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교육 기회 증대와 활발한 사회 활동 등으로 인하여 전통적 가부장제였던 우리나라의 부권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강한남성은 사라져 가고 어릴 때부터 기대에 힘겨워하고, 커서는 처자식을 부양해야하는 부담을 짊어지고, 남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땅의 남성들의 모습이다.초록물고기에서는 일산이 신도시로 변화하면서 환경의 변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막동과, 대화단절과 서로간의 무관심은 가족의 해체를 보여주며, 막동과는 대조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습들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갈등을 이야기하고 있다.현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가족의 해체일 것이다. 막동이네 가족은 도시 계획과 자본주의화로 인한 인간소외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권의 약화를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막동이 네에는 아버지가 안 계시고, 파출부 나가는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제대했는데도 별 말 없이 사과나 깎으며 TV를 쳐다보느라 정신없고, 전통적으로 장남이 집안을 돌봐야하지만 뇌성마비 장애인이인 큰형을 등장시켜 또 한 번의 부권약화를 보여준다. 둘째형은 가족의 해체를 조장하는 비리 경찰, 셋째형은 계란장수, 여동생은 다방 종업원이다. 여동생을 찾아간 막동은 다방종업원으로 일하는 동생을 나무라며 강한남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으나 동생이주는 용돈에 돌아서는 모습은 강한남성의 모습은 간데없고 오히려 약한남성의 면모를 보여주며 부권의 약화를 암시하기도 하는 것 같다.제대한 막동은 예전처럼 함께 모여 살아 보려 하지만 각기 가족들은 자신의 삶에 찌들어 있다. 막동이는 가난하고 무능력한 자신의 모습 속에서 가족이 함께 모여 살기를 바라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배태곤 밑에서 일을 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꿈꾸며, 막동이네 가족은 모처럼 야유회를 떠난다. 하지만 그 야유회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 술에 취한 형은 가족의 붕괴를 야기 시키고 그 속에서 막동이는 조직에도, 가족에도 동화되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들을 보여줌으로 어느 한쪽에도 동화 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현 남성들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다. 영화에서 강한남성을 보여주는 몇 씬 을 살펴보자면 막동이 기차 안에서 위험에 빠진 미애를 구하는 씬 이다. 3명이나 되는 깡패들로부터 미애를 구해주면서 미애에게 강한남성상을 보여주는 막동은 순진하기도 하지만 바보 같기도 하다. 또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미애를 취객으로부터 구해주고 패주기까지 한 장면. 지하주차장에서 배태곤의 부하에게 마구잡이로 덤비는 장면 등은 막동의 강한남성의 면모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배태곤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또 다른 강한남성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폭력이 강한남성의 전유물처럼 나오는데 또 다른 인물인 김양길을 내세워 막동에게 강한남성인 배태곤보다도 더 강한 남성을 등장시킨다. 이에 위협을 느낀 태곤은 막동을 시켜 양길을 죽이는데, 배태곤은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 준 막동에게서 감사함보다는 오히려 더 큰 위기를 느끼고 막동이 자기보다 강한남성이 되어 미애와 그의 지위를 빼앗아갈 것이라는 위기를 느꼈는지 그는 막동을 무참히 찌르고는 미애가 보는 앞에서 차 앞 유리에 기대어 죽어 가는 그를 버리고 가버렸다. 막동의 죽음은 그의 가족을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그의 죽음으로 혈연관계의 가족을 단결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무분별한 산업화로 인해 퇴색되어 가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함께 운영하는 식당으로 표현함으로써 한국적인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 시킨 "초록물고기"는 현대 사회에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해간는 남성들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초록 물고기”는 무분별한 신도시 개발에 따른 가족 간의 해체와 인간이 느끼는 소외감 같은 부작용들을 바탕으로 급격히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해체되어가는 가족을 통해 근대화의 문제를 성찰한다.막동에게는 삶의 유일한 희망인 가족이 있다. 그의 꿈 역시 뿔뿔이 흩어져 힘겹게 살고 있는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가족 구성원은 화려한 일산 속에서 덩그러니 예전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그들의 집처럼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막동의 집은 신도시 개발 에 대항하는 ‘전통주의를 고수하며 소외되기를 자청하는 듯’해 보인다.영화는 약육강식의 논리로 일관하는 강한남성인 ‘깡패 배태곤’을 등장시켜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가 부권의 약화를 어떻게 조장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배태곤에 의해 막동을 제거됨으로써, 막동과 같은 남성은 아무리 기를 쓰고 살아도 강한남성 앞에 서는 무력해지고 마는 것을 신랄하게 비춰주고 있는 것이다.막동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인 그의 가족은 일산 신도시 속에 편입되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는 그들의 집처럼 각자의 삶에서도 주인공으로써 살아가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며 소위말해 ‘막’ 살고 있다. 제대한 날 조차도 TV에 정신이 팔려 아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어머니와 장애인인 큰 형, 비리 경찰인 작은 형과 계란 장수 셋째형, 다방 종업원인 여동생으로 이루어진 막동의 가족은 야유회 장면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그 자체로 붕괴되어 가고 있으며 주먹 세계의 언저리를 맴도는 막동에게 쉴 곳이 되어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막동은 적응하지 못하고 기술도 없고 ‘빽’도 없기에 배태곤의 유혹에 쉽게 빠지고 만다. 왜냐하면 막동은 아직 사회 경험도 없고 진정한 사랑을 해 본적도 없었기에 더욱 순수했으며 또한 무모했던 것이다. 살인을 한 후에도 여전히 가족을 생각하며 엄마의 안부를 묻고 울먹이는 장면에서 초록물고기’라는 이 영화의 제목의 의미를 엿볼 수 있는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물고기처럼 아직 우리 가슴속에 생동하는 초록색 삶의 ‘희망’이자 ‘꿈’이 그것이다.
John Barth는 1930년 5월 27일 메어리랜드 캠브리지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쌍둥이인 질(Jill)은 사업계로, Barth는 학계로 진출하게 되었는데 Barth는 캠브리지 고교를 졸업하고 1947년 뉴욕에 있는 명문 음악학교인 줄리아드 음악학교(Juilliard School of Music)에서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전시키려 했으나 학비가 너무 비싸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그 이후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 홉킨스 대학에 장학금 혜택을 받고 입학한다. Barth는 존스 홉킨스 대학시절 동양과 중세 이야기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작가로써 자신의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는 1951년 존스 홉킨스 대학을 마친 후 소설 창작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1952년 창작과정의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M.A.를 받았다. 대학원 재학 시절 'Shirt of Nessus'라는 소설을 썼지만 출판 되지 못했으며 그는 계속 작가가 되려는 꿈을 이룩하고자 창작과정의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작가가 되기 위한 노력에 정진한다. 1950년 Harriette Anne Strickland와 결혼하여 Christine과 John,두 자녀들 두게 된다. 1953년 펜실베니아 주립대에서 시간강사로 창작수업을 담당했으며 1965년에는 뉴욕 주립대의 교수로써 강단에 서게 된다. 1969년 스트릭랜드와 이혼하고 Shelly Rosenberg와 두 번 째 결혼했으며 존 홉킨스 대학 창작세미나 프로그램에서 교수직으로 은퇴할 때까지 대표적인 포스트모던 문학의 이론가 겸 작가로 활동한다.허무주의에서 출발한 Barth의 초기 소설들은 포스트모던의 독특한 내러티브 기법들을 구체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허무주의에 안주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그 자신의 몸부림, 즉 모더니즘을 극복하기 위한 고뇌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독자가 그의 소설에서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Barth는 새로운 메타픽션의 기법을 통해 20세기 후반의 시대적 허무주의에 대처할 가능성을 열린 결말(open ending)로써 제시하려 하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신학술소설(new academic novel)”이라고 불리운다. 리얼리티의 부재 현상을 더 이상 모더니즘 내러티브 기법으로는 묘사해 낼 수 없기 때문에 이 시대의 문학성을 다양한 내러티브 기법으로 극복해 보려는 Barth의 작품들은 “도의적 공정성(PC, Political Correctness)”과 상호공존 (juxtaposition)을 지향하고 있으며 내러티브 전략으로 탈장르화 현상을 구체적이고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로고센트리즘(Logocentrism)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지향하고 있는 그의 인식론은 “수평적 관계”를 작품 속에서 구체적으로 추구하고 있다.Barth는 1956년 『선상(船上)오페라』(The Floating Opera)를 첫 작품으로 발표하고 1958년에 『여로의 끝』(The End of the Road)을 출판한다. 초기의 두 작품은 간결하고 난해하지 않은 내용으로 구성면에서 급진적이지 않고 아이러니컬한 테크닉을 이용하여 자살과 허무주의를 다루고 있다. 이 두 소설로 인하여 Barth는 재능있는 작가로 인정받게 된다.1960년에 『연초도매상』(The Sot-Weed Factor)을 발표했는데 이 소설은 17세기 영국과 미국을 배경으로 자칭 계관시인이라는 Ebenzer Cooke가 펼치는 파란만장한 모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미국적 특성의 척도를 강조하고 있으며, 역사를 패러디하는 내러티브 기법을 활용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새로운 표현기법으로 등장한“쌍둥이 시스템(Twin System)”이 많은 관심을 모은다. 1966년 『염소소년 자일즈』(Giles Goat-Boy)가 출판되었는데 이 소설 역시 장편소설로써 대학을 배경으로 가공할만한 거대한 컴퓨터가 반인반수 영웅으로 등장하는 것을 기록한 것으로 성서, 서양문화, 종교적 구조에 관한 패러디이며 Oedipus Rex를 현대적 해석으로 패러디하고 있는데 Barth는 이 작품으로 ‘미국 예술원상’을 받게 된다.1967년 8월에 전통적인 소설의 기법과 형식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변화와 시대정신에 적합한 소설을 더 이상 독자들에게 제시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따라서 리얼리티의 고갈을 선언한 논문 “The Literature of Exhaustion”(고갈의 문학)이 Atlantic지 제 220호에 게재되었는데 이 논문은 소설의 주제보다는 내러티브 기법에 관한 포스트모던적 선언문으로 오랫동안 미국문학의 흐름을 주도해 온 모더니즘적 소설 형식과 기법에 대한 비판으로 포스트모던 소설의 새로운 실험정신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1968년 『미로에서 길을 잃고』(Lost in the Funhouse: Fiction for Print, Tape Live Voice)를 발표했는데 이는 단편소설집으로 None Fiction에 가까우며 소설 내러티브의 한계를 새롭게 실험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는 작가 자신의 육성녹음도 일부 내러티브 기법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모더니즘적 내러티브의 플롯, 등장인물, 주제, 배경에 이의를 제기하는 새로운 글쓰기의 방법론이 표현되고 있다.1972년 발표한『키메라』(Chimera)는 Barth 자신이 선호하는 신화(神話)에 대한 재해석으로 세 개의 중편소설(novellas)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Perseus와 Bellerophon, The Thousand and One Nights에 등장하는 Scheherazade의 스토리를 새로운 실험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7년의 세월이 흐른 뒤인 1979년에 장편소설인 『편지들』(Letters)이 출판되었는데 이 소설은 초기 작품들에 대한 속편형식의 내러티브 기법으로 대표적인 자아 반영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전에 출판된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의 소설 속의 작가로 등장한 Barth가 편지교환을 하는데 편지의 형식이 “수문학(Numerature)”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이미 발표된 작품들을 읽지 않은 독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며 88통의 편지 하나 하나가 None Fiction의 성격을 띠고 있다.Barth가 주장한 “고갈의 문학”이론이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한 60년대 이후 미국 문단에 커다란 논쟁의 대상이었던 “소설의 죽음”문제를 다루었다면 1980년 1월 The Atlantic Monthly에 발표한“The Literature of Replenishment”(소생의 문학)은“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를 대변하는 Barth의 문학성을 집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적인 현대성”(traditional up-to-date)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기도 하다.1983년에 Barth는 『안식년』(Sabbatical: A Romance)을 발표했는데 로맨스라는 타이틀이 함께 표현되어 있지만 이 소설은 로맨스와 거리가 먼 정치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미국 CIA의 역할과 그 기능에 대한 비판과 함께 문학작품에 등장한 인물들의 비평서로서 Chesapeake Bay에서 Caribbean Bay까지 항해하고 돌아온 Fenwick Turner와 Susan Secker의 내러티브에 대한 평가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데, Barth는 이 소설에서“레퍼런스(reference)”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대화체의 내러티브를 활용하여 전혀 새로운 소설형식을 추구하고 있다.
서두남부는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음악과 남부의 음악과의 관계를 알아보자.목차서두본문서론본론1.미국의 음악1) 남부음악의 근간이 된 미국의 역사2) 미국 음악의 역사3)미국 대중음악의 역사4)미국음악의 종류(1) 컨트리(2) 힙합(3) 록(4) 포크송[folk song](5) 컨트리 앤드 웨스턴(country & weastern)2. 미국 남부의 특색3. 남부의 음악1)남부음악에 대하여2) 남부음악의 종류(1) JAZZ(2) BLUES(3) RHYTHM & BLUES(4) SOUL(5)락 앤 롤(Rock & Roll)4. 미국음악과 미국 남부음악의 관계결론참고자료본문서론미국의 대중음악사와 20세기 대중음악사가 그대로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인종의 혼합체이며 과학기술 발전의 선두주자인 미국은 대중음악의 모든 흐름을 좌지우지해왔다. 특히, 아이러니하게도 백인에게 핍박 받은 미국 남부의 흑인음악이 대중음악의 중심축을 이뤄왔다. 세기 초 몰려온 이민자로 북적였던 미국은 이들이 들여온 세계 각국의 민속음악과 미 남부 본토에서 사는 흑인 음악이 공존하며 뒤섞이기 시작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대중음악이 생겨나게 되고 사라져 갔다. 그 대표적인 음악으로는 Louisiana주 New Orleans에서 탄생한 재즈, Tennessee주 Memphis의 블루스와 Nashville에서 탄생한 미 남부 영국 발라드 전통의 컨트리 그리고 이 둘이 혼합되어 탄생한 엘비스 프레슬리와 그의 Rock&Roll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미국의 락을 들 수가 있다.이처럼 미남부의 음악은 역사적 지리적 조건에 의해 음악적으로 많은 발달을 하였고 후에 미국 대중음악의 뿌리가 되었다.본론1. 미국의 음악1) 남부음악의 근간이 된 미국의 역사1492년 컬럼버스 신대륙 발견 1526년 미국에서 흑인노예 이입 (移入) 개시1620년 청교도 메이플라워호로 뉴잉글랜드 도착 1682년 프랑스 루이지아나 점령1775~83년 미국독립전쟁 1789년 죠지 워싱 여성 블루스싱어 재니스 조플린과 왼손잡이 흑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화려하게 빛났다.블루스와 사이키델릭이 결합한 하드록과 블루스록은 레드 제플린, 제프 벡, 에릭 클랩턴, 롤링 스톤스, 에어로 스미스 등에 의해 계승됐다. 이들은 좀 더 광폭한 소리를 내는 헤비메탈로 변형돼 80년대 딥 퍼플, 블랙사바스, 스콜피언스, 메탈리카 등으로 이어졌다.우디 거스리를 시조로 하는 모던 포크는 59년 1회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청년들을 사로잡았다. 조앤 바에즈와 밥 딜런, 그리고 사이먼 앤드 가펑클은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자유인으로 기억되고 있다.70년대 :디스코의 시대였다. 젊은이들은 무대 위에서 발바닥을 비벼대고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디스코를 즐겼다. 존 트래볼타 의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77년)에서 그때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80년대 :다양해진 음악에서 단연 돋보이는 이는 마이클 잭슨 이다. 그는 대중음악을 음악에서 「연예사업」으로 물꼬를 돌린 주인공이다.「스릴러(83년)음반은 뮤직 비디오의 중요성과 스타의 이미지 조작의 중요성을 알려준 시금석이 됐다.90년대 :「너바나」가 앞장선 그런지와 얼터너티브록이 꽃을 피웠다. 팝계에서는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 등 「디바」로 불리는 대형 여성가수들이 맹활약했다. 미국 거리는 랩과 힙합 등 흑인의 거친 음악에 또다시 점령당했지만 유럽에서는 전자 댄스음악인 테크노가 활개를 쳤다.4)미국음악의 종류(1) 컨트리컨트리 뮤직은 미국의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컨트리 음악의 탄생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탄생과 맥락을 같이한다. 1776년 7월 4일 아메리카 합중국이 탄생되었을 당시 그곳에는 청교도 영국인들을 비롯하여 유럽 사람들과 흑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자국에서 배웠던 음악들을 각기 발전시켜 나갔으며 일정한 형식의 음악이라기보다는 전래 민요를 노래하였다. 컨트리 뮤직이란 전통에 대한 것이다. 비슷한 주제들 위에서 끝없이 다양한 모습들을 단순한 태로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블루스란 장르처럼, 복잡한 요인들 때문에 역사적으로 미국의 다른 지역과 구분된다. 작물의 긴 생장기간, 주종작물 중심의 농경방식, 대농장체제, 흑인 노예와 자유 흑인 노동자를 이용한 노동력 등이 특징적이다. 백인이 흑인을 지배하는 인종적 지배형태가 17세기 이후 남부지방의 정치적·경제적 특징을 결정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로소 인종지배현상이 완화되었다.남부지방은 기후가 따뜻해서 연중 서리가 내리지 않는 날이 200~290일인데 담배·쌀·사탕수수·면화 등 이윤 높은 작물들이 자라기에 적합하다. 이러한 기후조건과 풍부한 강우량으로 17~18세기 유럽에서 온 이주민들은 작물을 재배해서 수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지속적인 노동력이었다. 결국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이 국제노예시장에서 매매되어 노동력으로 공급되었다. 노예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라는 특이한 조건 때문에 대농장 노예제도가 발생했다. 이것이 남부지방과 미국의 다른 지역을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이 되었다. 1790년쯤 흑인들은 남부지방 인구 가운데 약 1/3을, 그리고 대농장 노동력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게 되었다.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했을 때 400만 명의 흑인들이 속박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 흑인들을 소유한 백인들은 백인 전체 인구 가운데 1/6이 채 못 되었다.경제적으로 남북전쟁 전의 남부는 면화생산에 크게 의존했다. 남부지방의 면화는 영국의 섬유시장을 겨냥한 것이었으므로 공업화된 북부지방의 정치적·경제적 힘이 커가는 것을 반대했다. 남부의 사회철학은 지방귀족의 이상을 지켜나가는 것으로서, 북부지방의 사회철학과는 뚜렷이 대조되었다. 남부지방에서는 자유보다 정체된 사회 내부의 계층질서와 같은 보수적 가치가 옹호되었고, 진보보다 안정성을 선호했다. 단순한 자본의 축적에 따른 생활상보다 품위 있는 귀족적 생활습관을 중요시했다.미국독립전쟁 시기부터 1830년경 사이에 북부는 노예폐지론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노예제를 온건히 반대하던 종래의 입장에서 강하게 비난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이에 다. 또 재즈피아노 주자이며 작곡가인 제리 롤 모튼은 1902년 자기의 피아노 연주스타일을 재즈라 하고 재즈의 창시자로 자칭하기도 하였으나 모두 확실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1917년에 녹음된 사상 최초의 재즈 레코드레이블 당시는 jazz가 아니라 jass 또는 jaz, jas 등이었다고 한다.? 재즈의 발생과 의미재즈는 미국의 노예제도를 배경으로 하여 노예 신분이었던 미국의 흑인들에 의해서 시작된 음악이다. 17세기부터 성행한 노예무역은 주로 서부 아프리카 지역인 세네갈, 기니아 해안, 니제르강 유역, 그리고 콩고 등지를 중심으로 행하여 졌다. 노예상인들은 평화롭게 살고 있는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대거 노예 선에 싣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데려와 가혹한 노동을 강요했다. 그들은 타의에 따라 먼 타향에 정착해 수세대를 거치며 힘든 노동에 시달렸고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 받지 못했다. 재즈는 위와 같이 역경 속에 있었던 미국의 흑인에게서 비롯된 음악이므로 아프리카의 음악적 요소가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속에 흐르는 감정과 가치관은 그들만의 특유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백인의 사회 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백인의 영향을 대단히 많이 받았으리라는 것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즉 재즈는 흑인적인 요소와 백인적인 요소의 결합으로 태어난 새로운 방향의 음악이라고 하겠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음악을 재즈라고 부르게 된 것은 1910년대에 들어서부터이며 그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래그타임음악 또는 래그라고 불렀다. 재즈는 여러 가지 차별이나 기성개념에 반항하면서 퍼레이드의 행진음악에서 댄스음악 그리고 감상을 위한 음악으로 발전하여 지금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대음악의 괄목할 만한 한 분야가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내용 ·스타일이 창출될 것으로 생각된다.?재즈의 종류*RAGTIME재즈가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그 시초가 래그타임이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현재 전설적인 피아노 연주로 유명한 스코트 조플린은 당대에 가장 인기 수많은 밴드들이 태생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백인 뮤지션들이었음에도 흑인들의 정통적인 블루스 연주에 참여하게 된 인물들이 몇 있었다. 미국의 Mike Bloomfield 와 Paul Butterfield와 같은 인물들은 그 원조 격에 해당되었으며, 그들이 결성하고 참여하였던 수많은 밴드들은 블루스 락 역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존재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조류는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John Mayall을 비롯하여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수많은 그룹들과 대가들이 군웅할거 하였던 것이다. 또한 수많은 그룹들은 블루스를 자신들의 음악적 토양으로 삼은 채, 사이키델릭, 포크, 컨트리와의 융합을 꾀하기도 하였고 그와 같은 음악적인 흐름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폭넓게 확대되어 나갔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90년대에도 많은 블루스 락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담금질하면서 음악 가운데 자신의 혼을 불어넣고 있다. 최근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힙합이나 랩만이 흑인, 아니 미국인들의 정서를 담고 있는 것만은 결코 아니다. 물론 초기의 정서가 퇴색된 감이 없지는 않음에도, 태동 된지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한 애환과 비애를 담 내고 있는 음악, 바로 Blues인 것이다.또한 블루스는 재즈와 함께 미국의 팝 음악계에 절대적인 음악적 요소가 되고 있다.백인 연주자들도 자연히 흑인의 특별한 음악에 열중하고 자신들도 배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흑인들이 농촌에서 도회지로 옮겨 가면서 자연히 기타 등 악기도 이삿짐에 실었다. 남부의 농촌이라는 제한된 작은 지역에서만 노래하던 리듬 &블루스(흑인음악)가 도회지로 옮겨가면서 백인들의 호응을 받는가 하면 클럽 등지에서는 흑인 R&B의 프로그램을 놀려 손님 끌기에 박차를 가했다.백인 연주자들도 자연히 흑인의 특별한 음악에 열중하고 자신들도 배우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는 평소 들려주던 백인들, 즉 프랭크 시나트라나 빙 크로스비, 로미도시 악단 연주 등을 서서히 줄이며 이 흑인의 리듬&블루스를 방송하다.
JailBird는 여러 개의 플롯이 얽혀서 나온다. 사코와 반제티라는 오판으로 억울하게 사형당한 노조원 케네드 휘슬러라는 노동 운동가와 그의 모델이 된 파워즈 해프구드, 일명 로버트 팬더 박사라고 하는 킬고어 트라우트가 쓴 과학 소설에 나오는 판사, 주인공 월터에프 스타벅, 그를 하버드로 보낸 알렉산더 해밀턴 매콘, 닉슨과 그의 악명 높은 각료들, 월터 스타벅의 옛 애인이자 거대한 조직체인 램잭 법인체의 대주주인 매리 캐들린 오루니 등이 연출하는 플롯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언제 하나의 플롯이 다른 플롯으로 넘어가는지 알 수 없게 무늬를 엮듯이 전개되어간다.소설은 킬고어 트라우트가 감옥에 다시 돌아왔다는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어 작가는 그가 밖에서 견뎌 내지 못하고 돌아온 것인데 많은 착한 사람들이 바깥세상에서 견디지 못하므로 그것은 조금도 창피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 서두는 이 작품이 감옥살이하는 사람들을 다룰 것이지만 그들이 반드시 악인이 아니라 오히려 밖에서 사는 사람들보다 착할 수도 있다는 전제를 암시한다. 주인공 월터 에프 스타벅은 끝에서 감옥으로 되돌아가고 있으며 작 중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 - 사코와 반제티, 닉슨과 그의 각료, 킬고어 트라우트 (로버트 펜더) 제목인 [제일버드] 라는 낱말이 의미하듯 이것은 감옥을 자기 집 드나들 듯 들락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작품 안에서 우리는 수많은 실재 인물과 마주친다. 사코와 반제티도 그러려니와 리차드 닉슨과 그의 각료들은 다른 허구적인 인물과 함께 주인공 월터 스타벅의 인생 반경 속에 들어오면서 그의 행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월터 스타벅은 이렇게 실재인물과 교섭을 갖는 한편 킬고어 트라우트의 작품에 나오는 판사의 영혼이 그의 몸속에 들어와 붙음으로써 또 다른 차원의 허구 세계와의 접촉점을 제시하는 것이다.월터 스타벅은 미국에 이민 와서 부잣집에서 하인으로 있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 집 아들 알렉산더 해밀톤 매콘은 아버지가 소유하는 쿠야호가 철강 회사의 파업 때 파업자와 가족들이 직업적인 저격수에 의해 사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 충격 때문에 심한 말더듬이가 된다. 그는 도저히 사업을 계승할 수가 없어서 은퇴한 뒤 예술품을 수집하며 산다. 그는 자기 운전수의 아들인 스타벅을 길들이고 가르쳐 하버드 대학에 보낸다.월터는 어려서 이야기로 들은 사코와 반제티를 자기의 이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는 이상을 실천하지 못한다. 그는 그러한 자신을 자책하지만 그의 여자 친구는 이렇게 위로한다. “괜찮아. 심장 없이 태어난 걸 어떻게 해. 적어도 자기는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믿고 있는 일을 믿으려고 애는 썼잖아. 그러니까 자긴 역시 착한 사람이야.”작가는 노동자와 기업가의 관계를 모색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경제적 평화 혁명을 위한 매리 캐들린의 계획의 어디가 잘못되었을까? 하나는 연방 정부가 램잭이 가진 그 모든 가업을 시만을 위해 운영한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고 또 하나는 사업의 대부분은 오직 이익을 올리도록 만들어졌지 사람들의 필요에 대해서는 천둥 번개만큼이나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월터는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감옥에 돌아가기 전에 친구들이 베푼 고별 파티에서 이렇게 말한다. “결국 이 지구를 죽이는 것이 뭔지 아나? 진지성의 절대적 결핍이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음은 어떻게 될 건지, 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아무도 아무런 관심이 없어.” 그리고 스타벅 자신도 끝에서 “나는 진지한 말을 하는 것을 포기했다.” 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포함한 현대 사회 상에 대한 통절한 풍자이자 고발이다.이 작품에서 선량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박해를 받고 있는 듯이 보인다. 펜더 박사와 같은 사람은 2차 대전 때 일본에 주둔하고 있다가 일본인으로 사칭하는 북한의 간첩을 사랑한 나머지 국가 반역죄로 종신형을 받았다. 주인공 스타벅도 공산주의자로서의 전력을 심문받는 자리에서 무심코 친구의 이름을 말했다가 친구의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는가 하면 자기 사무실에 있던 궤짝에 닉슨 행정부의 부정한 정치 자금이 들어 있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하고 또 램잭의 주인 매리 캐들린 오루니가 죽은 뒤 그녀의 죽음이 야기시킬 혼란을 막기 위해 그녀의 유서를 감추었다가 유서 은닉죄로 다시 감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미국 그 자체를 상징하는 듯한 램잭의 소유주 매리 캐들린 오루니에 대한 세상의 태도는 잔인하고 가혹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무슨 기현상이나 되는 것처럼 사진을 찍거나 붙잡거나 어떻게든 괴롭히거나 - 아니면 죽이고 싶어 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손이나 돈을 위해서라도 그랬거니와 복수를 위해서도 그녀를 죽이고 싶어 했다. 램잭은 무수한 기업체를 훔치지 않으면 파멸시켰고 약소국가의 정부를 전복시키는데 한몫 거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작품 및 해석1. Introduction 서 시Hear the voice of the Bard! 시인의 목소리를 들어라!Who Present, Past, & Future sees ; 현재, 과거, 미래를 보는;Whose ears have heard 그의 귀는 듣고 있다the Holy word 거룩한 말씀을That walk'd among the ancient trees ; 태초에 나무들 사이를 거닐던Calling the lapsed Soul 타락의 영혼을 부르며And weeping in the evening dew ; 저녁 이슬에 울면서That might controll 다스리고The starry pole, 별빛 하늘을And fallen, fallen light renew! 타락되고, 떨어진 빛을 새롭게 하는!“O Earth, O Earth, return! “오 지구여, 오 지구여, 돌아오라!Arise from out the dewy grass ; 이슬의 풀밭에서 일어나라;Night is worn, 밤이 가고And the morn 아침은Rises from the slumberous mass.” 잠든 대지로부터 솟아 오른다.”“Turn away no more ; “더 이상 떠나지 말아라 ;Why wilt thou turn away? 왜 너는 가려 하느냐?The starry floor 별빛 하늘과The watry shore 물의 해안은Is giv'n thee till the break of day.” 새벽이 올 때까지 너에게 주어진다.”* Introduction은 타락한 인간 영혼의 경험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성의 지배아래 억압받고 있는 경험 세계에 대한 시인의 의도를 밝힌 시이다. 한편 근원은 창세기 3:6-9(사탄의 유혹으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장면과 하나님의 눈을 피하는 장면)에 있다.2. Earth's Answer 대지의 대답Earth rais'd up her head, 대지는 그녀 머리 위로 올라온다,From the darkness dread이들은 비참하게 되어,Fed with cold and usurous hand? 차갑고도 강탈하는 손길로 한 술 먹이네.Is that trembling cry a song? 저기 떨리는 소리가 노래인가?Can it be a song of joy? 기쁨의 노래 일 수 있는가?And so many children poor? 그렇게 많은 어린이들이 가난한데?It is a land of poverty! 빈곤의 땅이다.And their sun does never shine, 그들의 태양은 결코 빛나지 않고,And their fields are bleak & bare, 그들의 들판은 헐벗고 황량하다,And their ways are fill'd with thorns; 그들의 길은 가시로 가득차고,It is eternal winter there. 거기는 영원한 겨울이다.For where-e'er the sun does shine, 태양이 빛나는 곳엔 어디든지,And where-e'er the rain does fall, 비가 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Babe can never hunger there, 그곳엔 아이가 결코 배고파 하는 일 없고,Nor poverty the mind appall. 가난이 마음을 겁주는 일 없을 것이기에.5. The Chimney Sweeper 굴뚝 청소하는 아이A little black thing among the snow 눈 속에 작은 시커먼 것Crying “'weep,'weep,”in notes of woe! 굴뚝 쑤셔요 굴뚝 쑤셔요 슬픈가락으로 부르짖는다.“Where are thy father & mother? say?” 너의 아빠 엄마는 어디 계시니?“They are both gone up to the church to pray. “모두 기도하러 교회 갔어요.“Because I was happy upon the heath, “내가 황야에서 행복해 하고And smil'd among the winter's snow; 겨울 눈 속에서 미소지었으dare seize the fire? 어떤 손이 감이 그 불을 잡으려 하나?And what shoulder, & what art, 그리고 어떤 어깨와 어떤 기술이,Could twist the sinews of thy heart? 너의 심장의 근육을 비틀 수 있었는가?And when thy heart began to beat, 그리고 너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을 때What dread hand? & What dread feet? 어떤 무서운 손이? 어떤 무서운 발이?What the hammer? what the chain? 어떤 망치가? 어떤 쇠사슬이?In what furnace was thy brain? 어떤 용광로에 너의 두뇌는 있었나?What the anvil? what dread grasp 어떤 모루가? 어떤 무서운 손아귀가Dare its deadly terrors clasp? 감히 그것의 무서운 공포를 잡을 수 있는가?when the stars threw down their spears 별들이 그들의 창을 내던지고And water'd heaven with their tears, 그리고 그들의 눈물로 하늘을 물들일 때Did he smile his work to see? 그 분은 자신의 일을 보고서 미소 지었는가?Did he who made the Lamb make thee? 양을 만드신 그가 그대를 만들었는가?Tyger! Tyger! burning bright 호랑이! 호랑이! 활활 불타는In the forests of the night, 밤의 숲속에서,What immortal hand or eye 어떤 불멸의 손과 눈이Dare frame thy fearful symmetry? 너의 무서운 균형을 만들 수 있었는가?* The Tyger는 신비적인 상징시로 The Lamb와 대조된다. 여기서 호랑이는 이성의 지배 아래 있는 경험세계의 악을 상징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분노을 상징한다.* 첫째 연: 창조의 위대성 찬탄, 둘째 연: 도입 단계, 셋째 연: 창에 묘비들이 있는것을;And Priests in black gowns were walking their rounds, 그리고 검은 가운을 한 신부들이 그들의 주위를 돌아 다니면서,And binding with briars my joys & desires. 찔레로 나의 기쁨과 욕망을 묶고 있음을.* ‘사랑의 정원’도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근원으로 했으며, 당시 잘못된 종교제도에 대한 풍자시로 볼 수 있다. 여기 사랑의 정원은 순수세계의 아름다운 정원이 아니고, 타락이후의 경험세계의 무덤과도 같은 정원을 상징하고 있다. 이 시는 또한 당시의 기독교의 지나친 금지와 억압을 비판하며 인간의 순수한 기쁨과 욕망을 강조(마지막 행)하고 있다.12. London 런 던I wander thro` each charter'd street, 나는 특허 받은 거리를 헤맨다,Near where the charter'd Thames does flow, 특허 받은 템즈강이 흐르는 근처를,And mark in every face I meet 그리고 내가 매일 만나는 이의 얼굴에서Marks of weakness, marks of woe. 나약한 표정과, 슬픔의 표정을.In every cry of every Man, 모든 사람의 모든 울음에서,In every Infant's cry of fear, 모든 아이의 두려워하는 울음에서,In every voice, in every ban, 모든 목소리에서, 모든 억압에서,The mind-forg'd manacles I hear: 마음이 만든 쇠사슬 소리를 나는 듣는다.How the Chimney-sweeper's cry 어떻게 굴뚝 청소하는 아이의 울음소리가,Every blackning Church appalls, 검어진 모든 교회를 놀라게 하고,And the hapless Soldier's sigh 그리고 불행한 병사의 한숨이Runs in blood down Palace walls. 궁정의 벽 아래로 피가 되어 흐르는가.But moloud. 구름속에 숨겨진 악마처럼.Struggling in my father's hands, 아빠의 손에서 흔들어대며,Striving against my swadling bands; 포대속에서(대항하여) 바둥거리며,Bound and weary I thought best 싸이고 약해져 나는 최상의 생각을 했다.To sulk upon my mother's breast. 나의 엄마 가슴에서 실쭉거리는 것이.* ‘순수’편의 “Infant Joy”와대조되는 시이다. 타락한 경험세계에서 태어난 유아는 출생시부터 고통과 슬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표현되고 있다. 또한 이런 슬픔을 가진 어린 유아는 엄마의 가슴(하나님의 품안)에 있는 것이 최상의 생각이라고 한다.15. A Poison Tree 독 나 무I was angry with my friend: 나는 친구에게 화가 났었다:I told my wrath, my wrath did end. 내가 나의 화를 말했더니, 나의 화가 끝이 났다.I was angry with my foe: 나는 원수에게 화가 났었다:I told it not, my wrath did grow. 나는 그것을 말하지 않았더니, 나의 화는 자라갔다.And I waterd it in fears, 그리고 나는 그것에 두려움 속에 물을 주었다,Night & morning with my tears; 밤과 아침에 나의 눈물로써:And I sunned it with smiles, 그리고 나는 그것에 미소로서 햇빛을 주었다,And with soft deceitful wiles. 부드럽고도 속이는 계략으로.And it grew both day and night, 그리고 그것은 밤낮으로 자라갔다,Till it bore an apple bright. 그것이 빛나는 하나의 사과를 열매 맺기까지,And my foe beheld it shine, 그리고 나의 원수는 그것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And he knew that it was mine, 그리고 그는 그것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