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폴록추상표현주의는 자연의 재현이 아닌 작가의 내면 세계를 중시하는 추상형태나 무의식의 상태에서 발생한 우연한 결과를 존중하는 20세기의 현대 미술의 변화된 요소들을 바탕으로 예술활동의 중심 무대인 유럽을 떠나 미국을 중심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작가 자신의 직관적인 표현의 행위를 예술로서 나타내게 함을 원칙으로 하는 추상표현주의는 회화에 있어서 무의식성을 강조한 초현실주의의 오토마티즘(Automatism)에서 강한 암시를 받았으며 전쟁 전에 현대 미술사에 등장한 다양한 경향을 종합시켜 유럽에 종속적으로 이끌려 오던 미국의 현대 미술을 독자적으로 분리시킨다. 나아가 추상표현주의는 현대미술을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전환점이 된다. 어떤 의도성 있는 계획적인 표현의 궁극적 목표가 없이 오직 내적인 직관의 표현으로 화면에는 예기치 않았던 우연한 이미지가 개입된다. 이 추상표현주의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잭슨폴록인 것이다. 폴록은 액션 패인팅이라는 새로운 장을 개척해나간다.순간의 행위를 통하여 나타난 우연성의 효과를 새로운 미의식으로 발전시킨 액션페인팅화가들은 드리핑(Dripping), 타시즘(Tachisme), 컬리그래피(Calligraphy)와 같은 개성적인 표현으로 자신들의 회화세계를 구축해 나갔으며 액션 페인팅에 의해 표현된 추상표현주의 화면은 자유롭고 율동적인 선으로 인해 비정형적이고 우연적인 형태를 나타냈다. 폴록과 드 쿠닝, 프란시스와 같은 액션 페인팅 화가들은 행위를 통한 순간적 우연의 효과를 추구하였으므로 그들의 즉흥적이고 속도감있는 특성의 표현은 단순한 색채보다는 다채로운 색채를사용함으로써 더욱 효과적으로 발휘된다. 따라서 화면에는 어두운 색채의 사용과 강렬한 원색, 명도가 높은 파스텔 계열의 다양한 색채들이 혼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올오버(All-Over)의 구성과 명암, 대조의 제거로 인한 색의 균질성은 색의 위계를 무너뜨림으로써 궁극적으로 2차원의 평면성을 창출한다.폴록의 꿈틀거리는 선의 표현과 로드코의 풍경같은 선명한 색면은 시각적으로 거의 유사함이 없으나 이들은 모두 심리적인 자아표현을 중시하였고, 2차원의 평면성을 가진 거대한 화면을 통해 작은 이젤화의 개념을 넘어서 존재의 영역을 확장하였다는 데에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앤디워홀미국의 화가. 필라델피아 출생. 피츠버그의 카네기공과대학을 졸업하고, 1952년경부터 뉴욕에서 상업디자이너로 활약하다가 화가가 되었다. 62년 시드니 재니스화랑에서 열린 ‘뉴리얼리스트전’에 출품하여 주목을 끌기 시작하고 그 후 만화의 한 컷, 신문보도 사진의 한 장면, 영화배우의 브로마이드 등 매스미디어의 매체를 실크스크린으로 캔버스에 전사 확대하는 수법으로 현대의 대량소비문화를 찬미하는 동시에 비판하여 이름을 떨쳤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은 60년대부터 대중적인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을 통하여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팝아티스트로 활동하였다. 팝아트(Pop Art)는 현대의 개계문명 속에 내재된 현실적 대상이 표현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예술 경향이다. 그는 작품 제작과정에서 생기는 실수나 우연에 개의치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워홀은 이 방식을 아예 완전한 공장시스템으로 양산해내기 시작했다. 마릴린 먼로와 코카콜라와 통조림 깡통이 그의 공장에서 연거푸 쏟아져 나왔다. 그의 조수들은 워홀이 지시한 대로 밤을 새워 작품을 생산해냈고 심지어 그의 어머니마저도 워홀이 가르쳐준 대로 사인을 연습해 아들 대신 사인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잘못 인쇄된 우표가 고가에 팔리듯 그의 작품 역시 엉뚱한 실수와 조작에 따른 것이 훨씬 파격적인 관심 속에 매매됐다.유명한 (1962) 역시 이 과정에서 생산됐다. 1962년 마릴린 먼로가 사망하자 워홀은 1952년에 진 콘맨이 찍은 영화 의 광고용 사진을 검은 바탕과 황금색 잉크 위에 다중노출시켜 을씨년스런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워홀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우연적인 효과들, 이를테면 농도의 차이, 선명도, 기계상의 실수 따위를 그대로 작품의 일부로 승인했다. 많은 작가들이 작품을 할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무성의 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게 워홀의 작품인 것이다. 워홀만이 생각할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바고 현대산업 사회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사회인 것이다. 그렇기에 대중은 개성을 중요시 여겨 각자 자기대식대로의 생활을 즐긴다. 하지만 그것은 따지고 보면 옆에서 아니 전세계 어떤 곳에서 누가 날 따라 하거나 어떤 그 누구도 그런 생각과 그런 생활을 하기에 어쩌면 그것이 개성적이라고 만은 볼 수 없을 것 같다.황창배황창배의 작품은 소극적으로 보면 동양화가 갖는 고정관념에 "때 뭍히기"로부터 시작한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는 파격적으로 동양화의 회화적 규범을 개혁시키기 위해 전심전력(全心全力)하는 작가이다. 산수(山水), 인물(人物), 그리고 화조(花鳥)와 같은 소재의 등장을 찾아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비현실적인 관념세계의 철벽을 찾기란 더욱 힘들다.그의 그림 그리기는 퍽 이색적이다. 색의 덧칠, 드리핑, 혼합재료구사, 대상해체, 심지어 붓 외에도 손, 나이프 등 여러 도구를 휘두르면서 "내키는대로" 작품을 제작한다. 물론 이러한 "전통파괴"는 과거에 대한 단순한 저항심리나 부정심리의 탓만은 아니다. "백법(百法)이 무법(無法)"이란 말이 있듯이 예술에 있어 원리 원칙이란 있을 수 없으며 설사 있다 해도 그것은 예술가의 창조적 독창성과 개성으로 새롭게 다듬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즉 전통을 배우는 것(화론, 화법)은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 해내려는 것이지 그것을 숭배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역설적으로 화론학습은 작가에게 "새로운 것의 발견"을 가능케 했다. 이런 측면은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 잘 확인되고 있다.『제가 어렸을 때 한문공부를 했는데 영자팔법 (永字八法)과 한 일(一)자 하나만 보더라도 왕희지, 안진경 등의 글자가 얼마나 다양한 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점을 생각하면 고정원리란 없다고 까지 생각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토록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표현행위를 전형화시키고 규격화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것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