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수필1.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의? 1960년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 여성운동 ? 흑인민권운동 ? 제3세계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전위예술, 그리고 해체(Deconstruction) 혹은 후기 구조주의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문자 그대로 모더니즘 다음에 온 현상,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 대두된 새로운 예술전통이나 문화 요소인데, 다만 시각적인 단절을 넘어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과 의식적 단절이 포함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비록 ‘표피주의적 천박성’이 있고, 또한 일사분란한 변혁이론은 아니지만 생활세계의 자율성, 시민사회의 다양성, 평등, 참여 등을 추구하는 나름대로의 변혁에너지가 분명 있어 보인다.? 료타르(J. F. Lyotard) 曰 :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으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표현하려는 것이다.”? 이합 핫산(Ihab Hassan)이 정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일람⇒ 반형식(분열적, 개방적), 놀이, 우연, 무질서, 지치다/침묵, 과정/수행/해프닝, 참여, 파괴/해체, 대조, 부재, 분산, 텍스트/상호 텍스트, 수사학, 결합, 병렬구문, 환유, 짜맞춤, 뿌리줄기/표면, 반해 석/오독, 능기(能記), 쓸 수 있는/작가적, 반설화/사소한 이야기, 개인방언, 욕망, 돌연변이, 다형태의/양성의, 정신분열증, 차이/차연/자취, 성령, 반어, 불확정, 편재2.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개념① 탈 장르화 - 사회적, 예술적 관례의 관계와 범위에 대한 중요한 현대의 논쟁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전형적으로 예전에 이미 수용된 한계, 즉 개별적 예술의 한계와 장르의 한계, 그리고 예술 그 자체의 한계를 위반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수필이 예전부터 그 어느 장르보다 탈 장르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때 수필가들이 담화수필, 운문형식의 수필, 비평적 수필의 과감한 시도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원용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보인다.② Parody - 경계의 문제 이외에도 대부분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모순적인 텍스트들은 해당 장르의 전통과 관례와의 상호 텍스트적인 관계에 있어 특히 패러디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패러디에서는 흔히 연속성이 한가운데 나타나는 것이 바로 아이러니컬한 불연속성이며 유사성의 한가운데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질성인 것이다. 일찍이 서구, 특히 영국의 수필들이 이런 속성을 이미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③ 탈 중심화 - 주제성의 본질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광범위한 탐구로 말미암아 특히 Narrative와 회화에 있어서 Perspective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이 자주 도전받게 된다. 지각할 수 있는 주제는 의미를 창조해내는 실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제의 다양성을 곧잘 지향하는 수필이 적지 않았음에 비추어 이 점 또한 수필가들의 관심사일 수 있겠다.④ ‘과거’와 ‘역사’의 문제 - 지난날에는 역사가 일반적으로 재현의 사실적 척도의 모델로서 그 역할을 해왔다.(이러한 모델이 문제시되는 것은 가령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 역사와 현실의 관계, 현실과 언어의 관계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서이다.) 수필가들이 과거의 제도, 과거의 사회 구조와 관습 등을 다루는 작품을 쓴다고 할 때, 이런 것들조차도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적 텍스트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⑤ 페미니즘 문학 - 여성들(미국에서는 흑인 문제까지 포함)이 내부로부터의 남성에 도전하기 위해 패러디를 사용하고 은연 중에 의미를 응축하면서 비판하기 위해 아이러니를 사용하는 것은 명백히 역설적이면서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적이다. 우리의 옛 여류 수필들이 이미 그러했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⑥ ‘포스트’의 의미 - 억압 내지는 거부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에서 가장 명백하게 나타나 있듯이 아마도 ‘포스트’라는 위치는 시간적으로 그것에 앞서고, 또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에 의존하는 동시에 모순되게도 그것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3. 문학작품 속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우리 일상의 벼랑 한쪽 옆에는 항상 기차의 철로가 깔려 있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언제 어디서든 그 철로의 존재와 마주치게 된다. 나는 엎드린 채로 그 철로 위에 귀를 대본다. 저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기차가 달려오는, 아무도 멀 어서 달려오고 있다기보다 달리고 있는 소리가 떨림처럼, 울림처럼 전해져 온다. 그러나 어쩌면 그 기차는 언제까지고 울림으로만 남아서, 영원히 내 곁에 이르지 않을지도 모른 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것은 내 삶의 미래가 아니라, 과거이기 때문이다.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따라 과거가 끊임없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를 위협하는 과거라 는 위기의 벼랑이 죽음의 철로처럼 우리와 동행하고 있음을 나는 모르고 있지 않은 것이 다. 그러니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있는가.(최수철 外. 「93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1993. 中)최수철의 소설 에서 주인공인 소설가 임휘경은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가’라는 실존적 물음을 안고 눈 덮힌 겨울 휴양지 진평으로 간다. 이 질문에의 답변 여하가 상징적으로 그가 갇혀 있는 ‘눈과 얼음의 성’인 이곳을 빠져 나오는데 관건이 되고 있다. 주변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어, 전망이라 불리 울만한 모든 것은 눈에 가려있거나, 눈빛에 반사되어 달리 비치고 있다. 전체적으로 하나의 알레고리로 설정되어 있는 이 글의 앞과 뒤, 그리고 그 중간에 네 번의 ‘컹’하는 개의 소리가 있다. 이것은 우뚝 선 한 마리의 개에 의해 매개되는 일상과 의식의 치열한 전장(戰場)의 중간지대인 것이다.일상의 문제는 소설가인 임휘경에게도 삶과 죽음이 걸려 있는 최대의 실존적 문제였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물화의 과정과 연루되어 있으며, 지배의 역학관계 자체이며 마비와 죽음의 과정이기도 했다. 일상의 지배하에서 서서히 날마다 조금씩 마비되어가며 죽어간다는 인식은, 그러나 구체적으로 일상의 그 무엇이 그러한 신화적 폭력의 힘을 지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데서 더욱 절망적이 된다.1.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내 동생이 보고 구겨 버린다. (중략)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길 가다보면 남의 집 담벼락에 붙어 있다. 버드나무 가지 사이에 끼어 있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가져갈 때도 있다. 한잔 먹다가 꺼내서 낭독한다. 그리운 당신 …… 빌어먹을, 오늘 나는 결정적으로 편지를 쓴다.2. 안녕 오늘 안으로 기억을 버릴거요.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왜 그런지 알아요?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요. 나는 선생이 될 거요. 될 거라고 믿어요. 사실, 나는 아무것도 가르칠 게 없소. 내가 가르치면 세상이 속아요. 창피하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하오. 결혼할 수 없소. 결혼할 거라고 믿어요.안녕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편지를 전할 방법이 없소. (후략)윗 글은 이성복의 〈편지〉라는 시다. 산문적인 글에서 메시지가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이 작품에는 메시지가 없다. 뿐만 아니라 긍정과 부정의 관계를 일부러 흐려놓고 있다. 즉, 결혼할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하겠다는 것인지 않겠다는 것인지 그 의미가 불분명할 뿐 아니라 오히려 화자는 모호성을 노리고 있어 보인다. 이는 우리 인간이 끊임없이 추구해온 앎에의 의지에 대한 일종 도전적 유희라 할 수 있다.
人生萬事 塞翁之馬(장예모의 人生을 보고){1. 역사적 배경영화 인생 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한창이던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중국의 모습을 담고 있다. 시간(역사)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이 영화는 크게 세단계로 나눌 수가 있는데 영화 초반부인 1940년대는 마오쩌둥의 공산군과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의 대립인, 이른바 국공내전(國共內戰) 으로 영화 초반부는 형성이 된다. 중반부에 해당하는 1950년대는 중국 본토의 정권을 장악한 마오쩌둥이 경제성장을 추진하기 위해 벌인 대약진 운동 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 후반부인 1960년대는 대약진 운동 의 실패와 공산당 내 권력투쟁의 일환으로 시작된 문화대혁명 을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이 역시 마오쩌둥 주도하에 벌어진 사건이다. 이처럼 영화 인생 은 중국이 공산화가 되는 과정과 공산화 이후 공산당 내의 갈등과 권력투쟁 등으로 희생양이 되는 국민들의 모습을 주인공 부귀의 눈으로 그려냈다.2. 영화 줄거리1940년대 중국.마을 지주의 아들로 풍족한 생활을 하는 주인공 부귀 는 밤을 새며 도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엔 집에 돌아와 잠을 자며 다시 저녁이 되면 도박장을 찾는 도박광이다. 가족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쉽사리 도박에서 손을 끊지 못하고 그런 그에게 그림자 극 단장 용이 가 그의 집을 차지할 목적으로 접근해온다. 막대한 그의 재산이 용이와의 도박으로 모두 탕진되고, 그런 그를 한사코 만류하던 그의 부인 가진 은 그의 딸 봉하 와 뱃속의 아기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가버린다. 부귀의 집은 용이에게 넘어가고 충격을 받은 그의 아버지는 충격으로 죽게 된다. 무일푼 빈털터리가 된 부귀는 좌절감을 맛보며 병든 노모(老母)를 모신 채 쓸쓸히 장사를 하던 중 집을 나갔던 그의 부인이 딸과 아들 유경 을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여기에 힘을 얻은 부귀는 열심히 살 목적으로 그의 집을 빼앗은 용이에게 찾아가 장사할 목적으로 돈을 빌리지만 용이는 돈 대신 그가 해왔던 그림자 극 도구를 부귀에게 빌려주게 된다.그림자 극 단원이며 예전 부귀의 수발을 들던 춘생과 함께 새롭게 시작된 부귀의 그림자 극 생활은 지방을 돌아다니며 공연할 만큼 충실했으나 공산당과 국민당의 전쟁에 휘말리며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결국 공산당의 포로로 잡히게 되나 그들 혁명군을 위해 그림자 극을 상연하게 되어 도리어 명예훈장을 받고 귀향하게 된다. 그의 마을로 돌아 온 부귀는 새벽부터 물 배달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그의 부인 가진과 열병을 앓아 벙어리가 된 딸 봉하와 다시금 재회하게 된다.1950년대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다시 집으로 돌아 온 부귀는 병든 노모의 죽음소식을 듣고 그동안 힘겨웠던 혁명군 시절의 일을 가족과 나누지만 그럭저럭 소박하고 행복한 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마을 읍장 및 몇몇 주민들이 찾아와 혁명군을 위해 힘쓰고 무사귀환한 그에게 축하를 한다. 춘생은 혁명군에 남아 운전병 일을 한다는 이야기 등을 전하던 부귀는 자신의 집을 빼앗은 용이가 공산당이 대대적으로 실시하는 지주 축출에 포함되어 재판받는 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재산몰수를 거부하던 용이는 총살을 당하게 되고 그를 목격한 부귀는 집에 돌아와 도박으로 재산을 잃지 않았었더라면 사형을 당한 건 자신이었을 거란 생각을 하며 부인과 안도를 하게 된다.중국 전체의 실권을 장악한 마오쩌둥이 벌인 대약진 운동 에 부귀의 마을은 철을 회수하기에 바쁘다. 밥 지을 솥까지도 회수한 그의 마을에 제련공장이 들어서게 되고 부귀는 공장에서 그림자 극 상연을 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그의 아들 유경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구장님의 학교방문에 부귀는 억지로 그의 아들을 보채어 학교를 보내지만 담벼락 밑에서 잠을 자던 유경은 구장의 과실로 차와 담벼락에 깔려 죽게 된다. 싸늘한 피의 주검으로 돌아 온 부귀와 가진은 오열을 하고 유경의 무덤 앞에서 가진은 아들의 죽음이 부귀의 탓이라며 흐느낀다. 유경의 장례에 구장이 방문을 하게 되고, 자신의 아들을 죽인 구장이 옛 동료 춘생임을 알고 부귀와 가진은 반길 틈도 없이 그를 원망하게 된다. 목숨 하나를 빚진 춘생은 그렇게 돌아간다.1960년 6월 프로레탈리아 문화대혁명.제국주의적 산물을 없애자 전국적으로 벌어진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부귀는 자신의 삶의 고단함이 묻어있는 그림자 극 도구를 불태워 버리게 되고 마을 읍장과 그의 딸 봉하의 혼담을 나누게 된다. 봉하와 맞선을 보게 된 만이희는 3대째 환풍기 수리를 하는 열성적인 공산당원이다. 장애인인 자신의 딸과 마찬가지로 만이희 역시 오른다리를 저는 장애인이지만 부귀와 가진은 그가 공산당 간부라는 점과 봉하 역시 싫은 기색이 아니라는 점에 맘에 들어 한다. 며칠 후 만이희는 공장직원들과 함께 부귀의 집에 찾아와 지붕을 뜯고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해준다. 화들짝 놀란 부귀부부는 황급히 집으로 가지만 만이희와 봉하가 다정스레 벽에 마오쩌둥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며 흐뭇해한다. 그렇게 그 둘은 혼인을 하게 되고 부귀의 집엔 부귀와 가진 둘만 남게 된다. 수개월 후 봉하는 임신을 하게 되고 가족 모두의 축복 속에 병원에 입원하여 출산하게 되지만 어찌된 것인지 병원엔 팔뚝에 붉은 완장을 찬 홍위병들 뿐이다. 기존의 의사와 교수들은 문화대혁명이란 붉은 깃발 아래 모두 축출이 되고 어린 간호원들이 병원을 점거하여 모든 진료를 도맡아 하는 것에 불안을 느낀 부귀는 만이희에게 의사를 모셔 오라고 한다. 목에 푯말을 건 늙은 의사는 홍위병들에게 저지를 당하지만 만이희의 기치로 봉하의 출산을 돕게 된다.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늙은 의사에게 부귀는 만두를 사다준다. 이 때 봉하는 아들을 출산하게 되고 그 기쁨도 잠시, 갑작스런 봉하의 하혈에 어린 홍위병들은 혼비백산 어찌할 바를 모른다. 게다가 다행스럽게도 모셔온 늙은 의사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 역시 만두를 급히 먹은 탓에 체하여 정신을 잃고 그렇게 부귀와 가진의 딸 봉하는 손도 못 써보고 죽게 된다.6년 후 부귀와 가진은 만이희와 자신들의 외손자와 봉하의 무덤을 찾는다. 봉하의 무덤은 먼저 하늘나라로 간 유경 무덤과 나란히 있다. 이젠 자식을 잃은 슬픔의 눈물도 흘러버린 세월에 늙어버린 그들에겐 없어지고 담담한 농담만이 있을 뿐이다. 가진은 병들어 있고 그런 쓸쓸한 노부부에게 만이희와 그들의 손자만이 기쁨이다. 부귀는 집에 돌아와 자신의 삶이 배어있는 그림자 극 도구상자를 꺼낸다. 손자를 위해 병아리 집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만이희가 차린 저녁식사가 들어오고 그들은 또 그렇게 소박한 저녁을 보낸다.3. 영화 감상과 비평근거여화의 소설 「活着」을 각색하여 만든 이 영화는 중국 영화계의 거장 장예모가 감독을 하고 갈우와 공리가 주연을 한 1994년도 영화이다. 중국 근대사에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인 중국의 공산화, 대약진 운동, 문화 대혁명 등을 지주 계급에서 몰락한 서민의 시각으로 그려내어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함과 동시에 한 인간의 일생에서 나타나는 달콤한 행복과 쓰디 쓴 좌절 등을 순박하고 자연스럽게 그려내었다.인생만사 새옹지마. 행복에 젖어있는 부귀는 자신의 도박으로 인해 집안이 몰락하는 광경을 그저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능력한 인간이다. 하지만 빈털터리가 되고 해체된 가정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고 그림자 극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여기서 그림자 극은 부귀 자신이 처해있는 현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며 부귀 자신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두 남녀(풍족한 현 상황), 발을 붙잡고 매달리는 여자를 외면하는 남자(도박을 말리다 떠나버리는 가진), 남 · 여의 재회(돌아온 가진), 행복한 장면(소박한 그들만의 행복), 관운장의 싸움장면(국공내전의 묘사) 등을 보면 알 수가 있다.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영화 내에서 벌어지는 3번의 사건(국공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 대혁명)을 주인공 부귀가 겪을 때마다 그의 소중한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이다. 국공내전 때에는 그의 병든 노모가 죽고 그의 딸이 벙어리가 되었고 대약진 운동 때에는 그의 아들 유경이 차에 깔려 죽었으며 문화 대혁명이 벌어지자 그의 딸 봉하가 아들을 낳자마자 죽어버렸다. 이 죽음들이 의미하는 것은 주인공 부귀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시대의 희생양, 즉 이데올로기에 희생이 된 것이다. 여기서 희생의 매개체로 만두가 등장하는데 아들 유경이 죽기 직전 가진은 유경에게 만두를 도시락으로 싸주며, 딸 봉하가 죽을 때에도 만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있다. 도움을 얻기 위해 데려온 늙은 의사는 3일간 굶었다 하여 만두를 먹이는데 봉하를 치료할 수 있었음에도 이 만두로 인해 그의 딸의 죽음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만두는 중국 공산당에서 배급해주는 것으로서 이데올로기의 산물 중에 하나이다. 게다가 봉하가 남기고 간 그의 손자의 아명(兒名)이 만두 임은 그런 공산주의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