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습이론{{{조건결과{설명적(descriptive)이론{방법1. 행동주의 이론행동주의적인 학습의 이론은 관찰(observable)할 수 있고 측정(measurable)할 수 있는 명백한 행동(overt behavior) 만을 다룬다. 행동주의 학습이론은 행동을 통제하고 예측하는데 있어, 모든 유기체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법칙의 발견을 추구한다. 따라서 행동주의 학습이론은 학습자의 외부에 존재하는 사건 즉 특정한 행동을 이끌어 내거나 (elicit) 생각나게 하는(cue) 자극과, 이러한 자극과 반응의 관계를 유지하게 만드는 강화로 규정지을 수 있다.1) I.P.Pavlov(1849~1936)러시아의 생리학자 I.P.Pavlov에 의해서 연{학습이론과 교수이론구된 조건반사이론은 미국에 건너가서 행동주의(行動主義)와 결합되어 조건반사설로 명명되었다. 또는 고전적인 이 학설은 새로운 행동의 성립이 조건하에 의해서 설명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일정한 훈련을 받은 뒤 반응이나 새로운 행동의 변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학습이론이다.1 파블로프의 실험- 개의 타액반응생리적인 반사로서 타액분비를 일으키게 하는 음식 {RARROW무조건자극이 때 일어나는 타액분비 {RARROW무조건반사음식에 결합되어 주어진 벨소리 {RARROW조건자극이에 의하여 일어나는 반사 (타액분비) {RARROW조건반사{조건자극 CS ----------------------> R 무반응 또는 무관반응(조건형성전)조건자극 CS(조건형성후) ----------------------> CR 조건반응 CR학습된것무조건자극 UCS ---------------------> UCR무조건반응 UCR학습에 의하지않은것△ 고전적 조건형성과정 ▲ {) 林承權, 敎育의 心理學的 理解, 學志社, 1996, pp. 151- 조건화{CDOT강화조건자극을 무조건자극에 결부시켜서 조건반사를 일으키는 것2 조건반사가 성립하는 원리1 시간의 원리 : 조건화하려는 자극은 무조건자극보다는 시간적으로 동시 또는 조금질문들을 하면서 반응 뒤에 제시되는 무엇 때문에 학습하는 것을 연구하게 되었다. Thorndike는 학습자가 다양한 반응을 해보면서 그 중에서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반응을 학습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성공하기까지는 다양한 반응을 해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학습을 시행착오(施行錯誤)학습이라 하였고 성공적인 반응이 성공을 가져다 준 도구가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학습을 도구적(道具的) 조건형성이라고 불렀다.도구적 조건형성에서는 반응 뒤에 보상이 따른다. 보상을 받느냐 못받느냐는 전적으로 유기체에 달려있다. 도구적 조건형성에서는 유기체는 보상을 얻는데에 능동적이다. 만족한 결과를 초래한 반응이 학습되고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초래한 반응은 점차 하지 않게 되는 현상, 즉 문제해결활동이 어떤효과가 있었느냐가 학습을 좌우한다는 이 원리가 도구적 조건형성의 관건이 되는 교과(敎科)의 법칙이다. 도구적 조건형성은 다음 나올 작동조건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시행착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학습은 가장 기본적인 양상으로서 생활 속에서 흔히 경험하는 방이다.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시행착오 적으로 행동을 되풀이하여 마침내 성공하는 경우, 성공하면 만족감을 얻고 실패하면 그렇지 못하다. 이때의 학습장면을 분석해 보면 자극과 반응인 것을 생각할 수 있으며 시행착오적인 과정 속에 이루어지는 결합의 현상임을 알 수 있다.2 쏜다이크의 실험- 굶주린 고양이를 이용한 학습관찰{) 林承權, 敎育의 心理學的 理解, 學志社, 1996, pp. 1443 시행착오의 학습법칙1 연습의 법칙 : 연습이 법칙과 반응사이의 결합을 강화한다.2 효과의 법칙 : 자극과 반응의 결합에 따르는 만족감이 클수록 그 결합은 강화되며, 반대는 불만족을 주는 사태가 계 속된다면 그 결합은 약화된다.3 준비성의 법칙 : 어떤 행동 단위는 행동할 준비성을 갖추고 있을 때 비로소 만족하게 행할 수 있으며 반대로 행동 할 준비성을 갖추고 있지 않을 때는 실패를 가져오기 쉽다.4 종속적 법칙다양반응의 법칙, 자세의 법칙, 연합전이의 번 후에 등매우 높은 반응율, 강화 후에도 반응 간소 적음강화물에는 정적 강화물, 부적 강화물이 있다.{효과자극강화처벌정적 강화물부적 강화물제시예 : 점수 부여예 : 구타제거예 : 숙제 면제예 : TV시청 금지정적강화물은 어떤 행동이 일어난 직후에 주어졌을 때 또는 그 상황에 가해 졌을 때 장차 일어날 확률을 높여주는 자극으로서, 때로는 정적강화자극 이라고도 한다. 정적강화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항상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부적 강화물은 어떤 행동이 일어난 직후에 제거했을 때 또는 그 상황에서 감해졌을 때 그 행동이 장차 일어날 확률을 높이는 자극으로서, 때로는 부적강화자극이라고도 한다. 부적 강화의 경우 유기테는 어떤 나쁜 상태에서 도피하기 위하여 학습하는 것이다.벌(罰)은 반응을 약화시키는 절차로서 반응을 증강시키는 정적, 부적강화와는 다르다. 강화에서는 반응의 빈도가 올라가고 벌에서는 반응의 빈도가 내려간다.2. 인지주의 이론1) Lewin의 인지(認知)조건설Kohler의 학습이론은 오늘날에 형태심리학에 의한 학습이론에 비한다면 이미 고전적인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은 Lewin의 장설(場設)또는 인지조건설, Tolman의 기호(記號)학습설 등으로 발전하고 있다. Lewin은 형태심리학을 위상심리학 또는 벡터심리학으로 발전시켰다. 즉 그는 행동을 규정하는 제 조건을 취급함에 있어 과학적 구성개념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토포로지 기하학의 개념을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이것에 대해서 장의 역동설을 한층 명확하게 하였으며, 이 장의 개념에다 그의 학설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그는 생활체에게 외계가 부여하는 것은 단지 보고, 듣고, 감촉하는 감각의 총체만이 아니고 마음을 끄는 pulus valence라든가 혹은 반발하는 minus valence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그는 이러한 관계에서 생활체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외계와의 관계를 이것으로 파악하며 장의 개념을 성립시켰던 것이다. 인간은 그가 말하는 이러한 장가운데서 행동하고 있는데, 어떤 일정한 순간에 있어서 개인의 행문제해결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재검토4 Exit : 문제해결에 따른 과정의 종료계속적인 검사결과에 따라 작업의 계속여부가 결정괴는 것이지만 feed back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이는 비교{CDOT검증 및 나타난 결과에 따른 것이다.◎ 교수이론{학습이론과 교수이론{{조건결과{{{처방적(prescriptive)이론방법1. Glaser의 교수이론학습내용을 정보로 간주하여 수업과정을 막대한 양의 정보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되는 컴퓨터의 구조와 기능에 비교시킨 것.▶ Glaser : 수업활동을 수업목표의 설정, 투입행동의 진단, 수업절차, 학습성과의 평가라는 4개의 단계로 구분하였다.1) Glaser의 교수모형{) 임규혁, 교육심리학, 학지사, 1999, pp.2051 [1단계] 교수목표 설정 : 교수목표는 반드시 명세적 목표로 진술되어야 한다.2 [2단계] 투입행동 진단 : 교수활동을 진행하기 전에 학습자들의 학습정도 또는 수준을 진단하는 것.3 [3단계] 교수절차 : 학습자에게 가르칠 내용을 교사가 직접 가르치는 과정.4 [4단계] 학습성과 평가 : 설정된 교수 목표가 얼마나 달성되었는지를 평가하는 일련의 결정과 실천의 순환으로 구성.2) 특징1 교수 한 단계는 후속되는 다음 단계 활동의 내용을 결정한다.2 학생의 개인차를 교수에 반영한다.3 각 단계에는 피드백에 의해 유기적인 상호 관련이 된다.4 교수와 평가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낸다.2. 행동주의 이론1) Skinner의 프로그램 교수법- 프로그램 교수법은 교수기계(학습자가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기계적인 자동학습 장치로 고안된 것) 에서의 원리를 인쇄된 교과서로 만들어서 수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교수법이다. 스키너의 강화이론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쏜다이크의 효과의 법칙에 그 기저를 두고 있다.1 프로그램 학습의 개념주어진 학습목표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하여 자극과 반응관계를 이용해서 학습자의 경험을 계획적으로 계열화 시키는 것이다.2 프로그램 학습의 기본원리1Small Step의 원리 - 하나의 학습형 프로그램에서는 왜 틀렸는가를 학습자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일반적으로 직선형 프로그램이 학습자에게 단조로움을 느끼게 하지만, 분지형 프로그램은 학습자에게 그러한 단조로움을 느끼도록 하지 않는다.5 프로그램 수업 자료의 제작절차1. 성취 목표 또는 결과를 구체적으로 구명하여야 한다. 이 경우, 최종적으로 실시될 종합평가용 시험 문제 를 먼저 작성해 보는 일은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다.2. 학습과업을 여러 개의 미세한 단위 또는 요소로 분석하여 나눈다.3. 학습자의 특성을 면밀히 파악하고, 그 내용수준을 결정한다. 특히, 그 내용에 대하여 학습자가 이미 어느 정도나 학습을 하였는가를 따져보아야 한다.4. 각각의 학습단위 또는 요소별로 그곳에서 실시될 검사문제를 선정하고 제작한다.5. 학습경험을 작성한다. 즉, 학습자들이 실제로 하게 될일을 적는 것이다. 이 때 프로그램을 직선형으로 꾸 밀 것인지, 분지형으로 꾸밀 것인지를 결정한다.6. 시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몇 명의 소수학생을 대상으로 실험적으로 실시해 본다.7. 발견된 문제를 분석하여 다시 프로그램 작성을 조정하고 수정, 보완하여 완결짓는다.6 프로그램 학습의 문제점제작 비용이 많이 들며, 도달해야 할 사고과정이 두 개 이상인 경우엔 어떠한 학습과정에 의하여 학습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3. 인지주의 이론1) 브루너의 발견학습- 학습자 스스로 발견하도록 조장하는데 목적이 있다. 처음에는 교수자에게 완전히 의존하였던 학습자로 하 여금, 나중에는 교수자가 필요없다고 생각할 만큼 완전히 벗어나도록 만든다.- 결국 교수자는 학습자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다. 학습자는 그들 스스로 자신으 운 명을 결정하여야 한다. 즉, 자결의 힘과 책임있는 행동을 학습의 과정에서 발휘하여야 한다.- 교수이론은 최소한 네 가지 국면 혹은 특징을 완비해야 한다고 브루너는 생각하고 있다.: 첫째로 교수이론은 학습자 개개인 속에 학습으로 향한 경향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심어 주는 구체적인 경리킨다.
사회계층에 따른 조선조 시대의 문학의 유형들어가는 말우리는 일반적으로 조선조의 문학을 전·후기로 나누어, 조선 건국으로부터 임진왜란까지의 약 200년간의 문학을 조선 전기의 문학이라 하고, 임진왜란에서부터 갑오경장에 이르는 약 300년간의 문학을 조선 후기 문학이라 한다. 이렇게 조선시대의 문학을 전·후기로 나누는 것은 임진왜란이라는 전무후무한 전란을 겪고 난 후 양반과 평민 할 것 없이 의식의 큰 차이를 보이고, 이것이 문학에 영향을 끼쳐 전·후기 문학이 서로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조선 사회가 그 자체 내의 모순을 스스로 드러내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인 것이 임진왜란 이후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속도는 완만하고도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그 변화가 그 나름의 이론적 배경과 거기에 상응하는 운동을 보여준 것이 영·정조 시대이다. 그 시대에 이르면 임진왜란 이후의 여러 특징들, 가령 신분계층의 이동, 가족 제도의 혼란, 상인 계급의 대두 등이 일기·사설 시조·진경산수·풍속화·판소리·단편 소설 등의 상상적 산물 속에 풍부히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그 시기에 이르러 한국 사회가 자체 내의 구조적 모순을 상상적 기호로서 표시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힘이 바로 조선조의 문학을 전·후기로 나누는 힘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그렇다면 조선시대의 문학은 이렇게 전·후기로 나누어 살펴보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그것은 절대 아니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임진왜란 이후 조선 사회에 나타난 여러 특징들 중 가장 독특하면서도 중요한 특징은 신분계층의 이동, 즉 사회계층의 변동이다. 사회계층의 변동은 조선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조선이라는 봉건적 사회를 뒤흔드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계층의 변동은 제도에 의한 실질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의식적 차원에서 더욱 크게 나타나는데, 조선시대의 문학, 특히 조선 후기 문학에는 이러한 각 사회계층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우 방법이 서로 같음으로 보아, 이 두 악장의 형태를 대표적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그 작자는 [월인천강지곡]은 세종으로 전하며, [용비어천가]는 집현전 학사들이 중심이 되어 있고, 초기 악장은 건국 공신들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악장의 작가는 조선왕조 초기의 최고급 귀족층이었다고 하겠다. 따라서 그 내용도 왕권을 칭송하는 것이거나 불타의 은총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 만큼 그 문학정신은 비판 정신을 찾아볼 수 없는 아첨하는 태도가 농후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이 장르는 그 생명이 오래지 못하여 건국 직후에 얼마간 성행하다가 이내 그 자취를 감추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인다.태조 이성계는 즉위 초에 제도를 정비하면서 예악을 관장하는 부서를 두었고, 개국 공신인 정도전은 왕도의 이전과 신흥 국가의 왕업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음으로써 악장을 제정하는 데 대단한 열의를 보였다. 그리고, 권근·하윤 등 수많은 공신들과 문관들이 아수의 악장을 창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노랫말은 새로 지을 수 있었지만 악곡은 쉽사리 창작할 수 없었던 것이 당시의 큰 고민이었다. 고려 말엽에 궁중연악화한 속악과 속가가 음란하여 볼 것이 없다고 비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악곡에 새 노랫말을 얹어 부를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정도전이 새로 지은 악장중 [납씨가]는 [청산별곡]의 악곡에 얹어 부르고, [정동방곡]은 [서경별곡]의 곡조를 따서 불렀다는 사실이 그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청산별곡- 살어리 살어리 라힝납 씨 가- 納 氏 恃雄强 힝야청산별곡- 청산의 살어리 라힝납 씨 가- 入 寇 東北方 힝더니청산별곡- 멀위랑 딪래랑 힝먹고납 씨 가- 縱 傲 誇以力 힝니청산별곡- 청산의 살어리 라힝납 씨 가- 鋒銳라 不可當이로다여기에 인용한 [납씨가]는 태조가 일찍이 원나라의 잔당의 침공을 물리친 공적을 찬양한 노래로서 오언으로 된 한시에 이른바 토를 단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한시만으로서는 [청산별곡]의 곡조에 맞지 않아 양화정철의 가사는 도학사와 전혀 다른 위치를 차지했다. 사림파가 집권세력으로 등장해서는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된 시기에 서인의 영수로서 재상의 지위에 올랐다. 원래 서울 사람이었으나 아버지를 따라가서 전라도를 고향으로 삼았으며 송순의 영향을 깊이 받고, 그곳 명사들과 교류하는 동안에 이미 개척된 작풍을 두루 계승하고 발전시켜 시조와 가사를 대단한 경지로 올려놓았다. 정철의 가사는 , , , 의 네 편이다. 를 가사에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시조와 더 가까운 독립된 형태의 작품이라고 보아 마땅하다.여류가사가 어떤 작품에서부터 시작되었던가 고증하기 어렵다. 그러면서 허초희가 지었다고 하는 가 이른 시기 작품으로 인정될 따름이다. 삶의 고난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 조선 후기문학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하겠다.3 사대부 가사의 동요와 안정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전란이 거듭 닥쳐와 태평성대의 환상이 흔들리는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사대부는 문학의 기존 갈래 가운데 가사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형편은 한시나 시조로 집약하기보다는 실제로 겪은 대로 늘어놓아야 어울리고, 산문으로 기술하고 말자니 미진했으며, 탄식을 곁들인 노래로 자세하게 나타내야만 실감을 돋울 수 있었는데, 가사가 그런 요건을 두루 갖추었다.전후의 복구를 힘써 하자고 다짐하는 가사는 와 로 나타났다. 고공은 머슴이다. 도적을 만나 불타 버리고 망한 집을 다시 일으키자면 머슴들이 분발해야 한다고 했으며, 머슴이 주인에게 대답하는 노래가 그 뒤를 이었다. 전란을 겪으면서 처참했던 일을 회고하는 한편 나라가 안정되어가는 데 기대를 건 노래에 강복중의 가 있다. 형식이 산만해 말이 나오는 대로 받아적은 것 같고 자기 자신을 자주 내세운 점이 아주 특이하다. 복구는 사대부의 보수적인 의식을 되찾는데서 먼저 이루어졌다 .전원에 은거하면서도 성현의 도리를 돈독하게 따라야 한다는 보수적인 기풍이 시조에서처럼 가사에서도 다시 등장했다. 그래서 현실과 유리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을 차천로가 지었다는 이나가집은 18세기에 들어서야 활발하게 나타났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김천택이 펴낸 청구영언이 가장 먼저 나왔고, 이어 김수장이 펴낸 해동가요와 박효관이 펴낸 가곡원류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가곡이라는 음악의 노랫말을 곡조별로 나누어 기록한 것인데, 이것들을 옮기고 베껴 적은 것이 여러 이본으로 전하고 더러는 이들 문헌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노랫말을 기록한 것도 있다. 기록에 나타난 시조 작가는 학자나 무인들을 비롯해 상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가집이 아닌 개인 문집에 작품을 남긴 사람의 경우도 문집을 지닐만한 학식이나 신분을 갖춘 사람들임은 물론이다.이 밖에 기녀들의 작품이 상당하고 조선조후기로 오면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가객들이 다수 작자로 등장한다. 작자의 분포가 이러하다는 것은 시조가 계층적으로 상층인의 문학이었음을 말해 준다. 기녀나 가객들의 신분은 상층에 속한다고 하기 어렵지만 그들이 시조를 노래한 것은 상층인의 의식이나 생활에 봉사하거나 도는 스스로 그런 의식이나 생활에 동화되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시조를 노래하는 음악이 하층민의 그것인 민속악과는 다른 정악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또 기녀나 가인들이 종사한 일 자체가 상층인의 생활과 더불어 설명될 수밖에 없다는 점으로도 입증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작가를 밝혀 적지 않은 작품을 주고, 무명씨 작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없다. 무명씨란 말은 이름이 없는 사람을 뜻하기도 하는데, 이를 왕후장상이 현관명사에 상대되는 말로 짐작해 서민 계층을 뜻하는 말로 볼 우려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시조가 하층민의 장르이기도 했다는 말이 되는데, 이는 음악의 분류나 그 향유계층 또는 방식으로 볼 때 실상에 부합하지 않는다. 다만 조선 후기로 일컬어지는 18,9세기로 오면서 신분의 이동과 계층의 변화가 심하게 일어났다는 역사적 변화와 마찬가지로 음악문화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오면서 다양한 계층이 시조를 공유하는 변화를 보였음은 사실이다.시조 작품 가운데 민)》 《허생전(許生傳)》, 노긍(盧兢)의 《화사(花史)》 기타 여러 작품이 있고, 협사물로 신광수(申光洙)의 《검승전(劍僧傳)》, 이옥의 《가자송해솔전(歌者宋楷傳)》 등이 대표작이며 정약용의 《조신선전(曺神仙傳)》, 김조순(金祖淳)의 《오대검협전(五臺劍俠傳)》 등 많은 작품이 전한다. 가전체로는 이덕무의 《관자허전(管子虛傳)》, 유본학(柳本學)의 《조원전(鳥圓傳)》 등이 있을 뿐이며, 골계물로는 이용휴의 《해서정자(海西正者)》, 유득공의 《유우춘전(柳愚春傳)》 등이 전하고, 전기물로는 이덕무의 《김신부부전(金申夫婦傳)》, 김여(金)의 《유구왕세자전(琉球王世子傳)》, 박지원의 《우상전(虞裳傳)》 등 수많은 작품이 있다.2 국문소설한글로 된 소설로는 광해군 때 허균의 홍길동전이 가장 최초의 작품으로 주제가 그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아주 파격적이고 특이한 면을 보이고 있다. 당시 사대부의 대표적인 국문소설에는 김만중의「구운몽」,「사씨남정기」등이 있다.국문소설은 대체로 임진왜란이후 서민 의식의 성장과 뜻을 함께 함과 동시에 당시 사대부들은 한글 사용에 대한 강한 반발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국문소설 중 사대부의 작품이 있다할지라도 사대부층이 향유했던 문학이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하여 이 글에서 국문소설은 주로 서민문학적 측면에서 알아보겠다.2. 중인·서민과 문학1) 중인문학(中人文學)일반적으로 중인들의 문학을 ‘위항문학(委巷文學)’ 혹은 ‘여항문학(閭巷文學)’이라고 한다. 여항은 사대부와 서민의 중간 계층인 중인 이하의 신분 계층이 사는 곳을 말한다. 의학·통역·상업 등에 종사하며 부를 축적한 전문 지식인인 이들은 처음엔 관계 진출에 뜻을 두고 공부를 했지만 신분상의 제약으로 인해 좌절을 겪게 되자, 문학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조서조 후기 상업과 수공업의 발달오 인하여 도시로서의 서울이 크게 활기를 띠게 되자 상인·수공업자와 일정한 연계를 맺고 있던 이들 여항인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향상되었고, 이러한 경제적 안정과 생활의 여유는 이들의 지
{국문학사Ⅰ- 한국고전문학작가론무신 집권기 신진사인의 시적 행로백운 이규보이규보(1168∼1241)는 고려 무신정권기의 사람이다. 그가 태어날 무렵의 고려 사회는 국제적으로는 북방의 거란, 여진, 몽고의 동향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고, 국내적으로는 민란, 문신과 무신 간의 갈등이 심화되던 상황에 있었다. 그가 2살이 된 1170년에 무신정변이 일어났고 그렇게 시작된 무신정권은 이규보가 일생을 마감한 다음에도 17년이나 계속되었다. 결국 이규보는 무신정권의 한 가운데에서 생의 가장 왕성한 활동시기를 보낸 무신정권기의 사람인 것이다.무신정권의 성립은 대내적으로 고려 전기의 귀족 문인들이 제거된 자리에 행정 문서를 담당할 실무적 식자층의 진출을 가능케 하는 변화를 불러왔고, 이규보는 그때 발탁된 신진사인(新進士人) 의 대표적인 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교적 교양과 문학적 역량을 쌓아 국가를 위해 영예롭게 역량을 발휘해야겠다는 시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관인으로 진출하였으나, 최씨 정권의 지배 구도 하에서 능문능리(能文能吏)의 실무자 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정도로 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이규보는 개성의 관리(官吏)로 있던 부친을 따라 소년시절을 개성에서 보냈다. 당시의 무신정변으로 소란스런 수도였음에도, 그는 시공부에 열중하면서 소년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16세, 18세, 20세에 사마시에 응시하여 세 번 모두 낙방하고 말았으니 그것은 자기의 생각과 감흥을 자유롭게 읊조리는 시에만 힘쓰고 과거공부에 힘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시문(詩文)에 정열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응용하거나 모방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시를 지음에 있어 무엇보다도 신의(新意)의 창조 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즉 그는 독창성이 드러나는 참신한 관점과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세가 되어서야 겨울 동진사(同進士)에 합격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연이어 대과에 응시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시인으로서의 남다른 사명감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 출세와 작은 전투를 치를 때면 최이에 대해 전투를 이끈 지휘자로서 하염없이 훌륭한 면을 부각시키는 시를 지었다.그는 강화도로 천도한 다음해 66세의 나이로 정승의 직위에 올랐지만 실질적인 힘 은 없는 명목상의 재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시인으로서의 포부가 남달랐던 만큼 관인으로 진출해서도 외교 문서를 맡아 작성하는 일은 한결같이 온 마음을 다해 성실히 수행하였다. 국가 존망의 위기를 당하여 그토록 갈고 닦아온 문필력을 나라를 위해 빛나게 발휘했던 것이다. 백성들을 위무하는 시와 글, 몽고와 다른 북방 민족에게 보내는 외교문서, 고려의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지은 글, 최이의 지휘력을 찬양하는 글 등이 모두 당시 현실의 급박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무기 로 쓰인 셈이었다. 그러나 전쟁과 기근 속에 백성의 고혈을 짜는 것으로 상황이 변해가자 이규보는 차츰 이러한 현실에 깊이 눈뜨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시를 읊으며 자신을 비롯하여 관인들의 양심적 직무수행을 당부하였지만 아무 변화를 기대할 수 없었다.그는 모든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책을 읽고 공부만 하면 저절로 출세하리라 믿었던 순진함, 실력만 믿고 거들거린 경솔함, 술을 마시고 호기롭게 살아온 생활자세, 마음에 있는 대로 털어 놓았던 타인에 대한 직언과 비판이 모두 어리석음 그 자체로 생각되었다. 그것은 고생한 보람을 정신적·심리적으로 조차 부여하기 어려운 현실 상황에서 자기 인생을 돌아본 심정일 터이다. 시에 대한 남다른 정열을 품고 시로써 나라의 문화를 빛내는데 공헌하려고 했던 그는 지배층의 타락을 목격하면서 그 동안의 노력이 수치스럽게 생각될 지경에 이르렀다. 표면적으로는 재상의 지위에 오르는 출세를 했건만 사실은 무신정권에 자기의 재능이 이용당하고 만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었다.이규보가 69세(1236)의 나이로 벼슬에서 물러나려고 「퇴직을 청하는 표(表)」를 올렸으나 임금은 허락하지 않고 그대로 있을 것을 명했다. 그는 관직에서 물러나려고 해도 물러날 수가 없자, 얼굴이 있어도 감히 바로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그 자신은 후회서린 마음으로 삶을 마감했으나 오늘날의 입장에서 그를 생각해 볼 때 진정 역사와 민족에 시의 뿌리를 깊이 내린 시인의 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의 시편들 가운데는 현실에 아첨하고 타협한 시도 많다. 또 현실에 올바르게 대처하려는 한 사람의 양심적 관인의 모습, 농민의 삶의 고통과 상처, 피지배층의 상처에서 발견한 지배층의 감춰진 비정함 등이 표현되어 있는 작품들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의 문학사에 중요한 양분으로 의미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농민에 대해 읊은 시나, 「동명왕편」은 특별히 빛나는 작품들이다. 우리는 이규보의 이러한 시들을 통해 고려 중기의 역사적 진실을 표현한 시의 힘 을 느낄 뿐 아니라, 민족의 시인 이란 자신의 호흡을 당대의 역사현실에 어떻게 밀착시켜야 할까를 암시 받는다. ■ 이지양격변기에 산출된 강호미학의 정점고산 윤선도뫼�� 길고 길고 믈은 멀고 멀고어버이 그린 뜯은 만코 만코 하고 하고어듸셔 외기러기다 울고 울고 가다니-「견회요」4수위 시조는 고산 윤선도가 32세 때(1618) 경원의 유배지에서 쓴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그것을 표현하는 기법, 다시 말해 우리말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언어적 의장에 있다. 즉, 길고 길고 , 멀고 멀고 , 하고 하고 , 울고 울고 등 지극히 평이한 어휘가 반복되는 가운데 정서의 진폭과 여운이 풍부하게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주지하듯, 윤선도는 조금 앞 세대인 정철과 더불어 시가사의 한 봉우리를 이루는 인물이다. 그 역시 여타의 사대부들처럼 한시도 적지 않게 남겼건만, 유독 국문시가만이 남다른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그만큼 시조에서 보여준 그의 시적 성취, 즉 연금술에 가까운 미적 잠재력의 발현이 눈부신 까닭이다. 요컨대, 시조가 수창된 지 몇 세기만에 우리 문학사는 고산이라는 걸출한 시인을 배출하게 된 셈이다.고산 윤서도(1587∼1671)는 17세기 전·중엽을 살다 간 인물이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임진왜란(159하지 않을 듯하다.풍부한 물적 기반, 예향적 풍토, 폭넓은 지적 관심, 이러한 특징이 그의 탁월한 언어적 감수성과 곧바로 직결된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그가 고정된 규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과의 뜨거운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토대가 되기에는 충분하리라 여겨진다.고산의 「낙서재에서 우연히 짓다」에서처럼 청산 깊은 곳에서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홀로 가슴에 넘치는 호방한 기운을 한 곡조의 노래로 풀어내는 모습. 이를 통해 우리는 정치적 불우함의 이면에 자리한 고산의 도저한 정신적 여유의 한 면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풍모가 그의 시조가 지닌 담백하면서도 흥취에 넘치는 청신(淸新)·준론(峻論) 의 경지를 낳은 것이리라.고산의 「견회요(遣懷謠)」4수와 「우후요(雨後謠)」1수는 유배지의 산물이다. 그는 이 작품들을 통해 처음으로 맛본 정치적 좌절의 심경을 담담한 어조로 읊조리고 있다. 「견회요」는 시조작가 윤선도로서는 일종의 처녀작인 셈인데 1수에서는 세상이 뭐라 하든 내 몸의 해올 일만 하겠다는 언명을 통해 오기에 찬 울분을 토로하고 있고, 3수에서는 유배지에서 느끼는 고독감과 연군의 정을 시냇물에 의탁하여 나타내고 있다.이 작품들이 아직 고산 특유의 언어적 개성을 발휘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즉, 그가 시조라는 양식과 처음 조우한 것이 젊은 날의 정치적 이상이 꺾인 유배지라는 것, 다시 말해 세계와의 심각한 균열을 경험할 때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에게 있어 시조는 삶의 힘겨운 국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추스르는 일종의 정서적 기제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고산은 「산중신곡」,「어부사시사」의 명성에 뒤덮여 흔히 자연시인으로 간주되곤 한다. 물론 그가 자연미의 발견에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역시 다른 유자(儒者)들과 마찬가지로 평생동안 경세제민이라는 정치적 포부를 지니고 있었고, 그 점은 자연에 은거하면서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에 도취되는 순간에도 여전히 견지되었다. 다하는 저수지이자 새로운 물결로 향해 가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후의 시조사의 물길은 어디로 향하는가? 주지하듯 18세기 이후 시조는 담당층의 대폭적 확대와 더불어 존재방식 및 미적 스펙트럼이 다면적으로 분화되어 가니, 시조사가 그 물길을 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지점에 고산의 작품들이 놓여 있는 셈이다.다소 의아한 일이지만 새로운 시조사의 개막을 알리는 징표의 역할을 하는 『청구영언』에는 고산의 작품이 실려 있지 않다. 그의 작품은 『해동가요』에 가서야 비로소 등장하는데, 「어부사시사」의 경우 작품 하나 하나가 모두 독립된 노래로 변형되어 있어 그간에 있었던 세원의 흔적을 실감케 해준다. 『해동가요』의 편찬자 김수장은 고산의 작품세계를 이렇게 요약한 바 있다.이분의 가법(歌法)은 탈구청고(脫垢淸高)하여 내가 이것을 본즉 가까스로 만장봉을 오른 듯하다.맑고 드높아 만장봉에 오른 듯한 느낌, 이것이야말로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우리말의 미적 잠재력을 고도하게 발현시킨 고산의 시세계를 적절히 압축하고 있는 것이 아닐는지. ■ 고미숙소설 시대를 열어간 중세 지성서포 김만중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누구인가? 이 물음에 우리는 주저없이 그를 『구운몽(九雲夢)』과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를 창작한 17세기의 소설가로 기억해 낸다. 하지만 후손들에 의해 정리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그의 문집인 『서포집(西浦集)』의 어디에도 그가 창작했다는 소설은 실려 있지 않으며, 심지어는 소설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한 구절의 언급조차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통 사대부의 규범적인 시문(詩文)들만이 그의 문집을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다.김만중이 살았던 17세기에는 소설의 작가와 독자는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소설에 대한 이해의 폭도 대단히 협소했다. 중국의 소설을 감상하는 독자층이 양반 사대부와 부녀자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었으나, 대다수의 양반 사대부들은 소설을 도외시하거나 문장의 말류(末流)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17세기의 이러한 분위기를 조금이라다.
Ⅰ. 언어와 국어1. 언어와 인간우리 민족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한국어이다. 우리는 이를 국어라고 부른다. 국어는 전체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언어 가운데의 하나로, 국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언어에 대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다. 동물도 의사 소통을 한다고 보고 그 수단을 가리켜 동물의 언어 라고 부르기도 하며, 요즈음에는 컴퓨터의 작동을 위하여 사용하는 명령어를 컴퓨터 언어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언어 라는 말은 인간이 사용하는 의사 소통 수단인 언어만을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 언어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게 하는 특성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인간이 사고(思考)하는 과정과 관련이 있는가 하면,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이 되어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학문을 탐구하거나 문화를 축적하는 데 기여하는 등 인간 사회의 중요한 일들이 모두 언어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언어를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하여 인간과 언어의 관계를 세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1) 언어와 사회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도 한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어떤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며, 거기서 이상을 추구하고 행복도 찾는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의사 소통 과정을 통하여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이 때, 언어는 의사 전달의 기본적인 도구로서 사용되고, 이를 통해서 개인과 개인이 사회적 관계를 맺게 된다. 언어는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같은 지역에서도 사회적인 신분이나 지위, 학력, 연령, 경제력, 직업 등에 따라 언어는 달라진다. 그리고 우리는 대화 상황에 따라 다른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서 억양, 어휘, 문장 유형 등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언어는 흔히 성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데, 성별(性別)에 따른 언어의 차이는 지역에 따라 말을 달리 사용하는 현상이나 사회 계층에 따라 말을 달리 사용하는 것만큼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사회 구조의 한 단면을 박], 부엌→[부억](라) 겹받침은 하나만 발음되는데, 발음되는 소리는 위의 규칙을 따른다.ㄱ 힝, ㄳ, ㄽ, ㄾ, ㄵ 은 첫째 자음이 남는다.ㄴ ㄶ, ㄿ 은 둘째 자음이 남는다.ㄷ ㄺ, ㄼ 은 불규칙적이다.(마) 끝에 자음을 가진 형태소가 모음으로 시작되는 형식 형태소와 만나면 그 끝 자음은 다음 음절의 첫소리로 발음된다. 그러나 뒤에 오는 형태소가 실질 형태소이면 위의 규칙을 따른다.2 자음 동화음절 끝 자음이 그 뒤에 오는 자음과 만날 때, 어느 한쪽이 다른 쪽 자음을 닮아서 그와 비숫한 성질을 가진 자음이나 같은 소리로 바뀌기도 하고 양쪽이 서로 닮아서 두 소리가 다 바뀌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자음 동화라고 한다.(가) ㅂ, ㄷ, ㄱ 이 비음 ㅁ, ㄴ 앞에서 각각 ㅁ, ㄴ, ㅇ 이 되는데, 이것은 파열음이 비음 앞에서 그것을 닮아 비음이 되기 때문이다.(나) 비음 ㅁ, ㅇ 과 유음 ㄹ 이 만나면 ㄹ 이 비음 ㄴ 이 된다.(다) ㅂ, ㄷ, ㄱ 과 ㄹ 이 만나면, ㄹ 이 ㄴ 이 되고, 이렇게 변해서 된 ㄴ 을 닮아서 그 앞의 ㅂ, ㄷ, ㄱ 이 각각 비음 ㅁ, ㄴ, ㅇ 이 된다.(라) ㄴ 이 ㄹ 앞에 오거나 뒤에 오면 ㄴ 이 ㄹ 로 변한다.3 구개음화끝소리가 ㄷ, ㅌ 인 형태소가 모음 ㅣ 나 반모음 ㅣ 로 시작되는 형식 형태소와 만나면 그 ㄷ, ㅌ 이 구개음 ㅈ, ㅊ 이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구개음화라 한다. 구개음화는 ㅣ 때문에 일어나는 동화 현상의 일종이다.4 모음 동화모음과 모음 사이에서도 동화 현상이 일어난다. 앞 음절의 후설 모음 ㅏ, ㅓ, ㅗ, ㅜ 는 뒤 음절에 전설 모음 ㅣ 가 오면 이에 끌려서, 전설 모음 ㅐ, ㅔ, ㅙ, ㅞ 로 변하는 일이 있다. 동화현상은 ㅣ 모음 앞에 입술소리나 연구개음이 놓일 때 잘 일어난다. 그런데 이와 같이 변한 발음은 표준어에서 인정하지 않으므로, 모두 원형대로 밝혀 작고 원형대로 읽어야 한다. 다만 냄비, 새끼, 멋쟁이 등과 같이 한 형태소 안에서 모음 동화를 겪은 후 오늘날의 언어 사용에서 아주 굳어진 말들은 이루어 문장 성분이 된다. 또한 문장 성분은 단어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나 절로 이루어지기도 한다.(2) 문장 성분1 서술어서술어는 문장의 중심 성분이다. 대부분의 자동사와 형용사처럼 주어 하나만을 필수적으로 가지는 것을 한 자리 서술어라 하고, 타동사나 형용사 같다 처럼 주어 다른 성분을 가지는 것을 두 자리 서술어라 하며, 세 성분을 필수적으로 가지는 것을 세 자리 서술어라고 한다.2 주어주어는 서술하는 주체를 나타내는 문장 성분으로서 모든 문장에 필수적이다. 주어는 체언에 주격조사가 결합하여 실현되는데 전형적인 주격조사는 이/가 인데 주어를 높일 때에는 께서 가 쓰인다. 주어가 단체를 나타내는 명사이면 에서 가 대신 쓰일 수 있다. 또한 주격 조사 대신 보조사를 결합하여 주어를 실현할 수 있으며 여기에 주격 조사가 다시 결합할 수도 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주격조사가 생략되어도 주어가 실현될 수 있다.3 목적어타동사가 쓰인 문장에서 그 동작의 대상이 되는 문장 성분이 목적어이다. 목적어는 체언에 목적격 조사 을/를 이 결합하여 실현된다. 목적격 조사 대신 보조사가 결합하여 목적어로 실현될 수 있으며 여기에 목적격 조사가 다시 결합할 수 있다. 물론 목적격 조사가 생략될 수도 있다. 또한 목적어가 둘 이상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목적어가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앞 목적어를 다른 문장 성분으로 바꾸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량을 나타내는 경우에는 두 목적어 중에서 어느 한 목적어의 조사를 생략한다.4 보어서술어가 되는 용언 중에서 되다 와 아니다 는 두 자리 서술어로서, 보어를 필수적으로 가진다. 한솔이는 이제 고등 학생이 되었다. 의 문장에서 고등 학생이 와 같은 말을 보어라 한다.5 관형어관형어는 체언으로 실현되는 주어, 목적어, 앞에서 이들을 꾸미는 문장 성분이다. 그래서 관형어는 문장에서 필수적인 성분이 아니다. 관형어는 관형사에 의해 실현될 뿐만 아니라 체언에 관형격 조사 의 가 결합되어 실현되거나 관형절에 의해 실현되기도 한다도 관련성은 있지만 역시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말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2) 의미의 종류1 중심적 의미와 주변적 의미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말 중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 것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데, 이를 단어의 다의성(多義性)이라고 하며, 이렇게 사용되는 단어를 다의어(多義漁)라고 한다. 특히, 손, 말, 글, 생각, 고치다, 나다, 들다, 가다, …… 등과 같이 흔하게 사용되는 고유어에서 다의성이 강하게 나타난다.이러한 다의어의 의미는 중심적 의미와 주변적 의미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가령, 손 이라는 단어가 아기의 귀여운 손, 손바닥, 손가락 에서처럼 가장 기본적이며 핵심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이 의미를 중심적 의미라 한다. 이 단어가 손(노동력)이 모자란다, 그 사람과 손(관계)를 끊겠다, 손(씀씀이)이 크다, 손윗사람, 손아랫사람 등으로 확장되어 사용되는 경우의 의미를 주변적 의미라고 부른다. 주변적 의미는 중심적 의미가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에 적용된 결과 생겼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이와 같은 주변적 의미를 둘 이상 가지고 있는 단어를 다의어(多義語)라고 한다.2 외연적 의미와 내포적 의미외연적(外延的) 의미란, 어떤 낱말이 지니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의미로서, 언어 전달의 중심된 요소를 이루는 의미를 가리킨다. 개념적(槪念的) 의미 또는 인지적(認知的) 의미라고도 한다.한편, 내포적(內包的) 의미란, 개념적 의미에 덧붙어서 연상이나 관습 등에 의해 형성되어 있는 의미들을 말한다. 앞에서 예로 든 여성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 사람에 따라 모성 본능이 있다, 치마를 입는다, 연약하다, 보호받아야 한다 등의 생각을 떠올릴 수가 있는데, 이러한 의미들이 내포적 의미이다.3 사회적 의미와 정서적 의미언어 표현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사회적 환경과 관련되는 의미들을 전달할 때, 이를 언어의 사회적 의미라 한다.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이 사람이 지금 막 제대를 한 사람인가 보다. , 교양이 있는 사람이로있는 것검지~집게손가락, 까끄럽다~깔끄럽다, (담배 한)까치~개비, 메꾸다~메우다, 새악시~새색시, 잎새~잎, 안절부절하다~안절부절못하다, 한참때~한창때4같은 뜻의 말을 반복해 쓰는 것결실을 맺다~열매를 맺다/결실하다, 낙엽이 지다~잎이 지다, 남은 여생~남은 생애/여생, 새신랑~신랑/새낭군, 범행을 저지르다~범행을 하다, 피해를 당하다~해를 입다, 현안의 문제~현안표준 발음이나 표준어, 맞춤법 규정 등의 언어 규범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든가, 문장을 정확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은 교양인으로서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의 하나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국어의 규범에 대한 태도를 지금보다 더 철저히 해야 한다.이러한 인식과 반성을 바탕으로 할 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규범에 맞는 표준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식과 문장을 정확하게 쓸 수 있는 기초 실력이 튼튼하게 자리잡게 될 것이다.(2) 고운 말언어는 단순히 정보 전달만을 위한 매개체가 아니다. 우리의 언어 현실이 어떠하냐 하는 문제는 한편으로는 국가적인 자존심 문제에,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인격 문제에까지 결부될 수가 있다.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말의 오염된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현재, 우리말의 현실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외래어를 분별 없이 사용하는 현상이다. 외래어가 우리말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개화기부터이다.외래어, 외국어를 남용하는 오늘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어와 외국어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바르게 하는 일과 함께, 말이란 한번 유통되기 시작하면 쉽게 바꾸기 어려운 법이므로, 새로운 개념에 대한 새로운 말이 필요할 때에 처음부터 우리말로 만들어 쓰려는 노력을 국가적 차원에서 기울여야 한다.우리말에 들어온 외래어 중에서 특별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은 일본어의 잔재이다. 일본어의 잔재는 서양 외래어와는 달리, 과거의 불행한 역사와 결부되어 있어서 반드시 순화해야 할 대상이다.순화의 대상으로는 비어, 속어, 은어, 욕설 등도 있다. 이러한 말을 함부로 사용하
◎ 음소의 정의1. 음소(音素, phoneme, 분절음운) : 자음, 모음과 같이 분절이 가능한 음운2. 여러 음운학자들의 음소에 대한 정의 음소는 '언어 음성의 심리적 대등'이라 정의함. 국어의 [p]와 [b]를 우리 나라 사람들이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머리 속으로는 이것들은 하나의 소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설명가능한데 그는 이와 같이, 구체적인 말소리가 머리 속에 반영된 것이 곧 음소라고 생각했다. "한 언어의 음소는, 한 언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정신에 존재하는 언어 요소의 한 범주를 형성하는" 것이며, 음소란 "언어의식이 불가분리 한 것으로 감지하는 최소의 단위"라고 정의함. 말의 소리란 것은, 발음 작용을 통해서 음파로써 전달되고 귀로 청취되는 생리-물리적인 현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 갈무리되어 있는 소리도 있다는 것이다. 곧 생리-물리적인 현상이 아닌, 심리적인 소리란 것도 있다는 것으로 이러한 머리 속에 갈무리되어 있는 소리의, 더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단위가 곧 음소라고 쿠르트네이와 비이크는 말한다. 아메리카의 언어학자 사피어(E. Sapir)도 일찍 말소리가 존재하는 세계가 둘이 있음을 지적하였는데, 그 한 가지는 심리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으로서는 비록 다른 소리일지라도, 그 언어를 모국말로 쓰는 토박이들이 하나의 같은 소리로밖에 생각하지 않을 때는, 그 소리들은 하나의 음소가 된다고 규정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만 음소를 가려내려고 한다면 때로는 명백히 규정할 수 없는 난관에 부딪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한 소리로 생각한다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모호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음소란 언어학적 개념이지 심리적인 것은 아니다. 음소의 정의는 그것으로써 음소를 가려낼 수 있는 방편이 제공되어야 한다. 음소의 심리적 성격은 음소의 중요한 면이기는 하나 이러한 한 면만으로 음소를 분석해 내는 것은 그리 올바른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이러한 심리적인 파악 방법과 정반대 되는 관점에서 음소를 규정하려는 방법의 대표적인 예로서, 존즈의 설명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은 "한 음소란, 어떤 언어에 있어서의 음성들의 가족인데, 그 음성들은 성격상 서로 관계가 있고, 그 가운데의 어떤 한 음성도 한 낱말에 있어서 다른 음성과 같은 음성적 환경에 쓰일 수는 없는 것이다."이다. 이 정의는 결국 두 음성이 서로 비슷하고, 그 자리가 배타적일 때는 한 음소로 뭉쳐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성격상 서로 관계가 있다'란 서로 비슷함을 말함인데, 그 비슷함은 소리 내기뿐 아니라, 듣기도 서로 비슷한 것을 아울러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고 '한 낱말에 있어서'란 제약은 주목을 끌게 되는데 그것은 낱말의 이음을 음소의 정의함에 있어서는 고려하지 않고자 함이 다. 그가 음소를 정의함에 있어서 낱말의 이음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는, 낱말의 경계에 있어서의 소리의 변이는 매우 복잡한 모습을 띨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낱말 이음이나 문장에까지 시야를 넓힌다는 것은 문제를 매우 복잡하게 만들고 음소의 일관된 이론의 성립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음소를 가려내는 데 이러한 정의를 적용하면, 앞의 심리적인 정의에 비하여 주관적 판단이 끼어들 여지가 적어서 문제를 객관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되는 장점을 갖는다. 그러나 여기에도 몇 가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점을 남기고 있다. 먼저, 두 음성이 한 '가족'으로 뭉쳐지기 위해서는 서로 비슷해야 하는데 서로 비슷하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으로 그 한계가 명백하게 결정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음소를 가려내는 작업에 이러한 정의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소위 음성이란 것이 미리 결정되어 있어야 그 비슷함과 자리의 배타성으로 한 '가족'으로 뭉쳐질 것인지가 결정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왜냐면 음성을 뽑아내는 일은 음소의 존재가 선행해야 되는 셈인데 음성에서 출발해서 음소를 가려낸다는 것은 본말이 거꾸로 된 셈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기 어려울 것 같아 보이나 첫째 문제에 대해서는 음운학작들의 많은 경험으로 대체로 비슷한 소리에 속할 수 있는 소리의 한계를 결정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면 극복이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여기서 경험이란, 어떠한 언어에서든지 한 개의 음소로 뭉쳐진 음성들이라면, 그 소리들은 서로 비슷한 소리로 보아지는 것을 말한다. 다음으로 둘째 문제에 대한 극복 방안을 말한다면 말의 소리는 음성기관의 작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소리를 음성기관의 작용으로 돌이켜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단독으로 발음될 수 있는 낱말이 한 번의 조음 운동만으로 이루어질 때 우리는 쉽사리 그 하나의 조음 운동에 대응하는 하나의 낱소리를 알아챌 수 있게 된다. 소리의 연결체에 있어서도 능동부의 고정부에 대한 운동은 연속체로 서 그 사이에 낱소리의 토막을 잘라내기가 어려울 것 같으나 그 운동에는 굴곡이 있어서 고정부에 대한 거리가 가장 가깝게 된 순간과 그 거리가 가장 멀어진 순간이 있게 마련인데, 이러한 두 극단으로의 움직임은 그 사이에 어떠한 분절이 가능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하나의 소리란, "동질적인 어떠한 인상"을 주는 것이므로 이러한 면으로 하나의 소리를 뽑아내기란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 낱말에 있어서'란 보류 조건은 재고해 볼 여지가 있다. 존즈는 낱말의 경계에서는 소리가 다양하게 바뀌기 때문에 낱말의 이음은 고려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소리가 다양성을 띠면 Elf수록 그 현상을 음운학적으로 처리해야만 한다. 현상이 복잡하다고 해서 도피할 것이 아니라, 복잡하면 할수록 그것을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존즈의 정의는 한 음소로 뭉쳐지는 방법은 잘 고려되어 있으나 음소가 말의 뜻을 분화하는 데 이용되는 그 대립적 성격은 잘 나타나 있지 않다. 음소가 여러 음성들의 떼(가족)로 형성된다는 사실은 그 중요한 일면이기는 하나, 그것들이 말의 뜻을 분화하는 데 이용되는 그 기능이 오히려 더 중요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음소는 그 심리적 성격으로나, 그 음성적 변이에 의해서는 만족스럽게 정의될 수 없고, 오직 언어에 있어서의 '기능'에 의해서만 정의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는 어떤 언어에서 지적인 의미를 분화할 수 있는 모든 소리의 대립을 '음운적 대립'이라 하고, 이러한 대립에 있어서의 각 항을 '변별적 음운적 단위'라 한다. 그런데 음운적 대립은 범위 일정한 한계가 없어서 도이치말의 bahne와 bannedmlk 두 말은 그 첫 음절의 홀소리의 길이만 다르고, tausend와 Tischler에 있어서는 그 첫 부분만 같고, Mann과 Weib에 있어서 같은 부분이라곤 전혀 없는데 여기서 서로 달라진 각 부분이 '변별적 음운적 단위'이다. 그런데 어떠한 변별적 음운적 단위는 더 작은 변별적 음운적 단위로 분석될 수 있는 것도 있다. 이와 같이 계속 쪼개어 나가서 그 이상 더 쪼개지지 않는 가장 작은 음운적 단위가 곧 '음소'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을 추진시켜 나가다 보면 결국 울림 자체가 하나의 음소가 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한 음소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난점에 대해 바헤크의 수정론이 나오게 된다. 그는 위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음운적 대립을 blow : grow에 있어서의 bl : gr와 같이 그 이상 더 작은 음운적 대립으로 쪼갤 수 있는 것 즉 '복합 음운적 대립'과, 의미를 분화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의 다름 즉 '단순 음운적 대립'으로 나누게 된다. 음운적 단위에 대한 정의를 이와 같이 수정한 그는 음소를 "때로는 동시적 음운적 단위로는 분석될 수 있되, 계기적 음운적 단위로는 분석될 수 없는 복합 음운적 대립의 일항의 일부"라고 정의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언어학에 있어서의 '형식론자'와 '실재론자'와의 대립을 볼 수 있는데 형식론자는 모든 언어 단위에 있어서 관계의 묶음만을 보고 소리의 실질성에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다. 그에 대해서 누구든지, 음소에 대해서 심리적인 존재를 생각하는 사람은 실재론자인 것이다. 음소의 말의 뜻을 달리할 수 있는 기능을 음소 자체의 물질적인 소리바탕에서 찾으려고 한 학자로 그는 "한 언어의 음소는 소리가 아니라, 말할이가 실지 말소리의 흐름 속에 만들어 내고 인지하도록 훈련된 소리의 단순한 바탕에 지나지 않는다."라 하였다. 그는 소리의 모든 바탕을 모든 바탕의 어떤 부분은 말의 뜻을 알아듣는 데 상관 없는 것 비변별적인 것이며, 그 중의 어떤 한 부분만이 뜻과 관련되어, 말의 통달에 본질적인 것, 변별적인 것이라 한다. 그는 이와 같이 소리의 바탕을 두 가지로 크게 나누고서, 그 중의 변별적 소리 바탕의 가장 작은 단위를 음소라 한다. 마르티네는 "음소란 동시적으로 나타나는 변별적 소리바탕의 전제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각 음소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특징짓는 모든 변별적 바탕을 열거함이 좋다고 하고, 변별적 바탕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가까운 음소 끼리를 비교해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각도에서 음소의 본질을 보는 것은 형식론과 실재론의 종합으로 볼 수 있다. 이 방법은 소리바탕이라는 소리의 실질적인 방면을 고려하면서도 말의 뜻을 분화한다는 형식적인 면도 아울러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