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교육 왜 하는가많은 사람들이 국어는 배워도 그만 안 배워도 그만이라고 말한다. 그중에는 국어를 굳이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주요 교과로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가르쳐야 하는가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번 개정 교육과정에서 국어수업시수가 줄어든 것은 사람들의 이러한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어교육은 가장 기본적이며 한편으로는 매우 고차원적인 교육으로서 많은 교육적 유용성을 지니고 있다. 아래에서는 왜 우리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국어교육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먼저 국어교육은 문자를 읽고 쓸 줄 아는 기초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준다. 국어교육은 학생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문식력을 길러주며, 요즘에 와서는 글에 대한 문식력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에 대한 문식력까지 길러준다. 그리고 자신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준다.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의사소통 능력은 개인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능력임에 틀림없다. 국어교육은 단순히 모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언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준다. 국어를 배움으로써 학생들은 정확하고 바른 방법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고, 언어를 통해 정보와 지식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생산할 수 있으며, 언어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소통 능력을 기를 수 있다.둘째로, 국어교육을 통해 길러진 언어사용 능력을 바탕으로 다른 교과의 학습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국어교육을 통해 읽고 쓰는 능력을 기르면 영어나 사회나 과학 등의 교과 학습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요즘 영어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영어 역시 단순히 단어만 많이 안다고 높은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국어교육을 통해 길러진 읽고 쓰는 능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영어 학습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고 또한 높은 수준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 다른 과목에서도 서적이나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을 때 그것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비판하여 받아들이는 능력은 언어사용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국어교육은 국어를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분야이든 학습을 해야 하는 모든 학생에게 도움을 준다.셋째로, 국어교육은 사고력을 길러준다. 사고력이란 생각하고 궁리하는 힘이다.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표면적인 언어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사고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말하기와 쓰기를 할 때 화제에 대한 지식,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지식, 텍스트에 대한 지식, 청자나 독자에 대한 지식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취사선택하고 추리하고 종합하고 재조직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의미가 생성된다. 그리고 이를 청자나 독자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고차원적인 의미 협상이 일어난다. 읽기와 듣기도 단순히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필자나 화자의 목적과 의도를 파악하고, 자신의 목적에 맞추어 필요한 내용을 선택하고, 나름대로의 상황과 맥락 속에서 적절한 배경지식과 경험을 동원하여 의미를 재구성하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말하기, 쓰기, 읽기, 듣기를 연습하는 것은 의미를 구성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문화적으로 의미를 협상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국어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고등사고력을 길러준다고 할 수 있다.넷째로, 국어교육은 국어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감수성을 기르도록 도와준다. 학생들은 국어가 사용된 이래로 지금까지 축적된 국어문화를 배우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키워나갈 수 있다. 국어시간에 배우는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작품에 담긴 우리 민족의 정서나 사상을 느끼게 되고 이를 공유함으로써 한 민족이라는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문학은 다른 사람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감수성을 길러준다. 타인의 정서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기 쉬운 법이다. 문학 작품을 통해 길러진 타인에 대한 감수성은 우리 사회를 보다 인간다운 사회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나아가 학생들 개개인이 좀 더 감수성이 풍부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하여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줄 수 있다.
1. 프로이트이론의 개념, 원칙, 그리고 제안점을 시험해 볼 수가 없다.(예를 들어 남근 선망,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성격 고착과 같은 개념은 증명하기 힘들다.)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프로이트의 착오는 남자아이의 어머니에 대한 집착을 성적인 것으로만 파악했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남자아이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애정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성욕의 대상이다.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한 인간의 전 생애를 통해 어머니와의 관계를 강력하고 중요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사실상 성욕이 아닌 유년시절의 낙원적 상태에 대한 동경에서 기인한 것이다. 프로이트는 성욕 자체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아무리 강렬한 성적 관계라 할지라도, 정서적 유대관계나 애정이 없다면 오래가지 못한다. 성애 그 자체는 매우 변하기 쉽다. 성적으로 만족스러운 결혼을 한 남성도 단 3년 만에 아내와의 유대관계가 서먹서먹해진다는 것을 가정해 보면, 몇 십 년 전의 성적 유대관계의 강렬함 때문에 남성이 어머니에게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프로이트 이론의 중심 사상인 남근선망의 증거와 그것이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만든다는 증거도 찾아내기 어렵다. 많은 아동들(4세와 5세)을 대표집단으로 선정하여 행한 주의 깊게 통제된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여아이던 남아이던 간에 거세와 관련된 증거가 없음을 발견했다.(Kreitler & Kreitler, 1966). 하텐도르프(K.W.Hattendorf, 1932)는 아동들의 어머니를 면담한 결과, 아이들이 성에 관해서 많은 질문을 하지만 대개의 질문들이 아기가 어디서 나오는가와 관련된 것임을 발견했다. 프로이트 이론 중 학령 전 여아는 아버지를 좋아한다는 부분도 의심스럽다. 셔먼(J.A.Sherman. 1971)은 아동이 어느 부모를 좋아하는지 조사한 결과 양성모두 어머니를 약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혀내었다.성격 고착이론을 살펴보면 프로이트는 유아의 에로티시즘에 있어서 배변할 때 항문에서 느끼는 성적 쾌감이 인간의 일생 동안 계속 남는 고유의 성격적 특징을 완성시킨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항문적 에로티시즘은 검약과 인색함을 발달시키는데 이 이론에는 인간의 본질 속에 담겨있는 성격형성의 물질적 토대들이나 환경의 물리적, 객관적, 사회적 영향들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다. 대변을 참는 행위와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행동, 즉 대변과 황금 사이에는 억지로 꾸며낸 이미지의 유사성만 있을 뿐 유기체 그 자체나 환경의 물질적 구성에 있어서 이것들이 서로 결부시키는 어떤 현실적, 물질적인 필연성은 없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성감대는 신체, 생체적 조성, 그리고 모든 물질적 환경을 완전히 회피한 채 인간의 성격이나 행동을 결정해 버린다. 그러나 인간의 성격이나 행동은 물질적 환경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2. 프로이트 이론은 특정문화에 한하여 설명되기 때문에 다른 문화나 다른 민족에게 적용되기 힘들다.프로이트는 발달의 문화적인 맥락에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알프래드 애들러(Alfred Adler, 1927)에 의하면 소녀들은 남근 자체를 선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구사회에서 상징화된 남성 세력을 선망한다고 한다. 여성과 남성, 어른과 아이 모두가 여성보다는 남성이 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는 많은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은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욕망에까지 이르게 한다. 이것 역시 타당한 관찰이기는 하지만, 프로이트는 가부장제도의 사회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일반적인 사회에다 적용시켰다. 가부장 제도의 사회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권위에 예속되어 있다. 수천 년 동안의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억압과 그것에 반역하려고 하는 아들의 욕망에 기초를 둔 갈등이 파생되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이것을 가부장제 사회의 특색으로 파악하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있어서 본질적인 성의 대결로 해석했다.남근선망에 있어서도 그는 가부장적 사회의 남성 중심적인 사고를 보여준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정상적인 여성은 남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질투와 열등감의 경향성이 있고 수동성 역시 정상적인 여성의 특징이라 보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성 역할이 환경과 경험에 의해 획득된 후천적인 행동 양식임이 널리 알려져 있다.인간은 가정, 학교, 사회 등의 집단 속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가정이라는 가장 협소한 집단만이 문제시하고 있으며 가정 자체가 계급과 사회구조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정은 어린아이에게 사회를 대신해서 사회적 성격을 전달하는 집단이라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부르주아 계급의 가정을 모든 가정의 원형으로 생각했으며, 다른 문화권의 가정형태를 무시했다. 한 예로서 프로이트는 어린아이가 부모의 성행위를 목격하는 경험에 커다란 의의를 두고 있다. 상류층의 가정에서는 어린아이들과 부모가 다른 방을 쓰고 있으므로 이러한 경험이 의의가 더욱 커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만일 프로이트가 훨씬 더 빈곤한 가정의 예를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런 가정에서는 부모의 성행위가 일상적으로 목격되었으므로 그러한 초기 경험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을 것이다.3. 프로이트의 아동 발달이론은 임상상태에서 신경증 환자를 다루면서 수집한 자료를 근거로 했고 아동들은 거의 만나보지도 않았다.프리에드만(Friedman. 1952)에 따르면 거세불안은 정상아에게서는 드물었고 몇몇 경우가 있다 해도 그것은 남아들에게서 나타나는 경향이라고 한다.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은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욕망에까지 이르게 한다고 본다. 어머니를 향한 성적 욕구에 의해 생기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의 표현은 어머니, 아버지가 죽으면 나하고 결혼해야해 라는 말에 나타나 있다고 생각되어져 왔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린아이가 진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버지가 안 계시면 엄마의 주의를 내가 독점할 수 있을 텐데 라는 의미에 불과한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증오하고, 이 증오감이 곧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는 뜻을 내포하고있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그것은 어린아이의 상상의 세계 및 어른과 어린아이의 차이점에 대해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