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면산 생태공원을 다녀와서1. 우면산 공원 조성의 잘된 부분과 잘못된 부분 이유 그리고 나의 느낌교수님께서 우면산 생태공원으로 견학을 간다고 말씀하시기 전까지 우면산이 어떤 곳인지,생태공원이라는 것이 왜 생태공원이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처음으로 우면산 공원을 간 날 금새 비가 쏟아질 거 같은 흐린 날씨였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에 내려 5분정도 걸어가면 등산로처럼 생긴 길이 나왔다. 우면산 생태공원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 비가 조금씩 내렸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우산을 챙겨 가져왔기 때문에 다행히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처음 본 우면산 공원.... 말 그대로 생태공원의 느낌이었다. 나무, 호수, 표지판 등 자연그대로 복원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를 소개해주시는 분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올라가기 전 설명을 듣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시는 분께서는 우면산 생태공원은 도심 속에서 자연학습이 가능하고 생태보전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는 공원이라 하셨다.드디어 언덕을 올라갔다. 이 언덕은 약간 가파른 언덕이었다. 올라가는 순간 갑자가 시야가 확 트이면서 저수지가 보였다. 저수지를 따라 꽂혀 있는 습지생물들의 컬러 사진의 표지판 설명이 보였다. 이렇게 관람을 하면 바로 설명이 따라 붙혀져서 모르는 점들을 알 수 있다는 점이 이 우면산 생태공원의 잘된 부분이라 생각되었다.우면산은 천연기념물인 소쩍새를 비롯해 112종의 동물들과 50여종의 야생식물이 서식하는 곳이라 하셨다. 하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아직 봄이 되기 전이라 잎과 꽃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또 작은 계곡에 만들어진 수서생물관찰원에서는 돌 밑에 사는 가재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하였다. 계단을 더 올라가면 망원경이 설치된 야생조류관찰원이 보였다. 이곳에서 오색딱따구리를 비롯해 저수지를 찾는 청둥오리와 원앙의 모습을 몰래 지켜볼 수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 망원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위치가 산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위치되어있어 이 우면산 생태공원의 잘못된 부분 같았다. 우면산 생태공원에는 참나무가 가장 많았다. 이 참나무로 인해 먹이사슬이 이루어진다고 하셨다. 참나무에서 나오는 도토리를 다람쥐가 먹고 다람쥐는 뱀에게, 뱀은 황조롱이에게 먹힌다고 한다. 또 참나무의 진액을 먹고사는 매미와 애벌레가 있고, 또한 이들을 먹고사는 딱따구리도 있다고 한다.우면산 생태공원에서 또 다른 잘된 점은 우면산에서 나온 목재로 만든 휴식을 위한 의자가 있다는 점이다. 급한 경사면도 있어 힘이 들 때 의자에 앉아 주위의 자연들을 보면서 쉬면 더욱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거 같았다.그 곳에서는 명상의 길에 시가 쓰여진 곳도 있었는데 이것이 좁은 길 중간에 세워놓은 것이어서 약간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체로 관람을 올 때 줄지어서 오면 뒷사람이 오면 제대로 편히 감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잘못된 점이 있다면 우면산 생태공원을 편안히 관람하려면 거의 1~2시간정도 관람을 해야 하는데 중간에 화장실이 없어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도 있지만 서울에서 볼 수 없는 야생동식물들을 볼 수 있어 생태공원으로서 큰 역할을 한다고 느꼈다.비록 비가 와서 제대로 관람을 할 수 없었지만 서울에도 이런 공원이 있다는 것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집에서 가까웠으면 매일 산책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2. 생태공원과 일반 공원의 차이생태공원)이란 말이 최근에 와서 대두되고 있다고 해도 이 말은 우리에게 생소한 것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의 생명현상을 존중하고 자연의 균형과 조화를 배우려 노력을 하고 자연과 벗삼아 살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우리의 자연유산과 이에 대한 생태학적 사고, 그리고 이제까지 성장해온 전통문화는 결코 따로 분리될 수 없는 생태공원화의 필수적 자원이다. 하지만 오늘날 생태공원에 대한 관심은 자연과 인간이 지속적으로 공존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두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직 남은 자연유산을 지켜야만 하는 다급한 상황에서 필연적 방편으로 선택된 개념이 바로 '생태공원화' 일 것이다. 이점이 일반 공원과의 차이점이라 생각된다. 즉 일반 공원은 인위적으로 조성한 공원이지만 생태공원은 생태계 환경과 조화되는 환경 친화적이라는 점에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자연 생태계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배울 수 있게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법을 이용한다는 점도 차이점이라 생각된다.
? 박씨전어렸을 때 박씨전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때에는 어렸을 때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시대에 따라 작품 해석이 다르다고 배웠다. 나 또한 어렸을 때와 지금 나의 입장에서 작품을 보면 이 또한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박씨전을 보면 느낌이 다르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작품들의 여성들과에 비해 박씨전은 여자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더욱 더 눈길이 갔다.어렸을 때에는 박씨전에 나오는 주인공의 능력과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입장, 여성의 권위 같은 것들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나의 입장이 뚜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박씨전에 대한 느낌을 생각할 수 있었다.우선 박씨전의 줄거리는 이러하다.한양에 이득춘이라는 사람이 뒤늦게 시백이라는 아들을 얻었다. 어느 날 박처사라는 사람이 찾아와 이득춘과 더불어 신기(神技)를 겨루며 놀다가 아들인 시백을 청하여 보고는 그 자리에서 자기 딸(박처사 딸)과의 혼인을 청한다. 이득춘은 박처사의 신기가 범상하지 않음을 알고 쾌히 승낙한다. 이득춘은 정해진 날짜에 시백을 데리고 금강산으로 가서 박처사의 딸 박씨와 혼인시킨다. 시백은 첫날밤에 박씨를 보고 박씨의 인물이 추녀 중의 추녀이며 천하에 박색인 것을 알고 실망을 하게 된다. 그날 후로는 시백은 박씨를 돌보지 않는다. 심지어 가족들도 박씨의 얼굴을 보고는 모두 비웃고 욕을 한다. 이에 박씨는 시아버지에게 후원에다 피화당을 지어 달라고 청하여 그 곳에 홀로 거처한다. 하지만 박씨는 이득춘이 급히 입어야 할 조복을 하룻밤 사이에 짓는 재주와, 비루 먹을 말을 싸게 사서 잘 길러 중국 사신에게 비싼 값에 팔아 가산을 늘리는 영특함을 보인다. 또 박씨는 시백이 과거를 보러갈 때 신기한 연적을 주어 그로 하여금 장원급제 하도록 한다. 시집온 지 삼년이 된 어느 날 박씨는 시아버지에게 친정에 다녀올 것을 청하여 구름을 타고서 사흘만에 다녀온다. 이때 박씨의 아버지 박처사는 딸의 액운이 다하였기에 이공의 집에 가서 도술로써 딸의 허물을 벗겨주니, 박씨는 일순간에 최고 미인으로 변한다. 이에 시백을 비롯한 모든 가족들이 박씨를 사랑하게 된다.한편, 시백은 평안감사를 거쳐 병조판서에 이른 뒤, 임경업과 함께 남경에 사신으로 간다. 그곳에서 시백과 임경업은 가달의 난을 당한 명나라를 구한다. 그들은 귀국하여 시백은 우승상에, 임경업은 부원수에 봉해진다. 이때 호왕이 조선을 침공하기 앞서 임경업과 시백을 죽이려고 기룡대라는 여자를 첩자로 보내 시백에게 접근하게 한다. 박씨는 이것을 알고 기룡대의 정체를 밝히고 혼을 내어 쫓아버린다. 두 장군의 암살에 실패한 호왕은 용골대 형제에게 10만 대군을 주어 조선을 치게 한다. 천기를 보고 이를 안 박씨는 시백을 통하여 왕에게 호병이 침공하였으니 방비를 하도록 청하나 간신 김자점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마침내 호병의 침공으로 사직이 위태로워지자 왕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지만 결국 항서를 보낸다. 많은 사람이 잡혀 죽었으나 오직 박씨의 피화당에 모인 부녀자들만은 무사하였다. 이를 안 적장 용홀대가 피화당에 침입하자 박씨는 그를 죽이고, 복수하러 온 그의 동생 용골대도 크게 혼을 내준다. 용골대는 인질들을 데리고 퇴군하다가 의주에서 임경업에게 또 한번 대패한다. 왕은 박씨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서 박씨를 충렬부인에 봉한다.줄거리는 여기까지이다.박씨전을 읽으면서 생각을 떨칠 수 없던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아름다운 여자는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이었다. 오늘날에는 아름다운 여자는 잘못을 해도 이쁘니까 용서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이쁘면 다 된다는 외모 지상주의 사상이 있는데 이 전의 시대에도 이런 외모 지상주의 같은 것이 있다는 것에 한 숨이 절로 났다. 박씨는 아주 못생긴 걸 빼고는 장점이 많은 여성이다.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고 외모 때문에 집 안 한구석에 밀려나 있으면서도 가정을 돌보고 남편을 출세시키는 덕을 지녔다. 내가 만약 박씨가 되어 못생긴 이유로 집 안 구석에 밀려났더라면 남편을 원망하거나 도망을 쳤을거 같다. 박씨가 아버지로 인해 다시 아름다워 지게 됨에 따라 그녀를 인정하고 사랑하게 되는데 만약 박씨의 변신이 일어나지 않아 예뻐지 않고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면 훨씬 감동적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나를 잘 안다는 오만에 빠지지 말라.”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여 무슨 일을 결정할 때 독단에 빠져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관점이나 자신의 내면에 잠정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게 된다면 갈등이 일어나게 될 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 될 것이다.이 책은 여성들에게 자신의 인간상, 내면에 존재하는 원형을 인식하고 갈등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그리스 신들을 인격화 시켜 인간의 성격으로 맞추어 그들의 장점과 약점을 분석 한다. 그것을 분석하고 밝히어 인간 자신의 성찰을 촉구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작가 볼 린은 융 분석심리학자로 여성들과의 상담을 통해 들은 이야기 속에서 여성 내면의 심리와 여성의 삶에 신화적인 내용이 있음을 발견하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남성 위주의 신화에서보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여신들과 여성들의 삶, 내면의 심리를 설명하기 위해 원형들을 7명의 그리스 여신으로 의인화시키고 있다. 작가는 여신들을 세 가지의 독특한 성격으로 분리시켜 나누어 놓았다. 첫째는 “처녀 여신들”로, 둘째는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 마지막으로 “창조하는 여신”이 있다. “처녀 여신들”로는 아르테미스, 아테나, 헤스티아로 구분지으며, 두 번째 그룹은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로서 헤라, 데미테르, 페르세포네이다. 세 번째 그룹은 “창조하는 여신”으로 아프로디테로 설명한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의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헤라와 아프로디테는 질투심에 불타거나 지나친 욕심에 사로잡혀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여신으로 묘사한다. 분명 작가는 질투심과 지나친 욕심 원한으로 가득 찬 여성 환자에게서 헤라와 아프로디테의 굴욕적인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바람둥이 제우스는 끊임없이 바람을 피며 헤라의 복수심을 자극한다. 헤라는 레토가 제우스의 아들인 아폴로를 낳을 때 저주를 내려 9일 동안 고통 속에서 헤매도록 하고, 제우스에게 여자가 생길 때마다 상대 여성에게 분노를 쏟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파괴적인 결과를 이르게 하는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 이는 가부장적 성차별의 편견으로 해석될 수 있다. 헤라 원형은 가부장 문화. 즉 남편이 중심이 되는 문화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면서 다른 여성들에게 복수를 함으로써 가장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현대사회의 부부관계에서 남편의 외도가 문제가 생겼을 때 여성들의 특히, 한국여성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남편은 유혹을 당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반면 상대 여자는 유혹을 했다고 하여 상대 여자에게 증오의 감정을 느낀다. 만약 자신이 헤라나 아프로디테와 같은 원형을 가지고 있는 이가 이 책으로 인해 잠시 생각하게 된다면 파괴적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아르테미스는 개인주의자이며 자연을 좋아하고 고집이 세고 자기 성취욕이 강하다. 만약 아르테미스 원형을 가지고 있다면 현대사회에서 사회생활을 하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현대사회에서 자기 성취욕이 강하며 자연을 좋아하는 인간상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관계 지향적이며 여성들만의 집단에서만 두드러지게 활동하는 아르테미스 인간상으로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아르테미스 인간상의 예로 여성들만의 집단에서 일하는 여성들인 여러 여성 운동가들을 설명 한다. 아테나와 헤스티아 원형은 쉽게 사랑을 하지 않으며 독립심의 욕구가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려전기에는 향가가 주를 이루지만 고려후기에 와서는 향가보다는 고려가요 장르가 등장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형식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즉, 나라의 지배권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문학적으로 규범이 달라졌기 때문에 향가로서는 그 시대문제를 감당할 수 없었다. 따라서 새로운 형식의 문화가 나타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려가요의 대표적인 작품에는 처용가와 쌍화점이 있다.*처용가신라의 49대 헌강왕 때의 일이었다. 서울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이 서로 이을 정도로 번창하여 초가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풍우는 사철 순조로와 풍년이 드니 풍악소리와 노래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헌강왕이 開雲浦(지금의 울산)에서 놀다가 돌아가는 길에 물가에서 쉬고 있었다. 이 때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길을 잃었다. 왕이 이상하게 여겨 신하들에게 까닭을 물으니, 日官이 "이는 동해용의 조화이오니 마땅히 좋은 일을 행하여 풀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용)을 위하여 근처에 절을 지으라고 명령을 내리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다. 그래서 이곳을 '개운포'라 하였다. 동해의 용이 기뻐하여 아들 일곱을 거느리고 왕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여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 가운데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가서 왕의 정사를 도왔다. 그리고 이름을 처용이라 하였다. 왕이 그에게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하여 머물러 있도록 하고, 벼슬을 주었다. 아내가 대단히 아름다워서 역신이 몰래 범하였다. 처용이 집에 들어와 다리가 넷인걸 보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이에 역신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처용 앞에 꿇어앉아 "내가 당신의 아내를 사모하여 잘못을 저질렀으나 당신은 노여워하지 않으니 감동하여 아름답게 여긴다. 맹세코 이제부터는 당신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린 부적을 문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 들였다.서울 밝은 달 아래밤 늦도록 노닐다가들어 와 자리 보니가랑이가 넷이어라둘은 내 것인데둘은 뉘 것인고본디 내 것이었다마는빼앗아 간 것을 어찌하리오.)향가 작품인 헌화가와 해가를 보면 수로부인은 여러 번 납치가 되지만 부인은 다시 돌아온다. 고려가요 작품에서도 처용의 부인은 마치 수로부인이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역신에게서부터 다시 돌아오게 된다.신화에서 이야기의 구조는 부부관계가 모두 영속적인 동거가 아니었다. 유화도 해모수도 그렇다. 그러나 선화공주가 서동과 만난 이야기 즉, 새로운 남자와 만나는 이야기부터 영속적인 동거를 이루기 시작한다. 신화에서는 같이 살지 않는 대신 모두 아들이 있었다. 이 시대에는 아들을 낳느냐 못 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남자와 이별하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이런 윤리적 문제들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이야기 중심이 점점 부부관계로 전환이 되면서 영속적 만남을 바라게 되며 윤리적 관계가 점점 부각되게 된다. 이런 윤리적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 강조한 이야기가 내려오 게 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급격히 대두된 작품이 바로 쌍화점이다.* 쌍화점쌍화점에 쌍화 사러 가 있는데회회아비가 내 손목을 쥡니다.)이 말이 이 가게 밖에 나고 들면)다로러거디러 조그만 새끼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위 위 다로러거디러 그 잔 데 같이 울창한 곳 없다.쌍화점은 고려 충렬왕(忠烈王:재위 1275~1308) 때의 이야기이며, 작자?연대 미상으로 알아 왔으나, 고려사에 실려 있는 노래의 내용이 쌍화점의 제 2절과 똑같아 연대가 밝혀졌다. 모두 4절로 된 이 노래는 당시의 性倫理가 잘 나타나 있으며, 유창한 운율과 제왕을 용으로 표현한 점 등은 뛰어난 기교라 하겠다.쌍화점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즉, 이것을 당시 유행하던 것으로 보는가 하면,『고려사』의 기록에 등장하는 승지 오잠(吳潛)의 창작물, 혹은 궁중에서 다수에 의한 합작물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당시 宴樂을 즐기는 등 방탕한 기질이 농후하던 충렬왕의 기호에 부합되기 위하여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감안한다면, 대체로 당시 元나라의 干涉과 왕권의 동요로 혼란스럽고 퇴폐적으로 된 사회상을 반영하는 俗謠를 채취하여 오잠의 무리가 왕의 기호에 맞게 손질을 가하였을 가능성이 유력시되고 있다. 이 노래는 여느 고려가요와 마찬가지로 惡舞와 더불어 연행되었을 것인데, 독특하게 이 노래의 경우는 연극적인 성격이 강하였을 가능성도 아울러 논의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 노래는 남장별대(男粧別隊)에 의하여 불렸다. 이들은 수도인 개성과 전국 8도에서 차출된 여자 기생들이 남자 복색을 한 집단으로, 노래기생, 춤 기생, 얼굴기생으로 나뉘었다. 이들은 1279년(충렬왕5) 오잠의 지휘하에 왕 앞에서 이 노래를 대본으로 연희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희는 충렬왕의 상설무대였던 壽寧宮의 香閣에서 있었다고 한다. 특히, 충렬왕을 대상으로 이 연극이 행하여졌다는 점과 연관되어 이 노래가 연극의 대본이었을 가능성이 뒷받침되고 있다. 이 노래의 제목인 쌍화점은 첫째 연 첫 구에서 따온 것으로 만두가게를 의미하며, 한역가의 제목인「三藏」도 제 2 장 첫 句에서 유래한다. 노래는 전 4 장으로 되어있는데, 노래 대상에 따라 장이 바뀌고 있다. 즉, 회회아비, 삼장사에 사주(社主), 우물의 용, 술집아비에 대한 노래로 이어진다. 일어난 사건의 장소와 대상이 서로 다를 뿐, 사건의 성질은 모두 똑같은 性的 不倫의 것이다. 충렬왕의 퇴폐적인 시대상을 포괄하는 노래 외적인 상황과, 이 노래 내부의 고유한 구조 사이의 관련이 밀접함이 분명하되, 그 구체적인 양상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고대의 특징은 왕이 건국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고대를 운영하는 방식은 왕에게 접촉하는 행위는 모두 금지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중세는 절대적인 왕권이 아니라 보편적인 이념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시대이다. 즉 두루 어느 곳에나 적용될 수 있는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천자를 이상적인 이념을 내세우게 되었는데 천리를 한 몸에 구현해 내는 상징적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천자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보편적인 이념으로 내세우는 장점이기 때문에 문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주로 향찰을 이용해 기록했는데 그것이 바로 향가이다.전기 : 고구려, 백제, 신라 ? 발해, 통일신라 (중국시대 : 당) ? 고려전기 (송 중세후기 : 고려후기 (원) ? 조선후기 (명)[참고: 이행기시대 - 조선후기 (청)] *우리나라 정권이 변하는 시기는 중국의시대가 변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중세전기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 는 백제 무왕이 왕이 되는 이야기로 무왕신화라고 하기도 한다. 신화라는 것이 고대와 맞닿아있지만, 중세로 넘어와서 최초로 나온 향가이다.서동의 어머니는 과부였다. 어머니는 지을 서울 남쪽 못가에 집을 집고 살았는데 못에 사는 용과 교통하여 그를 낳았다.) 어릴 때 이름은 서동이며, 마음의 크기가 한없이 넓었다. 항상 마를 캐고 팔아서 생업으로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런 이름을 지은 것이다.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서동은 선화공주를 아내로 삼겠다고 결심을 한다. 서동은 마를 동네 아이들에게 주자 여러 아이들이 가까이 따랐다. 이내 노래를 지어 여러 아이들에게 부르게 하였다.선화공주님은남 몰래 정을 통해 두고맛둥방(서동)을밤에 몰래 안고 가다.동요가 장안에 퍼져 궁중까지 알려지니 모든 신하들이 간청하여 공주를 먼 곳에 귀양 보내게 되었다.) 공주가 떠나려할 때 왕후가 순금 한 말을 주어 보냈다. 공주가 귀양 가는 길에 서동이 나와서 절을 하고 모시고 가겠다 하였더니, 공주는 그가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공연히 미덥고 즐거웠다. 그래서 따라가다가 상통하게 되었다.) 그런 뒤에 서동의 이름을 알고 동요가 맞는다 하여 함께 백제로 가서 어머니가 준 금을 내놓으며 이것으로 생활을 하자 하였다. 서동이 크게 웃으며 "이것이 무엇이냐?"하니 공주는 "황금인데 백 년 동안 부자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하였다. 서동은 그 말을 듣고 "내가 어려서 마를 캐던 곳에는 이것이 진흙처럼 쌓였었다."하였다.) 공주가 듣고 깜짝 놀라하며 금을 선화아버지에게 주자고 한다. 서동은 선화의 뜻을 들어준다. 용화산 사자사 지명법사가 머무는 곳에 가서 금을 보낼 계책을 물으니 "금만 가져오라"고 하여 공주는 편지를 쓰고 금을 법사에게 가져다주었다. 법사는 신통한 힘으로 하룻밤에 신라 궁중으로 실어다 놓았다. 진평왕이 그 신통한 변화를 이상히 여겨 더욱 존경하고 항상 서신으로 안부를 물었고, 서동은 이로 인해서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오르게 된다.이처럼 는 신분을 초월한 자유롭고 적극적인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을 그려주고 있으며 또한 서동이의 영웅적인 면도 함께 그려주고 있다. 의 서동과 선화공주의 적극적인 사랑을 보면서 옛 사람이 원하고 희망하였던 사랑방식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또한 영웅적인 인물의 인생을 전반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배경설화를 통해서 무왕의 영웅 됨을 나타내고자 하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수로부인 일화에서는 성덕왕 때에 순정공이 강릉(지금 명주) 태수로 가는 도중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 옆에 병풍 같은 바위 벽이 있어 바다에 맞닿았는데 높이가 천 길이나 되었고, 그 위에는 철쭉꽃이 한창 피어 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가 그것을 보고 옆 사람들에게 "저 꽃을 꺾어주길 바랬다. 모시는 사람들이 모두 꽃을 꺾기에는 위험하다고 사양하였다. 그 곁에 늙은 노인이 암소를 끌고 지나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꽃을 꺾어 노래를 지어 바쳤으나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붉은 바위가에서잡은 바 암소 놓게 하시어나를 부끄리하지 않으신다면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다시 이틀 길을 가다가 바닷가 정자에서 점심을 먹는데 용이 홀연히 나타나 부인을 끌고 바다로 들어갔다. 공이 기절하여 땅을 쳐 보았지만 아무 방법이 없었다. 한 노인이 있다가 "옛 사람의 말에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 하였는데 지금 바다짐승이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당장 이 경내의 백성을 불러서 노래를 부르며 몽둥이로 언덕을 두드리면 부인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이 그대로 하였더니 용이 바다에서 부인을 데리고 나와 바쳤다. 공은 부인에게 바다 속의 사정을 물었다. 부인은 "칠보 궁전에 음식이 달고 부드러우며 향기가 있고 깨끗하여 세상의 익히거나 삶은 음식이 아니더라."하였다. 옷에도 향기가 배어 세상에서 맡는 향기가 아니었다. 수로의 자색과 용모가 절대가인)이어서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에게 잡히었다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남의 부녀 앗아간 죄 얼마나 클까)네 만일 거역하고 바치지 않으면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고 말리라.이같이 수로부인의 이야기를 보면 현대인들이 인간의 미를 중시하는 것과 같이 그 시대에도 인간의 미를 중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인의 흠모와 존경의 대상이었던 원화, 화랑의 자격의 우선적인 조건은 용모와 자태의 아름다움이었다.) 고대시대에는 왕명만 있으면 되었기 때문에 문자를 개발할 필요가 없었다.) 서동이라는 인물이 용자로 태어나서 시련을 극복하고 왕위에 오른다는 영웅 설화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 서동의 어머니가 못에 있는 용과 교통 하여 그를 낳았다던가, 어려서부터 마음의 크기를 헤아릴 수 없었다던가 하는 것은 그가 매우 대단한 사람으로 자랄 것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어머니가 용과 교통을 했다는 것은 진짜가 아니라 꿈 속, 즉 태몽인 것 같다. 서동의 아버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서동의 어머니가 서동을 뱄을 때 꾼 꿈이 이야기가 되어가면서 용과 교통을 했다고 된 것 같다. 이것은 서동이 과거의 많은 영웅설화처럼 미래에 영웅이 될 것임을 암시 하고 있는 것이다.) 중세시대의 특징이 나타남-고대시대에는 왕명에 복종해야했기 때문에 백관들은 불만을 토하거나 탄핵을 할 수 없었는데, 중세시대에는 왕의 권력이 작아지고 보편적 이념을 중요시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공주의 성격이 나타남 - 공주의 성격이 활발하고 진취적이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