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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평문] 신데렐라 비평문 평가A좋아요
    신데렐라는?동화 ‘신데렐라’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어릴 때부터 책으로 읽고 여자애들은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미움을 받았더래요~”라는 노 래에 맞추어 고무줄뛰기를 한 기억이 있다. 여자아이들은 신데 렐라 이야기를 읽고 누구나 한번씩은 백마탄 왕자를 꿈꾼다고 한 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무의식적으로 이런 생각 을 한다면 시대에 맞지 않는 가치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 어 머니 세대에서는 여자가 직장생활을 하기보다는 조건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살림을 잘 사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여자들이 결혼 후에도 직장생활을 하기를 원한다. 경제적인 문제도 이유가 되지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사회적인 활동을 하면서 존재가치를 깨닫고 보람을 느끼기를 원한다. 남자들 또한 배우자 될 사람이 직장생활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경제적인 여유도 누릴 수 있고 집안일만 하기보다는 더 건설적인 일을 하는 여성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세상에는 ‘신데렐라’에 나오는 왕자처럼 완벽한 남자는 아주 드물다. 한마디로 ‘신데렐라’는 너무 비현실적이다. 물론 아이들이 읽는 동화에서 낭만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좋지만 잘못된 성역할의 학습이 반복되면 커서도 자립심을 기르지 못하고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사람이 될 염려가 있다. 또 우리나라 부모님 세대에서는 “여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니깐 이래서는 안 된다.”라는 식의 말을 많이 한다. 이런 말은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가지게 하는데 부채질을 하게 된다. 서양의 동화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전을 봐도 여자는 수동적으로 그려진다. ‘심청전’에서도 심청이가 나중에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심청이의 개인적인 노력이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닌 왕후가 되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는 ‘공주병’이라는 말이 신생어가 되어 공용되고 있다. 하지만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공주병’은 같은 말이 아니다. 자신이 제일 예쁘고 잘났다는 생각을 가진 여성들에게 우리는 흔히 ‘공주병’이라고 한다. 지금의 사회에서는 자립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누군가에게 의존하려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가진 여자보다는 지나칠 정도로 자신감 있는 ‘공주병’걸린 여자가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어느 여배우가 여우주연상을 탓을 때 “전 이상을 탈 자격이 있어요. 감사합니다.”라고 수상 소감을 했다고 한다. 얼핏 듣기에는 너무 거만한 것 같아 불쾌하지만 다른 방향에서 해석하면 그만큼 노력하고 자신의 능력을 길렀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고 여자아이들에게 ‘평강공주’형의 여자가 되라고 교육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극복하자는 것이 여성이 남성의 우위를 차지하자는 뜻은 아니다.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떳떳이 자기의 권리를 내세울 수 있고 남성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의식도 같이 변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의식이 바로잡힌 여성이 아들을 교육시킨다면 “미스 김은 이제 시집이나 가지..”이런 식의 말이 더 이상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신데렐라’와 같은 내용보다는 여성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 남성과 동등하고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그린 동화를 아이들이 읽어야 할 것이다.
    인문/어학| 2004.06.19| 2페이지| 1,500원| 조회(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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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관] 반딧불의 묘
    에 나타난 전쟁관작품 소개이 작품은 일본의 유명한 문학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한 노사카 아키유키의 소설을 1988년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한 것이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우리에게 친숙한 , , 를 연출한 감독이다.그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2인자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성에 눌려서 상대적으로 평가를 덜 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 스스로 그를 평생의 동업자이자 선배로 여길 만큼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그의 위치는 대단하다.이런 다카하타 이사오의 작품은 리얼리티를 갖춘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사실적인 배경과 인물의 묘사는 관객을 작품에 깊이 빠지게 만든다. 다른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향으로 공상과학 쪽에 편향되어 있어서, 대부분 세심한 배경이나 색채 묘사보다는 역동적이고 생생한 인물의 행동 표현과 화려한 스케일의 스토리 전개가 주를 이루었다.그러나 이 작품은 약간 궤를 달리하여 역사적 사건을 리얼리티로 하여 섬세하고 꼼꼼한 배경과 인물 묘사가 주를 이룬다. 특히 인물의 풍부한 표정 연기는 다른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세이타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나, 세츠코가 천진난만하게 웃는 장면에서 감정의 섬세한 곳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노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인물의 표정이나 행동 묘사가 밋밋하고 단조로와 보이는 다른 지브리의 작품과는 구별되는 다카하타 이사오만의 장점이라고 하겠다.작품의 줄거리이 작품은 지하철역에서 죽어가는 세이타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세이타는 다른 부랑자들과 함께 지하철 역에서 서서히 식어 가고 있었고, 그를 발견한 지하철 직원이 세이타가 지니고 있던 사탕 깡통을 집어 던지면서 과거 회상이 시작된다.세이타와 세츠코 남매는 해군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와 단란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면서 아버지는 전장으로 떠나고 매일 공습이 그들을 위협한다. 어느날 공습으로 인해 어머니는 전신 화상을 입고 죽게 되고 집마저 불타버려 갈 곳을 잃은 두 남매는 친척 아주머니집에 맡겨지게 된다.처음에는 남매가 가져온 음식과 돈 덕분에 아주머니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지만 전쟁으로 상황이 악화되자, 친척 아주머니의 냉대는 갈수록 심해진다. 아주머니의 냉대를 참다 못한 두 사람은 방공호에 그들만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두 사람만의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그러나 한참 보살핌을 받아야 할 어린 두 사람에게 생활은 갈수록 힘들기만 하다. 세스코는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약 한 번 쓰지 못하고,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세이타가 남의 밭에서 작물을 훔치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 경찰서에 끌려 가는 사태까지 벌어진다.결국 세츠코가 영양실조라는 것을 알고 은행에서 돈을 모두 찾아 먹을 것을 사들고 세이타가 방공호로 돌아왔을 때 세츠코는 이미 생명이 꺼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빠가 입에 넣어 주는 마지막 수박을 입에 넣은 세츠코는 오빠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간다." 오빠 안녕"세이타는 죽은 동생을 화장하고 떠돌다가 결국 전철역의 차가운 바닥에서 최후를 맞이한다.작품에 나타난 전쟁관과 두 가지 의문점전쟁의 참혹한 폐허 속에서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처절하게 죽어가야 하는 남매의 짧은 삶은 우리에게 진한 슬픔을 가져다 준다. 특히 죽어가는 세츠코의 입에 수박을 넣어 주는 장면은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명장면이다.그런데 이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두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하나는 왜 세이타는 표면적으로 큰 학대도 없었는데 아주머니의 집을 나와야 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이 작품이 가해자로서의 일본이 아닌 피해자로서의 일본의 처지에 서있다는 점이다.우선 세이타가 아주머니의 집을 나오게 된 계기를 살펴보자. 겉으로 보기에는 뭐 그 정도 가지고 집을 뛰쳐 나가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세이타에게 여러 번 종용한 것은 전시 상황의 국가를 위해 일을 하라는 것이다. 세이타의 아주머니는 일을 하지 않는 집안 사람들은 좁쌀죽을 먹어야 한다고 여기며, 전시 상황의 국가를 위해서는 국민이 앞장서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그러나 세이타는 이제 겨우 14살의 소년이며 전쟁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나 국가에 대한 강한 충성심 따위를 기대할 수 없는 나이다. 세이타가 인식하고 있는 전쟁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앗아간 공습이고 세이타는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겉멋으로 군가를 따라 부르는 평범한 소년에 불과하다.그렇기 때문에 이제 한참 놀 나이의 소년에게 국가와 전쟁을 위해 일한 것을 강요하는 아주머니의 태도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거기에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갈수록 냉담해지는 아주머니의 태도는 세이타가 집을 나오도록 부추기게 된 것이다.이처럼 세이타 남매가 아주머니의 집을 나오면서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은 전쟁으로 인해 버림받는 아이들의 인권 문제에 대한 충격적인 고발이다. 평화로울 때 아이들은 부모의 귀여움을 받으며 떠받들린다. 그러나 자신을 보호하고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아이들에게 전쟁은 인권의 사각지대다. 아이들이 배가 고파서 밭의 작물을 훔쳐도 먹을 것을 주는 사람도 없고, 병으로 죽어 가는 아이에게 의사가 해 주는 말이란 고작 음식을 잘 먹이라는 것뿐이다. 세이타 남매의 처절한 죽음은 바로 이러한 전쟁의 참혹성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둘째로 이 작품이 일본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시각으로 그리고 있으며, 이러한 시각에는 일본 군국주의의 교묘한 술책이 깔려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국가 중 하나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동남 아시아에서 전쟁을 일으키며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 더 괘씸한 것은 정작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이나 사과가 없이 군국주의의 잔재를 서서히 되살리고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이 작품에 대해 "그 이면에는 일본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메시지가 숨어있다"('군국주의는 만화를 먹고산다'··제326호·2000년 9월)고 보거나, 일본의 패전일에 일본TV에서 을 방영하는 것조차 일본이 보수우익화하는 분위기를 보여주는 근거 중 하나(99년 8월10일자)로 평가한 적이 있다.이 작품이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본 것이다. 이 작품에서 전쟁의 공습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일본이고, 그들에게 공습을 자행한 것은 바로 미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만행을 저지른 가해자이면서도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자기 변호의 논리가 이 작품에 깔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하지만 이 작품을 그렇게 바라보는 것은 궁색한 비판에 불과하다. 이는 작품을 꼼꼼히 보지 않고 단지 이 작품이 피해자의 시선으로 그려졌다는 외적인 이유만으로 비판하는 것이다.이 작품에서 전쟁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미그기의 공습으로 도시가 파괴되는 정도다. 실제로 일본군과 미군이 교전하는 모습은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또 이 작품에서 전쟁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대사나 행위가 부각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전쟁으로 처참히 죽어가는 시체와 불타서 재로 변해 버린 도시의 모습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그리고 전쟁으로 참혹하게 파괴되어 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꼼꼼히 그려진다.
    인문/어학| 2004.06.19| 4페이지| 1,500원| 조회(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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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정치발전방안
    한국의 정치 발전 방안서론한국의 정치는 1910년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치고 이에 대항하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성립되면서 우리 나라 최초의 정부 형태로써 현재의 정치 형태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우리 나라의 정치가 이렇게 순탄하게만 발전되고 성장한 것은 아니다.1945년 일제에서 독립이 되면서 미국이나 소련의 신탁통치를 겪었으며 이는 6.25전쟁의 원인중 하나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1948년 남한의 경우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여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장기집권을 추구하고 독재 정치를 강화하기 위해 3?15부정선거를 자행함으로써 이를 규탄하는 4?19혁명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이승만 자유당 정권은 붕괴됐다. 이 4?19혁명은 학생, 시민이 주축으로 한 민주 혁명이었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오기를 기대하였으나 5?16군사 쿠테타로 인해 이러한 기대는 무산되고 박정희 정권시대가 도래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발전을 내세우며 국민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무시하는 독재 정권을 관철하고 결국 유신체제까지 선포하였다. 이에 반발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시위는 계속되었고, 결구 10?26사태로 인해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면서 이정권은 막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사회가 혼란한 가운데 전두환이 12?12 사태를 일으키면서 군권과 정치적 실권 또한 장악하면서 전두환 시대가 막을 열었지만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과 인권 문제, 각종 부정과 비리로 국민의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두환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강압적 통제에 반대하는 국민적 저항이 전국적으로 일어나 마침내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발전하면서 전두환의 군사정권시대도 막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앞에서 말한 정권들의 경우는 독재정치와 군사정치로 인해 우리 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퇴보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 나라 국민의 민주적 역량은 성장하였으며, 민주화에 대한구당이 중앙당의 부속물로 전락해 버리는 현상, 즉 지구당에 대한 중앙당의 과도한 권력집중 역시 정당의 비민주성을 부추기는 원인이라 할 수 있다.정당은 이념과 노선을 같이하는 일군의 정치인들이 집권 혹은 권력장악을 목표로 결성된 정치적으로서, 현대사회 최고의 정치조직으로 평가된다. 정당은 권력을 추구하는 사적인 정치결사에 불과한 조직이지만, 그것이 대상으로 하는 권력의 공적 속성으로 인해 공공성을 보장받는 이중적인 성격의 특수한 정치조직이다. 정당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특정 국가이론에서는 정당이 헌법에 보장된 특수한 국가기구로 평가받기도 한다. 정당의 이러한 공적 성격 때문에 정당은 사적결사임에도 불구하고 정당법과 정치 자금법, 선거법 등 관련된 정치관계법에 의해 그 결성과 활동이 보장되고 보호받는 법정기구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당이 정부수립 이후 한국현대정치사 50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스스로의 힘으로 권력을 창출하지 못한 권력불임(權力不姙)의 정치결사체라는 점이 정당 문제를 재론케하는 일차적인 배경이다. 50년대의 자유당, 60-70년대의 민주공화당, 80년대의 민주정의당, 90년대의 민주자유당, 그리고 그 후신인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등 역대 집권여당은 모두 권력에 의해 위로부터 만들어진 정치적 피조물일 뿐 결코 스스로 정치권력을 창출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정당이 권력 및 권력창출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정당은 피동적인 위치에 머물렀으며 정권과 함께 운명을 같이했다. 게다가 독자적인 권력창출은 고사하고 한국현대정당사 50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공적?시민적 역할을 자생적으로 수행하지 못한 것도 한국 정당의 현주소이다. 정당의 발생과정에서 시민사회를 배제하고 식민지 지배의 유산인 친일세력이 창당과정을 주도했으며, 60년대 이후에는 군사쿠데타를 성공시킨 군부세력이 정치를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초기에 친일세력의 정치적 수단이었던 정당이 군부의 정치적 개입의 도구로 전락함으로써 반민주적이고 반시민적인 정치결사체의 성격을 강화시켰로 귀결되었다. 따라서 이 헌법에 반영된 권력구조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국내의 정치지형을 반영한 창조적인 작품이지만,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세력간 야합의 산물로서 기형적인 것이다.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한민족 최초의 민주공화국 헌법이 시행 초기부터 난관에 봉착했다는 사실이다. 민주공화국의 권력은 봉건왕조적 관습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자의적으로 남용되었고, 이 과정에서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의사는 철저하게 무시되거나 우의마의(牛意馬意)식으로 조작되었으며, 정치적 절차는 정략적으로 활용되거나 악용되었을 뿐이다. 이승만대통령 하에서 부패한 독재정권의 권력행사 방식을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것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52년과 54년에 있었던 발췌개헌과 사사오입개헌으로서, 그것은 민주주의라는 껍데기로 가장한 오만한 1인 권력자와 이에 기생하는 부패한 권력집단의 권력강화와 권력연장을 위한 형식이었을 뿐이다. 권력의 오만함은 대통령선거에서 경합했다는 이유만으로 야당의 당수를 간첩으로 몰아 처형한 58년의 ‘진보당사건’과 그나마 민주적 제도와 절차마저도 송두리째 파괴한 60년 3?15부정선거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하는 후안무치로까지 나아갔다.4월혁명, 서울의 봄과 광주민중항쟁, 6월 항쟁은 가상의 민주공화국에서 신음하던 ‘신민’들이 진정한 주인인 ‘국민’으로 거듭나고자 했던 처절한 시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결국은 61년 5?16쿠데타와 80년 5?17쿠데타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민주공화국에서 군사쿠데타는 무력을 장악한 병졸들이 국민의 민주적 결정을 폭력적으로 짓밟은 반역행위라 할 것이다. 61년의 5?16쿠데타뿐만 아니라 72년의 유신쿠데타와 79년의 12?12쿠데타 역시 마찬가지이다.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집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는 이미 정치가 아니며, 그것은 권력의 왕조적 1인 독점과 폭력에 의존하는 봉건적 왕조독재로 나타났다. 그 왕조체제의 대표자는 군부였다.결국 우리 나라 같은 경우는 가상의 민주 국가 였으며 그 실상은 왕조우리 나라의 또 다른 측면은 부정부패에 관한 것이다.대한민국은 30년 이상 군부가 권력을 독점한 군부공화국이었다. 대한민국은 출신지역이 인사고과의 결정인자가 되고 지역적 고려사항이 모든 정책결정의 핵심이 되는 지역주의공화국이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이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재벌공화국이다. 공무원이 국민 위에 상전으로 군림하는 관료공화국이다. 그 속에서 나라는 썩을 대로 썩었고 문드러질 대로 문드러졌다. 결국 이 모든 종류의 공화국들의 집합체, 대한민국은 ‘총체적 부패공화국’(ROTC = Republic of Total Corruption)이라고 할수 있다.우리 나라에서 부패하지 않은 곳이 있을까? 정권의 부패는 전두환과 노태우의 수천억대의 불법적인 비자금 조성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전두환정권과 노태우정권 하에서의 부패가 대통령을 지낸 두 사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의 기자회견으로 밝혀진 정치자금의 상납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정권과는 다른 차원에서 정치권의 부패 역시 일일이 거론조차 하기 어렵다. 4월혁명 이후 정권교체 때마다 정치권의 부패상황은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승만정권 하에서, 유신체제 하에서 저질러진 부패의 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부패의 최고형태가 정경유착이다. 구조화된 정경유착의 관계 하에서 부패한 공무원과 부도덕한 업자들 간의 검은 거래, 죽음의 거래가 생성된다.언론의 부패는 오랫동안 기자들에게 제공되는 촌지문제로 상징되었다.국가의 백년대계를 책임지는 교육계의 부패상은 역설적으로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여기에는 조직적인 입시부정, 교원임용비리, 학교예산의 유용과 횡령, 학생들에 대한 용공조작, 탈세, 부동산투기 등 학교운영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비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모든 비리는 부패한 교육관료와의 유착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했던 국제투명성협회(TI)의 피터 룩 이사는 한국의 모든 분야가 부패했지만 특히 교육분야의 부패가 심각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부패한 사회는 붕괴된 사회이다.작된다. 주인된 자세야말로 가장 초보적이고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주인의식을 갖추었다면, 다음으로는 국가가 주인인 국민의 권리를 철저하게 짓밟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국민을 대표한다는 우리 정치의 현주소가 국민을 망치는 ‘개판 5분 전’의 정치라는 사실 또한 뼈저리게 자각해야 한다. 정치를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나라가 망한다는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때문에 모든 국민은 언제나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야 한다. 국민은 진정한 의미에서 탁월한 정치분석가, 예리한 정치비판가, 적극적인 정치실천가가 되어야 한다.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주인인 국민의 주권을 지키려는 국민 스스로의 노력 없이는 결코 주인 된 지위를 확보할 수도, 유지할 수도 없다. 결론만을 다시 강조하자. 우리 사회는 붕괴된 사회이다. 붕괴된 사회는 붕괴된 정치에서 기인한다. 현실의 정치는 더 이상 국민의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일부 정치모리배의 정치일 뿐이다. 이런 관계로 국민을 대표하지 않는 오만한 정치를 파기해야 한다. 국민을 배반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국가를 정치적으로 전복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붕괴된 정치, 붕괴된 사회를 재건하는 유일한 원천이다.지금까지 국가와 정당에 관련하여 그에 대한 문제점과 그 해결 방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다.2. 국민의 단합력- 지역감정그렇다면 또 다른 측면인 국민의 단합력에 대해서 알아보자,이 국민의 단합력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한 국가 안에서의 국민들끼리의 결속력과 그에 따른 순환관계하고 정의 내릴 수 있다.이러한 국민의 단합력에 대해 가장 쉽게 설명 할 수 있는 것이 우리 나라의 가장 큰 문제점인 지역감정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1). 지역 감정의 정의이 지역감정이란 사회학에서 다루는 용어 가운데에는 '갈등'이라는 용어가 있다. '갈등'이란 '개인 또는 집단간에 서로의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서 상대방을 제거·파괴하려는 상태' 라고 규정되어진다. 이러한 '갈등'은 어느 사회나 어느 집단 간에도 존재하는러났다.
    인문/어학| 2004.06.17| 12페이지| 1,500원| 조회(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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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노동의 종말 평가B괜찮아요
    R E P O R T노동의 종말을 읽고..제레미 리프킨 / 이영호이 책을 처음 읽을 땐 노동이란 단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이 책을 읽고 현재 제가 학교를 다니는 목적도 나아가 제가 졸업을 하고 전문 영역, 아님 노동 직으로 직업을 가지고 제가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기술의 발달로 삶은 편해졌을지 몰라도 인간의 영역인 노동을 기계가 대체 함으로 일어나는 문제점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지금 사회 역시 서로 뛰어나려고 경쟁하는데, 앞으로는 더욱더 경쟁이 치열하거나 능력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들 것 같고,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더 이상 발전하는 기술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을 것 같다.기계는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경제를 움직이게 하는 투자의 구현 체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경우 기계 한 대가 도입되면 노동자 한 명 때로는 여러 명의 노동자들이 축출된다. 경제학자들은 기계가 몇 명의 노동자들을 대체하지마 결국에는 이들을 흡수하고, 생산성을 급격하게 증가시키며, 그 결과 국부가 증대된다고 항상 주장해 왔다.당시 유명한 스위스의 비평가였던 시스몽디는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독후감/창작| 2004.06.17| 5페이지| 1,500원| 조회(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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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Rockefeller)John D. Rockefeller(1839∼1937)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의 정체성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 다만 미국의 부호였다는 것 이외에는 말이다.록펠러는 소년 시절엔 몸이 튼튼했기 때문에 장차 훌륭한 장군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업가가 되어 43세에 미국에서 가장 큰 회사의 사장이 되었고, 그 후 10여년이 지나서는 세계최대의 부호가 되었다. 그가 세계적인 부호가 되기까지는 쉬는 날도 이웃도 친구도 없는 오직 성공과 소유욕에 대한 강한 집념만 갖고 있었다. 그야말로 돈돈 돈밖에 몰랐다. 그러나 알로피셔(Alopecia)라는 병에 걸려 차츰차츰 몸은 쇠약해지기 시작했고, 몸에는 피부병이 떠나지 않아 고통을 당하기도 했으며, 머리까지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안과 공포 때문에 경호원을 둬 밤낮으로 자신을 경호토록 했으며, 심한 우울증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더욱 불행한 일은 세계최대의 부호인 그가 병으로 인해 식사로는 비스켓 몇 조각과 물 한모금 밖에 먹을 수가 없었고, 의사들은 잘하면 1년 아니면 몇 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진단한 것이다. 그는 순간 이 많은 재산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허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새 괴로워하다가 한 순간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 되신다"라고 소리쳤다.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마침내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돌아온 그의 人生은 그 다음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신앙생활 얼마 되지 않아 뉴욕의 명소로서 아예 관광코스로 선정되어 있는 그 유명한 'Riverside Church'를 지어 하나님께 봉헌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그 유명한 'Rockefeller Foundation'(록펠러 재단)을 세우게 된 것도 바로 이 때이다. 점차 그의 삶은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생활로 변했다.1년 혹은 몇 년 안에 생을 끝낼 것이라는 의사들의 선고는 사라지고, 점점 식욕도 좋아지고, 잠도 잘 오게 되었으며, 모든 불안은 사라졌다. 결국 그는 98세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① 미국의 석유시장을 독점너무도 유명한 록펠러는 재벌, 대부호, 억만장자의 대명사로, 또는 그 이름 앞에 '세계를 움직이는' 수식어가 붙은 지 오래된 거대가족재벌의 대표격 재벌이다.뉴욕의 맨해튼 중심부에 있는 록펠러 플라자에서는 매년 크리스마스 츄리, 여름카페, 겨울 스케이팅 그리고 콘서트 등 여러 가지 이벤트로 뉴욕의 유명관광명소가 돼 있다. 그 주위에 록펠러 센터라고 불리는 고층 빌딩이 있고, 그 곳에는 본사, NBC방송국, 라디오 도시, 뮤직홀(극장)등이 있는데 그야말로 록펠러 아성이라 할 수 있다.록펠러 1세는 1863년경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석유경제판매업을 시작, 1870년에는 스탠더드오일사를 오하이오에 창설하여 미국 석유시장의 약 90%를 점유한다. 그 후 해외로 진출, 당시 유럽금융계에서 높은 역할을 하고 있던 로스찰드가의 영향을 받고 있는 쉘(현재의 로얄·닷지·쉘사)와 각지에서 충돌하게 되었다.그 후 1990년대의 세계 석유파동 이전까지에는 스탠더드·오일사 직계의 엑손사, 모빌사, 로얄닷지, 쉘사 등 7자매라고 불린 7개의 매이저(국제석유자본)가 전 세계 석유시장(사회주의권 제외)의 65%를 점유하여 원유가격의 결정권을 장악한다.그러나 1970년대에는 OPEC(석유수출기구)가 대두하여 석유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로 격돌, 메이저의 힘은 서서히 하강하고, 1999년 11월에는 엑손사와 모빌사가 합병, 엑손·모빌사로 되고, 2000년에는 스텐더드·오일사의 계파인 쉐프론사가 택사코사를 매수, 쉐프론·택사코사로 합병한다. 그리하여 현재는 5대 슈퍼 메이저 체제로 바뀌고 있는데 그 중 2개사가 스탠더드·오일사계이다②은행합병을 통해 모건재벌과 연계1930 년 록펠러 2세는 당시 무역금융의 특색은행인 체스은행을 자신이 대주주였던 은행(트라스트)과 합병, 체스·맨해튼 은행으로 발전시켰는데, 에너지 은행이라고도 불렸다. 이 은행은 1996년에 케미컬 은행과 합병, 또한 IT화와 세계화 속에 2000년 9월에는 명문투자은행인 JP모건 은행과도 합병, JP모건·체스은행이 된다.한편 JP모건은 1879년이래 차례로 주요 철도회사를 지배하고, 1895년에 JP모건은행을 설립, US스틸사, GE사, AT엔 T사 등 유력회사에 대한 자금 공급원이 되였다.이렇게 금융과 주요산업계를 지배하게 되고, 상기JP모건·체스은행 합병으로 록펠러와 모건의 양 가 즉, 두 개의 거대 재벌 결합이 이루어진다.
    인문/어학| 2004.06.17| 2페이지| 1,500원| 조회(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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