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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학] 서울, 1964년 겨울
    「서울 1964년 겨울」작품 조사플롯분석1. 그날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선술집에서 만나다.2. 안과 자기소개가 끝나고 할 얘기가 없어 조용히 술을 마시다.3. 할 말이 생각난 김은 안에게 파리를 사랑하냐고 물어보다.4. 날 수 있는 것으로서 손 안에 잡을 수 있어서 김은 파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다.5.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냐는 김의 질문이 기특해 예전에 버스간에서 본 여자의 아랫배의 오르내림을 좋아한다고 말하다.6. 심각한 얘기를 좋아하는 안을 곯려주기 위해 자신만이 아는 사소한 사실을 얘기하다.7. 나의 사소한 얘기에 동조하는 안이 이상스러워 부자집 아들이라는 것이 사실인지 물어보다.8. 안은 해방된 것을 느끼기 때문에 추운 밤, 밤거리를 쏘다닌다고 말하다.9. 둘이 의기투합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할 때 한 사내가 뜻밖에 동참하고 이 때문에 한동안 거리를 배회하다.10. 아내 시체를 판 돈 4천원을 그들과 써버리고자 동참한 그와 술을 마시고 그들은 다시 갈 곳을 몰라 방황한다.11. 그들은 소방차를 따라 화재가 난 곳으로 가고 그곳에서 책장수는 아내의 환영을 보고 괴로워하다가 나머지 돈을 불 속에 던지고 만다.12. 사내는 여관비를 구하러 낯선 집으로 가 밀린 월부 책값을 달라고 하다가 울음을 터뜨린다.13. 오늘밤만 같이 있어달라는 사내의 말에 여관으로 같이 들어가 각자 따로 방을 얻다.14. 김과 안은 사내가 자살한 걸 알고 시끄러워지기 전에 여관에서 도망가다.1) 이기적 자살 - 「서울, 1964년 겨울」에 나타난 개인의 자살먼저 소설 외적으로 드러난 1964년 서울의 시대상을 살펴보기로 하자.그해 겨울은 추웠다. 한일기본조약 반대와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던 학생들 은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면전에 나선 군사정부에 의해 패퇴했다. 4ㆍ19가 열어젖 힌 해방과 자유의 공간을 군홧발로 짓밟은 박정희 소장. 그를 상대로 한 싸움을 별러왔던 학생들 의 반격이 6·3사태{) 그 해 3월 24일 서울대학 ·연세대학 ·고려대학후 8시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4개 사단병력을 서울 시내에 투입하여 3개월 가량 계속되던 시위를 진정시켰다. 7월 29일 계 엄이 해제될 때까지 일체의 옥내외 집회 ·시위의 금지, 대학의 휴교, 언론 ·출판 ·보도의 사전검열, 영장 없는 압수 ·수색 ·체포 ·구금, 통행금지시간 연장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한편 이 사건으로 한일회담을 추진해오던 공화당 의장 김종필(金鍾泌)이 사임하였다. - 네이 버 백과 사전로 불리는 64년 여름의 용틀임이었다. 그 용틀임이 무위로 돌아가자 이제 학 생들에게 남은 것은 개인 차원의 사소한 실천뿐이었다. 그것은 또한 재래적 농촌 공동체의 붕괴와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단자(單子)적 세계관과도 통하는 것이었다.{)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김승옥 -[한겨레신문] 1996. 7. 12위의 기사 내용에서도 보이듯이 1964년 겨울은 1960년 4·19혁명을 통해 이룬 민중들의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1961년 박정희 소장의 5ㆍ16 쿠데타로 무참히 짓밟힌 데다, 1964년 6ㆍ3사태의 좌절로 인하여 허무감이 더욱 증폭되던 시기를 상징한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겪고 난 후의 학생들이나 시민들이 느끼는 것은 허무감이었다. 이러한 허무감 위에서 개인이 취하게 되는 행동양식은 위의 글에서 얘기하고 있듯이 개인 차원의 사소한 실천이었다. 게다가 과속화되는 산업화로 인한 개인화는 시민들로 하여금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게 하였다.「서울, 1964년 겨울」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이 잘 드러난다.적십자병원 정문 앞에 있는 호도나무의 가지 하나는 부러져 있습니다.을지로 삼가에 있는 간판 없는 한 술집에는 미자라는 이름을 가진 색시가 다섯 명 있는데 그 집 에 들어온 순서대로 큰미자, 둘째 미자, 셋째 미자, 넷째 미자, 막내 미자라고들 합니다.그렇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겠군요. 그 술집에 들어가본 사람은 곡 김형 하나뿐이 아 닐 테니까요.아 참 그렇군요. 난 미처 그걸 생각하지 못했는데. 난 그 중.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나와 안은 파리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으로 시작해서 자신만이 알고 있는 사실들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나와 안이 발견한 것은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다. 그것은 단성 사 옆 골목의 쓰레기통과 그 안에 든 초콜릿 포장지, 적십자병원 정문 앞의 호도나무, 미자라는 아 가씨가 사준 빤쯔, 백십원이 들어있는 한 되들이 빈 술병 등으로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법 한 하찮은 사물들인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이 물건들은 다른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오직 나와 안만이 관심을 갖고 기억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만이 간직하고 있는 세계, 그들만의 소유가 된다. 나아가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안다면 그것은 자기의 소유가 아니며 중요하지도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까지 한다.{) 정영훈, 「김승옥 소설에 나타난 욕망의 발현양상 연구」,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 문,(1998) p.37∼38.위의 논문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나와 안의 대화는 사물에 의미를 부여해 자유를 추구하려고 한다. 6ㆍ3 사태의 좌절로 인하여 개인에게 돌아온 것은 사회적인 억압이었다. 이러한 사회적인 억압으로 인하여 시민이나 학생들은 당연히 움츠러든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 때의 움츠러든 생활이란 사회 역사적인 관심이 아니라 지극히 미미한 개인적인 일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은 소설에서도 드러나고 있듯이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여 자유를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다. 소설에서 드러나고 있는 이러한 행위는 재래적 농촌 공동체의 붕괴와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단자(單子)적 세계관 즉 개인화와 통하는 것이다.이러한 단자적 세계관은 자살을 하게 되는 아저씨의 얘기를 보면 더 잘 드러난다.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말하기 시작했다. 들어주셨으면 고맙겠습 니다. 오늘 낮에 제 아내가 죽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젠 슬프지도 않다는 얼굴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네에에. 그거 안요. 그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입을 우물거렸 다.{) 김승옥,「서울, 1964년 겨울」,심지, (1988년) p. 264∼265.사랑하는 아내의 친정집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세계가 바로 단자적 세계인 것이다. 농촌 공동체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산업화와 함께 보편화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산업화의 속도 앞에서 개인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아내의 급성 뇌막염이라는 병 앞에 아저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내의 시체를 파는 일이었다. 그는 월부판매 외판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아내의 죽음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내 아냅니다. 하고 사내는 환한 불길 속을 손가락질하며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내 아내가 머리를 막 흔들고 있습니다. 골치가 깨질 듯이 아프다고 머리를 막 흔들고 있습니다. 여보…….골치가 깨질 듯이 아픈 게 뇌막염의 증세입니다. 그렇지만 저건 바람에 휘날리는 불길입니다. 앉으세요. 불 속에 아주머님이 계실 리가 있습니까? 라고 안이 아저씨를 끌어 앉히며 말했다. 그러고 나서 안은 나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이 양반, 우릴 웃기는데요. {) 김승옥,「서울, 1964년 겨울」,심지, (1988년) p. 269.미용학원에 불이 난 것과 죽은 아내를 떠올리는 것과의 유사점은 어디에 있는가? 불에 타고 있는 미용학원을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것처럼 급성 뇌막염에 걸린 아내의 병을 아저씨가 어쩔 수 없는 것에서 우리는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과속화되는 산업화에 어쩔 수 없이 소외되는 개인의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소설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사건들로 미루어 그 당시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정치적으로 6ㆍ3사태의 좌절로 인하여 개인들에게 허무감이 증가하던 시기였고, 경제적으로는 산업화의 과속화로 인하여 농촌 공동체가 붕괴되고 보편적 가치의 틀이 깨지기 시작하면서 개인화되던 시기였다. 그런데 과연 사회의 이러한 변화가 개인의 자살과 어떠한 상관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구성원의 수가 적은 가족에 있어 서는 공동감정과 추억은 그 밀도가 높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가족에서는 서로를 표현하고 강화시킬 의식의 양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족에서는 단일한 구성원을 결합시키는 강력한 전통이 형성되고, 그것이 다음 세대에까지 계속 전승될 수가 없다. 소규모의 가족은 또한 불가피 하게 단명한다. 그리고 오래 지속되지 않고서는 어떠한 사회도 안정될 수가 없다. 그와 같은 집단 에서는 종합적인 상태는 취약할 뿐 아니라 다수일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수는 견해와 인상의 활 발한 교환 및 순환에 의존하며, 또한 그러한 교환이 더 신속할수록 더 많은 참여가 있기 때문이 다. 충분한 밀도를 가진 사회에 있어서는 의견의 순환은 사회 단위들이 언제나 접촉될 수 있으므 로 중단되지 않는다. 그러나 구성원이 적은 사회에서는 관계가 간헐적일 수밖에 없으며, 공동생활 이 중지된 상태가 일어날 수 있다. 또한 가족의 규모가 적을 때에는 친척들이 같이 모이는 일도 적으며, 따라서 가족사회는 시들어지고 가정을 버리고 떠나버리는 일도 흔히 일어난다.(중략) 그 러므로 앞에서 내린 우리의 결론을 다시 표현하여 완결한다면, 가족은 자살에 대하여 강력한 예방 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가족이 더욱 강력히 통합되어 있을수록 자살의 예방력도 커진다고 말할 수 있다.{) 에밀 뒤르켐/ 임희섭 역「자살론」삼성출판사(1997년), p. 188∼189.위의 글을 우리에게 적용시켜 본다면 전통적인 농촌 사회의 가족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산업화로 갈수록 사회의 통합력은 약화되고 그에 따른 자살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전통적인 농촌 사회의 가족 공동체에서 여성은 피해자였다. 오히려 산업화로 인하여 가 부장적인 지배가 붕괴되어 여성에게는 해방의 길이 열린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통적인 농촌사회로의 회귀가 아니라 휴머니즘적인 관점에서 산업 화가 몰고 온 개인의 자살을 문제삼으려고 하는 것이다.이것은 「서울, 1964년 겨울」에서도있다.
    인문/어학| 2005.07.23| 5페이지| 1,000원| 조회(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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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 철학] 직접실재론 요약
    제 6절 직접실재론과목: 인식론소속: 국어국문학과 4학년이름: 조창연직접실재론은 우리가 지각할 때 물리적 대상을 직접 자각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이 이론은 지각하는 인간과 물리적 대상 사이에 있다고 현상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감각 자료와 것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육안으로 나무를 보고 있을 때보다 더 직접적으로 대상을 접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추리에 의해서 나무가 실존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직접 그 사실을 관찰한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감각 자료는 물리적 대상의 실존을 입증해주는 증거이기 때문에 일종의 추리일 수 있다. 그렇지만 감각 자료 이론을 신화라고 간단히 기각해버리려는 사람은 누구나 어떻게든 이점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다.사람들이 경험하는 것들 가운데 물리적 대상이 아닌 것이 있지 않을까. 우리가 바로 앞에 있는 빨간 반점을 보고 있다면(물리적 세계에는 그 빨간 점이 없다 할지라도) 그 빨간 반점을 보고 있는 건 사실일 것이다. 따라서 그 빨간 반점을 우리가 경험하는 대상으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자각하고 있는 어떤 것이 어떻게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환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인식론자들이 직접실재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일차적 이유가 아니다. 우리의 감각 경험의 본성이 여러 가지 관찰 조건에 의존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가 감각 경험을 할 때 자각하는 것이 전혀 물리적 대상의 상태가 아닐 수도 있다. 세계는 감각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보고되는 것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있을 수 있다.사물이 어떻게 보이는가는 지각자의 감각 기관의 특성과 관찰 조건(그 사물을 충분히 볼 수 있는 빛이 있는가 없는가, 지각자가 안경을 썼는가 안 썼는가, 대상이 가까이 있는가 멀리 있는가 등등의 조건)에 의존한다. 그러나 전형적 일상인도 물리적 대상은 관찰하는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어떤 속성들을 제것으로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아무도 그 사실을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벽돌이 진보이거나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사물의 무거움은 이와 다른 것이다. 그 사물이 다른 사물을 누르고 있다든가 다른 사물에 충격을 준다든가 한 손으로 그 사물을 들어올릴 수 없다든가 등등의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 있다면, 그 사물은 무겁다. 그런데 이 인과적 특성은 보거나 느끼는 방식으로 파악되는 특성이 아니다.실재주의자에게는 (물리적 대상이 실존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물리적 대상이 정말 있느냐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물리적 대상이 어떠한 것이냐, 풀어 말하면 우리에게 물리적 대상이 지닌 것처럼 보이는 속성은 무엇이냐 라는 물음과 전혀 다른 물리적 대상이 실제로 지니고 있는 속성은 무엇이냐 라는 물음이 문제일 것이다. 만일 어떤 대상이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속성이 진짜 속성이 아니라면, 감각 기관의 자료가 항상 우리에게 그 대상이 참으로 어떠한 것인지 알려주지 못한다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데모크리토스는 우주가 허공 속에서 움직이는 미세한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고, 이 입자들을 원자 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는 이 원자들이 일정한 크기와 모양과 무게를 갖고 있지만, 색깔이나 냄새나 맛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색깔이나 냄새 등등은 감각 경험에는 대상의 속성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속성이 아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감각 기관들이 인간을 완전히 오도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로크는 지각하는 사람이 전혀 없을 때에도 어떤 대상이 지니고 있는 성질들을 제일성질이라 하였다. 대상은 일정한 크기ㆍ모양ㆍ질량ㆍ비중을 지니고 있는데, 누군가가 지각하고 있든 않든 이런 성질을 지니고 있다. 이런 성질은 대상의 고유성질이다. 한편 제이성질들은 대상의 고유성질이 아니라 감각 기관을 가진 지각자가 있을 때만 나타나는 성질이다. 색깔ㆍ냄새ㆍ맛은 제이성질에 해당한다. 식초는 지각자와 무관하게 어떤 화학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식초의 톡 쏘는 냄새는 지각자가 있을 때만 실존한다.로크가 역설했던 점은 다음과 같이 서술될 수 있다. 즉 모양과 다. 이 힘은 지각자가 있든 없든 대상 속에 있지만 지각자가 색깔-경험을 할 때만 효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모양과 색깔은 둘 다 지각자와 무관하게 대상 속에 있는 성질이다. 로크가 지적하는 이 둘의 차이점은 제일성질의 경우에는 대상 자체가 그대로 소유하고 있는 속성이지만, 제이성질의 경우에는 대상 자체가 그대로 소유하고 있는 성질이 아니라 단지 어떤 지각자에게 감각 자료를 일으키는 힘으로서 소유하고 있는 성질이라는 것이다.색깔은 대상이 사람의 내부에(그 대상에서 반사된 광파가 사람의 눈을 자극하는 작용을 통해서)색깔-경험을 이으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에서 대상 속에 있다. 열은 대상 속에 있는가. 대상을 이루고 있는 분자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만 열은 대상 속에 있다. 이것은 물리적 의미의 열 즉 순전히 물리학에만 타당한 열이다. 하지만 열에 대한 감각 인상은 대상에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내부에 있다.그런데 적당히 떨어져 있어서 우리에게 따뜻하다는 감각을 일으키는 바로 그 불이 차츰 가까이 다가오게 되면 고통이라는 아주 색다른 감각을 우리에게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불에 의해 자신에게 일으켜졌던 따뜻함이란 관념은 실제로 불 속에 있지만, 바로 그 불이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에게 일으켰던 고통이란 관념은 불 속에 있지 않다고 말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한다.로크의 견해를 반박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던 버클리는 로크가 제일성질과 제이성질을 구별한 근거는 제이성질에 관한 경험이 아주 쉽게 변한다는 사실이라고 믿었다. 버클리는 변화 가능성을 논거로 삼은 로크의 논증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이른바 제일성질에 관한 경험도 제이성질에 대한 경험과 마찬가지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버클리는 어떤 성질의 변화 가능성을 근거로 삼아 그 성질이 대상 속에 실제로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면, 이른바 제일성질과 제이성질은 둘 다 변하기 때문에 똑같은 처지에 있다고 주장하였다.적 지각조건(대상과의 거리나 조명 등등의 조건)과 내적 지각조건(시력의 정상 여부나 방금 약을 먹었는지 등등의 조건)에 의존한다.오늘날 물리과학자들은 대체로 제일성질과 제이성질의 구별을 인정하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크기와 모양과 무게이다.(정확히 말하면 질량이다.) 물리과학자들은 색깔을 광파에 의해 설명한다. 그러나 어떤 사물의 색깔은 제일성질의 출현을 설명하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오히려 색깔이 일정한 제일성질들의 발현에 의해 설명된다.버클리가 로크의 견해에 대해 제기한 또 하나의 반론은 이 점과 관련이 있다. 모양과 색깔을 분리할 수 없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누가 모양이 없는 색깔이나 색깔이 없는 모양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인가. 버클리는 어떤 것의 모양이 그 색깔의 범위 (한계)라고 주장하였다. 모양과 색깔은 분리될 수 없다. 하지만 로크는 모양은 제일성질이고 색깔은 제이성질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면 로크는 모양은 그 상자의 속성이지만 색깔은 그 상자의 속성이 아니라고(색깔은 단지 힘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버클리는 이 주장이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다고 보았다.그렇다면 실재하는 대상은 어떠한 것일까. 우리는 실재하는 대상이 어떠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제 로크가 물리적 대상의 감각할 수 없는 성분 을 논하면서 줄곧 언급했던 수준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보자. 하나의 탁자는 수십억 개의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탁자는 일정한 모양을 갖고 있는데, 그 모양은 분자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낱낱의 분자가 동일한 모양을 유지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분자들이 달리 배열되면 다른 모양의 탁자가 된다. 하지만 낱낱의 분자에게도 정말 모양이 있을까. 만일 분자에게는 아무 모양도 없는데, 모양이 없는 분자는 생각할 수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건가. 분자는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할까.위의 예가 알려주는 바와 같이, 로크가 말한 제일성질에 속하는 성질까지도 낱낱의 분자에는 적용되지 않는 성질이 있는 것 같다.분자는 너무 작아서 촉감으로 확인할 수 없다.우리는 어떤 대상이 수천 개의 눈을 가진 파리에게는 어떻게 보일 것인지 상상해보려고 할 수 있지만, 그 대상이 지각자가 전혀 없는 경우에 어떻게 보일 것인지 상상할 수는 없다. 누군가가 보는 사람이 전혀 없을 때 그 대상이 어떻게 보일까 라고 질문을 받았다면, 누구나 그 대상은 결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인간의 상상력은 원자 수준의 세계에는 적용되지 않는 게 명백한 것 같다. 사람은 지각한 적이 있는 것만 상상할 수 있을 뿐인데, 누구도 원자보다 작은 입자를 전혀 지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프라이스는 20세기에 출판된 지각에 관한 저서들 가운데 가장 신중하고 생명력있는 그의 저서의 마지막 대목에서 대상은 실제로 어떤 것인가 에 관하여 인간은 아무런 지식도 갖고 있지 못하며, 더 나아가 지식이랄 만한 것을 얻을 전망조차 조금도 없다 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어떤 것이 누군가에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식의 기술 이외에 달리 어떻게 기술할 수 있을 것인가. 산꼭대기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육안에 보이거나 망원경을 통해 보이는 상태도 아니고, 개나 모기에게 보일 수 있는 상태 같은 것도 아니며,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상태 즉 바로 그 풍경의 실재 상태 라면, 누가 그 풍경을 기술할 수 있을 것인가. 보고 있는 사람이 전혀 없는데도 어떤 것이 어떻게 보일 것이라는 말이 유의미 할 수 있을까. 어떤 생물에게도 보이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 하는 말이 유의미할 수 있을까. 물음에 대한 답을 어떻게든 찾았다면, 애초에 물음을 물을 때 물음에 대한 답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고 있었어야 할 것이다. 답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면, 과연 물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제 7절 인과적 이론인과이론가들은 사람이 지각할 때 직접 자각하는 것은 대상과 그 것의 성질이지 감각 자료가 아니다 라고 주장한다. 제일성질과 제이성질에 관해 논의에 관해서 논의하고, 다음에 낱낱의 분자가 지니
    인문/어학| 2005.07.23| 4페이지| 1,000원| 조회(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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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교문학] 김춘수 시에 나타난 이중섭 그림의 이미지
    3.김춘수가 주목한 이중섭의 생애 먼저 그림과 시의 연관성을 살피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이중섭의 생애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는 일이다. 이중섭의 생애를 모르고서 이중섭의 회화를 얘기하면 수박 겉 핥기 식의 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중섭은 가장 한국적인 작가인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화가이다. 이중섭은 평양에서 태어나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일본 도쿄문화학원 미술과 재학 중, 1937년 일본의 자유 미협전에 출품하여 각광을 받고, 1945년에 귀국하여 원산사범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52년 부인이 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가자, 그는 전국을 떠돌며 부두노동 등을 하다가 전쟁이 끝나자 서울로 올라와 1955년 미도파 화랑에서 단 한 번 개인전을 열었다. 그러나 계속된 생활고와 가족들과의 생이별을 견디지 못하고, 1956년 적십자병원에서 40의 나이로 쓸쓸히 숨졌다. 그의 작풍은 야수파적인 강렬한 색감과 선묘 위주의 독특한 조형 등 서구적인 표현이지만, 향토적인 숨소리와 꿈을 표현하여 한국적이면서도 웅장하고 무한한 세계를 내포하고 있다. 그의 작품의 소재는 주로 소, 닭, 어린이, 가족 등 일상성을 띠고 있으면서 시정이 넘치는 것들이다. '소', '흰 소', '투계', '집 떠나는 가족', 그리고 담뱃갑 속의 은지에 눌러 그린 수많은 은지화들이 대표작들로 남아 있다. 그의 예술세계를 이루는 기반은 철저하게 자신의 삶으로부터 연유하고 있다. 생활고 속에서 처자마저 일본에 보내고 전국을 떠돌며 외롭게 제작한 고통의 산물들이었던 그의 작품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 새롭게 조명과 재평가를 받게 된다. 생전의 많은 인간적인 에피소드와 강한 개성이 담긴 작품들로 인해, 그의 삶과 예술은 이제 대중적으로 거의 신화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하지만 신화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는 내용과 달리,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춘수는 이중섭을 냉정히 평가한다. 이중섭은 화로서 조형성이 약하고 문학성이 강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전문가들보다 호사가들의 관심을 끄는 데 매우 유리하다고 한다.
    인문/어학| 2004.08.03| 12페이지| 1,000원| 조회(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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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 철학] 노자의 도덕셩과 현대시의 비교
    노자의 도덕경과 현대시와의 비교― 장석남의 水墨 정원 연작을 중심으로서론: 현대시와 도덕경갓난 송아지가 젖 먹을 때 다른 젖으로 바꿔 물며 들이받는 힘-장석남에 조금씩 밀리며 지긋이 눈감고여전히 되새김질하는 어미 소의 표정속에잠시 싸락눈 후딱 지나가듯바로 조기다 싶다우리 가야 할 곳우리 나온 곳다들 그곳에 모이시라혁명도 뭐도 또싸락눈도나는 둘인가?왜 저 안에도 나는 있지?사랑의 食客이 되어서잠시 세상 바꾸어놓는어미 젖 들이받는 힘{) 장석남, 왼쪽 가슴에 온 통증 , 창작과비평사,2001년, p. 59.처음부터 이론적으로 딱딱하게 노자의 철학을 얘기하고 싶지는 않고 노자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의 시를 인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도덕경 자체가 시와 유사한 점이 많아 현대시와 비교하면서 생각을 전개시켜도 좋을 것 같아서 앞으로 언급하는 내용 중에 어쩔 수 없이 시가 들어가게 되었음을 밝힌다. 시는 장석남의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의 「수묵정원」연작시와 노자의 도덕경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그의 다른 시를 인용하기로 하겠다.노자의 도덕경을 현대시와 연관시키는 중요한 이유는 현대적 시각에서 노자의 도덕경이 가지고 있는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위의 시에서 노자의 사상을 발견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道 而用之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湛兮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도덕경 4장{) 노자, 도덕경 , 오강남 역, 현암사, 2001. p.31(도는 그릇처럼 비어, 그 쓰임에 차고 넘치는 일이 없습니다. 심연처럼 깊어, 온갖 것의 근원입니다.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얽힌 것을 풀어 주고, 빛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과 하나가 됩니다. 깊고 고요하여, 뭔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의 아들인지 난 알 수 없지만, 상제보다 먼저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위의 인용 내용과 시를 비교해서 생각해 보자.위의 시에서 어미 소의 표정에서 평화를 느낀다. 바로 어미 어여쁜 자세가 될 것인고무엇이 저렇듯 오래 젊어서 더더욱 찬란할 것인고강을 건너는 것이 어디 나뭇잎들이나새들뿐이던가 봄이나 안개들뿐이던가저 자세저- 밑바닥에서 지금 무엇이 가라앉은 채 또한 강을 건너고 있는지때로 강의 투명은 그것을 보여주려는 일이 세상에 나온 가장 오랜 지혜를 보여주려는 일가장 낮은 자가 가장 깊이 삶을 건너는,가장 가벼운 자가 가장 높이 이승을 건너는,어느 깨달음이 저보다 더 어여쁜 자세가 될 것인고{3) 장석남, 왼쪽 가슴에 온 통증 , 창작과비평사,2001년, p. 28.위의 인용한 시와 도덕경 8장의 내용을 비교해 보자.上善若水 水善利萬物 又不爭處衆人之所惡 故幾于道 居善地心善淵 與善仁言善信 政善治事善能動善時 夫唯不爭故無尤 -도덕경 8장{) 노자, 도덕경 , 오강남 역, 현암사, 2001. p. 47∼48.(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입니다. 물은 온갖 것을 위해 섬길 뿐, 그것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를 뿐입니다. 그러기에 물은 도에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낮은 데를 찾아가 사는 자세, 심연을 닮은 마음, 사람됨을 갖춘 사귐, 믿음직한 말, 정의로운 다스림, 힘을 다한 섬김, 때를 가린 움직임. 겨루는 일이 없으니 나무람받을 일도 없습니다.)시인이 도덕경 8장의 내용을 다른 식으로 읊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와 도덕경 8장의 내용은 일치하는 점이 많다. 이 세상에 나온 가장 오랜 지혜 가 바로 道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왕필이 주장한 자연에의 귀의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왕필의 無 는 사물에서의 비어 있음 과 마음 비움 이다. 그런데 사물에서의 비어 있음 은 분별 지의 한계를 설명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하도록 하기 위한 비유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사 물에서의 비어 있음 은 분별지를 제거함으로써 곧 마음을 비움으로써 물아일체의 상태에서 자 연과 함께 하기 위한 비유로 봐야 한다. 따라서 왕필에게 無의 궁극적인 의미는 결국 물아일 체 상태 인 有物混成 이다. ― 김학목, 노서 별을 관찰하던자리였을까?누가 살던 짐인지둥그렇게 집터가 있고웃자란 나무들 하늘로 뻗쳤다사금파리 흩어진마른 개울 속에 침묵이콸콸콸콸 흐르고 있었다마른 노래를물에 풀며있었다.무명실 같은노래를저절로 나오는 노래는속에서 누가 부르는 노래일까눈 감았다 떠도 다시수묵의 정원 속이었다{) 장석남, 왼쪽 가슴에 온 통증 , 창작과비평사,2001년, p. 35.시인이 지금 있는 곳은 수묵의 정원 속인데 이것은 마치 장자의 胡蝶之夢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도덕경의 다음 구절과 비교하여 생각해 보자.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도덕경 11장의 내용 중 부분 인용{) 노자, 도덕경 , 오강남 역, 현암사, 2001. p. 59.(그러므로 있음은 이로움을 위한 것이지만 없음은 쓸모가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마른 개울 속에 침묵이 흐르고 있는 것은 바로 無의 세계를 나타내 주는 좋은 표현이다. 우리 밤속한 인간은 대개 있음의 세계, 현상의 세계만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달라붙는다. 이제 눈을 떠서 이런있음의 세계를 통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없음의 세계, 비존재의 세계에 눈을 돌리고 그것이 지닌 근원성, 역동성, 창조성 등을 인지하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있음의 세계, 존재의 세계는 없음의 세계, 비존재의 세계를 드러내주는 계시자 내지 암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노자, 도덕경 , 오강남 역, 현암사, 2001. p. 61.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수묵의 정원은 독자로 하여금 동양화를 연상시키게 한다. 동양화의 여백은 바로 그림 속에 그려진 사물들을 있게 해주는 無의 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마른 노래는 윗 글의 암호(cypher) 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러한 시인의 정신세계는 여백의 장소를 갈망한다.수묵정원 2- 마른 시냇가마른 시냇가에 서서지난 어느 시간내가 보았던 구름의 자국을 찾아본다마른 시냇가에 앉아서한때 구름이었던 데를 만져본다병상에서어머니의 정강이를 만져보듯깡마른 정강이를 만져보듯{) 장석남, 왼쪽 가슴에 온 통증 , 창작과비평사,2001년, p. 를 찾으려고 하는…….水墨 정원 3-물 긷는 사람물桶 하나 들고 가는 사람물桶 하나 머리에 이고 가는 사람물桶 지고 가는 사람물 길으며 길바닥에 흘린 물자국물 출렁이는 소리桶에 바가지 부딪는 소리젖는 쑥대궁들물桶, 물항아리에 쏟는 소리물항아리에물 차오르면어룽대는 물의 빛고개 갸웃 하면 물 속에서 우러나오는,사람의 가슴에도 그런 윤기 같은 게 있을 뿐우리가 가장 나중까지 지녀야 할가난의 寶庫물桶 하나 지고 가며흘리는 물자국물항아리에 물 차오르면거기에 살러 오는물 위의 윤기 같은 거우리가 매양마음의 양식이라고 부르는 것물항아리속 물의 빛{) 장석남, 왼쪽 가슴에 온 통증 , 창작과비평사,2001년, p. 39∼40.물을 떠서 물항아리 속에 넣을 때까지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물을 흘리는 것도 道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위의 시는 江 1 의 내용과 비슷하다. 물이 道의 최고의 경지가 되는 것이다. 도덕경 21장과 비교하여 내용을 살펴보자.孔德之容, 惟道是從. 道之爲物, 惟恍惟惚.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 - 도덕경 21장{) 노자, 도덕경 , 오강남 역, 현암사, 2001. p. 99∼100.(위대한 덕의 모습은 오로지 도를 따르는 데서 나옵니다. 도라고 하는 것은 황홀할 뿐입니다. 황홀하기 그지없지만 그 안에 형상이 있습니다. 황홀하기 그지없지만 그 안에 질료가 있습니다. 그윽하고 어둡지만 그 안에 알맹이가 있습니다. 알맹이는 지극히 참된 것으로서, 그 안에는 미쁨이 있습니다. 예부터 이제까지 그 이름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 이름으로 우리는 만물의 시원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만물의 시원이 이러함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물 속에서 우러나오는 빛은 황홀하다. 그 황홀함 속에서 우리는 가장 나중까지 지녀야 할 알맹이를 얻을 수 있다. 물항아리와 물과 같은 형상과 질료 속에서 물의 빛과 같은 왼쪽 가슴에 온 통증 , 창작과비평사,2001년, p. 41.위의 시의 내용과 도덕경 23장을 비교해 보자.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孰爲此者, 天地,天地尙不能久, 而況於人乎? - 도덕경 23장의 일부분 인용{) 노자, 도덕경 , 오강남 역, 현암사, 2001. p. 107.(말을 별로 하지 않는 것이 자연입니다. 회오리 바람도 아침 내내 불 수 없고, 소낙비도 하루 종일 내릴 수 없습니다. 누가 하는 일입니까? 하늘과 땅이 하는 일입니다. 하늘과 땅도 이처럼 이런 일을 오래 할 수 없거늘 하물며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시인은 북두칠성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언어와 연관지어 시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그래서 시인이 자연에게 다가가 말을 건낼 때에는 우물 속에다 하는 말처럼 매우 조심스럽다. 그런데 3연에서는 시인의 조심스러운 말이 행동으로 옮겨지고 있다. 따라서 우물 속에다 한 말처럼 무릎이 시려지고 걸음도 희미해지는 것이다. 도덕경 23장에서 회오리 바람이나 소낙비가 하늘과 땅의 말이라고 설명되고 있는데 이것은 위의 시에서 보는 시인의 상상력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다.水墨 정원 5- 물의 길바다에 나가는 수많은 길들 중에 내가 택한 길은 작은 냇물을 따라가는 길이었네내가 닿는 바다는 노인처럼 모로 누운 해안선의 한모퉁이였네나를 내려놓고 길은 바닷속으로 잠겨들어가버리곤 했네그러면 나는 두리번거리다가 그만 어둠이 되곤 했네어둠을 이고 서 있는 소나무가 되어버리곤 했네누군가 왜 그런 길을 택했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네발을 다치지 않으려고 그렇게 했다고 대답했지만 그것이 대답이 될 수는 없네누군가 더 묻지 않은 것 참 다행이네{) 장석남, 왼쪽 가슴에 온 통증 , 창작과비평사,2001년, p. 42.앞에서 계속 나타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의미로 위의 시에서도 시인은 물의 길을 따라 나섰다. 그것은 다름 아닌 道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왜 그런 道를 선택했느냐고 묻는다면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다. 그것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하고나면 그것은 세속이다
    인문/어학| 2004.08.01| 9페이지| 1,000원| 조회(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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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문학] 최치원의 계원필경 평가B괜찮아요
    - 고전수필론 - 국어국문학과 1997001031 조창연최치원의 『桂苑筆耕』- 수필적 요소를 나타낸 작품 고찰 -{-목차-Ⅰ 서론Ⅱ 최치원의 생애와 사상1. 생애2. 사상Ⅲ 桂苑筆耕에 대하여1. 桂苑筆耕의 구성2. 수필적 요소를 가진 글Ⅳ 결론Ⅰ. 서론우리 나라 문학사에 맨 처음 巨蹟을 남긴 孤雲선생은 너무나 유명하여 草童牧竪까지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천년의 긴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선생의 빛난 저술이 불멸의 고전으로 전해왔다.{) 崔濬玉, 국역 孤雲先生文集 桂苑筆耕集 上, 학예사, 1972, p. 15.孤雲 최치원은 구름같이 왔다가는 인생이기에 자기 스스로 孤雲이라 字를 짓고 號도 또한 海雲이라 하였다. 높은 포부를 품은 채 구름같이 오갔으되 구름이 반드시 무심한 것만이 아니라, 비를 뿌려 자취를 남김과 같이 우리 國史上 詩로 學問으로 은혜를 끼쳐 놓고 간 인물이다.{) 崔濬玉, 국역 孤雲先生文集 桂苑筆耕集 上, 학예사, 1972, p. 19.통일신라시대의 당 문물의 수입과 당과의 외교적 관계로 인해 도당 유학생이 파견되었으며, 신라 하대에 이르러서는 6두품 이하의 출신으로 사비로 유학하는 파가 생기게 되었다. 이들은 신라의 골품제적 신분 사회에서 탈피하여 당에서 그 뜻을 펴보려 함과 동시에 당의 과거에 급제해 위세를 빌어 당시의 골품제도에 대항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최치원이었다.본고에서는 최치원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桂苑筆耕의 구성을 살펴보고 아울러 수필적 요소를 나타낸 작품을 고찰하고자 한다.Ⅱ. 최치원의 생애와 사상1. 생애최치원은 신라 憲安王元年 서기 857년에 나서 어버이의 교훈아래 자라다가 12세에 당나라로 건너가 18세에 급제하여 漂水縣慰가 되었다. 漂水縣은 江蘇省에 있는 작은 고을이라 祿은 많고 일은 적으므로 한가한 시간을 힘껏 이용하여 연구와 저작에 밤낮없이 정진하여 그 동안에 지었던 글들을 모아 『中山覆 集』 다섯 권을 만들었으나 전하지 않는다.몇해 뒤 황소의 반란이 일어나자 조정에서 淮南節度使 高騈에게 諸道行營兵馬道統을 명 바다 건너와 글로써 중원천지 흔들었고 18세에 과거마 당 들어가 대번에 급제한 사나이라네.최치원은 본국사신 김인규와 집 소식을 가져왔던 아우 棲遠과 함께 많은 사람의 작별을 받고 회남을 떠나 錦衣還鄕의 길에 올랐으나 도중에서 풍랑을 만나 바다를 건너지 못해 부득이 지체하게 되어 실상은 그립던 고국에 도착한 것이29세 되던 해 3월이었다. 귀국 후, 시독겸한림학사(侍讀兼翰林學士) 수병부시랑(守兵部侍郞) 서서감지사(瑞書監知事)가 되었으나, 894년 시무책(時務策) 10 여조를 진성여왕에게 상소하고,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고 외직을 자청하여 대산(大山) 등지의 태수(太守)를 지낸 후 아찬(阿飡)이 되었다. 그 후 관직을 내놓고 난세를 비관하여 각지를 유랑하다가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에서 여생을 마쳤다. 글씨를 잘 썼으며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은 신라시대의 화랑도(花郞道)를 말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조선시대에 태인(泰仁) 무성서원(武成書院), 경주(慶州)의 서악서원(西岳書院) 등에 종향(從享)되었다. 글씨에 〈대숭복사비(大崇福寺碑)〉 〈진감국사비(眞鑑國師碑)〉 〈지증대사적조탑비(智證大師寂照塔碑)〉 〈무염국사백월보광탑비(無染國師白月光塔碑)〉 〈사산비(四山碑)〉가 있고, 저서에 《계원필경(桂苑筆耕)》 《중산복궤집(中山覆集)》 《석순응전(釋順應傳)》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 등이 있다.2. 사상최치원은 단순히 문장에만 뛰어난 것이 아니고 유교사상을 비롯한 불교, 도교에도 깊은 조예를 가졌다. 이념(理念)에 대한 이해가 막연하던 당시에 매우 특이한 일이라 하겠다. 그 스스로를 '유문말학(儒門末學)', '이부지도(尼父之徒)'라 일컬은 것을 보면 그가 유교사상을 상당히 신봉했음을 알 수 있다. 정치적인 면과 관련하여 "반드시 요순(堯舜)을 따르고 우탕(禹湯)의 정치를 펴면, 천하가 창성하고 아름다워진다(必可驅堯舜而殿禹湯 苑五岳而池四海 盛矣美矣)"라고 했으며 또 일컫기를 "어진 신하는 그 임금이 요순(堯舜)처럼 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다(賢臣以致堯舜爲先)"라고 했다(公平)과 중정(中正)을 지켜 조금도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고 했으며 예교는 인간질서의 근본이므로 반드시 백행(百行)의 근본인 효(孝)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임금에게 올린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의 내용도 이로써 짐작을 할 수 있다. 최치원은 유교 사상은 물론 불교 사상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 가운데 화엄에 대한 이해가 심원했다.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의 서(序)에서 법장화상의 행적을 10개의 과목으로 나누었는데 이는 화엄삼매관(華嚴三昧觀)에 나오는 직심(直心)의 십의(十義) 즉, 광대심(廣大心), 심심심(甚深心), 방편심(方便心), 견고심(堅固心), 무간심(無間心), 절복심(折伏心), 선교심(善巧心), 불이심(不二心), 무애심(無碍心), 원명심(圓明心)에 맞춘 것이다. 논리적인 학문을 해온 그가 불교 사상의 핵심적인 논리를 보여주는 화엄경을 깊이 이해하고 이에 대해 언급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는 화엄경이라는 교종(敎宗)에만 얽매이지 않았고 선(禪)의 실천적인 면도 중시했다. "선(禪)은 담박하여 맛이 없으나 모름지기 힘써서 마시고 먹어야 하리니, 다른 사람이 마신 술이 나를 취하게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먹은 밥은 나를 배부르게 하지 못한다."라는 낭혜화상(朗慧和尙)의 말을 빌어 선은 자득(自得), 자증(自證)하는 것이 중요함을 지적했다. 그리고 최치원은 지증대사비서(智證大師碑序)에서 남종선의 종취(宗趣)를 "수행하고 수행했으나 수행함이 없고, 증득하고 증득했으나 증득함이 없다"라고 했는데 이는 심심상인(心心相印), 불입문자(不立文字)란 선(禪)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도교에 대한 그의 깊은 식견은 "도(道)는 억지로 이름을 붙인 것이니 진실로 탁마(琢磨)의 이치를 끊은 것이다"라는 발언에 잘 나타나 있다. 진리의 본질이 언제나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천적인 면에서 지도(至道)를 알기 위해서는 성실성과 경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지도(至道)를 부지성하게 뻗어나와 생성, 변화하는 곳으로 보았다. 이러한 아름다운 방위에 살아가는 백성들은 천성이 어질어서 살리기를 좋아하고 부드럽고 유순하며, 서로 양보하고 다투지 않는다고 하여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지적하였다. 최치원은 이러한 조건이 어울려 우리나라가 군자의 나라[君子國], 어진 이가 사는 곳[仁域], 태평승지(太平勝地) 등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러한 선민(選民) 의식의 바탕이 된 우리의 고유한 사상인 풍류도(風流道)가 갖는 가치를 다음과 같이 체계적으로 설명하였다."나라에 현묘(玄妙)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風流)라고 한다. 이 교(敎)를 설치한 근원에 대해서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는데 실제로 삼교(三敎)를 다 포함한 것으로 모든 민중들과 접촉하여 이를 교화하였다. 예컨대 집에 들어오면 집안 어른께 효도하고 나가면 나라에 충성하였으니 이는 공자(孔子)의 가르침이요 일을 거리낌없이 처리하고 말없이 실천하는 것은 노자의 가르침이요 모든 악을 짓지 않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석가의 교화이다."최치원의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 나오는 이런 내용은 풍류도의 성격이 어떠한가를 잘 알려 주고 있다. 최치원은 풍류도가 삼교(三敎)의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包含三敎]고 지적하여 우리의 고유한 사상 속에는 이미 삼교의 사상적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풍류도의 내용을 예를 들어 설명한 것을 보면 우리의 고유한 풍유도는 외래적인 삼교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근원적으로 삼교와 일치되는 사상이 내재된, 독자적으로 형성된 고유한 사상임을 짐작할 수 있다. 최치원은 충효적인 요소, 무위(無爲), 불언(不言)의 요소, 위선거악(爲善去惡)의 요소가 풍류도에 모두 내포된 것이라 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고유한 사상이 갖는 선진성(先進性)과 원융성(圓融性)을 찾아 냈다고 할 수 있다. 외국에 나가서 알게 된 상호 이질적인 사상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통일된 질서와 체계를 가진 하나의 사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대개 임금에게 올린 表ㆍ狀.卷之六 ∼ 卷之十, 堂狀ㆍ別紙. 대개 여러 高官들과의 공문서 別紙.卷之十一, 檄書ㆍ書. 이중의 맨 첫 수, 「檄黃巢書」가 가장 유명한 名文.卷之十二 ∼ 卷之十四 委曲ㆍ擧牒ㆍ勅牒詞등.卷之十五, 齊詞十五首. 당대 도교 연구의 중요한 자료.卷之十六, 祭文ㆍ書ㆍ疏ㆍ記. 祭文 중의 「祭陣亡將士文」등은 전쟁문학의 참고거리요, 記中의 「補安南錄異圖記」는 越南史 연구의 귀중한 자료.卷之十七, 啓ㆍ狀. 太尉(高騈)에게드린 二啓 中에 그의 고단한 신세와 衷曲을 쓴 문자가 많고, 도 외국문으로 글을 짓는 자의 衷曲을 쓴 出色의 文字가 있다. 끝으로 高太尉에게 드린 「獻詩啓」부록으로 30수의 絶句 佳作이 들어 있는데, 他書에 전함이 없는 作들이다.卷之十八, 書ㆍ狀ㆍ啓. 그중 高太尉 생일에 선물을 받친 「獻生日物狀」인삼을 소개한 명문이 있어 人蔘史 연구의 좋은 자료.卷之十九, 狀啓ㆍ別紙ㆍ雜書등.卷之二十, 啓ㆍ狀ㆍ別紙ㆍ祭文ㆍ詩. 「謝許歸覲啓」는 고국에 돌아오게 됨을 사례한 글이요, 「祭 山神文」은 海路 交通史와 중국의 옛 민속을 考徵할만한 자료. 끝으로 「陳情上太尉」이하 七絶詩 15수, 七律詩 15首, 計30首의 詩는 모두가 걸작으로 한국 漢詩史의 좋은 補充자료들이다.책의 구성을 살펴본 이유는 수필적 요소를 가진 글을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七言絶句와 七言律詩의 시들은 부득이하게 다음에 논하고자 하는 수필적 요소를 가진 글에서 제외되었다.2. 수필적 요소를 가진 글〈謝加太尉表〉는 太尉로 올려준 것을 감사하는 내용의 글이다. 그러나 감사의 내용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마음가짐의 자세도 또한 드러나 있다.〔謹當氷爲夕飮 蘗作朝 則面撫烝黎 群寇旣蝟毛而起 偶恣 張 諸侯必馬首是瞻 共成剪滅 唯力斯視何心自安 必也臨難忘身 見危致命 仰解焦榮之念 粗伸式 之功〕삼가 저녁에는 얼음을 마시고 아침에는 황경의 껍질을 먹으면서라도 진영에서 나올 적에는 백성들을 선무(宣撫)하고 군기를 세울 적에는 사병들의 앞장을 설지라, 지금 여러 도둑이 고슴도치의 털처럼 일어나 제멋대로 속임
    인문/어학| 2004.08.01| 6페이지| 1,000원| 조회(1,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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