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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 논어와 공자 평가B괜찮아요
    1. 논어儒家의 聖典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四書의 하나로, 중국 최초의 語錄이기도 하다. 공자가 비록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각종 서적을 정리했던 그런 교수이자 학자였다손 치더라도 그 가 생전에 스스로 저술한 책은 한권도 없었다. 지금부터 소개하고 해설하려는 소위 공자 의 言行錄이라는 《論語》도 공자가 생전에 편찬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나 제자의 제 자의 제자가 공자가 죽은 뒤 그를 위해 편찬했던 것이다. 여기서 《論語》의 論이란 글자 가 바로 「편찬했다, 편집했다」라는 뜻이고, 語란 바로 말씀의 뜻이므로 이 두말을 합쳐 이야기하면 이란 뜻이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 孔子의 가르침을 전하 는 가장 확실한 옛 문헌으로, 공자와 제자와의 문답을 주로 하고, 공자의 발언과 행적, 그 리고 여러 제자들의 발언 등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교훈이 되는 말들을 간결하고 도 함축성 있게 기재되었다.1 명칭과 편자《논어》라는 書名은 공자의 말을 모아 간추려서 일정한 순서로 편집한 것이라는 뜻 인데, 누가 지은 이름인지는 분명치 않다. 편자에 관해서는 崇爵讖의 子夏 등 六四弟 子說, 鄭玄의 仲弓룻 熏子夏설, 程子의 曾子룰艙┏ 제자설, 그 밖에 많은 설이 있 으나 확실치 않다.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學而, 爲政, 八佾, 里仁, 公冶長, 雍也, 述而, 泰伯, 子 罕, 鄕黨, 先進, 顔淵, 子路, 憲問, 衛靈公, 季氏, 陽貨, 微子, 子張, 堯曰.... 이렇게 모 두 20편으로 이루어졌으며, 각기 편중의 말을 따서 그 篇名을 붙였다. 前半 10편을 上論, 후반을 下論이라고 하는데, 그 사이에는 문체나 내용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특 히 20편의 각 명칭이 은 인간의 終身의 業인 학문과 덕행을, 은 역 대 성인의 정치 이상을 주제로 한 것처럼 어떤 통일된 주제를 담고 나누어진 것이 아 니라 그 당시에 필사도구가 竹片(대나무 조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어떤 내용상의 차이로 구분했던 것은 아니고, 각 편마다 주제가 있기는 하나, 적당한 양으로 한무더 기씩 묶어 첫번째 대나무을 만들었고 이어 後漢의 鄭玄 (127~200)은 이 세 가지와 고론을 교합하였다. 이 鄭玄本을 바탕으로 魏의 何晏이 《論語集解》라는 註釋書를 저술함에 이르러 현존본의 원문이 결정되었다. 근대에 와 서 내외의 학자들이 공자의 가르침의 근본을 추구하여, 여러 각도로 논어의 문헌을 비판하고, 논어성립까지의 전승계통을 탐색하는 한편 漢나라까지의 증보의 경과를 더 듬는 등 많은 가설을 내세우고 있으나 아직 정설은 수립되지 않았다.3 내용엄밀히 말하면 어느 정도로 공자 본래의 가르침을 전하는가가 문제이지만, 이것을 이 해하는 데에는 논어가 불가결한 문헌임에는 틀림없다. 논어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修辭의 묘를 얻어 함축성이 깊고 문장간의 연계가 없는 듯하면서도 깊이 생각해보면 공자의 인격으로 歸一되어 있다. 공자의 不撓不屈의 求道의 태도, 관용 중에서도 사 람을 이상선인 ‘仁’으로 이끌고야 마는 교육, 그리고 공자를 중심으로 하여 겸허한 顔 淵, 직정의 子路, 현명한 子貢, 그 밖의 제자들의 각기 개성에 따른 상호간의 독려 등,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人道主義 사상과 自覺自律의 도덕설을 제시한 孔子學團의 활동이 잘 묘사되었다. 이것은 공자가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를 지녔음을 가리키며 정 치에서의 덕치정치라는 현실 세계를 중히 여기는 사상으로 이루어 졌다고 할 수 있 다. 모든 내용이 깊은 인생 경험의 결정으로 음미할수록 가치가 있는 교훈들이다.4 전래유교의 경서는 많지만, 그 중에서 논어는 孝經과 더불어 漢나라 이후, 지식인의 필수 서책이며, 그 해석의 전거가 된 것은 《論語集解》(古註라고도 한다)이다. 宋나라 때 에는 유교의 孔孟思想에 의한 집주통일화가 이루어졌고, 특히 朱熹(1130~1200:주자) 가 《四書》로 추존하고, 이를 통일하여 《論語集註》(新註라고도 한다)를 저술한 후 에는 이것이 고주에 대체되었다. 중화민국 초기에는 구문화 개조를 위하여 공교럼藉 비판이 행하여졌고, 그 후에도 계속되고 있으나, 연구가 지속되는 것에는 변함이 없 다. 한국에도 일찍부터 도래되어 漢 19세에는 견관씨와 결혼하였으며, 이듬해 아들 鯉(호는 백어)가 태어났다. 이 시기, 한때 노나라에 출사하여 가축 관리의 일을 보았 으며, 이어서 회계의 일도 본 적이 있다.三十而立 (30세, B.C. 522)제자들을 받아들이고 30대 초반무렵 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노자와 대면하여 노자의 그릇이 큼에 감명받았다고 한다. 이 무렵 노나라에서도 정권이 삼환씨에게 넘어가 그 를 제거하려하여 제나라로 피신하였다. 그 후 나라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제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여 명성이 높아졌다.四十而不惑 (40세, B.C. 512)학문에 확신을 가지기에 이르렀다五十而知天命 (50세, B.C. 502)노의 계환자의 가신인 공산불뉴가 전횡을 일삼는 계환자를 반역하여 궐기를 기도하고 공자에게 참가할 것을 권유했으나 결국 참가를 유보했다. 처음 관직에 나섰을 때는 말단 관리였으나, 50세가 지나서 노나라의 定公에게 重用되어, 정치가로서의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의 계획은 노나라의 실력자인 3중신의 세력을 눌러 公室의 권 력을 회복하고, 주공의 정신을 살린 질서있는 문화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이었다. 중도 에서 성과를 올려 사공을 거쳐 대사구가 되었다. 비대해진 중신들의 권력 삭감을 정 공에게 진언하고 거성의 파괴에 착수했다. 유력한 세 가문 중에서 맹씨는 끝까지 저 항했으나 숙씨, 계씨의 거성은 파괴가 실현되었다 공자가 노의 정치를 어지럽혔다고 하여 대부인 소정묘를 주살했다.제는 노가 공자의 정치쇄신으로 강대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노의 정치를 부패시킬 목적으로 미녀 80명을 보내왔다. 정공 등은 넋을 잃고 정사를 소홀히 했다. 공자는 이러한 노의 정정에 실망하여 사직하고 제자들을 데리고 길을 떠난다. 위에 이르러 영공과 회견하고 그곳에 머물렀다. 그의 계획이 드러나 B.C. 497년, 56세 때 실각하 고 그 후 14년간 문하생들을 데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遊說를 계속하며 이 상실현을 꾀하였다六十而耳順 (60세, B.C 492)영공이 죽고 출공이 즉위하여 공자는 위피하고 공자가 중신에게 역설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제자인 재아가 이 사건으로 희생되었다. 위에서 왕위를 둘러싼 내 란이 일어나자 중신을 섬기고 있던 자로가 주인을 구하려다가 살해되었다. 어느날 아 침 자공이 공자를 찾아갔더니 이런 노래를 읊조렸다그리고 공자는 울었다 이날부터 공자는 병석에 누웠고 7일 후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숨을 거두었다 유채는 노의 도읍 곡부의 북쪽, 사수언저 리에 매장되었고 제자들은 무덤 옆에서 3년을 복상했다 자공은 그래도 떠날 수 없어 다시 3년을 그곳에서 지냈다.제자는 모두 3000여 명이며, 특히 六藝(禮/樂/射/御/書/數)에 통한 문인이 72명이라 고 한다. 그는 '敎人不倦(인간을 가르치는 것은 멈출 수 없다.)'이라고 술회했던 것처 럼, 이상을 미래에 건 위대한 교육자였다.그의 언행은 《論語》를 통해서 전해지고, 그의 사상을 알아보기 위한 확실한 자료도 《論語》밖에 없으며 이는 제자나 제자의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지 공자 자신의 저술 은 아니다. 五經을 편찬하였다고 전하나, 이는 교육목적에 따라서 《詩經》, 《書經》 등의 고전을 정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經'이라는 글자는 '漢'때에 붙은 것이다. 공자 가 살았을 때는 단지 '時','書'라고 불렀다).나중에 벼슬을 하기는 하였지만 공자의 일생을 통틀어 보면 젊은 시절부터 죽기 직전 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남을 가르치는데 보낸 직업적인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가장 많 이 지닌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덕행에 뛰어난 제자로는 顔淵, 閔子騫, 염 伯牛, 仲弓같은 인물을 꼽을 수 있고, 언어에 능한 이로는 宰我와 子貢이 있으며, 정 사에 유능한 제자로는 염有와 季路가 있으며. 문학을 잘 하는 이로는 子游와 子夏같 은 인물을 꼽을 수 있는 등 각 분야에 뛰어난 수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공자와 그 시대공자가 태어난 기원전 5-6세기는 春秋時代 말기였다. 周왕조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 고 중국은 12개의 제후국으로 갈라져 서로 패권을 다투던 이 시기에는 전쟁이 끊이 질 않았 사회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그의 사상과 정치철학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이 시대에 주나라와 노나라를 제외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던 나라는 은나라의 전통을 계승한 宋나라와 주나라의 왕자 朝가 반란을 일으키다가 실패하자 자기 나라의 전적 과 인재들을 데리고 도망온 楚나라를 들 수 있다. 이런 사정으로 해서 초나라는 주 왕조를 대신하여 노나라, 송나라와 함께 삼대 문화중심지가 된다.그리하여 이 나라들에서는 제각기 다른 학문과 학자들이 배출되어 독특한 학파를 형 성하게 되었다. 노나라에서는 공자가 나와 '修己治人'을 강조하는 儒家를 이룩하였고, 송나라에서는 墨子가 나와 '兼愛(두루 사랑할 것)'을 주장하는 墨家를 형성하였고, 초 나라에서는 老子가 나와 '無爲自然(의식적인 행위를 버리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할것)' 을 강조하는 道家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전국시대에 들어가서 는 소위 諸子百家라 부르는 수많은 유파의 사상가들이 百家爭鳴으로 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공자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당시의 문제를 극복할 사상을 모색하였던 바, 기본적으로 자기와 노나라에 큰 영향을 주었던 주나라의 문화적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예와 덕을 근간으로 하는 유가철학을 성립시키게 되었던 것이다.3. 논어에서 드러나는 공자의 사상춘추 말기, 주나라의 봉건질서가 쇠퇴하여 사회적 혼란이 심해지자, 공자는 주왕조 초의 제도로 복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위정자는 덕이 있어야 하며 도덕과 예의에 의한 교화가 이상적인 지배방법이라 생각했다.공자가 말한 도덕에 의한 정치란, 孝悌에 의한 정치라고 말해도 괜찮다. 어떤 사람이"선생께서는 어째서 政界에 나가시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 끼리 우애있게 지낸다면 이것이 또한 정치를 하는 것이니 어찌 일부러 정치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이것은 구중국의 지배형태가 치안을 향당자치에 맡김으로써 지배를 위한 노 력을 절약한 것과 연관되어, 가족 도덕중심의 유교가 漢나라부터 淸나라까지 2000년 동 안 이다.
    인문/어학| 2001.12.13| 7페이지| 1,000원| 조회(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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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유토피아 평가A좋아요
    1. 책의 저자, 토마스 모어(Thomas More)→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는 르네상스 시대, 영국의 정치가이자 인문주의자로 이름 을 날리던 사람이었다. 지금도 세계사 시간이면 그 이름이 책 한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역사책에 적힌 딱딱한 그 이름에서는 느낄 수 없던, 그의 삶 속으로 뛰어 들어보자.토마스 모어는 1477년, 런던의 법률가 존 모어의 아들로 태어난다. 어려서 캔터베리 대주 교 존 모턴을 섬기고, 나중에 옥스퍼드대학에 입학했으나, 아버지의 요구로 중퇴하여 법률 가가 되려고 링컨 법학원에 입학하였다. 대학 재학 중에 대륙의 르네상스 문화운동의 영 향을 받아, 일찍부터 당대의 유명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와 친교를 맺었다. 그의 《우 신예찬》(1511)도 모어의 집에 묵으면서 쓴 것이다. 법학원 졸업 후 변호사가 되었고, 의 회에서도 의석을 차지하였다.1515년에는 통상문제로 네덜란드에 건너가, 외교교섭에 수완을 발휘하였다. 이상적 국가 상을 그린 명저 《유토피아》는 그때의 여행 중에 쓰기 시작하였으며, 이듬해 귀국하여 완성하였다. 그는 탁월한 수완과 식견으로 헨리 8세의 신임을 얻어 1529년에는 대법관에 임명되었으나, 왕의 이혼에 끝내 동의하지 않고 1532년 관직에서 물러났다. 1534년 반역죄 로 런던탑에 갇혔다가, 1535년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그는 믿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백절불굴의 신앙인이었다. 영화 사철의 사람 에 서 그의 목을 베기가 두려워 떠는 사형 집행인에게 너는 내 목을 베는 것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요, 나는 네 칼에 죽는 것이 우리 하느님에 대한 충성이다. 라고 하며 오히려 안심 시키는 토마스 모어의 모습은 시대를 넘어서 우리에게 전달된다. 실제로 1935년, 로마 교 황은 그에게 성인 의 칭호를 준다.인문주의자로서 해학취미의 소유자로 신랄한 언사를 서슴지 않았으나, 동시에 경건한 그 리스도교도이며, 이름난 명문가·논쟁가로서 서민 사이에 인기가 있었던 토마스 2세 대 인문학자들은 모두 사상적으로나, 소재 면으로나 훨씬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토마스 모어는 일찍부터 당대의 가장 유명한 인문주의자중 하나인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와 친교를 맺었다. 에라스무스의 우신 예찬도 바로 모어의 집에 묵으면서 쓴 것 이라고 하니, 그 둘의 관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보이는 르네상스 문학의 기교를 대표한 다고 할 수 있는 능숙한 비유와 은근하고도 신랄한 풍자 방법들은 바로 에라스무스에게 영향 받은 것들이다.2 역사·사회적 배경→ 뒤에서 다뤄지겠지만, 유토피아라는 소설은 모어가 살던 시대의 상황을 담고 있다. 따라 서 그 시대적 상황을 아는 것은 유토피아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모어 시대의 영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문제는, 유토피아라는 소설 안에서도 라 파엘의 지적으로서 다루어지는 인클로저라는 것이다. 그 이전의 농민들의 삶이 무척 유복 했다고 한다면 그것도 거짓말이었겠지만, 당시의 상황은 심각했다. 영국과 주변 국가에서 모직물 공업이 발전해서 양모 값이 크게 오르자 농사를 지어 곡물을 수확하는 것보다는 양을 길러서 양모를 시장에 파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한 지주 귀족들은 농민들을 다 내쫓고 이 땅에 울타리를 쳐서 둘러막은 다음 양떼를 기르게 된 것이다. 이전에 수많 은 농민들을 먹여 살리던 땅에 이제 한두 명의 목동만 있으면 충분하게 되었다. 하루아침 에 생계를 잃게 된 농민들은 품팔이 농민이 되든지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도시로 흘러 들 어가 도시 빈민이 되었고 그러다가 결국은 도둑이 되어 교수대에 매달리는 경로를 밟게 된 것이다. 근대의 발전은 사회에 많은 부의 생산을 가능케 했으나, 그 성과는 오직 소수 의 사람들에게만 돌아가고 다수의 사람들은 오히려 더 심한 빈곤에 빠지게 되었다. 부의 증가와 대중 궁핍화는 동시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또한 당시 1455년에서 1485년에 걸쳐 일어났던 장미전쟁(Wars of the Roses)은 영국을느낌을 강하게 준다. 이는 르네상스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문학적 표현이었던 비 유와 풍자가 소설 유토피아 에서도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이 글의 작가인 토마스 모어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영국의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인 문주의자였다. 실제로 그는 르네상스 문학에 있어서의 가장 대표적인 표현방식인 역설과 비유를 능숙하게 구사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문학세계는 그의 수많은 작품 중 에서 특히 유토피아로 대표된다.하지만, 유토피아의 의의는 이걸로 끝이 아니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이제 완전히 고유명 사화 되어버릴 정도로 유명해진 말이다. 소설 유토피아 에서 그려지는 유토피아 는 한 마 디로 이상향, 지금 나 자신을 포함 한 모두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어디보다도 살기 좋 은 그런 좋은 땅이다. 그런 이상향은 항상 사람들의 꿈속에 존재했다. 동양에서는 도원경 이라고 해서 중국의 유명한 문장가 도연명이 사람들의 이상향을 그려내곤 한다. 하지만, 유토피아(Utopia)의 의미가 그리스 어로 어디에도 없는(ou) 장소(topos)를 뜻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도연명 역시 도원경을 인간이 찾을 수 없는 장소로 그린다. 어쩐지 읽는 동안 비관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4. 모어가 꿈꾸는 이상향 유토피아→ 이제, 유토피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사실 고대에도 어떤 이상국가에 대한 논의는 있었 다. 플라톤의 국가론 등이 바로 그것이다. 토마스 모어는 이런 플라톤의 정치적 이념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만의 구체적인 유토피아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그 실현 가능성을 모색한 사상가이자 문학가로 평가받기도 한다.모어는 유토피아 속에서 인간에 의하여 인간이 차별을 받는 사회를 바람직하지 못한 사 회로 규정하고,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 속에서 그가 살던 그 사회적인 모순들을 극복 할 수 있는 대안들에 대해 진지하게 모색한다. 그의 소설 유토피아 는 꿈의 세계에 대한 기술이면서 동시에 차별이 없는 가장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확분별해내는 지혜를 갖춘 사람들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제도와 사회제도 하에서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은 가족의 소중함과 인간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법을 습득하게 된다.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은 행복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화목한 가정을 꾸 밀 수 있으며, 욕심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철저하게 깨닫고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 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모어의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상은 바로 종교에 대한 사상이다. 종교가 인간 의 삶에 자유를 주고 인간의 삶에 행복을 줄 때 의미 있는 것이라면, 오늘날 종교는 많은 곳에서 인간에게 최대한의 불행을 안겨주는 아이러니로 우리에게 비춰진다. 우리는 이 책 을 읽으면서 모어가 살던 그 당시에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종교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써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수단으로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모어는 종교의 자유를 철저하게 강조한다. 누구도 다른 사 람의 종교를 간섭하거나 비난할 수 없으며, 스스로 자신의 신념체계에 따라서 선택한 종 교에 대해서는 모두가 존중해야 한다는 사상은 종교간의 갈등이 첨예화된 오늘날 우리들 의 삶에서도 역시 반성할 수 있는 많은 점들을 전해준다고 할 수 있다.모어에 따르면 이러한 모든 불합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바 로 사유재산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모든 불행의 원인이 바로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과 이 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사유재산제도와 사유재산 때문에 형성되는 계급제도 때문이라면 모어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바로 사유재산제도를 거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모어는 모든 국민의 경제적인 평등과 재화의 공동분배를 실현하 여 계급 없는 사회를 구축하고 이러한 사회를 통하여 인간이 참으로 행복할 수 있는 가능 성을 모색하였다. 이렇게 볼 때 그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을 현대적 의미에서 구 체화시킨 선구자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5. 유토피아 속에 폐지하자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곳의 노예도 정상적인 인격체로서의 대우는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든 이가 바라는 이상향이 반인륜적인 노예제도 에 의해 유지가 된다는 것은 상당한 모순이 아닐까?2 통일성과 획일성→ 철저히 아무데에도 없는 곳 이라는 뜻을 가진 유토피아는 저 먼 신대륙 어딘가의 섬나라 로 상정되어 있다. 이 나라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통일성 내지 획일성이다. 수도 격인 아마로우툼을 비롯한 54개의 도시가 가지런히 벌려져 있는데, 하나의 도시만 보면 다른 도시들은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벌집과 같 은 규칙적인 구조를 생각하면 된다. 완전히 계획된 도시 구역 안에는 또 완전히 똑같은 집들이 지어져 있다. 이 집들은 문이 쉽게 열리게 되어 있어서 누구나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고, 그나마 10년마다 집단적으로 집을 바꿔서 살게 되어 있다. 그곳에서 또 시민들은 모두 똑같은 색깔, 똑같은 모양의 옷을 입고 산다(이 점만 보아도 이 "이상향"의 풍광은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로 섬뜩하다).이곳 사람들의 결혼과 가정 문제는 국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된다. 한 가정 내에 성인의 수는 10∼15명으로 규정되며, 어떤 이유에서든지 성인의 수가 15명을 초과하면 일부 가족 을 떼어서 다른 가족으로 넘겨버린다. 이 사회의 특이한 관습 중의 하나는 처녀 총각이 미래의 배우자 앞에서 모두 나체로 선을 본다는 것이다. 망아지 한 마리 사는 데에도 잘 관찰하고 사는 마당에 평생 같이 살 사람을 고르는데 얼굴만 보고 고를 수는 없기 때문이 다! 한편 이 나라에서 감히 혼전 성교를 했다가 발각되면 엄중히 처벌받게 되어 있어서, 국가의 사면이 있지 않으면 노총각 노처녀로 늙어 죽어야 한다. 간통을 하다가 잡히면 패 가망신 정도가 아니라 아예 노예가 되고, 그러고도 정신을 못차려서 재범을 저지른 경우 에는 사형에 처해진다. 또 부부가 이혼을 원하는 경우에는 의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개인 생활의 가장
    인문/어학| 2001.12.13| 7페이지| 1,000원| 조회(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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