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양 소설의 전개과정교양 소설 - 개념의 전개발전 소설과 교양 소설 개념에 대한 정의는 작품의 해석학적 이해과정에 따라 융통성 있게 취급되고 있다. 주인공의 내면적 성장 과정을 취급한 것이면 발전 소설이라 칭할 수 있고, 주인공의 교양 과정을 보편적이고 조화로운 완성 단계까지 서술한 것이면 교양 소설이라 불리 울 수 있다. 그리고 일정한 목적을 향한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교육적 측면에서 서술하였다면 교육 소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소설은 대체로 고전주의 이후 교양 소설이란 범주 속에서 논의되고 있으며 이 소설들의 특징은 한 인간의 발전 과정을 일정한 의미와 목적 속에서 전개하고 있는 것에 두고 있다.괴테 시대로부터 발생된 ‘교양 소설’이란 용어는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에 의해 먼저 정리되고 있다. “나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유파를 이루고 있는 (...) 소설들을 교양 소설이라 부르고 싶다. 괴테의 작품은 인간의 완성 단계를 상이한 국면과 모습, 상이한 삶의 시대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고 함으로써 인간의 성숙 과정을 묘사한 괴테의 소설을 교양 소설이라 지칭했다. 딜타이는 여기서 『빌헬름 마이스터』의 소설 양식이 독일적인 특수한 교양 소설의 ‘위상적 종류’ 가 되고 있음을 알린 것이다.‘독일적 정신과 독일적 보편성 deutscher Geist und deutsche Universalitat' 의 숭고한 주제와 풍부한 내용을 취급하려는 교양 소설은 빌란트의 『아가톤』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괴테 이후 우리가 갖게 되는 독일 교양 소설은 다른 어떤 국민도 이러한 완전한 국가적 특징 속에서 독특하고 개별적인 성격을 지닌 소설을 제시한 국민은 없다. 그렇기에 독일 교양 소설은 독일 사람만이 갖게 된 명예로운 타이틀이기도 하다. 교양 소설이 자아 실현의 개인주의를 독일적 이상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교양 소설은 본래 시인과 사상가의 소설” 이며 독일에서만이 성립될 수 있는 특수한 소설로 인정된다.이에 토마스 만(Th. Ma,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사회적, 종교적 조건으로부터 개체의 해방을 완수하며 발전의 목표를 인간의 완성에 둔다.교양 소설의 주제 - 이상과 현실 사이발전 소설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교양 소설은 소설 내용을 자전적인 개인 성장 과정에 두고 있지만 작가의 체험 세계나 허구적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세계와 연관시킴으로써 이상과 현실 사이를 미학적 화합으로 접목시키고 있다. 그럼으로써 개인의 내면성과 세계와의 화합을 가져올 수 있는 객관적 이상을 추구한다. 이러한 이상적 자아 발전은 세계와의 투쟁이나 분석을 통해 추구될 수 있는 교양 소설의 가능성 덕분에 18세기에는 그 심도가 강했으나 20세기에 와서는 개인과 사회적 세계와의 거대한 소외 때문에 개인의 존재적 불안이 심화되어 교양 소설 전통에 어려운 문제점을 안게 된다.교양 소설에서 주제가 되고 있는 나와 세계와의 상치성 극복이나 세계에 대한 낯설음의 해소 문제는 교양 소설 장르의 기본적 과제이다. 그래서 교양 소설의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은 자신을 인식하기 위해 출발하는 인간의 영혼의 역사를 이루며 자신을 시험하는 모험의 과정이기도 하다. 영혼의 갈등을 극복하려는 이러한 주제는 인간과 세계와의 분석을 교육적이고 계몽적인 측면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또는 헤겔의 말대로 개체와 세계와의 모순 관계를 ‘마음의 시와 이와 상반되는 상황적인 산문간의 갈등’ 관계로 인식하고 이러한 갈등을 희비극적 문학을 통해 해소시키거나 세계 질서에 대한 저항을 통해 순수하고 실재적인 것을 발견하며, 산문적인 세계를 미와 예술의 세계로 대치시켜 보편적인 세계 질서를 찾아 낼 길을 열기도 한다. 모순적인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인간이 세계의 산문적 상황 속에서 투쟁하며 참된 세계의 의미를 체험하는 것이다. 즉, “인간 주체는 현실 속에서 따끔한 체험을 통해 정신을 차리게 하고 자기의 희망과 의견을 현존하는 상황의 이성으로 형성토록 하며 세계와의 연관 속에서 합리적인 입장을 획득하는 것”이 교양의 참 뜻이다.인간의 정신을 구체적인 사회적 현실 속에서 찾으은 18세기 말 경까지의 교양 소설의 이념에 직접 영향을 준 사상이다.우선 교양 소설의 개체주의에 영향을 미친 것은 루터의 개인주의와 주관적 독자성의 인식이다. 그는 개체는 신의 지음에 달려 있으며 인간의 구제는 자유로운 자아에서 오는 윤리적 행동에서보다는 겸손과 절망 속에서 자기를 포기하는 경건주의에서 이룩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경건주의적 경향은 17~18세기 말에 가서 더욱 강화되어 주관적인 도덕적 가치를 자부하는 생각으로 받아들였으며 인간의 경건한 태도를 일종의 ‘종교적 향락 태도’로 수용하였다. 이러한 신과 자연에 대한 경건주의 사상은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적 철학 사상에서 더욱 확대되었다. 즉 자연에 내재되어 있는 다원적 우주가 단자에 종합되는 조화로운 교양론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인간의 조화는 자연의 단자론적 조화에서 유도되고 있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경건주의적 신앙은 시민 계층이나 소시민 생활에서도 순수한 내재적 효소로서 존재하여 18세기 말까지 계승되었다. 그러나 시민 계층의 의식 변화가 인간의 해방을 부르짖는 칸트 이전의 과도기에 와서는 점차 경건주의적 사상은 인간의 체험적 상황과 선험적 상황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불안감으로 퇴조하여 갔다. 이러한 시점에서 나온 것이 칸트의 윤리관이다. 그는 도덕의 주관성을 보편적인 윤리 법칙과 결합하여 종합으로 실현할 수 있는 윤리관을 내세웠다. 이렇게 됨으로써 삶의 의미와 도덕의 타당성은 인간의 보편적 자연 법칙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개인의 의식과 도덕의 일반적 가정 사이에서 오는 불일치성은 사라지고 본래적 자연성을 성취하게 된다고 믿었다. 이러한 인간학적 낙관주의를 바탕으로 개인의 성선설을 주장한 사람이 루소였다. 그의 자연 사상은 원죄 의식에 가득 찬 기독교와는 상치되었다. 루소의 교육론은 인간의 본래적인 선성을 실현하기 위한 자연론이었으며 교조적인 기독교나 경건주의는 비판되고 있었다. 이러한 루소의 사상은 캄페(Campe)의 논문집에서 다시 나타난다. 캄페는 계층적 직업을 위해 교육의 개별적인 선택을 향을 받아 얻은 습관과 타고난 바탕과의 종합”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언급된 인간의 본래적 소양(바탕)론과 환경론의 종합은 결국 선성설과 후성설의 종합으로 형성된 인간 발전론을 의미한다. 이는 헤르더의 사상에서도 동일하며 괴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괴테는 자연과학 논문에서 식물 변태의 법칙에 관한 2개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성장 법칙에 있어서의 원리는 ‘식물을 구성하는 내면적 자연의 법칙’이 그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식물을 변화시키는 외부 환경의 법칙’이 다른 하나이다. 괴테는 이 두 개의 원리를 통해 식물의 성장 원리를 자연의 유기적 원리로 보고 이를 인간 발전의 원리로 원용했다. 이와 같은 관점은 이미 루소나 빌란트, 헤르더, 훔볼트에서도 활용된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자연적 성장 원리에는 한계점이 제기되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연적 교양 교육을 식물의 자연 성장 과정으로 비유한다면 인간의 서장은 개인의 자연적 바탕과 환경간의 관계에 대한 의식이 없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도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기된 문제가 개인의 교양에서는 주관적으로 의식된 사명을 통하여, 다시 말하면 체험과 체험에서 오는 반성, 그리고 자신의 의식 표현을 통하여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는 이미 이러한 문제를 자발적인 인간의 윤리적 행위 속에서 강조한 바 있다. “인간은 인간의 동물적인 현존에서 오는 기계적 명령을 모두 떨쳐버리고 본능으로부터 해방되어 독자적인 이성을 통하여 스스로 창조한 완전성과 행복 이외에는 어떠한 다른 행복이나 완전성에도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 자연은 원했다”고 함으로써 독자적인 이성을 통한 완전성 창조라는 자유로운 윤리적 실천성을 강조했다. 헤르더는 『인간사의 철학적 이념』에서 “인간의 본성은 인도성이며 이러한 목적을 향한 인간 스스로의 운명은 인간의 손에 의존토록 하나님이 부여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인간 스스로의 윤리적 실천 의식을 통하여 인도주의의 보편적 법칙이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뿐만 아니라 훔볼트도 교양 과정에 줄거리는 단조로운 농부의 아들이 모험과 영예, 애정과 부에 현혹되어 세계를 유랑하면서 30년 전쟁의 혼란을 체험하고 굶주림으로 고생하던 끝에 겸손한 신의 세계로 귀의하여 고독한 자연 속에서 은둔자로 신에 봉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로르바하는 이 소설의 주제가 모험을 통해 내면적 성찰에 이르는 “회심의 동기와 행운의 여신, 비판적-도덕적 세계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쓰고 있다. 또한 벨찌히는 이 소설이 모험적이며 실존적인 다양한 삶을 통해 신에게의 봉사에 이르며 죽음 후에 영생을 얻는 전설적 구성을 갖고 있고 마지막에 주인공이 “자기의 삶에 대해 속죄하는 은둔자”로 변모하는 모습은 차라리 목가적이며 동화적인 성격을 보인다고 지적한다.빌란트의 『아가톤(Agathon)』을 교양 소설이라 부른 최초의 비평가는 슈뢰더(F.W. Schr?der)였다. 이보다 앞서 이 작품은 역사 소설 또는 문화 소설로 불려지기도 했으나 이 소설 주인공의 교양 과정이 개인적 수업과 성장으로 주도되고 있어 미헬젠은 『아가톤』을 ‘독일 최초의 교양 소설’이라 주장했다. 교양이 인간의 끊임없는 수업과 완성에의 노력에 뜻을 두며 이성의 지도하에 정신과 감정의 조화를 얻고 심리적, 윤리적인 성숙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아가톤』은 이에 적절한 범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아가톤』은 『수업 시대』와 『푸른 하인리히』,『데미안』등의 현대적인 내면적 교양 소설 형식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된다.괴테는 『수업 시대』에서 주인공을 전인적 교양을 갖춘 예술가와 인간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그는 『수업 시대』의 전반부는 예술가로서의 성장 단계로, 후반부는 시민적 이상을 실현하며 실제 삶의 공동체적 인간형으로의 성숙 단계로 구상했다. 그럼으로써 괴테는 『수업 시대』를 통하여 전인적인 인격 형성 과정을 구체화시킨 것이다. 이른바 ‘조화로운 전인적 성장의 이상’이 제시되며 나타났다. 『수업 시대』가 현실에 대한 실제적인 이해를 위한 인간 교육을 지표로 하고 있기에 인간 교육에는 인본주의 이념이 담긴 사회의 총체다.
*인문학부 200420100 정복남*♣ 카르페 디엠 - 오늘을 즐겨라 ♣키팅이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토드를 시작으로 모든 학생들이 책상 위로 올라가 “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을 외치며 눈물의 작별을 고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자신들의 선생님을 떠나보내야 하는 제자들과 그런 제자들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키팅 사이에 흐르던 슬픔이 내게도 전해졌다. 틀에 박힌 교육에 저항하던 키팅이 결국 학교에 어떤 대항도 하지 못한 채 떠나는 부분에서 키팅을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란 생각에 슬펐다.사람들은 저마다 무한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현실은 우리 모두를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아이들에겐 공부하라고 강요한다. 가끔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는 나에 대해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게 최선이라며 나를 위로하곤 했었다. 그러나 비록 권위와 전통 앞에서 물러서고 말았지만 용감하게 저항했던 키팅에 비해 나는 너무 비겁하단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 부딪쳐서 바꿔 볼 용기도 없으면서 나의 행동을 합리화하기에 바빴다. 주체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아이들로 가르치는 것보다 많은 내용을 외우게 해서 성적 올리는 것에 더 관심을 기울였던 나. 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것보다 시의 갈래, 시의 제재, 주제, 비유법에 대해 외우게 하는데 급급했던 나. 아이들이 배운 내용들을 외워서 술술 대답할 때 너무도 기뻐하던 나. 과연 이런 내가 교사로서 자질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나를 힘들게 했고,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키팅은 단지 교과서에 실려 있는 내용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틀에 박힌 시의 해석 방법을 깨뜨리고,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배운다. 또, 현재의 나와 인생을 충분히 즐기고,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가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배워 나간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한 자유로움과 주체성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청소년 시절은 대학이란 동일한 목표를 위한 끊임없는 시험의 늪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대학에 들어가면 취업이라는 늪이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또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는 부담감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닐의 아버지가 닐에게 공부에만 열중하기를 강요할 때마다 어머니가 그렇게 하길 원한다고 말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만든다. 부모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에게 전가시키면서 거는 기대감이 자식으로 하여금 존재감을 상실하게 한다. 그러나 키팅은 이런 아이들에게 “카르페 디엠(오늘을 즐겨라)”이란 말로 현재의 중요성과 지금 나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준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삶에서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삶으로 스스로를 점점 바꾸어 간다. 우리는 여기서 주체적으로 변해가는 토드와 맥카리스터 교사의 잔잔한 변화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토드는 독립된 인격체로 봐주지 않는 부모로 인해 생긴 열등감으로 삶에 대한 자신감이 없던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웰튼 최고의 모범생이었던 형제프리 앤더슨의 동생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토드를 힘들게 하였다. 그러다 보니 토드 자신도 자기 존재에 대해 차츰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런 토드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일깨워 준 사람이 바로 키팅이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세상 속에 숨어 있던 토드를 세상 밖으로 꺼내주었다. 토드는 비로소 삶의 주체가 자신임을 느끼게 된다. 나중에 키팅을 모함하는 서류에 끝까지 서명을 하지 않는 모습에서 토드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또한 키팅의 수업 방식에 불만을 품고 있던 라틴어 교사 맥카리스터의 변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말로는 키팅의 수업이 엉뚱하고 형편없다고 하면서 점점 자신도 모르게 키팅의 수업 방식을 따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키팅의 가르침 속에서 변화를 보여주는 토드와 맥카리스터 선생의 모습에서 우리는 교육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희망을 얻을 수 있다. 이 변화는 전통과 규율로 가득 찬 웰튼 아카데미의, 더 나아가 웰튼이 존재하는 사회가 점점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찬 가능성을 보여준다.그러나 아직 우리의 교육 현실은 상처투성이다. 명문대 진학만으로 목표로 현재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는 부모와 교사와 학교 그리고 이런 현상을 당연시 여기는 사회. 이것이 바로 여기 저기 멍투성이가 된 우리 교육의 본모습이다.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상처받은 교육 현실을 치유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시 말해서, 어느 한 쪽의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에게는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고,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고, 그것을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있어야 한다. 또한 사회는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들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명문대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사라지는 그 순간 우리의 현실은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은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아이들의 입장에서 가르치려는 교사와 배우고자 하는 학생이 존재할 때에 성립된다.우리들 그림자가 마음에 드시지 않는다면/이렇게 고쳐 생각해 주세요.오래도록 선잠을 자고 일어나니/눈앞에 나타나 있었다고,덧없는 무의미한 얘기지만/일장춘몽이라 무시하지 마시길,
『나* 독어독문학과 20001178 정복남 *누어진 하늘 Der geteilte Himmel』독일 분단의 대 작가 - 크리스타 볼프 (Christa Wolf)폴란드의 렌츠베르크에서 1929년에 태어났으나, 그곳에서 추방된 이후에 맥클렌부르크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1949년, 20세에 이미 동독 사회주의 통일당(SED)에 입당하였고, 예나 대학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했고, 출판사 원고 심사원으로 몇 년간 일하였다. 이론가로서 출발했으나 《모스크바 이야기》(1961)를 계기로 창작으로 전환, 동서분열과 동독의 현실을 다룬 《나누어진 하늘》(1963)은 사회주의의 일상(日常)을 묘파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당 중앙위원 후보에 선출되었으나, 《크리스타 T의 추상(追想)》(1963)에서 개인으로서 자기를 재발견하고, 《유년기의 구도(構圖)》(1976)에서 국민의식의 간극(間隙)을 역사의 문체라는 차원에서 비판하면서 당의 문화노선과 결별하였으며, 《카산드라》(1983)에서 독자적으로 문학의 소외의 발생과 역사와의 연관 문제를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현재 그녀는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독일 작가동맹의 회원, 동독 예술원 회원, 펜 본부회원 등 다채로운 경력에다 , , , , , 등 수상 경력 또한 다양하다.『나누어진 하늘』- 현재적 공간에서 미래적 공간으로..『나누어진 하늘』은 주인공 리타가 서독으로 탈출한 연인 만프레드를 만나고 다시 동독으로 돌아와 작업을 하던 중 달려오는 기차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자살 충동을 느낀 상태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간 후 의식을 회복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지난날을 회상하는 형태로 진행된다.작은 시골마을 보험회사 지국에서 근무하는 19세의 처녀 리타는 1959년 가을, 사촌누이 집에 잠시 머무르러 온 도시 출신의 화학박사 만프레드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대학진학을 포기한 채 직장을 다니면서 권태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찰나에 자신이 동경하던 모습을 지닌 만프레드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와 함께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에 만프레드는 실망을 하고, 불신으로 가득 찬 당에 대해 그는 비판하면서 더 이상 이 곳에서는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갖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동독사회로부터의 탈출을 결심하고 있는 동안, 리타는 동독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갖게 되고, 그는 화학자 회의에 참석 차 베를린으로 떠난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헤르푸르트 부인이 매우 기뻐하며 그녀에게 만프레드의 편지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자신이 서독에 머물기로 결정하였고, 당신이 이곳에 와서 나와 함께 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의 갑작스런 결정에 그녀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헤르푸르트 부인은 아들의 도피가 자신을 위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남편에게 서독으로 갈 것을 요구하였으나 남편은 내켜하지 않아 했다. 이에 헤르푸르트 부인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고, 그 충격으로 그녀는 쓰러졌고 다시 일어날 수 없게 되었다.(그녀는 전부터 지병을 갖고 있었다.) 리타는 만프레드를 잊지 못하고 그를 만나러 서독으로 찾아간다. 리타의 눈에 비친 서베를린은 본질적으로 낯설고 부질없는 분주함이 일상사가 되어 버린 도시이며, 그 뿐만 아니라 이 곳의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하는 대신에 찰나적인 쾌락에 만족하고 있다. 그녀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소함을 경험하며 결국 미래를 향한 희망이 있는 동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즉 리타는 만프레드를 사랑하지만 동독의 미래에 대한 그들의 서로 다른 신념에 의해 그가 있는 서독을 떠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일요일(1961년 8월 13일)에 베를린 장벽이 세워짐으로써 그 이별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된다. 리타는 동독 사회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지만 아직 만프레드가 있는 서독에 대해 미련이 남아있었던 터였기에 그녀는 두 체제의 틈바구니에서 확실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선로에 몸을 던지게 된 것이다.리타는 자살 시도 후 요양원에서의 회복과정에서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서 상처를 극복해 나가며, 이를 통해 그녀는 한층 더 성숙되어지고, 여주인공 리타가 작은 병원 입원실에서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는 때이다. 복잡한 구성인데도 서술순서는 연대기적이며, 서술은 주로 주인공 리타의 시각에서 이루어지고, 서술지평이 다양하다. 소설은 본 줄거리가 사건 진행이나 체험의 묘사, 그리고 그것에 대한 논평이나 성찰을 담은 서술부분으로 나뉘는데, 후자는 다시 주인공 리타 자신의 성찰과 사술자의 성찰로 나뉜다. 서술은 대체로 현재시제로 이루어지는데 크게 묘사와 리타의 성찰로 구분된다. 거기다가 병렬적으로 리타가 과거에 체험했던 일들이 서술된다. 시간에 따른 줄거리 진행이나 그에 대한 성찰은, 서술자가 나중에 나올 일을 미리 보여주고 혹은 뒤의 일을 돌이켜 봄으로써 자주 중단된다. 그밖에도 서술구조의 다양한 지평이 모호하게 뒤섞여 있다.이러한 복잡한 시간의 틀, 서술구조, 서술방식, 그리고 감성적 문체가 만들어내는 섬세한 모호성은 민중성, 민중 연계성을 하나의 목표로 하고, 그럼으로써 평이한 언어와 단선적인 서술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그때까지의 동독 소설에서 획기적인 요소인 것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시대?사회적 문맥을 떠나서도 작품에 독특한 문학성과 매력을 부여하는 요소이다.사회주의 사회상인간의 ‘나누어짐’이라는 주제를 사회적 문맥 안에 넣음으로써, ‘사랑’이 사회상황가 얽힘으로써 개인들 사이의 내적 갈등은 이 작품에서 사회 정치적 차원의 갈등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사랑’ 보다는 결국 ‘일’을 선택한다. 궁극적으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모범적인 근로자상이다. 근본에서는 놀라운 사회적 인식과 자기발전을 이루어 가는 신뢰에 찬 낙관주의자이다. 그럼으로써 이 작품은 동독이라는 한 사회주의 국가의 현실과 그 구성원에 대한 심정적 보고라는 특성을 가진다. 무엇보다 사회주의 사회의 현실을, 특히 노동세계를 독자가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로현장은 작품의 단순한 무대로서가 아니라 문학을 통하여 그 세계를 친근한 현실로 독자에게 다가오게 해준다. 작품의 줄거리는 주인공이 비록 체념적이라 하더라도 사회주의 체제를 택하여 하여 서독으로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 그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에 이르기까지 이 하나의 작품을 통해서도 동독이라는 국가의 사회상을 광범위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이 소설은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졌다. 작가 크리스타 볼프 자신의 탐색과 체험의 투영이자 1959년 ?비터펠트? 회의를 계기로 당 정책으로 추진되었던 문학운동 지침 ?비터펠트 노선?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타 볼프도 이 정책에 따라 할레 차량 공장에서 일한 바 있었으며, 그 경험이 이 작품에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체험이 그대로 기록되었음은 물론 차량공장 작업조와의 접촉이 계속 유지되어 창작의 자극이 유지되었다. 이 점이 당시의 어려운 경제상황이나 생산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통찰을 가능하게 한다.바로 이런 시대상황이야말로 이 소설의 배경이며, 특히 후반부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서쪽으로 떠난 사람들과 남은 가족이 겪는 고초는 이 시기 동독 소설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주제이며, 마침내 주인공 자신도 애인이 서쪽으로 넘어가는 상황에 직면하는 당사자가 된다. 시대적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 것이며, 가장 예민한 시대적 사건이 작품의 결정적 전환을 이루고 있다. 가장 예민한 시대적 사건이 작품의 결정적 전환을 이루고 있다. 즉 주인공 리타가 서쪽으로 간 애인 만프레드를 찾아가지만 서먹하게 돌아오는 것이다. 그것은 자발적인 동독의 선택이기는 하지만, 시점은 1961년 8월의 첫 일요일이고 그 다음 일요일인 8월 13일, 장벽이 세워짐으로써 재고(再考)의 가능성이 영원히 차단되어버린다. 리타는 일차적으로 동독을 택했지만, 그러나 그래도 남아 있던 다른 선택의 가능성의 최종적 차단을 감내하지 못하고 결국 선로에 몸을 던진다. 궁극적으로 동독을 택하는 전형적인 인물에 분단의 비극성이 얹히고, 그때까지 동독 문학에서는 금기였던 자살이라는 소재까지 덧붙여진 것이다.사회주의 사회의 인물들리타는 교원양성소를 다니면서 실습생으로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공장에서는 같은 작업조에서 일하는 노동자 메티나는 달리 개인생활에서도 행복한 이상적인 당원이다. 교육현장에서의 교조주의와 잘못된 교수법을 비판하는 그는 역사교사답게 사회주의 이념에 정통한 사람이지만, 넓은 시각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심으로 독단적이며 근시안적인 교사 만골트와 대비된다.서독으로 탈주하는 가족들의 계획을 알면서도 묵묵이 방조한 지그리트와 그 사실을 묵과한 리타가 장래 교사로서의 자질을 의심 받게 되었을 때 슈바르첸바흐는 만골트에게 “오히려 이렇게 배려하시오. 지그리트 같은 사람이 당은 그녀를 위해서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말입니다.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당이 있겠습니까?” 라고 사회주의 체제의 관용성을 실천한다. 사회주의에 대한 슈바르첸바흐의 관점은 비독단적이며 인간중심적이다. 그의 가정생활도 마찬가지인데, 저녁시간에 그를 방문한 리타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시끄러운 평범한 가정의 단란함을 본다. 교육에 있어서도 슈바르첸바흐는 단순히 원칙을 따르는 수동적인 인간이 아니라 오류와 위험을 극복하고 독자적으로 홀로 설 수 있는 인간을 만들려고 한다. 슈바르첸바흐는 젊은이들을 무비판적인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의 어려움과 문제점을 알면서도 “계급에 대한 신뢰”를 가진 사람으로 교육하고자 한다. 그가 리타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관이 동료들에 의해 “정치적 몽상”으로 비난당하고 당성이 의심받는 슈테르첸바흐는 리타에게 도움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에게서 도움을 받는다. 즉 그는 리타를 성공적으로 교육함으로서 자신의 교육론이 정당함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슈바르첸바흐는 퇴원을 앞둔 리타를 방문하여 “항상,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알고 있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의미 있는지 알고 싶었다고” 말한다. 독단적 교조주의가 난무하는 체제에서 현실을 호도하는 법 없이 진실을 말하는 것에 대한 그의 불안의 일단을 보여주는 셈이다. 리타가 그 동안 겪은 과정을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 라고 해석하는 슈바르첸바흐는 변모한 리타를 통해 사회주의의 밝은 미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