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명공식명칭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The Socialist Republic of Vietnam). 간단히 베트남(Vietnam)이라고도 한다.2. 위치베트남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쪽에 가늘고 긴 S자형으로 동경 103도 27분에서 109도 27분, 북위 8도 30분에서 23도 24분에 위치하고있다.3. 기후전체적으로 아열대 기후를 나타낸다. 그러나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남북의 기후 차이가 심하며, 높은 쯔엉산맥을 주축으로 하고 있어 고도에 따른 기후 차이도 심하다. 일반적으로 베트남의 기후는 아시아 몬순지대에 속하여 우기와 건기가 번갈아 나타나고 있다. 지역에 따라 습기가 많고, 서늘한 산지기후, 약간 건조한 적도기후 등이 나타난다. 북부산지는 냉량기후, 북부에서 중부에 걸친 지역은 온습한 열대기후, 남부저지대는 열대 문순 기후를 나타내고 있다.4. 지형인도차이나 반도 동쪽에 위치한 가늘고 긴 S자형의 나라로 북쪽으로는 중국, 서북으로는 라오스, 서남쪽은 아열대 기후, 북부는 미묘한 사계절의 변화가 있지만 남부는 열대온순 기후로 우기와 건기의 구분이 있으며, 연평균 기온이 25도나 되는 더운 곳이다. 국토의 3/4은 산악, 구릉, 고원지대로 북쪽은 높고 남쪽은 낮아서 북고 남저의 지세를 이루고 있다.5. 인구유사이래 수많은 전쟁과 기아, 이민 그리고 강력한 산아제한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이다. 96년 기준으로 인구는7,439만 명이고 인구 증가율은 1.71%이다. 현재 도시인구는 베트남 전체인구의 20%정도를 차지하고 농촌인구가 80%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 곡창지대인 북부의 홍하, 남부의 메콩델타 지역에 약 3천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6. 민족베트남은 무려 54개의 다른 인종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다민족 국가로 이중 베트족이 84.3%정도의 인구 비율을 차지하며, 기타 소수민족으로는 따이족 2.8%, 타이족2.2%, 능족 1.8%를 차지하고 있으며 기타로는 화교1.3%, 메콩강 유역이 캄보디아의의 나라이며 인구의 70%가 농업에 종사한다. 때문에 세계적인 쌀 수출국으로 유명하다. 쌀을 이용한 빈대떡, 쌀과자 등도 많지만 포(Pho)라고 하는 쌀국수를 많이 먹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침을 집에서 해먹지 않고 매식을 하는데 직장인, 학생 , 남녀노소 가림없이 포를 사먹는다.베트남의 음식 중 또 하나는 쯩빗이라고 불리는 삶은 계란이다. 이 음식은 일반 삶은 계란이 아니라 닭이나 오리알이 품어진 후 보름가량 지나면 흰자위는 없어지고 병아리 모양이 어느정도 형성되는데 이것을 쪄 먹는 것이다. 물렁뼈가 씹히고 털도 조금 씹히고 핏덩이도 나오지만 이곳사람들에겐 영양식으로 이용되고 있다.10. 통화단위는 DONG 이며, 100, 200, 500, 1000, 2000, 5000, 10000, 20000, 50000 짜리 지폐가 있으며 동전은 없다. 5천동 지폐와 2만동 지폐는 색이나 무늬가 아주 비슷하기 때문에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USD 1의 환율은 13,880 동이다.11. 교통수단베트남 사람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필수품으로 시내에서 이동할 때 주로 사용한다. 시내버스 등의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으며, 시내버스가 운행되나 버스편이 적고 현지인들도 잘 이용하지 않는다. 씨클로(Cyclo)는 베트남만이 가진 독특한 교통 수단이다. 자전거를 개조하여 앞면에 좌석을 설치한 것으로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12. 주요 도시호치민은 구사이공으로 베트남의 경제중심지이며,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이며 정치, 문화의 중심지이다. 그 밖의 북부의 하이퐁, 중부의 후에, 다낭, 나트랑, 달랏, 남부의 미토, 붕타우, 칸토등을 들 수 있다.13. 아오자이베트남의 전통의상으로 우리 말로는 긴옷이란 뜻이다. 공산주의 통제 이후 아오자이는 사치스런 옷이라하여 입는 것을 금지시켰으나 도이모이 후 지금은 많은 여성들이 아오자이를 입는다. 주로 흰색과 하늘색인데 속살이 비치는 하늘하늘한 천으로 만들어져 매우 육감적이다. 아오자이의 천 한쪽을 남자에게 깔고 앉게 하면 사랑의순에서 2월 초순에 나라를 얻어 기뻐하는 전통적인 농민의 봄 축제이다. 일가족이 만나서 선조를 기리고 여러 가지 전통 요리로 식탁을 장식한다. 베트남 곳곳에서는 이 시기에 많은 행사가 개최되어 폭죽을 올리기도 하고 절이나 친구가 있는 곳을 찾기도 한다.설 전날 집집마다 세찬(THIT KHO TRUNG: 돼지고기와 오리알을 불에 구운 음식, Banh chung, Banh day:한국의 떡과 비슷한 것, cac loai nut:여러가지 잼 종류, DUa hau:수박)을 장만한다.설전에 사람들은 집안 청소를 하고, 새해 맞을 준비를 하면서 묵은해를 보내게 되는데, 마음은 이미 설날의 기쁨으로 설레게 된다.섣달 그믐날 밤에 사람들은 밤새 잠을 자지 않으려고 애쓰며, 자정이 될 때까지 폭죽을 계속 시끄럽게 터뜨리던 풍습은 낭비가 심하다고 최근에 정부에서 금지시켰다.그 대신에 가족이 모두 집안에 둘러앉아 자정을 기다리며 함께 꽃피는 얘기를 많이 한다.자정이 넘어 사람들은 새해 복을 많이 받기 위해, 절에 Hai loc (복의 새싹을 딴다는 뜻)을 빌러간다.설날 아침에 아이들은 설빔으로 마련 해 준 새옷을 차려입고, 부모나 친척에게 세배를 드릴 때 세뱃돈(tien li xi)을 많이 받게 된다.보통 어른들은 집에서 친한 친구들과 같이 묵은해의 슬픈일과 기쁜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술이나 차를 마신다.젊은 남녀들은 친구 집에 놀러오기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 댁에 세배를 드리러 방문하기도 한다.베트남인들은 설날 아침을 아주 중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이때 나쁜 일이 생긴다면 일년간 매우 심한 어려움과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복을 받기 위해, 높은 인품이 있는 분이나 아주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분을 xong dat (새해 첫날 맨 처음 방문하는 것)을 하기 위해 초대한다.설날에는 집집마다 반드시 수박을 준비한다. 수박을 잘랐을 때, 빨갛게 익었으면 다복하다.음력 1월 4일에는 Dua ong ba라고 음식을 다 먹는 날이다. 또 베트남사람들은 3수, 5수와 같은어린이들이 여러 편으로 나뉘어 정답게 노래를 부르면서 문답하는 놀이도 한다.6) 중추절음력 8월 15일(한국의 추석)에 열리는 어린이 축제이다.사람들은 한마 거리에 장난감들을 사러 몰려온다. 거리에서는 사자춤을 추기도 하고 '등'이나 '큰북'을 가지고 걷는 어린이들로 붐빈다.이날은 "BANH TRUNG THU" 라는 과자를 먹는다.7) 돈키 마을의 폭죽 축제음력 1월 4일에 하노이에서 북쪽으로 16Km 떨어진 작은 마을 돈키에서 열리는 축제이다. 폭죽 경기로 길이 15.8m, 직경 1.2m나 되는 거대한 폭죽도 등장한다. 크기와 장식, 파열음이 승부를 결정짓는 요소 들이다.대회가 끝난 후에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리고 희망찬 새해를 맞는다.8) 돈다 축제1788년, 중국의 청나라 군사가 탄롱(하노이) 시를 점령하기 위해서 20만 명의 병사를 파병했다. 쿠안춘 왕은 농민을 이끌어 침입자를 격퇴하고서는 음력 1월 5일에 승리를 거두었다. 그래서 매년 이날이면 하노이 중심지에서 5Km 지점의 "돈다'에서 기념 축제가 열려 레슬링 시합을 한다.18. 바람의 딸 한비야가 본 베트남중국 국경에서 중국 돈과 바꾼 베트남 돈마다 호치민 초상화가 그려져 있응 걸 보는 순간 내가 드디어 베트남에 가는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국경을 넘자마자 보이는 대나무로 만든 삼각형 모자와 어깨에 긴 막대기를 걸고 막대기 양끝에 달린 쟁반에 물건을 얹어 지고 가는 사람들이 눈길을 끈다. 중국의 일반적인 대중교통 수단이 자전거라면 여기는 오토바이인 것 같다.-중략-첫 행선지는 사파다. 도착하는 날 날씨가 아주 맑아서 언제나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지금이 우기인데다 지형적인 영향으로 그렇게 갠 날은 아주 드물고 거의 흐리거나 비가 온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다음날부터는 1,2미터 앞도 볼 수 없었다.-중략-시골 인심, 특히 산에 사는 사람들의 인심은 어디서나 훈훈하고 넉넉하다, 연초록색의 부드러운 물결을 이루는 계단식 밭에서 일하던 아주머니와 아이들은 지나가는 살고 있는 이 아줌마도 베트남 전쟁의 막대한 피해자다. 그녀는 고위관리를 지낸 부유하고 힘있는 집안의 자제였는데 영어를 잘해서 미국 대사관에 취직해 일하다가 1969년 영어, 프랑스어 통역으로 와 있던 지금의 한국인 남편을 만났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이공이 함락될 때까지 세 아이를 낳고 잘 살았는데 함락 직전 남편은 사이공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남아 있다가는 공산당에 잡혀서 처형될 판이었다.사이공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그녀와 세 아이는 산골마을로 추방되었다. 부잣집에다 티우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집안의 딸로서 전쟁중 미대사관에서 일했고, 게다가 그들에게는 적이었던 한국인과 결혼까지 해서 아이들을 낳아 최고의 악질분자였던 것이다.굶주림과 비참의 연속가운데 5년간 13번이나 보트를 타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중략-우리들이 우리의 젊은이들을 바쳐가면서 베트남 전쟁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미국과 혈맹의 약속을 지켰다는 신의와 그것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다는 전쟁특수 몇 억 달러가 전부가 아니던가. 그리고 피눈 물보다 진하다면서도 너무나 야비하고 치사하게 버리고 온, 3만명정도로 추산되는 한국인 2세 라이 따이한. 정말로 한국 아버지가 다시 오리라고 기대하며 질곡의 사람을 살아온 불행한 인생들을 남겨놓았으니 이제 그 역사의 그들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베트남 경제@@@ 도이모이 (쇄신)베트남은 1975년 통일 이후 국명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개칭했다. 그후 1978년 엄청난 홍수가 베트남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 결과 농협농장에서 나오는 곡물로는 당장 식구들의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개인적인 활동으로 가정을 부양하려는 노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사유재산의 욕구 급격히 부활되고 폐쇄경제의 한계를 느낀 공산당은 1986년 12월 제6차 전당대회에서 도이모이 정책을 단행하게 된다. 시작은 81년부터이며 본격화된 것은 88년, 전성기는 90년도라고 할 수다.
이 책은 한겨레신문사의 기자가 아시아, 그 중에서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의 사회·경제·문화 등을 살펴보면서 발전의 잠재력이 크게 있는 이들 세나라와 어떻게 친해질 것인가의 경제교류에 대한 점을 살펴보고 있다.이 책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제 1부 베트남과 사귀는 법, 제 2부 인도네시아와 사귀는 법, 제 3부 미얀마와 사귀는 법 으로 이루어져 있다.줄거리제 1부 베트남과 사귀는 법베트남은 1986년 도이모이(개혁과 개방) 선언 이후 빠른 속도의 고도성장을 하고 있는 나라다. 아직까지도 우리 나라는 따이한이라는 군사적 이미지가 약간 남아있긴 하나 최근에는 남쥬띤, 한궉이라는 우리 식 발음(남조선, 한국)으로 불리 우고 있다.베트남에게 우리 나라는 4위의 대규모 투자국이지만 한국기업들은 노사분규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현지인을 존중할 줄 모르는 한국인 관리자의 태도, 노동법을 지키지 않으며 노조 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한국 기업들, 심지어는 노동자를 구타하며 휴가원을 아예 받아들이지도 않는 등 연일 한국기업의 문제점들이 속속들이 파헤쳐지고 있다.하노이 직업학교는 한국국제협력단이 대베트남 무상원조의 일환으로 지원하는 직업훈련원 중의 한 곳으로 분명 베트남을 돕기 위해 세워졌으나 그 교육환경은 매우 미약하다. 또한 베트남의 명문대 하노이 대학에는 한국어과가 개설되어 있지만 한국의 미흡한 보조로 인해 학과 교재는 복사해서 보고 있는 실정이며 한국의 문화·역사 소개에 대한 자료도 없으며, 사전 또한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이는 일본 NGO(비정부단체)의 활발한 협력활동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제 2부 인도네시아와 사귀는 법인도네시아는 ASEAN(동남아국가연합)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핵심국이며 세계인구 4위의 인구 대국이다.우리 나라는 천연가스 대부분을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는 우리 나라의 해외 투자 액수 규모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나라로 발전 잠재력이 풍부하지만 빈부격차가 극심해 문제점으로 대두하고 있다.인도네시아 역시 한국 기업들이 진출해 노사분규의 문제를 겪고 있다.물론 모든 한국 기업이 노사분규의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선경끄리스는 단순히 해외에 나와 돈만 벌어 가는 외국기업이란 이미지를 벗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한국 기업의 대부분은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토막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하는 데 반해 그들은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한다. 또한 이익금은 사회에 환원하며, 외국에 나온 이상 그 기업은 그 나라의 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때문에 한국 기업의 이미지 관리에 큰 역할을 해 오고 있으며 외국인 회사로서 크게 성공한 예로 들 수 있다.제 3부 미얀마와 사귀는 법미얀마는 우리에게 버마, 아라비아 숫자를 쓰지 않는 나라, 시간이 멈춘 땅, 불교와 파고다의 나라로 더욱 잘 알려진 나라이다.미얀마는 1960년대 이전가지 동남아에서는 꽤 잘 사는 편에 속한 나라였지만 지금은 유엔이 정한 세계 최빈국중의 하나로 전락했다. 그 몰락 이유는 1962년 네윈장군의 군사쿠데타 이후 표방한 버마 사회주의 가 실패했기 때문이다.국제사회로부터 스스로 고립시킨 채 민간기업의 국유화를 토대로 무리하게 추진한 자력갱생주의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26년간의 군사통치를 거치면서 관료주의의 비효율성과 무능·부패가 극에 달하고 있다.아웅산 수지의 민주화 운동 때문에 우리에게 더 친숙해진 나라이기도 하다.느낀점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얼굴이 화끈거렸던 점은 단연 외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의 횡포에 대한 것이었다.이건 어느 가수의 노래에도 있는 노랫말인데 약자 앞에서는 강하고, 강자 앞에서는 알아서 기는 현실이 한국의 모습이라는 것이 슬펐다. 이것은 비단 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만이 그러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돈 벌러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발생하는 이런 횡포를 우리는 TV에서 종종 볼 수 있다.한국인 간부들이 지시할 때는 발로 지시를 내리며 이슬람교도들에겐 금요기도를 허용하지 않으며 시간을 준다 해도 아주 짧게 주며, 시간을 초과할 경우 기도하는 사람의 엉덩이를 걷어찬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한 터번을 쓰지 못하게 하며, 생리휴가 불허에 개 라는 욕설을 수시로 퍼붓고.... 등등이것은 세계화로 나아가기 위한 선진국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세계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나라(선진국이건 개도국이건 상관없이)에 대한 존중의식을 싹틔우며, 그 나라의 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면을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