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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고기 전기 서정시 -초기 희랍의 문학과 철학
    『초기 희랍의 문학과 철학』, 헤르만 프랭켈 지음/ 김남우·홍사현 옮김, 아카넷, 2014(5세기 중반까지 희랍 서사시, 서정시와 산문의 역사)제4장 상고기 전기 서정시고대 그리스 문학은 크게 운문과 산문의 영역으로 분류된다. 운문의 영역에서 대표적으로 서사시, 서정시, 비극(희극)이 포함된다. 그리스 문학의 경우, 개별 문학 장르의 발전이 그리스의 정치-사회적 변동과 함께 발전했다. 왕족과 귀족들이 지배하던 시대의 문학적 표현 기제가 서사시라면, 귀족의 몰락과 폴리스의 발전과 함께 형성되기 시작했던 개인에 대한 의식과 그 개인이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하는 것들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 문학적 표현 기제는 서정시였다.1. 서정시의 창시자: 아르킬로코스-서정시의 시작은 세계관과 개인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에서 촉발됐다.(1) 하루와 하루살이상고시대의 “하루”와 “하루살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하여 서사시로부터 서정시로의 이행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 현실은 신이라는 전지전능에 견주어 “하루”에 불과하고 공포에 놀란 모습으로 표현됐다. 호메로스에게서 하루는 서사시의 사건흐름을 단위별로 매듭짓는 유일한 시간단위이며, 동시에 긍정적이고 특정한 내용을 수용할 수 있는 시간개념이다. 그에게 있어서 시간이란 “운명의 날”, “귀향의 날”, “노예의 날”, “무자비한 날” 등 부정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기다리거나 헛되이 노력하는 순간에만 등장한다. 따라서 “재앙의 날을 피하여”(『오뒷세이아』 제10권 269행)라는 서사시적 표현은 ‘파멸을 벗어나다’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인간은 철저히 하루살이인즉, 하루에 종속되어 있으며 그 변화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오뒷세이아』 제18권 129행 이하에서 오딧세우스는 일찍이 강력한 제후였으며 이제 초라한 걸인의 신세가 되었으나 결코 좌절을 모르는 인간, 굶주림과 가난을 생각과 정신으로 극복하는 인간으로 그려졌다.그런데 아르킬로코스에 따르면, 굶주림은 인간을 혼란스럽게 하며 가난은 그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한다. 인간 본성이란 조형물과 하며 그날이 새겨준 각인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고슴도치 비유(103D=201W, 66D=126W에서)를 통해 제 자신 ‘하루살이’ 인생이요, 파멸과 죽음 앞에 늘 위협받는 존재임을 스스로 인식하는 자아는 타인들과 투쟁과 방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강화한다. 또한 아폴론 신에게 기도할 때 적의 파멸을 기원했다(30D=26W 5~6행). 이와 흡사하게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도움을 요청(75D=108W)하거나 뜨거운 천랑성(시리우스)에게 빌어 자신의 적들을 저주한다(63D=107W).(2) 헤라클레스의 방패스파르타의 어머니들은 전쟁터로 떠나가는 아들들에게 방패를 건네며, “방패를 들고, 아니면 방패에 실려!”라고 외쳤다. 방패를 잃고 돌아오느니 차라리 죽어 방패에 실려 오라는 뜻이었다. 『일리아스』(제9권 408행)에서는 아킬레우스는 영웅적인 죽음을 택하기보다 차라리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아르킬로스는 자신의 엘레기 D6=5W에서 헛된 방패숭배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기를 거부한다. 과장된 명예보다 하나 뿐인 목숨을 좀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현실적인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며 도전적인 자세로 세상을 향해 떳떳하게 자신의 행동을 밝힌다. 그러나 그는 결코 겁쟁이가 아니었으며, 아킬레우스처럼 전사로서 생을 마감했으나 그는 가치의 전복자로서 직업적인 전사였으나 자신에게 무의미해 보이는 순교적 희생을 거부한다.(3) 사유의 전환: ‘지금’, ‘여기’, 그리고 ‘나’아르킬로코스의 서정시는 자신의 입장에서 세계를 평가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나’(ego)에서 시작하거나 또는 ‘나에게서’ 끝난다. 그의 체험은 사랑과 증오, 경멸과 찬양, 슬픔과 기쁨으로 전체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그는 오로지 하나의 현실, 직접적인 작용이 일어나는 현실만을 믿었다.(4) 실연 또는 절연, 성공과 좌절뤼캄베스는 아르킬로코스에게 자신의 딸 네오불레를 주기로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71D=118W). 이에 분노한 아르킬로코스는 는 시를 지었다. 실연의 상처로 네오불레에게도 욕설을 했다(74D=122W). 전설에 따르면, 뤼캄베스와 세 명의 딸들은 그들이 당한 모욕 때문에 자살했다고 한다. 아르킬로코스가 보기에 오뒷세이적 인내는 더 이상 모든 적을 물리치고 최후의 승리를 거머쥐는 방법이 아니라, 다만 버티고 견디는 힘을 뿐이다.또한 아르킬로코스는 성공과 좌절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기복이야말로 우리 삶의 법칙이라고 한다. 시련은 기쁨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그는 난파를 당해 익사한 용맹한 자들의 죽음을 기호로 지은 엘레기 단편(7D=13W)에서 매부의 죽음을 포함해 망자를 위한 탄식을 축제의 환호로 전환시킨다. 망자를 욕되게 하려는 게 아니라 남자다운 인내를 견지하기 위해 살아남은 자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마시며 기꺼이 즐길 것을 요구한다(10D=9W 10~11행 +11W).(5) 전쟁“전쟁은 모두에게 공정하며, 승리자도 결국 죽게 마련이다.”라고 『일리아스』(제18권 309행)에서 아킬레우스와 승리 혹은 죽음을 놓고 한바탕 싸워보기로 결심한 헥토르가 말하고 있다. 아르킬로코스는 이 경구를 “나는 이를 행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인간들에게 참으로 공통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재해석 했다(38D=110W). 그는 파로스와 낙소스 사이의 전쟁이 다시 벌어졌을 때, 목숨을 잃는다. 전설에 따르면 아르킬로코스를 죽인 낙소스 사람은 무사이 여신들의 시종을 죽인 죄로, 퓌티아에 의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추방당했다고 한다.아르킬로코스는 야만의 투박함으로써 서사시 시대로부터 서정시 시대로의 전환을 이끌어씅며, 희랍적 투명함으로써 이런 혁명적 전환을 노래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때로 난폭할 정도의 솔직함을 드러내고 있으며, 자신의 호불호 모두를 자유롭게 말함으로써 희랍 서정시에서 드러나는 분명한 사실주의를 도래하게 했다. 그의 시는 후대 시인인 사포나 알카이우스, 로마의 카툴루스나 호라티우스에게 영향을 끼쳤다.2. 전쟁과 정치의 엘레기: 칼리노스와 튀르타이오스(1) 전쟁의 노래아르킬로스레기 시인은 소아시아의 에페소스 출신 칼리노스다. 당시 에페소스인들은 뤼디아인들 그리고 야만적인 키메리아인들과 많은 전쟁을 치렀다. 칼리노스는 1D=1W에서 아무런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채 게으름피우고 무관심한 젊은이들을 비난한다. 그 목적은 그들을 일ㅋ깨울 만한 것을 대비시킴으로써 적극적인 행동을 하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자 함이다. 또한 죽임에 대한 자연스러운 두려움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일련의 논증들을 엮어 놓는다. 도덕적인 주체로서 조국과 가족에 대한 보호는 단 한 번 간단하게 언급하는 반면, 자기가 속한 공동체와 이웃나라 남자들이 남자들의 활약을 보고 덧붙이게 되는 명성과 명예 혹은 냉담과 불명예를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과거 호메로스의 영웅관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내를 인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절정에 이른다.튀르타이오스의 몇몇 전쟁의 노래는 좀 더 긴밀하게 서사시와 연결돼 희랍 본토에서 가장 전쟁에 탁월한 민족이었던 스파르타 사람들에게 노래하고 있다. 스파르타 사람들은 복속됐던 메세나 사람들과 다시 한 번 크게 싸우며 처음 정복 당시를 회상했다(4D=5W). 정복된 메세나 사람들은 노예 신분으로 과거 그들 자신의 재산이었던 토지에서 일해야만 했다(5D=6W). 혹독한 주인이 죽었을 때, 그들은 그 시신을 운구해야 하며, 전통적인 비탄가를 불러야 했다(3a D=7W). 튀르타이오스는 메세나의 반란을 불러일으킨 스파르타의 학정을 미화하지 않는다.(2) 정치 엘레기튀르타이오스는 스파르타의 새로운 정체(政體)를 축복하는 델포이 아폴론의 신탁을 글자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듯하다. 원래 여섯소리걸음운율로 쓰인 신탁에 엘레기 형식을 구성하기 위해 다섯소리걸음운율의 시행을 추가해야 했다. 그의 전쟁시는 첫째, 자신을 포함한 1인칭 복수를 사용하며 나이든 사람들을 향하는 시들로 노인을 화자로 등장시켜 훈계조로 예의를 갖추어 권고 접속법(하자!)이나 미래 시제(할 것이다)를 사용하고 있다(6D=10W 1~14행, 1D=18~23W). “너희는 싸우라!”처럼 이인칭과 “그들이…”이라는 삼인칭의 직접 명령법을 사용한다(7D=10W 15~32행, 8D=11W).나이든 사람들, 즉 가부장들을 염두에 두고 쓴 시는 메세나의 토지들을 소유하고 있는 스파르타인들에게, 그들의 정복지가 다시 메세나인들에게 돌아갈 경우 토지를 일을 것과 경제적 여건뿐 아니라 시민권마저 위협받게 될 것을 말한다(6D=10W 1~14행). 결말부분에서는 전쟁에서 쓰러진 사람은 스스로가 훌륭한 사람임을 입증하지만, 패하여 재산을 잃은 사람은 온갖 치욕이 그들을 따르게 되는데, 경멸과 가난이다. 젊은이들을 향한 시는 무엇이 추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 개념들 사이에는 도덕적·미적 가치평가 구분은 불분명하다. 인륜성의 영역은 아직 그의 작품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또 하나의 대립은 젊은이들과 연장자들의 대립니다. 연장자들은 전선의 후미를 구성하며, 젊은이들은 전선의 맨 앞에 서 있게 된다. 만약 젊은이들이 너무 빨리 달아나고, 늙은이들은 죽도록 내버려 둔다면 이런 행동은 추하고 동시에 파렴치한이 되는 것이다. 죽어가는 연장자의 모습은 끔찍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8D=11W의 엘레기는 스파르타인들에게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이 자손이라는 자의식을 고취시켜 신의를 지켜갈 제우스, 전쟁의 지휘자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군대를 선동하며 젊은이들에게 목숨을 가볍게 여기라고 부추기고, 생명처럼 죽음을 추구하도록 과장되게 자극한다. 도망자는 남자의 진정한 가치인 용기를 상실하게 되며, 등에 입은 상처로 죽게 되는 것은 추한 일이며, 잔뜩 겁을 먹고 줄행랑치는 사람은 수없이 창피를 당하게 된다. 하나의 결론은 “너희는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행동하라!”이다.튀르타이오스는 언어와 표현을 대부분 영웅 서사시에서 가져오고 있지만, 문체적 특징에 있어서는 서로 간 차이가 뚜렷하다. 게다가 튀르타이오스의 영상(7D, 7~13행; 8D, 21~38행; 6D, 4~10행)은 마치 실제 그림처럼 정지되어,다.
    인문/어학| 2020.03.29| 5페이지| 3,000원| 조회(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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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레니즘기의 희랍문학사
    『희랍문학사』, 마틴호제 지음/ 김남우 옮김, 작은이야기, 2010헬레니즘기의 문학1. 통합: 신세계 2. 궁정과 궁정문학: 시와 학문 3. 옛날: 내면적 귀향4. 주변부(이집트, 포이니키아, 유대)와 로마 5. 헬레니즘 후기의 커다란 종합1. 통합: 신세계헬레니스틱(Hellenistic, 헬레니즘 시대)이라는 용어는 19세기에 들어와 만들어진 말이다. 이 용어는 기원전 323년(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부터 기원전 30년(이집트 마지막 마케도니아 통치자 클레오파트라의 죽음)까지의 그리스와 근동의 역사를 가리킨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렸으며, 이집트에서 카우카수스 산맥까지, 이오니아 지방에서 강게스 강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단일한 국가 질서, 즉 마케도니아-페르시아 제국을 수립했다. 그의 사후 휘하의 세 명의 장군들이 스스로 왕이라 선언하고 각각 새로운 왕조를 창건했다. 안티고노스와 그의 아들 데메트리오스는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차지했다. 셀레우코스는 시리아와 옛 페르시아 제국을,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집트를 차지했다. 희랍 지역에는 아이톨리아 연합과 아카이아 연합 등 도시국가 연합이 생겨났다. 후계자들이 세운 왕국으로의 자기 과시 부분인 왕국과 왕국의 수도는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가 됐고 로마가 진출하면서 막을 내린다.2. 궁정과 궁정문학: 시와 학문군주가 시인을 궁정에 들이는 것이 오랜 상례였고 상고기나 고전기처럼 정치적 이해가 깔려 있었다. 4세기 들어 옛것이나 새것, 산문이나 운운을 저장할 수 있는 책 문화가 정착했다. 모아진 많은 양의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교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젊은 마케도니아의 귀족들을 위해 ‘학동’을 조직해 수업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알렉산드리아에, 아탈로스 왕조는 페르가몬에 도서관을 세웠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엄청난 양의 파피루스 두루마리들이 정리됐으며 여러 판본에 대한 문헌 비판, 비교, 주석이 발전했다.칼리마코스에 의해 옮겨진 도서관 문헌(피나케스; 저자별 분류 도서목록))에 나타난 특징을 중심으로 문학 장르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하천, 달 이름 등에 관한 과학적 백과사전을 편집했지만 상실됐고, 54편의 격언시와 궁중에서 쓰인 6편의 찬가만 남아있다. 소서사시(Epylion)인 는 영웅 서사시가 소박한 서사시로, 사회적으로는 미천할지라도 그 삶이 고귀할 수 있음을 들려준다. 은 이행시 엘레기 형식으로 4권의 책으로 묶였고, 희랍의 관습, 종교와 축제의 연원을 시로써 노래했다. 이 책은 그의 와 함께 문학사적 혁신이며 히포낙스나 아르킬로코스의 형식에 새로운 내용을 채우고 있다. 칼리마코스는 로마 시문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카툴루스의 중 (66번)을 번역).알렉산드리아의 첫 번째 시인이자 문헌학자인 필리타스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아들의 선생으로 그의 시는 상실됐지만 어떤 특정 시적 개념을 설명할 때 그의 시가 모범이 됐다. 테오크리토스의 시는 소서사시와 아류문학, 창작물 등 3가지로 분류된다. 소서사시 중 (13번),
    인문/어학| 2020.03.29| 4페이지| 3,000원| 조회(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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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근동 신화의 세계와 구약성서의 세계
    - 목 차 -들어가는 말Ⅰ. 구약성경의 배경: 고대근동의 세계1. 고대근동의 지리적 경계2. 고대근동 역사의 범위3. 메소포타미아의 역사3.1. 석기시대 / 3.2. 초기 청동기 시대(3100-2100 BC).3.3. 중기청동기(2100-1600 BC) / 3.4. 후기 청동기 시대(1600-1200 BC)3.5. 철기시대: 고대근동의 종말(1200-539 BC)4. 사회적 통합의 열쇠로서의 역사Ⅱ. 고대근동 문헌에서 신화의 중요성1. 신화의 주제는 실제의 본질2. 고대인들 삶 자체가 종교Ⅲ. 탈신화화와 재신화화와 고대근동의 세계관 비교1. 구약성경의 탈신화와 재신화화2. 창세기 본문의 탈신화화 헌장(憲長)나가는 말“신화에서 역사로”- 고대근동 신화의 세계와 구약성서의 세계들어가는 말모든 인류는 원시 시대에 각기 고유한 신화를 만들어냈다. 또한 그것을 생활 속에 보존해 왔기 때문에 어떠한 문화도 그 근원이 되는 신화에 비춰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흔히 신화는 재미있는 거짓말, 꾸며낸 이야기 정도로 여겨진다. 그런데 구약성경은 마르둑(Marduk)이나 바알(Baal)을 믿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야훼의 존재를 믿고 있기 때문에, 구약성경을 고대 근동 신화와 같은 범주로 분류하는 사람들에 대해 불편을 느낀다.그러나 메소포타미아 주민들은 신화를 왕실 연대기(court chronicle) 같은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신화를 가공이나 허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메르인들은 신화적 실체를 역사적 사실로 이해했으며, 고대인들에게 신들은 실체였고 그들의 이야기는 신들과 세상에 대해서 설명하고 일상의 삶과 세상을 이해하는 실체의 본질이었다.그렇다면 신화와 역사의 경계는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가? 신화에서 역사로 넘어가는 고대 근동 신화의 세계와 구약성서의 세계는 어떠한지 고대근동 역사와 신화적 배경들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자.Ⅰ. 구약성경의 배경: 고대근동의 세계1. 고대근동의 지리적 경계‘근동’(Near East)은 지중해의 동쪽 해안에 위치한 오뜻과 정성을 다하는 독특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신 6:4-5). 이것이 바로 고대 이스라엘 종교의 핵심이다.2. 고대근동 역사의 범위역사가 일반적으로 기록 문서에 의존한다면 자료의 유무에 따라 고대근동 역사의 범위가 결정된다. 고대근동의 역사는 문자가 발명된 시점인 기원전 3,000년경 수메르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대개 마지막 메소포타미아 왕조가 멸망한 기원전 539년과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페르시아가 패배한 기원전 331년, 둘 중 하나로 좁혀진다. 고대근동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1) BCE. 3000-2000 도시국가: 수메르, 닙푸르, 에리두, 라기쉬, 기르수 등이집트: 쿠푸 카프레, 죠세르, 암호텝// 아카드, 신수메르(2) 2000-1000 고바빌론 // 히타이트//우가릿//아람이집트: 제1중간기, 세누스레트, 제2중간기-힉소스, 핫셉수트, 아케나톤, 람세스(3) 1000-0 신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 페르시아//이스라엘// 헬레니즘3. 메소포타미아의 역사3.1. 석기시대메소포타미아에서의 문명의 시작은 본토인이 아닌 외부인들이 그 지역에 들어와 새로운 문명을 형성함으로 시작됐다. 외부인들은 대체로 다섯 방향에서 동쪽은 엘람 족(Elam)이, 서쪽에서는 아무루 족(Amurru), 남쪽은 수메르족(Sumer), 북쪽은 수바르 족(Subar), 중앙에서는 바빌론 문화를 형성한 아카드 족(Akkad)이 들어와 각기 세력을 형성했다. 그 가운데 수바르 인들이 처음 기록을 남겼으며, 수메르 인들은 “문명의 발명자”로 간주된다. 서쪽에서는 대부분 주로 셈족(Semithic)이 활동하고 있었다. 셈족은 기원전 2900-2300년에 이르기까지 수메르 인들과 활동시기가 거의 일치했으며 아카드 인들이 이룬 도시 중심으로 근거지를 이루며 살았다. 당시에는 아카드어가 널리 사용됐다(Hallo, 23-24).3.2. 초기 청동기 시대(3100-2100 BC)선사시대(prehistory)에서 역사시대(protohistory)로의 전이가 처음으로 대 마리(Mari)와 알라크(Alalakh)에서 발견된 설형문자 기록과 이집트의 저주문헌(詛呪文獻)에 의하면, 아모리 왕조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 우르 제3제국시대(2112-2004?)는 “신수메르 르네상스 시대”로 불리며, 우르남무(Ur-Nammu)는 우르에 계단식 탑으로서 지구랏트라는 고대 제단을 건설함으로써 자신의 정치력을 확보하는 종교적 기반을 조성했다(Hallo, 78). 이어 슐지(Shulgi)가 계승해 1)이스라엘의 솔로몬 왕국과 그리스의 델피, 그밖에 다른 지역에서 행해지던 순회 예배를 실시했다. 2)서기관 학교를 두고 지혜문학과 편지 형태의 기도문, 의식에 사용된 기원문들이 작성됐다.앗시리아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계속해서 전쟁에 깊숙이 개입한 반면, 하티 원주민은 히타이트 족과 접전했다. 히타이트 족은 새로운 제국을 형성하면서 옛 아나톨리아(현 터키 지방)의 중앙부를 차지했다. 구 바빌론 함무라비 왕국은 “구티안 시대”를 계승하고 아모리 족의 았리아 왕과 동일한 조상을 갖고 있다고 여겼으며, 옛 사르곤 왕국의 영토를 거의 회복함으로써 재통일해 제국을 건설했다. 그는 함무라비 법전과 업적비, 마리 고문서 보관소의 편지들을 통해 그 대내외적 치적이 드러난다.3.4. 후기 청동기 시대(1600-1200 BC)함무라비 왕조가 멸망하고 근동의 전역은 수백년 동안 암흑시대에 빠졌다(1600-1500). 이 시대에는 대여섯 나라들이 서로 끊임없는 세력 다툼을 하던 시기였다. 히타이트 왕인 슈필루리우마는 허리안 족의 세력을 축소시키는데 성공했지만, 결국 두 세력은 앗시리아에 의해 약화됐다. 앗시리아의 앗수르우발리트 1세는 제국의 기초를 형성하고 초강대국과 어깨를 겨루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바벨론과 앗시리아 문화적 유산은 서로 깊은 관련을 맺었고, 상호 결혼과 동맹 우호 관계를 유지하며(Hallo, 116) 새로운 세력가들은 철기시대를 이끌어갔다.3.5. 철기시대: 고대근동의 종말(1200-539 BC)신앗시리아의 살만에셀 3세는 강력한 철기문다.월튼은 역사와 역사 기술 둘 다 신의 목적에 이끌려 어디론가 향해 간다고 보았다. 그것이 한 이야기의 통일성과 귀결성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에서 왕을 정당화시키는 것으로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조화 시킨다고 한다. 이스라엘에서 그 목표는 하나님의 임재를 재확립하고 하나님과 함께한 백성의 공동체 안에서 바른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다. 그들은 언약에서 구현된 하나님의 계획을 통해 이 목표를 추구한다. 그래서 E. A. 쉬파이저(E. A. Speiser)는 “성경은 기록할 가치가 있는 사건의 연대기나 기록할 가치가 있는 사상의 연대기라기보다는 중요한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라고 한다(Biblical Idea, 2).프로반(Provan)과 롱(Long) 그리고 롱멘(Longmann)은 “앗시리아 서기관들은 사실상 왕의 통치에 대한 단순한 사실 기록보다 전사로서의 업적과 왕의 이미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언급한다. 고대 근동의 역사 기술은 왕실 명문이나 연대기, 왕의 목록이나 연보에 나타났든 아니든, 왕의 정치이념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띈 논쟁적 의제를 지닌다(Biblical History of Israel, 67). 발견된 비문들에서는 도상학적으로 왕의 위대한 업적들이 담겨져 있다.H, 타드모어(H. Tadmor)도 기록의 성격상 그 초점은 왕이 신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에 맞춘다며 의도된 청중은 신들이었다고 제안한다(Propagande, 331; Albrektson, History, 43). 이런 기록을 통해, 신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왕이 주어진 직책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으므로 계속해서 왕에게 후원과 은총을 베풀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신들의 역할은 적절하게 인정받아야 하고, 신들은 왕의 업적의 결과로서 자신들의 평판과 능력이 좋아지고 있다는 믿었으며 메소포타미아의 역사 기술이 왕을 정당화 할 때 그것은 또한 신의 명성을 높이는데 쓰였다는 것이다.Ⅱ. 고대근동 문헌에서 신화의 중요성1. 신화의 주제는 실제의 일반적인 기대를 가진다고 생각 했다. 또한 그들은 신들이 신적 계급제도를 통해 자기들에게 운명이 정해지도록 했으며, 신들은 제의과정을 통해 자신들이 일할 수 있도록 나라의 관원들이 도울 것이라고 믿었다. 함무라비 석비(Hamnurabi Stele)에는 샤마쉬가 함무라비에게 직권(職權)을 건네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전문을 보면 함무라비는 자신이 정의로운 왕의 임무를 수행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행해지는 실례를 “대리왕 의식”(substitute king ritual)에서 볼 수 있다.Ⅲ. 탈신화화와 재신화화와 고대근동의 세계관 비교1. 구약성경의 탈신화와 재신화화독일 신약성경학자 불트만(R. Bultmann)은 신약 시대의 세계관이 신화적임에 주목했다. 그런 세계관은 현대적 세계관과 크게 차이가 남으로 현대인이 오해 없이 성경을 이해하려면 이런 신화의 언어를 벗겨 내서 탈신화화(脫神話化; Entmythologisierung)해서 합리와 과학에 익숙한 현대인의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탈신화화라는 개념의 장점은 고대에 발생한 의미를 현대인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하기 위한 해석학적 틀을 제시한다는 점이다(의미의 현재화, Hubner, Muthos I“, 607). 그러나 주원준은 불트만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학자들은 신화적 표현은 미신의 언어도 아니고, 볏겨 내어 폐기 처분할 대상은 더더욱 아니라고 지적했다(Fergusson, “Entmytholgogierung, 1329-1330). 그러면서 성경의 태생적 언어는 의미를 담아내는 신화나 이야기의 언어와 가깝다는 주장이 폭넓게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한다.2. 창세기 본문의 탈신화화 헌장(憲長)주원준에 따르면, 구약성경은 고대근동의 크고 작은 신들을 야훼 신앙을 바탕으로 탈신화화 한다. 이런 신학적 성찰을 집대성한 본문이 창세기 1장이다(1:1-2:4). 특히 창조 이야기는 고대근동의 세계관을 완전히 뒤엎는 혁명적 본문이다. 큰 나라의 큰 신들을 한낱 피조물로 만들어 그 권위를 추락시켜 버렸기 때친다.
    인문/어학| 2020.03.29| 9페이지| 3,000원| 조회(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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