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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의 이해, 교육의 기초
    현대 교육의 이해제 1장. 교육의 개념적 기초교육의 동양적 어원은 맹자의 진심장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으며,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무엇인가 가르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교육의 서양적 어원은 부모나 교사가 자녀가 아동에게 가르치고 양육한다는 것과 아동의 잠재적 능력이 잘 발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는 의미가 있다.교육의 정의 방식에는 조작적 정의, 약정적 정의, 기술적 정의, 규범적 정의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조작적 정의는 교육의 개념을 좀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해 교육활동의 요소와 그것이 작용하는 실제 과정을 관찰 할 수 있는 형태로 정의하며, 약정적 정의는 의사소통을 위해 복잡한 현상을 무엇이라고 부르자고 약속하는 정의를 말한다. 기술적 정의는 하나의 개념을 이미 알고 있는 다른 말로 설명함으로써 그 개념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정의를 말하며, 규범적 정의는 ‘강령적 정의’라고도 하는데 하나의 정의 속에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와 같은 규범 내지 강령이 들어있는 정의를 말한다.교육의 대표적 학자로는 정범모와 피터스를 살펴 볼 수 있는데, 정범모는 “교육의 개념을 인간 행동의 계획적인 변화”라고 정의하였다. 피터스는 교육은 가치 있는 활동 또는 사고와 행동의 양식으로 사람들을 입문시키는 성년식으로 보고 있다.또한 교육의 목적은 내재적 목적과 외재적 목적으로 나누어서 살펴 볼 수 있다. 내재적 목적이란 교육이 다른 것의 수단이 아닌 교육의 개념 혹은 교육의 활동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목적을 말하며, 교육의 외재적 목적이란 교육이 ‘국가 발전’ ‘국가 발전의 수단’ 등의 다른 활동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의미한다.comment;이 장을 공부하면서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교직에 대해 관심이 있어 공부하면서도 정작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일이 없는 듯하다.교육이란 인간 행동의 계획적 활동으로 학생들이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깨닫지 못하는 육사에서 이러한 유교적 교육이 제도화된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며, 유교가 국가통치의 이념으로 정비되는 고려, 조선 시대를 거쳐 유교적 교육의 제도화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comment;교육은 고대에서 현대로 오는 동안 많은 변화를 거쳤다. 하지만 교육에서 항상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교육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려있는가 하는 것이다. 예전보다 평등한 사회가 도래한 것은 자명한 일이고 누구나 능력에 따라 평등하게 교육 받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교육의 불평등 문제는 해소되지 못한 것 같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했던 수시제도가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기는 현상을 초래하게 되었고, 결국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독이 되고 있다. “돈 많으면 서울대 가고 오래살고...” 라는 말처럼 아직도 교육의 불평등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다. 21세기라고 하는 오늘날에도 이런 문제로 고민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제 3장. 교육의 철학적 기초교육 철학이 하는 비판적 탐구활동은 분석적 역할, 평가적 역할, 사변적 역할, 통합적 역할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먼저 분석적 역할이란 일반적으로 교육적 의미체계를 구성하는 의미와 그 논리적 관계를 명백히 분석하는 것을 가리키며, 평가적 역할은 주어진 기준이나 준거에 비추어 교육적 의미체계나 교육 실제를 평가하는 활동을 가르킨다. 사변적 역할은 교육에 대한 새로운 설명체계나 의미체계를 수반하여 교육현상을 설명하거나 교육적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말하며, 통합적 역할은 여러 가지 차원과 관점에서 제시되는 교육에 대한 다양한 의미체계를 전체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통합된 체계로 파악하려는 역할을 말한다.현대 교육철학의 사조는 진보주의, 항존주의, 본질주의, 분석적 교육철학, 비판적 교육철학,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으로 전개되어 갔다.진보주의는 개별 아동을 강조하는 교육사상으로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루소, 페스탈로치, 프뢰벨, 몬테소리 등이 있다. 항존주의는 교육의 세속화를 반대하고 형이상학리적 기초학습자의 인지발단을 연구하고 이를 기초로 학습자의 학습과정을 이해하는데 매우 큰 공헌을 한 심리학자는 피아제다. 피아제는 인간의 인지과정을 평형화, 도식, 동화, 조절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아동은 스스로의 세계를 구조화하고 이해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의 발달단계를 감각 운동기, 전조작기, 구체적 조작기, 형식적 조작기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비고츠키는 아동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는 사회적 존재로 보았으며, 상호작용에 필수적인 요소인 언어의 습득을 아동 발달에 가장 중요한 변인으로 보았다.최적의 학습효과를 도출하고자 하는 노력은 행동주의와 인지주의라는 두가지 입장에서 연구되고 발전되어 왔다. 행동주의 학습이론에서는 자극과 반응의 연합을 학습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인지주의 학습이론에서는 인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인지적 과정, 즉 사물을 인식하고 해석하고 기억하는 방법 등을 강조하여 왔다.comment;최근에 들어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의 중요성이 부각됨으로 인하여 교육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주장한 바와 같이 인간의 초기경험은 인격형성에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 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부모와의 유대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증가하고 있다.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아이들의 애정 결핍 현상이 드러나게 되고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얼마 전 일어났던 조승희 총기 난사 사건은 이런 사회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행동은 애정 결핍으로 인한 소외감, 외로움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가 택한 그 참혹한 방법은 세상에 주목받고 싶은 그의 마지막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교육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지만 정작 도덕성, 인성 교육은 등한시 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제 5장. 교육의 사회적 기초교육의 사회적 기능은 기능주의, 갈등주의로 보는 거시적 관점과 교육과정의 사회학로 보는 미시적 관점이 있다적된 문화 내용이면서 문명의 변화방향을 알려주며, 학습자는 교육의 대상이자 목표이고 기준이 된다. 사회는 학교교육이 일정한 사회적 틀 속에서 이루어지며 학교를 통해서 길러진 학습자가 일정한 사회 속에서 활동하게 된다는 점에서 교육과정 결정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이다.교육과정은 공식적 교육과정, 잠재적 교육과정, 영 교육과정으로 나누어 설명 할 수 있다. 공식적 교육과정이란 국가 교육과정을 담은 문서, 시?도 교육청의 교육과정 지침, 지역 교육청의 장학 자료, 교과서를 비롯한 수업용 교재, 학교 교육과정 운용계획, 교사의 수업계획, 실시된 수업, 특별활동, 조회 등은 교육적 목적과 목표에 따라 분명하게 의도되고 계획된 가시적, 표면적, 혹은 공식적 교육과정이다. 잠재적 교육과정은 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의 공식적 교육과정에서 의도? 계획하지 않았으나 수업이나 학교의 관행으로 학생들이 은연중에 배우는 가치, 태도, 행동양식과 같이 교육결과로서 경험된 교육과정을 말하며, 영교육 과정은 학교에서 소홀히 하거나 공식적으로 가르치지 않는 지식, 사고양식, 가치, 태도, 행동양식, 교과 등으로서 학습자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comment;시대의 흐름에 따라 국제적?사회적 인식이 변화하였고, 이에 교육도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시기라 생각한다. 해마다 새로운 교육 정책이 등장하긴 하지만, 오히려 교사와 학생들에게 혼란만 초래할 뿐 별다른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 정부 수립 후 일곱 번째 교육과정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고, 이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시대 흐름에 맞는 올바른 교육이 실시되기 위해서는 우선 현 교육과정에 대한 질 관리를 제고해야 하며, 외국의 사례에 급급하게 따라가기 보다는 우리나라 현 실정에 맞는 올바른 교육과정을 채택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제 7장. 교수?학습학습은 연습이나 경험의 결과로 발생하는 비교적 영속적인 행동상의 변화를 말한다. 개인이 구체적인 조건하에서 또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생과 교사에게 학습 진행 정도를 알려주고 교육과정 및 수업방법을 개선시키기 위한 평가다. 총합평가는 교수? 학습이 완료된 시점에서 교육목표의 달성 여부나 정도를 종합적으로 판정하는 평가로서 총괄평가라고도 한다.또한 평가 결과를 해석함에 있어서 참조하는 기준에 따라 규준 참조평가, 준거 참조평가, 능력 참조평가, 성장참조평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규준 참조 평가는 개인이 얻은 점수나 측정치를 비교 집단의 규준에 비추어 상대적인 서열에 의하여 판단하는 평가를 말하며, 준거참조평가는 학습자가 학습해야 할 학습과제의 영역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를 준거에 비추어 판단하는 평가다. 능력 참조 평가는 학생이 지니고 있는 능력에 비추어 얼마나 최선을 다하였는가에 초점을 두는 평가고, 성장참조평가는 일련의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학생이 얼마만큼 성장?변화하였는가에 초점을 두는 평가다.측정 대상의 속성을 제대로 측정하기 위해서는 측정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는 도구가 필요하고 이에 사용되는 도구에는 타당도와 신뢰도가 있다. 타당도는 검사도구가 측정하고자 하는 내용을 측정하였는가의 문제로서 검사점수가 검사의 사용 목적에 얼마나 부합하는가 하는 합목적성을 의미한다. 신뢰도는 측정하려는 것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일관성 있게 측정하는가 얼마나 정확하게 오차 없이 측정하는가와 관련된 것이다.comment;우리는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교생활을 하면서 평가라는 것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학교에는 응당 시험이 있고, 시험의 결과로 점수가 나오며, 점수 순서에 따라 석차등급이 매겨지고, 이에 따라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이 갈라지게 된다. 학교에서 행해지는 대부분의 평가들이 학생들의 인지적 측면만을 측정하고 있고 이에 통합형 논술, 수행평가 등 다양한 평가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이 역시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평가에서 중요한 것은 평가의 의의가 시험을 보고 점수를 매겨 석차를 내는 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평가는 이.
    교육학| 2007.10.16| 11페이지| 1,500원| 조회(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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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영
    Ⅰ. 서론한국 현대 시론 강의를 들으면서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작가나 작품에 대한 작위적인 해석이 아닌 새로운 관점에서 글을 보고 이해하려는 관심이 생긴 듯하다.이번 보고서 역시 작위적인 해석과 독창적인 관점 사이에서 많이 고민했다. 작품의 해석이란 어느 정도의 객관성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작가의 생애와 그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을 무시하고 내 나름대로 독창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듯하다. 더구나 참여 시인의 경우 대체로 그 시대적 상황과 호흡을 같이한 자신들의 견해가 뚜렷해서 그것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듯하다.내가 선택한 김수영 역시 신동엽과 함께 분류되는 대표적인 참여 시인으로 독재와 억압에 적극적으로 항거했던 민중 시인이다. 또한 그는 이어령과의 참여순수논쟁을 통해서 명백한 그의 문학관을 피력하기도 했다.이렇듯 명백하게 참여 시인으로 해석 할 수밖에 없는 김수영의 작품 세계에 나타난 이미지즘적 측면을 어떻게 독창적인 관점에서 접근 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이미지란 것도 지엽적 요소로 파고들 여지가 있고 그러한 주제를 잡는 것 또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따라서 본고에서는 김수영의 작품 세계를 살피는 데 있어 최대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되 그동안 해석에 있어서 다소 상투적이고 편파적이었던 작품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 해보고자 한다.Ⅱ. 김수영의 작품세계그의 작품 중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참여문학이고 그에 대한 공헌도 그의 초기 시세계보다는 후기시임을 주목하여 그의 시세계를 1960년 4월 혁명 전후로 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1960년 한 해를 굳이 따로 다루는 것은 그 한 해 동안 김수영은 오로지 혁명으로 인해 환희와 좌절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4월 혁명이라는 한 가지 사적 사건이 전개된 그 한 해는 김수영의 문학이 개인적 삶의 문제로부터 집단적 사회적 삶의 문제로 확산되어 가는 통과제의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의 그의 시세계는 훨씬 더 성숙한 모습을1960)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나는 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안다이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이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부분(1960)“독재자에 대한 증오와 혁명의 감격을 우선 그 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는 식의 격렬한 감정을 토로하던 김수영은 감정의 고열을 앓고 난 후 차츰 혁명의 진지성을 깨닫게 된다.“자는 아기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평온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4월 혁명의 진실성, 진지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독재정권이 물러간 후에도 정치적으로 부조리는 여전하고 민주주의는 요원하며 지식인들은 침묵한다.피의 냄새가 섞인 자유는 무화되고 “혁명은 고독한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끝내는“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어버린”) 혁명의 실패를 시인은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혁명의 실패에 대한 투철한 인식은 시인으로 하여금 조급성을 버리고 혁명의 완수를 역사성 속에서 파악하게 만든다. 실망이 가벼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런 역사적 인식을 재산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김수영은 1960년 한해를 혁명에 집착함으로써 자신의 의식 속에 투영되는 혁명의 실상과 허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아울러 그 시대의 진실을 증언하고자 하였다.2) 어조의 다양성4월 혁명이 전개된 시기에 쓰여진 김수영 시의 대표적 특징은 어조의 다양성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어조의 다양함은 그가 독재 정권을 쓰러뜨린 민중의 승리에 얼마나 감격했으며 혁명의 실패를 인식하고 또 얼마나 절망했는지를 그리하여 고통 당하는 민중에 대한 연민과 혁명을 실패하게 한 자들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진실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시마다 다른 목소리를 느끼게 하는 이시기의 시중에서 어조의 현저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아 손들어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빵!빵!빵!키크야! 너는 저놈을 쏘아라빵!빵!빵!빵!쨔키야! 너는 빨리 말을 태도가 그만큼 가변성을 지니게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그의 시대가 안정된 가치체계가 흔들리던 불안한 시대였음을 나타내기도 한다.2. 자기 분석과 존재의 비극성혁명 이듬해부터 1968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타계하기까지 쓴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자기 분석과 존재의 비극성으로 표현 할 수 있다. 혁명의 열기를 앓고 난후 그는 정치적 성격을 띤 발언을 멈추고 다시금 현실적 삶의 문제에 천착하게 된다.이 시기의 삶의 문제는 전기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시인의 자의식속에 갇혀 있는 삶의 자유와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삶과 관련 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즉각적이고 직선적인 저항이나 분노가 아닌 불가피한 현실은 수락하면서도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의 개선은 물론 부조리한 현실의 개선까지도 시도하려는 차원 높은 저항을 드러낸다. 이는 바로 혁명의 실패를 통해 터득한 시인의 인식변화를 나타낸다.이 시기 김수영의 시에 나타나는 중심적 주제는 정직성을 바탕으로 한 폭로적 자리 분석을 통해 드러나는 보편적 인간 존재의 비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비극성이란 세상의 허위에 절망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삶을 긍정하고 가능한 한 그것을 정당화하려고 애쓰는 비극적 현실 인식의 시적표현을 의미한다.혁명의 실패에 대한 인식을 통해 세상의 허위 속에서 세상을 사는 삶의 지혜를 터득한 김수영은 부조리한 현실과의 직전적인 대결보다는 적들과의 화해와 조화로운 공존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의 시에서 나타난다.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起居)를 같이해도나는 이렇듯 소년(少年)처럼 되었다흥분(興奮)해도 소년(少年)계산(計算)해도 소년(少年)애무(愛撫)해도 소년(少年)(중략)죽음이 오더라도이제 성을 내지 않는 법을 배워주마- 부분(1961)아아 그리고 저 도봉산보다도더 큰 증오도굴욕도계집애 종아리에만눈이 가던 치기(稚氣)도그 밖의 무수한 잡동사니 잡념까지도깨끗이 버리고- 부분 (1961)아픈 몸이아프지 않을 때 까지 가자온갖 식구와 온움과 이를 위해 노력하는 시인의 치열한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시인은 ‘식구’와 ‘친구’ 그리고 ‘적’을 동질적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시인이 ‘온갖 식구와 온갖 친구와 / 온갖 적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은 이들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려하는 것을 나타낸다.이것은 ‘무한한 연습’을 요구하는 것이다. 시인은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 까지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끊임없는 시도와 좌절을 통해서 삶을 완성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이를 통해 볼 때 김수영의 후기시에 나타나는 세계와의 화해적 태도는 결코 부패한 삶이나 타락된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그런데 김수영이 세계와의 화해와 적들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해 선택하고 있는 구체적방법은 사랑이다. 그의 후기 시에는 대상을 애정 어린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이러한 사랑의 자세가 자주 등장한다.)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중략)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부분 (1964)사랑은 적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맞섬의 팽팽한 긴장을 해 소시킨다. 시인은 근원적 사랑의 정신을 통해 자신을 자학과 부정에 빠뜨리려는 세계와 화해하려한다. “전통은 아무 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장이라도 좋다 ”라는 긍정적 사고는 자신의 삶과 관련 된 모든 대상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자 노력하는 그의 태도로부터 결과된 것이다.그는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삶의 현실적 조건들이나 갈등과 긴장을 고조시키는 적들을 사랑의 정신으로 포용하고 이해함으로써 세계와의 완벽한 화해를 시도한다.현실비판이라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내적 성찰과 도덕적 자기반성을 토대로 하지 않을 때에 공허한 논리로 변해 버리기 쉽다. 그런 측면에서 김수고 했고 이는 김수영의 고도한 시적 기법으로 볼 수 있다.이렇듯 김수영은 폭로적 자기 분석을 통해서 자아의 진실과 삶의 현실적 조건사이에서 긴장, 갈등하고 있는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소시민적 삶에 안주하고 있는 무기력한 인간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Ⅲ. 현대적 관점에서 김수영의 시 다시보기1. 눈눈은 살아 있다.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마당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기침을 하자.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눈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기침을 하자.눈은 살아 있다.죽음을 잊어버린 영혼 (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기침을 하자.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눈을 바라보며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마음껏 뱉자.(1956)눈은 두 가지 속성을 지닌다. 한 가지는 차가움이고 다른 한 가지는 하얗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속성을 생각해 보면 고고하고 도도한 이미지와 부합될 수 있다. 이 고고함과 도도함은 한편으로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지녔으면서도 다른 사물과의 조화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속성을 지녔다고 본다. 그런데 이 눈은 살아있다. 특히나 떨어진 눈, 마당이라는 공간에 있는 눈은 살아있다고 말하고 있다. 공중에서 뿔뿔이 흩어져 다닐 때는 죽은 영혼, 자유롭지만 이기적인 속성을 지닌 그 모습이었지만 삶의 현장인 지상은 이제까지 독단적 행동을 해 왔던 눈송이가 사회적 현실, 즉 공동체적 질서를 통해서 드디어 생명력을 얻었다고 보고 있다.그러나 타인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고 감정파악도 잘 할 수 있는 공동체적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시인은 기침을 하자고 한다. 기침은 온 몸을 울리면서 내뱉는 신체의 소리이다. 무언가 불편한 물질을 내보내는 이 행위는 절대 참을 수 없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 기침을 눈이 보라고 마음 놓고 하자고 한다. 즉, 사회적 참여를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여기서 다시 눈은 살아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눈이 죽음을 잊 든다.
    인문/어학| 2007.10.16| 11페이지| 1,500원| 조회(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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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요의 형식을 통해 본 시가사 평가A좋아요
    < 목 차 >Ⅰ. 서론Ⅱ. 조동일「민요의 형식을 통해 본 시가사」 텍스트 요약1. 논의의 출발점2. 세 가지 가설(외래설, 단순 발생설,상승 문화설)3. 민요의 상승과 시가사의 전개4. 남은말Ⅲ. 논의의 문제점1. 민요의 형식 분류2. 사설시조의 발생3. 광의의 시조와 협의의 시조4. 경기체가의 장르Ⅳ. 결론민요의 형식을 통해 본 시가사Ⅰ. 서론민요는 민중들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고 발전 되었으며 고전 시가의 원류 또한 민요에서 찾을 수 있다. 조동일의 「민요의 형식을 통해 본 시가사」에서는 민요의 기본이며 핵심인 여음을 통하여 가창 방식을 설명하고 이를 고전시가와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민요의 형식을 통해 본 시가사」라는 논문을 중심으로 민요의 형식적 측면이 고전시가 발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세가지 가설을 통해 살피고, 민요와 시가사의 전개양상과 그에 따른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Ⅱ. 본론 (「민요의 형식을 통해 본 시가사」 텍스트 요약 )1. 논의의 출발점민요의 형식은 다음과 같이 정리 할 수 있다. 민요는 교환창으로 부르거나, 선후창으로 부르거나 독창으로 부른다.) 교환창은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두 패로 나뉘어서 한 마디씩 주고 받으면서 부르는 방식이고, 선후창은 앞소리꾼 한 사람이 사설을 부르고 뒷소리꾼 여럿이 여음을 부르는 방식이다. 독창은 혼자서 계속 부르는 방식으로 이 세 가지에 따라서 기본 형식이 결정된다.모내기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럿이 함께 일을 하면서 일이 힘들지 않을 때에는 교환창으로 부른다. 교환창으로 부르는 민요는 먼저 부른 마디와 나중 부른 마디의 길이가 같아야 하고, 줄 수는 짝수를 이루도록 제한되어 있다. 여럿이 함께 일을 하되 일이 힘들거나 일하는 사람들이 일제히 행동 통일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노래를 선후창으로 부른다. 앞소리꾼의 사설은 계속 달라지면서 어느 정도 앞뒤가 연속되어 있고, 뒷소리꾼의 여음은 되풀이된다. 혼자 일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독창으로 노래를 부르며 일이 오래 계속되면 풀릴 수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난점은 향가는 어디서 왔는가를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있다.또한〔가설 2〕처럼 생각한다면 시가와 민요의 관계는 다음의〔가설 2-1〕처럼 파악 되어야 한다.〔가설 2-1〕향가(가)여요(나)가사(다)▶(가)인 민요▶(나)인 민요▶(다)인 민요이 가설이 뜻하는 바는 (가)인 민요가 향가의 잔존 형태라는 것이며 (나)인 민요는 여요의 잔존 형태다. (다)인 민요는 가사의 잔존형태로 가사가 생겨나자 비로소 (다)의 형식이 나타나서 그것이 퍼져나간 결과 (다)인 민요가 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가설은 납득하기 어렵다. 먼저 향가나 여요 같은 것들이 아예 자취를 감추었으면서 민요는 오랜 동안 그 잔존형태를 전국 어느 곳에나 두루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이 이상하다. 더욱이 향가가 생기기 전에는 (가)인 민요가 없었고, 여요가 생기기 전에는 (나)인 민요가 없었으며, 가사가 생기기 전에는 (다)인 민요가 없었다면 그때까지의 민요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는다.이 가설처럼 생각하는 것이 하강문화재설에 의한 발상이다. 이는 지금 민요니 만담이니 하는 것들이 원래는 상층문화에 속하는 개인작이 문학이고 예술이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층으로도 내려가서 본래의 모습이 잊혀진 채 전승되고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가 노동요이고, 노동요는 일하는 사람들 자신이 자기네의 필요에 따라 스스로 지어낸 것이다. 그 사설에 상층문학이 끼친 영향이 더러 보이기는 해도 노래 자체의 생성, 노래를 부르는 방식, 노래의 기본형식은 하강문화재로 설명할 수 없다.(3) 가설 3(상승 문화설)〔가설 3〕향가(가)여요(나)가사(다)▲▲▲▶(가)인 민요▶(나)인 민요▶(다)인 민요이 가설은 우선(가)?(나)?(다)인 민요가 각기 원래부터 있었다는데서 출발점을 찾는다. 이 가설은 (가)?(나)?(다)인 민요가 원래부터 병존하다가 문학사의 일정한 시기에 그 가운데 어느 하나가 상층의 시가로 상승했다고 하는 주장을 그대로 내민요▶(다)인 민요문제는 사설시조인 시조-3인데 이것은 시조-2를 이은 것이면서 또한 (다)인 민요를 받아 들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시조-2를 이었기 때문에 초장? 중장? 종장에 해당하는 구분이 있고 결말의 특이한 규칙마저 지니며 길이도 제한되어 있고 (다)인 민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2음보가 거듭 중첩되면서 길어진다. 여기서 향가와 시조의 역사적 성격의 차이 또한 문제이다. 신라 귀족이 향가의 주인이었다면, 고려말 이래의 사대부가 시조를 만들었다. 함축되고 암시적인 시상을 지닌 상층 서정시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가)인 민요를 이용해야 했고, 원래 줄 수가 짝수이기만 한 형식을 홀수로 고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대부는 민요에서 덜 멀어지고 자기들대로 내세우는 이상의 높이나 폭이 훨씬 더 제한되어 있었기에 5행시를 이루지 않고 3행시를 이루는데 그치지 않았을까 한다. 시조-3이 (다)인 민요를 받아들이는 것은 사대부의 몰락에 수반되는 현상이며, 시조가 지닌 원래의 질서를 의도적으로 파괴한 결과이다.이른바 여요라고 하는 것에는 속요와 경기체가가 들어간다. 속요가 서정시라면, 경기체가는 교술시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가운데서 경기체가는 사대부가 창작하는 시가로서 조선전기까지 계속 나타났다. 속요를 여요-1이라고 하고, 경기체가를 여요-2라 해서〔가설 3-3〕으로 제시한다.〔가설 3-3〕여요-1여요-2▲▲▶(나)인 민요여요-1이라고 한 속요와 여요-2라고 한 경기체가가 하나는 서정시이고 하나는 교술시라는 사실은 (나)인 민요와의 관계에서 이해 할 수 있다. (나)인 민요에는 서정민요라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교술 민요라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민요의 세계에서는 이 둘이 확연하게 구별되지 않는 편인데, 상승을 하면서는 서정시와 교술시가 아주 갈라졌다.다음으로 악장의 경우를 살펴보면 악장의 경우 그 형식이 일정하지 않다. 형식이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이루어진 시가 형식 가운데서 어느 것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는 를 둔 시가의 영역은 산문으로 넘어갔고, 다시 중요시된 것은 (가)인 민요와 (나)인 민요였다. 특히 (나)인 민요를 받아들여 적절한 방법으로 변형시키면서 여음을 제거한 것이 전통적 율격을 계승한 시의 대다수였다. (나)인 민요에는 3음보격이 흔히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이 여요로도 나타나는데 현대시 또한 3음보격을 택하면서 4음보격에 대해서는 거리를 취했다. 이처럼 기본 음보를 어느 것으로 선택했는가 하는 점도 자세하게 고찰해야 할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4. 남은말지금까지 시가사의 전개에 관해서 수많은 연구가 있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생각의 방향이 그릇되지 않았던가 하는 데에 이 글의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물론 그 동안의 성과 가운데 시가를 음보율에 따라 분석하면서 시가의 여러 형태 사이의 관계를 살피는 작업에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시가의 여러 갈래와 민요를 전폭적으로 관련시켜 다루는 시야는 좀처럼 확보되지 않았다.이 글이 지닌 또 한 가지의 한계는 형식 문제를 다루는 데 치우쳤다는 데 있다. 형식은 시가를 다루는데 다른 무엇보다 뚜렷한 징표이지만 시가의 역사적 성격과 함께 고찰해야 비로소 그 의의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또한 이 글은 민요 자체의 전개는 말하지 않았다. 민요가 노동요로 의식요로 유희요로 또는 이와 같은 일정한 기능을 가지지 않은 민요로 전개되면서 일어났던 변화는 비록 문헌상의 증거는 없지만 재구적인 방법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논의할 수 있고 그 작업에서 시가사 연구의 새로운 단서를 적지 않게 찾을 수도 있다. 따라서 민요의 세 가지 기본 형식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고 새로운 형식의 창조는 나타나지 않았던가 하는 문제도 마땅히 다루어야 할 것이다.Ⅲ. 논의의 문제점1. 민요의 형식 분류조동일은 민요의 형식을 가창 방식에 근거를 두고 줄 수가 제한되어 있는 짧은 노래, 여음이 삽입되어 있는 긴 노래, 여음이 삽입되어 있지 않은 긴 노래로 나누어 보고 있다. 그렇다면 여음이 있는 짧은 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가?이에 조동일이 민1-2)로 구분해서 파악할 수 있다.(1)-1은 불규칙하게 연속되는 여음 위주의 노래로, . . 등의 의식요나 , , 등의 고려가요에서 주로 나타난다. 이는 주로 독창으로 불린다. (1)-2는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여음 위주의 노래로 . 등이 있으며 주로 선후창으로 불린다. (1)-1의 형식에서 여음보다 사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나게 되면, (1)-1의 형식은 (3) 여음의 개입이 거의 없는 사설 위주의 노래로 바뀔 수 있다고 보았다. (1)-2의 형식은 사실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1)-1과는 달리 선후창으로 부르면서, 여음이 규칙적으로 반복된다는 특징을 지녔다고 보았다.또한, (2) 사설과 여음을 함께 풀어가는 노래는 사설과 여음의 진행방식과 기능상의 성격을 바탕으로 다음 두 가지 (2-1)과 (2-2)로 구분하였다.(2)-1는 짧은 사설과 여음이 반복되면서 단락을 이루어 가는 노래로 , , . , , , 등의 민요와 , , 등의 전통시가가 있다. 이는 빠른 행동이 규칙적으로 요구되는 노동이나 유희에서 주로 불려지는 선후창 또는 독창의 민요를 말한다. (2)-2는 연속된 사설로 한 단락을 이룬 뒤에 여음이 개입되는 노래로 , , 등의 민요와 등이 있다. (2)-1의 경우에 비해 비교적 여유 있는 행동이 반복적으로 요구되는 노동이나 유희에서 주고 불려지는 선후창 또는 독창의 민요를 말한다.(3) 여음의 개입이 거의 없는 사설 위주의 노래의 형식은 사설의 전개가 갖는 의미 구성의 차이에 따라 다음 네 가지의 형식(3)-1,(3)-2, (3)-3, (3)-4로 나누어진다. (3)-1은 짧게 주고 받는 사설이 여러 편으로 분단을 이루며 이어지는 노래로 에서 앞의 네 줄 ‘금비둘기 노래’, ‘이태백이 노래’의 구성방식이다. 주로 교환창으로 불린다. (3)-2는 짧게 주고 받는 사설이 여러 편으로 분단 없이 연속되는 노래로 , 등이 있으며 이도 교환창으로 불린다. (3)-3 은 줄 수가 제한된 사설이 한 편으로 된 짧은 노래로 , 등과 향가와 시조.
    인문/어학| 2007.10.16| 12페이지| 2,000원| 조회(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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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교 교육이 사회 계층 유지에 미치는 영향
    목 차Ⅰ. 서 론2Ⅱ. 신교육 사회학과 교육 갈등론3A. 신교육 사회학3B. 교육 갈등론3Ⅲ. 학교 교육과 사회 계층 이동의 관계4A. Basil Bernstein의 이론4B. Samuel Bowles의 이론5c. Bernstein과 Bowles 이론의 비교7Ⅳ. 결 론7─────────────────────────────────────────학교 교육이 사회 계층 유지에 미치는 영향학교 교육이 사회 계층 유지에 미치는 영향- Basil Bernstein과 Samuel Bowles의 이론을 중심으로Ⅰ. 서론신교육 사회학자들은 학교 교육이 사회 계층 이동에 기여하기보다는 사회 계층의 재생산을 초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즉, 학교 교육 내용은 지배 계층 학생들의 학업 성취를 우월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장래 지위 역시 지배 계층이 되도록 사회 계층을 영속화 시키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이런 신교육 사회학자들, 학교 교육과 사회 계층의 이동의 관계에 대해 상반된 시각을 지니는 기능주의 교육학자들, 교육 갈등론자들 중, 지금까지는 기능주의 교육학자들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지지 되어 왔다.그러나 현대 사회가 사회 현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요구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통념적으로 생각되어 오던 학교 교육의 사회 계층 이동에 대한 긍정적인 역할의 도식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즉, 학교 교육이 사회 계층 이동을 저해한다고 주장한 신교육 사회학자와 교육 갈등론자들의 시각에서 학교 교육과 사회 계층 이동의 관계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따라서 본 연구는 신교육 사회학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한 B. Bernstein과 교육 갈등론자인 S. Bowles의 이론을 학교 교육과 사회 계층 이동의 관계 측면에 중점을 두고 고찰 하는데 목적이 있다.본 논문은 첫째, 신교육 사회학과 교육 갈등론이 대두 될 수 있었던 영국과 미국의 사회 배경과, 대표적인 학자의 이론을 살펴 보고자 하였다.둘째, B. bernstein과 S. Bowles의 이론을 중심으로, 학교 교육이 사회.둘째, 영국은 민주적으로 발전하는 나라이긴 하나, 본질적으로 귀족 및 브루주아 계급이 정치, 경제 및 사회의 교육 제도를 지배하는 사회이다. 그러므로, 영국 사회는 상대적으로 폐쇄된 계층 구조를 지니며 각 계층은 뚜렷한 문화를 보유한다.결국 계층 문화를 지닌 사회구조는 각 계층의 문화 유지를 위해, 문화 전달의 구체적 매개체인 차등적 교육과정의 존속에 관심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교육과정에 대한 관심을 지녀 온 영국 사회 구조 자체가 신교육 사회학의 대두를 용이케 하였다.셋째 신교육 사회학이 대두되게 된 것은 영국의 사회 상황 및 자적 분위기에 근거한다. 영국은 1930년대부터 미국에 비해 지식 사회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지식 사회학의 주된 관심은 지식이 어떤 사회 상황에서 창조, 분배되며 한 사회의 지식을 창조, 정당화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기준을 책정하는 사회집단은 누구인가 등에 집중된다. 학교의 지식이라 할 수 있는 교육과정은 자연히 지식 사회학적 풍토에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따라서 영국의 복선적인 교육구조에 근거한 차등적인 교육과정, 위계적인 교육과정애 관심과 지지를 보내는 사회구조, 지식 사회학적 학풍은 모두 복합적으로 신교육 사회학의 대두를 용이케 하였다.신교육 사회학의 기본 입장신교육 사회학은 학교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집중하는 미시적인 입장을 취한다. 학교 내부에 초점을 둔 신교육 사회학의 관심 영역은 교사와 학생간의 상호관계, 교사가 규정짓는 학생에 대한 평가기준 및 고정관념, 교육과정으로 대분된다.이런 신교육 사회학자들은 교육 지식으로 간주되는 것은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었으며, 교육과정, 교사에 의해 평가되는 평가기준, 교사-학생의 상호작용 중 무엇보다도 교육과정이 교육 연구의 주된 관심 사이여야 함을 피력했다.또한 그들은 교육 과정을 기존 사회지배 계층의 이해 관계를 반영하야 지배 집단의 이권을 세대에 걸쳐 유지 시켜주는 내재적, 실질적 도구로 파악하였다. 즉, 기존 지배 집단은 교육 과정을 텅해 그들에 갈등론의 기본 입장교육 갈등론자들은 학교 교육이 불평등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즉, 학교 교육은 불평등 구조를 반영하여, 의도적으로 계층에 따라 학생 개개인의 인성을 차등화 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학교 교육은 차별적인 인성의 사회화를 통해 학생들을 위계적인 직업 구조에 불평등하게 배치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 갈등론자들은 학교 교육이 사회 계층을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계층 이동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Ⅲ. 학교 교육과 사회 계층 이동의 관계A. Basil Bernstein의 이론계층에 따른 어법과 인지 유형의 형성 근원(1) 계층에 따른 문화의 차이Bernstein은 중산층 문화의 특징을 “우리”보다는 “나”를 강조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반면 노동 계층 문화는 “나”보다는 “우리”를 강조하며, 밀접하게 공유된 동질감과 공유되어진 기대, 공통된 가정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규정하였다.따라서 Durkheim이 분류한 조직의 유형 중 기계적인 연대감에 기초한 조직의 특성을 띄게 되며, 중산층 문화는 상대적으로 조직적 연대감에 기초한 조직의 성격을 나타내게 된다.(2) 계층에 따른 사회 역할 체계의 차이역할 체계는 폐쇄된 체계와 개방된 체계의 두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나”보다 “우리”를 강조하는 동질감을 기초로 하는 노동 계층의 문화에서는 폐쇄적인 역할 체계가 형성되고, “우리”보다 “나”를 강조하는 상대적으로 덜 동질적인 중산층 문화는 개방적 역할 체계를 초래시킨다.먼저 폐쇄된 체계는 말의 의미를 표현하는데 필요한 대체제의 범위를 줄이는 역할 체제를 말하며, 고정된 의미 체계에 기초하므로 개념 질서는 제한된 특성을 나타내게 된다.반면 개방된 체계란 말의 의미를 표현하는데 필요한 대체제의 범위 확대를 가능하게 하는 역할 체제로, 개개인이 자신의 언어로 성취 수용한 언어는 언제든지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개개인의 복잡한 개념 질서를 형성시킬 수 있다.(3) 계층에 따른 사회 관계의 차이Bernstein은 가족 속에서 형성되는 사회 관계의 유형에 동에게 부여된 역할의 자유를 축소시키며 제한된 어법을 사용하며, 타이름은 대화를 통해 언어적 규제를 시도한다.폐쇄적인 대화 체제는 지위의 한계로 의미 표현의 기회를 제약하므로, 자연히 노동 계층의 아이들은 언어 자극의 기회와 의사 표현의 기회, 명확하게 표현 할 필요성, 언어 질서를 복잡화 시킬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적게 가지게 된다. 따라서 집합적이고, 단순한 질서의 제한된 어법을 사용하게 된다.중산층의 경우에는 덜 동질적인 문화와 개방된 역할 체계, 개방된 대화 체계의 특성을 띄며, 개인의 입장에서 타이르는 사회 통제 유형을 사용한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의사 표현할 기회를 많이 부여하며, 사회 통제 역시 정교화된 어법으로 가해진다. 따라서 자연히 중산층의 아이들은 언어 자극의 기회, 의사 표현의 기회를 많이 부여하며, 사회 통제 역시 정교화된 어법으로 가해진다.☞ Bernstein의 이론을 종합해 보면 그는 계층의 이해 관계를 반영한 학교의 형식적인 상황이 계층에 따라 학생들의 학업 성취의 차를 의도적으로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학교 교육은 차등적인 학업 성취의 차에 근거하여 출신 계층이 장래 계층으로 지속되도록 계층 유지 매개체의 역할을 하게 된다고 피력한다. 또한 계층에 따라 상이한 어법과 인지 유형을 지니는데, 학교의 학습 상황은 중산층이 보유하고 있는 정교화된 어법과 분석적인 인지 유형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며, 노동 계층이 보유한 제한된 어법과 기술적인 인지 유형은 도외시한다고 지적하였다.따라서 학교 교육은 중산층의 이해 관계를 반영하여 노동 계층 자녀들에게 불리한 학습 상황을 조성, 열등한 학업 성취를 얻게 하여 그들의 츨신 계층을 지속시킨다고 하였다.그러나 중산층 자녀들에게는 유리한 학습 환경을 조성, 그들의 학업 성취를 우월케 하여 장래에도 중산층에 머물 수 있도록 유도한다.B. Samuel Bowles의 이론실력주의의 허구성위계적인 질서에 놓인 다양한 직업은 제각기 다른 경제적 생산을 요구하며, 각 직업이 요구하는 경제적인 생산성은 그 중발의 기준이 되는 IQ와 학업 성적이 대학에서의 교육 생산성, 즉 인지능력 및 기술 수준의 교육 성과를 좌우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Bowles는 개방적 입학제 실시 이후에 대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학업 성취와 개방적 입학제 이전에 대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학업 성취를 비교함으로써 위의 주장을 입증하고자 했다.이를 위해 개개인의 인지 능력을 고정시키고 교육연한과 경제 성공의 관계를 살펴 본 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개인의 인지 능력을 고정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인지 능력에 기초한 경제 성공의 논리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Bowles는 인지 능력 및 기능 기술 같은 실력에 기반한 경제 성공을 근본 논리로 하는 실력주의는 의심스럽다고 주장한다.실력주의에 대한 비판Bowles는 실력이 개개인을 위계적인 직업 구조에 배당하여 수입과 경제적인 성공을 좌우하는 것처럼 인식되어 왔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적 성공에 별로 기여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실력주의를 계층 결정의 책임을 개임에게 물리고, 사회 불평등 구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규정하였다.결국 Bowles는 학교가 실력이란 허구적인 기재를 도입하여 계층 불평등을 유지시키는 비인지적 인성 교육을 은폐 시켜 왔다고 비판한다. 즉, 학교는 학교 자체의 계층 유지 역할을 은폐한 채 계층의 영속화를 개개인의 책임으로 돌린 문제점을 초래한다.☞ 이를 통하여 Samuel Bowles의 이론을 종합해 보면 그 역시 학교의 인성 사회화가 계층 유지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H.Gintis와 함께 대응이론을 정립한 Bowles는 학교가 경제 기업체의 생산 관계에 대응되는 사회 관계를 취하고, 위계적인 직업 체계의 인성 요구에 상응하는 차등적인 의식 및 인성을 계층에 따라 재생산함으로써, 계층의 영속화를 초래한다고 주장하였다.즉, Bowles는 중산층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대학교나 부유한 지역의 고등학교, 고등학교 내에서도 진학반 같은 경우에는 위계적 질서가
    교육학| 2006.12.21| 8페이지| 2,000원| 조회(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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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 그는 누구인가?
    목 차Ⅰ. 서 론2Ⅱ. 서동 설화의 문헌 기록2Ⅲ. 서동, 그는 누구인가?3(1) 역사적 관점에서 보는 견해3(2) 종교적 관접의 견해8(3) 설화적 관점의 견해10Ⅳ. 결 론13서동, 그는 누구인가?- 서동요 작가 문제에 대한 논의 중심으로Ⅰ. 서론서동요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武王조에 실려 전하는, 현존 향가 중 가장 오래된 노래에 속한다. 이 노래는 작자가 서동으로 되어 있고, 서동이 이 노래를 짓게 된 배경과 이 노래가 된 다음의 결과에 대해 매우 흥미 있는 설화를 배후에 깔고 있다.그러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수록된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모순되는 점이 있고, 그 전후에 전개되는 여러 사실, 그리고 서동이 과연 어떤 사람이냐에 대해 적지 않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분야별로 보자면, 어학적 해독과 문학적 해석, 배경설화에 대한 연구들이 그것이다. 문학연구가들은 대개 이 기록을 설화적 입장에서 보는 경향이 강한 반면 다른 분야의 연구가들은 하나의 역사적 기록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짙었다.이에 본고에서는 삼국유사에 수록된 서동 설화를 살피고, 서동이 과연 누구인가에 중점을 두어 기존의 견해와 그에 대한 반박의 논지들을 살펴보고자 한다.Ⅱ. 서동 설화의 문헌 기록 (삼국유사에 수록된 설화)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이다. 그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서울 남쪽의 못 가에 살았는데, 그 못 속의 용과 관계하여 장을 낳게 되었다. 어릴 때의 이름은 서동이라 불렀는데, 재주가 뛰어나고 도량이 넓어 헤아리기 어려웠다. 항상 마를 캐어다 팔아 생계를 꾸렸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서동이라고 불렀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인 선화가 무척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은 서동은 머리를 깎고 서라벌로 가 마를 동네 아이들에게 먹이며 친하게 지냈다. 아이들이 그를 따르게 되니 동요를 지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하였는데 그 노래는 이러하다.선화공주님은 남 몰러 어러(정을 통한다는 뜻) 두고사동방(薯童房)을 몰래 밤에 안고 간다.동요가 서울에 널리 퍼져 대궐에까지 들리게 되므로 백관들이 임으며 무왕은 법왕이 아직 왕위계승자가 아니었을 때 정실이 아닌 다른 여자와 정을 통해 낳았던 인물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왕이 정상정인 방법을 거쳐 왕위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신화적 조작을 시도한 것이 바로 『古記』의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오히려 무왕을 신화화한 것이 아니라 무왕의 아버지인 법왕의 신화화에 가깝고 무왕에 대한 신화화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최래옥은 서동의 정체를 규명하면서 서동은 무왕이라고 주장하며 다음 2가지 주장을 내세웠다.첫째, 서동은 소년기에는 서동요라는 노래를 부른 사람이고 후에는 백제의 왕이 된 사람이다. 이 두 가지 사실 중 서동요 노래를 부른 사실은 요지부동인데, 백제왕이 되었다는 데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둘 다 틀림 없는 사실이라고 인정 할 수도 있다. 그에 대한 기록이 三國遺事 第二卷 武王條에 있다. 제 2권 細異篇에 백제 이야기가 고작 3편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무왕이요, 하나가 後百濟 甄萱이니까, 기록이 풍부하여서이든, 미륵사 창건대목이 유별나다. 승려인 일연이 불교 편에 서서 무왕을 내세운 것은 삼국유사 편찬시 비중이 큰 왕이 무왕이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서동요를 부르고 적국의 공주인 선화공주를 아내로 삼아 백제로 돌아와서 등극하였다." 는 이 대목으로 볼 때, 그 주인공인 서동이 기록대로 명백히 무왕이라고 하였는데도, 아니라고 하며 다른 백제왕일 것이라고 하여, 동성왕이나 무녕왕을 제시한다면 主體를 부인하고 그 述語만 믿는 불안정한 문장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요컨대 서동은 무왕이라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믿는 것이 가장 온당하며, 이렇게 해야만 기록을 온전히 해석할 수 있고, 서동요라는 중요한 鄕歌를 인정하면서 수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두 번째, 무왕에 대한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무왕과 물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본래 어머니가 물가에 살았고 아버지가 地龍이며 선화공주를 왕비로 맞이한 후에 연못을 메꾸어서 미륵사를 만들었고 삼국유사 무왕조의 내용은 4개의 문단으로 나눠 1-3문단까지는 서동이라는 한 인격체가 출생 이후 왕위에 오르기까지 어떠한 인생과정을 밟아왔는가 그 경로를 서술해 놓고 있다.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①희한한 출생담 ②가난했던 소년시절의 생활 ③낯설은 이국땅 신라로 잠입 ④ 궤계(詭計)에 의하여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음 ⑤ 고국에 돌아옴 ⑥금맥의 발견 ⑦등극 등의 순서로 이어져 하나의 주제 즉 “등극하기까지의 서동의 일대기”를 이루고 있다.네 번째 문단은 미륵사창건에 관한 기록인 독립된 문단이라 보아 무왕조 전체의 핵심문절은 미륵사 창건기록을 제외한 그 앞의 모든 화제들이라고 하며 이렇게 보는 이유를 두 가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첫째는 무왕조의 제목 자체가 ‘무왕’으로 되어 있다는 점으로 일연이 무왕을 제목으로 한 것은 왕의 일대기에 등극을 클라이막스로 한 부분에 역점을 두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미륵사 창건부분에 편찬의도를 두었다고 하면 제목부터 ‘무왕’이 아닌 ‘미륵사’ 또는 미륵사와 관련된 것이어야 되므로 “무왕”이라는 제목은 평범한 한 인간이 어떻게 해서 왕위에 올랐는가 그 경위를 밝히고자 한 인생담의 인상이 짙다. 왕이 되고 난 뒤에 행한 사찰 창건의 사실을 알리고자 한 제목으로는 모호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둘째는 제목을 떠나 그 기술의 흐름으로 의도적이라 할만큼 서동의 출생, 성장, 등극 등에 역점을 둔 기술이 서술의 주된 흐름으로 그 안에 사실을 강력히 시사해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서동을 역사상의 실존인물로 간주하고 무왕조의 기록을 서동의 일대기, 출세담으로 보고 서동을 동성왕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견해 역시 동성왕이 즉위이전 신라에 건너갔다는 것도 확실하지 않을뿐더러, 해구로부터 일신을 보전하기 위해 신라에 들어간 서동이 한가히 동요로서 그 곳의 귀공녀를 꾀어 결합하고자 했다는 것도 당시의 역사적 상황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이병도는 사학도의 입장에서 ‘무왕’조의 기록을 역사적 사실이 서동의 이찰을 지었음에도 백제본기에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도 이해할 수 없으며, 미륵사 창건 연기 설화는 서동설화와는 개별적으로 구전되어오다가 일연에 의해 복합되어 진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무령왕을 미륵사의 창사주체로 보기는 힘들다고 여겨진다.한편 서대석은 무왕의 이야기가 백제와 후백제의 건국신화와 함께 백제의 설화로서 삼국유사에 나란히 수록되어 있는 것은 서동설화가 시조설화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 시조에 해당하는 백제의 인물로서 제25대 무령왕을 들었는데, 삼국사기와는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일본의 기록을 참고하였다. 그 기록에서는 무령왕은 동성왕의 아들도 아니며 순조로운 왕위 계승을 이루지도 않았다. 포악한 전왕을 몰아낸 국인의 추대로 왕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대석은 무령왕이 전대의 왕과는 다른 혈연, 즉 다른 부족 출신이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이는 새로운 시조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무령왕이 생장(生長)한 집단의 신화가 무령왕에게 결부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을 것이라고 보았다.서재석의 주장대로 무령왕을 전왕인 동성왕과는 다른 세력의 출신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근거 자료를 얼마만큼 신빙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백제 후기에 이르는 어느 왕인가에 가서는 왕실의 세력 교체에 의해 마한의 신화가 왕실로 유입되었던 것은 상정해 봄직하다. 이로써 민간에서만 전승되던 야래자 신화가 백제왕실로 유입되는 계기를 가졌을 것이다.4. 원효설김선기는 중 이외는 절대 머리를 깎지 않으므로 머리를 깎은 서동은 중이 분명할 텐데 무왕이 중이 되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는 것, 또 진평왕과 무왕대의 나라 사정이 통혼할 만한 환경이 못되었다는 것 등을 들어 무왕은 서동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삼국유사의 기록을 들어 서동을 원효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첫째, 원효의 어릴적 이름과 서동이란 이름이 유사하다는 점이다.둘째, 서동은 머리를 깎았다고 하였는데 그러면 중이었을 텐데, 이것은 중이었던 원효와 맞아 떨어진다.셋째, 도움으로 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유형의 얘기와 직결되는 것으로 공주와의 성혼, 왕위에 오른 서동에게 이 모든 것이 다 신의 도움에서 이룩된 것이요, 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미륵사라는 불사를 창건했다는 것이 이 8개의 에피소드에 묶어진 결론이라고 보고 이 서사적인 정점 밑에는 불교의 포교라는 커다란 문제가 내재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며 서동설화의 뿌리는 미륵사 창건에 있다고 보았다.① 서동의 출생② 서동의 소년 시절③ 선화 공주의 아름다움을 듣고 서동요를 부르게 함④ 선화 공주를 먼 고세 내 보냄⑤ 선화 공주를 수행하면서 잠통⑥ 황금을 캐내 신라 궁중에 보냄⑦ 진평왕이 신의 변통을 이상히 여기 편지로 안부를 묻고, 드디어 서동을 왕위에 오르게 한다⑧ 용화산 밑에다 미륵사 창건송재주는 서동설화가 『삼국유사』 찬술 이전의 시대에는 무강왕 전설과 습합되어 익산지방에 전해지고 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였다. 또 익산의 미륵사 창건 주인으로 전설되어 있는 「무강왕(말통대왕)」 -> 「무왕」= 서동은 지룡 교통 이생의 용자로서 미륵의 신화 또는 전신으로 등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서(薯)의 중고어와 武, 末에서 hd통되는 두음 ‘a'을 추출해 낼 수 있고, 康을 의미하는 고대어 ’?리‘와 通을 의미하는 ’?리:?>?l>대‘, 童을 의미하는 방언 ’돌‘은 말통대왕으로 표기, 미륵사 창건주인은 미륵의 화신으로 간파될 수 있다 하였다. 이러한 설화적 결합은 당연한 것이며 후에 일연에 의해 무왕설화로 정착하게 된 것이라 설명하였다.언어학적인 문제는 접어 두고라도 서동을 미륵의 화신으로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익산 지방에서 전래되어 오던 서동설화가 무강왕 설화를 파생시켰을 것이고, 송재주의 견해에 따른다면 동성왕대에 와서야 미륵사가 창건되었으므로 그 시기에 미륵사창건 연기 설화가 만들어졌을 것인데, 먼저 만들어진 서동의 이야기에 미륵사 창건 연기 설화가 부분적으로 끼어들 수는 있어도 서동자체를 미륵으로 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이기다.
    인문/어학| 2006.12.21| 13페이지| 1,500원| 조회(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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