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란 말은 어떤 이에겐 이룰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삶의 의욕을 얻고, 또 어떤 이에겐 기회를 놓쳐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모든 시대를 초월하여 꿈을 이루고 자기 인생에 만족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노력을 해야 하는가? 책의 저자는 꿈을 위해 일하라고 충고한다. 일을 돈 버는 수단이나 자아의 정체성 확립이라는 개념을 떠나 그저 일로써 꿈을 실현하기 위한 일련의 수단으로 보라는 것이다.최근 몇 년간의 실업률 통계를 보면 그 수치는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 같은 통계는 현 세대의 현실 안주와 일에 대한 안이한 태도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또한 실업률의 가장 큰 또 하나의 이유는 직업과 자신의 능력과의 미스매치가 아닐까 싶다.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허덕이는데 반해 아이러니하게도 대기업, 공기업의 경쟁률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실업률은 높아만 간다. 얼마 전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직업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대한민국이 최하위권을 기록한 적이 있다. 개인의 취향, 전공, 능력, 흥미 등을 고려치 않은 무분별한 직장 선택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취업을 앞둔 나에게 직업 선택 전.후의 전반부에 걸쳐 다양한 측면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었다.우선 우리가 직업 선택에 있어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는 먼 미래보다는 눈앞의 이익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적성과는 무관하게 고연봉만을 쫒아 직업을 선택하다 보니 자신을 위한 직업이 아닌 직업을 위해 자신이 존재한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직업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는 평생 직업으로서 은퇴하는 그날까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직업 선택이 중요하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평생 직업이라하여 안정된 공무원을 목표로 하는 자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 공사의 취업이 힘들어지자 연봉은 적어도 평생 안정된 보수를 보장 받을 수 있는 공무원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물론 공무원이란 직업 특성상 안정되고 일반 기업에 비해 업무나 시간이 여유로울 수 있지만 자신의 적성을 충분히 고려한 선택이 필요할 것이다. 흑자는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적성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어떤 일에 대해 적응 능력이 뛰어나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적성인 것이다. 나조차도 나의 적성에 의문이 들어 얼마전 학교에서 실시한 인. 적성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처음 의도는 최근 추세가 기업들이 인. 적성 검사를 보기 때문에 취업을 앞두고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예전 고등학교 시절에 받은적이 있어 부담없이 임했지만 그때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좀 더 치밀하다고 해야할까. 짧은 시간에 비해 문항수가 많아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비록 만족할 만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한건 나의 적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자신의 적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면 이런 검사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적성을 찾고 직장을 선택한다면 꿈을 이루기 위해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본다. 이제 남은 것은 직장에서의 성공일 것이다. 그 조직 문화에 빨리 적응하고 모든 업무를 습득하여 기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긍정적 사고를 갖고 도전 의시과 창조적 마인드를 갖고 주체적으로 일을 한다면 패러다임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적응하여 경쟁자들에게 있어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꾸준히 자기계발에 힘씀으로 궁극적 목표인 꿈을 성취해야 할 것이다. 물론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직장의 선택이 필수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수단으로써 꿈을 이루기 수월하게 해줄뿐이다. 분명한건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아닌가 싶다.
피그말리온 효과에 대한 고찰목차- 들어가는 글 -1부 자기충족 예언1. 일상 생활2. 의사와 환자3. 행동과학4. 지적 과제 수행과 학습2부 교사의 기대1. 불리한 여건 속의 아이들2. 오크 초등학교 실험3. 갈라테이아의 놀라운 아이들4. 교사들의 평가5. 지적 능력의 만개과정3부 피그말리온 효과의 의미1. 실험 결과2. 방법론3. 결론- 마치는 글 -- 들어가는 글 -누군가에게 기대를 해본 적이 있는지 또는 누군가로부터 기대를 받은 적이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것들을 마음속으로 여기거나 말과 행동으로 표현 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 기대가 자신에게 혹은 상대방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긍정적인 기대를 받거나 주었을 때 그러한 기대로 인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았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면 두 번의 생각할 여지도 없이 맞는 말이라고 맞장구를 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기대의 힘이다. 이렇게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피그말리온의 효과라 한다. 피그말리온의 효과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이름에서 유래한 심리학 용어이다. 당대의 조각 예술가였던 피그말리온은 대리석으로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해 내는데 그는 여인상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마침내 상사병에 들어 자리에 드러눕게 되고 이 애처로움을 보다 못한 여신 아프로디테는 그의 사랑에 감동하여 여인상에게 생명을 준다. 드디어 그녀는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고 피그말리온도 그 모습을 보고 병이 완전히 치유 된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사랑을 나누며 살아간다. 이런 신화를 빗대어 후대 사람들은 피그말리온 효과를 자기가 예언하는 대로, 자기가 바라는 것이 실제로 현실에서 충족된다는 말로 쓰고 있다. 위의 질문과 답변에 대하여 좀 더 정확하고 자세히 알아보자. 그 방법으로 기존의 증거와 새로운 연구 결과의 증거를 담은 책 한 권을 소개한다. 피그말리온의 효과를 본인 스스로에게가능한 관계의 유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은행이 파산에 이르기까지 일어난 관계를 보면 예측과 결과가 서로 일치하는 관계일 때, 예측이 예전의 연관된 사건으로 인해 이루어진 경우라 볼 수 있다. 즉, 예전의 비슷한 사건을 경험하거나 관찰한 바에 따라 앞으로의 결과를 전망한 것일 뿐이다. 예측과 실제사이의 관계 유형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다시 일곱 가지 경우로 분류할 수 있다. 처음 유형1은 예측과 실제 결과 사이에 관계가 없음, 유형2는 예측과 실제 결과 사이에 관계가 있음으로 나눈다. 그런 다음 유형1에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 경우(1-1)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1-2) 그리고 유형2에서 예측과 결과가 서로 반대의 관계일 때 예측 때문이 아닌 경우(2-3)와 예측 때문인 경우(2-4) 그리고 예측과 결과가 서로 일치하는 관계일 때 우연일 경우(2-5)와 예측이 예전의 연관된 사건으로 인해 이루어진 경우(2-6) 그리고 예측 때문이 아닌 경우와 예측 때문일 경우(2-7) 총 일곱 가지가 된다.유형2에 있는 항목들은 예측과 이후의 결과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그 관계는 예측과 결과가 합치되는 것일 수도 잇고 상반되는 것일 수도 있으며 또 그 관계가 예측 자체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경우 2-3과 2-4는 반자기실현적 예측의 경우로 머튼은 이를 ‘자멸적 예측’l라 명명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2-5에서 2-7까지도 자기충족 예언이 항시 자기실현적인 것은 아니다.그럼 자기충족 예언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예측이 실현되게 하는 심리적 동인을 알아보자. 먼저, 칼스미스와 아론슨의 실험을 살펴보자. 실험 대상자에게 쓴 맛이 나는 것을 주겠다고 하고 쓴 맛 대신 단맛이 나는 것을 주면 피실험자는 단맛을 덜 느끼게 된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또 다른 연구 결과를 보면, 하비와 클랩의 연구를 살펴 볼 수 있다. 이들 또한 위의 연구 결과와 일치하는데 칭찬을 들을 것으로 기대하던 피실험자들은 좋지 않은 평을 있는 지식 가운데 상당 부분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특수한 의의를 찾아 볼 수 있다. 이렇게 실험은 가설이나 예측의 자기실현적 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연구 과제 가운데 한 부분이다.4. 지적 과제 수행과 학습지금까지 연구에서는 실험자의 가정이 피실험자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피실험자의 지적 수행과는 특별히 연관되지는 않았다. 기술된 실험에서 피실험자의 반응을 토대로 지적 능력과도 관련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 행동 뿐만 아니라 동물행동을 통해서도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번 4장의 서술 목적은 상대방의 지적 수행에 대한 예측이 그 사람의 지적 수행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2부 교사의 기대1. 불리한 여건 속의 아이들새 학년도가 시작되면 신입생이 되는 많은 어린이들은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로, 불확실성과 흥분, 또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이 혼재하여 혼란스러운 때이다. 교사들은 이러한 아이들에게 모습, 말투, 발음 등에 따라 다양한 잣대를 적용한다. 특히나 부유층, 중산층, 하층 계급의 아이들에 대한 예측은 교사들의 평가에 영향을 끼친다. 여러 보고서에 의하면 열악한 환경에 있는 어린이들은 중산층 어린이에 비해 IQ, 독해능력 등이 표준치 이하이며 또 마음가짐도 부정적일뿐더러 교사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불리한 여건의 어린이란 사회 경제적으로 하층민 집안 출신을 의미하며 이 출신 계급은 낮은 수입과 더불어 학교 문화와는 걸맞지 않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하층민의 낮은 학업 성취도는 고도로 교육받은 인재를 필요로 하는 현재의 시장경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미래의 소중한 자원이 낭비된다는 측면에서 우려하는 바가 크다. 칼의 연구 결과(1961)에 따르면 수입에 따라 고학년이 될수록 학업 성취도에서 차이를 드러낸다고 하였다. 또한 성취 동기 분야에서도 가정에서의 성취 훈련이 계급에 따라, 문화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다.불리한 여건 속의 아이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이론적 의 어린이를 무작위로 선발하고 교사들에게는 상위 20%라 알려주었다. 이제 지적 성장을 이룰 학생으로 선정된 어린이와 선정되지 않은 대조 집단 어린이 사이의 차이점은 오직 교사의 마음속에서만 존재했다.3. 갈라테이아의 놀라운 아이들이번 장에서 다룬 것은 교사가 괄목할 만한 지적 성장을 기대하는 학생이 그렇지 않은 대조 집단의 학생에 비해 1년 이내에 지적으로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여기에는 다음의 몇 가지 주요 변수가 존재한다.-연령 : 일반적인 통념도 그러하지만, 인격 발달 이론, 그중에서 특히 심리분석 이론, 발달심리학과 실험심리학의 연구 성과, 그리고 동물행동학의 연구 성과 등 여러 분야에서 일치되게 주장하는 것은, 연령이 유기체의 형성과 또 그 유기체가 외부의 영향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의 정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능력 : 교사의 긍정적 기대에서 바람직한 효과를 얻어내는 정도가 우열반에 따라 달라지는지에 대해서도 흥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능력에 따른 효과의 차이 문제에 대해서는 도움이 될 만한 문헌이 별로 많지 않다. 그래서 이 연구에서는 각 능력별 학급에 따라 기대 효과가 얼마만큼 차이를 보이는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성별 : 남자 아이가 사회적 영향에 더 감응도를 보이는지 여자 아이가 더 그러한지의 문제는 영향을 주는 사람이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오크 초등학교 경우 대부분의 교사가 여자 교사이기 때문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 여성일 때의 연구 결과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다.-소수 민족 : 이 연구에서 소수 민족이라 일컬어지는 아이들은 불리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말한다. 여기서는 긍정적인 기대 효과가 발생하는 경우, 그것이 소수 민족 아이들에게 더 큰 효과가 나는지 그 반대인지의 문제이다.지적인 성장을 확인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학년에 따른 기대 효과와 우열반과 성별에 따른 기대 효과, 소수 민족인지 여부에 따른 기대 효과를 나누에 각각 확인하였다. 이 실험의 결과에서 타인의 행동에 대한 활용하는 일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을 수 있다. 교사가 학생의 지적 능력과 적응도를 평가할 때 종종 정확치 못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오크 초등학교의 전체에서 종합적 결과를 보면 오크 초등학교 교사들은 지적인 성장을 이룰 것이라 기대한 어린이의 품행을 다른 어린이에 비해 좋게 평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교사의 평가는 학기말에 이루어졌고 이때에는 이미 실험 집단의 특별한 어린이들과 대조 집단의 어린이들을 구분짓는 것이 교사들의 기대감뿐만은 아니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명제를 구성할 수 있다. 만일 학생이 지적 성장을 이루려 할 때 지적 성장에 대한 교사의 기대가 선행되어야 학생의 지적 활기와 정신적 건강을 위해 바람직한다는 것이다. 예상 밖의 지적 성장은 심리적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5. 지적 능력의 만개 과정앞의 실험 결과에서 지적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교사가 기대한 어린이는 그렇지 않은 어린이에 비해 1년 후 지적으로 더 크게 성장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기대 효과의 획득.유지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이들 문제 가운데 일부는 부분적이나마 답변을 할 수 있는 것인데 그 답변을 기술하는 것이 이 장의 목적이다.이상적인 조건에서라면 실험 개시와 더불어 곧바로 측정을 시작함으로써, 또 어린이들과의 꾸준한 접촉을 통해 이들의 반응을 항시 기록함으로써 기대 효과의 획드과 그 유지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상적 상황에서라면 다음 세 가지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1)기대에 의한 지적 만개가 언제 시작되는가 2)여러 시점별로 나누어 보았을 때 기대 효과 획득의 속도와 그 변화 속도는 어떠한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3)어느 시점에 긍정적 기대 효과가 사라져버리는가 등이 그것이다.우선 실험을 시작하면서 긍정적 기대 효과가 학생의 학년, 우열반, 그리고 소수 민족인지 여부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살펴보고, 2년 후 긍정적 기대 효과가 지속적이었는지 후속 검사없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간통죄라 함은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저지르는 범죄로 우리나라는 형법 241조에 의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같은 간통죄는 최근 사생활 보호와 가정 보호라는 양대 측면에서 그 존폐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양상이다. 주홍글씨를 읽고 난 후 간통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과연 그러한 법이 필요한 것인지, 누구에게 득이 되고 실이 되는지를 말이다. 우스개 소리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있다. 이처럼 간통죄는 입장 차이 인 것 같다. 그 형벌이 심한 면이 있지만, 소설 속 시대 역시 간통죄가 성립하는 시기였다. 당시는 간통죄를 저지르면 죽음 혹은 평생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힌 채로 살아야했다. 소설 속에서도 드러나듯 간통죄로 인해 가슴에 “A (Adultery)"자를 찍힌 채 살기도 하였다. 이는 당시 엄격한 청교도 사회와 그 사회의 비정함과 형식에만 치우친 신앙의 타락을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로 인해 겪는 인간사회의 비극, 그리고 죄의식으로 얼룩진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매우 치밀하고, 음산하게 그리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소설의 집필 시기와 배경을 알아보니, 저자인 나사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친가나 외가의 선조들이 모두 청교도였던 까닭에 사상과 생활태도에 깊은 영향을 받아 작품에도 이러한 경향이 짙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주홍글씨’의 시대적 배경은 17세기 중엽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350여년의 시간차가 있다. 이 작품은 청교도적 가치를 최고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청교도적이라 함은 경건한 신앙 생활, 근검 절약 정신, 금욕주의 등으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는 이런 청교도의 근본 정신이 왜곡되어 타락되고 암울한 시대였다. 당시 여성의 간통을 금기시 한 이유로는 다양한 측면에서 알아볼 수 있다. 우선, 봉건적, 가부장적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측면과 아내를 남편의 전유물로 묶어 두려는 의도도 있었다. 또한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려는 측면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의 간통을 금기시 하고 적발시 엄벌에 처한 것에 비해 남성의 간통에 대해서는 관대하였다. 이렇듯 당시 청교도 시대의 간통죄는 사실상 여성의 부정을 단죄하기 위한 도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 소설의 주인공 헤스터는 우아한 용모와 함께 겉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여인이다. 그녀는 바느질로 생계를 꾸려나가면서도 아름답고 호화로운 것을 좋아하는 특징을 보인다. 그리고 가슴에 새겨진 주홍글씨는 오히려 그녀에게 자신감을 갖게 해 그녀의 타인의 감추어진 죄과에 감응하는 능력까지 보이게 된다. 또한 자유사상가가 되어 물심양면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고, 공동사회의 모범적인 여성으로 떠받들어진다. 때문에 헤스터의 주홍글씨 A는 유능한이란 뜻인 “Able"의 A로까지 뜻이 호전되게 된다. 비록 헤스터는 그녀의 자유로운 의지와 행동으로 인한 도덕적 죄로 실정법에 따른 수모와 벌을 받고 있지만.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조금도 수치스러워 하지 않는 기색이며 심지어 그녀의 태도에는 존엄의 색채마저 감돈다. 여기서 우리는 호손이 헤스터의 태도에 투사하려 한 것은 당대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자신의 반대적 입장 표명이며, 아울러 작가로서 예술적 창조의 자유와 개성을 아무런 제약없이 나타내고자 하는 예술가로서의 욕망이 담겨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소설의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헤스터는 청교도의 식민지 보스턴 형무소에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기 위해 시장의 중심에 위치한 교수대 위로 끌려나온다. 그녀의 품에는 생후 3개월된 갓난아기가 안겨 있었고, 가슴에는 간통녀임을 나타내는 “A"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다. 늙은 의사와 결혼한 그녀는 남편보다 먼저 미국으로 건너와 살고 있었으며, 남편이 없는 동안 펄이라는 사생아를 낳게 된 것이다. 그녀는 그 벌로 평생 가슴에 주홍글씨를 달고 살도록 선고 받는다. 총독과 늙은 목사, 그리고 젊은 성직자 딤스테일이 심문을 하였지만 그녀는 끝내 불륜의 상대가 누구며, 어찌하여 간통을 저지른지에 대해서는 함구하였다. 그녀가 교수대위에서 비난을 받을 때 군중 속에는 그녀의 남편인 의사 틸링워드가 있었지만 자신이 그녀의 정식 남편임을 밝히지 못하도록 한다. 그 일이 있은지 3년 후 헤스터는 도심가에서 벗어나 변두리에 있는 오두막에 살면서 바느질일로 생계를 꾸려나가며 살고 있었다. 3살 난 그녀의 딸 펄은 아무 구속없이 자유분방하게 자라고 있었다. 한편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성직자가 된 수재 딤스테일은 채찍질과 단식, 철야 등 지나친 고행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게되고, 그의 건강 상담역이 된 의사 틸링워드와 공동 생활에 들어간다. 딤스테일의 설교는 날이 갈수록 사람들에게서 큰 인기를 얻게 되지만, 틸링워드는 어느 날 밤 마음의 병을 고백하려 하지 않는 그의 가슴에서 주홍글씨를 발견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7년이 지난 어느 5월의 늦은 밤이었다. 딤스테일은 집으로 돌아가는 헤스터 모녀를 불러 세워 놓고 셋이서 손을 잡고 교수대 위에 올라가 죄를 고백하자 한다. 그의 고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헤스터는 전 남편에게 그를 용서해 주도록 애원하지만, 복수의 화신이 된 남편 틸링워드에게 거절당하고, 숲에서 목사와 만나 전 남편의 정체를 밝히게 된다. 영국이나 유럽 대륙 어리론가 도망칠 것을 계획하고 있던 헤스터는 새 총독이 부임하여 떠들썩하게 축하연이 벌어진 거리로 나오고 때마침 선임연설을 하고 있는 딤스테일의 목소리가 교회로부터 흘러나온다. 그 뒤 목사는 헤스터 모녀를 불러 교수대로 올라가더니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가슴을 헤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한 뒤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한 아이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과연 이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의아했다. 정서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지만 과거 미국 빈민가의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왠지 수긍이 갔다. 그만큼 책속의 아이는 6살이란 어린나이에 참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처절하고 비참하게 잘 지어낸 우울한 소설처럼 그렇게 아이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어찌 어린 아이에게 그토록 끔찍한 일들이 짧지 않은 시간에 연속해서 일어났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이의 광기 어린 폭력성과 증오, 고집스러운 면은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건들로 변해버린 아이를 놀라울 정도로 바꾸어 버린 선생님의 인내와 끈기, 사랑에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특히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요인으로 인간의 마음에 대한 신념이라고 하였다. 누구나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 상대가 정상이 아닌 신체적, 정신적으로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라면 그 신념을 지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책 속의 교사는 그 신념을 지켰고 그 보답으로 구제할 수 없을 것 같았던 한 아이를 어둠 속에서 구해내었다.이야기는 어느 학교의 특수 학급 교사인 토리에게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불과 한 학기 동안 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 교사는 특수 학급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보람도 느끼며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다. 학교와 교육 당국이 특수학급에 지원이 부족하다는 불만을 갖고는 있지만 현실에 순응해가며 최선을 다하는 교사이다. 우선 내가 책 속에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교사의 남다른 언행을 통한 교육방식 이었다. 내가 자라오며 받은 교육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그 교사는 비록 특수 학급에 속한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의 인격을 무시하지 않고 항상 토론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등 강압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항상 침착하고 아이들을 우선시하며 사랑으로 그들을 대하는 모습이 내가 지금껏 받아온 교육방식과는 달랐다. 그녀는 아이들에 대한 기대 설정에 관해 항상 엄격하였다. 주위에서는 특수 학급의 아이들은 자아가 약하다는 이유로 그녀의 교육 방침에 회의적이었지만 비록 그들 존재가 가엾고 짓밟힌 존재이긴 하지만 나약하지는 않다고 생각하였다. 오히려 이제까지 그들이 생존해 온 것이 그들의 강인함을 입증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런 그녀에게도 한 아이가 오면서부터 시련이 시작되었다. 끔찍한 사고를 일으키고 법원의 결정으로 병원에 보내기로 한 그 아이는 당분간 토리 선생님의 학급에서 지내게 된다. 아이의 이름은 쉴라로 6살 난 여자아이였다. 아이는 일찍이 어머니에게 버려져 몸과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손에서 키워지게 된다. 아마도 6살이란 어린 나이에 어머니에게 버려졌다는 사실은 그 후에 아이가 삐뚤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인 것 같다.토리와 쉴라의 첫 만남은 무반응으로 일관되었다. 토리는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대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반응과 신경질적인 행동들 뿐 이었다. 토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쉴라는 계속 못된 짓만 일삼았고 그런 아이의 행동에 분노도 느끼지만 끊임없이 쉴라를 믿어주고 사랑으로 대해주었다. 며칠을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아이는 토리의 노력에서 신뢰를 느낀 것인지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눈빛을 마주치는 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말을 하며 토리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토니는 아이의 깊은 슬픔과 절망을 느끼고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에게 다가간다. 가끔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아이가 반항하여 토리의 신념이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끝까지 믿음으로써 아이와의 유대감을 지속해 나간다. 쉴라와 토리의 관계가 좀 더 가까워 질 수 있었던 계기는 ‘어린 왕자’속의 왕자와 여우와의 대화를 통해서이다. 왕자와 여우가 서로를 길들인 것처럼 ‘길들 인다’ 이 말이 둘의 존재 의미를 더욱 확고히 하게 해주었다. 토리는 쉴라를 길들 임으로 해서 쉴라에 대한 책임이 있고, 마찬가지로 같은 이유로 쉴라도 토리에게 책임을 가지며 서로 의지하게 된다. 쉴라는 그렇게 토리라는 교사의 도움으로 점차 보통의 아이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또한 쉴라는 또래 아이들보다 월등한 지능의 소유자로 다시 한 번 토리를 놀라게 했다. 토리는 점차 이러한 쉴라를 알게 되면서 더욱 더 그녀를 도와주기로 마음먹는다. 쉴라가 과거의 범죄를 떠나 또래의 아이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쉴라의 향후 거취가 병원이 아닌 학교를 보낼 것을 요구하며 법정에까지 서게 된다. 쉴라의 달라진 모습은 모두를 놀라게 했고, 결국 법원은 그녀는 병원이 아닌 학교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 토리의 노력은 그뿐이 아니었다. 쉴라의 아버지를 찾아가기를 반복하고 쉴라가 원하던 예쁜 드레스까지 선물하며 행복한 날들이 계속된다. 그러나 이 행복한 시간은 쉴라 아버지의 친구인 제리가 교도소에서 나오며 깨지게 된다. 제리는 퇴소를 하면서 일자리를 구할 목적으로 당분간 쉴라 가족과 머무르게 된다. 쉴라도 제리를 친구들에게 자랑할 정도로 잘 따르고 좋아했다. 그러던 중 한순간의 제리의 탐욕과 그릇된 욕정으로 쉴라에게 또 한 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만다. 제리는 성적 학대로 인해 다시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쉴라는 병원에서 생사를 타투게 되었다. 토리는 그 끔찍한 사건에 경악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책망했다.쉴라는 몸의 상처가 회복되어 학교로 돌아왔지만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그 어린아이의 깊은 마음의 상처는 학교 연극하는 것을 계기로 조금은 치유되었다. 많은 사건이 생기고 모두가 쉴라를 다시 보고 그녀를 따뜻한 시선으로 대하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쉴라가 병원에서 생사를 타툴때에도 한번을 와보지 않았던 쉴라의 아버지도 처음으로 술을 먹는 대신 쉴라가 하는 연극을 보러 왔으며 토리에게 쉴라에게 옷을 사줄 것을 부탁하며 술 먹을 돈을 건네준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그는 나름대로 노력을 한 것이다. 그 돈을 술 마시는 데에 써버리기 전에 필요한 일에 쓰려고 결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토리는 이런 그의 모습에서 동정심을 갖게 된다. 희생자는 쉴라만이 아닌 누구 못지않게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 여겼다. 고통과 괴로움에서 헤어나지 못한 지난날의 어린 소년이 지금 어른이 된 것이라 여기며 누군가 조건 없이 사랑해준 사람이 있었다면 그의 모습은 바뀌었을 것이라 생각했다.쉴라가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알고 슬픈 일에 주저 없이 눈물을 흘릴 때쯤 토리는 특수 학급이 학기가 끝남과 동시에 해체된다는 것을 모두에게 말해야했다. 토리는 아직 몇몇 아이들은 일반 학생들과 같이 수업하기엔 준비가 덜 됐음을 알지만 그녀의 힘으론 특수 학급 폐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제 문제는 이 사실을 쉴라에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쉴라는 토리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기 때문에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미 토리에게 길들여진 쉴라는 헤어진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았다. 토리는 다시 학업을 위해 떠나야 했고 남겨진 아이들은 교육을 받기 위해 새로운 곳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 했다. 헤어지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차츰 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노력하였다. 물론 토리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쉴라에게 있어 토리는 새로 얻은 가족이자 선생님, 친구 같은 존재였다. 생전 처음 느낀 그런 감정들을 놓칠 수 없기에 부정하려 했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렇게 안녕이란 작별인사를 하며 헤어지게 된다. 그렇게 폭풍같은 한 학기가 지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예전에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兄"이란 드라마가 문득 떠올랐다. “兄“이란 드라마 역시 ”부활“과 마찬가지로 사랑대신 성공을 택한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복수의 수단으로 자신을 더럽히는 것을 택하고 결국 사창가로 자신을 던지기에 이른다. 하지만 결국은 남자가 여자의 삶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죄의식을 갖고 잘못을 뉘우치는 내용이다.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내용을 함포하고 있으며, 잘못을 뉘우치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결국 영혼의 부활을 가져온다는 의미로 두 작품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부활“이라는 제목을 보고 어렴풋이 이 소설은 성서의 예수님과 같이 육체적, 정신적의 모든 것을 초월한 그런 부활이 아니라면 분명 한 인간의 갱생을 이야기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흔히 톨스토이의 을 가리켜 문학적 성서라 일컫는다.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렇게 불려지는 듯 싶다. 첫째, 성서가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과 대비하여 주인공 네플류도프와 카추샤의 영혼의 부활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이 대문호가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에서 풍기는 인상이다. 이 소설은 톨스토이가 70세에 완성한 작품으로, 당시 러시아의 국교인 정교는 그 나라의 정치 · 사회와 마찬가지로 극도로 안일에 빠져 부패했다. 게다가 정교에서 분파되어 나간 여타의 기독교 종파에 대해선 심하게 탄압했다. 성령 부정파 교도도 그 중의 하나로 이들이 영국 등지로 망명을 허락 받았음에도 자금이 없어 고통을 받고 있음을 안 톨스토이는 그 돈을 조달해 주겠다는 박애 적 목적으로 이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성서가 인간의 죄악과 가식에 찬 궤도를 질타하듯이 이 작품에서도 도처에 러시아 사회의 모순과 귀족사회의 비윤리적인 생활, 제반 제도의 횡포와 관료들의 악덕, 교회의 타락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부활“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어느 날 재판소의 배심원으로 나온 주인공 네흘류도프 공작은 살인절도 혐의를 받아 재판을 받는 까츄샤를 만난다. 그녀는 청년시절에 자기가 정욕의 대상으로 유린한 순결하고 아름다운 그 까츄샤였던 것이다. 그녀는 임신을 하고 하녀 겸 양녀로 있던 집을 쫓겨나 타락하여 전락해 버린 것이었다. 네흘류도프는 그 타락의 원인이 자기의 무책임한 행동에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이 까츄샤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귀족사회에 속한 자기 생활 태도에 대하여 깊은 의혹을 품게 되고, 동시에 남의 노역으로 포식하게 되는 토지사유제에 대하여 회의를 갖게 된다. 까츄샤의 감형운동을 위하여 감옥에 드나드는 동안에 그는 도움을 바라는 무고한 죄인들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냉혹한 불합리를 목격하게 된다. 그는 일신상의 정리를 위해서 자기 영지에 내려가서 농촌의 궁핍을 눈앞에 보게 되고 또 뻬쩨르부르그에 가서 유력자들을 찾아다니는 동안 귀족 사회의 경박함과 부패를 다시금 인식하게 된다. 그리하여 재판소에서의 인상이 사회 비판과 현대 문명에 대한 규탄으로까지 확대된다. 이 같은 흐름에 따라서 제 1 부에서는 재판소와 감옥을 중심으로서 한 사법 형벌의 세계가 다루어지고, 제 2부에서는 자기 영지의 농민과 빼쩨르부르그 상류사회의 묘사와 죄인호송대의 출발 전후의 사건이 다루어지고, 제3부에서는 시베리아의 죄인호송 여행 이야기가 다루어지고 있다. 결국 네흘류도프라는 한 귀족이 까츄샤라는 한 창녀를 따라 괴로운 시베리아 유형을 자청하여 시베리아의 황막한 벽지에서 끝없이 바라던 용서의 정신으로 영혼의 부활을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네흘류도프는 시베리아까지 모든 것을 버리고 까츄샤를 쫒아가 결혼까지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이런 노력은 감옥에서 까츄샤를 사모하는 한 남자에 의해서 물거품이 된다. 까츄샤도 감옥의 그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고 결국 네흘류도프는 두 사람이 감옥에서 나왔을 때 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며 깨달음을 얻는다. 결국 그는 그의 과거 잘못이 자신과 까츄샤에게 얼마만큼 큰 고통을 주게 했나를 반성하며 일평생을 그런 사람들을 위해 바치기로 결심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이 소설은 네플류도프라는 귀족 청년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영혼의 부활을 이룩하는 경로를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네플류도프는 새로운 삶을 결심하는 동안에 타락과 향락에 젖은 귀족들의 삶과 가난에 시달리는 민중의 삶 사이의 모순을 인식하게 되는데, 작자는 이러한 주인공을 통해 당대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각성과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주인공은 도덕적 결단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고 동시에 참된 삶의 가치를 찾아 나가는 과정도 보여 준다.다시 말해서 한 귀족 청년이 배심원으로 출정한 법정에서 바로 자신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망치고 어두운 삶을 살다가 마침내 죄까지 짓게 된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 후 청년은 이 사건을 계기로 영혼의 눈을 뜸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한 인간의 도덕적 결단을 통한 영혼의 고양이란 측면에서 가치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당대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려 낸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즉 한편에는 부정과 향락에 젖은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삶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에는 가난과 억압 속에 힘들게 삶을 영위하는 민중의 삶이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당대 현실의 모순을 그려 내고 있다.네흘류도프가 카츄샤를 법정에서 재회하고 나서 그의 죄를 알게 된 장면과 그녀에게 참회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장면부터 그의 양심은 부활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구명 활동과 시베리아 유형지로 같이 떠나는 그의 용기는 진정 그가 정화된 인간으로 탈바꿈하였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정화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원죄, 바로 카츄샤에 대한 죄이다. 만약 그의 원죄가 없었다면 그는 참회할 필요도 없었으리라. 부활할 이유도 없었으리라. 그렇게 자신에게 죄를 지은 그를 마지막에 용서하는 카츄샤는 네흘류도프를 괴롭힌 악마인 동시에 구원해준 천사가 아니었나 싶다. 반면, 마지막에 카츄샤가 같은 감옥의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까지 따라가서 카츄샤를 놓아준 네흘류도프에게서 진정 참된 부활의 의미를 보여준다. 자칫 다시 그녀를 원망하여 집착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부활이라 부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용서받고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으로 그는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