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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학통사 제 4판 2권 요약 평가B괜찮아요
    7. 중세후기문학 제1기 고려후기7.1. 무신란 ? 몽고란과 문학7.1.1. 시대변화의 추이1170년(의종24)에 무신란이 일어나고, 1258년(고종 45)까지 거의 한 세기 동안 무신정권이 지속되었다. 무신란이 일어난 후에 문학이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은 것 같으나 문학활동은 계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활기를 띠었다. 이 같은 사실은 문학서 서술에서 해결해야 하는 긴요한 과제이다. 무신란 때의 학살에서 살아남은 문인들이 현실에서 도피하면서 문학에 탐닉한 결과 문학이 융성하게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규보를 비롯한 신진 문인들을 보건데 이것이 이유로 보기는 어렵다.무신정권의 성격변화에서 문제해결의 단서를 찾자는 견해도 있다. 최충헌과 그 후계자들이 서방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문신들을 등용하고 표용해 문학이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 또한 사실의 일면만 살핀 단면이다.역사의 전환을 겪으면서 다음 시대의 문학을 이룩하는 것이 문학사의 당연한 과정이다. 무신란은 그럴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문벌귀족의 문학이 청산되었다는 데 무신란은 큰 공적을 이룩했다.신흥사대부 또는 신진사류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무신통치 동안에 등장하기 시작해, 무신정권이 무너진 다음에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면서 새로운 특권층인 권문세족과 다투다가, 마침내 조선왕조를 이룩하기에 이르렀다.무신정권은 반란을 강압적으로 다스렸지만, 김극기나 이규보 이후의 새 시대 문인들은 하층의 동향에 관심을 가지고 문학을 혁신하는 역사적인 경험을 얻었다. 농촌실정을 문제 삼고 농민의 어려운 처지에 공감하는 문학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신흥사대부는 실무와 기술에도 능통했다. 의학을 연구하고 농업을 발전시켜 인구가 늘어날 수 있게 했다. 농민을 보호하며 다스려야 한다는 애민의 이념을 제시해 치자의 횡포를 제어하는 등 고려를 대신해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중세후기 왕조의 본보기를 이룩했다.무신정권이 지속되고 있는 동안에 몽고의 침략이 닥쳐왔다. 1231년(고종 18)에 시작되어 12당당하게 급제했다. 라는 문집이 전하는데, 수록한 작품은 다른 책에서 뽑아 모은 것들이다. 이규보와 함께 진화도 두 가지 운을 교체해가면서 실ㄹ 내리쓰는 재주가 있었다고 했다. 진화는 그런 솜씨를 자랑으로 만족하지 않고 백성을 생각하고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의지를 시로 나타냈다.라고 한 장편 칠언고시에서는 농촌이 도원이라고 했다. 도원이 파괴되어 농민 생활은 날로 피폐해져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최차는 에는 이라고 일컬어지는 시를 소개했다.새로운 문명을 일으킬 수 있는 곳은 동방의 고려여서 아침 해가 밝아오는 것과 같은 사명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명확하게 지적해서 말할 수는 없었지만, 시대전환의 필연성을 인식했다.7.1.5. 이규보이규보(1168~1241)는 지방에 기반을 둔 향리 정도의 대단치 않은 가문 출신이다. 자기 노력으로 진출해 높은 평가를 얻었다. 신흥사대부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죽림고회의 구성원들과 더러 어울리기는 했지만, 가담하라는 제안을 받고 거절하는 뜻을 시로 읊었다. 마음속으로 벼슬을 탐내면서 겉으로는 초탈한 듯이 행세하는 위장술을 빈정대었다.무신정권에서 기회가 오자 당당하게 나아가서 능력을 발휘해 최씨정권의 문인들 가운데 으뜸 가는 위치를 차지했다. 정권에 참여해 역사의 커다란 전환에 기여하고자 한 것이 잘못일 수 없다. 무신란이 중세전기를 파괴한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규보는 중세후기를 건설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물은 도의 기준이고 관은 도의 그릇이다 ”라고 에서 말했다. 관직의 임무에 충실하면 도를 실현하게 된다고 하여 중간 정도나 그 이하 사람들에게도 널리 해동되는 이치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일상적인 활동 자체에서 도를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도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점에 있다고 해서, 중세후기의 새로운 사상을 향해 나아갔다.지난 시기 문벌귀족이 물을 천하게 여기고 물에 관심을 두지 않아야 도가 구현된다고 했던 세계관에 대한 반론을 펴고 대안을 제시했다. 에서는 “물자생자화”라고 해서 물이 스스로 생겨나고 고 했다. 기존의 권위에 의거해 자기 작품의 가치를 높이려는 것이 잘못임을 그런 말로 나무랐다. 지나치게 어려운 표현을 쓰지 말고, 다듬지 않은 말을 함부로 내뱉지 말라고 했다. 시를 지어 고인이 이르지 못한 신의를 창출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은 누구나 목표로 삼았다. 이인로는 용사의 기법을 차선책으로 삼아 마땅하다고 하고 이규보는 새로운 말이 신어를 사용해야 신의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라는 말로 제목의 서두를 삼은 아주 기발한 글을 써서 문학이 현실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문제 삼는다는 지론을 전개했다. 시마의 죄상을 다섯 가지를 들었다. 첫째로 시는 사람을 들뜨게 한다고 했다. 둘째로 시는 숨은 비밀을 캐낸다고 한다. 셋째로 시는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고 했다. 넷째로 시는 비판을 한다고 했다. 다섯째로 시는 상심을 하게 한다고 했다.이인로는 탁물우의를, 이규보는 우흥촉물을 창작의 원리로 삼았다. 이인로는 ‘심’에서 마련한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기 위해 ‘물’을 이용한다고 했다. 이규보는 ‘물’과 부딪히면 마음이 들뜨는 것을 ‘우흥’이라고 했다. 이인로는 아름답고 순수한 ‘심’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하는 중세전기의 철학을, 이규보는 모든 것을 ‘물’로 존재하고 ‘물’과 만남을 통해 사람이 살아간다는 중세후기의 철학을 지녀 서로 다른 말을 했다. 이인로의 철학을 불교에서 정립해놓아 새삼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되고, 이규보는 조물주가 만물을 창조했다는 생각을 부정하고 ‘물자생자화’의 원리를 제시하는 작업을 자기 스스로 했다. 사회 비판은 이인로에게 없고, 이규보 문학의 특징을 이루었다. 반어적이고 풍자적인 글을 다양하게 마련해 문학의 기여를 넓혔다. 이규보가 문학의 독창성을 주장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문학을 하자고 한 지론은 민족의식의 고양과 연결된다. 한문학은 중국의 전례를 받아들이면서 우리 민족의 삶을 다루는 이중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7.2.3. 최자(1188~1260)의 은 이인로의 을 보완한다고 한 또 하나의 시화집이다. 단순한 자료집이 아니며 저자의 문귀해 요세의 후계자가 되고 백련사가 수선사에 못지 않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했다. 혜심과는 다른 방향에서 불교문학을 일으켰다. 천인의 저술로는 이 있었다고 하는데 전하지 않고, 은 잔본만 남아 있어 사상과 문학을 알아볼 수 있게 한다.천책(1206~?)은 천인의 후계자이다. 과거에 급제했으나 세상을 등지고 요세를 찾아가 승려가 되었다. 천책의 시는 정약용이 높이 평가했다. 천책의 시는 아름다우면서도 굳센 장점이 있고 성글거나 담박하기만 한 병폐가 없으며 공부와 재주를 함께 칭찬할 만하다고 했다. 최치원, 천책, 이규보가 고려 때까지 가장 뛰어난 세 시인이라고 했다.천책의 후계자는 이안이고 그 다음이 운묵이다. 대가 이어지는 동안 천태종은 무력하게 되고 결국은 선종만 남게 되었다. 선종이 불교계를 지배하기 전에, 운묵은 천태종에서 할 일을 했다. 이라는 서사시를 이룩했다.우리만은 불교서사시를 창작하는 데 힘써 이 작품을 내놓고, 다시 을 국문으로 지었다. 서로 다른 교리를 합쳐서 체계를 갖춘 저술을 하는 천태종 승려의 장기를 발휘해 불교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7.3.4. 충지충지(1226~1293)는 지눌과 혜심의 뒤를 이은 사람이다. 충지의 글을 모은 은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으며, 문집이라 할 수 있는 편제를 갖추고 있다. 충지는원나라에 시달리던 시대 상황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나와의 투쟁을 겪어야만 했고, 그 뒤에는 산승의 생활까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수탈이 심하자 원나라 황제에게 표문을 올려 되돌려달라고 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황제의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충지는 모든 것을 멀리하고 조계산 수선사를 찾아갔다. 역대 스승의 가르침을 잇고,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이라는 장시는 백성들을 가혹하게 부리고 수탈한다는 참상을 시에다 담았다. 또한 에는 농민이 처참하게 희생되는 모습을 읊었다. 지위나 명예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을 모두 버려 진실과 직접 대면해 대몽항쟁문학의 최고 성과를 이룩했다고 할 수 있다.7.3. 일연이 규범에서 벗어난 변격 한문를 즐겨 사용했다. 일연은 산문에서 하면서, 글과 말이 이원화되어 있는 폐단을 한정된 범위 안에서나마 극복해보려고 했다.7.4.4. 와 그 이후의 작업역사를 읊은 시를 영사시라고 했다. 역대의 사실을 간추려서 인상 깊게 전달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으므로 교술시이다. 고려후기에 영사시가 많이 나타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이승휴(1224~1300)의 는 영사시의 대표적 작품이다. 허튼 수작 버리고 이치에 맞는 것을 취한다고 하면서 동국역사가 오랜 연원을 지니고 자랑스럽게 전개된 것을 널리 알리려고 했다. 고려의 건국신화를 서두 삼아 성스러운 출발 강조하고, 임금이 바뀔 대마다 나타난 치적을 정리했다. 이승휴는 최자에게 인정을 받아 처음으로 벼슬을 했으며, 최자를 매개로 이규보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와는 아주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이해하고 보다도 민족의식이 더욱 두드러진다. 발해사를 다룬 것은 특기할만한 사실이다.는 서사시가 아닌 영사시여서 내용이 미비하고 형상화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원나라 간섭하의 불편한 상황과 작자 자신에게 가해질 수 있는 제약을 의식하면서 썼다.원나라가 고려의 주권을 위협하는 책동에 맞서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국의 역사가 잘 정비되어 있어야 했다.고려후기 발랄한 탐구가 유학의 합리주의로 대치, 주체성이나 자주성 찾는 민족의식보다 동아시아 중세문명의 보편주의가 더욱 두드려져, 역사 이해가 문학창작과 멀어지는 교훈 기능이 확대 되었다.7.5. 사람의 일생 서술방법7.5.1. 관심의 내력사람의 일생은 문학의 가장 풍부한 소재이다. 한 사람의 생애의 과정을 들어 상상하고 논의하는 것은 문학에서 특히 긴요한 과제이다. 그 작업은 서사문학과 교술문학 양쪽에서 할 수 있다.고대에는 설화만 있다가 중세에 전이 생겨나고, 근대에는 소설이 득세하고 전기라고 다시 명명된 전은 밀려났다. 중세후기에는 교술문학이 서사문학보다 우위를 차지한 특징이다.사람의 일생을 다루는 문학은 신화나 서사시에서 시이다.
    인문/어학| 2007.12.24| 69페이지| 2,000원| 조회(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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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소설사] 김윤식, 10~12장 요약 평가A+최고예요
    제10장분단 ? 이산소설의 전개벅찬 감격으로 맞이한 8?15 해방, 좌우 대립으로 들끊은 혼란의 해방공간, 남북한의 단독정부 수립, 그리고 6?25 전쟁 등 급격한 우리 현대사의 물굽이를 넘어 1953년 1월 21일 마침내 휴전협정이 체결됨으로써 비극적인 분단시대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분단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분단상황은 한국 사회를 가장 결정적으로 특징지우는 핵심 요인으로 군림하여 사회?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측면에 걸쳐 강력하게 그리고 속속들이 작용하였다. 분단상황은 개인의 죽음이나 상처, 그로 인한 가족의 고난이나 파멸 또는 이산의 차원을 넘어 이처럼 압도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다. 분단 문제가 지니는 의미가 이러하기에 당연하게도 그것은 우리 소설의 가장 중요한 소재의 하나로 다루어져와, 분단?이산소설은 우리 소설사의 주류의 한 가닥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1. 전쟁의 직접성과 서사적 형식의 문제분단을 소재로 한 수많은 소설들이 씌어져왔지만 그 원인을 깊이 추적해 들어간 작품은 의외로 드물다. 분단 원인에 대한 탐구는 분단소설의 승패를 결정짓는 제일의적 요소이다. 우리 사회의 근저에 놓여 우리의 삶을 왜곡시키는 근본 요인의 하나이기에 마땅히 극복되어야만 하는 것이 분단상황이라면 그것을 소재로 삼는 분단소설은 마땅히 그 원인을 탐색하여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여야만 한다.분단 문제의 서사화는 잃어버린 총체성을 되살릴 수 있는 형식이다. 인간의 문제에 관계된 중요한 관념의 완전한 이해는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는 말은 이런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모든 존재는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데, 소설의 시제가 과거형이어야 함은 이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인물의 삶이나 사건은 앞뒤로 이어지는 시간선상에서 관찰되고 진단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6 ? 25 직접체험세대의 소설을 유형화하면 다음과 같다.(a) 현상과 본질의 균형이 깨지면서 현상(일상적 삶)에 무게중심이 옮겨진 작품으로 염상섭의 「취우(驟雨)」가 있다.는 한, 직접성을 넘어서지 못함에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는 전쟁 상황이란 현실의 비극성이 화자인 소년의, 세계에 눈뜨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자아의 상처’로 환치되어 있음에 있다. 그러나 그 극복의 가능성은 소년의 어린 자아에 상처를 입힌 폭력적인 현실과 정면으로 대결, 그 안팎을 탐색하지 않는다면 한갓 가능성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3. 개별성의 일반화, 공적인 부(부)의 탐구1) 이데올로기로서의 부성(父性)원리 : 「오막살이 집 한 채」「허허벌판」「영웅시대」우리 소설의 한 특징적인 내적 형식은 ‘아버지의 부재(不在)’란 형식이다. 그것은 파행적인 역사 전개의 폭력성을 반영하거나(최서해, 기남천의 빈궁소설), 또는 젊은 세대의 삶을 이끌 수 있는 전통의 부재를 뜻하는(「무정」), 또는 이념 부재를 의미하는(「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것이다. 외부의 폭력에 압살당했든, 아들에 의해 부정되었든, 아니면 찾아지지 않았든 간에 이때의 아버지는 삶을 조직하고 그것에 방향을 부여하며 그 방향을 따라 움직이도록 추동하는 이데올로기를 표상한다.문학이 어떤 인물의 이데올로기를 심각하게 다루는 것은 이를 통해 동시대인 일반의 삶을 꿰뚫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그것을 형성한 토대의 성격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아버지의 부재라는 형식이 한 가정의 울을 넘어 사회 ? 역사적 일반성의 차원, 곧 공적 차원에까지 나아가는 폭넓은 의미장을 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아버지에 내포된 의미를 잘 보여주는 분단소설에 김성동의 「오막살이 집 한 채」가 있다. 해방 후 진보적인 운동에 투신했다가 전쟁 직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간 아버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작품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아버지는 옳았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의 삶을 좇아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이 주제이다.전상국의 「허허벌판」은 이와는 반대로 아버지, 즉 이데올로기의 냉혹한 폭력성을 탐구한 작품이다. 주인공 덕수의 아버지는 이북에서 ‘빨갱이짓 하던 박태혁’인데 그는 월남하여 국회의원 출마를 일놀이」등이 있다. 조정래의 소설의 기조는 원(怨)과 한(恨)이다. 그에게 있어 6 ? 25란 토지 소유의 구조가 근본 규정하는 ‘있는 자’와 ‘없는 자’, ‘압박자’와 ‘피압박자’ 사이의 오래된 원한이 폭발하는 장이며 다시금 새로운 원한을 형성시키는 장이다. ‘땅’은 곧 토대를 문제삼는 조정래의 이 같은 역사인식이 성숙하여 대작 「태백산맥」을 낳는다.작품 「태백산맥」의 표제인 ‘태백산맥’의 풍부한 상징성이 이 작품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먼저 태백산맥은 국토이다. 이 작품의 근저에는 국토 사랑을 더불고 있다. 이 작품의 중심주제의 하나인 외세의 침탈에 맞선 민족적 주체의식이 이와 깊이 관련된 것임은 물론인데, 이 점에서 「태백산맥」은 1920년대 국민 문학파와 연결되어 있다. 태백산맥이 상징하는 다른 하나의 의미는 역사이다. 이 땅에 태어나 살다간,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이 엮여 이루어진 역사인 것이다.4) 반근대적 세계와 소설 미달 형식 : 「장마」윤흥길의 「장마」는 분단상황을 반근대적 세계관으로 해석하는 유형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초등학생인 ‘나’의 친삼촌은 빨치산이고 외삼촌은 육군 장교이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처지로 갈라서 있으니 두 집안 사이에 불화와 반목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데올로기라는 근대적인 가치 형태로 인한 갈등을 작중인물은 반근대적인 샤머니즘이 해소하고 싸안는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에미」(1982)의 세계도 이와 흡사하다. 남편의 폭력도, 전쟁의 폭력도 ‘에미’는 샤머니즘화된 미륵신앙의 힘으로 이겨내고 감싸안기조차 한다. 에미의 모성과 그것을 뒷받치는 샤머니즘화된 미륵신앙은 반대로 ‘도의 사상’ ‘모의 사상’에 통하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 역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후 우리 문학의 나아갈 방향 하나를 배태하고 있는 대단한 의미이다.그러나 근대소설을 논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문제점도 분명하다. 진보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반근대의 세계는 원근법이 존재하지 않는 무방향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니 리얼리즘이 끼어들 산되어 종래의 역사소설을 넘어서는 작품들이 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80년대 초에 이르면 「토지」「장길산」「객주」등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 소설의 질적 성장을 앞서 이끌게 되는 것이다.여기서 중점적으로 검토하고자 하는 것은 세 작품의 공통된 내적 형식인 ‘길’의 의미이다. “소설의 내적 형식은 여로이다”라는 루카치의 고전적인 명제가 있거니와 이는 “소설이 다루는 것은 인간의 삶이다”라는 말로 그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다. 이들 세 작품에서는 하동에서 진주를 거쳐 부산 ? 서울 ?간도로 이어지는 「토지」의 길, 「장길산」이 광대들이 걷는 길과 그 연장선상에 펼쳐지는 활빈당 무리의 길, 보부상들이 이고 지고 걷는 「객주」의 길 등이 그러한데, 그 길들에 내재된 ‘길’의 내적 의미가 우리 관심이 초점이다.2. 운명론적 세계관과 강렬한 개성의 세계 : 「토지」「토지」는 봉건 사회의 붕괴와 근대적 사회로의 전환 양상을 다양한 경우를 동원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신분제의 붕괴와 새로운 인간관계의 형성, 전통적 지식과 새로운 지식의 충돌과 후자의 지배화 현상, 국내외 독립운동의 여러 갈래와 그것들의 관계, 식민 지배의 폭력성과 민중들의 처절한 현실, 역사의 방향성을 잃어버린 지식인들의 도덕적 타락과 도구적 지식인화 현상, 부산 서울 등의 근대적 도시화 양상과 노동운동의 전진 양상, 근대적 산업과 상업의 등장 등이 그 내용 항목들인데 「토지」에서의 이 같은 항목들에 대한 재현의 폭은 우리 소설사 전체가 미칠 수 없을 정도이다.그러나 이 큰 소설에서의 현실 반영은 개별적인 사실들을 정치하게 형상화하는 데 크게 기울어져 일반화의 측면이 상대적으로 매우 약화되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존재했거나 또는 존재할 가능성이 있었던 인물이나 사건 또는 상황을 통해 당대 현실의 일반성을 드러냄으로써 소설은 개별자의 특수하고 고유한 성격 속에 갇히지 않고 당대 현실 일반의 전체성을 담아내는 데로 나아갈 수 있다. 「토지」는 그런점에서 불충분 하다.이처럼 「토지」의 역사 모두가 부모없는 존재들이고 가정을 가지지 못한 또는 가정에 거의 매이지 않는 뿌리 없는 자들이라는 점에 있다. 이것은 당대 사회의 총체성을 담아내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어려운 한자어가 보부상의 입에서 쏟아지고 있는데, 이는 20세기 후반의 지식인 김주영의 언어이다. 이로 인해 현실의 왜곡과 역사적 진실성의 약화가 초래 되었다는 것이다.그 길이 개인적 차원의 정한과 복수심, 의리, 그리고 선 ? 악의 이분법적 윤리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이렇듯 여러 문제점 때문에 「객주」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의 중요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좋은 역사소설이라 하기는 어렵다.4. 황홀경의 사상 : 「장길산」「장길산」은 70년대 민중운동의 전사로서 조선 후기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형상화하고자 한 작품이다. 강영주의 지적대로 (a) 17세기 말을 시대 배경으로 함으로써, 소재 면에서 16세기 후반이 배경인 「임꺽정」에 비해 훨씬 현대적인 의의를 확보했고, (b) 당시 사회 현실을 「임꺽정」에 비해 한층 광범하고 다채롭게 묘사하고 있으며 민중세력들이 확고한 미래 전망을 지니고 반봉건적 변혁운동을 펼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 등에서 진일보했으며, (c)조선시대 민중들의 언어와 풍치의 성과를 거두었고, (d) 종래의 왕조 중심의 역사소설과는 달리 하층민 중심의 민중사로 당대 역사를 재구하였으며, (e)봉건 지배층의 관점에서 씌여진 사료들을 철저히 민중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하여 활용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문제점도 적진 않으니, a) 당대 사회의 경제적 발달상을 지나치게 근대적인 것으로 미화하고 있다는 점, b) 시대적 한계를 초월한 과장된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 c) 장면 중심적인 묘사보다 작가의 직접적인 설명에 치중한다든가 등장인물의 심리를 과다하게 묘사하는 등 형상화 면에서의 부정적인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 d) 변혁 운동을 주도하는 민중 출신 지도자들을 다분히 지식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리고 있어 당대의 민중운
    인문/어학| 2007.04.13| 10페이지| 2,000원| 조회(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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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소설사] 김윤식, 7~9장 요약 평가A+최고예요
    제7장한국전쟁의 충격과 새로운 출발의 모색1. 한국전쟁과 문단의 재편성한국전쟁의 가공할 폭력은 막대한 인명, 재산피해를 포함하여 대다수의 문인에게도 폭력으로 작용했다. 현실의 변화가 빠를수록, 규모가 클수록 작가들은 위축된다. 게다가 그들은 전쟁이라는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린 터라 냉정하게 현실을 탐구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하지 못했다. 더욱이 모국어 능력에서도 문제가 있었다.전쟁과 폐허로 요약되는 한 시대는 우리의 소설 속에 어떤 양상으로 반영되었는가를 살피는 것이 여기서의 과제이다.2. 구세대 작가들의 세계 : 연속성과 비연속성한국전쟁은 민족의 대이동을 낳았다. 작가들도 혹은 남으로, 혹은 북으로 이동했다. 월남한 문인들과 남쪽의 문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단을 형성하는데 전쟁기간과 그 직후, 남한 문단의 중심은 그들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 기간중 이들은 주로 종군작가단을 구성, 전쟁의 한복판에 관여했다.한편, 구세대 작가들이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들이 이미 앞 단계 문학세계와의 연속성이나 확고한 세계관을 갖춘 상태에 있었기에, 폭력에 휘둘리면서도 시각의 연속성을 견지할 수 있었다.1) 일상적 삶의 연속성과 자연주의적 창작방법 : 「취우(驟雨)」「취우」(조선일보, 1952.7.18~1953.2.20)는 「난류」(조선일보, 1950.1.1~6.25),「새울림」(국제신보, 1953.1.15~1954.2.5)과 삼부작을 이루는데, 말하자면 중간에 놓여 연속성의 고리 몫을 하고 있는 작품이다.「난류」에서 작가가 겨냥한 것은 이른바 좌우합작노선에 섰던 작가의 가치중립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새 시대의 윤리와 이에 걸맞는 인간형을 그려내는 것이었다. 「취우」는 일상적 삶에 6?25라는 소나기가 남긴 ‘얼룩’의 기록이다. 이 작가는 6?25는 엄청난 위력을 지닌 외부 폭력이지만, 그러나 한순간 쏟아졌다 그치는 소나기에 불과하다는 것, 일상성의 세계는 물론 얼룩지지만 그러나 그 본질은 여전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자 했다. 「취우」의 일상성의 세계가 곧바로 「새울림」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같은 근본주의가 상처입고 지친 영혼을 위무하는 모성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4) 균형과 조화의 소설 미학 : 이범선이범선 초기소설의 인물들은 실어증 환자들이다. 그들의 실어증은 자기 정체성도 삶의 방향성도 상실해버린 사람들의 운명이고,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다시는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생겨난 깊은 상실감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죄의식, 비정한 현실 질서와의 대결의식과 결부되어 있기도 하다.실어인들을 통해 이범선은 한국전쟁기와 전후, 그리고 타락한 현실질서가 폭력적으로 군림한 그 이후 한국 사회의 한 본질을 깊이 파헤치는 강렬한 문학세계를 구축하였다.이범선 소설의 대부분은 일인칭 관찰자 시점을 취하고 있다. 이는 인물이나 상황의 안쪽에 대한 탐구를 근본 제약한다. 이범선의 이러한 시점은 실어에 이를 정도로 크게 상처입은 인물들의 분노와 고통과 적의로부터 한발 물러서 그것들을 걸러 보여주는 장치이다. 바로 이 지점에 이범선 문학의 미학이 드러난다. 균형과 조화를 지향하는 미학이라 할 것인데, 이것이 이범선 문학을 손창섭과 오영수로 대표되는 극단 지향의 미학 위에 선 50년대 문학 일반과 날카롭게 가른다.이는 문체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접속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짧은 문장을 놓아나가는 것이 이범선 문학의 가장 두드러진 문체적 특성이다.5) 원점의 확인 : 최일남, 이호철, 강신재, 박경리, 김성한, 서기원전후소설의 대부분은 객관 현실의 구체적 탐구를 외면하고 추상적 무시간성의 미로를 방황했다. 서사 형식의 성립이 불가능했던 것이 이 때문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소설의 새로운 단계를 예고하는 징후들도 이 시기 소설은 보이고 있었다.(가) 서사의 출발전 : 「쑥 이야기」먼저, 최일남의 「쑥 이야기」(1953), 전쟁중의 판자촌이 무대이다. 아버지는 노무자로 끌려나가고 만삭의 어머니와 어린 딸 인순 두 모녀가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핵심은 1950년대의 ‘절대 궁핍’ 이다. 비록 사회, 역사적 제 관련동체를 포상한다. 이를 또다른 추상어로 바꾸면 자유와 평등이다.그러나 이처럼 큰 의의에도 불구하고 이중의 관념화라는 「광장」의 방법론은 거친 단순화와 현실성의 약화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관념의 세계는 아무리 정서적(情緖的)이고 명료할지라도 지적 유희의 인력에 의한 자의적 조작의 가능성을 지니며, 그럼으로써 객관 현실에 의한 그것의 정합성 여부에 대한 검증의 기회를 스스로 봉쇄하는 측면을 갖는다. 이중의 관념화라는 「광장」의 방법론은 이전의 한국소설에서의 그 어떤 방법론보다 새롭고 그런 만큼 현실 진단의 폭과 깊이를 아울러 확보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처럼 자기 논리에 폐쇄되는 한계성을 이미 자체 내에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관념에의 도피, 관념을 통한 이데올로기 초극의 노력은 한계에 부딪혔다.2) 구체적 형상성의 힘 : 「소시민(小市民)」이호철의 「소시민」에 그려진, ‘비생산적 폭발성’을 내재하고 소용돌이치는 전쟁통 부산 사회의 복잡한 혼란상을 유기적 전체로 엮어내는 것은 ‘나’의 현실 속 여행의 길인데 그것은 또한 소년기를 벗어나 성인의 단계로 나아가는 한 인물로 성장 과정이기도 하다.인물들을 통해 제시된ㄴ 부산 사회의 세목들로 가득 찬 작품세계는 언뜻 보아 대단히 혼란스럽지만, 주인공의 여로가 그 가운데를 꿰뚫고 있어 하난의 유기적 전체로 성립되는 것이다.「소시민」은 한 젊음의 현실 속 여행을 통해 한 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오는 전환기적 변동상을, 그리고 그 밑에 도사려 현상을 규율하는 동력과 그것의 흐름을 담아낸 것이다.이호철은 감각의 작가이다. 대상의 분위기에서 오는 느낌으로 그것의 속성을 단숨에 파악하는 것이 그의 대상 파악의 방법론이다. 이 때문에 그의 문학은 빼어난 예술가적 감각의 날카로움으로 빛나지만 한편으로는 이로 인한 분석적 측면의 약화로 인해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진단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으며 한 사회의 전체성을 껴안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한다.2. 4 ? 19 체험과 그 소설적 변용 양상4?19는 자유의 최대치를 보여준 역사적 사건에 도사리고 있었다. 밝은 빛을 두려워 하고 빛 앞에 나서기를 부끄러워하는 일종의 원죄의식이라고 한다.3) 상대주의와 반어체 : 서정인의 소설세계60년대 작가 중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 중 한사람은 서정인이다. 「후송」(1962) 이래 「강」(1968), 「원무」(1969), 「가위」(1976)등에 이어 연작장편 「달궁」으로 이어지는 30년을 넘는 기간을 일관하는 기본 시각은 어떤 절대적 가치도 인정하지 않는 상대주의이다.이같은 상대주의는 집요한 반성적 성찰에 뒷받침됨으로써, 상대주의가 빠지기 쉬운 중심 상실과 그로 인한 주관적 판단의 위험성을 적절하게 통어한다.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관념들의 실제와의 괴리를, 실제의 왜곡을 폭로한다. 상대주의와 반성적 성찰은 독특한 문체를 낳았는데, 대화체와 같은 말엔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말꼬리 잇기와 뒤집기를 통해 성립한ㄴ 독특한 ‘반어체’가 그것이다. 반어체는 풍자적이지 않고 오히려 비애 서린 해학에 더 가까운 분위기를 지닌다.4) 예술가의 존재방식과 문제적 인물 : 「유자약전(劉子略傳)」스스로의 문학을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명명한 이제하의 소설들은 우리 소설사에서 대단히 이채롭다. 현실의 구체적 반영이라는 우리 소설의 살을 이루는 측면이 빈약한 것인데, 이제하는 그 빈곳을 예술가의 섬세한 감수성이 포착한 감각적 느낌과 예술가의 몽상으로 채운다. 그 예술가들은 현실 질서와 화해롭게 어울리지 못하기에 현실 질서로부터 괴리되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유자약전」(1969)의 화가 유자이다.한편 「유자약전」에 그려진 이같은 예술가의 존재 방식이 소설 주인공의 본질에 통한다는 사실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소설은 근본적으로는 아이러니 정신 위에 성립되는 것이다. 자신과 세계의 동시적 부정을 통해 현실 질서의 타락성을 드러내고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유자(그리고 나)는 이같은 문제적 이물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존재인 것이니,「유자약전」은 소설의 본질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전범인원 문학은 극적인 상황, 극적인 인물 성격 등의 요인으로 해서 극성을 그 핵심 특성으로 하는 세계를 펼쳐 보였다. 극적 대결, 자존 지키기와 자기 실현을 위한 굴강의 의지가 만들어내는 긴장으로 터질듯한 세계이다.기독교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에 박영준의 「종각」(1965)이 있다. 현저히 관념적인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1956)에 비해 훨씬 구체적으로 기독교의 중심인 죄의식 문제를 다루었다.「수난이대」(1957), 「흰 종이수염」91959) 등에서 역사의 격량에 휘말리는 평범한 농민들의 혹독한 수난과 그럼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새롭게 일어서는 모습을 그려내었던 하근찬은 그 연장선상에서 장편 「야호(夜壺)」(1971)를 쓴다. 작가의 역사 해석은 소박하지만, 그러나 지극한 애정에서 비롯된 연민의 눈으로 그려내는 평범한 농민들의 수난상은 더 깊은 역사 해석에 기초한 어떤 작품들의 그것보다 절실함과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흑산도」(1955)로 등단한 전광용은 “역사의 흐름에 밀려 혹은 때를 잘못 만나 비참하고 척박한 삶의 형편에 빠져”드는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을 통해 근?현대사의 파행성을 증언하였다. 작가의 비판정신은 우리 사회에 미만한 정신적 병리 현상을 날카롭게 파헤친 「충매화(蟲媒花)」(1960), 「죽음의 자세」(1963), 「제3자」(1964)등의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정한숙의 「도정(道程)」(1955), 「애정지대(愛情地帶)」(1955), 「고가(古家)」(1656), 「암흑(暗黑)의 계절(季節)」(1957), 「끊어진 다리」(1962) 등은 일제 강점기 말기에서 한국전쟁 직후까지를 중점적으로 다룬 작품들인데, 작가의 관심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현대사의 현장을 객관적 ?구체적으로 그려 보이고자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름대로의 현실 극복의 방향을 제시하려 한 점이다.이 밖에도 「인맥(人脈)」「천맥(天脈)「지맥(地脈)의 작가 최정희의, 파인 김동환의 추억을 중심으로 일제 말기에서 전쟁 시기까지의 현실을 증언한 「탄금(彈琴)의 서(書)」「감정(感된다.
    인문/어학| 2007.04.13| 15페이지| 2,000원| 조회(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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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소설사] 김윤식, 4~6장 요약 평가A+최고예요
    제 4장리얼리즘 소설의 분화와 그 양상1.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대립구조1920, 30년대 우리 소설사의 중심축은 그 뚜렷한 이념성의 선도 아래 우람하게 뻗어 있는 경향소설과 염상섭?채만식 등의 소설이었다. 「고향」이 대표하는 경향소설과 염상섭?채만식 등의 소설은 구체적 형상화를 통해 당대 현실의 총체성을 담아내고자 했고, 이 같은 의도를 상당한 수준에서 성취하였다는 점에서 다 같이 리얼리즘의 범주에 든다. 다만 세계관의 차이와 이에서 비롯하는 방법론의 서로 다름에 의해 구별될 뿐이다. 이처럼 경향소설과 염상섭?채만식 등의 소설을 리얼리즘이라는 범주로 함께 묶을 때, 이 시기 소설사는 그 반대편에 놓이는 이상?박태원 등의 모더니즘 소설과의 대립 구도로 파악된다.2. 「삼대」의 의미망1) 내면 고백에서 풍속의 탐구로1926년 1월, 염상섭은 재도일한다. 귀국한 지 6년만에 초기 3부작과 「만세전」을 발표하고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다졌을 뿐 아니라, 민족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비평가로 나서서 날카로운 필봉을 휘둘렀다. 염상섭은 「6년 후의 동경에 와서」(『신민』, 1920, 5)라는 수필에서 그 이유를 (a)"잠깐 산보 삼아서“와 (b)"조선이 싫어서, 조선 생활에 염증이 나서” 두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그러나 훗날의 술회에 따르면 그의 재도일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일본 문단에 진출해보고자 하는 야심에 이끌린 것이었다. 그래도 이 2년간의 일본 생활로 진정한 작가로 서게 되었다.그의 초기 3부작은 일본 소설의 연속선상에서 씌어졌다. 제도적 장치로서의 고백체 형식에 따라 쓴 것이 그 3부작이었던 만큼 과격하게 말한다면 우리 소설이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염상섭의 창작이라고도 하기 어렵다.이차 도일을 통해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본질, 곧 ‘섬세한 묘사와 정치한 기교와 면밀한 관찰’의 중요성에 눈떴고 이로써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를 진정한 작가라 감히 말할 수 는 것이다.재도일 시 동경의 하숙방에서 완성한 장편 「사랑과 죄」를 비롯하다. 돈을 둘러싼 인물들의 의식과 행위는 당대 현실의 경제적 질서 바깥에 놓여 있음을 말해준다.3. 식민지 경제질서의 탐구 : 채만식의 문학경향소설과 염상섭 소설은 서로 보완되어야 할 관계를 이루며 1920~30년대 소설사를 떠받들고 있다. 그 사이에 채만식 소설이 놓인다.1) 자본주의 체제의 마성 : 「탁류」동경에 유학을 보냈던 살림이 하루아침에 기울어져 가난의 체험이 그의 생애를 점령하게 되었다. 이같은 개인적 체험의 몰락과 가난의 체험의 일반화가 채만식 문학이라 하겠는데 「탁류」그 중심이다.(가)「탁류」의 원형 : 「보리방아」연작「탁류」는 주인공 초봉의 일생이 중심축인 ‘여인의 일생’형 소설로서 「보리방아」(1936),「동화」(1938),「병이 낫거든」(1941)연작에 이어진다. 「보리방아」연작은 가난한 소작농의 딸이 제사 공장의 노동자가 되었으나 가혹한 노동의 영양 결핍으로 폐결핵에 걸려 귀향하게 된다는 내용인데, 자본주의 체제의 마성을 하나의 삽화로써 섬뜩하게 드러내놓았다.채만식은 농민이 전체 인구의 8할을 점유하고 있기에 농촌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각하고 여기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스스로의 고백대로 ‘생산관계’(농업적인 생산 과정)를 취급하지 않은 ‘사이비 농민소설’에 머물렀는데 이 연작 또한 이같은 문제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나) 당랑거철의 법칙「탁류」의 주인공 초봉의 일생은 처참한 전락의 연속이다. 파행적인 자본주의화의 와중에서 생겨난 온갖 독소들이 처녀의 순결성을 여지없이 짓밟아 파괴한다. 이러한 자본주의화의 대세에 밀려 파멸하는 인물군이야말로 「탁류」를 지배하는 ‘당랑거철’의 법칙을 보여준다.채만식은 성숙한 일본 자본주의의 이식이 초기 자본주의 단계에 놓인 조선의 민족자본을 어떻게 침탈하는가를, 그리고 자본주의화의 진전에 따라 이득을 보는 계층과 오히려 손해를 보는 계층이 명확하게 구분됨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초봉의 절망은 작가의 절망이니 허무주의의 심연이 바로 발아래 늠실거리고 있다.(다) 서사 양식과 극 양식 : 「적 입장을 견지했던 이효석의 ‘자연’ 귀의 또한 같은 자리에 놓여 있다. 이효석의 걸작「메밀꽃 필 무렵」은 문체의 아름다움, 달빛처럼 작품 전체에 스며들어 있는 서정성 등을 그 근거로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메밀꽃 필 무렵」은 인간의 근본적 존재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이효석 소설을 일관하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1) 그의 소설은 겉으로 보아 화려하지만 그 다루는 대상은 대체로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갖가지 권력에 의해 상처입은 소외된 인물들의 외롭고 남루한 삶이다. 2) 그런 대상을 다룸에 있어 이효석은 그 대상의 현실을 깊이 추구해 들어가지 않고 갑작스럽게 성의 신비나 자연의 아름다움 또는 생명력을 찬미하는 쪽으로 비약한다. 3) 이효석 소설은 대부분의 경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4) 이효석 소설 속 주인공은 대체로 자신의 의지로써 생을 실현하고자 하는 강한 주체성의 소유자이다.주인공들이 지향하는 세계 또는 인물들을 이끈 것이 성과 자연이었다. 이효석 문학은 전체적으로 보아 어느 순간 대상에 대한 추구를 멈추고 관념적 환각의 세계로 비약하는 중도반단의 리얼리즘에 머물렀다.4. 역사소설의 시대1930년대에 역사소설이 크게 융성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하였겠지만 산문정신의 약화가 그 궁극의 원인이었다. 산문정신의 약화라는 요인이 과거를 택하게 했던 만큼 이 시기 생산된 역사소설은 일반적으로 역사적 사실의 사사화, 낭만화에 기울었으며 과거와 현재의 무매개적 동일시에 함몰되어 역사적 진실성의 확보에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였다.역사소설은 ‘낭만주의적 역사소설’과 ‘사실주의적 역사소설’로 대별된다. 이시기에 범람했던 역사소설은 대부분 낭만주의적 역사소설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홍명희의 「임꺽정」이 유일하게 사실주의적 역사소설의 면모를 지녔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 또한 엄연한 한계 내에서였다.1) 강렬성 ? 불변성한국 역사소설의 인물들의 성격은 대체로 지나치게 강렬하다. 강렬하다는 말은 어떤 이념이나 정열의 표상이 자장위한 필사적인 도주(노력)가 바로 글쓰기임을 뜻한다. 바로 이 점이 이상 문학, 나아가 모더니즘 문학의 핵심 성격을 결정짓는다. 단절성 또는 불연속성이 그 요체이다.큰 시각에서 볼때, 불연속성이란 유기적 세계관으로 말해지는 낭만주의 또는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휴머니즘과의 단절성을 가리킨다. 휴머니즘의 세계관에 바탕을 둔 낭만주의를 유기적 세계관 또는 연속성의 세계관이라 한다면 이러한 세계관에서 바라본 작가는 천재(개성)이다.종래의 글쓰기가 사회적 목적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라면 이상에서 비롯되고 이상에서 철처화된 무목적적 글쓰기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의 열어 보인이다. 세계를 하나의 ‘제작’의 일종으로 보는 비유기체 이론의 영역 안에 속해 있다. 이것이 바로 이상 문학의 새로움이다.1) 세 가지 기호 체계(a) 국문으로 된 초기의 소설들. 곧「12월 12일」「후업과 사정」「지도의 암실등이다. 아직 절망의 극복을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기교 문제가 드러나 있지 않다.(b) 일어로 쓴 창작 노트계. 「이상한 가역반응」「오감도」등은 일문으로 창작했다는 것은 그가 다만 기호 체계에 매달렸음을 증명한다.(c) 국문으로 쓴 일상적 사실을 다룬 수필체 소설 유형. 「사신」「산촌여정」「날개」등을 말한다. 여기에 나오는 작중화자나 주인공은 이상 자신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이렇게 보아올 때 이상 문학의 세 가지 기호 체계는 일관성을 유지했음이 드러난다. 죽음(자살)으로부터의 탈출을 꾀한 ‘무서운 기록’으로 수렴되는 그의 글쓰기는 초기 단계에서는 매우 상징적인 성격을 지녔고(a체계), 중기 단계에서는 아주 추상적인 관념 형태를 띠고 나타났으며(b체계), 후기 단계에서는 구체성을 띠고 나타났던(c체계) 것이다.2) 회색의 세계와 초록의 세계 : 열쇠찾기이상은 현실 속에 살면서 그것을 관념으로 바꾸어 바라보는 시각을 우리문학에 처음 보여주었다. 관념 쪽에 서서 현실을 보면 그야말로 현실은 초록색이다. ‘환각의 인’의 처지에서 보면 초록색의 세계란 공포로 가득 찬 세계이며, 회색의 세계현이 글쓰기의 혁명에 해당하는 가는 리얼리즘계 소설과 비교할 때 뚜렷해진다. 리얼리즘계 소설은 무엇보다도 작가의 세계관과 창작방법론이 분리되지 않음을 원칙으로 한다. 구보는 소설가이지 현실적 인간이 아닌 만큼 세계관을 가질 수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문제는 구보 자신이 갖고 있는 관념을 순수한 형태로 묘사하는 일에 있었고, 자기를 대상으로 한 자기 언급적인 글쓰기였다.2) 「애욕(愛慾)」에서 「천변풍경(川邊風景)」 까지「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고현학적 방법으로서의 순수한 형태라면 그 속편에 해당하는 것이 「애욕」이다. 그러나「애욕」은 고현학의 방법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도입(절충형 고현학)을 시도했다. 고현학을 어느 수준에서 견지하면서 생활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그것이다.「천변풍경」은 타협을 전제로 한 것인 만큼 방법론상의 후퇴로 말미암아 실험도 아니고 생활도 아닌 엉거주춤한 상태에 주저앉은 작품이다. 고현학 쪽에서 보면 수준 미달의 작품이며 생활쪽에서 보면 세계관의 결여로 말미암아 한갓 세태풍속의 묘사에 그친 작품이다. 「천변풍경」이 박진감을 갖는 것은 순전히 묘사력 때문이다. 작가가 가장 잘 아는 대상을 그렸기 때문에 박진감 확보가 가능했을 뿐, 방법론과는 거의 무관한 것이다.작가 박태원이 이 사실을 자각했음은 틀림없는데, 그가 동양 고전 번역에 나아간 사실이 이를 증거한다. 그가 새로이 발견한 방식은 고현학이 아니고 다만 ‘글쓰기’ 자체였다. 이러한 순수한 글쓰기의 연마가 새로운 현실과 결합될 때 놀라운 세계가 창출될 수 있었는데 「갑오농민전쟁」(1977~1986)이 그것이다.5. 『단층』파와 지식인 문학 ? 전향문학의 관계이상과 『3?4문학』파의 관계란 논리와 생리의 관계에 해당되며, 따라서 『3?4문학』파에게는 근대의 초극이란 애당초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학사적 관계가 최명익과 『단층』파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이 두쌍의 관계는 이에 멈추지 않고 서울 중심주의와 평양 중심주의의 문제성조차 안고 있어 중요한 정신사적 과제에 해당한다.않다.
    인문/어학| 2007.04.13| 15페이지| 2,000원| 조회(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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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소설사] 김윤식, 요약 1~3장 평가C아쉬워요
    국어국문학과 학생(?)으로 이번 학기를 보내면서 아쉬움이 남는 한 가지는 이 과제를 끝까지 마치지 못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끝까지 하지 못한 것은 저의 게으름 때문입니다. 성적평가와는 별도로 방학 때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겠습니다.전과 신청을 했는데 요건이 맞지 않아 복수전공 하기로 했습니다. 너무 아쉽습니다. 그래도 하고 싶었던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었다는 것과 아름다운 사람들과 강의를 같이 들었다는 것, 그리고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더욱 열정을 갖게 된 것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더욱 열정적이고 성실한 학생이 되어 교수님을 뵙겠습니다. 교수님 건강하세요.제 1장개화공간의 이념성 형식 및흥미성 형식의 출현과 그 변모 과정1. 정치적 감각과 상상력의 공백 현상, 혹은 가능성우리 근대소설을 문제삼을 때, 먼저 검토되어야 할 대상은 구소설과 근대소설 사이에 놓여 있는 과도기적 성격을 띤 신소설에 있다. 이 신소설을 무게중심에 두고 문학사를 정리하는 일이 우선적인 과제이다. 여기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접근 태도가 있다. 개화공간의 문학적 현상이 개화사상에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 둘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구소설과의 연속성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연구 태도가 다른 하나이다. 앞의 태도로는 개화공간의 다양한 문학적 현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 같은 태도는 강박관념을 형성하게 되었고, 필연적으로 사상적 조급성, 과격성을 유발했다. 처음으로 정치소설이라는 표찰을 달고 나온 「서사건국지」의 머리말이 이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그러나 개화공간의 소설개념에는 정치소설만 있던 것은 아니다. 소설을 허구의 개념으로 파악한 이해조의 ?화의 혈? 에는 소설개념의 하나를 만난다. ‘빙공착영’이라는 용어가 잘 말해주듯, 이 소설관은 소설의 허구성을 전제한 것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개화공간에서 정치소설과 빙공착영론을 내건 흥미 중심의 소설의 관계를 통해 신소설이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다. 신소설이 무엇인지는 이인직 소설의 본질을 묻는 것이 자기 하는 것 같이 즐거운 일은 다시 없는지라” 라고 단언하고 있거니와, 바로 여기에 이념형 소설「혈의 누」의 핵심이 놓여있다.이념성과 흥미성의 절묘한 균형감각 위에 설정된 것이고 그 때문에 그것은 새로운 소설 형식의 창출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게 놓인 정치적 상황이 바뀌면서 , 과 같은 흥미 위주의 작품과 이념 일변도의 가 동시에 쓰여 졌다.3) 이념성과 흥미성의 균형 붕괴현상「혈의 누」가 확보한 이념성과 흥미성의 절묘한 균형이야말로 이인직의 독창성이다. 정치소설 형식에 이야기성을 주축으로 하는 구소설의 방식을 결합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이런 절충주의는 곧 파탄에 봉착하고 만다. 이념성의 약화와 흥미성 쪽으로의 경사로 인해 「귀의 성」, 「치악산」등이 씌어졌다.정치소설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의 한계를 누구보다 정확히 안 이인직은 상업주의에 빠져 구소설 작가로 전락하고 말았다.그러나 정치소설의 본질을 혼신의 힘으로 파악한 문제적 개인 이인직은 귀국하여 한국 현실을 정확히 포착한 결과로 정치소설의 ‘결여 형식’인 신소설 「혈의 누」라는 걸작을 썼다. 러일전쟁, 통감부 설치, 한일합방 등의 숨 가쁜 변화에 이인직은 재빨리 대응하였다. 「귀의 성」,「치악산」으로 대표되는 흥미 위주의 작품과 이념 일변도의 「은세계」가 동시에 씌어졌다. 「모란봉」까지 나아갔지만 그러나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국면에 부딪쳤다.4. 흥미성의 새로운 형식 : 이해조의 경우「거부오해」를 비롯한 문답체, 왈체 형식은 당대의 현실적 과제에 관련된 것이었고 그 때문에 강렬한 정치성을 지녔지만, 「자유종」의 토론 내용은 한국적 정치현실과는 거의 무관한, 막연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이해조의 새로운 소설 형식이 선명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 「화의 혈」,「춘외춘」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해조가 「화의 혈」을 쓰던 당시의 시각에서 보면, 조설의 계몽주의적 의의가 아직 맨 앞에 놓여 있었지만, 이미 그것은 전대의 허울에 지나지 않고 바야흐로 소설의 진짜 목적이 흥미성에 있음을 천명한선한 것이며 나아갈 지표라는 사상이 마음 가난한 소년에게는 정결주의로 수용된 형국이었다. 이광수가 「무정」에서 그토록 강조한 민족주의도, 물론 그것은 동학의 포덕천하 사상에서 배운 것이지만, 실상은 마음 가난한 소년에게는 순수무구한 추상적 이념의 일종이었다.2) 「무정」이 놓인 자리(가) 시대적 진취성시대적 진취성이란 곧 생명적 진취성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는 「무정」속 등장인물들의 의식의 핵심성격이다. 몰락계층 혹은 조만간 몰락할 처지에 있는 계층의식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상승하거나 조만간 상승할 계층의 세계관의 최대지를 드러낸 것이 「무정」이 지닌 첫 번째 의의이다.주인공 이형식은 동경 유학을 한 경성학교 영어교사인데 학생들의 의식화에 적극적이다. 이형식이 대변하는 상층계층의식이 식민지 통치자를 이롭게 하는 것임을 들어 누구나 손쉽게 비판할 수 있다.가치중립적인 제도로서의 근대의 영역을 어느 수준에서 승인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바로 여기에 이광수로 대표되는 초기 준비론의 역사적 의의가 있다.(나) 사제관계의 구조층「무정」은 작품이기에 다른 논리적 언술이나 주장이 시효를 상실한 후에도 살아남았으니, 그것은 문학 고유의 감각적 명징성의 힘 때문이다. 이 감각적 명징성은 여러 구조층을 이루는데, 그중의 하나는 사제관계이다. 최초의 근대 자연소설인「무정」의 인물들의 관계가 엄밀한 사제관계를 이루고 있음은 주목해야 한다.기생인 박영채와 이형식 사이에 직접적인 사제관계가 성립되기 어려우나 김병욱의 등장이 이형식 다음가는 중심 인물인 박영채와의 사제관계가 성립됨으로써 완전한 교육소설로서의 면모를 갖춘다. 「무정」의 결말 부분인 삼랑진 수재민에 대한 민족애로써 4인(이형식, 김선형, 박영채, 김병욱)이 여관에서 대책을 논의하는데 이형식은 교사로서 높고 성스러운 존재로 회복된다. 이 사제관계의 압도적 확실성이야말로 「무정」이 갖추고 있는 시대적 진취성이자 작품 구성의 원리이다.개인 감정은 하나로 융합될 수 있었다. 즉 이형식과 세 처녀사이의 사제관계가 성립된 것 이다.춘원있다고 본 것이다.2. 방법으로서의 예술성 출현 : 김동인의 참예술론우리 근대소설의 독자성을 처음으로 천명하고 또 그것을 지속적으로 한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설득력있게 추진한 무대가 동인지 《창조》였으며 그 중심인물이 김동인이었다 함은 이미 움직일 수 없는 문학사적 사실로 되어 있다.《창조》에서 이 두 기둥과는 전혀 다른, 제3의 범주가 등장했다. 이 순간 우리 소설사는 계몽주의 차원에서 한 단계 높아졌으며, 이후로 이것은 소설이 사상이라든가 감정집결체(정서)의 수준을 넘어서는 이른바 예술작품의 새로운 범주를 가능케 했다. 김동인으로 하여금 예술성이라는 개념을 끌고 들어오게끔 한 것은 근대소설의 필연성이다.1) 이념성의 새로운 대처 방식《창조》 동인의 세대적 성격은 주요한, 김동인, 염상섭, 김억, 서춘, 전영택 등은 10살 전후에 합방을 겪었으며 3·1운동 즈음에는 겨우 청소년급에 속해 있었다. 예술성의 세계를 조선천지에 처음으로 씨뿌리고자 하였는데, 세대가 달랐던 것이다. 14,5세의 나이에 일본에 유학하여 뼈가 굵어간 이들에게 있어, 보다 긴요한 삶의 실천과제는 민족의 독립이기보다는 근대성의 획득에 있었다. 자본주의와 그것의 제도화된 틀 자체가 의식을 변화시켰던 것이다.제도가 의식을 변화시킨다는 생각, 그러니까 인간 주체성도 제도에 종속된 것이라는 사고가 김동인 세대의 특징이었다. 근대성이 가치중립성으로 파악된 것도 여기에 말미암는다. 그렇다고 이들 세대가 민족의식이라는 이념성과 완전히 무관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의식상에서 그것이 예술성의 다음 차례에 놓였다는 것이다. 이들 세대의 의식을 궁극 규정한 것은 가치중립성으로서의 근대성이었고, 이를 이념화한 것이 예술성(참문예)이었다.2) 인형조종술로서의 참예술‘ 참예술가’란 무엇인가. 이런 물음에 최초로 진지하게 던진 문인이 김동인이다. 조선인의 소설에 대한 태도를 비판하는 글에서, 현재의 조선인은 가정소설·통속소설 등 흥미 중심의 소설에 매달려 있고 참소설에는 전혀 관심없음을 비판한 다음, 참소설을 "인생인 「표본실의 청개구리」이다. 이어서 「암야」「제야」를 썼는데 이는 내면고백체라는 점에서 3부작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먹고 사는 문제 즉 생활문제와 관련이 없는 자리에서 비로소 내적고민(인생문제)이 문제되는것이라면 는 한국인이 쓴 소설 중에서 제일 낯선 것이다. 이 낯섦이 그동안 제일 낯선 것으로 되어 있는 김동인 자신의 문학보다 더욱 낯선 것이라고 김동인 스스로가 인정한 점이야말로 소설사적이다.(가) 내면의 발견염상섭의 정치적 감각은 매우 앞서 있었으며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무대도 주어졌지만, 스스로 그것을 버렸다는 점과 이 문제가 관련된다. 망명의 길을 택함으로써 정신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이에 기대어 삶의 의의를 찾는 주체성 확립과정과 등가이다.고백체란 대단한 권력의지와 주체성과 강자의 논리를 담는 형식이다. 고백체라는 제도적 장치가 바로 근대소설이라는 형식이었다. 그것은 외적 권력에서 온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러한 권력에 역행하여 그와 대립된 자리에서 나온 것이다. 김동인·염상섭의 내면고백체는 임시정부의, 이관수의 이념성과 맞먹는 것이었다.(나) 일본 근대소설과의 연속성염상섭의 3부작이 놓인 위치를 재는 일은 일본의 근대소설이라는 제도적 장치와의 비교에서 비로소 가능하다. 3부작의 문체는 일본소설 문체에 철저하게 접근해 있다.염상섭의 경우는 일본소설 문체 자체만 있고 그것을 조선어로 번역한다는 식의 김동인식 발상과는 썩 다른 범주였다. 원래 문어와 구어의 구별이 있었는데 이를 일치시키고자 한 것으로 일본의 언문일치운동을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문어도 구어도 없는 마당에서, 이 둘을 일치시켜야 했던 것이다. 당연히 문어도 구어도 만들어내어야 했고, 그 다음에 이를 일치시키는 것이 순서였다. 민화의 인식범주, 5음체계의 인식범주에서 원근법의 인식범주, 7음계의 인식범주에로의 전환을 두고, 그것의 서술방식을 언문일치라 불렀을 뿐이다. 우리의 경우도 사정은 같다. 염상섭은 이 점에서 철저하였다. 그의 소설만이 가장 근대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다)것이다.
    인문/어학| 2007.04.13| 13페이지| 2,000원| 조회(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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