 세계 질서에 순응하며 현실에 안주하느냐 아니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하여 위험하나마 비상수단을 강구하는 모험을 감행하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된다.후발국들의 경우 아직 선진 산업사회로의 성숙과 일만은 아니다.물론 패전으로 산업설비와 사회기반시설이 잿더미로 변하여 패전국의 상품이 당장 선진국 수준을 따라 잡을 수는 없다. 그러나 패전으로 인한 민족자존심이 수입장벽 역할을 하여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고, 국가적 차원의 효율적 산업정책과 함께 수출주력 산업에 집중 투자하여 전략산업으로 육성함으로써, 저임금과 출혈 수출로 시작한 수출주력산업이 비교우위 산업으로부터 국제 수준의 기술경쟁력을 갖춘 절대우위산업으로 발전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발전의 원동력이 이미 여러 번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 주도의 내수확대 및 전쟁을 통한 기술확보와 기술자 양성에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가지고 싶어하지 않겠습니다. 이길 때까지는"이라는 슬로건 아래 고양된 일본인의 절약풍토와 애국심, 전시통제 경제 하에서 군수에 의거한 중화학 공업화의 경험, 일본 정부의 국가적 기간산업에 대한 집중적 지원과 국제자본의 진출 제한 등의 조치가 모두 합쳐져 오늘의 일본을 만드는 씨앗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승전국도 패전국도 모두 선진국으로 등장하는데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고 또 여전히 정체된 후진국으로 남아있는 전쟁의 주변국들이야말로 산업사회에 있어 전쟁의 진정한 피해자요 영원한 패전국이다.세계대전의 패전국에서 이미 기존의 선진국보다 더 부강한 선진국으로 등장한 독일과 일본 이후에 선진국대열 진입의 가능성을 보인 신흥 공업국(Newly Industrialized Economics)들이 소위 "아시아의 4마리용"이라고 불린 홍콩, 싱가포르, 대만, 그리고 한국이다.홍콩은 세계대전 후 이데올로기에 의한 동서 냉전체제의 대립 속에서 거대 중국 대륙이 숨쉬는 경제적 관문 역할을 하는 전형적인 자유무역 항구로서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영국의 조차지로서 정치적 안정과 합리적 통치도 자유무역항으로서 홍콩의 번영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싱가포르는 이광요와 같은 걸출한 가부장적 지도자의 강력한 개혁 정책 하에 지리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충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