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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 초/ 1980년대 중반의 소설 양상 - 현대비평론
    1990년 초/ 1980년대 중반의 소설 양상※ 1990년대 초반의 소설1. 1990년대의 문학사와 소설1990년대로 접어들고도 여러 해가 경과한 지금, 1970?1980년대에 비해 오늘의 우리 문학은 몇 가닥의 뚜렷한 변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70년대의 분단문학과 산업화 시대의 여러 문제점에 대응한 산문적 서술의 흥성함은, 라는 호명과 이라는 고전적 명제를 충족시키는 편이었다.반면에 80년대에 이르러서는, 사회 변혁이 현실과 문학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끼쳐 문학의 현장성이 강화되고, 이 주류를 형성해, 이념이 문학을 압도하는 현상을 노정하기도 했다.* 1990년대 소설의 주요한 특징◈ 포스트모더니즘)의 강세는 말처럼, 사회적 환경이나 작가의식의 양면에 걸쳐 창작 성향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후기 산업사회의 탈일상성을 매개로 파편화되고 혼란해진 가치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이 눈에 많이 띤다. 이에는 이인성, 최수철, 김수경, 장정일 등의 작품이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또한 페미니즘의 성향도 이에 빗대어 설명되고 있다.1990년대 초반에 있어 상대성과 탈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문학의 다원주의는 기본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관과 관련되어 있는데, 주제의식보다 기법적 측면이 강조되는 경향을 나타낸다.◈ 리얼리즘 소설의 약화80년대에 확고한 흐름을 갖고 있던 리얼리즘 계열의 소설은 투쟁 중심의 사회적 분위기가 퇴조함으로써 현저하게 약화되었다. 과 같은 이념 지향의 계간지들이 폐간되고, 민중문학 이론가들이 자기 비판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지점까지 나아가고 있었다. 김영현, 방현석, 정화진 등의 신예들이 문하의 현장성과 형식 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썼지만, 소설적 결빙력을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 계열의 작가들이 쓴 변형된 소설, 남녀간의 사랑 문제를 다룬 안재성의 「사랑의 조건」, 정도상의 「그대여 다시 만날때까지」등이나, 고인에 대한 추모의 정을 그린 김남일의 「길」, 김영현의 「해남 가는 길」등의 작품이 더 호소력 있게 읽혔음을 주목해야 한다.◈ 장편의 활성화- 장편, 대하장편의 활성화: 황석영「장길산」,조정래「태백산맥」), 김주영「화척」,정동주「백정」,유익서「예성강」, 고원정「빙벽」등..-「소설 동의보감」을 필두로, 허균, 임꺽정 등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장편 소설 활성.탈이념적 시대상이 촉발하는 문학의 객관화 작업, 작가의 전문성이 강화된 결과로서 특정한 분야에 대한 관심의 집중, 이를 뒷받침하면서 상품으로서의 효능을 겨냥하는 출판 자본의 형성 등으로 장편 소설이 활성화되었다.2. 1990년대의 주요 소설우리는 1990년대 초반의 소설의 전반적인 흐름을 검토하고, 동시대적으로 유의미한 특성을 가진 작품들을 선별해서 살펴보도록 하자.?전통적 소설 문법에서 실험적인 기법을 도입-구효서의 , , 등은, 진실과 거짓이 이분법적으로 명료하게 구획되는 가치 지향성의 세계를 현실 속에 서 설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이성적으로 윤리적인 판단을 유보하거나 배제하는 서술의 형식 을 개발하고 있다.?하일지의 이후 와 는 내용 에 대한 직접적인 검증보다 글쓰기의 태도와 작가의 인식 문제가 논쟁의 초점이 되는 기이 한 현상 초래.?80년대적 상황에서 새로운 변화와 탈출구를 모색한 작품-유순하의 : 교육자들의 곤고한 삶의 양태를 서술하는 작품.(전교조)?김종록의 : 전시대의 운동권 문제를 개인적 아픔의 흔적과 결부시킨 작품.?불교를 소재로 한 소설 - 이청준의 , 한승원의 ?공산주의자들의 독립운동사를 소재- 유재주의 , 정동주의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 소설 작품도 변모의 양상을 나타낸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시대성을 효율적으로 포괄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장구한 생명력을 획득하기 위해서 그 시대의 한정적 조건을 넘어서는 보편성의 확립에 도달해야만 할 것이다.※ 1980년대 종반의 소설1. 머리말많은 사람들이 1980년대 초반을 라 불렀다. 그것은 문학 작품 중에서 시의 창작과 발표가 다른 장르보다 앞서갔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5월의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구축된 신군부의 강고한 지배 체제가, 검열로 구체적 스토리를 내포한 서사적 공간을 압도함으로써, 자연히 비유와 상징의 기능이 짙은 시적 발화를 조장했다. 노동자, 농민, 운동권의 문제를 대상으로 한 현장소설이 성시를 이루고, 노동자 시인 박노해가 출현했다.2. 역사 인식을 통한 비판적 성찰?역사적, 시대사적 성격을 가진 소설: 조정래의 , 이문열의 , ), , 고원정의 , 전상국의 , 3. 세태소설의 양상-1970년대 소설의 대표적 수확이라 일컫는 황석영의 , 조세희의 , 윤흥길의 -1988년도 화제가 된 양귀자의 , 박영한의 에 이어 1989년박영한의 4. 현실 저항 소설?노동소설: 유순하의 , 방현석의 , 정화진의 ,, 김한수의 ?이순원의 , , 양귀자의 정도상의 , 김성옥의 등..?운동권 문제를 다룬 소설: 한승원의 5. 다양성의 모색문학을 문학답게 하는 것은 실로 문학이 가진 다양성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작품들이 형성하고 있는 계열화 외에도 독창적인 음색으로 소설적 발화 행위를 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현대 사회의 소외의식을 미세한 움직임으로 드러낸 소설.- 이인성의 , 최수철의 , ,
    인문/어학| 2007.07.10| 4페이지| 1,000원| 조회(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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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수와 계몽주의 문학의 의의와 한계
    이광수와 계몽주의 문학의 의의와 한계학과: 국어국문학과학번: 200000099이름: 김 민 정.1. 들어가며(서론)이광수는 한국의 문호로 호칭될 정도로 여러 장르에 걸쳐 방대한 양의 글을 남겼지만, 아무래도 그의 본령은 소설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그의 소설에 대한 논의는 그가 쓴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심도 싶게 연구되어 왔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있어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연구의 다양성과 분량의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총괄할 수 있는 통일된 작가의 세계관에 대한 통합된 결론이 추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 하겠다. 물론 이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님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은 지연되거나 포기되어서는 안되리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광수의 세계인식 태도가 정확히 추출되거나 조명되지 못한다면, 그간의 이광수에 대한 상반된 견해나 다양한 평가도 한 시점에서 통합될 수 없겠기 때문이다.지금까지의 이광수에 대한 논의는 극과 극을 왕래한 것이 사실이었다. 민족주의자 내지는 애국자로 칭찬받았는가 하면, 정반대로 민족반역자, 변절자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또한 위대한 문호, 소설가, 문필가로 칭송되었는가 하면, 통속작가, 대중작가, 위선의 문학가로 매도되기도 하였다.이러한 칭송과 야유를 한 몸에 받은 춘원을 이 시점에서 재조명한다는 것은 이러한 동일 평가 양상의 재반복이 아니라, 이들을 수렴하고 또한 그의 필연성을 파악함은 물론 더 나아가서 이광수 개인뿐만 아니라 당대를 어렵게 살아야 했던 동시대인이나 동시대 작가를 포괄적으로 재인식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으며, 또한 그들과 동일한 궤적의 삶을 영위해야 하는 우리 자신의 문제도 함께 해결하려는 데 그 의의가 있다.2. 본론이광수는 개화기 시대를 문학적으로 완성하면서 다음 세대로 새로운 형태의 문학적 도전을 가능케 해준 이중의 역할을 맡고 있다. ‘민족 의식이라는 병을’) 일생 내내 달고 다닌 이광수는 1910년에 이르는 개화 과정을 투철하게 지켜볼 수 있는 여건 밑에서 자라났으며, 나라의 상실이 갖는 의미를 10년, 19세에 조선으로 돌아와 오산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면서 중매로 결혼하여 애정이 없는 결혼 생활을 했고, 이혼과 재혼으로 애정의 도피를 하기도 했다. 오산 학교 교원 시절에는 망국인의 설움을 겪어야 했으며, 방랑 시절에는 시베리아에서 1차 세계 대전의 소식을 들었고, 그 종말을 사랑의 도피처인 중국이 상해에서 들었다. 3?1만세 운동소식을 상해에서 들었는가 하면, 중일 전쟁 반발 때에는 수양 동우회사건으로 옥에 갇혀 있었다. 광복 후에는 일제 말의 훼절로 인해 친일파라는 죄목으로 심판을 받아야 했으며, 6?25와 함께 북에 납치되어 생사 불명, 거처 불명의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런 춘원이 문학 작품에서 보여 준 것은 계몽주의?민족주의?인도주의였다.(2) 문학적 특징이광수는 한국 근대문학 초창기의 선구자요 개척자였다. 그는 15세 무렵부터 최남선과 함께「소년」,「청춘」지 등의 편집과 집필에 참가하여 언문일치 운동 및 신문학 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담담하였다. 또한 최초의 신체시인이며, 최초의 근대소설 작가로서 한국 근대문학의 기반을 닦는 데 기여하였다. 「소년」과「청춘」의 주간은 최남선이었으나, 여기에 발표된 문학 작품은 그 대부분이 이광수의 것이었으며, 언문일치 운동도 그 선창자는 최남선이었으나, 그것을 발전시킨 것은 역시 이광수였다. 그리고 그는 혁명적 사상의 소유자로, 구시대의 제도 및 가치관에 도전, 당대의 생활과 환경의 근본적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의 사상적 혁명성은, 봉건시대의 도덕중심 교육을 비판하고 정서교육을 주창한 (1908)이나, 구시대의 조부모 중심의 가족제도 및 가치관을 통렬히 비판하고, 자녀 중심의 새로운 가치관을 주창한 (1918) 같은 논문에서, 그리고 애정의 자율성과 자아 각성을 천명한?무정?과 같은 소설을 통하여 일찍부터 드러나고 있거니와), 이에 대해 김동인의 다음과 같은 논평을 하고 있다.그가 처음에 던진 문학은 반역적 선언이었다. 실로 용감한 돈키호테였다. 불교와 예수교에 선전을 포고하였다. 父老들에게 선전을 근대소설사상 최초의, 가장 중요하며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무정?은 이광수의 대표작이며, 한국 최최의 근대소설 혹은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을 대표하는 작품 등의 평가를 받아온 작품이다. 일찍이 김동인에 의해?조선신문학이라 하는 대건물의 가장 긴한 주춧돌?, 혹은 백철에 의해?초창기의 신문학을 결집해 놓은 시대적인 거작?등으로 높이 평가된?무정?에 대하여 최근의 논자들은 그 근대문학사적 의의를, ① 자아 각성에 바탕을 둔 자유 연애 및 민족주의 등 근대적 사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 ② 서구의 ‘novel'의 개념에 접근한 최초의 본격적 장편소설이라는 점, ③ 최초로 포괄적?획기적으로 당대의 사회사에의 접근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는 점,) ④ 근대소설다운 한글 문체를 최초로 완성시킨 작품이라는 점, ⑤ 최초로 성격 창조를 실험하여 성과를 거둔 작품이라는 점, ⑥ 최초로 사실적 표현기법을 시도, 성과를 거둔 작품이라는 점 등으로 요약된다.이광수 문학의 특성은, 그의 문학세계의 방대함으로 인해 요약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대략 민족주의, 계몽주의, 이상주의, 사실주의 개념을 중심으로 그 대요를 논의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1. 민족주의이광수는 우리 나라 최초, 최대의 민족주의 문학자이다. 우리의 근대소설사상 이광수만큼 많은 독자들에게 깊고 큰 영향을 준 민족주의 문학가를 찾아볼 수 없다. 그의 평생에 걸친 작품 전체에 일관하는 가장 뚜렷한 이념이 있다면 그것은 민족주의이며, 그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그의 문학의 총결산 역시 민족주의라고 지적할 만하다. 이광수는 자신을 민족주의자로 자처)하고 있었으며, 소설을 쓰는 구경(究竟)의 동기도?조선과 조선민족을 위하는 봉사와 의무의 이행?에 있다고 천명한다. 등은 구가족 제도의 기본적 폐단으로 그가 지적하고 있는 것들이며 거기에서 숙명론적 인생관과 노동 천시?무위도식 습성이 생겨남을 또한 주목, 예리하게 비판한다. 그렇다면 과거의 그러한 폐습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그는 교육에 의해서이다.「무정」의 유명한 한 대목 한 것을 합리라는 어휘로 요약한다.합리라는 말은 (중략) 합법?합윤리?합사정 등의 뜻을 포함한다고 합리라 부릅시다. 이 조건 은 국가와 사회와 시대와 개인을 떠나서 변할 것이외다.)그가 과거의 것을 무조건 버릴 것으로 치부하여 자기의 세대를 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합리적인 것이라 생각한 것에는 모순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그의 합리주의가 풍속의 차원에서만 행해지고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행해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치명적 약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풍속은 어떤 국가의 이념의 육화이다. 이념이 규정되지 아니한 풍속은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연애와 자아인식을 가능케 할 정체?국체가 없는 한 그것은 오히려 반윤리적 차원에 떨어질 가능성을 지닌다. 그의 후기 작품의 무절제한 사랑의 유희는 그의 합리주의가 맹목적인 것이었음을 집증하는 좋은 증거물이다. 그가 교육으로 실행으로 보여주어야 했을 것은 구제도의 모순에 대한 공격과 불법적인 침략 집단에 대한 그것이었어야 했을 것이다.다음으로는 이광수의?흙?에서 나타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이 사람의 말에 자네 반대한 용기가 있나? 조선의 모든 쇠퇴가 정치를 잘못한 자취라는 것 을? 그것이 다 양반계급의 계급적 이기욕과 가치 판단의 전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무엇인 가. 그런데 말야. 아냐, 내 말을 끝까지 자세히 듣게. 그러게 말야. 자네와 같은 지식계급이 아 직도 그러한 전도된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은 심히 슬픈 일이 아닌가. 우리네 새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여러 백년 동안 잊어버렸던, 아니, 잊어버렸다는 것보다도 옳지 못하게 학대하던 농 민과 노동 대중의 은혜와 가치를 깊이 인식해서 그네들에게 가서 봉사할 결심을 가지는 게 옳지 아니하겠나?)이광수는 「흙」에서 허승을 내세워 자신의 이상향을 펼치고 있다. 허승은 출신은 지식인이었다. 그는 서울에서 가정교사를 하면서 재산도 많고 미인이기까지 한 정선과 결혼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허승은 식민지 조선 현실 하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의무감과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자고 강조하였다. 계몽주의, 민족주의, 브나로드 운동은 농민의 어려운 생활을 넉넉하게 하고, 교육을 통해서 민족의 힘을 기르자는 것은 당시에는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를 만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흙?을 통해서 일종의 민족주의적 꿈을 구체화하고 있음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결정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대안 속에서도 체제 내의 개혁을 주장함으로서 「무정」에 이어서 역사의식의 결여)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이기영의?고향?과 비교했을 때 이광수의 한계는 극명히 드러난다.?고향?의 주인공 희준은 농촌의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서 직접 생활인이 되었고, 그들 안에서, 스스로 소작인이 되어 민중들을 조직했다. 그 방식의 차이점, 민중들을 가르치는 방식에 머무르는 것과 스스로 민중의 일부가 되어 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투쟁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3. 이상주의이광수의 민족주의에는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일부 논자들의 비판을 앞에서 인용한 바 있지만, 그의 문학은 처음부터 다분히 이상주의적 경향의 기미를 보여 주었고, 이러한 경향은 그가 당대적 현실로 인한 압박과 좌절 및 비극성을 절감할수록 그의 문학에서 보다 심화되어 드러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민족주의 이념을 표명한 그의 많은 작품에는 민족이 처한 현실의 비극성이나 그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의 이념의 실현을 위해 헌신적으로 행동하는 이상주의적 인물과, 그러한 이념의 실현을 위해 헌신적으로 행동하는 이상주의적 인물과, 그러한 이념이 궁극적으로 실현된 이상의 세계가 한결같이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적 인물과 세계는 지나치게 미화되고, 비현실적이기조차 하였지만, 당시의 독자 대중들에게는 마치 사막의 신기루와 같이 의욕과 생기를 북돋는 효과를 발휘하였다.)?무정?에서 시사된 이상적 세계는 그 이후의 그의 많은 작품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다. 과학적으로 낙후한 조국의 발전을 위해 파산을 무릅쓰고 과학 연구에 몰두하는?개척자?의 주인공 김성재, 온갖 시련을 )
    인문/어학| 2007.07.10| 16페이지| 2,500원| 조회(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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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니멘터리 한국설화-민속학
    애니멘터리 한국설화 - 답사 보고서1. 답사를 시작하며- KBS 위성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애니멘터리 한국설화’라는 프로그램에 대하여.우리의 설화속에 등장하는 인물상은 어떠하여야 하는가. 한가지 분명한것은 일본의 애니매이션에 등장하는 토토로나 매이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디즈니의 미키마우스가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우리의 설화속에 나타나는 인물상은 우리만의 어떤 그것이 있어야 된다. 현재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의 민속 유산인 설화에 대한 프로그램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애니멘터리 한국설화’의 작가 조용오 씨는 “매주 촬영 현장에 나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은 손상되고 없어지는 유적과 유산을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설화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우리 민족 문화의 근간을 발견하고 근원적인 힘을 살리는 작업”이라며 프로그램의 의미를 설명했다.우리는 ‘애니멘터리 한국설화’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현재 TV 프로그램에서 우리의 설화가 어떤 형태로 재현되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과 의의,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프로그램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2. 애니멘터리(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의 접목)2.1 애니메이션)1989년 에드워드.S.스몰과 우진레빈슨에 의해 쓰여진 『Toward a Theory of Animation』에서 그들은 애니메이션을 단일 프레임으로서의 ‘시네마토그래피 기술’이라 정의했다. 1988년 찰스 솔로몬은『Animation:Note on a Definition』에서 ‘이미지는 프레임 바이 프레임(frame by frame)으로 촬영되고 움직임의 환상은 녹화되기보다는 창조된다.’라고 정의했다. 캐나다 국립 영화위원회(NFBC)의 노먼 멕라렌은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그림의 예술이 아니라 그려진 움직임의 예술이다, 각각의 정지 화면 사이에 무엇이 발생했는가는 각각의 정지 화면상에 무엇이 존재하느냐보다 더 중요하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이란 정지화면 사이의 속임수로 and the Seven Dwarfs)’를 완성했다. 이시기부터 애니메이션은 독립적인 극장용 오락 영화로서 인식되기 시작했다.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는 디즈니로 대표되는 스튜디오 시스템에 적응한 셀애니메이션뿐 아니라 다른 제작기법 내지는 추상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졌고 이러한 유럽의 전통은 오늘날 유럽뿐 아니라 캐나다 일본등지에 영향을 끼쳐 소위 작가주의 애니메이션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2차 세계대전 이후 애니메이션은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감과 동시에 상업적 이용가치의 증대로 기존의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주로 디즈니로 대표되는 셀애니메이션) 스타일과 디자인에서 벗어난 작품들이 등장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디즈니 스튜디오 출신 애니메이터들이 설립한 UPA의 작품들이 그러했다. UPA의 대표적 작품으론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제럴드 맥보잉 보잉’이 있다.1950년대 중반 이후 텔레비젼의 보급이 크게 늘면서 점차 극장이 사양길을 걷게 되자 본격적인 텔레비젼용 애니메이션 시대가 열리게 되는데 텔레비젼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저비용 고효율을 요했고 거기에 부합해 리미티드 애니메이션(1초에 들어가는 프레임수를 줄이는 방식)기법이 사용되는 작품이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리미티드 기법은 오늘날 텔레비젼용 애니메이션의 제작기법으로 정착되었다.텔레비젼의 등장으로 잠시 주춤했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은 1988년 디즈니의 장편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Who Framed Roger Rabbit)’가 성공을 거두면서 다시금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잠재력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1990년대에 디즈니의 연이은 장편 애니메이션의 제작과 흥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90년대 들어 기존의 셀애니메이션뿐 아니라 ‘토이스토리(Toy Story)’와 같은 컴퓨터 애니메이션, ‘윌리스와 그로밋(Wallace and Gromit)’과 같은 클레이 애니메이션이 성공을 거두면서 더욱 다양한 상업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고 있고 작가주의 애니메이션 또한 캐나다를 위시한 여러 국가에서 많은 작품이 가능성을 인정하는 정도에서 차이를 지니는 것 뿐이라고 할 것이다.따라서 다큐멘터리에 대한 정의는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세계 최초로 개최된 다큐멘터리 연맹에서 제시된 다음과 같은 진술이 가장 포괄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정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폴로다 저,유현목 역, 1982, 30면)“다큐멘터리 영화란 경제, 문화, 인간관계의 영역에서 인간의 지식과 이해를 넓히고 그 욕구를 자극시키며 문제와 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이성이나 감성에 호소하기 위해서 사실의 촬영이나 진지하고 이치에 맞는 재구성을 통해 해석되는 사실의 모든 면을 영화(Celluloid)에 기록하는 모든 방법을 말한다.”결국 정의에서 살펴본 바와같이 다큐멘터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1차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사실’과 ‘재구성’의 문제이다. 부연하자면 먼저 다큐멘터리가 다른 문화 양식과 구별되는 것은 그 소재가 ‘실제세계(actuality)’ 라는 점 때문이며, 두 번째로 그것이 규명한 화면을 통해 제공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재구성’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서 이미 실제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창조물이라는 점이다.2.3 애니멘터리 한국설화‘애니멘터리 한국설화’는 설화 부분의 애니메이션과 현장 부분의 다큐멘터리를 접목하는 형식으로, 살아있는 설화(신화, 전설, 민담의 형태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오는 우리의 이야기들)와 그 현장을 찾아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우리곁에 남아,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 오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이야기들. 이것이 우리의 ‘설화’라는 판단 아래, ‘애니멘터리 한국 설화’는 약간은 애매한 신화?전설?민담의 구분을 떠나 아직도 우리곁에 남아있는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먼저 애니메이션의 형식으로 설화의 내용을 이야기한 후에,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설화의 현장을 직접 찾아 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3. 애니멘터리 이전에 다른 방법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은 없었나?‘애니맨터리 한국속에서 어제의 우리와, 오늘의 우리, 내일의 우리를 이어나감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5. 내용답사 중 우리가 본 방송분은 1회~69회로 내용은 삼국유사와 지역설화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중 40여편이 삼국유사, 20여편이 지역설화였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계속 방영되고 있는 것으로 현재는 지역설화 위주의 방송이 진행되고 있다.-내용 별도 첨부-5.1. 설화5.1.1 설화의 개념 및 특징설화는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민족적 집단의 공동생활 속에서 공동심성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문자 기술 이전에 구전문학으로, 일정한 구조를 가진 꾸민 이야기이다. 설화 속에는 민족의 역사?신앙?관습?세계관 및 꿈과 낭만?웃음과 재치, 또는 생활을 통해서 얻은 교훈이나 역경을 이겨내는 슬기와 용기 등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또 설화는 일정한 이야기를 꾸며낸 이야기이기 때문에 일상의 신변잡담이나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이야기는 이에 속하지 않는다. 설화의 전반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설화는 구전된다. 구절구절을 완전히 기억해서 구전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핵심이 되는 구조를 기억하고, 이에 회자 나름의 수식을 덧보태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보존과 전달 상태가 가변적이다. 둘째, 설화는 산문으로 되어 있다. 설화는 보통 말로써 구연되며, 규칙적인 율격은 가지고 있지 않다. 셋째, 설화는 구연 제한이 없다. 언제?어디서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만 조성되면 구연할 수 있다. 넷째, 설화는 반드시 화자와 청자 대면관계에서, 화자가 청자의 반응을 의식하면서 구연된다. 다섯째, 설화의 화자는 화자로서 자격 제한이 없고, 일정한 수련을 요하지도 않는다. 여섯째 설화는 구비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서 문자로 기재될 수 있는 기회를 가장 많이 갖는다.5.1.2 설화의 구분구분신 화전 설민 담전승자의 태도신성미진실미흥미위주시간과 장소아득한 옛날(태초), 신성한 장소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구체적인 시간과 장소 없음증거물포괄적 (우주, 국가 등)개별적(바위, 개울 등)보편적주인공분으로서 이 같은 책을 저술함에 있어, 더러는 인용서와 그 내용이 같지 않은 것도 있고, 잘못 전해져 오는 것을 그대로 수집?수록한 것도 없지 않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 책 자체가 그 서명(書名)이 말하듯이 일사 유문적(逸事遺聞的)인 것이기 때문에 따르는 불가피한 것이라 하겠다.이 책의 저자 일연(一然)은 고려 희종(熙宗) 2년(1206)에 경산(慶山)에서 출생했다. 속성(俗姓)은 김씨요, 이름은 경명(景明), 자는 회연(晦然)이다. 9세 때 출가하여 남해(南海)의 무량사(無量寺)에 들어가 수도 생활을 했다. 22세 때에 선과(禪科)에 급제하고 54세 때에 대선사가 되었다. 78세 때 충렬왕(忠烈王)이 승지(承旨)를 보내어 왕명으로 국사의 예를 갖추고자 하였으나, 굳이 이를 사양하므로 다시 근친의 장군을 보내어 국존(國尊)으로 책봉하고 궁내로 맞이해 들였다. 그러나 그는 궁성에 있기를 싫어하여 노모의 병을 빙자하고 구산(舊山)으로 내려갔다. 84세 되던 1289년 7월 8일 제자로 하여금 북을 치게 하고 자기는 의자에 앉아 여러 승려와 더불어 담소자약(談笑自若)하게 선문답을 하다가 갑자기 손으로 금강인(金剛印)을 맺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높은 덕과 깊은 학문으로 왕의 극진한 존경을 받았으며 많은 사람들의 추상의 대상이었다 한다.비문에 의하면 그의 저?편저로는, 어록 2권, 게송 잡서(偈頌雜書) 3권, 조동 오위(曹洞五位) 2권, 조도(祖圖) 2권, 대장수지록(大藏須知錄) 3권, 제승 법수(諸乘法數) 7권, 조정 사원(祖庭事苑) 30권, 선문 점송 사원(禪門拈頌事苑) 30권 등 불서(佛書) 80권이 넘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는 것이 거의 없고, 어찌 보면 그로서는 희작(戱作)이라 할 수 있어 비문에도 적혀 있지 않은 만이 유저(遺著)로 전해지고 있다.는 모두 5권으로 다음과 같은 체재로 되어 있다.제 1권: 왕력 제 1(신라?고구려?백제?가락 및 후삼국의 연대표), 기이 제 1(고조선 이하 삼한?부여?고구려와 통일 삼국 이전의 신라의 유사)제 2권: 기이 제 .
    인문/어학| 2007.07.10| 11페이지| 1,000원| 조회(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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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속학-단군신화 분석
    단군신화 분석? 들어가며일연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권1 고조선 조의 단군에 관한 기록은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신성시해 온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를 흔히?단군신화(檀君神話)?라고 한다.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의 우월성과 정통성을 일깨워 주고, 우리 문화의 원형을 해명해 주며, 우리 민족이 지향해야 할 이념을 제시해 주는 값진 자료이다. 그러므로 단군신화가 어떤 성격과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단군신화가 문헌에 실린 모습가.「삼국유사」수록 자료「고기(古記)」에 이렇게 쓰여 있다.옛날에 환인(桓因)의 작은아들 환웅(桓雄)이 천하에 뜻을 두고, 자주 사람이 사는 세상을 탐내어 구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아차리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였다[弘益人間]. 이에 환인은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인간 세계를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턱(태백산은 지금의 묘향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밑으로 내려왔다. 이 곳을 신시(神市)라고 하고, 이분을 환웅 천왕이라고 한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와서,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 등을 주관하고,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이 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속에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항상 환웅에게 빌어 사람이 되기를 원하였다. 이 때 환웅은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였다.“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변하여 사람이 될 것이다.”곰과 호랑이는 이것을 받아서 먹었는데, 곰은 삼칠일간 금기를 지켰으므로 여자의 몸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호랑이는 금기를 지키지 않았으므로, 사람으로 변하지 못했다.웅녀는 혼인할 사람이 없으므로, 매일 단수 밑에서 아기 배기를 축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거짓 변하여 그녀와 혼인했더니, 바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 아이의 이름을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고 하였다.단군왕검이 당나라 요 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요 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년이다. 그러니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연이 아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의심스럽다)에 평양성에 도읍하여, 처음으로 조선(朝鮮)이라고 불렀다. 또 도읍을 아사달로 옮기니, 이 곳 이름은 궁홀산이라고도 하고, 금미달이라고도 한다. 그는 여기에서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무왕(武王)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했다. 이에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기었다가 후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이 되었는데, 그 때 나이가 1908세였다고 한다.나.「제왕운기」수록 자료제왕운기에는「삼국유사」에 비해 간단한데, 곰이 쑥과 마늘을 먹으며 금기를 지켜 여자로 변신했다는 내용이 없고, 환웅이 웅녀와 혼인하는 내용이 환웅이 손녀로 하여금 약을 먹고 사람이 되게 하여 단수신과 혼인시켜 단군을 낳은 것으로 되어 있다.다. 그 외의 문헌 수록 자료단락의 요지삼국유사제왕운기응제시주세종실록동국여지규원사화가.1. 환인이 환웅을 인간계로 보냄○○○○○○2. 환웅의 하강, 인간 교화○○○○○○나.1. 곰이 사람되기를 원함, 영약 복용○○○2. 곰이 사람으로 변신함○○○다.1. 웅녀가 아들 낳기를 빎○○○2. 환웅과 웅녀의 혼인 및 단군 출생○손녀와 단수신의 혼인 및 단군 출생○○○○라.1. 단군의 조선 건국○○○○○2. 단군이 산신이 됨○○○○○○? 단군신화의 성격과 의미가. 한민족의 우월성과 유구한 역사① 천신인 환웅이 인간계로 내려옴환인)은 우주 만물을 주관하는 천제 즉 하느님이고, 환웅은 천제의 아들이다. 천제의 아들인 환웅이 인간세계에 뜻을 품고 아버지가 주는 천부인 3개와 삼사(三師), 그리고 삼천의 무리를 이끌고 지상으로 내려와 신시를 열고 인간을 교화하였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것은 단군의 부계(父系)가 천신으로, 신성하고 존귀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환웅이 환인의?서자(庶子)?라는 점에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데, 서자의 뜻을?첩이나 딴 여자에게서 난 아들?이라는 사전적 의미로만 생각하지 말고,?맏아들이 아닌 작은아들?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② 곰이 여자로 변신한 일의 의미곰은 삼칠일간 금기를 지켰으므로 여자로 변했으나, 호랑이는 금기를 지키지 않았으므로 사람으로 변하지 못했다. 곰이 여자의 몸으로 변신하였다는 것은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어떠한 사실의 상징적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을 곰 토템 부족의 여자가 악귀를 쫓는 효능이 있는 쑥과 마늘을 가까이 하며, 햇빛이 비치지 않는 동굴 속에 들어가 일정한 기간 금기를 지킨 뒤에 성숙한 여인이 되는 입사식의 표현으로 보면 어떨까? 그렇게 보면, 참을성 있는 곰 토템 부족의 여인은 금기를 지켜 성숙한 여인으로 변신한 후, 환웅의 배우자로 선택되었고, 금기를 지키지 못한 호랑이 토템 부족의 여인은 입사의례(入社儀禮) 과정에서의 시련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에 신성한 배우자와 혼인하는 일에 실패한 것이 된다.③ 천신과 지신의 혼인에 의한 단군 탄생환웅은 환인 천제의 아들로 인간을 교화하기 위하여 지상계로 내려온 천신이며, 세상을 다스리는 위대한 존재이다. 웅녀는 곰이 변신한 여자인데, 곰은 토템(totem) 동물로 보는 것이 좋겠다. 토테미즘의 관점에서 볼 때, 곰은 지상에 존재하는 신이고, 웅녀는 신인 곰이 여자의 몸으로 잠시 변한 것이 된다. 따라서 환웅과 웅녀의 혼인은 천신과 지신의 신혼(神婚)이다. 단군은 천신과 지신의 신혼에 의하여 탄생한 신이한 존재이다. 천신과 지신을 부모로 하여 탄생한 단군은 신이한 능력을 타고난 비범한 인물이다.④ 장구한 역사와 광대한 영토「삼국유사」에 수록된 단군신화의 첫머리는?옛날에?로 시작하여 신화적 시간 화소가 나타나고, 뒤에서는 “단군왕검은 당나라 요 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하여 처음으로 나라를 세우고 조선이라고 불렀다.”고 역사적 시간으로 표현하였다. 이것은 단군신화가 우리 민족의 역사가 유구하고, 첫 부족국가였던 고조선은 한반도에서 만주를 포함하는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나. 단군의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의 사제왕(司祭王)단군은「삼국유사」에는?壇君?으로 표기되어 있고,「제왕운기」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는?檀君?으로 표기되어 있다. 단군이란 말의 뜻을 살펴보면, 신채호는?단군?은 고유명사가 아니고, 사제자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보았다. 최남선은 민간에서 무당을 부르는 말에 ?당굴?이 있는 것에 유의하여?단군?은?당굴?의 음사(音寫)로 보고, 어형으로 보아 몽고어의 하늘 무(巫)를 가리키는 말?텅걸?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마한 각 곳의 신읍(神邑)에서 천신을 받드는 이를?천군(天君)?이라고 하였는데, 이것 역시?당굴?을 뜻하는 말이라 하였다. 현재에도 호남 지방에서는 무(巫)를?단골?단굴?당골?당굴?이라고 하는데, 이를 한자로?壇君?또는?檀君?으로 적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별 무리가 없다. 따라서 단군은 제정일치 시대의 사제왕, 즉 큰무당이었다고 하겠다.다. 민족 지향의 이념① 신 국가 건설의 이상과 개척 정신이다.② 지상천국 건설의 현세주의 이념이다.③ 홍익인간의 이념이다.라. 한국 문화의 원형① 한국 문학의 원형1. 단군신화에는 지상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 현세주의적 이념이 표출.고소설 「구운몽」에 이상선계(理想仙界)가 설정.2. 곰의 시련 극복과 그 결과로 얻어지는 소원 성취는 후대 문학의 원형으로 작용.변신 모티프: 「삼국유사」의 , 「옹고집전」의 둔갑설화.3. 단군신화에는 숫자?삼(3)?이 많이 나온다.-환인?환웅?단군의 3대, 삼위태백, 천부인 3개, 풍백?우사?운사의 세 신, 3천의 무리, 삼칠일, 360여 가지 일 등 → 삼을 신성한 수로 인식.4. 환웅은 천부인 3개를 가지고 지상으로 내려오는데, 그가 가지고 온 천부인 3개가 무엇이 었는가? : 학계에서는 이를 거울, 칼, 방울로 보기도 한다.② 민족 고유의 신앙과 풍습1. 천신숭배 신앙과 산신 신앙이 나타난다.2. 수목 숭배 사상.3. 동물숭배 신앙.* 또 다른 민속1. 단군신화에는 기자(祈子))의 민속이 나타난다. 기자에는 치정 기자와 주술 기자가 있다.치성 기자: 바위?샘?나무에 드리는 산 치정, 산신, 부처께 드리는 절 치성,삼신을 비롯한 가신(家神)께 드리는 집안 치성 등.2. 환웅은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려 기후를 조절하고, 곡식을 주관 → 농경 생활의 시작.? 나오며..?한핏줄 한겨레, 몇천만 동포. 단군의 자손?이라는 말이 지닌 의미는 우리 민족 구성원 모두가 민족의 이름 앞에서 대등한 자격을 지닌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민족의 집단성을 핏줄로 결합된 숙명적인 운명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외세의 억압에 대한 저항과 민족적 통일과 단결을 촉구하는 의식을 담았으며, 나아가 민족의 공동체성을 실제적인 사회적 균등화를 통해 구현하여야 한다는 의식으로 진전되고 있다.
    인문/어학| 2007.07.10| 4페이지| 1,000원| 조회(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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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 계통론
    ※ 국어 계통론에 대하여....국어의 계통은 국어계통론과 언어계통론의 과제가 된 지 오래지만 이렇다 할 분명한 결말이 나지 않은 교착상태에 머물러 있다. 국어의 계통은 민족정체의 구명(究明)을 위하여도 풀어야 하고 풀려야 할 과제이지만 아직 그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제는 과거 속에 파묻혀 그리 녹녹한 것이 아니지만, 이 숙제는 잘만 다루면 그래도 결말을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되어진다.국어가 알타이어라는 계통설은 이들 구조적 특징 즉, 모음조화와 문법적 교착성이 국어에서도 확인됨으로써 제기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구조적 특징 위에 세워진 알타이어족의 가설이나 국어를 추가하는 가설은 근거가 매우 빈약한 것이었다. 구조의 유사는 동계의 언어사이나 그렇지 않은 사이에서도 발견되므로 친족관계의 증명에 결정적 증거로 이용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통특징들의 존재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친족관계를 뜻하는 것으로 특정한 특징들이 이웃 언어들로부터 뚜렷이 구별시켜 줄 때 친족관계를 증명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국어와 알타이제어의 특징을 살펴보면 모음조화, 어두의 자음이 제약을 받고 있는 것, 교착성을 보여주는 것, 모음교체 및 자음교체가 있는 것, 접속사와 관계대명사가 없는 것, 부동사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국어와 알타이제어 사이에 중요한 구조적 특징들이 일치하지만 차이 또한 존재한다.국어가 알타이제어에 들어간다라고 말할 때 사용되는 언어자료로서는 어휘, 문법 등 음운 대 음운의 규칙을 세워 비교하여야 한다. 알타이조어의 모음체계는 전설모음과 후설모음의 양계열의 대립(a, o, u, i, e, e, o, u, i )을 특징으로 하며 국어(ㅏ, ?, ㅗ, ㅣ, ㅓ , ㅣ, ㅡ , ㅜ, ㅣ)도 고대와 전기중세에는 이런 특징을 가졌다. 알타이제어와 국어의 모음 대응들로 어휘를 비교해보면 중세국어 아래(al-)와 몽고 ala 고대토이기 al 과 중세국어의 ?, 만주 morin, 몽고 morin 등과 특히 국어의 ‘ㅣ’와 알타이조어의 i, , ㄷ의 대응은 주목할만한 것으로 이것은 국어가 이른 시기에 이들 모음의 합류를 경험하였음을 암시하며 다른 알타이제어에서도 일어난다.이러한 모음의 비교에서 드러나는 흥미있는 사실은 국어의 어말 모음의 탈락이다. 기원적인 2음절 단어가 1음절로 되고 3음절 단어가 2음절로 되었다. 중세국어 굴(굴뚝), 만주 hulan, 올차 kula, 몽고 gulang. 국어에서는 다시 어중의 ‘ㄹ’과 자음 사이에서 모음이 탈락하는 현상이 추가된 결과, 3음절 단어가 1음절이 된 예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어말 모음의 탈락이 어떻게 이루어져서 단어의 음절이 줄어드는 것인지 의문이다.또한 자음의 기본적인 대응을 보면 pb→ㅂ, td→ㄷ, kg→ㄱ, c →ㅈ, s→ㅅ, m→ㅁ, n→ㄴ, rrll→ㄹ로 각각 대응이 된다. 국어의 평음이 알타조어의 무성음과 유성음에 아울러 대응되는 사실과 유기음이 있었던 것은 국어에서 원시적인 무성음과 유성음의 합류가 일어나고 그 뒤 유기음 계열이 발달한 것으로 설명된다. 자음에 있어서 어두 자음의 대응은 비교적 확실하나 어중의 자음 또는 자음군의 대응에 아직 적지 않은 미해결의 문제들이 남아 있는데 어떠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도 더 연구해 보아야 할 것 같다.문법 체계는 차용이 거의 없고 보수적이어서 고유 요소의 핵심으로 문법 체계의 비교는 언어의 친족관계를 증명함에 있어 또 다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알타이제어 사이에는 곡용 조사의 광범한 일치가 확인되며 국어와 비교하면 많은 곡용 조사들은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알타이 조어의 여격조사에 -a/-e가 재구되며 향격조사는 -ru/-ru로 재구되고 연격조사는 -li로 형태와 기능에 있어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동사의 활용 체계에서도 많은 일치를 나타내고 있으며 동명사형 어미에서도 알타이제어의 반사형 -r이 -ㄹ로 동사 파생명사의 접미사 -m이 중세국어 동사 파생명사 여름 거름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n은 중세국어 -ㄴ(?/은)에 비교된다. 그러나 국어와 알타이제어와의 관계에서 수사의 일치는 매우 적으나 국어의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인문/어학| 2007.07.10| 2페이지| 1,000원| 조회(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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