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제국주의인가?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금 우리는 왜 제국주의를 논해야 하는가?제국주의란 단어는 처음에 루이 필립(Louis Philippe)시대의 프랑스에서 나타났고 후에는 나폴레옹 3세의 고압적 독재정치를 나타내는데 쓰여졌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말은 국내의 권력을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점차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제국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하여 고대의 이집트제국, 페르시아제국, 로마제국, 중세의 신성로마제국, 근대의 나폴레옹 제국 등이 그 상징적인 것이 되어 제국주의는 대외팽창주의, 침략주의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1870년대 초에 영국의 디즈레일리에 의해 대영제국의 번영과 결부된 정책으로서 찬양되었다.제국주의의 개념은 아직까지 논쟁적 개념으로서 일반적으로 어떤 민족 또는 국가가 다른 민족 또는 국가를 그 민족 또는 국가가 원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목적을 위하여 그들을 억압·지배하려고 할 때, 그 억압·지배과정을 제국주의라 부른다. 이 제국주의의 개념에는 지배의 요소와 착취의 요소인 두 가지 구성요소가 내포되어 있는데 착취는 교역, 투자 또는 물리적 약탈의 형태를 취하면서 진행되는 과정으로 간주되며, 일반적으로 지배국 기업에 의한 피 지배국의 부의 전유를 의미한다. 현대적 제국주의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경제적·군사적으로 선진국인 강대국과 경제적으로 빈곤하며 군사적으로 약소국인 후진국 사이의 관계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제국주의는 후진국에서만 발생되는 현상이 아니고 선진자본국과 선진자본국 사이의 관계에서도 발생한다.이상에서 설명한 제국주의는 1980년대만 하더라도 진보적 지식인 사회에서 열띤 논란을 불러일으킨 주제였다. 그러나 오늘날 제국주의는 더 이상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이름 아래 세계화의 구호만이 관심의 대상일 뿐 우리 사회가 겪었던 식민지 경험마저 잊혀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박지향 교수의 『제국주의: 신화와 현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 삶에 남아 있는 제국주의의 흔적과 자취를 새롭게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저자는 1989년 이후 변화된 국제관계, 문화적·사회적·인종적 다양성, 탈식민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등의 영향으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새로운 중요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공식적 식민지 지배가 20세기 후반에 다 사라졌지만 국제관계와 국제적 인종관계에서의 소위 ‘신식민주의’적 지배는 여전히 남아있어 언어, 행정체제, 법체계, 경제적 하부구조, 국·내외의 정치현장, 국제관계, 사회조직, 문화 등에 흔적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저자는 모두 12개의 장에서 제국주의 지배가 제국주의 국가 및 식민지의 경제에 미친 영향과 같은 고전적인 문제에서부터 포스트 식민주의와 페미니즘 같은 최근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제1장 오늘의 담론: 왜 지금 제국주의인가라는 주제 하에서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독립 후 55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국은 여전히 '탈식민'해 있지 못하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21세기에도 중심부의 담론과 의식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제2장 제국주의란 무엇인가에서 저자는‘경제적·정치적·군사적인 힘을 전략적으로 이용해서 상대방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 또는 그것을 의도하는 이념을 제국주의’라고 정의하고 있다.제3장 식민과 탈식민의 이론에서는 홉슨, 힐퍼딩, 룩셈부르크, 레닌, 슘페터, 한스-울리히 벨러, 갤러거, 로빈슨, 필드하우스, 사이드 등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논자의 제국주의의 형성, 붕괴, 유산에 관한 이론과 함께 섭알턴 그룹의 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섭알턴 그룹의 목표는 독립 이후에도 제국주의 지배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인데, 그 방법으로 그들은 피억압자, 그 가운데에서도 역사에서 생략된 사람들의 정치를 분석한다. 그들에 의하면 인도 민족주의는 식민주의 담론이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독립후의 인도는 영국 지배의 이데올로기적 산물인 것이다. 저자는 섭알턴 그룹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이들이 역사를 역사가 아니라 거대 서사로 보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제4장 제국은 왜 팽창하는가에서는 19세기 후반에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가 급팽창하게 되었던 경제적 동기, 전략적·정치적 동기, 문명화 사명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서유럽 강대국의 정치적 경쟁, 불황, 식민지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식민지 증가의 원인으로 언급하고 있다.제5장 제국주의와 경제에서는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식민지의 경제적 의미가 서술되어 있다. 저자는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의 경제적 관련이 낮았으며, 식민지를 가지지 않았던 독일과 미국이 더 빨리 성장했고, 식민지 시장이 기술혁신을 느리게 했다는 것을 들어 식민지가 제국주의 국가의 경제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계층 간 차이는 인정해야 한다고 하여 최근에 주장된 젠틀맨 자본주의를 소개하고 있다.제6장 협력, 협력자에서는 식민지 중간계층의 협력이 제국주의 팽창에 필수적이었음을 주장한 로빈슨과 갤러거의 논의를 검토하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협력자를 얻었을 때 제국주의의 식민지 통치가 안정되었고, 잃었을 때 제국주의자가 식민지에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협력자론으로서는 식민지의 급팽창을 설명할 수 없으며 인도의 독립을 협력자의 소멸로 설명하기도 어렵다고 비판한다.제7장 남성, 여성, 제국은 제국주의 시대의 남성 우월주의와 굴절된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남성 우월주의는 빅토리아 시대 가족 관계의 산물로, 남성으로서의 제국 지배자의 이미지는 국내적으로는 여성의 권리 주장에 대한 방어책으로 쓰이고 식민지 종속민에게는 복종을 요구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영국 남성은 인도를 여성에 비유하여 인도 지배를 합리화했다. 영국 여성은 영국 남성과는 달리 영국의 인도 지배의 약함을 간파하기도 했지만 제국주의 비판에 이르지 못했으며 남성적 담론에서 기표로서의 역할밖에 인정받지 못했다. 결구 인종, 제국, 젠더를 둘러싼 식민주의 담론은 백인 남성의 지배권을 확인하고 유지시켜 주는 도구였다고 설명한다.제8장 제국의 선전과 전파에서는 역사 교과서, 학교 교사, 스포츠, 보이스카우트와 걸 가이드 등의 청소년 단체, 제국의 날 기념 행사, 충성심을 높이는 저작, 뮤직홀, 영화, 리빙스턴과 로렌스 등 제국주의 이념의 전파자를 소재로 하여 영국이 제국의 이념을 선전·전파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소개하고 있다.제9장 제국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에서는 제국을 통치하는 두 가지의 기본적인 방법을 간접통치와 직접통치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적은 비용으로 식민지를 통치하려 했던 영국은 보호국화하거나 특허회사에게 통치권을 주는 간접통치를 좋아했지만 실제는 많은 지역에서 직접통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문관을 이용한 인도식 직접통치가 고안되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토착민 행정가를 영국인이 감독하는 직접통치와 간접통치를 결합한 방법이 이용되었다.제10장 해가 지지 않는 제국에서는 19세기 후반을 소재로 해서 영국 제국이 대중에게 주는 의미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이때에 이르러 영국인은 식민지가 영국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제국을 경영하는 합리적인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제11장 제국과 인종에서는 인종주의라는 점에서의 영국과 일본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서술한다. 저자에 의하면 양국 모두 식민지에 대해 인종적 우월감을 주장하여 식민 통치를 정당화했다. 방법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영국인의 인종주의는 그들이 발달한 문명과 우월한 도덕을 만들어내었다는 데에 기초를 두었지만 일본의 그것은 일본인이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비로운 민족이라는 데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제12장 제국주의의 대차대조표는 다른 장과는 달리 저자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고 있는데, 영국의 경험에서 보면 식민지를 획득하는 경제적 동기는 간접적이었고,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착취했다는 것은 불확실하며, 영국의 통치비용보다 영국이 받은 보상이 더 컸다고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과 수탈자만이 아니라 정직하고 총명한 식민주의 행위자들도 설명해야 하고, 영국의 이해관계와 충돌하지 않는 한 식민지 주민의 복지와 안녕이 고려되었던 점에서 보면 영국이 가장 덜 나쁜 제국주의였다는 것이다. 다만, 영국의 특징은 인종주의적으로 대단히 오만했고 제국주의적 지배가 식민지의 민족주의와 통일을 낳아 결국 제국이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국주의와 식민지는 서로를 배제하고는 결코 자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것 등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해방직후 정치세력의 동향1. 반탁운동모스크바에서 미·영·소 세 나라의 외상이 한국문제를 다루고 있을 때 국내에서는 3상회의에 대한 왜곡기사가 연일 보고되었다. 12월 하순『동아일보』는 반소기사를 싣기 시작하면서 자극적이고 왜곡된 기사를 보도{) 이러한 보도가 미국통신사에 의해 전송된 것에 대해 당시국제통신기관의 모략이라는 지적과 공산 당의 이강국이 이를 반소·반공의 음모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음모가 아니라면 최소한 당시 언론기 관을 콘트롤했던 미국의 고의적인 방조정도는 되는 것이었다. (이완범『해방전후의 역사인식3』 「한반도신탁통치문제 1943∼46」238쪽)하였고,『매일일보』『해방일보』등 몇 안 되는 모든 신문이 탁치를 독립에 배치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 이를 비판, 홍보함으로써 대중에 탁치에 대한 고정관념이 형성되었고 신탁관리제에 단연 반대하자고 호소하였다. 또한 이승만에 의해서 반탁투쟁을 반소반공투쟁으로 몰고 간 신탁통치 소련주창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모스크바 3상회의의 전문이 들어오지 않은 채 국내에서는 반소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우익을 중심으로 신탁통치반대운동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고, 모스크바3상회의 결의라고 하여 12월 29일 국내에 보도된 기사도 그 취지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오로지 신탁통치를 조선에 실시한다는 내용-모스크바 3상회의 결의 3항에서의 신탁통치가 아닌 유엔헌장에 쓰여있는 신탁통치였다-만 부각되었고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적 임시정부를 수립한다는 부분은 거의 전달되지 않았다.이와 같은 보도에 1941년이래 반탁태도를 견지했던 김구 중시의 임시정부세력은 즉각적인 의사 표명에 있어서도 단연 선두에 서고 있다. 중경임시정부측은 긴급 국무위원회를 개최한 후 민족적 불합작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고{)「동아일보」1945. 12. 30.『자료』1, 686∼688쪽. 모스크바 3상회의와 관련하여 최초의 반탁주장이 반소선전의 일환으로 이승만과 한민당에서 나왔고, 그것을 중경임정측에서 본격적인 반탁투쟁으로 발전시켰다는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산발적인 세력에 정체성을 부여하여 비로소 민족적 명분 및 반공반소운동의 명분을 확보하여 일반대중에 영향력을 강화하고 좌익을 공격하는 명분으로 사용된다. 또한 정보의 공정한 전달이 어렵고 사리판단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반탁운동은 당시 민족감정에 호소력이 켰으며 반공·반소·극우이데올로기와 일체를 이루어 단정분단체제를 합리화하고 그것을 민족적인 것으로 위장하는 논리로 사용되었다.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1945년 12월 28, 29일부터 전개된 반탁투쟁운동을 열렬한 자주정신의 발로이거나 미소군의 남북한 주둔 현실을 생각지 않은 소박한 민족의식의 발로로 인식을 하여왔다. 그러나 12월 27일 국내에 보도된 정체불명의 허위보도와 모략선전, 1946년 1월부터 반탁투쟁이 반공이데올로기로서의 유효성 측면에 주목해야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반탁투쟁은 다름 아닌 우익의 정부수립 방안이었던 중경임시정부 추대운동이었다는 점이다. 즉 임정요인들은 국내귀국후 임정법통론을 견지하며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반탁투쟁의 계기로 중경임시정부 추대운동을 벌여 모스크바3상회의의 결의의 임시정부 수립방안과 대립된 입장을 취하고{) 12월 29일 하지중장의 설명을 듣고도 3상회의에 적대적으로 나왔던 것은 3상회의의 첫 번째 결의 인 민주주의적인 임시정부 수립이 중경임시정부 추대와 정면배치, 대립되는 것으로 이해하였기 때 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서중석『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315쪽)이러한 중경임정 추대운동은 1947년 초의 반탁투쟁에서 더욱 조직적으로 전개된다. 이처럼 반탁운동은 중경임정 추대운동이었고 신탁반대운동이었고 반소반공투쟁으로서 이 세 가지는 상호 유기적으로 일체를 이루고 있다.2. 모스크바3상회의 지지운동조선공산당측은 1월 1, 2일부터 신탁통치에 대한 태도가 변하였다. 이들은 우익의 반탁투쟁을 민족분열적 행위로 규탄하고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할 것을 주장하면서도 그전까지는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1월 2일 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에서는 3상회담의 결정은 진보적 결정으로 전면적으로 의자들의 성명에서 반탁지지와 함께 임정에 대한 비판도 개재했었던 좌익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조선공산당의 방향전환 과정의 설득작업에서 공산당은 신탁이 독립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고 독립을 보장하고 촉성하는 신탁이라고 설명하고 이로 말미암아 일제 잔재세력을 청소하여 파쇼세력을 막고 한국에 긴급한 정치적, 경제적 원조를 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1월 중순부터는 3상회의 결의에는 신탁통치에 관한 언급은 없고 후견 이라는 말만 있다고 선전하며 신탁통치라는 것은 부당한 것으로 3상회의 결의에는 후견제 만 있지 결코 신탁통치가 없다고 주장하였다.{)「해방일보」1946.1.20 북에서는 처음부터 신탁통치란 용어는 안 쓰고 후견이란 말을 썼다. 김두봉은 평양방송을 통해 3상회의 결의는 신탁제도가 아니라 후견제도를 말하는 것이니 주권은 조선에 있 다라고 말하였다.(심지연,『조선신민당연구』74쪽) 남한에서는 언제부터 썼는지 확실치는 않으나 정 태식의『莫斯科(막사과=모스크바, 필자주) 三相會談의 의의』에 모스크바3상회의 결의에서의 신탁 은 번역이 잘못된 것으로 그것은 소련말로 아뻬까이며 협력과 원조라고 설명하였다(『개벽』1946. 4. 78쪽『총서』6)여운형과 인민당도 모스크바 3상회의 결의는 한국을 자주적 통일국가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국제적 합의이므로 반드시 실현되도록 전력을 기울이되, 신탁문제는 민족의 자주적인 노력을 받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하였고 이는 김규식, 김병로 등 좌우합작파의 우측 인사들의 입장과 같은 것이었다.그러나 좌익의 노선전환은 당내인사들의 거센 반발과 우익측의 맹렬한 비판, 즉시독립을 희망하는 대중의 민족감정과 융합하지 못하여 결국 정국의 주도권은 우익측에 넘겨주고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3. 좌우합작운동미·소가 각기 한반도에 분할점령을 하고 있는 상황은 한반도문제 해결에 미·소양국의 개입이 불가피한 전제조건이었다. 그런 속에서 한반도 문제해결의 구체적 실천회담인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46. 5. 8){) 미국은 소련과 한반도 분할점령 후 소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1946년 5월 25일에 시작된 좌우합작운동은 여운형과 김규식을 중심으로 3차에 걸쳐 예비회담을 가진 뒤 6월 30일 합작공식기구인 합작위원회를 결성하고 대표단과 비서국을 선출, 설치하였고 같은 날 하지의 좌우합작추진회의 적극지지{) 하지중장의 합작추진 지지는 자문행정기구에서 선거를 통한 자문입법기구의 창설이라는 새로운 정 책을 추진하기 위해 사전 정계통합의 필요로 좌우합작을 주도할 지도자로 김규식, 여운형의 참여라 는 구상을 하고 자문입법기구를 위한 좌우합작으로 좌익을 분리시켜 합작에 참여, 이를 통해 좌익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도진순, 앞의 책, 368∼372쪽)를 기반으로 활기를 띠어간다.좌우합작에 대해서 우익은 정당이나 인물에 따라 조금씩 의견이 다르나 집단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고, 중도적인 위치에 있었던 정당 사회단체 지식인들 역시 환영하였다. 문제는 조선공산당으로 민족주의민족전선 결성 후 중도파를 용납하지 않으려 하였고 좌우합작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좌우합작을 적극 지지하지는 않았으나 그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운 것은 아니었고 좌우합작의 원칙은 3상결의의 지지라고 밝혔다.좌우합작운동이 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7월 9일 하지는 입법기관설치안{) 6월 29일 러치가 하지에게 보낸 서한에서 처음 윤곽이 드러난 것으로 재조선 미군정을 할 수 있 는 대로 민주적으로 시행해 가자 는 취지에서 출발하여 조선 민중을 대표하여 발언 하는 기구 설 립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 하지는 모스크바협정에 따라 임시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남 조선에 대한 최고 권력과 최고의 책임이 나의 합법적인 의무인 한 나는 이 제안이 조선의 복리를 위한 것이며 또 입법기관을 설치할 1단계라고 확신한다 는 지지발언으로 이 기관이 남조선 단독정 부수립의 1단계가 아님을 명백히 하였다.(안정애, 앞의 책, 147쪽)을 발표하였는데, 한민당은 찬성을 하였으나 조선공산당은 정부가 서기전에 입법기관이란 있을 수 없다{) 좌우합작3원칙에서는 입법기관 설치가 있는 것이었고 이는 신민당과 인민당에서 제시한 요구사항과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입법의원설치안으로 정국이 분분하였으나 좌우합작은 김규식, 여운형의 주도로 전개되었고 박헌영은 북한에서 돌아온 뒤 합작반대를 표명하여 7월 27일 민전에서는 좌우합작5원칙을 제시한다.1. 3상회의 결의를 전면적으로 지지하여 미소공동위원회 속개운동을 전개, 임시정부 수립에 매진하되 북조선 민전과 직접 회담하여 전국적 행동 통일을 기할 것2. 토지개혁(무상몰수, 무상분배), 중요산업 국유화, 민주주의적 노동법령 및 정치적 자유를 위시한 민주주의 기본과업에 매진할 것3. 친일파 민족반역자 친파쇼 반동거두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테러를 박멸하고, 검거 투옥된 민주주의 애국지사를 즉시 석방할 것4. 남한에서도 정권을 군정으로부터 인민의 자치기관인 인민위원회에 즉시 이양토록 기도할 것5. 군정고문기관 혹은 입법기관 창설에 반대할 것이틀 후 열린 제 2차 정기회담에서 우익측은 참여하였으나, 좌익측의 연기요청이 유회되고 우익측에서 이날 우익합작8원칙을 발표한다.1. 남북을 통한 좌우합작으로 임시정부 수립에 노력할 것2. 미소공동위원회 재개를 요청하는 성명서를 발표할 것3. 소위 신탁문제는 임정 수립 후 동정부가 미소공위와 자주독립정신에 기하여 해결할 것4. 임정 수립 후 6개월 이내에 보선에 의한 전국국민대표회의를 소집할 것5. 국민대표회의 성립 후 3개월 이내에 정식정부를 수립할 것6. 보선을 완전히 실시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언론,결사,출판,교통,투표 등 자유를 절대 보장할 것7. 정치,경제,교육의 모든 제도 법령은 균등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여 국민대표회의에서 의정할 것8.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징치하되 임시정부 수립 후 즉시 특별법정을 구성하여 처리케 할 것좌익의 5원칙은 좌익 전체의 5원칙이라고 보기 어려운 좌우합작을 위한 5원칙이라기 보다는 그것에 반대하기 위한 5원칙이었다. 7월 10일 발표된 3원칙에서는 좌우의 합의와 상호 양보를 통한다면 합작은 성공을 기할 수 있었는데 5원칙이 나1쪽)
교육에서의 종속이론(Carnoy를 중심으로)종속이론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경제침체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대안으로서 대두되어 이후 학문적,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종속이론에 의하면 경제적인 종속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교육적 종속을 야기시키는데, 그중 교육적인 종속은 정치, 경제적 종속구조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재생산하는 커다란 요인이 되어 중심국과 주변국간의 불평등적 질서뿐만 아니라 중심국의 주변국가에 대한 수탈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이와 관련하여 교육의 문제를 종속이론의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움직임이 자주 대두되고 있다. 여기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교육의 문제가 종속이론의 관점에서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논의하도록 하겠다. 우선 종속이론의 이론적, 사회사상사적인 배경을 살펴보고 교육의 관점에서 종속이론을 M. Carnoy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1. 종속이론의 사회사상사적 배경과 기본관점종속이론이 출현하기 이전에는 자본주의사회 이론이 분석도구로써 많은 역할을 하여 제 3세계의 발전을 논의할 때 주로 선진산업사회에서 이루어진 발전모형에 따라서 후진국의 발전을 논의하고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 작업이 빈번하였다. 그들은 제3세계의 근대화가 마치 선진사회의 발전모형에 따라서 발전하는 것처럼 여겼으며 자체의 발전논리에 따라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무시하였다.그러나 저개발국, 특히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하는 제3세계 나라들에 있어서 사회변동의 기본적인 특징은 근대화과정으로 집약될 수 있다. 근대화의 이상은 발전이었다. 이를 위해 제3세계는 발전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그 결과는 저개발과 저발전이었다. 따라서 자신들의 자본주의적 발전과 산업화를 통한 근대화 전략을 재검토하기 시작한 결과 자신들의 발전능력을 상실, 봉쇄당해 온 것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적 경제체제임을 알게 되었다.종속이론가들은 중심과 주변간의 단순한 종속적인 관계, 착취의 관계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 중심국가들의 정치·경제체제 속으로 주변국의 체제가 통합되는 과정이 종속이론의 중요한 쟁점이 된다. 즉, 자신들의 자본주의적 발전과 산업화를 통한 근대화 전략을 재검토하기 시작하여 역사적·사회적 구조가 다른 선진국의 발전모형의 무비판적 도입과 적용을 반성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자기 성찰적 시각으로서 등장한 것이 종속이론이다. 따라서 종속이론은 종속국가 내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자신들의 입자에서 분석하는 틀을 제공해 준다.2. 교육에 대한 종속이론종속이론의 시각으로 교육현상을 분석해 보려는 시도로 문화적 종속이론이 나타났다. 이는 선진국들에 의한 정치적 식민주의가 끝났으나 제도적 교육을 통한 문화적 식민주의는 오히려 강화되어 교육을 통한 문화적 지배는 경제적, 정치적 지배를 조장해 왔다는 종속의 가속화 현상을 보여준다.카노이(Carnoy)는 후진국의 교육현상을 문화적 식민주의로 시각화 시켜 선진국과 개발국의 관계를 교육사적·경제사적 관점으로 조명하였는데 그는 문화적 식민지론을 레닌의 제국주의론보다는 제국주의가 주변 국가에 미치는 효과와 영향을 중점적으로 논의하는 종속이론적 식민지론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는 갈퉁(Galtung)이 제시한 제국주의를 비판 없이 수용하여 세 가지 관점을 수용하는데 첫째로 중심국가의 지배세력과 주변국가의 지배세력간의 이해관계는 서로 동일, 일치한다. 그 이해관계는 중심국가 내에서 보다 주변국가 내에서 더 불일치하게 되어 국내적 갈등요소로 등장한다. 또, 중심국가의 주변세력과 주변국가의 주변세력간의 이해관계는 원칙적으로 서로 맞지 않는 내용을 근간으로 하는 중심국가와 주변국가간의 상호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어 라스킨(Raskin)이 제시한 이론을 받아들여 교육은 하나의 문화적 식민주의가 되고 있음을 규명하려고 했다.문화적 식민주의라는 용어의 개념은 정확하지 않다. 카노이 역시 이에 대한 정확한 개념파악을 소홀히 하였는데 종속이론가들의 입장에 의하면 문화적 식민주의는 국내와 국제관계에 있어서 문화적 조합관계를 의미하게 된다. 즉 중심국가와 주변위성국간의 문화적, 사회적 공생관계를 의미하는데 강대국의 지배세력과 주변국가의 지배세력간의 문화적 이해관계의 종속적 유대 및 공생적 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강대국의 중심세력이 갖고 있는 가치, 태도, 문화적 속성 등의 일련의 문화, 사회적 제도는 주변국가의 문화적 지배이념, 도구로 등장하게 된다.
인류는 지금 새로운 문명으로의 일대 약진을 할 단계에 서서 역사상 최대의 사회변혁과 창조적 구조 개편을 맞이하고 있다. 이는 도래하는 제3물결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과거 두 차례 대변혁의 물결이 그러했듯이 기존의 문화와 문명을 뒤엎었던 제1물결(농업혁명), 제2물결(산업혁명)에 이어 전연 새로운 생활방식을 수반한 채 자신을 완성시킬 것이다. 또한, 제3물결의 미래상은 종말이라는 절망 과 별 차이 없는 미래 냐 라는 수동성과 소극성을 가진-미래에 대응할 방법도 필요도 없는- 단순한 선택 식이 아니다. 여러 가지 변화가 결국 인간의 생활, 노동, 유희, 사고방식에 거대한 변혁을 일으키리라는 혁명적 전제를 상정하고, 또 그것은 건전하고 바람직한 미래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이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2물결인 산업화 문명 속에서도 서서히 스며든 제3물결의 흐름은 제2물결과의 충돌, 즉 산업사회의 마지막 잔재를 서로 차지하려는 투쟁이 아니라 지난날 산업사회를 열렬히 지지하는 제2물결사람들과 식량, 에너지, 군축, 인구, 빈곤, 도시공동체의 붕괴 등 세계의 가장 시급한 당면 문제들이 이제는 산업질서의 테두리 안에서는 해결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수많은 제3물결 사람들과의 분쟁인 내일을 위한 투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의 깨달음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열쇠가 된다.1. 제 1물결에서 제 2물결로의 변화기술영역의 변화 - 에너지, 생산체제, 유통체계낡은 문명이건 새로운 문명이건 간에 모든 문명의 전제 조건은 에너지이다. 제1물결사회는 인력, 인력, 태양열, 풍력, 수력 등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이용했다. 이에 반해 제2물결사회는 모두가 석탄·가스·석유등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삼았다. 이 같은 지구상의 재생 불가능한 비축된 에너지 잠식은 산업문명에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어 경제 성장을 크게 가속화시켜 기술분야의 거대한 발전을 가져왔다. 제1물결사회는 필요한 발명에 의존했으나 제2물결은 기술을 전적으로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공장기계한 것들은 권력층이 독점하여 일반 민들은 이용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제2물결의 파급은 대량의 정보를 조심스럽게 유통시켜야 했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의 독점은 깨어지게 되었다. 우편업무를 시작으로 전화와 전보의 발명, 대량 메시지의 전달 수단 그리고 대중매체를 필요로 했다.인간생활의 변화 - 생산과 소비의 분리, 가정과 일터의 분리제1물결시대 전반을 통해 인구의 극소수만이 시장에 의존했을 뿐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체로 시장과 상관없이 생산과 소비는 단순한 생활유지 기능으로 유지되었다. 제2물결은 이 같은 상황을 크게 뒤바꾸어 놓아 다른 사람이 생산한 식량·재화 및 서비스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다. 즉 생산의 목적이 사용에서 교환으로 바뀌게 되면 이 교환이 일어날 수 있는 메커니즘인 시장이 폭발적으로 확산되어 급속한 생활 수준의 향상과 인간생활에 영향을 가져왔다.그 첫째로 제2물결의 생산과 소비의 분리는 정신상태와 퍼스낼리티에 대한 전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우정·혈연관계·부족적 또는 봉건적 충성에 기초한 사회 대신 실질적 또는 암묵적인 계약관계에 기초한 문명이 등장했다. 생산자 및 소비자가 갖는 이 두 가지 역할의 분리는 또한 이중적인 퍼스낼리티를 조성했다. 그리고 노동에 있어서 제1물결사회에서는 노동의 대부분이 농토나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농업사회의 노동은 상호의존도가 낮은 것이 특징이었다. 제2물결은 노동의 장소를 농토와 가정에서 공장으로 옮겨졌고 노동의 상호의존도를 크게 높였다. 또한 상호의존도가 높은 노동과 낮은 노동이 충돌함으로써 노동자의 역할·책임·보수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이 조성되었고 생산이 더욱더 공장과 사무실로 집중되었다.그러나 제1물결의 노동형태가 완고하게 고수되는 곳이 있었는데 가정이 바로 그러한 곳이었다. 남편이 대체로 직접적인 경제노동에 진출한데 반해 주부들은 일반적으로 간접적인 경제노동에 머물렀다. 이 같은 남녀의 역할분담은 인격과 정신생활 면에서도 분열을 가져왔다.권력구조(관계)의 변화 - 통합자제1물결사회에서는 누가 권세를 의 문턱에서 우리는 스케일이 큰 사고방식, 일반이론, 조각의 재구성 등으로 복귀하는 경향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생활을 뒤흔들고 있는 변화의 흐름들을 살피고 그 밑바탕에 깔린 연관성을 밝히고자 한다.기술영역의 변화 - 에너지, 산업체제, 유통체계석유파동이후 제2물결의 기술은 전혀 새로운 에너지를 기반으로 전환 해야할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은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고 자원의 물리적 고갈 뿐 아니라 가격의 상승, 대기오염문제에서도 재생불능의 화석연료는 그 바닥상태로 치닫고 있다. 또한 기술도약, 새로운 생산체계는 전체 에너지산업의 근본적인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 기반의 특징은 고갈되지 않고 재생 가능한 자원에서 생성되며, 넓은 지역에 산재한 다양한 자원이고, 탈 중앙집권화 된 에너지 생산기술을 결합하게 될 것이며 소수의 방법과 자원에만 의존하는 대신에 매우 다양한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다.제3물결 시대의 새로운 산업들은 전자공학과 컴퓨터산업, 우주산업, 해저개발, 유전자 산업이다. 소형 컴퓨터들이 가정에 파고들고 있으며 영업, 노동 자체의 성격과 가족의 구조까지도 뒤바꾸어 놓게 될 것이다. 전자공학을 응용한 수많은 제품들이 등장할 것이고, 에너지 절약형의 전자폭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주공장의 설치로 인하여 고도기술 물질들을 취급하는 데 방해가 되는 중력을 제거 할 수 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지상에서는 전혀 만들 수 없는 새로운 제품을 생산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해저에서의 수중농업은 생태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세계 식량위기의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또한 해양은 석유나 각종 광물의 보고이며 심지어 의약품 제조에도 역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유전자 산업은 우수인종, 에너지문제, 질병치료와 예방, 식량공급증대 등 여러 방면에서 도입될 수 있을 것이다.여러 나라들과 각종산업 분야에서 탈 대량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수백 만개의 동일하고 표준화된 제품의 장기적 생산에서 부분적 또는 전면적인 주문제, 도덕 면에서의 순수익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업적지수, 연차사회보고서, 목표회계와 보고 등 제3물결시대 기업의 업적평가 척도가 새롭게 고안될 필요가 있다.제3물결로 인해 기존의 규범인 동시화, 표준화, 극대화, 전문화, 집중화, 중앙집권화가 붕괴하고 있다. 자유근무시간제의 도입은 생산성의 향상, 결근율의 감소, 야근노동자의 증가, 파트타임 노동의 확대를 가져왔다. 소비자 패턴도 철야영업 슈퍼가 성행하는 등 야간활동의 증가를 반영하고 개인의 스케줄이 개별화되며, 러시아워의 개념이 희박하여 교통량의 흐름이 재편될 것이다. 생산품 가격, 정치, 대중정신, 종교관 등이 일률성과 표준화에서 벗어나고 다양한 생활양식과 개성화 된 퍼스낼리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대규모 조직들에서 조직단위가 날로 증가하고 일시적인 조직단위(애드호크러시)들은 중앙집권화 된 통제 대신에 복수명령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는 큰 것과 작은 것 양자의 장점을 결합시킨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시험하여 극대화는 사라지고 그 대신에 적절한 규모가 등장하고 있다. 전문화와 전문직업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전문가는 자신의 사리만을 추구하고 편협한 시야 이외의 어떠한 것도 해낼 수 없다는 비판을 점차 받고 있다. 제2물결이 아직도 장려하는 집중화의 문제도 오늘날에는 오히려 인구, 에너지 등 많은 측면에서 분산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새로운 규칙에 의한 미래의 조직은 단조로운 위계제도, 소규모 구성단위로 이루어져 각 단위는 독자적인 대외정책을 가지고 점차 24시간 가동되게 된다. 조건이 주어질 때는 2개 또는 그 이상의 구조적 형태를 가질 수 있는 이원적 또는 다원적 조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에 필요 되는 경영자는 위계적 방식만이 아니고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도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정보영역의 변화 - 매체의 탈 대중화제2물결은 대중매체에 의해 대량으로 이미지가 생산되었고, 이것은 산업사회의 생산체제가 요구하는 표준근로자 노동시간도 단축될 것이고 여가문제 전반이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되어 반쯤은 교환을 위한 생산에, 나머지 반은 자가소비 생산에 기반을 두는 새로운 생활양식이 전개될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제2물결의 경제이론과 용어를 대신하여 새로운 이론과 척도, 용어를 재 정의하고 개발해야만 한다. 이모든 경제 변화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중대한 사실은 시장의 확대가 그 외적인 한계에 도달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제3물결은 초시장(건설, 확대, 개수, 통합하는 일에 정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는) 문명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이며 이제 새로운 과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새로운 생산체제는 작업단위의 소형화를 촉진하고 생산의 탈 중앙집권화 및 탈 도시화를 가능케 하여 일자리를 가정으로 되돌려 보낼 가능성이 있다. 연소자 노동문제 측면에서도 가내전자근무체제는 청소년에게 또 다시 사회적 경제적으로 생산적인 역할을 돌려줄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가내전자근무체제의 필요성과 가능요인, 그 결과 및 영향을 알아보자.가내전자근무체제의 필요성 측면에서는 대인접촉이 별반 필요치 않은 하급추상 사무직 근로자, 연구원, 초 고급추상 사무직근로자 등 대기업과 연구소에서 컴퓨터 등의 통신시설을 전제로 가내근무가 가능하다. 그러나 작업장을 가정으로 전환하는 데에 난관이 존재한다. 가내전자근무 가능요인을 보면 운송(통근비용)과 원격통신 사이의 경제적 득실이다. 오늘날 심각한 교통난과 교통비용의 급등에 반하여 원격통신비용은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 에너지 면에서 많은 비율이 절약될 수 있다. 부동산비용을 감축시키며 또한 환경오염을 완화할 수 있다. 통근시간의 비율이 높아짐에 따른 근로자의 저항이 높아진다. 가치관의 변화 측면에서도 가내전자근무체제는 남편과 아내, 자녀들까지도 작업단위로서 함께 일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가내전자근무체제로 인한 각 부분에의 영향으로는 이사하는 일도 줄고 개인의 스트레스와 잡다한 인간관계도 줄어드는 대신 공동체 생활에의 참여는 늘어날 것이다. 에너지 수요를 줄이고 에너지를 .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를 읽고오래된 미래를 처음 접한 건 97년도였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친해지게 된 선배가 좋은 책이라며 선물해준 것이 이 책과의 첫 대면이었다. 다들 이 책을 접하면서 느끼는 것이겠지만, 종이부터 일반 책과 달라서 놀라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번에 다시 읽어보려 꺼내었을 때도 그런 느낌은 여전했다. 두꺼운 하드 보드 지에 여러 겹으로 코팅된 종이가 아닌 누런 재생지. 두꺼워 보이지만 너무나 가벼운 책은 그 내용을 떠나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내게 했다.과연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어떤 사람일까? 무슨 의도로 집필을 하였기에 촌스러울 정도로 심플한 표지에 재생지를 사용하여 책을 만들었을까? (지금이야 책의 내용을 알고 있고 작가가 무슨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재생지를 사용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그리고 환경운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계신 분들이 재생지를 사용하는 일이 늘었기 때문에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재생지를 사용한 책을 본 일이 없었던 터라 책 내용을 떠나서 그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오래된 미래 란 무슨 의미일까? ( 오래된 이란 단어와 미래 란 말 사이에는 분명 Gap이 있는데 말이다.) 미래는 언제나 현재 뒤에 있는 것이고 그렇게 때문에 오래될 수 없는 것인데도 버젓이 오래된 미래 라는 문법상 말도 안 되는 제목을 내세우고 있다. 도대체 오래된 미래란 무엇이기에 작가는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라는 등의 책에 대한 정보가 없었을 때 가졌던 그런 의문들과 책을 다 읽고 나서 작가의 의도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등 그때 느꼈던 반성과 후회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다시 읽으면서 느끼고 있는 또 다른 종류의 반성과 후회들이 새롭게 생겨났다.이 책의 구성은 저자가 라다크에서 긍정적으로 느꼈던 부분(제1부 전통)과 이후 산업사회로 달라지는 라다크의 모습들(제2부 변화), 그리고 그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모색을 시도(제 라다크로부터 배운다)하는 것으로 되어있다.왜 세상은 하나의 위기에서 또 하나의 위기로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있는가? 항상 이러했는가? 과거에는 더 나빴던가? 아니면 더 좋았던가?자신의 전공인 언어를 위해 찾아갔던 라다크에서의 16년간에 걸친 경험은 저자를 위의 물음에 대한 답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저자는 의 방향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나날의 삶이 더 힘들고 지치게 느껴지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며 이러한 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인도에 속했지만 작은 티베트 라고 불릴 만큼 독자적인 문화와 또 자급자족의 삶을 일구고 있는 라다크에서 보다 건전한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을 경험하였다고 한다. 자신과 문화를 밖에서부터 바라보는 특권을 가졌다는 것, 즉 근본적으로 다른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는 사회에서 살았던 저자는 현대세계가 그 문화-라다크에 끼치는 충격을 목격한 것이다. 저자가 몇 십 년만에 처음으로 온 외부 인으로서 그곳에 도착했을 때 라다크는 아직 본질적으로 서구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변화는 빠르게 왔고 두 문화의 충돌은 극적이며 강력하고 생생한 비교를 저자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 속에서 저자는 서구의 산업화된 사회를 지지해주는 심리, 가치기준, 사회구조와 기술구조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고대의, 자연에 기초한 사회를 지지하는 것들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그것은 저자에게 우리의 사회 경제 체제를 더 근본적인 또 하나의 존재양식, 인간과 자연의 공존화에 기초를 둔 양식과 비교해보는 드문 기회였던 것이다.저자는 파괴적인 변화 앞에서의 수동성은 부분적으로는 자연과 문화를 혼동한 데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많은 부정적인 경향이 우리의 통제력 너머에 있는 어떤 자연적인 진화의 힘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이 속한 산업문화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인간은 본질적으로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했고, 이보다 더 협동적인 사회는 유토피아적인 꿈불과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라다크를 통해서 저자는 미래로 가는 길은 하나뿐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전통과 변화 속의 라다크라다크 사람들은 자신들의 환경에 맞게 여러 가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작은 땅을 다시 잘게 나누지 않기 위해 일처다부제의 결혼풍습을 가지고 있다든지 고산지대에 알맞은 야크와 암소의 교배종인 조 라는 역축, 그리고 빈약한 자원이지만 그것을 아주 쓸모 있게 사용함으로서 우선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모두가 삶에 있어서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고 전수할 수 있는 소규모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은 어린이나 늙은이나 삶에 있어서 안정적이고 주체적이며 행복감을 느낄 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문화의 밑바탕에 깔린 불교문화는 이별과 죽음, 내세관까지 깊은 영향을 끼쳐서 열악함 속에서도 커다란 기쁨과 배려, 삶에 대한 성찰을 가능케 하고 있었다.하지만 1974년부터 서구의 물결이 침범하면서 전통 속에서 지내던 라다크의 모습은 급격하게 서구 사회화로 변화하게 된다. 사치스런 관광객들이 밀려오고 라다크 사람들이 서서히 돈 이 중심이 되는 세계 경제의 주변으로 자리잡는 모습이 그곳 사람들의 다양한 변화를 통해 현실감 있게 전해진다. 자급자족되던 농사도 이제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산업이 되고 자신들의 환경에 알맞은 조 는 꿔놓은 보릿자루로 전락하여 우유를 많이 만들어 내는 젖소를 키우기 시작하고 예전 같으면 이웃들이 돌아가며 일손을 거들던 따스했던 모습도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에 품삯을 주고 사람을 부리는 삭막한 사회가 되었다. 사람들은 보다 나은 문명의 이기를 쫓아 도시로 몰리고 젊은이들은 현란한 서구문화에 탐닉하며 자신의 전통을 혐오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차츰 예전에는 찾아 볼 수 없었던 폭력과 문명병 인 암, 당뇨병 등이 나타나고 서구의 도시들처럼 획일적인 건물들과 지저분한 거리, 실업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들은 세계 경제지표를 들먹이며 개발을 외치고 잘살아보자고 아우성이다. 의 공동체는 허물어지고 삭막한 인간관계가 사람들(어린이와 늙은이 그리고 여자들)을 불안과 고통, 불행 속으로 몰아 넣는데도 말이다.라다크로부터 배운다 - 라다크 프로젝트: 반개발(反開發)문명의 진보는 인류의 행복을 보장하는가?현대 문명이 인류에게 준 혜택이 실로 엄청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그것을 거슬러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며, 과연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연친화 적이고 생태학적 삶만이 21세기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남겨진 최선책인가!라다크에서 그녀가 대면하게 되는 것은 제3세계로 침투해 들어가는 개발 뿐만이 아니라, 전통과 공동체의 파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폭력적인 소비, 그 속에서 길들여지는 인간성 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였다. 자신들의 해맑던 미소를 잃어버리게 되는 라다크 사람들의 모습은 인간 본성은 그가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총합이다 라는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때문에 저자는 라다크의 과거와 현재를 보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미래의 대안을 모색하여 서구식 산업주의의 길 이외에 진정한 사회발전의 대안이 존재한다는 것을 작지만 의미 있는 계획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다.라다크에서의 풍부하지 않은 자원과 건조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생활에 배인 검소하고 환경 친화 적인 생활태도는 현대인들에게 인류의 발전이 어느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인류의 올바른 미래를 위한 대안은 반개발(counter-development) 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권력의 집중과 문화적인 획일화를 막고 각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조건과 필요에 기초를 둔 적정한 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과거로, 원시시대의 원주민처럼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라다크로부터 배운 재생 가능한 자원의 생산·사용을 각 지역에 맞게 활용하고, 지금부터라도 제2, 제3의 라다크가 생기지 않도록, 또 아직 모르고 있는 라다크인들과 세계인이 교감할 수 있도록 net-work를 형성하자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자연과 조화를 수 있는 근본적인 패턴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존의 개발에 무조건 반대하는 의미가 아니라 지속적인 생산과 이윤이 덧붙여져야 돌아가는 현 경제에서 벗어난 개발, 즉 생태학적으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그리고 자신들의 문화를 소중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 개발을 말하고 있다.많은 전문가들은 지구적 환경위기가 인류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세기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적 대립이었다면 다음 세기는 물질적 풍요를 내세우며 기존의 가치체계를 유지하려는 개발주의 세력과 새로운 생활 방식과 가치로 사회 체계를 재구성하려는 생태주의 세력 사이의 갈등이 될 것 이라고 조심스럽게 점치기도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는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다가와 있다. 앤서니 기든스가 말했듯이 인간에게 닥친 정체성의 위기는 곧 가능성 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바로 그곳에서 생산되고, 소비되고, 분해되어 지구 순환의 대 질서에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까지도 지구 생태계의 질서 안에서 나름의 생태학적 지위를 잘 지켜오는 라다크의 모습은 바로 생태적 발전 의 모델이다.그리고 새로운, 보다 광범위하고 보다 인간적인 진보의 개념을 증진하고 보급하여 지속 불가능한 개발을 향한 무분별한 돌진을 막는데 필요한 절차가 대규모로 취해져야 한다. 진정으로 효과적인 반개발이 되어야만 오늘날 문제에 대한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기술 획일성에 반대함과 더불어 각각의 지역의 자원과 지식, 기술들을 가능한 최대한의 활용을 권장함으로써 생태 문화적 다양성을 적극 지지하여 농업적 자립이 경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여성들의 시각과 가치관에도 똑같은 비중이 주어져야 하고 가족과 공동체의 결속이 증진되어야 하며 정서적으로 건강한 가족과 개인이 존재할 수 있는 강한 공동체의 유대를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가는 길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