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축통림 통도사대한불교조계종 15교구의 본산이며 전국에 100여 개의 말사와해외에 10여 개의 포교당을 관장하는 대본산이며 선원, 강원, 율원, 염불원을 갖춘 총림 이기도 하다.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의 으뜸인 불보종찰이기도 하다.신라 선덕여왕 12년 (643년)에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사리와 부처님이 입으셨던 가사 등을 당나라에서 모시고 왔다. 그 중에서 정골사리와 부처님 가사를 이곳 통도사에 봉안(646년 선덕여왕 15년) 하였기 때문에 적멸보궁 중 으뜸이 된다. 따라서 대웅전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았다.현재 전국의 본산 가운데에서도 선교양종의 대본산으로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최근 조계종의 큰 선지식이었던 구하, 경봉스님 등 수많은 선지식들이 계셨었고, 전 조계종 종정이시고 이곳 영축총림 방장이신 월하예하서 주석하고 계신다.통도사라는 사명의 뜻{첫째전국의 모든 출가자가 이 계단을 통하여 스님이 된다는 의미이다.둘째중생들이 이 도량에서 불법을 가르치고 배우며 수행하여 진리를 깨우쳐 제도한다는 의미에서 통도이며셋째통도사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 인도의 부처님 성지와 통한다 하여 통도이다. 그래서 이곳의산 이름이 인도 왕사성의 영축산과 동일한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통도사의 가람배치남북 자오선상에 축을 유지하고 있는 가람배치로 법당을 기준으로 하여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으로 구분되어 있다.동서를 길게 뻗은 상.중.하로전의 전각 가운데 법당 만을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상로전대웅전 나한전 명부전 삼성각 산령각 일로향각중로전대광명전 용화전 관음전 개산조당 해장보각 전향각 장경각 세존비각 황화각 불이문 영각하로전영산전 극락보전 약사전 만세루 범종각 천왕문 가람각 일주문통도팔경{무풍한송매표소가 위치한 영축산문에서 일주문에 이르기까지 노송이 어우러진 풍광을 만날 수 있다.안양동대일출시 안양암에서 큰절 쪽을 보는 경관으로 안양암의 안양은 극락을 뜻하기도 한다.비로폭포비로암 서북쪽 30미터 거리에 있으며 낙수소리가 일품이다.자장동천자장암 계곡을 따라가면서 이어지는 아름다운 물소리와 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수많은 소가달빛을 받아 연출하는 풍광은 과히 장관이다.극락영지영축산의 수려한 풍광을 담고 있는 극락암의 연못.{백운명고옛날 염불당이 있을 때 들리던 백운암의 큰 북소리.단성낙조임진왜란 당시 영축산 정상에 축조한 성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취운모종옛날 산내 암자인 취운암으로부터 들리는 저녁 종소리가 너무 아름다웠다고 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큰절에서 올리는 저녁 범종소리를 취운암에서 들으면 아름다워 통도팔경으로 보았다는 말도 있다.통도사의 가람배치와 건축 양식{사찰의 배치는 일반적으로 평지에 있으면 평지 가람, 산지에 있으면 산지 가람, 산지도 평지도 아닌 곳에 있을 때는 구릉 가람이라 한다.이러한 구분은 사찰이 어느 곳에 있느냐에 따라 달리 부르는 경우이며 그 안에서 탑이나 금당 그리고 여러 건물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갖고 자리잡느냐에 따라 일탑일금당식, 일탑삼금당식, 쌍탑식, 무탑식, 자유식 등으로 구분한다.또 다른 분류 방법은 건물들을 배치할 때 주축이 동서 방향인지 남북 방향인지에 따라 동서 주축 배치, 남북 주축 배치 등으로 구분한다.{통도사는 위에서의 구분 방법에 따르면 구릉식에 동서 주축으로 자유식이라 할 수 있다. 이 때 자유식은 탑이 자유롭게 배치된 형식을 나타낸다. 그리고 동서 주축이지만 이 주축에 직교하는 남북 부축이 있는 것이 통도사의 특징이다.대웅전을 지나는 부축이 있고, 대광명전을 지나는 부축, 영산전을 지나는 부축 등 주축 하나에 부축이 3개씩이나 있는 특이한 배치 형식이다.통도사가 646년 (선덕여왕15년)에 창건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1300여 년 동안 경역의 확충, 건물들의 보수, 중수, 증축, 개수 등 수없이 많은 변화를 겪었다. 따라서 현존 건물들의 배치가 신라시대의 원형 그대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불당 배치에 있어 주축에 직교하는 부축의 중요 건물인 대웅전, 대광명전, 영산전 등을 보면 조선시대에 중건한 건물들이지만 초창된 것은 신라시대로 올라갈 수 있어 배치의 기본틀은 이미 창건 당시에 잡혀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들어와 많은 전각들이 추보되므로 배치의 세부가 바뀌었고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사역이 확충됨으로서 오늘날과 같은 포치가 되었다.{현재의 통도사는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주축 위에 대웅전과 금강계단을 잇는 부축, 대광명전과 용화전, 관음전을 잇는 부축, 영산전과 만세루가 이어지는 부축 등이 전체 가람의 골격이 되어 이른바 직교형 배치 형식을 하고 있다. 따라서 부축에 의해 나누어지는 외적 공간은 서쪽으로부터 일주문 쪽의 동쪽 방향으로 상, 중, 하의 위계가 설정되어 상로전 지역, 중로전지역, 하로전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이러한 동서의 주축에 남북의 부축 3개가 골격을 이루는 배치 형식은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이다.상로전 지역에는 금강계단이 중심이 되어 대웅전, 명부전, 응진전,삼성각, 산령각 등이 주된 건물이며 종속의 건물들이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 중로전 일곽은 대광명전을 비롯하여 용화전, 관음전, 해장보각 등과 종속 건물들이 있다.{상, 중로전은 입구인 불이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으며 이 불이문은 상, 중로전과 하로전의 경계를 짓고 있다.하로전은 영산전을 중심으로 앞쪽에 만세루가 있고 서쪽에 약사전, 동쪽에 극락보전이 있고 가람각이 천왕문 남쪽에 위치한다. 따라서 하로전은 천왕문과 불이문 사이의 공간을 차지하며 동으로부터 일주문을 통과하여 천왕문과 불이문을 거쳐 상로전의 정점인 금강계단에 이르도록 하였는데 상, 중, 하로전의 구역과 구역 사이에는 적당한 크기의 구역 중정을 두어 외부 공간과 건물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이렇듯 어느 구역에서도 대칭의 배치를 볼 수 없는 것이 통도사의 가장 큰 특징이다. 스님들의 거처인 요사는 지형 조건에 맞추어 남쪽과 북쪽에 두어 주동선이나 부동선에 걸리지 않도록 자리잡고 있다.{현대종교적 건축물과의 비교통도사는 우리나라 전통사찰의 양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사찰중의 하나다. 요즘 새로지은 포교당이나 사찰들에 비해 한국의 이미지와 정서가 많이 배여있다. 비록 현대에 맞게 개조도 하고, 많은 보수를 하였지만, 옛 정취는 그대로 볼 수 있었다. 현대적 사찰의 특징은 너무 인위적인 느낌이 많이 든다. 내부에도 현대사람들에게 맞추어 많은 건물들이 입식을 취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작가의 나에게 거의 신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하야오의 작품중 가장 처음 접한 작품이 이다. 물론 나의 어린시절에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작품 이 하야오의 작품인지 몰랐으니깐 나에겐 토토로가 첨이 된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가운데 환상적인 영상과 작품내의 상상력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토토로를 처음 봤을 때 환상적인 이미지가 환상으로 보여지지 않고 나에겐 현실처럼 느껴졌었다. 그 후 고등 학교 때 나온 하야오의 작품을 거의 다 찾아 볼 정도로 팬이었다.그땐 물론 모두가 불법 복제 비디오였다. 지금은 불법 복제 CD지만...그 시절에 보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홍돈(일명:붉은돼지)에 대해서 적어 볼까한다.또 다른 상황과 시기에서 바라본 홍돈에 대한 느낌을......은 미야자키의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한 작품이기도 하다.에서 미야자키는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대로 만들고 싶은 대로 편하게 만든 작품인 듯한 인상을 풍긴다. 그 결과. '미야자키 자신만 만족한 작품'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그러나 92년도의 블록버스터 을 본 사람들이라면 '대중적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은 프랑스 앙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해 유럽에 미야자키란 이름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은 '반파시즘'이 명확히 투영된 미야자키의 가장 개인적인 작품으로 과거 일본 공산당 지지자였다가 현실 사회주의에 실망하고 단지 이상으로서의 사회주의만을 지지하는 미야자키 자신에 관한 영화로 반파시스트 '포르코 롯소'는 현실의 미야자키 자신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비행장면이 나오지 않은 작품이 없을 정도로 비행장면에는 이미 도가 텄고 실제로도 비행기광인 미야자키 감독이 이번엔 아예 비행기와 파일럿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1920년대 초. 아드리아해를 배경으로 프리랜서 비행사로 활약하는 '포르코 롯소'에 관한 이야기이다.줄거리전쟁을 치루는 동안 '마르코(포르코의 원래 이름)'는 이탈리아의 에이스 비행사로 활동했던 부끄러운 과거 때문에 스스로 마법에 걸려 돼지로 변신했고. 당시 대두하고 있던 '파시즘'을 증오해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간다.하늘을 사랑하는 자만이 그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그는 공적(空敵)'맘마 유토단'으로부터 고객들의 운송로를 지켜주는 댓가로 돈을 받으며 살아가는데 그 때문에 공적들과 대적하게 되고 공적들은 포르코를 처치하기 위해 '슈나이더 컵'에서 2년 연속 우승한 경력이 있는 '도날드 커티스'라는 부유한 미국인 파일럿을 고용한다.도널드 커티스에 의해 자신의 비행기가 심하게 파손된 후 포르코는 비행기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피오'라는 17세의 당찬 소녀를 만나는데 그녀는 비행기 설계면에서 포르코의 인정을 받아 그의 비행기를 재설계한 뒤 그를 따라나선다.그녀는 섬에서 맘마 유토단의 위협을 받던 상황에서 당당히 담판을 벌여 위기를 넘기기도 하고 포르코를 좋아하는 마음을 당당히 고백하기도 한다.후에 맘마 유토단의 보스가 심판을 보는 가운데 도날드 커티스는 돈을. 포르코는 커티스가 호감을 갖고 있는 피오를 걸고 대결한다.안정된 카메라 워크와 비행정을 조종하는 파일럿의 미세한 동작까지 리얼하고 세밀하게 묘사한 점을 보아 미야자키감독이 이 작품에 많은 애착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또 주목할 만한 것은 포르코의 오랜 친구 '지나'가 부르는 주제가인데 미야자키의 이전 작품들의 주제가와는 상당히 다른 성인취향의 샹송풍으로 작품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작품에 대한 나의 생각이 작품을 이야기하려고 할 때 매우 난감하게 느꼈다. 느낀 점이라면 매우 재미있었으며 특히 공중전은 매우 볼만한 장면 중의 하나이며 남성들의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이때까지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과는 다른 또다른 박력을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안타까운 점이 붉은 돼지에서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초반엔 파시즘이라는 사상이 배경에 깔리는 듯 했으나 내용이 뒤로 갈수록 파시즘이란 사상은 사라지고 단지 전쟁의 구실로만 이용될 뿐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반전을 주제로 하고 있는가? 아니다. 에서 반전에 대한 내용이 있다면 주인공 '포로코'의 개인적 사상에 포함될 뿐이지 전체 내용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그러면 이 작품이 내세우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하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낭만이라면 이 작품은 오락영화로써 밖에 구실이 없어질 것이다. 이 작품은 파일롯의 이상과 그들의 사랑, 우정 그리고 끝없이 높고 푸르른 하늘에의 동경이 확트인 화면과 아기자기하고 활기 넘치는 공중전을 통하여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이러한 면으로 보았을 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늘에 대한 동경이 이 작품에 지배적인 이미지로 깔려진 것 같다. 아니 그것이 이 작품의 전부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늘에 대한 동경은 , , 등에서도 많이 드러나는 것으로 이 작품에서 절정을 이룬다.남성적인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지금까지의 특징은 모든 작품에 여성의 역할을 크게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포로코'라는 남성-비록 돼지지만-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으며 그 '포로코'라는 돼지를 남성의 표본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에게선 보기드문 남성적 작품이다. 그러나, 역시 이 작품에서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특징인 여성은 지금까지만큼은 아니지만 꽤 비중있는 여성이 두 명 등장하고 있다. 호텔 아드리아의 '지나'와 포로코의 비행기 '사보이어S-2식 작전기'를 설계한 '피오'이다. 이것은 역시 미국 애니메이션의 영향 때문이지 않나 생각된다.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또 다른 특징으론 악당에 대한 견해이다. 그는 해적이나 공적에 대해 상당히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필요에 따라 물건은 강탈하되 인간성은 유지하고 있으며 매우 마음이 여린 사람들로 그리고 있다.그러나 권력자에 대해선 매우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의 작품에서 권력자이거나 권력을 추구하는 자가 진정한 악인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선 파시즘 정부를 그렇다 볼 수 있으나 부분 부분적으로 등장할 뿐 이 작품 속에선 영향력이 거의 없다.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주인공 포로코와 그와 매우 비슷한 미국인 커티스의 관계이다. 포로코와 커티스는 둘다 매우 자유스러우며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만을 하며 살아간다. 이 속에서 둘은 친구가 될 수 있었으나 서로의 대립적 상황-포로코는 공적과 싸우며 커티스는 공적에게 고용되어 있다-에서 서로 라이벌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작품의 가장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포로코와 커티스의 공중전 장면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내용이 이 둘의 공중전을 위한 것이라 여겨질 정도로 비중있는 장면이라 생각되어진다.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영화를 본다. 감동을 주는 드라마, 화끈하게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액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 또 맘놓고 웃을 수 있는 코미디......『매드 시티』 미친 도시. 제목부터 우리에게 경각심을 자아내게 한다. 인간성의 잠식이라는 문제점의 이 영화는 그 문제점과 해결책등 우리에게 주는 요소가 많은 영화로써 현대에 대중매체가 주는 영향력을 시사하고 있다.우선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해고당한 경비원 샘(존 트라볼타)과 방송국 기자 맥스(더스틴 호프만)가 사건을 만들어 내면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맥스는 본사 방송국에서 메인 앵커랑 불화를 일으켜 지방으로 쫓겨난다. 그래서 늘 다시 특종을 잡아 본사로 돌아가고 싶어했고 그러던 어느 날. 박물관에 예산감축 소식을 취재하기 위해서 초보 여자카메라맨 로리와 함께 가게된다. 한편 박물관에서 해고당한 경비원 샘은 관장에게 다시 한번 사정을 하기 위해 방문하는데 관장이 자기 말을 들어주게끔 총과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간다. 관장에게 대화를 요구하지만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샘은 흥분을 하고 오발로 그의 동료 경비원인 도렌의 복부에 총상을 입힌다. 놀란 샘은 박물관을 견학하던 어린이들과 관장, 그리고 자신을 취재하던 맥스를 담보로 인질극을 시작한다. 특종임을 직감한 맥스는 샘에게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방송의 힘을 빌려야 한다며 방송 출연을 설득하고, 작은 도시의 인질극은 계속되는 생중계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며 미국 전역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다. 맥스의 설득으로 TV 인터뷰를 통해 샘이 자신의 범죄에 대한 사죄와 실직한 처지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자 여론은 샘을 동정하는 쪽으로 급변하고, 인질로 잡혀 있는 아이들이 박물관에서 즐겁게 뛰어 노는 장면이 방송되자 샘의 석방과 무사귀가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박물관 앞에 들끓는다. 여론이 불리함을 느낀 경찰과 FBI는 샘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며 여론반전을 꾀하고, 특종을 빼앗긴 타 방송사들의 음해 역시 계속되며 여론은 들끓는다. 평범히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살아가던 한 남자가 실직으로 살던 집과 가정을 잃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나선 사건인가, 아니면 흑인 동료를 살해한 인종차별 사건인가, 온갖 억측과 샘의 주변을 취재하기 위한 언론의 치열한 경쟁으로 사실은 왜곡되기 시작하고, 그 엄청난 여파에 휘말린 샘과 맥스는 감당하기 벅찬 혼란 속에 대립하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절정에 이른다.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은 한 인간이 비관적인 현실에 직면하여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문제점이 시작되어지도록 설정되어 있다. 또한 한 기자가 자기의 실리와 목적을 위해 기사를 부풀려서 사회의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그곳에서 갈등하게 되는 영화를 보여준다. 한인간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다수의 대중은 그를 존중해주지만 사회의 부정과 이기적인 주관 때문에 폭력적인 보도를 하여 다시 여론이 반전되는 것을 보여준다. 매스컴이 사회와 진실을 오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련의 사건을 통하여 시청자에게 호소한다. 또 매스컴이 우리사회에 끼치는 막강한 위력과 그에 따른 부작용이 잘 묘사되어 있다. 최근 우리가 매스컴에 현혹되고 의존하게 되고 있는 현실을 반성하게 만든다. 또한 물질적인 힘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로 인하여 부정적인 대중매체의 시각적 요소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시대적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는 영화이다.대중매체가 어떠한 영향력이 미치는지 잘 나타내고 있다. 대중매체의 문제점은 많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진실적인 감정을 왜곡하면 어떠한 결과를 나타내는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요즘 매일 보도되고 있는 미국 테러, 아프간 전쟁, 등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처음 미국에서 테러가 일어났을 때 여론은 미국을 동정하고, 테러범죄자나, 그 나라에 대한 처벌로 마치 죽여도 좋다는 듯한 방송이 연이어 보도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미국의 일방적인 아프간 공격에 전 세계는 긴장하고 있고, 미국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자 여론은 다시 미국에 대한 다른 각도로 보도되어지고 있다. 이렇듯 사실에 대해 어떻게 말을 하는가, 어떻게 인식시키는가에 따라서 그 파장은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이런 한 대중매체의 좋지 못한 장면들을 보면, 맥스가 샘에게 유리한 장면과 내용만을 보도하니깐 여론이 샘 쪽으로 갔다. 그러다 다시 다른 방송국에서 샘의 폭력성만 부각시키고 인터뷰 장면을 조작하니깐 여론은 급변해서 샘에게 불리하게 됐다. 영화 속에서도 그랬다. 방송국에서 조작하는 대로 여론이 움직였다. 중간의 입장에서 공정하게 방송하지 않고 사건을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해서 그쪽으로 끌고 갔다. 좋은 면만 부각시켰기 때문에 시청자는 그 한쪽 면만 보고 사실을 받아 들였다. 진실의 왜곡이라는 것이 이 얼마나 무서운가. 이것으로 인해 결국 샘이 자살하는 비극적인 상황까지 전개된 것이다. 이러한 불공정한 보도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심각한 일이다. 그런데 물론 불공정한 보도를 하는 방송국도 문제지만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우리 시청자도 문제다. 그냥 비판 없이 방송되는 데로 받아들인다. 여러 면을 살펴보지 못하고 그냥 화면에 비친 장면만 들여오는 말대로만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스타의 좋은 점만 보고 무턱대고 좋아하고 따라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많은 대중매체를 접하고 산다.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한발 뒤로 물러나 먼 발치에서 사건의 전부를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너무 생각 없이 믿지 말자. 대중매체도 틀린 사실을 진실인양 전달하기도 한다. 또 특종을 서로 잡으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자들을 보면서 너무 치열한 경쟁은 나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느꼈다.
30년전 베트남 밀림에 쏟아부은 탄두는 지금도 되돌아와 가슴에… 찌푸린 하늘이 간간이 비를 뿌리는 클레어튼에 왔다. 피츠버그에서 머농거헬라강을 거슬러 남쪽으로 50㎞. ‘디어 헌터’ 오프닝처럼 젖은 도로를 대형 트레일러들이 질주한다. ‘기도의 도시’라는 입간판이 마이클, 닉, 스티븐, 그리고 린다의 고향임을 알린다.강을 따라 늘어선 제철·제련소들은 죽은 듯 고요하다. 굴뚝 두어개만 이따금 연기를 뿜는다. 가파른 언덕에 다닥다닥 붙어 선 집들. 동네와 거리를 분진이 덮고있다. 하늘도 땅도 잿빛이다. 삶은 누추했고 한두개씩 아픔도 숨긴 채였지만 그 70년대 젊은이들은 마을이 떠들썩하게 어울려 다녔다. 일터도 활기차게 돌아갔다. 베트남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전까지는. 머농거헬라강이 앨러게니강과 합쳐 ‘그레이트’ 오하이오강으로 흐르는 유역, 오하이오 리버 밸리엔 19세기 후반부터 탄광과 철공소들이 들어섰다. 카네기를 비롯한 기업가들은 일대를 거대한 ‘철강 계곡(Steel Valley)’으로 키웠다. 석탄 채굴부터 용광로 작업까지 더럽고 힘든 일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동구 이민자들이 기꺼이 해냈다. 그들의 헌신적 노동은 ‘디어 헌터’의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졌다.후기 산업사회에 들면서 이 3D 산업은 사양길을 내달았다. 70년대 중반 포항제철과 신일철의 위세에 눌려 공장들은 문을 닫았다. ‘스틸 밸리’는 ‘러스트(Rust) 밸리’로 녹슬었다. 철강산업 몰락과 베트남전에 꺾이는 젊음. 마이클 치미노는 이 산골에 두 격변이 겹치던 시절을 그렸다. ‘디어 헌터’ 기행은 고행이었다. 아낙네들이 검정 스카프를 쓰고 다니던 우크라이나계 마을, 결혼 피로연이 요란하던 러시아 정교회, 공장옆 마이클의 모빌 홈, 뚱보 존의 선술집…. 기억에 생생한 영화 현장들은 그러나 어느곳 하나 딱 집어 찾아내기 어렵다.그도 그럴 게 ‘디어 헌터’의 클레어튼은 여러 마을 이미지를 이어 붙인 합성 도시다. 치미노는 펜실베이니아 클레어튼에서 강을 따라 북상하면서 듀케인, 피츠버그, 스트러더스, 오하이오 영스타운과 밍고정션까지 7개 도시에서 마을 장면들을 찍었다. 그중에서도 철저히 쇠락한 영스타운에 왔다. 공장들은 벌겋다 못해 시커멓게 녹슬어 있다. 간판만 걸린 채 버려진 식당과 바, 세탁소들이 고스트타운처럼 늘어서있다. 저 가게들 가운데 존의 선술집이 있었을까. 젊은이들은 당구를 치며 ‘Can’t Take My Eyes Off You’를 합창했다. 독주 케슬러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펜실베이니아 맥주 롤링락을 연달아 털어 넣었다. 입대 전야, 전쟁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불안, 남기고 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마을 어귀에 90년 된 성 니콜라스 교회가 서있다. 돔 지붕이며 스테인드 글라스가 영화 속 교회와 흡사하다. 하지만 신부는 촬영장소가 멀리 오대호 변 클리블랜드에 있는 성 테오디우스 교회라고 알려 준다. 어둑한 교회 안에서 신부는 “젊은이들이 뿔뿔이 떠나 신자도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궂은 일을 하면서도 자신과 미국에 대해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전형적 슬라브계답게 애정 표현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 자부심과 애정은 한때 이 나라의 자산이었다.”러시아 정교회는 그들에게 삶의 광장이기도 했다. 세 청년의 사진을 확대해 붙여놓고 온 마을 사람이 스티븐의 결혼 피로연 겸 참전 환송연을 벌였다. 러시안 폴카에 러시안다운 통음이 밤새 이어졌다. 그 마을에선 모두가 모두의 아들이었다. 사슴 사냥 신은 더 먼 대륙 반대편에서 찍었다. 치미노는 뉴저지 사슴 두마리를 워싱턴주 케스케이드 산중까지 공수해갔다. 사냥은 고향, 자연, 친구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의식이었다. “내 생명이 산속에서 다한다 해도 원샷, 사슴은 한방에 죽여야 해.” 마이클은 우아한 사냥꾼이었다. 베트남전서 돌아와 다시 나선 사냥에서 그러나 그는 코앞 사슴을 차마 쏘지못한 채 허공으로 총탄을 날렸다. 그가 사슴에게 “OK?”하고 소리쳐 물었고, 폭포와 강을 타고 “OK”가 메아리쳐 갔다. 맑고 힘차게 흐르던 강은, 더럽고 죽음에 절은 메콩강의 안티테제였다.‘디어 헌터’는 음과 억양을 조절해가며 굴곡진 변주를 이어갔다. 어떤 것은 사랑스럽게, 어떤 것은 감상적으로, 또 어떤 것은 참혹하게. 차마 견디기 힘든 감정의 격랑을 타고 가다 관객도 함께 탈진했다. 폐허가 돼버린 영스타운에서 마이클과 린다를 떠올렸다. 스탠리 마이어스의 기타 선율 ‘카바티나’가 흐르는 가운데 린다가 물었다. “인생이 이처럼 변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본 적 있어요?” 모든 게 옛날과 다르다는 걸 부지불식 수시로 실감하는 것, 그게 늙어가는 과정일 테다. 하지만 마이클과 친구들은 짧은 전란의 순간에 늙어버려야 했다. 닉의 장례식을 치른 뒤 선술집에 다시 모인 그들은 어색해 하고 허둥대면서도 가라앉아 있었다. 존이 허밍으로 시작한 ‘God Bless America’가 모두의 합창으로 번졌다. 불완전한 공동체 미국, 불완전한 정의를 그들은 그렇게 원망했다. ‘디어 헌터’는 죽음과 혼돈에 허둥대다 떠나 보낸 젊음들을 뜨겁게 포옹했다.택시드라이버익명, 그 잔인한 문명의 거리...가장 번잡한 도시엔 가장 깊은 고독 뉴욕을 흔히 ‘위대한 도시’라 일컫는다. 일개 섬, 맨해튼이 인류 문명을 집약해 끌어안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콘트리트 숲을 뚫고 크레용처럼 형형색색 고개를 치켜든 마천루들만큼이나 다양한 언어를 거리며 지하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다. 뉴욕에 이민오지 않은 종족은 ET뿐이라던가.남단 배터리 파크부터 북쪽 할렘까지, 이 다인종 다문화 도시에선 거리 한 모퉁이만 돌아서도 뭔가 새로운 것과 마주친다. 사람들은 맨해튼이 지닌 수많은 얼굴 가운데서 저마다 다른 걸 보고 느낀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제목에 ‘맨해튼’이 들어간 영화만 82편, ‘뉴욕’이 들어간 게 278편이고, 뉴욕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가 1200편. 그중 마틴 스코세지가 ‘택시 드라이버’에 담은 이 메트로폴리스의 이미지는 연옥이었다. ‘다행히 비가 와서 인간 쓰레기를 쓸어간다. 창녀 깡패 호모 마약밀매꾼, 밤거리는 모두 쓰레기다.’ 트래비스가 일기 한 대목에서 못견뎌 하던 맨해튼 거리, 타임스퀘어 주변 브로드웨이와 8번가에 나섰다. 강경 범죄대책 덕분에 몇몇 포르노극장만 남고 많이 정화됐다지만 영화속 이미지는 여전하다.비에 젖어 빛나는 도로, 졸듯 몽환적인 네온사인들, 흐물대며 밤길을 흘러 다니는 사람들. 가랑비에 밤공기가 차가워지면서 맨홀에서 수증기가 새 나온다. 누가 듣건 말건 타악기를 두드리는 드러머. 골목 어귀 어둠속에 먹이를 노리는 육식 인간처럼 흑인들이 서성인다. 비열한 거리, 혼곤한 골목, 뒤척이며 잠들지 못하는 도시. 맨해튼은 햇빛이라곤 쐬지 못한 것처럼 파리한 안색을 하고 있다.
들어가는말우리 민족의 색채 사용에 있어서는 색채자체의 미보다 색체 자체에 상징성과 의미를 부여하여 상징적인 수단으로 사용하여 왔고, 신앙에 있어서도 색채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우리의 전통색은 선사시대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에서 샤머니즘적인 색채관이 지배적이었으며, 삼국시대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는 중국의 사상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음양오행사상이 생활에 침투하면서 그 영향으로 색채관이 정립되었다. 그러던 것이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유교적 세계관이 사회의 중심에 자리잡음으로써 이전 시대와는 변모된 양상을 보이게 된다. 유교적 규범이 신분구조나 사회제도에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귀족과 서민의 계층적 분리를 확연히 하게 되었고, 이러한 유교사상이 음양오행사상과 결합하면서 색채는 지위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그러나 각각의 시대에 부응하는 색채의식이 다양하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엔 일관되게 나타나는 색채가 있었는데 그것이 곧 오방색이다.우리 민족은 생활의 표현에 직접적으로 오방색의 영향을 받아왔고, 우리의 독특한 풍토와 국민성, 그리고 오랜 문화의 형성으로 색채에 대한 감각과 감상력을 발달시켜 왔다.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색체감각도 발달하여 미묘한 색채의 감각이나 배색을 즐겨왔다.우리 고유의 색은 음양오행적 우주관에 바탕을 둔 오정색(또는 오방색)과 오간색을 기본으로 염재를 복합하여 은은하고 소박한 색까지 물들였다.농경생활을 해온 우리 조상들은 대자연의 주재자가 광명신인 태양이라고 믿었고, 그 태양은 흰빛을 상징한다고 생각해 백색선호가 생겨났다. 그리고 우리의 색은 자연관을 우주관으로 믿는 토속신앙과 음양오행 즉, 청(동쪽)·백(서쪽)·적(남쪽)·흑(북쪽)·황(중앙)의 오정색에서 그 근간을 찾을 수 있다. 이 오방색은 명색 및 원색적인 강렬한 색으로, 단청같은 화려한 감각을 선호한 우리 민족의 색채감각을 엿볼 수 있다.조선시대에는 선비사상이 주류를 이뤄 흑백의 조화와 옥빛을 선호하는 색감각을 볼 수 있으며, 또 화려했던 문양은 남존여비사상에 의해은 화는 염상(炎上)하는 것이라 하였다. 염상이란 화가 뜨겁고 상승하는 특성을 나타낸 것인데 따뜻하거나 뜨겁고 솟아오르는 속성을 지닌 모든 사물은 화에 속한다.토(土)의 특성: 옛사람들은 토는 가색(稼穡)을 의미한다고 했다. 가색이란 토가 씨를 뿌리면 농작물을 거두어 들이는 작용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화(生化), 승제(承載, 수납(受納) 등의 성질을 지닌 모든 사물은 토에 속한다. 그러므로 토는 사행(四行)을 싣고, 만물은 토에서 생겨나고 만물은 토에서 멸하며, 토는 만물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이다.금(金)의 특성: 옛 사람들은 금은 변혁을 뜻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청결, 숙살, 수렴등의 특징을 가진 모든 사물은 금에 속한다.수(水)의 특성:옛 사람들은 수는 습하고 아래로 흐른다고 했다. 그리하여 차갑거나 서늘하고 습하고 아래로 움직이는 작용을 지닌 모든 것은 다 수에 속한다.오행학설은 정지적으로 고립적으로 사물을 오행에 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행간의 상생, 상극의 연계에 의하여 사물간의 상호연계, 상호균형의 정합성과 통일성을 탐구하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오행간의 상승 및 상모에 의하여 사물간의 조화, 균형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우리나라의 색채에 있어서도 오행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우리의 민속놀이인 회회아(바람개비)라는 놀이가 있는데 이는 오색의 종이를 죽골의 좌우에 풀로 붙여 만드는데 손잡이를 가운데 박아 어린 아리들이 가지고 노는 것으로 바람모지를 향해 돌게 한다. 이것의 만든 모양이 한결닿지는 않다.또한 아이들의 돌이나 명절 때 그리고 근래에는 여인들이 즐겨 입는 오색의 색동저고리도 오행의 영향이다. 궁중에서도 사월 초파일에 아기 왕자들에게 오방색을 이어 붙여 색동저고리와 주의를 만들어 입혔는데, 즉, 다섯 방향으로 침입하는 액과 잡귀를 오방색으로 물리친다는 미신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음양 오행의 상징체계고구려의 고분벽화고구려는 벽화를 삼국 중 가장 먼저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을 백제나 신라에 전파함으로서 수준 높은 예소까지 융합되어 복잡한 양상을 띠고 채색도 다채롭게 쓰여지는 등 변화가 많아진다. 이것은 단청에 등황색이 많이 쓰여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건축의 구조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조선시대의 다포 건축의 장식적인 구조에 어울리는 색채감각이다. 조선시대에는 단청의 장식적 효과가 더욱 강조됨으로써 무늬와 색채구사에 일정한 법칙성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색띠를 통해서 색채미를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단청의 주된 색은 녹과 주이다. 외광을 잘 받는 기둥부분에는 적색게의 석간주를 썼으며 그늘이 지는 처마나 지붕을 받치는 공간 지주의 녹색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었다. 뇌록은 그늘진 위치에서 시원한 배경색으로 면적인 효과를 더해준다. 이처럼 우리나라 단청의 색조는 건물의 구조적인 표현성을 높이게끔 적용되었고, 다채로운 보색대비로 원색적이고 화려하면서도 색을 규칙적으로 반복 처리하여 색조의 율동과 조화를 이루어낸 것이 특징이다. 이와 같이 주와 녹의 배색은 자연환경과 가장 적절하게 조화될 수 있는 색상의 배색으로 선인들의 조형감각을 느낄 수 있다.고려미술 불화고려는 구교를 불교로 하여 불교회화가 특히 발달하였다. 회화의 발전은 도화원의 설치로 궁중의 장식화나 실용적인 그림을 중심으로 채색화가 그 주류를 이루었다.이 시대의 불교회화는 궁중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주로 지방 화공들의 손에 제작이 이루어졌던 조선왕조시대 불교회화와는 성격이나 사료적인 차이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고려시대의 건축물에 보이는 색채이 화려함은 사찰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데, eoroo 불당 내외의 작은 벽면, 천정, 기둥 등에 단청 등을 장식하고 사이사이에 화불, 신중라한, 산수, 화조를 그려 넣었으며 불당 안에는 신인내용을 묘사한 불화가 걸려 있다. 즉, 벽화와 단청, 불화로 장엄하게 꾸며지는 것이다. 이러한 불교회화는 호화롭고 정교하여 귀족적인 분위기가 넘쳐 채색화의 절정을 이루었다.고려불화의 특색은 도상에서 보다 그 표현력에 있는데 기교가 정밀하며 섬려하고 화사하다. 또한 불화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것은 문양이 만점루(萬點淚)’로 표현될 만큼 붉은 색 염료가 귀했다는 중종(中宗) 때의 기록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염료의 원료가 되는 식물의 희귀성과 복색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이와 같이 근대 이전에는 염료가 희귀하고 고가였기 때문에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식물이 아니면 대중적으로 이용될 수 없었으며, 감물 염색과 같이 염료의 재료가 되는 식물이 풍부할수록 서민층에도 널리 애용되었다.광물질이 원료가 되는 단청 채색재료의 경우에도 대부분이 중국을 통해 수입되는 재료에 의존했으며 금값에 맞먹는 고가의 재료였다. 이 때문에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하더라도 경제적인 부담으로 인해 서민들은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고, 색상을 폭넓은 계층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된 한 가지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한국 문화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한 가지가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며 이러한 경향이 문화전반에 걸쳐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색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연과 우주의 원리에 순응하려는 노력이 음양오행이라는 철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구체화되고 있다.이 음양오행설에서 비롯된 ‘오방정색’과 오방간색’그리고 ‘잡색’으로 분류되는 색체계가 한국 전통 색의 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사대주의(事大主義)와 유교사상, 도참설 같은 여러 가지 사상적 요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한국인의 색채의식에 영향을 끼쳐온 것이다.우리들 과거의 의식주를 통해 생활 주변에서 쓰여지는 갖가지 기물들과 미술 유산중에 베풀어진 다양한 의장 요소들은 그러한 유물들이 우리들의 과거의 세계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냐에 대해 여러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어느 것은 채색으로 나타내고 어느 것은 음각, 양각, 상감등의 선묘로 표현하였으며, 또는 상형, 투각기법등 다양한 방법으로 묘사한 문양을 볼 수 있다. 그러한 색채와 문양들은 유물의 정테를 분명하게 밝혀주는 중요한 근거가 되며 우리 선조들의 생활신앙과 관념에 반영된다.고분 벽화라든가 고분에서 출토되는 그림을 보아서 추면 청록색은 고마운 색, 아름다운 색으로 인식되었다. 청색의 사용의미는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시키기 위한 소극적인 기원이 아니라 더 넓고 높은 영원한 차원에 도달하기 위한 발원이며 의지의 표현이다.한편으로는 답답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활력과 용기를 주는색으로 인식되기도 한 청색은 역시 조상들도 마찬가지로 양기가 충만한 색이었음을 느낀다.황금색황색은 지구에 있어서 태양의 궤도가 되고 태양과 가장 가깝다는 뜻에서 이를 일명 황동라고도 일컬으며 광명과 생기의 정화로 보았으며 금, 지황, 토황 등이 포함된다. 황색은 바위로는 중앙, 오행으로는 땅, 풍수로는 구를 뜻한다. 황색은 밝고 성스러움의 표현으로 사용되었고, 초기의 종교적인 회화에서 성자의 배광색으로 쓰여지기도 했다. 흙을 상징하는 황토는 결국 생명의 원천이며 생산과 재생산을 상징한다.팽창색, 진출색이기도 한 황색은 눈에 보다 잘 뜨이고 주목성이 높다는 성질, 즉 시각적 전달 효과가 대단히 뛰어난 색이라는 점에서 상업적 측면에서도 대표적인 색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편리하고 경쾌한 생활과 경제 번영의 상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흑색인간의 감각으로 흑색이란 단순히 빛을 잃음에 따라 느끼는 색이라기 보다는 빛의 자극이 있거나 혹은 다른 어떤색을 동시에 봄에 따라 비로소 검게 보이는 색이라고 정의 내린다흑색은 옛부터 어느 민족이든 다른 색의 뜻에 대한 부정적인 상징으로 되어 있다.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으니까, 흑색에서 어두운밤, 죽음. 죄악을 연상하고 신비로움이나 슬픔, 장례식의 상징으로 쓰고, 흑백하면 악과 선, 불의와 정의를 뜻한다. 시각적으로 소극적인 색이며 이 소극적인 효과가 인접한색을 돋보이게 하여 고급스럽든가, 세련되었든가하는 예외적인 좋은 인상을 주는 면도 있다.흑색은 오, 흑색이 포함되며 중국에서는 현색이라고 하는데 그 검은 색이 빨간색을 내포하고 다시 빨간색이 노란색을 내포하는 고리가 되는 색이 곧 현색이라는 것이다. 방위로는 북, 계절로는 겨울, 오행으로는 물, 풍수로는 현우를 뜻한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