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테 신화》플라톤: 〈향연〉 VS 윌리암 셰익스피어: 〈비너스와 아도니스〉◎ 서론◎ 본론Ⅰ.플라톤의 향연1. 작품 줄거리 요약2. 개인 감상Ⅱ. 셰익스피어의 비너스와 아도니스1. 작품 줄거리 요약2. 개인 감상◎ 결론두 작품의 비교◎ 참고자료서론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하면 꿈속에 나타나는 만년필·방망이·송곳·오이·애호박처럼 길고 가늘게 생긴 것은 남성의 성기를, 위의 그림에 나타나는 조개나 양말·쌈지처럼 그 속에 무엇인가 포용할 듯한 것은 여성의 성기를 의미한다. 흔히들 아들 출산을 원하면 굴뚝이 있는 쪽으로 가서 남녀가 교합하면 된다는 항간의 속설도 아마 굴뚝이라는 남성기의 상징이 함축된 데서 생긴 미신일 것이다.시간적으로 보아 그 이론의 바탕에서 생긴 것은 아닐 테지만, 그리스 신화에서 미의 여신인 비너스가 키프로스 섬에서 상륙할 때 가리비라는 조개를 타고 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은 아마도 성을 숭상하던 원시신앙의 산물인 듯하다. 그것을 모티브로 하여 그려진 작품이 너무나도 유명한 이다.로마시대에 베누스로 개명된 아프로디테는 본래 우주창조의 근본 에너지 이자 생명 원리인 에로스의 강력한 구현체로서 위대한 여신의 속성을 물려받은 여신이었다. 그런데 제우스로 대변되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체제가 확립되면서, 인간과 신들은 물론이고 모든 창조물들을 장악하였던 위대한 여신의 후예로서의 아프로디테는 불륜을 일삼는 성욕의 화신으로 왜곡되고, 그녀의 본래의 생명 원리는 장난꾸러기 어린아이 큐피트 라는 형태로 축소, 표현되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 체제에 의해 축소되고 왜곡된 대모여신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베누스, 즉 아프로디테 여신이라 할 것이다. 다양한 관점으로 재해석 되는 아프로디테의 신화의 변형을 플라톤의 향연과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너스와 아도니스로 비교 분석해 보겠다.본론Ⅰ.플라톤의 향연1. 작품 줄거리 요약플라톤(Plato)의 저서 중 하나인 향연(Symposium)은 그리스어로 심포지엄으로 원래“함께 마신다.”라는 뜻이다. “향연“문에 에로스 역시 두 명 이며 , 모든 에로스가 찬미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여기서 두 아프로디테란 어머니 없이 우라노스에게서 태어난 딸 우라니아와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 판데모스인데, 전자가 하늘의 아프로디테이고 후자가 땅의 아프로디테이다.땅의 아프로디테는 세속적이며 제멋대로이며,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면을 소홀히 한다. 그에 비해 하늘의 아프로디테는 순수한 남성 혈통만을 가지며, 정신적인 면을 좋아하며, 미소년을 사랑할 때는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리는 자제력 있다고 주장한다.그의 주장은 육체보다는 정신을 세속보다는 천상을 여성보다는 남성을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천상의 에로스를 위해 철없는 소년의 사랑을 금하는 법의 필요성도 역설한다.세 번째 에뤼크시마코스의 연설 의사인 에뤼크시마코스의 연설은 파우사니아스의 연설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다. 에로스를 둘로 나누어 구분하는 것을 공감하나 에로스가 아름다운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함시켜서 연설한다. 에로스는 사람의 영혼 안에 있는 것으로서, 아름다운소년, 모든 동물의 육체 안 , 땅에서 나는 초목 등...사랑은 만물에 깃들여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의사답게 의술을 존중하며 모든 것을 의학에 연관지어 설명한다. 의학이란 충만과 배설의 신진대사를 다루는 것이며, 이것들의 조화, 사랑이 건강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음악의 리듬과 하모니, 뜨거운 것과 찬 것, 마른 것과 젖은 것의 조화가 인간을 건강하게 하고 식물을 번창게 하며, 분열과 불일치는 질병과 재해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렇듯 에로스는, 여러 가지 위대한 힘을, 아니 오히려 전능한 힘을, 요컨대 전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선한 일을 위해서 절제의 덕과 정의의 덕을 가지고 우리들 사이에서도 신들 사이에서도, 그 힘을 다하는 에로스야말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우리에게 행복을 주며 우리 인간끼리만이 아니라, 우리보다 위대한 신들과 사귀게 하여, 그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고 했다.네 번째 아리스토파네의 찬미는 모두 그 신을 찬미하지 않고 그 신에게서 받은 혜택 때문에 인간이 행복하다고 찬미한다고 했다.정작 혜택을 베푼 신은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고 하며,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에로스를 찬미할 경우에도, 역시 먼저 그분이 어떤 성질을 가진 분인가에 관해서 찬미하고, 그 다음에 그분이 베푸시는 혜택을 찬미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그는 사랑에 관한 모든 사항을 에로스와 연관 짓는다. 에로스가 가장 아름답고 훌륭하기 때문에, 가장 행복한 신이며 그 아름다운 성질은 몸의 균형에서 부드러운 몸매로 나타난다.그리고 에로스는 절제하는 덕을 지니며, 쾌락과 욕망을 지배하며, 쾌락과 욕망과 지배하며 어떠한 쾌락도 에로스 만큼 강할 수 없다. 에로스는 쾌락이나 욕망을 지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제 할 수가 있을 것이다.마지막 소크라테스의 연설 그는 먼저 아가톤에게 먼저 묻는다.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한 사랑인지, 아니면 대상이 없는 사랑인지 묻는다. 그러자 아가톤은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한 사랑이며 대상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대상은 그에게 결핍된 것인가 아닌가? 그가 가진 것이라면 사랑할 까닭이 없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무엇을 사랑한다면, 그에게는 그것이 결핍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에로스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가 아닌가? 아가톤은 모순에 빠졌다. 에로스는 아릅답다고 했는데, 에로스는 또한 아름다움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자신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소크라테스 그는 앞서서 연설한 사람들의 에로스 신이 완벽함 그 자체라는 찬미에 대해 반박을 하며 에로스 신은 결핍된 상태의 신이라고 규정한다.이 후 소크라테스는 그가 젊었을 때 여성사제 디오티마라에게 들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프로디테가 태어나던 날 신들이 잔치를 했는데, 궁핍의 신 페니아가 술에 취해 잠든 풍요의 신 포로스와 동침해서 에로스를 잉태했다.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생일날 잉태되었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되었고, 어머니를 닮아 항상 가난하면서도 아버지를 닮아 선하고하게 된 이유도 있지만 말이다.1학년 때는 사랑을 다뤘다는 얘기만 기억했을 뿐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2년이 지나고 다시 접했을 때, 그때와는 또 다르게 느껴지고 좀 더 책의 본질에 접할 수 있었던 것 같다.“향연”에서 다루는 사랑은 추상적, 이론적이기 보다는 윤리적이면서 실천적으로 서로의 의견에 대해서 논쟁을 해나가는 대화형식으로 구성 되었으며, 등장인물 각 각은 이런 주장을 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언급하며 사랑이 강하다는 것과 에로스는 만물에 깃들어 있으며, 만물의 조화, 즉 사랑이 건강과 질병, 재해와 번영을 다스린다고 말한다. 또 한사람은 인간은 원래 두 사람이 하나였는데 쪼개졌기 때문에, 에로스를 통해 합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한사람은 사랑이 용기, 자제력, 올바름, 예술적 창조력의 근원이라고 말한다.여기서 주로 언급되는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분신으로서, 아프로디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에로스를 소크라테스는 그 자체로 선함과 아름다움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라고. 사랑은 창조의 힘이며, 육체의 창조는 자식을 낳고, 정신의 창조는 업적을 낳아서 불멸을 향한다고. 또 인간은 아름다움을 사랑하며 살고, 절대적 아름다움을 깨달아 그 아름다움에 조화 된 삶이 가장 숭고한 삶이라고 말한다.플라톤은 저서 에서 이번 과제의 중심인 두 번째 파우사니아스의 연설 파우사니아스(Pausanias)는 파이드로스의 에로스 예찬론만으로는 부족 하다고 하며 추가적인 예찬론을 펼치는데, 여기에서 아프로디테의〔천상성과 지상성〕 즉, 두 명의 에로스를 말하게 된다. 천공신 우라노스로부터 어머니 없이 태어난 우라니아(천상의) 아프로디테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제우스와 디오네의 사이에서 태어난 판데모스(지상의, 대중적인) 아프로디테이다. 앞의 것은 고매한 천상의 사랑을, 뒤의 것은 관능적인 지상의 사랑을 뜻한다. 유명한 부조(浮彫) 는 이 플라톤의 해석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이 부조의 정면은 두 처 아도니스는 이제 막 피어오르는 젊음으로 묘사되고 있다.이 작품은 에만 실려 있던 시이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에 나오는 비너스와 아도니스 신화를 소재로 셰익스피어가 쓴 1,194행의 장시로, 여덟 살 연상의 앤 해서웨이와 자기 자신의 체험에다 상상력을 더해 사랑의 심리를 감미롭게 묘사하였다. 말을 타고 사냥하러 나가려는 미소년 아도니스를 비너스가 억지로 끌어내려 키스하고 사랑해 주려고 유혹하지만, 아도니스는 섹스에 눈뜨지 못한 총각으로 멧돼지 사냥에만 더 열을 올린다. 아도니스가 던진 창에 찔려 화가 치밀어 공격하는 멧돼지 엄니에 사타구니가 찔려, 아도니스는 피를 흘리며 죽게 되고 그의 피는 붉은 아네모네(바람꽃)로 피어났다는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가 주 내용 이다. 세익스피어의 비너스와 아도니스를 읽어보면, 비너스는 정말 염치도 없이 끈질기게 아도니스에게 구애한다. 그야 말로 끈덕지게 달라붙어서 노골적으로 유혹한다. 자신의 입술을 아도니스의 입술에 대고 짓누르고 목을 감아 떠나지 못하게 하며 넘어뜨려 청년 자신이 군신 아레스마저 무너뜨린 바로 그 여신이라고 말한다. 그럴수록 아도니스의 마음은 멀어져 갈 뿐이다. 케스토스를 사용해서도 아도니스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할 만큼 여신은 외형이 추해져 있었다기 보다는, 아도니스가 본 것은 그녀의 미가 아니었다. 아도니스가 본 것은 닳을대로 닳은 한 여인의 정염으로 이 작품에서는 그려지고 있다. 수백 번 사랑을 거친 여인, 매일 아침 그녀는 처녀로 새로 태어난다고는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몸은 새로 태어날 수 있다 하더라도 마음마저 새로 태어날 수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순전히 정염만을 불태우는 사랑은 수만 번 하더라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를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한계다. 늘 거기서 거기인 사랑이 한계다. 비너스의 변신은 언제나 외형에 그침을 이 책에서는 묘사하고 있는 듯 하다.그림 티치아노作 2.개인 감상이 작품을 접했을 때, 딱 떠오르는 그림이 이 그림이었다. 비너스와 아도니스는 수없는 화가들의 소재가 되 하며
Ⅰ.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대하여ⅰ.서론고이즈미 수상이 공공연하게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있다. 일본 국민과 아시아의 이웃들에 대한 도발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수상의 이러한 행동은 본질적으로 시대착오로 가득 찬 기만 행위이다. 여기서 ‘시대착오’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행위가 단지 시대에 뒤떨어진 행위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고이즈미 수상의 참배는 20세기 전쟁의 무수한 희생자를 딛고 이루어진 일본의 역사를 전혀 성찰하지 않는 오만이며 수치를 모르는 짓인 것이다. 그러나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는 일부 언론의 강력한 지원까지 받고 있다. 또, 국민의 영광된 역사를 주장하는 역사수정주의자들도 지원사격에 나서고 있다. 국민의 영광된 역사를 주장하는 자들은, 동시에 국민에게 영광을 가져다준 순국영령들을 제사지내는 것 역시 지지한다.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는 그들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지원을 배경으로 공공연하게, 마치 아시아의 이웃들을 자극이라도 하겠다는 듯 똑같은 상황이 8월이 되면 되풀이 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그러한 행위의 부당함을 밝히는데 초점을 두고 논하겠다.ⅱ본론그렇다면, 이러한 야스쿠니는 어디로 귀결되는가. 나카니시 데루마사가 그야말로 야스쿠니를 위해 쓴 글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정이 나온다. “야스쿠니 신사는 국가에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위한, 다시 말해서 전몰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시설이다. 그것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켜가는 것은 국가의 안보정책에서 제 1급의 중요 과제이기도 하다.”)즉, 야스쿠니를 위하는 것은 다른 말로 순국 영령을 위하는 것이며, 그로써 앞으로도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본인들이 나오기를 기대할 수 있다고 단적으로 말하고 있다. “국가의 안보정책 제1급의 중요과제‘ 라는 건 극히 솔직한 발언이다. 이렇게 하는 말은 야스쿠니를 위해 하는 말이 누구에 의해, 무엇을 목적으로, 어떻게 나온 것인지를 실로 분명하게 보여준다. 야스쿠니를 위해 말한다는 것은 야스쿠니를 말한다는 것이 아니다. 전사자들의 유족이나 친지들 또한 야꾸로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거나 그것을 계속 고집하게 되면 ‘전쟁을 하는 국가’로 나아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추진하는 고이즈미 수상은 야스쿠니 참배를 집요하게 계속했던 것이다. 본오도리) 같은 사례로 진실을 미화시켜 덮어 가릴 수는 없다.또한 순국 영령을 제사지낸다고는 하나 모든 전쟁 희생자들을 다 제사지내는 것은 아니며, 일정한 ‘역사해석과 역사관’에 근거해서 죽은 사람을 ‘선별’해서 제사지낸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키나와 전쟁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숭고한 희생정신’ 따위의 말로 포장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미화를 시켰지만 실상 오키나와에 가득 찼던 것은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서로를 무참히 찔러대는 죽음과 공포였다. 그 죽음은 국가가 제사지내지 않는 죽음이다. 국가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린 사람들, 결코 국가가 제사지내지 않는 그 영혼들은 야스쿠니를 둘러싼 미사여구가 허위에 지나지 않음을 가르쳐준다. 전쟁을 치르는 국가는 그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들을 제사지내는 국가이다. 그 이면에는 국가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 영혼들이 나라 안팎으로 넘쳐나고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일본인의 마음’을 사칭하여 국가와 야스쿠니의 연속성을 운운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인 허언에 불과할 뿐이다. 국가에 의해 죽었지만 결코 국가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 영혼들이 그런 국가의 연속을 바라겠는가.20세기는 그처럼 무수한 죽은 자들이 국가에 다시 질문을 던지는, 또는 다시 질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이다. 죽은 자들의 숫자는 무의미하게 누적된 것이 아니다. 야스쿠니의 제신 숫자, 특히 대동아전쟁에 희생된 2,133,823주라는 숫자는 순국 영령이라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국가가 순국영령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숫자라 하겠다.더욱이 국가에 의해 죽음을 당한 나라 안팎의 무수한 영혼들, 국가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그 영혼들에게는 야스쿠니의 존재 자체가 기만이다. 그들 그러한 논의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재일한국인,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재일조선인 마을 우토로가 있었다. 이번 발표에서도 재일교포 주제가 2건이나 있었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한 민족이 모여 사는 소집단은 그 상위 집단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우토로 마을에 대한 논의가 일본에 있는 재일교포에 대한 논의라 생각하고, 거기에 초점을 두고 우선 우토로 마을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이 문제에 대한 앞으로의 한·일 양국 간의 방향을 논하도록 하겠다.ⅱ본론마지막 남은 “징용 조선인 촌” 우토로.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위치한 우토로는 1941년 교토군사비행장 건설에 끌려온 노동자 1천3백여명의 집합 합숙소였다. 일본 패전 후에는 규슈, 후쿠오카 등지로 광원으로 징용됐던 조선인들까지 이곳으로 모여들어 지금의 조선인 부락을 이루게 되었다. 일본 패전 후 우토로 토지를 소유하던 군수업체는 이 땅을 현재 닛산의 자회사인 닛산차체에 넘겼으며, 닛산차체는 1987년 주민들 몰래 서일본 부동산회사에 우토로 토지를 매각했다.여기서 문제가 시작됐다. 고층맨션 건설을 짓기 위해 서일본 부동산회사는 1989년 교토지법에 주민들을 상대로 토지명도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맞서 우토로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뺏기지 않기 위해 우토로에 정착하게 된 역사적 경과와 국제인권법의 적용을 요구하는 등 10여년간 분투했다. 이 과정에 일본 고등재판부는 주민들에게 1백40억엔을 마련하면 중재할 수 있다는 안을 내놓았지만 주민들에게는 이같이 막대한 자금은 있을 턱이 없었다. 결국 주민들은 패소했고 2000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주민의 강제퇴거를 명령했다. 현재 땅 주인은 서일본 부동산회사에서 한 일본인 개인 명의로 넘어가 있는 상태로, 우토로 재일동포 65세대 2백3명은 언제 퇴거 판결이 강제 집행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 문제에는 한일협정도 연관되어 있다). 한일협정)은 지난 1965년 체결됐지만 이들은 국내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일본 내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인 역시 가장 큰 책임은 일본 정부와 지자체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정부의 능동적인 대응과 관심이 제일 필요하다고 본다. 이들 우토로 주민은 바로 한-일 역사의 희생물이기 때문이다.한국이 좌우 이념의 대립이 심했던 시대에 일본도 6,70년대 좌우 대립이 매우 심했으며 그 폭풍의 한복판에 놓여 있던 이들이 바로 재일 조선인들이었다. 당시 한국과 수교되면서 한국 정부측은 재일 조선인 가운데 친정부 입장만을 밝힌 사람들만 한국 국적으로 선택적으로 받아들였으며, 나머지 가운데 상당수는 일본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재일교포는 이 당시 국적을 취득했다. 하지만 대다수 우토로 주민들은 한국 국적도 선택하지 않고 일본 국적도 받아들이지 않은 조선적(籍))들로, 이들은 어느 측에게도 속하지 않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회적 약자로서 방치돼 온 것이다. 우토로 마을의 이들 ‘조선적’이 ‘조선적’을 선택한 이유는 정치적인 배경이 북한인 이유도 있지만, 고국을 떠나 이국 땅에 살면서 분단된 어느 나라에 속하기 싫어서 통일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토로 문제가 전적으로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ⅲ.결론교토비행장공사 때 형성된 한바를 중심으로 거주공간이 형성되어 지금의 우토로가 형성되었다. 이 거주공간은 1945년 이후에도 계속 다른 조선인들이 유입되면서 지속되었다. 우토로는 교토비행장과 일본 국제항공공업회사의 건설과정과 연결되어 있으며, 토지의 소유가 일본 국제항공공업회사였다는 점 등에서, 지역의 기원은 일제의 전시정책에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이렇게 형성된 공간이 해방된 후에도 미국의 점령정책, 일본의 재일조선인정책 속에서 계속 유지되어왔다는 점도 주요 요소로 들 수 있다.현재 가장 문제시되고 있는 거주권 문제의 역사적 기원이라는 차원에서 일제의 전시정책과 일본 국제항공공업회사의 책임은 분명하다. 교토비행장 공사장의 조선인들의 노동 상황은 전시동원정책 속에서 자신의 생존전략을 어떻부터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에 능동적이고자 하는 선택인 것이다. 실제로 결혼적령기의 여성(25-29세)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있는 경우는 30,6%에 이른다고 한다). 결혼에 대한 부정적 태도와 기피현상은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고 있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여성의 결혼기피와 저출산 현상의 사회적 배경은 무엇일까? 급진적인 여성의 의식변화에 의한 결과로만 이해할 수 있을까? 결혼과 육아, 나아가 가정과 가족이 여성을 억압하고 여성의 사회진출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현상이 일본사회에 지속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러한 측면에서 현대 일본여성이 당면한 사회적 현실과 여성지위 개선노력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ⅱ본론일본의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의외로 결혼?출산에 대해 강한 지향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즉 대부분의 여성은 고등학교 혹은 대학을 졸업하고 일정기간은 취직을 원하나 결혼과 출산을 계기로 가정에 들어가 육아를 마친 후 재취직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일을 우선으로 하는 여성의 경우에도 반드시 결혼과 출산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결혼하면 가사와 육아가 대부분 여성에게 부담되는 현상을 보고 지금은 결혼과 육아보다도 자신은 일을 우선시하겠다는 것이다. 전업주부를 희망하는 여성도 가능하다면 결혼과 일의 양립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일본의 사회구조는 이러한 여성을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즉 남녀고용 균등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노동력으로 인정하고 승진의 기회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성에 준하는 혹은 능가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여성이 살아남을 수 없는 기업환경으로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결혼과 직업의 양립은 상당히 곤란한 현실에 놓여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또한 출산을 경험한 여성의 경우에도 문제점은 나타나고 있다. 8-90%의 영유아를 갖은 어머니들이 양육의 어려있다.)
정보화시대 교사상불가에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말이 있다. 우주의 만물은 항상 돌고 변하여 잠시도 한 모양으로 머무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보화 시대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매일 어디에선가 새로운 정보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으므로 그 양 또한 매우 방대하다.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는 이러한 지식이 곧 자원이며 이런 지식들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인재의 육성이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시대에 잘 적응해서 수많은 정보들 중에서 가치 있는 지식을 창출해 내 수 있는 창의성과 지식을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전한 인성을 가진 인재들을 육성하려면 그것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의 교사상도 사회에 변화에 맞게 달라져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먼저 학생들에게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능력과 태도를 길러 주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지식정보화 사회는 수많은 정보들을 토대로 가치 있는 지식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한다. 따라서 교사는 이런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 주입식으로 지식을 전달해주는 수업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들 스스로 주제에 대해 탐구하고 토론하는 가운데 의미를 구성해 낼 수 있도록 하는 수업을 통해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길러 줄 수 있어야 한다.다음으로 학생들의 인간성 함양을 위해 노력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지식정보화 사회의 주요 자원인 지식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위험한 무기가 될 수 도 있는 가치 있는 자원이 될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토대로 한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학생들이 올바른 인격을 형성하고 바람직한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마지막으로 정보화 능력을 갖춘 교사가 되어야 한다. 교과목에 대한 전문 지식을 기본으로 컴퓨터나 인터넷과 같은 첨단 기자재를 이용하여 학생들에게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지식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기본적인 외국어 실력을 갖추어 세계화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식정보화 사회의 달라진 교육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학생들에게 누구보다도 먼저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인간이 가치있는 자원이자 경쟁력인 지식기반 사회에서 교사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의 육성에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다. 교사는 교육이 인간 형성을 위한 전문적 과업이라는 신념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사회의 흐름을 먼저 읽고 교육 혁신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창의성과 건정한 인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 낼 수 있는 자질을 갖추는 것이 바로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교사상이라고 생각한다.
200502720 일본어과 이현정일본사회와 문화에 대한 견해-서론-다른 나라와의 경기에서는 져도 ‘한일전’은 꼭 이겨야 한다. 이 경기가 있는 날은 모두 TV 앞에 모여 관전한다. 왜 꼭 ‘일본’ 이어야만 하는 것이며,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걸까?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이야기 할 때, 양국은 일의대수(一衣帶水)의 나라라고 말한다. 하나의 오비(おび)로 묶여있 듯이 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근접해 있는 나라라는 뜻으로서 유사 이래 유구한 관계를 맺어왔으며, 양국은 서로의 역사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근대 이전까지는 한국이 중화문명의 매개자로서 문명화의 역할을 하였고, 근대 이후로는 일본이 서구문명의 중개자로서 역할을 교대하였다. 그런데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일컬어진다. 지리적, 문화적 근접성에 비해 심리적인 거리는 멀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즉, 상호인식상의 갈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상호인식상의 갈등은 인접국가 간에 있을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지만 한일 간에는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그렇게 때문에 앞에서 말한 ’한일전‘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일본사회와 문화에서의 역사관에 초점을 두고 상호인식에 대한 특징을 개관해보고 나아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 보고자한다.-본론-이번 ‘일본사회와 문화’수업을 들으면서 일본과 한국의 역사적 전개 양상을 살펴보았는데, 공통적인 현상으로서 몇 가지 특성을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첫째, ‘해바라기성 주변문화의 갈등양상’이다. 문화에는 중심을 향하는 해바라기적 속성이 있는데 한국과 일본의 상호인식의 전개과정을 보면 누가 더 문화의 중심부에 가깝게 있느냐 하는 문제로 우위를 다투는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문화의 중심이 중국에 있던 전 근대 시기에는 한국이 중국에 더 가까웠던 만큼 ‘소중화’로서 일본을 문화적으로 변방시. 야만시하였다. 변경에 처했던 일본은 19세기 중반 새로운 서구문명이 밀려오자 주변성에서 탈피하여 새 중심으로 나아갔다. 국제질서와 문화의 중심이 서양으로 옮겨졌다는 것이 확인되자 일본은 과감하게 아시아를 벗어났으며, 그 새로운 관점에 서서 조선을 미개, 야만시하였다. 문명관과 상호인식의 대역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변경문화의식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서로 상대방의 중심성을 인정해주지 않고 아류로 멸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전근대시기 한반도로부터 문물을 수용하였으면서도 중국문호의 아유로 취급하였고, 근대 이후에는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문화를 수용하였으면서도 서구문화의 아류라고 하면서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둘째, 상대에 대한 인식이 우월감 속의 열등, 열등감속의 우월이라는 분열적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 이전까지는 한국의 문화선진, 전수의식과 일본의 무력우위 의식의 대립이라는 양상을 보였다. 이 시기 일본은 문화의 열등과 군사우월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근대 이후에는 대세가 역전되었다. 이 시기 한국은 일본에 대해 전통적인 문화우월감, 적대감과 현실적인 군사강국, 근대 선진국이라는 현실 사이에 자기분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분열적인 복합심리 속에서 양국은 모두 열등감을 상대방에 대한 과장된 우월과 멸시관으로 표현하였고, 그것을 통해 감정적인 위안을 얻고자하는 경향을 드러내기도 하였다.셋째, ‘근친증오’현상이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고대 이래 인종과 문화적 요소에 있어서 공통적 요소가 많다. 그러다가 긴 세월의 역사적 경험과 환경적 조건에 의해 이질적인 의식과 가치를 가지게 되었고 접촉과정에서 갈등과 대립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크게 보아 ‘대동소이(大同小異)‘ 하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양국은 ’대동‘보다는 ’소이‘에 집착하면서 상호멸시관을 가지고 있었다. 양국 모두 상대방에 대해 인정해 주지 않고 평가에 대해 인색한 점도 공통적이다.넷째, 자민족중심주의 현상을 들 수 있다. 조선후기에 나타난 ‘조선중화주의’와 ‘일본형화이관념’의 대립양상이 좋은 예이다. 이것은 변방문화의식에서 탈피하려는 나름대로의 자의식에서 나온 시도이지만 독선과 배타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유사이래 장구한 역사 속에서 한일관계는 때로는 부자연스러운 관계를 지속해 왔다. 현재의 상호인식은 수천년 간에 걸친 집단적 체험의 산물이요, 역사퇴적의 결과이다. 따라서 간단히 바뀌어지거나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특히 근대에서의 ‘잘못된 만남’에 의한 갈등은 아직 청산되지 못한 채 미래에 대한 멍에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의 한일 관계사에 논란들에 대해 한일 양국이 전혀 상반된 결론을 제시하고는 있으나, 이들이 근거했던 자료 자체가 서로 달랐던 것은 아니었다. 동일한 자료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입장이나 시각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서로 달랐던 입장이나 시각이란 각각의 견해들이 제시된 한일양국간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였다. 고대 한일관계사와 상호인식의 문제가 근현대사의 연구와 같은 경향을 띄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 기인하는 것이었다.요즘 우리들은 일본 정치인들의 한일합병의 당위론이나, 전후처리에 대한 무책임한 발언, 그리고 독도 영유문제과 같은 역사적 의식이란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는 극우적인 발언이나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선후주종, 지배 피지배 관계에 치중하여 민족적 자존심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값싼 내셔널리즘은 곤란하다.우리들이 극일(克日)에서 시작 된 일본에 대한 관심이 지일(知日)로 바뀌어 가고 있듯이, 이러한 일본의 막연하고 이기적인 선입관에 대하여 감정적인 반발로 일관 할 수만은 없다. 일본이 유치해 질 수록 우리는 더욱 어른스러워져야 하며, 그렇게 해야만 일본의 국지적 전략에 이용당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