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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등교육의 대안으로써의 발도르프 교육
    [목 차]1. 머리말22. 슈타이너의 교육사상31) 인지학적 인간관32) 아동 발달관33) 기질론34) 음악 교육관43. 발도르프 학교의 음악 교육의 특징51)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음악 교육52) 악기 교육53) 교과서나 악보 없이 교사를 모방하는 노래 활동54) 오이리트미(Eurythmie) 활동53. 맺음말6[참고 자료]71. 머리말우리나라의 초등교육은 전인적인 성장의 기반 위에 개성 있는 인간상을 추구한다. 학교는 개인의 전인적 인격완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교과를 가르치는데 음악 교과는 음악이 그러한 궁극적인 교육목적을 성취하는 데에 가장 긴요한 분야들 중의 하나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설정된 교과이다. 1960년대 이래 음악교육은 다양한 관점에서 그 당위성과 지향점이 설정되어 왔다. 즉 음악교과가 노래만을 가르치려는 교과가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노래 부르기를 포함한 다양한 활동과 여러 가지 악곡들로 음악 예술을 심미적으로 체험하게 하며, 그러한 체험을 통하여 음악적인 능력을 습득하고, 음악적인 심성을 계발하게 함으로써 충실한 음악적 성장, 즉 음악예술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대를 이루도록 도와주는 교과이기를 기대하는 것이다.그러나 종래의 학교 음악교육이 학생들로 하여금 음악을 향유할 수 있고, 음악 예술에 대한 인식의 확대를 이루며, 음악 교과가 그들이 전인적 인격 완성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운 상태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린이의 전인성을 강조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어린이의 전인은 관점 밖으로 밀려나 있고 학습의 과정보다는 결과에 관심을 갖고, 학생의 내면적인 동기보다는 이미 짜여 진 교과 과정에 맞추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또한, 12년간의 학교 음악 교육을 받았지만 자신 있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한 가지도 없기도 하고, 음악의 느낌을 자기의 방식으로 나타내지도 못하며, 음악을 들어도 그 악곡에 투영되어 있는 아름다움과 의미를 통찰하지 못한다. 즉, 음악의 가치를 내면화 하지 못하는 현실이다.이러한 문제인식에서 발도르프 학교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는 몸, 영혼, 정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꾀하는 전인 교육을 추구하며, 모든 교육의 원천으로서 예술교육을 중시한다. 발도르프 교육은 음악에 흠뻑 적어 있더라도 음악가가 목표는 아니고, 그림만 그린다고 해서 화가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며 오직 ‘자아를 발전시키는 것’에 그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고 말한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 속에서, 세계적인 대안적·개혁적 모델로 알려지고 있는 독일의 발도르프 학교 교육은 이미 그 실천의 노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상세하고 체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교육 운영 체계와 교육 과정, 독창적인 수업 방식 등이 주목받고 있다.이번 보고서는 미래의 초등 교사로서 공교육 밖에서 행해지고 있는 대안 교육을 살펴보고, 앞으로 공교육에의 적용점을 찾아가는 탐구과정의 초석이 될 것이다.2. 슈타이너의 교육사상1) 인지학적 인간관발도르프 교육이념의 근간이 되는 슈타이너의 교육사상은 무엇보다도 인간학, 즉 인간에 대한 바른 인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는 인간에 대한 바른 인식을 위해서는 인간의 표면 아래 숨겨져 있는 본질을 자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인지학’을 제시하였다. 인지학이란 학문·이론의 체계라기보다는 정신과 영혼의 삶 그 자체를 의미하며, 곧 ‘인간 본질에 대한 바른 인식’에 기초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슈타이너는 인간의 본질이 신체, 영혼, 정신의 통합체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인간은 육체를 통해 세계를 감각적으로 인식하고 물리적 삶을 영위한다. 정신은 사고와 감정이 속해 있는 곳이며, 인간의 마음을 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이라고 말한다. 영혼은 정신과 신체를 연결하는 감수성을 지닌 존재로서 영혼의 활동을 통하여 자기만의 내면세계를 형성해 간다고 하였다. 슈타이너는 신체, 영혼, 정신 이 세 가지 측면을 통합적으로 고찰할 때만 비로소 인간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고 보았고, 학교교육은 인간에 대한 인지학적 터 14세(아동기), 14세에서 21세까지(청년기)의 3단계로 구분하였다. 각 시기별로 중점적으로 발달시켜야 할 요소로는 유아기에는 ‘의지(Wille)’, 아동기에는 ‘감정(Gefohl)', 청년기에는 ’사고(Denken)‘이다. 이와 같이 각 발달 단계마다 중점적인 과제를 선정한 것은 밖으로부터의 작용에 의한 바람직한 효과는 특정기간에 최고로 나타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유아기(0~7세)에는 말이나 개념이 아니라 오감의 반응으로 성장하게 되므로 모방과 모범을 보이는 일이 학습의 기본원리가 된다. 이 시기에는 신체적인 형성이 중요한 과제이므로 유아에게 규칙과 리듬을 고려한 환경을 제공하여 내적인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 또한 감각에 의한 실제 생활의 체험과 함께 교사의 모범에 의한 모방으로 올바른 습관을 형성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아동기(7~14세)에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고, 위대한 것이나 다가가기 어려운 것에 대한 존경과 경의, 동경의 감정을 깊이 느끼는 것을 중요시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모든 종류의 예술 교육을 장려하는데 이는 예술 교과에 한정하여 가르치는 것을 뜻함이 아니다. 그것은 수업 전체를 예술 활동으로 구성하는 것을 말하며 학교 공부의 본질은 모두 감정을 통한 것이어야 한다고 한다.14세 이후에는 사고력이 왕성하게 발달하는 시기로서, 보다 논리적이고 학문적인 내용을 학습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학교 수업은 심층적 학문 학습 태도의 기반을 닦는데 기여한다고 본다.3) 기질론슈타이너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기질론을 제시하였다. ‘기질 그 자체는 좋고 나쁨이 없다’는 근본적인 전제하에 실질적인 교육 안에서 아동의 기질을 중요한 기반으로 삼고 있다.다혈질의 인간(Sanguiniker)은 명랑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따뜻하고 낙천적인 성격인 반면, 침착성과 지속성이 없다. 점액질의 인간(Phlegmatiker)은 언제나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여유롭다. 하지만, 동작이 느리고 게을러지기 쉬우며 타인의 감정에 크게 공감하지 성격으로 걱정과 고민으로 많은 시간을 소모하여 즐거움이나 여유를 잃는 단점이 있다. 담즙질의 인간(Choleriker)은 강하고 실질적이며 확고한 의지를 지녔다. 지구력과 지도력 또한 갖추고 있지만, 상냥함과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하며 불평과 변명이 많다.이상에서 살펴본 기질론은 아동들을 이해하는데 교사가 알아 두어야 할 필수 조건으로서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음악교육에서 악기를 선택할 때에도 실질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데 기질을 고려하여 악기를 선택하고 연습하면 기질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어서 보다 효과적인 음악 연주가 된다. 담즙질의 아이에게는 타악기가 좋다. 실컷 두들겨 주면 되기 때문이다. 다혈질의 아이에게는 리코더나 오보에 같은 악기를 입에 대고 하늘을 향해 불게 한다. 같은 다혈질이라도 여자 아이의 경우는 다소 내면적인 요소를 포함하므로 현악기나 피아노가 좋다. 우울질의 아이에게는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권한다. 현에 몰두해 가다보면 자신이 추구하던 진짜 음을 찾고 그 기질은 외부를 향해 열리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점액질의 아이에게는 비교적 음이 쉽게 나오는 피아노 같은 건반악기를 접하게 하여 실력이 서서히 향상됨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내력이 생기도록 한다.4) 음악 교육관발도르프 교육에 있어 음악교육은, 인간 영혼의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음악은 미적 가치의 측면에서 장려되고, 아이들은 음악을 수단이 아닌 목적 자체로 즐기게 된다.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숙해진 아이들은 음악을 좋아하는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발도르프 학교의 음악교육은 ‘음악을 위한 교육’이라기보다는 ‘음악을 통한 인간형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3. 발도르프 학교의 음악 교육의 특징1)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음악 교육발도르프 학교의 음악교육은 인간이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에 따라 저학년 아동들이 부르는 노래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자연의 속성을 느끼고 체험함으로써 인간에게 내재된 영혼의 아름다움 1학년부터 악기 연주를 시작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악기는 펜타토닉(Pentatonic) 리코더나 라이어(Leier)이다. 아동들은 자신의 감정을 리코더나 라이어로 표현하는데 아주 정확하게 연주하지 않아도 소리의 어울림이 좋은 악기의 구조 때문에 아이들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 대체로 2학년 때부터는 개인 악기를 선택하는데, 이때 음악 담당 교사가 아니라 아이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담임교사가 아이에게 잘 맞는 악기를 선택하도록 도와준다.3) 교과서나 악보 없이 교사를 모방하는 노래 활동저학년 연령의 아이들은 모방을 통한 학습을 하는 발달단계에 있다는 슈타이너의 이론에 근거한 발도르프 학교의 음악수업은 교사를 따라 모방하여 노래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교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와 관련된 교사의 노래 소리를 그대로 모방하여 부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교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와 관련된 교사의 노래 소리를 그대로 모방하여 부르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의 정서를 즉흥적으로 표현하여 노래하는 것까지 진행하게 된다. 이 때 악보의 상징적인 기호는 저학년의 어린이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으므로 사용하지 않는다. 어린 학생들일수록 악기나 악보 등의 중간적 매개체를 통하지 않고 수업을 진행한다.1, 2학년의 아이들에게는 잘 구성되어 있는 우화나 전래동화를 들려준다. 교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상상의 그림을 가지도록 유도하고 흥미를 끌게 된다. 그것을 교사가 노래로 표현하면 아이들이 그 노래를 따라한다. 2학년 말 부터는 그림으로 악보를 도입하고 그 이후에는 차츰 차츰 상징화하는 악보를 단계적으로 도입한다.4) 오이리트미(Eurythmie) 활동오이리트미는 ‘가장 완전한 악기’인 인간의 신체를 표현 수단으로 사용한다. 소우주(小宇宙)라 할 수 있는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자연의 원리와 영혼의 움직임, 보이지 않는 소리의 세계를 표출해 냄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폭넓게 인식할 수 있다. 오이리트미 수업
    교육학| 2014.06.25| 7페이지| 1,000원| 조회(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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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등 3,4,5학년 교과서에 실린 낭만주의 음악 분석
    02생상스거북이04오펜바흐캉캉06림스키코르사코프왕벌의 비행07엘가위풍당당 행진곡09차이코프스키별사탕 요정의 춤, 꽃의 왈츠12비제종14무소르크스키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슈뮈일레16드보르작유모레스크18멘델스존교향곡 4번 이탈리아 교향곡 1악장20그리그산왕의 궁전에서22쇼팽나비24스메타나몰다우 강26드뷔시바다ABOUTⅠ. 생상스 『거북이』 - ‘동물의 사육제’ 중에서1. 단원:10. 느낌이 달라요2. 곡의 특징: 중 4번째 곡인 ‘거북이’의 주제 가락은 조용하고 느릿느릿 걷고 있는 거북이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3. 활동 목표:악곡의 특징을 몸 움직임으로 표현할 수 있다. 빠르기를 구별하며 감상할 수 있다. 빠르기의 변화에 따른 악곡의 느낌을 말할 수 있다.4. 주요 활동:① 빠르기를 비교하면서 감상하기② 빠르기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 이야기하기③ 빠르기의 변화를 즉흥적으로 표현하기5. 교육과정요 소:음악을 몸 움직임으로 표현하기, 악곡의 느낌 말하기, 악곡의 빠르고 느림, 악곡의 특징(춤곡)6. 작곡가:카뮤 생상스 (1835~ 1921)Camille Saint-Sans, 프랑스생상스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19~20세기에 활약한 프랑스의 작곡가로, 프랑스의 음악 진흥에 힘썼다. 7세 때부터 피아노를 연습하였고 12세에 연주회를 가졌다. 13세에 파리 음악원에 들어갔고, 18세에 제1 교향악을 썼다. 28세에 마들레느(Madelaine) 교회의 오르간 연주가, 36세에 국민 음악 협회를 설립, 46세에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그의 음악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교향 작품으로 기악을 중요시하였으며, 그는 형식· 편성· 대위법에 있어서 우수하였다.그는 작곡가로서는 물론 피아니스트, 지휘자, 평론가, 시인, 화가, 나아가서는 문학 방면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국내외에 이름을 떨쳤다. 그는 후기 낭만파에 속한 작곡가였지만, 그의 음악의 본질은 고전적인 우아한 균형과 세련미에 있다. 우아한 선율에 라틴적인 명랑함과 낭만적인 색채의 풍부함이 더해진 것이 생상스 음 2박의 느낌이 드는 곳에서는 다리를 팡팡 차올리는 캉캉 춤을 상상하게 되고, 후반의 4박 진행 부분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도는 익살스러움이 느껴진다.10. 캉캉 춤 (Cancan)샤위(chahut)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다리를 높이 차올리는 것이 특징인 서민적인 춤이었으나 1845년경부터 카지노나 뮤직홀의 쇼로 등장하여 물랭루주를 근거로 파리의 명물이 되었다. 1928년 파리의 발 타바랭이 재개되어 춤에 새로운 바람이 일고부터는 프렌치 캉캉이란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주름을 많이 잡은 치마깃을 들어올리고 검은색 긴 양말을 신은 다리를 높이 차올리며 추는 빠른 템포의 춤으로 하이 킥 외에 한쪽 무릎을 들고 다리를 빙글빙글 돌리는 율동, 한쪽 다리를 수직으로 올리고 한 손으로 그 복사뼈를 잡고 나머지 한쪽 다리로 선회하는 동작, 대차륜(大車輪), 높이 뛰어올랐다가 두 다리를 직선으로 벌리고 착지하는 등 5가지 기예가 특기이다. 음악에서는 오펜바흐의 곡, 회화에서는 로트렉의 작품, 영화 ,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Ⅲ. 림스키코르사코프 『왕벌의 비행』 - ‘술탄황제의 이야기’ 중에서1. 단원:12. 방울새2. 곡의 특징:‘왕벌의 비행’은 바다를 건너 날아온 벌들이 백조의 주위를 날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한 음악이다.3. 활동 목표:벌의 특징이 음악으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4. 주요 활동:① 음악을 들으며 빠르기에 맞추어 몸 움직임으로 표현하기② 벌의 특징이 음악으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이야기하기5. 교육과정요 소:음악을 몸 움직임으로 표현하기, 음악의 느낌을 말하기, 올라가는 가락,내려가는 가락6. 작곡가: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1844~ 1908)Nikolay Andreyevich Rimsky-Korsakov,러시아일찍부터 음악에 재능을 나타내고 있었으나, 1856년(12세)에는 해군 사관학교에 들어가 사관생도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음악의 연구는 그대로 계속되었으며, 특히 글린카(러시아)의 오페라에 자극을 받은 뒤로는2. 곡의 특징:‘별사탕 요정의 춤’과 ‘꽃의 왈츠’는 에 나오는 음악 중 분위기가 가장 대조적인 2곡이다.3. 활동 목표:음악을 듣고 음악의 빠르기, 박자, 분위기를 비교하여 말할 수 있다.4. 주요 활동:① 음악을 듣고, 그 특징 이야기하기② 음악에 따라 춤이 바뀌는 것을 알고 이야기하기③ 가락선 그리며 감상하기④ 음악의 분위기 비교하고 느낌 말하기⑤ 춤곡의 특징에 알맞은 신체 표현하기5. 교육과정요 소:음악을 몸 움직임으로 표현하기, 악곡의 느낌 말하기, 바른 태도로 감상하기, 박, 악곡의 빠르고 느림, 악곡의 특징(춤곡), 음악을 즐기는 태도 갖기6. 작곡가: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1840~ 1893)Pyotr Il'yich Tchaikovsky, 러시아러시아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음악적인 재능이 있었으나 아버지의 권유로 법률 학교에 입학했다가 20세가 넘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하였다. 깊은 애수와 어두운 면이 감돌며, 러시아적인 정취가 풍기는 그의 음악은 18세기부터 19세기 초엽에 걸쳐 성립된 러시아 고전주의 음악의 완성으로 볼 수 있다.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그의 작품의 역사적 의의를 찾아보면 약 40년간에 걸친 창작활동 중에는 시민세대의 음악의 기점과 종말이 있었고, 19세기 후반의 러시아악파의 중요한 일익을 맡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또한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그의 작품에는 표제음악적인 색채가 짙다. 무대음악은 별도로 하더라도, 교향작품의 거의 대부분이 표제적인 의도를 포함하고 있어 사상성이 매우 강하다. 특히 교향시 은 문학적 사고가 깊은 작품으로 유명하다.그의 창작활동은 모스크바음악원 교수를 그만 둔 시기를 중심으로 2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는 교직과 비평에 종사하였던 시기로 작품의 경향도 낭만적인 향취와 피아노협주곡 제1번과 바이올린협주곡 등에서 볼 수 있는 현란한 색채감을 지니고 있다.후기는 제4번 이후의 3곡의 교향곡, 그리고 오페라 을 포함하여, 모두가 충실한 창조력과 기법의 완결을 지니다. 이 두 시기 L'arlesienne)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 ‘아를’이라는 마을의 ‘장’이라는 청년은 최고의 미녀에게 첫눈에 반하여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와 그 여인에게는 이미 결혼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잊으려고 노력한다. 마을의 축제날에 ‘장’은 여인을 다 잊은 듯한 모습으로 마을 사람들과 축제를 즐겼다. 부모님도 ‘장’의 모습을 보며 안심하였다. 축제가 끝난 밤, ‘장’은 여인을 그리워하며 고통스러워한다. 다음 날 새벽 어머니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장’에게 간다. 그러나 ‘장’은 이미 죽어 있었다.9. 곡 설명: 제1 모음곡 중 제4곡 ‘종’,· 알레그로 모데라토, E장조{3} over {4}박자, A-B-A 형식· 플루트, 오보에, 바이올린 등의 현악기3막 1장의 막이 오르면 축제의 분위가가 무르익고, 축하의 꽃다발이 즐비한 시골집 뜰에 하인들이 분주하게 드나든다. 멀리서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실려 종소리를 모방하는 세 개의 음이 오스티나토로 나오면서(전주) 주제 가락(A)이 즐겁게 춤을 추며 누비듯이 연주된다. 즐겁게 춤을 추는 듯한 A부분 다음에{6} over {8}박자의 느리고 아름다운 선율을 전개하는 B부분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끝나면서 종소리의 오스티나토가 박자를 늘여 천천히 나오다가 다시 A로 돌아간다. 관악기로 연주되는 종소리 오스티나토가 연주되면서 오보에게 주제 가락을 연주한 후, 바이올린, 플루트, 현악기로 이어지면서 주제 가락을 연주한다.10. 제재곡 선정 이유16.이슬 단원은 같고-다르고-같은 가락이 잘 나타나는 창작동요이다. 같고-다르고-같은 가락을 신체 표현하고, 셈여림의 변화와 붙임줄, 이음줄을 표현하여 노래 부르는 데 중점을 두어 지도한다. 마찬가지로 감상곡 제1 모음곡 중에서 ‘종’은 ABA 형식의 관현악곡으로, 오스티나토와 ABA 형식(같고- 다르고- 같은 가락)을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어 감상하도록 한다.Ⅱ.무소르크스키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슈뮈일레』-전람회의 그림 중1. 단원:19. 산마루 들어오는 것을 보는 것인데 자연히 기차의 소리를 듣게 됐고, 기차의 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이 곡을 작곡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는 아주 가정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원래는 피아노 독주곡으로 작곡되었으나 근래에는 바이올린 독주곡으로도 편곡되어 많이 연주되고 있다. 아름다운 가요풍의 멜로디에 애수를 띤 가벼운 무도조의 곡이다. 우리 교과서에서는 플루트 독주곡을 수업 자료로 활용하도록 되어있다.7. 곡 설명: 유모레스크(Humoresque)· 우아하게,{2} over {4}박자, 겹세도막 형식· 현악기, 관악기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는 모두 9곡인데 한 곡은 1884년경의 것으로 작품 번호가 붙어 있지 않다. 다른 8곡은 미국 생활에 염증을 느껴 고향 보히미아로 돌아와 고향 집에 대 한 행복감에 젖어 미국에서 적어 두었던 동기를 써서 작곡된 것이 피아노를 위한 8곡인 것이다. 곡은 밝고 친밀감을 주며 행복감이 감도는 듯 한 기품 있는 곡들이다. 이 가운데 제 7번 Gb장조가 가장 뛰어나고 있으며 널리 애호되고 있기 때문에 라고 하면 이 곡을 가리키게 되었다.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겸비한 가요풍의 선율과 톡톡 튀는 무곡에 어딘가 슬픔을 느끼게 하는 곡이다.8. 제재곡 선정 이유이 제재에서는 관악기와 타악기를 중심으로 한 악기의 종류와 음색, 연주 형태, 연주 방법을 탐색해 보는 활동에 중점을 둔다. 관련 음악을 감상하면서 연주 형태에 따른 악기의 구성, 음악의 조화와 느낌, 연주 방법에 따른 음색의 변화 등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비교해 보도록 지도한다. 또한 국악과 서양음악의 연주 형태의 특징과 서로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알아본다.Ⅳ. 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 교향곡 1악장』1. 단원:24, 사이좋은 악기 형제2. 활동 목표:음악을 듣고 악기 음색을 구별할 수 있다.음악을 듣고 연주 방법의 특징을 알 수 있다.3. 주요 활동:① 음악을 듣고 악기 음색 구별하기② 연주 방법에 따른 특징 알기4. 교육과정요 소:악곡의 전체적인 특징 파악하며 감상하기, 바른 태도로 감의 구성
    예체능| 2012.10.24| 27페이지| 2,000원| 조회(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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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의 국자감과 사학십이도
    고려 연표주요 사건중국사1태조918~943918936고려 건국후삼국 통일고려전기2혜종943~9453정종945~9494광종949~975958과거제도 시행960송 건국5경종975~9816성종981~997986993국자감 설립*거란 침입7목종997~10091004거란 침입8현종1009~103110111019거란 침입귀주대첩9덕종1031~10341033거란 침입10정종1034~104611문종1046~10831055최충, 문헌공도 설립12순종108313선종1083~109414현종1094~109515숙종1095~110516예종1105~112211071109윤관, 여진 정벌칠재 설치1115금(여진) 건국17인종1122~114611261135이자겸의 난묘청, 서경 천도운동1127북송 멸망,남송시작18의종1146~11701170무신정변19명종1170~11971196최충헌, 집권고려후기20신종1197~12041198만적의 봉기21희종1204~12111206징기스칸,몽골 통일22강종1211~121323고종1213~12591231몽골 침입1232강화 천도24원종1259~12741270개경 환도1271원 제국 성립25충렬왕1274~13081275국자감? 국학1279남송 멸망1285일연 삼국유사 편찬26충선왕129812981308국학? 성균감성균감? 성균관1308~131327충숙왕1313~13301332~133928충혜왕1330~13321339~134429충목왕1344~134830충정왕1348~135131공민왕1351~13741368원 멸망,명 건국32우왕1374~138833창왕1388~13891389박위, 쓰시마섬 토벌34공양왕1389~13921392고려 멸망, 조선 건국[요약]Ⅰ.국자감(國子監)1. 성립과정1) 설립성종 때 개경에 설치된 국립 종합대학이다.2) 설립과정종래의 국학을 개편· 발전시킨 걸로 알려져 있지만 실질적인 교육기관 없이 문한기관(文翰機關), 견당 유학생의 귀국, 문신·학자들의 사숙교육을 통해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조금씩 양성해오다가 성종 때 이르러 유경습업가 멸망할 때까지 그 기본의 명맥을 이어나감3. 고려시대 후기의 국자감1) 국학의 침체 및 재건 노력① 의종 24년(1170) 무신정변과 몽고의 침략을 겪으면서 국학은 다시 침체② 몽고와의 강화 이후 충렬왕이 다시 교육의 재건을 시작함:유경·사서에 능한 사람들을 선발, 교관을 겸직하게 하여 교육을 장려, 효과는 미비④ 안향이 파탄난 국자감의 재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충렬왕 30년(1304)에 섬학전(贍學錢)을 마련함2) 공민왕의 국학 진흥① 공민왕 16년 전소된 성균관 재건 및 사서오경제 설치, 당대 일류의 소장학자들을 선발 하여 학관을 겸하게 함② 공민왕 17년 과거가 삼층법으로 변경. 1차는 향시(鄕試), 2차는 회시(會試), 3차는 전 시(殿試)③ 공민왕 11년(1362)에 개칭된 성균관에는 국학생은 물론 십이도, 동서학당의 생도까지 모여들게 되는 성황을 이룸3) 공민왕 이후의 국자감① 우왕의 즉위에 잇따른 친원 보수주의 세력의 대두로 다시 과거가 대책(對策, 책을마주 대하고 정답을 궁리하는 시험방식)에서 시·부(詩賦)로 바뀌고 삼층법을 폐지② 경학적 분위기가 사장 쪽으로 변경되면서 다시 성균관 교육 침체Ⅱ. 사학십이도(十二徒)1) 최충이 세운 문헌공도를 비롯한 12개의 고등 사립교육기관2) 교육목적 : 인격완성과 과거준비3) 교육내용 : 9경과 3사, 시문(국자감의 내용과 유사)4) 12도의 발전 이유① 당시 거란의 침공으로 관학이 부진하였고, 향학이 발전하지 않았음② 과거에 유리한 교육을 함 : 설립자 대부분이 과거 출신이며, 권위 있는 학자③ 조직적 운영 : 사제 간의 결속을 통해 학벌이 형성되고, 선?후배간의 결속 형성5) 교육적 의의① 최초의 사설 고등교육기관(대학수준)② 부진한 관학을 대신하여 유학교육에 공헌③ 학생들은 자기 출신의 도(徒)를 지켜나감(학벌형성의 원인이 되기도 함)Ⅰ. 국자감(國子監)1.성립과정고려 건국 초기에 국학이라는 교육기관이 설치·존속되어 오다가 성종대에 국자감으로 개편·발전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러한 것을 뒷받침해주는 207명을 귀향시키고 53명을 개경에 머물며 공부하게 하였다는 기사는 국자감 창설에 관한 중요한 단서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기사로 미루어 보아 260명의 지방 학생들이 수도로 상경하여 학업을 시작한 시점을 국자감의 창설의 시점으로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2.침체기 그리고 부흥기창설시기 이후의 3년 후부터 국자감 교육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종 8년(989) 3월의 과거에서 진사·명경과의 급제자 수가 19명으로 전과 비교해서 약 2~6배나 증가했고 다음 왕인 목종(997~1009)대에는 평균 급제자 수가 25.6명으로 더욱 늘어나게 된다. 물론 이 급제자들의 출신이 모두 국자감의 학생들은 아니었으나 나라의 인력의 수요 증가와 지방 학생들의 출세욕이 맞물린 관계 속에서 국가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국자감의 창설 덕분이라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국자감의 성세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일단 국자감은 지방 향리와 백성들을 중심으로 하는 기관이었고 급제를 꼭 문신이 거쳐야 할 영광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 풍토 속에서 과거를 통하지 않은 채 문음(門蔭)같은 제도를 이용한 관직 진출의 길이 보장되는 중앙 귀족들에게 국자감은 필요치 않은 존재였다. 결국 목종 이후 현종과 덕종을 거치면서 급제자 수는 급락하기 시작했고 고려사절요 계묘 17년(1063)의 기록에 따르면 ‘요사이 학업을 폐하는 자가 많은 것은 학관에게 책임이 있으며 연말에 잘못을 가려 퇴직과 유임을 결정하고 우둔하고 성취가 없는 학생은 모두 내치도록 하라’는 기록이 있을 만큼 학교의 기능이 많이 약화되어 갔다.여러 명의 왕들을 거쳐 가면서 국자감은 민폐기관으로만 비쳐졌고 15대 숙종 대에 이르면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숙종의 뒤를 이어 재위한 예종은 학문을 좋아하는 왕으로 국자감의 개혁을 시도했다. 예종 3년(1108)에 윤관(尹瓘)이 그 이전부터 나라의 우환거리였던 여진(女眞)을 몰아내고, 9성을 쌓으면서 나라가 안정을 되찾았다 . 그 던 국제 긴장 관계에 대처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비록 후일 북방 금나라에 대한 사대적 외교정책으로 인한 무인관료의 필요성 소모로 인종 11년(1133)강예재는 폐지되고 말지만 고려 전기의 문신 귀족 체제하에서 최고학부 안에 무학이 설치되고 무과가 시행된 것은 특기할 만한 사항 이였다. 셋째로는 이 칠재는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국자감의 기본의 명맥을 이어나갔다는 점이다. 인종 때 강예재는 폐지되지만 칠재 혹은 육관이라는 이름으로 중앙 고등교육기관의 위용은 그대로 유지하였다.3.고려시대 후기의 국자감의종 24년(1170)에 일어난 무신들의 정변은 그 전에 볼 수 없었던 커다란 정치적 변혁 이였다. 문관을 우대하는 정책을 이어오던 나라 안에서 수많은 문신들이 피살 되었고 무인들의 정권장악은 당연히 국자감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또 이 사건에 이어 몽고의 침략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나면서 국자감의 관학 교육은 일대의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몽고의 침략을 피해 국가의 수도를 강화도로 천도를 함으로서 수도와 지방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수많은 시설이 파괴되어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리가 만무 했다.몽고와의 강화(講和) 이후 충렬왕 대에 이르러 교육의 재건이 시작되었다. 수십 년 동안 침체되었던 교육의 재건을 위해 유경(儒經)이나 사서(史書)에 능한 사람들을 선발하여 국학의 교관을 겸직시켜 교육을 장려 했지만 그 효과는 미비했다. 이러한 상태에서 국학의 진흥에 주도적 영향을 끼친 인물이 나타나는데 바로 안향(安珦)이다. 원에 가게 되면서 주자서를 처음 접하고 성리학이란 학문을 처음으로 국내에 도입한 인물인 안향은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는 지위에 앉게 되자 본격적인 국학의 재건을 추진하였다. 먼저 섬학전을 설치하였는데 섬학전(贍學錢)이란 고려 중엽 이후 토지겸병으로 인한 토지제도의 문란과 몽고와의 전쟁으로 토지수입이 극도로 감소하자 충렬왕 30년(1304)에 양현고의 재정을 확보하고 국자감의 부흥을 꾀하기 위해 문무백관으로부터 은(銀)과 포(布)를 양현고에 려 하는 조치였다.결과적으로 공민왕 11년(1362)에 개칭된 성균관에는 국학생은 물론 십이도, 동서학당의 생도까지 모여들게 되는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우왕의 즉위에 잇따른 친원보수주의 세력의 대두로 다시 과거가 대책(對策, 책을 마주 대하고 정답을 궁리하는 시험방식)에서 시·부(詩賦)로 바뀌고 삼층법을 폐지하자 경학적 분위기가 사장 쪽으로 바뀌면서 많은 학생들이 성균관을 빠져나가게 되었다. 당시 이색이 ‘뜰에는 이끼만 푸르고, 글 읽는 소리 끊겼네.’ 라고 탄식할 정도로 성균관 교육은 다시 침체하였다.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 때 신군부와 신진사대부 세력들은 십학(十學)의 설치 등 새로운 교육의 개혁이 이뤄졌으나 이것은 역사적 관계로 볼 때 조선조의 교육 내용으로 파악되는 게 옳은 일인 것으로 여겨진다.Ⅱ. 사학 십이도(十二徒)성종 말년의 993년부터 시작된 거란의 침입으로 인해 고려의 국력이 크게 소모됨에 따라 국학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 결과, 국자감은 문종(1046~1083) 때 이르러 국립대학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그 공백을 메운 것이 최충의 구재학당을 위시한 사학 12도였다. 이때의 사학(私學)을 도(徒)라 하였는데, 이는 ‘학(學)을 따르는 무리’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이 십이도 출신은 과거 급제율도 높았고, 집권층의 자제가 몰려들어 한때는 국자감을 압도할 정도로 크게 융성하였다. 그러나 예종이 칠재를 설립하여 국자감의 위상이 바뀌자 사학은 침체되고 문헌공도 등 몇몇 도만이 과거 전통을 유지했으며, 그것마저도 무신 집권기와 몽고의 침입을 겪으면서는 거의 절멸되어, 후에는 십이도 중 문헌공도(구재)만이 전통을 이어오고 이 중에서도 성명재 등 만이 명맥을 잇게 되자 십이도가 구재로 혼칭되기도 하였다.몽고 침략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하는 기간 동안에 사학을 유지할 인물도 재원도 부족했다. 그러나 국가로서는 그 동안 인재 배출의 보고였던 오랜 전통과 좋은 유풍을 가진 십이도를 그대로 방치하기도 아쉬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두었다.
    교육학| 2011.10.12| 10페이지| 1,500원| 조회(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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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naissance조토 디 본도네 (1267~1337) 그림에서는 치마부에가 한 수 위라고 생각했는데 , 오늘날에는 조토의 명성만이 높고 그의 이름은 희미하게 되었다 단테 『 신곡 - 연옥편 』조토 디 본도네 (1267-1337)그리스도의 책형 피렌체 , 산타마리아노벨라 교회성혼을 받는 성 프란체스코 피렌체 , 바르디 예배실성 프란체스코 죽음의 애도와 장례식 피렌체 , 바르디 예배실파도바 , 스크로베니 예배당스크로베니 성당 내부 모습애도 파도바 , 스크로베니 예배당예수의 성전봉헌 파도바 , 스크로베니 예배당붙잡히는 예수 파도바 , 스크로베니 예배당최후의 심판 파도바 , 스크로베니 예배당교회를 성모에게 받치는 엔리코 스크로베니부정의 알레고리 파도바 , 스크로베니 예배당정의의 알레고리 파도바 , 아레나 예배당나사로의 부활 막달라 마리아 예배당옥좌의 마리아 우피치 미술과필리포 브루넬레스키 (1377~1446)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의 돔파치 예배당 피렌체성 라우렌시오 피렌체마사초 (1401~1428) 토마소 디 존바니성 삼위 일체 피렌체 ,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성 삼위 일체 피렌체 ,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낙원추방 피렌체 ,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브란카치 예배당성모와 아기예수와 천사들 런던 , 국립 미술관도나텔로 (1386?~1466)성 게오르기우스 피렌체 , 바르젤로 박물관헤롯 왕의 잔치 시에나 대성당예언자 오페라 델 두오모 미술관다비드 상 팔라초 델 바르젤로 미술관얀 반 에이크 (1390?~1441)헨트 제단화 헨트 , 성 바보 (Bavo) 대성당아르놀피니의 약혼 런던 국립 미술관남자의 초상 런던 국립 미술관붉은 샤프롱을 쓴 남자 런던 국립 박물관산드로 보티첼리 (1445~1510) 알렉산드로 디 마리아노 디 반니 필리페피동방박사의 경배 피렌체 , 우피치 미술관찬가의 성모 피렌체 , 우피치 박물관봄 피렌체 , 우피치 미술관비너스의 탄생 피렌체 , 우피치 미술관전성기 르네상스의 세 거장(1452 년 4 월 25 일 ~ 1519 년 5 월 2 일 ) 천재 예술가이자 과학자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성기를 꽃피웠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모나리자 1503 년경 ~1506 년 , 루브르 박물관 ( 파리 )최후의 만찬 1495~97 년 , 유채와 템페라 , 460 x 880cm, 밀라노 ,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수도원 식당암굴의 성모 1507 년경 , 189.5 x 120cm, 패널에 유채 , 런던 국립미술관체칠리아 갈라라니의 초상 – 흰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차르토리스키 미술박물관 ( 폴란드 크라쿠프 )지네브라 데 벤치의 초상 워싱턴 DC 국립 박물관세례 요한 15 세기 경 . 파리 루브르 박물관바쿠스 (Bacchus) 15 세기경 . 파리 루브르 박물관여인의 초상 (Potrait de femme) 15 세기경 , 파리 루브르 박물관막대기를 든 성모 파리 , 루브르 박물관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475-1564) “ 그 어떤 대리석에도 인체는 이미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조각가는 단지 그것을 해방시킬 뿐이다 .”아담의 창조 바티칸 , 시스티나 성당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바티칸 , 시스티나 성당최후의 심판 1537 년 ~41 년경 , 13.7 x 12.2m, 바티칸 , 시스티나 성당다비드상 1501~ 1504 년 ,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미켈란젤로의 피에타 1497~1498 년 , 성 베드로 성당수염을 기른 노예 피렌체 , 아카데미아 미술관성가족 ( 도니 톤도 ) 1504~1505 년 , 피렌체 , 우피치 미술관그리스도의 매장 런던 , 국립미술관우르비노의 로렌초 묘지 1526~1533 년 , Sagrestia Nuova, San Lorenze, Florence성 베드로 돔 1547~1558/64 년 , 성 베드로 성당누오보 팔라초 (Palazzo Nuovo) , 1546~1564 년 , 이탈리아 로마라우렌시오 도서관 (Bibioteca Laurenziana) , 1524~1534sus, 이탈리아 피렌체라파엘로 산티 성숙한 르네상스의 도달점 . 독창적인 구도와 인간미 넘치는 묘사의 묘아테네 학당 1509~10 년 , 프레스코 , 바티칸미술관성체논의 1509~1510 년 , 바티칸 미술관 서명실 벽화파르나소스 1511 년 , 바티칸 미술관성모마리아의 결혼 1504 년 ,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로레트의 마돈나 16 세기 경 , 콩데 미술관 ( 샹티이 )갈라테이아 1511 년 , 로마 빌라 파르네시아초원의 마리아 1506 년 , 빈 미술사 박물관의자에 앉은 성 모자 1515~16 년 경 , 피렌체 , 우피치미술관교황 레오 10 세와 두 추기경 1518~1519 년 ,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의 초상 1516 년 이전 , 파리 루브르 박물관빈도 알토비티 (Bindo Altoviti) 1515 년경 , 워싱턴 DC 국립미술관시스티나 성모 1513 년 , 라파엘로의 중심 주제인 ‘ 성모자 ’ 를 다룬 첫 대표작 , 드레스덴 국립미술관마니에리스모폰토르모 (1494~1557)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엠마오의 저녁식사 피렌체 , 우피치 미술관마리아의 방문세례자 요한의 탄생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여인의 초상아뇰로 브론치노 (1503~1572)에레오노라 다 트레도와 그의 아들 가르치아베누스 , 큐피드 , 어리석음과 시간코지모 1 세코지모 1 세행복의 알레고리이탈리아 밖에서의 르네상스알브레히트 뒤러 (1471~1528) 자화상 뮌헨 미술관원근법 장치를 이용하는 미술가4 인의 사도자화상 (13 살 )동방박사의 경배기사 , 죽음 그리고 악마자화상 (22 살 ) 루브르 박물관멜랑콜리아바바라 D ü rer 의 초상화애굽 피난성안나와 성모자기도하는 성모 마리아아기예수한스 홀바인 (1497~1543)무덤에 있는 그리스도의 시신단치히 상인 게오르크 기체의 초상대사들제인 시모어 빈 미술사 박물관베디흐 가문 사람의 초상jorg fischer 부인의 초상헨리 8 세의 초상다름슈타트 마돈나외과 의사들에게 면허장을 주는 헨리 8 세피테르 브뢰겔 (1525~1569)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우화바벨탑눈 속의 사냥꾼농민의 춤어린이들의 놀이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겨울 : 스케이트 타기갈보리 언덕을 오르는 예수죽음의 승리예수와 나환자들후기 르네상스 ( 매너리즘 )파르미지아노 목이 긴 성모엘 그레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틴토레토 최후의 심판{nameOfApplication=Show}
    예체능| 2011.06.02| 141페이지| 1,500원| 조회(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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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더니즘,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와 후기 사상(4장)
    모더니즘과 비트겐슈타인1. 모더니즘모더니즘이란 1920년대 일어난 근대적 감각을 나타내는 예술상의 여러 경향을 말하는데, 현대주의나 근대주의라는 말로도 불리 운다. 일반적으로는 기존의 도덕과 전통적인 권위에 반대하고 자유와 평등, 도시의 시민 생활과 기계문명을 추구하는 사상과 예술상의 사조를 뜻하지만, 예술상에서의 모더니즘은 특히 1920년대에 일어난 표현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등의 감각적? 추상적? 초현실적인 경향의 여러 운동을 지칭한다.모더니즘의 가장 큰 특징은 전통 및 인습과의 단절로, 19세기의 부르주아 사회가 굳게 믿던 사회적·경제적·도덕적 가치관을 모두 배격한다는 것이다. 모더니즘은 특히 그 이전 사회 전반에 넓게 퍼진 리얼리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모더니즘은 우주나 자연 또는 삶의 모습에 대하여 리얼리즘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리얼리즘은 삶의 실제를 객관적이고 확고 불변한 것으로 파악하려 한다. 하지만 모더니즘의 삶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그 정체를 결정할 수 없고, 작가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실제를 묘사하는 대신 그것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묘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또한, 모더니즘은 경험과 개인주의를 높이 여긴다. 즉 모더니즘은 주관성과 그것에 기초를 두고 있는 개인주의를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그것은 객체보다는 주체를, 외적 경험보다는 내적 경험을, 그리고 집단의식보다는 개인의식을 훨씬 더 높이 여긴다는 뜻이다. 현상 세계와 인간의 자아 사이에 유기적인 상호 관련성을 인정하던 19세기 작가들과는 달리, 모더니즘 작가들은 모든 가치와 진리가 오직 ‘나’로부터 출발한다고 굳게 믿었다. 모든 가치와 진리가 전적으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예술사는 객관적 현상 세계 대신에 주관적 실체 세계에서 모든 해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은 우주나 자연 또는 삶의 실재를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창조해낸다는 것이 모더니즘의 기본 입장이다.모더니즘은 문학의 자기 목적성을 강조한다. 모더니즘의 이러한 입장은 그 동안의 문학적 전통과 큰 차이를 보인다. 리얼리즘 문학에서 문학은 일종의 도구나 수단으로 밖에 쓸모가 없었다. 그것은 윤리적·도덕적인 면에서 독자를 계몽시키거나, 독자들에게 삶의 단조로움을 덜어주는 오락을 제공해 준다는 뚜렷한 목적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문학의 이러한 목적성은 큰 도전을 받았다. 문학은 사회적, 도덕적·윤리적, 심리적 등의 모든 공리적 기능에서 완전히 벗어난, 문학 그 자체만을 위한 문학이여야 한다는 것이다.모더니즘 시대의 많은 작가들은 현대인이 놓여 있는 인간 조건을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즐겨 다뤘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과학과 기술의 급진적 발전이 가져다 준 충격과 그에 따른 인간 정신의 약화로 말미암아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삶의 실존적 의미를 더욱 추구하게 되었다. 특히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은 18세기 이후 인류가 품어온 가치관에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 실존주의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실존주의는 문학을 통해서 발전했는데 많은 모더니즘 작가들이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실존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삶의 문제를 작품에서 다루었다.2.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사상비트겐슈타인은 그 동안의 철학사적 작업들이 항상 그릇된 물음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헛된 시도였거나 그러한 오류로 점철된 역사라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대체 뭐가 오류고 무슨 질문이 잘못 던져졌다는 걸까?『논리-철학 논고』로 대표되는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언어 철학은 근대적 표상 체계를 언어적 관점에서 완성하는 일이었다. 그에게 철학은 ‘말할 수 있는 것을 명료하게 묘사함으로써 말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사고의 논리적 명료화이며, 교설이 아니라 활동이다. 이러한 생각에 따라서 비트겐슈타인은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세계 대응 이론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언어와 세계는 일대일 대응 관계에 놓여있다. 여기서 언어는 세계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따라서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언어를 분석하면 될 거라고 보았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이것이 『논리-철학 논고』를 통해 비트겐슈타인이 말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그렇다면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어떻게 구분하는가?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언어는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명제들로 구성된 총체다. 이 명제들은 복합 명제와 요소 명제들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요소 명제는 더 작은 단위의 이름들로 나뉜다. 비트겐슈타인은 각각의 요소 명제와 이름들에 대응하는 세계 사실들이 있다고 보았고 이것들의 일대일 대응 관계를 통해서 언어가 세계를 반영하는 거울로서 기능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세계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명제들의 참과 거짓을 구분하고, 그러한 구분에 따라서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르는 것이었다. 만약 이러한 작업에 성공한다면 그동안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왔던 오래된 철학사적 오류는 종결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 명제의 진리 값을 분석하고 그것에 따라 명제들의 참과 거짓을 구분한다.이러한 작업을 행하기 위해서는 일단 언어로 말해지는 것은 세계 사실로도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책상’이라는 단어에 대응하는 실제 ‘책상’이 있어야 ‘책상’이 포함된 문장에 대한 참과 거짓의 분석 작업을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천사나 악마, 신, 선이나 이데아, 진리 등과 같은 형이상학적 단어들은 그것에 대응하는 세계 사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참과 거짓을 분석하는 작업을 실행할 수 없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결국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일이 되며, 언어적 오류로 뛰어드는 일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처럼 신이나 진리, 선이나 아름다움 등 말할 수 없고 단지 보일 수만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보았다. 보일 수만 있고 말할 수는 없는 것들을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잘못된 질문에 그릇된 답을 찾는 오류의 역사에 동참하게 된다.비트겐슈타인은 지금까지의 철학사가 이처럼 말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 말하려고, 혹은 답을 내보려고 헛되이 노력해 온 역사라고 본다.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혼동의 역사,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묻고 말해서 잘못 제기된 물음과 답들로 가득 찬 역사가 철학사이며 따라서 철학사는 오류사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선언을 담은 『논리-철학 논고』를 내놓은 후 더 이상 철학에서 자신이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해 철학적 담론의 장을 유유히 떠난다.3.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철학적 물음들은 정말로 모두 해결되었는가? 세계 사실을 담는 거울, 언어적 의미들은 정말로 명확해졌는가? 세계와 언어 간의 일대일 대응 관계를 통해 언어의 참된 의미가 밝혀진다고 보았던 그. 말할 수 없는 것을 침묵하게 만듦으로써 말할 수 있는 것은 더욱 명료히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대는 헛소리는 이제 그만두라는 당당한 선언을 남기고 떠났던 비트겐슈타인. 그가 다시 철학적 담론의 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의 생각이 오류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을 얻은 것은 자신이 가르쳤던 초등학생들에게서다.기다란 쇠막대로 야구를 하면 그것은 야구방망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사람을 때리면 무기가 되고 못을 박으면 망치가 된다. 그러면 그 쇠막대는 야구방망이인가, 무기인가, 망치인가? 아이들은 하나의 도구를 이처럼 자기의 쓸모에 맞게 변형해 사용한다. 그렇다면 그 도구에 고정된 의미라는 게 있는가? 또한 아이들은 끊임없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그릇된 언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그러한 실수의 과정을 통해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나 의미의 용법들을 하나씩 익혀간다.비트겐슈타인이 아이들의 행동과 언어 사용 방식을 관찰하면서 깨달은 것은 이러한 점이었다. 즉 고정된 하나의 의미나 세계 사실, 사물이란 없다는 것. 어떤 도구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쓰이는 관계적 장이나 맥락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의 일상적 쓰임이나 용도를 통해서 그것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이론은 언어 게임 이론이라고 불린다. ‘우리가 장기 놀이의 말들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 그 물리적 성질들을 기술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놀이 규칙들을 진술함에 의해서 이야기하듯이 그렇게 이야기해야 한다.’ 비슷한 장기 말들이지만 그것이 졸인지 왕인지는 그것의 역할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사물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은 그것의 활동이고 쓰임이다.여기서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참과 거짓을 가르는 작업이 의미를 밝혀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의미가 드러나는 곳은 인간이 활동하는 삶의 장이다. 고정된 하나의 의미와 그것에 따르는 고정된 대상이 있다는 비트겐슈타인 전기의 사유는 이처럼 자신의 후기 논리에 의해 반박된다. 철학사에 들이댄 비판의 칼날을 비트겐슈타인은 그 자신의 사유를 깨는데 사용했다. 이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다양한 맥락에서 무한히 많은 방식으로 활동하고 움직임으로써 그것에 따르는 다양한 의미를 생산할 수 있다. 사물의 참된 의미를 밝히고 싶다면 그것이 쓰이는 용법의 장을 ‘있는 그대로 보라.’ 이것이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려는 것이다.비트겐슈타인은 언젠가 자신의 책은 철저하게 ‘윤리적인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어찌 보면, 비트겐슈타인이 진정 말하고자 했던 바는 언어의 본성이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언어분석을 통해 일관되게 보여주었던 것은 우리의 언어와 사고가 지닌 한계였다.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받아드리고 주어진 삶에 겸손하게 순응하는 자세, 비트겐슈타인이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오히려 이 점이 아니었을까? 비트겐슈타인이 전문 철학자들 뿐 아니라 일상인들에게 주는 의미가 있다면, 현대 과학문명 사회에서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고 있는 논리적인 과학적 사고의 한계를 깨닫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는 점이다.
    인문/어학| 2011.05.20| 4페이지| 1,000원| 조회(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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