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주 론1. 개론정치의 초기 기초는 고대 그리스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도덕의 중점을 둔 정치체계로 흔히들 말하는 이상적인 국가(유토피아)의 국가를 지향해왔다. 중세로 넘어가면서 종교(기독교)의 힘이 강해지면서 초기 도덕과 종교의 윤리가 융합된 정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예로 십자군은 신의 이름으로 자신과(기독교) 다른 종교를 가진(이교도)이들을 타압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신국론이 한참 강세를 부리던 시대에 태어 났습니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이때가 피렌체가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속에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 서기관 일을 해오면서 약소국과 강대국들과의 외교를 성립 해 나가는 역활을 해왔다. 이런 일을 해오면서 정치의 흐름을 읽는 눈을 갖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국가관의 관계는 힘의 논리로 좌우 된다는 간단한 이치를 깨닫고 된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메디치가가 다시 새로이 피렌체 정권을 잡으면서 그를 반역집단으로 몰아넣고 쫓아내자 별할일이 없어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 그가 새로이 정권을 잡은 로렌초에게 바친 저서이다. 군주론의 내용은 권모술수과 책략을 중점으로 두고 있는 현실정치론이다. 국가관의 관계는 계약보다는 힘으로 유지되고 국가에게 이득이 된다면 어느정도의의 악행도 저질러도 된다는, 쉽게 말해 결과만 좋다면야 수단과 방법은 정당화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군주론을 통해 정치사상이 도덕과 종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정치사상은 중세의 신국론에서 근세의 현실정치로 바뀌게 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2.'군주론' 집필의 시대적 배경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서 자신의 조국인 이탈리아를 재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자 했고, 이는 그 당시 이탈리아가 처한 사오항과 무관하지 않은 거이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탈리아는 로마 제국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외부의 끊임없는 침입으로 사회 혼란이 가중되어 있었고, 이탈리아 반도는 통일되지 못하고 여러 도시 국가들로 분열되어 있었다. 즉, 15세기 말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은 프랑스와 독일이 통일된 국가 형태로 진전되어 가는 거소가는 달리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부터 지속된 국가 분열이 더욱 악화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마키아벨리로 하여금 사회 안정과 이탈리아 통일의 해결책을 찾도록 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집필한 저작이 바로 '군주론'이라 할 수있다.3. 군주론의 주요 논점이탈리아의 통일과 안정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마키아벨리는 이에 대한 답으로 '강력하고 전제적인 군주'를 제시 했다. 사회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사람은 군사력과 지도력을 가진 전제 군주라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사회 혼란의 해결점을 일인 독재의 강력한 군주에서 찾았고, 이러한 군주에 대한 논의가 바로 '군주론'의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다.이상적 군주'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논의는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나뉜다. 첫짼遁 군주가 갖추어야 할 외적 요건에 해당하는 내용이며, 둘째는 군주의 인물됨에 대한 내용, 그리고 셋째는 군주에게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조언에 대한 내용이다.?. 군주의 외적 요건먼저, 첫째로 '군주가 갖추어야 할 외적 요건'에 대해 알아보자. 이는 다름아닌 군주 '자신의 군대'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자신의 군대를 가져야만 자신의 지위와 국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군사력을 중시했다.실제로 이탈리아에서 권력을 상실한 통치자들은 모두 '군사적 취약성'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마키아벨리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강력한 '자신의 군대'가 필수적임을 역설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항상 기본적으로 전사로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머저 자신의 군대를 직접 통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주의 인물됨둘째로 '군주의 인물됨'에 대해 논의한 내용을 살펴보자.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관후함과 인색함, 잔인함과 인자함, 사랑받는 거과 외경받는 것등, 군주의 인물됨과 그에 따른 행동들 중 어떠한 방향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논의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사적 개인이 아닌 공적 개인인만큼 사적 개인이 가졌을 때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덕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예를 들어 사적 개인은 인색함보다는 관후함을 가지는 것이 좋지만 군주의 경우는 꼭 그렇지는 않다는 주장이다. 마키아벨리는 사적 개인이 가졌을 때 바람직하다고 평가되는 관후함, 인자함, 신의 등은 군주에게 커다란 해악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마키아벨리는 관후함을 가진 군주는 자신의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과시적으로 낭비해야 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인색함을 가진 군주는 오히려 세입을 풍요롭게 하여 외적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으며, 또한 신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대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색함을 가진 군주가 진정으로 관후한 군주라는 주장이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신민들을 단결하게 하고 충성스럽게 하려면 잔인하다고 불리는 것에 개의치 않아야 한다고 본다. 또한 군주는 사랑받기보다는 외경의 대상이 되어야 신민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본다. 사랑받는 것과 괴경을 받는 것을 모두 겸비하기란 어려운 일이므로 한쪽을 택해야 한다면 외경을 받는 거싱 더 좋다고 보는 것이닫. 인간이란 원래 은혜를 모르고 변덕이 심하여, 위선자요, 염치를 모르는 데다가 몸을 아끼고 물욕에 눈이 어두운 속물이기 때문에 군주에게 금세 등을 돌릴 수 있다. 인간은 외경하는 자, 즉 두려워하는 사람보다 애정을 느끼는 사람을 더욱 쉽게 배반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사랑받기보다는 외경을 받아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민중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우리는 마키아벨리의 인간관도 알 수 있다.군주의 인물됨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마지막으로 '군주는 신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해 논의한다. 약속을 지키는 일이 기본적으로 덕으로 알려져 온 바와는 달리, 마키아벨리는 군주라면 과감히 약속을 깰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약속을 지키는 일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면 약속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무릇 군주라면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의도 저버릴 줄 알아야 하며, 자비심을 버리고 인간미를 잃고 때때로 반종교적인 행동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실제 군주는 인색함, 잔인함 드으이 덕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사적 개인으로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덕들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군주가 보통 존경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성품을 갖지 않았더라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군주에게는 위장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물론 군주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덕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비행을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를 읽고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는 Korea’s place In the Sun의 한글판이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각 신문의 서평란은 호평과 혹평으로 대립되었다.“남한과 북한, 미국에 사는 한국인까지를 조명하는 구체적이고 고급스러운 한국론”또는 한국 사람들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는 미국적 시각에서 쓰인 동아시아 문명강좌에서 쓸 한국에 관한 독본”등으로 말이다.책의 제목은 한국현대사이지만 한국의 고대에서 현대까지를 포괄하여 구체적인 한국론을 미국학자의 시각으로 담아내고 있다. 한국전쟁에 대해‘수백만의 명의 목숨을 앗아간 갈등과 혼란의 세기도 만약 통일된 한국이 한국인이 말하는 그런 자유를 가질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비극은 전쟁이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 했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그는 한국은 더 이상 유교적 덕(德)과 통치술이 빼어난 도(道)의 나라가 아니라 급속한 산업 성장, 전속력으로 달려온 근대화의 나라라는 관점과 그리고 그 자신의 입장에서 서술하였다. 즉, 두 나라 두 문화 사이에 서 있는 한국현대사와 한미관계를 연구해 온 미국인으로서 이 책을 썼다.저자의 말은 다음과 같다“만약 내가 한국 독자들을 위해 썼다면 매우 다르게 서술했을 것이다. 최근에 한국 학자들이 내가 열심히 씨름해야 할 필요가 있는 한국현대사에 대한 빼어난 성과물을 풍부히 내놓고 있고 또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익히 알고 있는 주제에 대해 외국인으로서 쓰기도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대신 이 책은 미국과 서방의 독자들을 위해서 썼고 따라서 나는 대부분의 교육받은 독자가 한국 역사에서의 미국 측 이야기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한국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알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가정해야 했다.”한 가지 걱정은 우리나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외국인이 이 책을 한국 현대사의 표준적 저술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독자적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지 못한 신생 독립국의 좌충우돌 모험담으로, 또한 유사 이래 계속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문화적 자양분을 공급 받으며 지탱해온 약소국의 기적 같은 드라마로 이해되어질 수 있었다.커밍스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측면을 중시 하였다. 중국, 일본이라는 다분히 적대적 이웃들과 한반도의 관계를 중심으로 근대 및 근대 이전의 한국 역사를 조망하였다. 그가 정치학자이지 역사학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힘의 역학 관계에 민감한 정치학자 특유의 지적 감각이 넘쳐났다.이 책을 긍정하는 평자들은 커밍스가 한국 역사의 흐름을 바라보는 데 사용한 비교, 유추, 은유의 마법, 즉 반미(反美) 반제(反帝)의 비판의식과 약소국 한국민중에 대한 연민의 정을 보이는 서술기법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적 호소력에 매료되었다. 이 책의 부제목 A Modern History는 A라는 글자가 있기에 맞는 제목인 듯싶다. Modern History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정치사, 외교사로 편향되어 있는 것 같다.전부터 현대사에 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민족해방과 분단 수업을 들을 때부터 현대사를 좀 알고 공부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중 고등학교 때에는 수업시간에 현대사 내용은 거의 하질 않아서 솔직히 현대사에 대해서는 백지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인지 수업도 매우 어렵게 느껴졌고 머릿속에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현대사를 쉽게 설명해 놓은 책이 없나 찾다가 발견한 책이 바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였다. 이 책처럼 한국사 전체의 맥락에서 하나의 일관된 관점으로 조망하는 한 사람이 쉽게 쓴 책은 드물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한국현대사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거부할 수 없는 선택인 것 같았다.수준 있는 서평들의 찬사에서 보듯, 한국현대사에서 브루스 커밍스의 위치가 독보적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나는 그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학문적인 겸손함을 보일 때 곁다리로 쓴, '나는 20세기 한국 역사에 대한 판단에는 자신 있다‘고 한 말에 잠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건 사실이기 때문이다.커밍스가 이 책 전체를 통해서 묻고 있는 질문은 근대 한국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냈는가, 어떻게 이룰 것인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또 부차적으로는 미국인에게는 이해 안 될 한국인의 행태인 교육열, 가부장제 등을 이해시키기 위해 식민지, 전쟁, 쿠데타, 산업화, 민주화, IMF, 햇볕 정책 등의 현대사를 중심으로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종횡한다. 그의 설명을 따라가면서 한국 전쟁 혹은 미국 대외정책 전문가로 알고 있던, 혹은 반체제 인사들 편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은 인식이 바뀔 것이다. 그는 한국 전문가요 씁쓰름하고도 눈물나게 고맙기도 한 몇 안 될 진정한 지한파인 것이다.
책 : 동방견문록(마르코 폴로)제목 : ‘뛰어난 역사가 마르코 폴로’? 독후감(讀後感, one's impressions of[after reading] a book). 말 그래도 ‘책 읽고난 후에 느낌’ 아닌가. 비록 그 느낌이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는 난잡한 사유의 나열일지라도 그것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느낀 느낌이라면 ‘솔직한 독후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감, 느낌’인 만큼 솔직한 독후감이 가장 잘 쓴 독후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과정이 즐겁다.? 이 책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논의 된다. 서양에 동양을 처음 알린 책이라는 의미, 그 내용과 지금의 장소를 비교해보는 관점, 작가인 마르코 폴로의 서술방식이나 특징을 통해 논하는 관점, 심지어는 책의 내용이 허구라고 바라보는 관점까지. 모두 흥미로운 주제이다. 하지만 조금은 식상한 느낌이 든다.그래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보려 했던 것이 바로 ‘뛰어난 역사가 마르코 폴로’였다. 마르코 폴로는 참 다양한 서술을 한다. 자신이 속한 장소에서 자신에게 객관적으로 보이는 면들을 말하기도 하고, 문화 공간 가운데 같이 생활하면서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도 말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지금의 우리도, 당대의 사람들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되는 일종의 전설류의 이야기들도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든 전설이든 그것들을 같은 비중으로, 모두가 사실이라는 관점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마르코 폴로가 했던 이야기들 중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도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마르코 폴로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코 폴로는 그것마저도 진짜인 양, 자신이 보고 온 생활환경이 사실이었음을 말하는 것과 같은 비중으로 이야기 한다. 이것은 마르코 폴로가 ‘자신의 모든 말이 사실이라는데’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마르코 폴로는 정말 그렇다고 믿고 그와 같이 말했다.’? 언뜻 보면 ‘그래. 귀가 얇은 사람인가 보지.’라는 식으로 넘어갈 수 도 있지만 위의 생각은 ‘인간의 역사와 과학’을 분석해 볼 때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서 진술된다. 이 때 그가 말하는 역사는 사실일 수도 있고 허구 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사실과 허구의 구분이 그 당시 사람들의 ‘상식’ 또는 ‘과학의 수준’이다. 그런데 이것은 큰 오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의 상식선에서 허구, 전설 정도로 취급되는 역사 중에서 이런 것이 있을 수 있다.옛날에는 주술이 효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무당 또는 마법사가 있었고, 그들은 정치적 사건에 개입하기도 했다. 그 중에는 무당의 도움으로 적대 관계의 사람을 몰아내고 권력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알려진 예로 인현황후가 알지 못하는 병에 걸려서 죽고, 후에 장희빈은 인현황후를 죽이기 위한 굿을 벌인 것 때문에 사약을 받아 죽게 되는 것이 있다.역사는 이런 사실을 우리 지금의 과학 수준에서 해석한다. 무당의 능력 때문이었다는 것은 ‘비과학적’이므로 배제한 채 그 사람에게 어떤 질병이 있었다는 식의 사료에서 유추하여서 그 원인이 병에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장희빈이 무당을 불러 굿을 벌였음은 명백히 알려져 있는 사실임에도 인현황후가 죽은 원인을 ‘굿을 한 것은 영향을 주었을 지도 모르지만, 사실 워낙 몸이 쇠약한데다 오랜 열악한 환경에서의 폐비 생활로 몸에 병이 나서 죽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말을 보고 ‘굿이 효과가 있었구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역사가의 입장에서 당시의 과학적 시각을 반영해서 해석하고 ‘그럴지도 모르지만, 사실…’이라는 말로 사실을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인현황후가 죽은 이유를 밝히는데 굿 이외의 다른 요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 정확한 사실을 탐구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현황후가 죽은 원인에 ‘굿’과 ‘몸이 쇠약함, 열악한 환경’이라는 요소들이 있을 때, 역사가가 ‘몸이 쇠약한 것과 열악한 환경’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하는 데에는 ‘굿은 미신적이고 과학적으로 그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사회적, 과학적 인식이 기반하고 있다는데 문제점이 있다.왜 문제가 되는지 계속 생각해보자. 요즘 ‘초능력’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그런데 만약 그런 굿, 또는 귀신에 의해 사람이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이 과학이 발달하여 증명이 되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영향력이 건강 상태나 환경을 초월할 만큼 크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면 인현황후가 죽은 원인은 ‘장희빈의 굿’이 되는 것이고, ‘쇠약한 몸’이나 ‘열악한 환경’은 죽음에 영향을 미칠 수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는 사실들에 불과해 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무당의 굿이 효과가 없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아닌 유추일 뿐이고, 몸의 쇠약이나 열악한 환경은 인현황후가 죽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되기 위해’ 현대의 시각에서 병이 걸릴 수 있는 요건을 찾아내서 그것 때문이리라 하고 마찬가지로 유추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굿이나 환경이외에 죽음의 원인은 타살 등 다른 것에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사실을 모르는 ‘사건’을 ‘과학(또는 과학에 기초한 상식)’이라는 잣대에 비추어 유추해서 ‘역사’라고 말하고 마치 ‘사실’인양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잣대가 되는 과학 또한 ‘수정 가능한 가설’이기에 역사는 사실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다.? 생각을 정리를 돕기 위해서 플라톤이 예술에 대해서 취했던 입장을 가지고 예를 들어보겠다. 장인이 침대를 만든다고 할 때 그냥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의 설계도를 보고 만든다. 여기서 머릿속의 설계도를 침대의 이데아라고 부르자. 이제 장인이 설계도를 따라 만든 침대들은 모두 이데아의 모방이다. 이번에는 화가가 장인이 만든 침대를 보고 그림을 그린다. 이건 침대를 모방하는 것이다. 이데아의 모방을 모방한 것이다. 결국 예술은 가상의 가상, 그림자의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술은 진리에서 두 단계나 떨어져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앞에서 말한 역사를 생각해 보자. 역사는 당시의 역사가에 의해서 서술된다. 이 때 사실은 역사가의 ‘생각(여기서 말하는 생각에는 과학적 사고, 시대의 상식 등 대부분의 가치 판단이 포함된다.)’을 거치면서 ‘변형’된다. 그리고 이렇게 서술된 역사는 지금의 사람들에 의해서 읽히는데 이 때 또 다시 ‘생각’을 통해서 변형되어 해석된다. 이렇게 되면 역사는 사실에서 2단계나 멀어지는 것이다. 물론 ‘세종대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라는 사실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익히 알다시피 우리가 알고 배우는 역사는 대부분 서술과정에서 역사가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고, 그것은 심지어 의도적 첨가?누락 등에 의해 왜곡되기까지 한다.게다가 더욱 문제는 사실을 인식하고 때론 변형시키기도 하는 통로인 ‘생각’,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보이는 ‘과학’조차도 앞에서 설명했듯이 ‘수정 가능한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점이 또한 참 재미있는 점이다. 사람이 가장 객관적이라고 믿는 과학은 이미 그 근본에서부터 ‘비객관성’을 지닌다.?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을 고려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보겠다. 모든 것을 다 증명할 수 없기에 수학이나 과학에서 논리를 전개 할 때 증명하지 않고 인정하는 하는 것을 ‘공리’라고 한다. 이 공리를 기반으로 하여 모든 논리 전개가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유클리트 기하학의 공리는 평면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직선도 존재하고 이것을 공리로 하여 직선 외 한 점을 지나는 평행선은 1개라는 것을 증명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은 공간도 휘어지기 때문에 평면이란 사실상 존재 하지 않는다고 한다. 엄격히 따지면 현재 우주 공간에서 유클리드 수학은 틀린 게 된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상대성 원리의 공리는 공간은 상대적 이란 것과 빛의 속도는 어떤 상태에서 측정해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리이다. 즉 빛의 속도 일정의 법칙과 공간의 상대성은 증명 없이 인정 하는 것이다.
눈의 역사 눈의 미학을 읽고보는 것과 아는 것, 이 둘을 동일시함으로써 이 책의 논의는 출발한다. 아는 것이 인간의 존재를 증명하기 때문일지는 몰라도 ‘봄’ 과 ‘앎’ 은 인간의 삶을 증명하는 하나의 현실적인 모형인 것이다.인간의 오감 중의 하나에 불과한 본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테마로 작용함을 왜일까? 시각의 역사가 곧 인간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저자의 생각은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의 총망라로써 우리에게 제시된다. 동양적인 고찰은 약간 부족하다고 생각되지만 서양의 역사에서 시각은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시각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가게 마련이다. 전체를 꿰뚫어 보지는 못하지만 나의 시선 안에 있는 것들은 내가 봄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나 또한 본다는 사실로써 존재가 가능하며 이는 인간의 존재론적인 의의를 시각에서 찾음으로써 다시 한번 ‘눈’ 의 중요성, 눈이 ‘본다’ 는 역할을 함의 중요성을 알게 한다.
《살아간다는 것(活着)》위화*작가소개:1960년 중국 저장성(浙江省)의 항저우(抗州)에서 태어났다. 그가 소설가로 나선 것은 1983년,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第一宿舍)〉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이후 〈18세에 집을 나가 먼길을 가다(十八歲出門遠行)〉,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世事如烟)〉 등의 단편과 장편 《가랑비 속의 외침(在細雨中呼喊)》을 내놓으며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그러던 그는 두 번째 장편소설 《살아간다는 것(活着)》을 통해 작품 활동의 일대 전환을 꾀한다. 가파른 중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인간이 걸어가는 생의 역정을 그려낸 이 작품은 장이모 감독에 의해 영화화(국내에서는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어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위화 현상'을 일으키는 일련의 기폭제가 됐다.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장편 《허삼관 매혈기(許三觀 賣血記)》는 위화를 명실상부한 중국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위화의 소설에 나타난 고난 완화 방식위화의 작품을 두 시기로 나누어 볼 때 후반기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가랑비 속의 외침(在細雨中呼喊)》 《살아간다는 것(活着)》《허삼관 매혈기(許三觀 賣血記)》이다. 그 이전 위화의 초기 작품들은 주로 피와 폭력, 죽음을 소재로 더욱 실험적이고 비일상적인 이야기들이었지만 을 기점으로 위화의 작품은 피냄새나는 육체적 폭력을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게 되었고 그의 이야기들은 더욱 일상적이고 친근하고 편안하게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그러나 물론 위화가 이전까지 소재로 삼아온 폭력이 그의 작품속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더욱 정제된 방식으로 작품속에 등장하고 있다. 에서 부귀가 맞닥뜨리는 잔인한 운명은 하늘이 한 인간에게 내린 불가항력적인 폭력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위화가 잔인하고 냉혹한 숙명속의 부귀에게 준 출로는 忍耐 이다. 한차레 한차레 그 앞에 닥치는 고난의 실재를 받아들이고 숙명의 불가항력을 인정한 부귀는 인내를 배운다. 눈물도 절규도 분노도 없다. 끝없는 인내속에서 모든 시련은 녹아든다. 이제 이 이야기 뒤에 또 어떤 큰 시련이 닥친다 하더라도 부귀는 자신의 인내속으로 감싸안고 또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 절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人是槨了活着本身而活着. 사람은 살기위해 사는 것이라고 위화는 말한다.知其不可奈何而安之苦命德之至也. 그 어찌할 수 없음을 알고 운명에 순응하는 것은 덕의 지극함이다.庄子-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중국 민중과 부귀시대배경:중국 현대사와 “복귀”복귀는 지주였던 시절에도 소작농으로 전락했던 시절에도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시골 농부로 조용히 살아가려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복귀가 살았던 시절의 중국이 워낙 파란만장한 시기였기 때문에 복귀 자신은 알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복귀의 인생은 중국 현대사에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중국 현대사를 서술해 보고, 이 중국현대사가 아주 평범한 민초 복귀의 살아가는데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고자 한다.-국공내전-중화인민공화국성립-대약진운동-문화혁명-국공내전살아간다는 것에서 복귀는 어머니의 병 때문에 의원을 모시러 읍내에 나갔다가 국민당군에 잡혀서 강제 징집 당하게 된 후 국민당군의 병사로서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민중 복귀는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국공내전의 참여하게 된 것이다. 국공내전은 반일항쟁이 끝난 후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벌어진 내전이다. 반일항쟁에서 승리 후 국민당과 공산당은 1946년 1월 정치협상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이 합심을 해서 새 국가를 건설하기로 타결하였다. 그러나 양당의 상호불신은 계속되었고, 결국 국민당은 군사력이 앞선다는 것과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그 타결을 일방적으로 부정하고 단독으로 헌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임으로써 전면적인 내전으로 치닫게 되었다. 내전을 시작할 당시에는 국민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하였다. 그러나 1947년 무렵에는 전세가 역적되기 시작하여, 결국 공산단의 공격으로 국민당군은 와해되고, 결국 국민정부는 대만으로 쫓겨가게 된다.-중화인민민주의 성립과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도박으로 복귀의 지주 자리를 빼앗아간 용이는 토지개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산당이 그의 재산을 몰수해서 이전의 소작인들에게 나누어주자 땅 문서를 내놓지도 않은데다 소작인들을 괴롭히다 악덕지주로 몰려 총살을 당하게 된다. 용이가 죽기 전에 복귀에게 한 말은 “복귀, 너 대신 내가 죽는구나.”였다. 만약 복귀가 패가망신 되지 않았다면 용이대신 복귀가 죽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복귀는 도박으로 패가망신 하여 소작농이 되었기 때문에 인민공사로부터 다섯묘의 땅을 배분받게 된다. 이것이 살아간다는 것에 등장하는 토지개혁에 관한 내용이다.국공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초기의 공산당은 신민주주의적 변혁을 목표로 삼아 정치, 경제등에서 여러 활동을 해 나갔다. 신민주주의적 변혁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토지 개혁이다. 공산당에서는 농민을 객가와 지주, 부농, 중농, 빈농, 고농등으로 분류하고, 지주로 분류되면 토지부터 농기고, 가축, 동산까지 몰수하여 민농과 고농에게 분배하였다고 한다.-대약진 운동1958년 중국 정부가 추진한 경제 성장정책이다. 소비를 억제하고 한층 더 저축을 장려함과 더불어 인해 전술에 의한 초고도 경제 성장을 달성하고자 한 운동이었다. 여기서 특히 중시된 것은 철강, 식량의 대증산이었다. 철강을 증산하기 위해서 작은 용광로로 농민이 철을 만드는 것이었다. 따라서 경험이 없는 9천만 명의 농민들이 철광석도 없는 곳에서 심지어는 양철 지붕이나 농기구를 고로에 던져 넣어 대량의 철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든 철은 너무 연성이었기 때문에 무기의 재료로도 사용할 수 없었고, 외국에 수출할 수도 없었다. 인민모두가 모여 쓸모없는 짓을 한 것이다. 식량의 증산을 위해서는 많은 농민이 동원된 대규모 수리 시설의 건설과 동시에 줄기 사이에 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심은 극단적인 심경밀식이 장려 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대 흉작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작물이 어느 정도 익었어도 인해 전술로 동원되어 피로해진 농민들은 추수할 체력조차 없었다. 대약진 운동은 대 실패였다.살아간다는 것에서는 대약진 운동의 전개 과정 및 실패과정을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되고 있다.문화대혁명살아간다는 것에서 현장이었던 ‘춘생’은 문화대혁명 시기에 죽게되고, 복귀에게 친절하였던 ‘대장’은 여자 홍위병에게 끌려가 고초를 겪게된다.문화대혁명은 인민 전쟁 태세에 역행하고 사회주의에 대치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실권파’에 대하여 모택동이 시작한 ‘권력만회’ 투쟁이었다. 문화라는 이름이 붙어져 있는 것은 먼저, 부르주아적인 사상, 문화에 대한 투쟁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 이 후 한 발 물러나 있던 모택동은 공산당내에 새로운 계급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비판하며 이를 개혁할 새로운 사회주의 교육을 제기하였으나 공산당이 이를 적극 수용하지 않자 군을 움직여서 군이 지원하는 ‘무산계급 문화를 창출하는 문화대혁명’으로 발전시켰다. 동시에 모택동은 감수성은 강하지만 현실적인 생활 감각은 비교적 약한 대학생 이하의 청소년들에 주목하였다. 이들은 당이 아니라 사회주의 이념을 체현하고 있는 모택동의 개인에 대한 총성을 맹세한 집단인 ‘홍위병’으로 되었다. 홍위병은 각지에서 폭거하여, 주변의 수많은 ‘실권파’를 규탄, 타도하고 당의 기구와 문화재를 파괴하였다. 그러나 젊은 나이의 홍위병들은 ‘실권파’를 타도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숨어있는 적을 찾겠다며 폭거를 계속하였고, 나아가 홍위병 내부에서도 자기 집단이 자기 편이 더욱 모택동에게 충실하며 진실로 혁명적이라는 ‘정통성’을 무기로 내세우며 서로 투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