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역사적 배경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 아테네에서 북쪽으로 약 200마일쯤 떨어진 마케도니아의 도시 스타기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후세에 많은 철학자들이 신성한 분위기 속에서 자란 것과는 달리 약냄새 속에서 성장했다. 그에게는 과학적 경향을 발달시킬 온갖 기회와 자극이 있었다. 처음부터 과학의 창시자가 될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던 셈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 문하에서 8년(일설에 의하면 20년)동안 공부했다. 그런데 사실상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 지극히 반 플라톤적인 사상까지도 – 침투한 플라톤주의로 보아, 20년 동안이라는 설이 옳은 것 같다.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위대한 왕의 스승이었던 만큼 그를 적대시하는 도시 아테네에서도 어렵지 않게 제자를 발굴해낼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53세가 되어 리케이온이라는 학교를 세웠을 때, 학생들이 너무 몰려들어 복잡한 규칙을 만들지 않고서는 질서를 유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스승과 함께 식사를 했고, 스승과 함께운동장 연변의 ‘산책로’를 거닐며 가르침을 받았다.그는 플라톤처럼 문학에 새로운 표현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과학과 철학의 용어를 확립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가 창작한 용어를 쓰지 않고는 절대로 과학에 대해 말할 수 없다.아리스토텔레스는 생전에 논리학 및 수사학 관계 저서 외에는 전문적 저서를 발간하지 않은 듯하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이름으로 된 모든 저서의 정신적 저자임을 믿어도 될 것이다.논리학의 창시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거의 스스로의 엄격한 사색에 의해 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엄격한 공식이 사상을 음미하고 바로잡고 적절한 방법을 제공할 때까지는 그리스의 지성도 무질서하고 혼란했다.한마디로 논리학은 정확한 사고의 기술이고 방법이다. 논리학은 모든 학문, 모든 이론, 모든 기술의 방법으로 음악 속에까지 깃들여 있다. 올바른 사고의 과정을 물리학이나 기하학처럼 쉽사리 규칙으로 환원시킬 수 있고,에는 두 부분이 있고, 두 가지 확고한 기준이 있다고 대답한다. 첫째, 정의는 당면한 대상을 동일한 일반적 특성을 가진 유 또는 집단 속에 집어넣는다. 예를 들면 인간은 우선 동물에 포함된다. 둘째, 정의는 그 대상이 어떤 점에서 같은 유에 속하는 다른 모든 대상과 다른가를 밝힌다. 예를 들면,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에서는 ‘이성적’ 동물이며, 그 종차는 다른 모든 동물과는 달리 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상을 유라는 대양에 집어 넣었다가 꺼내는데, 이때 유적 의미, 곧 유 내지 집단의 여러 특징이 물방울이 되어 뚝뚝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그 대상의 개성과 차이점이, 이 대상과 매우 흡사하면서도 전혀 다른 대상들과 대비되기 때문에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로 돌아가라.” 곧 ‘자연의 왜곡되지 않은 얼굴’을 보라고 말한다. 그는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 피와 살이 있는 개체를 특히 좋아했다.철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뚜렷하고 독창적인 공헌, 독 삼단논법의 이론을 보면 이러한 자취가 뚜렷이 드러난다. 삼단논법은 새 개의 명제로 이루여져 있는데, 제 3명제(결론)는 다른 두 개의 명제(대전제와 소전제)의 명뱍한 진리로부터 연역된다. 예를 들면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이성적 동물이다.’수학을 공부한 독자는 곧 삼단논법의 구조가 ‘ 두 전제가 모두 제 3의 사물과 같으면 이 두 전제가 서로 같다, 다시말하면 A=B,C=A라면 B=C’가 됨을 알게 될것될 것이다. 수학의 경우, 두 전제로부터 공통항 A를 제거하면 결론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삼단논법에서도 두 전제로부터 인간이라는 공통어를 제거하고 나머지를 결합하면 결론에 도달한다. 이 경우 난점은 삼단논법의 대전제가 증명이 필요한 것까지도 자명한 것으로 보는데 있다. 분명히 삼단 논법은 진리 발견의 수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설명과 사상을 명석하게 하는 수단이다.형이상학과 신의 본성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생물학으가 된다.어떤 사건을 결정하는 여러가지 원인 중에서 목적을 결정하는 목적인이 가장 결정적이고 가장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이것은 지상의 구조와 사건을 결정하는 외적 섭리의 존재를 뜻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계호기은 내면적인 것으로서 사물의 유형과 기능으로부터 생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신의 섭리는 자연적 원인의 작용과 완전히 일치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 오래된 운동에 대한 수수께끼로부터 이 문제에 접근한다. “어떻게 운동이 시작되었는가.”라고 그는 묻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에는 반드시근원이 있다고 말한다. 이 문제를 한 발 한 발 한없이 더듬어 올라가다가 음울하고 무한한 근원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형적, 불가분적, 비공간적이며, 성, 감정도,변화도 없는 완전하고 영원한 어떤 존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신은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인다. 신은 순수한 현실태이며, 스콜라 철학에서 말하는 능동성 자체이다. 그것은 아마도 현대 물리학과 철학에서 말하는 신비적인 힘일 것이다. 이 신은 인격이라기보다는 자력이다.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도 그가 흔히 범하는 모순 중의 하나지만 신을 자기의식적인 영으로 묘사한다.심리학과 예술의 본능아리스토텔레스의 심리학도 역시 애매하고 비논리적인 것이 단점이다. 곧 “ 환경이 우리의 성격을 형성하므로, 환경의 선택에 의해 장래의 자신의 성격을 선택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친구, 책, 직업, 오락등을 선택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성격을 형성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자유롭다.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은 하나의 흥미있는 정의로부터 시작된다. 영혼은 유기체의 단일한 생명원리, 즉 유기체의 힘과 작용의 총화이다. 식물에 있어서 영혼은 단지 영양과 번식의 힘이고, 동물에 있어서는 감각과 운동의 힘이 되며, 인간에게 있어서는 추리와 사고의 힘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이 불멸성을 가지도록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다. 불멸의 영혼은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이 활동에 의해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능동성인 것처럼, 현점이기 때문이다.윤리학과 행복의 본성그는 윤리학에 있어서는 소박한 현실주의자이다. 그는 인생의 목적이 선을 위한 선이 아니라 행복에 있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하는 데서 출발한다. “ 왜냐하면 우리는 행복 그 자체를 원하며, 그외의 무엇을 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가 명예, 쾌락, 지성을 원하는 것은, 이러한 것들에 의해 우리들이 행복해질 것으로 믿지 때문이다.” 행복의 주요조건은, 어떤 육체적 선생조건을 제외한다면 인간 특유의 영예이며 힘인 이성적 생활이다. 확실히 행복은 정신적 쾌락이어야 한다. 그리고 행복이 진리의 추구 또는 획득으로부터 비롯될 때에만 우리는 그 행복을 믿을 수 있다. “이성의 활동은 그 자체 이상의 목적을 갖지 않고 이성을 자극해서, 그 활동을 촉진하는 쾌락도 그 자체 안에 있다. 또한 자기만족, 분주함, 휴식 등도 분명히 이성의 활동에 속해 있으므로, 이 활동 안에 반드시 완전한 행복이 있을 것이다.”정치학공산주의와 보수주의 -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혼란과 재난으로 말미암아 매우 보수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는 플라톤이 분명하게 철학적 수호자들에게 강요한 병영식 생활 같은 끈임없는 접촉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보수적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개성, 사생활 및 자유를 사회적 능력이나 재능 이상으로 존중한다.그는 육체노동은 정신이 없는자가 할 것이며 노예에게 적합한 일, 노예를 유능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가장 바람직한 국가 형태는 직공에게 시민권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돈은 본래 교환의 수단이지 이자를 늘리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보면서 돈이 돈을 낳는 것을 뜻하는 이자는, 이익을 얻는 모든 방법 중에서 가장 부자연스러운 것이다라고 말한다.결혼과 교육 – 여자와 남자의 관계는 노예와 주인, 육체 노동자와 정신 노동자, 야만인과 그리스인과의 관계와 같다. 남성은 날 때부터 우월하고 여성은 날 때부터 열등하다. 한쪽은 지배하고 다른 한 쪽은 지배받게 마련으로, 이 원칙은 전인류에 확대된에 의해 제시된다.비판그는 아테네에 오기 전에 이미 근본이 정해지고 형성되어 있었다. 그에게는 아테네인다운 데가 하나도 없었고, 아테네를 정치적 ‘비약’으로 이끌고 결국은 통일을 지향하는 전제군주에게 굴복하게 한 성급하고 경솔한 실험주의도 역시 전혀 없었다. 그는 과도를 피하라는 델포이의 명령을 지나칠 정도로 완전하게 지키고, 오직 극단을 피하는 데만 전념하여 마침내 아무것도 남겨놓지 못했다. 그는 무질서를 지나치게 두려워한 나머지 노예제도의 공포를 잊었고, 불확실한 변화를 지나치게 겁낸 끝에 죽은듯한 불변을 선택했다. 모든 영속적 변화는 점진적이라고 믿는 점에서는 보수주의자를 정당화하고, 어떠한 변화의 상태도 영속하지 않는다고 믿는 점에서는 급진주의자를 정당화한 헤라클레이토스적 유전의 감각이 그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그는 플라톤의 공산주의가 엘리트, 곧 사리사욕이 없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재산은 사유이더라도 가능한 한 공동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할 때, 그는 우회해서 플라톤의 결론에 도달한다. 생산수단의 개인 지배는, 생산수단이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으리만큼 단순한 경우에만 자극적이고 유익하며, 생산수단이 점점 복잡해지면 그에 따라서 재산과 권력의 위험한 집중화가 생기고 인위적인, 그리고 결국 국가를 분열시키는 불평등이 생긴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만년과 죽음말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를 신으로 숭배하기를 거절한 칼리스테네스의 처형에 항의했기 때문에 알렉산더로부터 사형에 처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답을 들었고 동시에 아테네인들을 상대로 알렉산더를 변호했기 때문에 자유를 갈망한 아테네인등에게 미움을 받았다.그런데 기원전 323년 갑자기 알렉산더가 죽은후 반란군이 도시로 진군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도와 제사가 무익하다고 가르쳤다는 혐의로 제사장 에우뤼메돈에게 고발을 당했다. 그래서 그는 현명하게도 아테네에게 다시 철학에 대해 죄를 범할 기회를 줄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그 도시를 떠났다. 카르키스)
플라톤의 상황기원전 490년에서 470년에 걸쳐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서로의 적대적 감정을 버리고 힘을 합쳐, 그리스를 아시아 제국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다리우스와 쿠셀쿠세스 지휘하의 페르시아 사람들의 공격을 물리쳤다. 아테네는 전쟁에서 싸워 이겼던 해군을 상선대로 전환하여 고대세계의 가장 거대한 상업도시가 되었다. 스파르타는 군대를 해산하여 폐쇄적이고 정체된 농업도시로 되돌아갔으나, 아테네는 번창하는 시장과 항구가 되어 많은 인종과 여러가지 종파와 관습이 마주치는 장소가 되었다. 이러한 접촉과 적대관계로 인해 비교와 분석과 사상이 탄생한 것이다. 점점 교역이 복잡해짐에 따라 수학이 발달했고, 항해가 늘어남에 따라 천문학이 발달했다. 부의 증대는 연구와 사색의 필요조건인 한가와 안정을 가져왔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해상에서 방향을 구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 별을 연구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매우 대담해져서 어떤 변화나 사건을 초자연적인 섭리나 힘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연적 설명을 시도하게 되었다. 마술과 제사는 점차 과학과 관찰에 굴복했고, 마침내 철학이 탄생했다.처음에 철학은 자연학이었다. 사물의 궁극적, 불가분적 요소가 무엇인가를 문제로 삼았다. 이러한 사고의 자연적 결론은 “사실상 원자와 공간이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한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370년)의 유물론이었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의 가장 독특하고 풍요한 발전은 소피스트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들은 사물의 세계를 외적으로 주시하기보다는 오히려 내적으로 자기 자신의 사상이나 본성을 주시했다.소크라테스소크라테스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의 제자들은 왜 그를 그토록 존경했을까? 그들이 가장 좋아한 것이 그의 겸손한 지혜였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한 적이 없었으며, 오직 지혜를 사랑하여 구할뿐이라고 주장했다.사람들이 너무 쉽게 정의에 대하 논하면, 그는 조용히 “그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정확한 정의와 명석한 사고, 치밀한 분석을 요구하는 ‘소크라테스적 방법’ 때문에 시달린 사람들 중에는 그가 대답하기보다는 오히려 질문을 더 많이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이전보다도 더 혼란에 빠뜨린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가장 어려운 두 가지 문제인 ‘덕의 의미는 무엇인가?’ , ‘최선의 국가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매우 분명한 해답을 철학에 남겼다.소크라테스에게는 자기 나름의 종교적 신앙이 있었다. 그는 유일신의 존재를 믿었고, 죽음도 그를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겸손하게 믿고 있었다. 또한 사상이 없는 곳에서 혼돈이 지배자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군중은 무지 속에서 성급히 결단을 내리고는 한가하고 조용할 때 후회하게 마련이다.플라톤의 준비플라톤의 예리한 영혼은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이라는 경기에서 새로운 기쁨을 찾았다. 늙은 ‘등에(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비유했다)’의 지도를 받으며 그는 단순한 논쟁을 넘어서서 용의주도한 분석과 유익한 토론을 할 줄 할게 되었다. 그는 지혜를 애호했고, 스승을 매우 정열적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스승의 죽음은 그에게 민주정치에 대한 모멸감과 대중에 대한 증오를 갖게 만들었다. 그 결과 그는, “민주정치는 파괴되고 가장 지혜롭고 훌륭한 인물에 의한 통치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카토 같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청년시절의 뜨거운 정열은 어느 정도 잃었지만, 그는 모든 극단을 반진리로 보았다. 모든 문제의 많은 측면을 진리의 각 차원에 따라 공정히 분배하는 사고의 시야를 얻었다.플라톤이 난해한 이유는 철학과 시, 과학과 예술의 결합 때문이다.윤리적 문제소크라테스는 언제나처럼 짓궂은 방식에 따라 올바르다는 말을 어떠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느냐고 물어서 철학적 전투를 개시한다.소크라테스 –즉 플라톤-는 이러한 이론적 도전에 대해 어떻게 응수하는가? 처음에는 그는 이 도전에 전혀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 정의는 사회조직에 의존하는 개인간의 관계이며, 따라서 개인적 행위로보다는 사회구조의 일부로서 연구하는 편이 더 좋다고 그는 지적한다. 그는 개인도덕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개조의 문제도 검토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소맷자락속에 유토피아를 감추어두었다가 적당한 때에 내놓을 셈인 것이다.정치적 문제만일 인간이 단순하다면 정의는 단순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플라톤은 말한다. 플라톤은 따뜻한 신념을 가졌던 그들보다는 좀 더 회의적이다. 그는 어째서 자신이 상상하고 있는 소박한 낙원이 실현되지 않는가, 왜 이 유토피아가 지도 위에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문제로 넘어간다. 플라톤은 탐욕과 사치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는 곧 싫증을 내고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은 갈망하며, 남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면 탐내지 않는다. 그 결과 집단간의 영토 침범, 토지자원의 쟁탈전, 마침내는 전쟁이 일어난다.플라톤은 단순한 문제에서는 특별한 훈련을 받은 자들만이 목적 달성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면서, 정치에 있어서도 투표를 조종할 수 있으면 누구든지 도시나 국가를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탄식하고 있다.심리적 해결여러가지 정치적 문제의 배후에는 인간의 본성이 숨어 있으므로, 정치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불행히도 심리학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행동은 세 가지 근원, 곧 욕망, 감정, 지식으로부터 흘러나온다고 플라톤은 말한다. 이 모든 능력과 성질은 만인에게 갖추어져 있지만 그 정도는 다 다르다. 지식의 지도가 없으면 인민은 끓어오르는 욕망처럼 무질서한 군중이 된다. 욕망은 지식의 계몽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인민은 철학자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곧 플라톤 사상이라는 아치의 초석이다.심리적 해결우선 “10세 이상의 도시 주민들은 모두 시골로 보내 격리 시킴으로써 그들을 어버이의 버릇에 물들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 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능한 한 백지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처음부터 교육의 완전한 기회균등을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자유롭게 성장한 정신과 각종 스포츠와 야외생활로 단련된 신체가 있으면 우리들의 이상국가는 모든 가능성과 모든 발전을 실현시키기에 충분한 광범하고 확고한 심리적, 생리적 기초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잇따른 선발의 물결을 헤치고 합격된 행운의 잔류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철학을 배운다. 철학이라는 고귀한 기쁨에는 주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명석한 사고, 곧 형이상학과 현명한 통치, 다시 말해 정치학이다. 따라서 선발된 젊은이들은 우선 명석한 사고를 배워야 한다. 이러한 목적으로 그들은 ‘이데아론’ 을 연구하게 될 것이다. 여기 하나의 동굴이 있는데 밖에는 햇빛이 밝아서 실재의 환성적이고 괴상한 바깥의 그림자가 동굴 벽에 비친다면, 이데아 없는 세계는 이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정치적 해결민주주의는 완전한 기회균등, 특히 교육에 있어서의 기회균등을 뜻하며, 각 개인이 윤번제로 관직에 오른다는 뜻은 아니다. 국민 각자가 후보자이고, 관직에 대해서는 ‘교육에 의한 선발’이라는 균등한 기회를 갖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계급적 차별도 지위나 특권의 세습도 없으므로, 가난하게 태어난 자의 재능이 저지되는 일은 없다.윤리적 해결플라톤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에 대해 “정의란 자신에게 알맞은 것을 소유하고, 자신에게 알맞은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정의는 단순한 힘이 아니라 조화로운 –온갖 욕망과, 인간이 이성과 조직의 본질인 질서를 갖고 있는 – 힘이다. 또한 정의는 강자의 권리가 아니라 전체의 효과적인 조화이다.”라고 말한다.비판플라톤은 일부일처제와 이 제도에 따르는 도덕률에 축적된 관습의 힘을 과소평가하여 남자는 아내의 극히 작은 부분만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리라고 가정함으로써 남자의 소유욕을 가볍게 보았고, 또한 자기 자식을 누군지도 모르는 냉정한 사람의 손에 맡기는 일에 어머니가 동의하리라고 가정함으로써 모성본능을 지나치게 경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가족이라는 것을 폐기함으로써 도덕의 위대한 요람과 그의 이상국가의 심리적 기초가 될 협동적인 공산주의적 습관의 주요원천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플라톤은 분명히 그 공산주의적 계획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을 제외했다.특히 플라톤에게 결여된 것은 유전과 변화에 대한 헤라이클레이토스적 감각이다. 그는 세계라는 활동사진을,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그림으로 만들기를 원했다. 그는 곤충학자가 파리를 종별로 나누듯 인간을 여러 계급으로 나누고,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사제 행세를 하여 속임수를 쓰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플라톤은 자신의 유토피아가 달성하기 어려운 이상을 말했다는 점을 시인하고 있으나, 이러한 소망의 표현에는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긴 생애의 만년은 매우 행복했던 것 같다.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를 아는” 플라톤은 솔론처럼 공부하고, 소크라테스처럼 가르치고, 열성적인 청년들을 지도하고, 지적인 동지애를 찾아내었다.제자들을 사랑하듯, 제자들도 그를 사랑했다. 플라톤은 그들의 철학자요, 지도자인 동시에 친구였다.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Biography{생 일 : 1903년 12월 12일~ 1963년 12월 12일출 신 : 토쿄(東京)데 뷔 : 1927년 참회의 칼(懺悔の刀)약 력 :1903년 토쿄 후카가와구에서 출생1923년 쇼치쿠(松竹) 키네마 가마타 촬영소 입사35년간 53편의 영화를 제작1963년 영화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예술원 회원이 됨1963년 암으로 사망.Filmography감독꽁치의 맛 (1967)가을 햇살 (秋日和|1960)부초 (浮草|1959)조춘 (Early Spring|Soshun|1956)만춘 (Late Autumn|1955)도쿄이야기 (Tokyo Story|Tokyo monogatari|1953)동경이야기 (TokyoStory|1950) 태어나기는 했지만 (I Was Born But...|Umarete wa mita keredo|1932)각본조춘 (Early Spring|Soshun|1956)도쿄이야기 (Tokyo Story|Tokyo monogatari|1953)태어나기는 했지만 (I Was Born But...|Umarete wa mita keredo|1932)Who are you?오즈 야스지로는 일본이 배출한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감독들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53편의 영화를 만들어낸 약 35년에 이르는 활동 기간 내내 그는 영화계의 주류를 떠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쉽게 모방하지 못할 정도의 개인적인 스타일을 창조해냈다. 오즈의 위대함이라고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만의 엄정한 형식미로 의미를 비추는 방식에 있을 것이다. 바로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들 속에서 그는 살아가는 데서 느끼는 기쁨과 고통을 생생하게 드러내주었다.어려서부터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던 오즈는 23년 스무살의 나이에 쇼치쿠사의 카메라 조수로 일하면서 영화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감독 데뷔작은 '참회의 칼(懺悔の刀,1927)' 이라는 시대극이었지만, 그 후 몇 년 동안 오즈에게 당대의 유망한 영화 감독으로서 명성을 선사한 것은 주로 대학 생활과 공장 노동자에 대한 난센스 코미디였다. 직장을 잃은 후 거리를 헤매는 한 결혼한 월급장이에 대한 코미디 영화인 '동경의 합창(東京の合唱 , 1931)'은 특히 오즈를 주목할만한 영화 감독으로 만들어준 작품이었다.이후로 오즈는 자신의 테크닉을 점점 정련화하면서 세대 차, 가족 내에서의 죽음, 혼인 문제, 실직 등과 같은 소수의 가족 상황에 더욱 더 초점을 맞추게 된다. 유머와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관찰을 잘 융합한 '태어나기는 했지만(生まれてはみたけれど, 1932)'은 이런 맥락에서, 오즈의 초기 대표작으로 꼽힌다.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전형적인 오즈적 세계는 정확하게는 '만춘(晩春, 1949)'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로 오즈는 심지어는 자신의 영화들을 리메이크하기도 하면서 거의 변함 없이 동일한 상황, 동일한 세계로 귀착하는데, 자기 딸이 결혼하길 바라는 홀로 된 아버지와 아버지를 떠나지 않으려는 딸의 이야기를 그린 '만춘'은 그런 오즈적 세계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맥추(麥秋 , 1951)', '동경 이야기(東京物語, 1953), '조춘(早春, 1956)', '꽁치의 맛(秋刀魚の味, 1962)' 등의 영화들에서 오즈는 거의 같은 이야기를 변주해갔다. 그 '빈약한' 이야기는 오즈의 손에서 인간들이 사랑과 헌신, 존경과 체념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의 표출로 바뀌었고, 오즈는 그것을 자신만의 독특한 금욕주의적인 형식미로 이루어냈다.같은 인물들의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는 전후 오즈의 영화에는 거의 빠짐없이 일본 대도시의 소시민가족이 중심에 놓인다. 시대 변화가 몰고 온 세대간, 남녀간 갈등이 이 가족의 안정적 유지를 위협한다. 부모 세대들은 변화에 저항하지만, 결국 체념하며 가족 해체의 힘을 받아들이고, 사악하지는 않지만 좀더 바빠지고 이기적이 된 자식들은 자신들만의 삶에 몰두한다.오즈 영화는 중심적 이야기가 주변적 이야기를 포섭하며 이어지는 중심화된 선형 구조를 따르지 않고 양자가 서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탈중심적 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 본론과 여담이 구분되지 않는 이 독특한 구성은 카메라가 이야기와 관계없는 공간(주로 사람이 없는)에 머물면서, 스크린 밖의 세계, 결국 영화 밖의 세계를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기묘한 공간 설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할리우드식 규칙인 180도 룰을 거침없이 어기는 오즈식 카메라워크는 이 공간의 탈중심화 전략에 기여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1953년의 는 이러한 오즈 스타일이 완벽하게 구사된 그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도쿄에 사는 아들 집을 방문한 시골 부모의 쓸쓸한 체류기를 그린 이 영화는 두 세대의 갈등에 관한 보편적이면서도 소박한 이야기가, 극단적으로 절제된 오즈적 형식에 담겨 삶의 근원적인 비애감을 전해준다.촬영오즈 감독만의 로우앵글(다다미 샷){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는 그만의 철저한 공식이 따른다. 먼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굉장히 낮게 촬영되는 ‘로 앵글’이다. 일반적으로 인물 눈높이에 맞추지만 오즈는 그보다 낮은 다다미(일본 전통가옥의 바닥) 높이 정도에서 인물을 바라보게 촬영했다. 이 촬영기법은 아직도 평론가들과 카메라기사들에게 연구대상이 되고 있는 수수께끼다.이처럼 낮게 촬영하려면 바닥에서 30~40㎝의 높이에 카메라를 놓고 카메라맨은 거의 누운 자세로 뷰 화인더를 보아야 한다. 이 점은 논란이 많지만 스티븐 스필버그가 로앵글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하나의 영화기법으로 인정받았다.로앵글을 쓰면 인물은 자연스럽게 앉은 자세가 되고 동작이 제한된다. 그렇게 되면 바닥과 인물이 앉아 있는 자세에서 삼각형 구도를 이뤄 관객들은 편안하게 느끼고 영화의 이야기가 바로 현실의 이야기라는 점에 자신도 모르게 젖게 된다.{이는{감독이 말하는 영화 전반의 안전성을 나타내는 기본적인 표현기법이다. 이 안전성의 다음 방법으로 오즈는 인물의 시선을 통일시켰다. 두 인물이 서로 대화하는 장면에선 마치 낚시대 끝을 바라보듯 동일한 시선으로 대화하며, 마주볼 때는 언제나 인물의 정면을 잡았다.이런 것이 너무 형식에 치우쳐 있지 않느냐는 반론에 '통일된 형식은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의 예절이라 생각했으며 예절은 곧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오즈 야스지로의 인간존중의 마음이 잘 나타난 대목이다.미조쿠지 겐지 감독이 주로 사용하던 크레인을 이용한 카메라 이동, 빠른 화면 전개는 오즈 영화에서는 절대 사용되지 않는다. 카메라의 잦은 이동과 배경 변화는 오즈가 표현하려 했던 영화의 안전성과 완벽한 화면구조를 깨뜨리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등장인물이 거리를 걸어가는 장면에서는 이동촬영을 했지만, 이때도 인물이 특정 배경을 아주 천천히 걷게 하고 카메라가 그와 같은 속도로 이동하는 것으로 촬영했다. 심지어 카메라를 정면에 놓고 그 카메라를 향해 인물을 지나가게 할 정도로 완벽한 화면구조를 강조했다.
세계사회포럼(WSF)이 이끌어낸 축제TV에서는 다양한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형태의 다큐멘터리가 행해지고 있었지만 정확한 의미의 다큐멘터리를 알고 있지는 못했다. 막연히 자연과 동물 다큐멘터리가 주류를 이룬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전적인 의미로 문장이나 방송 또는 영상매체를 활용하여 제작 또는 구성한 주제와 줄거리가 있는 기록물 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방송에서 행하여 지는 모든 것들이 다큐멘터리에 속하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이번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스튜디오 아이스크림의 이훈규감독, Another World is Possible(다른 세계는 가능하다!)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겠다.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존재조차 몰랐었던 나는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영상위주로 작품을 볼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사전지식이 있었더라도 다른 각도로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했던 이번 기회가 참으로 아쉽다. 이 세계사회포럼(이하 WSF)은 세계경제포럼에 반대해서 생겨난 것이다. 세상을 상품으로 여기는 그들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창설된 것이다. 이번 WSF는 브라질 국민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던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WSF 창설자)이 다보스(세계경제포럼) 참석에 대한 것까지 더해져 큰 관심이 몰렸었다.이 영상을 보며 놀라게 된 것은 시위문화의 차이점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와는 확연히 다른 축제의 장으로서 승화시켜내는 그들의 모습에 희열을 느끼기도 하였다. 현재 우리나라는 시위에 관한한 세계에 수위를 점하고 있지만 그 방법은 지루하며 획일화된 격한 시위여서 일반 대중들의 참여를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들의 시위문화는 하나의 문화축제로서, 다른 이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하여 대안을 이끌어 내려 한다.우리나라도 많은 사회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미군관련문제, 환경문제, 물사유화문제, 초국적자본주의의 문제 등 많은 사회적 충돌점을 가지고 있다. WSF를 보며 우리도 획일화된 모습을 버리고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위문화의 필요성을 느꼈다.이 작품은 현재 우리가 해나가고 있는 인터뷰형식의 작품과도 연관성이 있다. 수많은 운동가들에게 그들의 의견을 묻고 답변을 듣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양한 의견 제시라는 측면에서 정보 공유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 다소 거친 화면이 더욱 친숙하게 느껴짐은 무엇이었을까? 현장미가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라 생각하는데, 현장분위기를 정적으로 담아내지 않고 그들과 호흡하며 참여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나의 눈으로 그 시위를 보는 듯 한 영상을 만들어 내었고,. 그로 인해 그곳의 분위기가 더욱더 생생하게 느껴졌었다. 신속한 영상은 그곳에서의 분위기를 높여주는 요소라 생각된다. 그곳의 빠르고 흥분되어 있는 분위기에 동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topic(주요쟁점-이라크전쟁등 사회문제)에 대한 정보 접근으로 집중도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는 인터뷰와 워크샵, 운동가들의 시위모습 등 여러 각도로 비춰주었는데, 이러한 모습으로 문제의 심각성과 중요도를 알 수 있게되었다.
1.사회에 대한 매스 미디어의 영향매스미디어가 사회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거꾸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는 사회에 대한 매스미디어의 영향을 살펴보자. 사회에 대한 매스미디어의 영향은 매체가 사회에서 수행하는 여러 기능들과 수용자들에게 미치는 효과로 대별할 수 있다. 이제 이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1)매스미디어의 기능매스미디어가 행하는 역할, 즉 기능에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순기능이고, 하나는 역기능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에 바람직한 긍정적인 기능을 순기능이라고 말하고 사회에 바람직하지 않은 부정적인 기능을 역기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엄격한 것은 못 된다. 그것은 보는 사람의 입장이나 가치관, 또는 이해관계에 따라 정반대로 얘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기능은 상반되게 이해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매스미디어는 무엇보다 정보를 제공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의 정보를 제공한다. 매스미디어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사회 현실에 관해, 그리고 그 사회의 주요 인물들의 언행에 관해 사회 성원들에게 뉴스의 형태로 정보를 제공한다. 보도 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오락 매체라 하더라도 그 내용은 직접, 간접으로 사회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어떤 정보를 제공한다. 그래서 매스미디어는 사회 성원들이 자신들의 환경을 감시하고 위험에 대처하여 생존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매스미디어가 전하는 정보는 때로 허위이거나 조작된 것이어서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고 세상사에 무감각하게 만들기도 한다.매스미디어는 사회적 조정 역할을 한다, 매스미디어는 사건과 정보를 설명하고 해석하고 평가한다. 그것은 합의를 창출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갈등을 해소하도록 한다. 매스미디어는 또 정부나 기업이나 그 밖의 사회 조직들을 감시하고 견제한다. 그것은 사회 규범을 강화하고 일탈을 방지하는 데도 기여한다. 그러나 매스미디어는 진정한 여론 형성보다는 강자를 위한 여론 조작에 기여하기도 하고 정의롭지 못한 기존 질서에 대한 사람들의 순응성과 적응력을 높여서 그것을 높여서 그것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매스미디어는 사회적 유산을 전수한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사회의 전통과 규범을 가르치는 사회화의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매스미디어는 사람들의 아노미와 소외감을 줄인다. 그것은 그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와 가치를 표현한다. 매스미디어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경험의 토대를 넓힌다. 국민들간의 그러한 공통성의 형성으로 매스미디어는 국민들간의 통합을 달성하도록 한다. 그러나 매스미디어는 사람과 사람 간의 교류를 줄이고, 사람들의 가치와 사고 방식을 획일화시키고, 표준화 등을 통해서 문화의 다양성을 감소시킨다.매스미디어는 오락을 제공한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거나 기분을 전환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하는 오락 수단을 제공한다. 그것은 예술, 특히 대중 예술의 창조와 발전에 기여한다. 그것은 또 사람들에게 고급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그들의 문화적 수준을 고양시킨다. 그러나 매스미디어는 그 일반적인 저급문화로 예술의 수준을 퇴락시키고 사람들의 취향을 낮추는 데 기여한다. 그것은 또 사람들에게 현실을 도피하여 환상 속에 빠져 들게 함으로써 현실의 변화보다는 그것의 유지에 기여하도록 한다. 매스미디어는 사람들을 동원한다. 매스미디어는 어떤 국가적 이익에 기여하거나 특정한 사회적 가치나 행동 유형을 택하도록 사람들에게 촉구한다. 특히 전쟁, 천재 지변, 경기 침체 둥과 같은 위기의 시기에 매스미디어는 그런 역할을 수행하도록 요구받는다. 공산주의 국가의 매체는 아예 집단적인 선전, 선동, 조직이라는 동원 임무가 맡겨져 있다. 제3세계 국가에서도 매스미디어는 흔히 국가나 권력자의 특정 목적을 위해 사람들을 동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한국에서도 매스미디어는 이런 역할을 자주 수행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경제 개발 계획, 가족 계획, 국산품 애용, 불우 이웃 돕기 등 많은 일에 매스미디어가 사람들을 동원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런 동원 역할이 항시 순수하고 긍정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수행되는 것은 아니다. 매스미디어는 부당한 전쟁이나 권력 투쟁이나 사적인 이익 등 부정적인 목적을 위해서도 사람들을 동원한다.2)매스미디어의 효과매스미디어가 수용자들의 인지, 태도,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효과라고 한다. 매스미디어의 효과는 상품광고나 정치 선전에서의 실질적인 활용 가능성 때문에 매스컴 연구자들, 특히 미국의 연구자들에 의해 가장 많이 연구된 분야다. 그러나 매체의 효과에 관한 이론이나 연구 결과에는 상반된 것들이 많고 어떤 뚜렷한 결론이 없다. 그 까닭은 효과의 유형이나 개념이 다종 다양하여 일정하지 않다는 점, 기술·사회·문화 등의 변화로 사람들의 매체에 대한 반응이나 그로부터 받는 영향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 한 매체의 영향을 다른 매체의 영향과 분리하기 어렵다는 점, 매체의 수용은 여러 복잡한 상황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 장기적·비가시적·인지적·거시적인 효과는 측정하기 어렵다는 점, 메시지가 원인인지 또는 결과인지를 결정하기 어렵다는 접 등의 요인 때문에 효과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그래서 매스미디어의 효과 이론도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19세기 초부터 1940년대 중반까지는 강효과 이론(또는 탄환이론, 피하 주사이론)이 지배했다. 매스미디어는 그 수용자 거의 모두에게 균일하고 강력하게 행동이나 태도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이론화되었다. 그러나 194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는 이전과는 정반대로 약효과 이론(또는 제한 효과 이론)이 대두했다. 매체의 효과는 모든 수용자에게 균일하게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수용자의 선유 경향이라는 변인의 차이나 사회 인구학적 변인의 차이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나므로 그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주장이다. 더구나 그런 변인이 무수해서 그것들을 다 고려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약효과 이론하에서는 매스미디어의 효과 연구는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그러나 1960년대 중반부터는 다시 미디어의 효과가 상당히 크다는 이론들이 대두되기 시작하여 1980년대에는 다시 강효과 이론이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최근의 강효과 이론은 초기의 강효과 이론과 같이 매스미디어가 그 수용자에게 보편적이고 균일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기술이 활용되었을 때 강효과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이 이론은 가시적인 행동이나 태도의 변화보다는 비가시적인 인지의 변화를 중시한다. 매스미디어가 가시적이고 단기적인 행동 변화에서는 큰 영 향을 발휘하지 못하리 모르지만 비가시적이고 장기적인 인지 변화에는 큰 영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이제 매스미디어의 중효과 내지는 강효과를 지적하는 이론들을 중심으로 매스미디어의 효과를 논의하기로 하자.모방이론은 우리는 어떤 모델을 지켜보고 흉내냄으로써 많은 부분 우리가 행동하는 바와 같이 행동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의 부모나 형제 자매나 친구들을 지켜 보고 그들이 행하는 어떤 것을 해 본다. 이런 모방 행위가 어떤 식으로 보강되면 그 행위는 지속된다. 그런데 어린이는 그리고 심지어는 어른까지도 그들이 아는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이 보고 듣고 읽는 매스미디어속의 실제적 또는 허구적 인물의 행위를 모방할 모델로 삼는다. 모방이론은 매체가 어린이들을 그들이 사는 사회 속에 사회화시키는 것을 보조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한다. 즉 어린이들은 텔레비전과 같은 매체에서 같은 모델을 보지만 집이나 그밖의 곳에서 그들이 가진 모델이 다르고 또 그들의 모델의 모방이 다르게 보강되기 때문에 그 매체의 모델이 그들에게 상이한 영향을 미친다.의제 설정이론은 매스미디어가 수용자로 하여금 무엇에 대해 생각할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이론이다. 매스미디어가 지면이나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문제일수록 사람들이 그 문제를 그만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연구에 의하면 매스미디어는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를 형성한다. 그리고 미디어에서 강조된 문제가 현실에서 지배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미디어는 또 선거 시기에 특정한 쟁점은 부각시키고특정한 쟁점은 부각시키지 않음으로써 선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의제 설정에 관한 연구들은 미디어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일종의 탐조등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탐조등이 어디를 비추느냐는 어떤 쟁점에 이해 관계를 가진 집단, 주목을 끄기 위해 만들어진 의사 사건, 언론인들의 특정한 관행과 의식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 이론은 매스미디어가 매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강자들에 의해 대중 조작이 쉽게 이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배양 이론은 매체의 메시지에 많이 노출되면 외부 세계에 대한 지각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매스미디어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특별한 이미지를 갖게 되는데, 그 이유는 매체가 그러한 이미지를 사람들의 뇌리 속에 배양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배양 이론가들은 특히 텔레비전의 영향력을 중시한다. 텔레비전은 오늘날 사람들의 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고 그것이 전하는 메시지가 일관되기 때문이다. 가령 텔레비전은 범죄, 경찰, 선생 등에 대해 계속해서 똑같은 모습을 보여 준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사람은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것보다는 텔레비전에서 제시된 세계와 더 일치하는 세상의 이미지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