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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동아시아, 동북아시아 -일본
    -들어가며오늘날 일반적으로 동아시아라고 한다면 보통은 한국, 중국, 일본, 대만에 몽골 정도를 포함시킨 동북아시아의 몇몇 나라들을 통칭해 부르는 용어로 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 동아시아란 것이 과연 우리들 역사 속에서 실재했는가 란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위의 나라들에서 과거에 스스로를 동아시아란 범주로 묶어 그 용어를 사용했다고 하는 용어의 역사성이 없고 근대 이후에 서구의 시각에 의해 만들어진 지역적 범주에 불과하다는 것이 현재의 중론이다. 그러면 동아시아의 문화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먼저 동아시아란 무엇이고 우리는 이 용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연일 보도되는 일본과 관련된 보도들이 한국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교과서 역사 왜곡은 단순한 침략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말로써 미화시키려는 의도라 생각되는데 동북아시아와 일본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도 생각했지만 정말 참을 수 없으리만큼 불쾌하다. 일본이 참가한 세계 제 1차 대전이나 세계 제 2차 대전은 강대국의 이익만을 목적으로 한 전쟁이라 볼 수 있다. 이제와 일본은 그러한 근본마저도 무마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독도 영유권을 다툼으로 국제 사회까지 들썩이게 하고 있는 이 시점을 바탕으로 나는 일본 근대사와 관련하여 일본의 우국화 현상과 역사적 책임 왜곡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동아시아’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동아시아란 존재역사적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은 각각 쇄국 정책을 고집해오며 서로간에 조공을 제외한 왕래가 거의 없다시피 하였었다. 그래서 인구에 비해 경작할 토지가 적은 일본이나 경작이 불가능한 만주 지방을 위시한 북방 유목민들은 그네들의 식량수급이 여의치 않을 때마다 그들의 이웃국가인 우리나라나 중국 등에 침략해 필요한 식량 및 생필품 등을 약탈해 갔으며 이러한 약탈행위가 역사적으로는 이들 모든 나라들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결과념으로 의미화하고 있는 과정으로 봐선 그 ‘동아시아’란 용어와 개념에 대한 관습성은 인정을 해야 한다고 보여진다. 즉, 우리들 마음 속에서는 이미 ‘동아시아’에 대한 그 구체적 개념이 자리를 잡았으며 이것이 현재 우리들에게 실체화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과거와 같이 서양의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우리의 모든 생활양식이 결정되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즉, 현재 우리는 서양의 대척점으로서만 존재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 우리 자체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몇몇 나라들의 일컬어 ‘동아시아’라 부르고 있다. 이는 이미 우리의 의식 속에서 이 ‘동아시아’란 존재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뜻이고, 결국 우리에게 동아시아는 실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버리지 못한 일본의 침략 근성전쟁이 끝난지 오래 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일본과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의 대륙으로의 진출 야망은 아직도 무너지지 않은 듯 보인다. 일본은 아직도 제국주의의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거기에 강력한 집단 사상을 바탕으로한 국민성마저 더해짐으로써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일본은 20세기 초 한국을 무력침략한데 이어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 주변국에 대한 침략 전쟁을 일으켜 점령한 후 짐용과 징병을 비롯하여 온갖 방법으로 식민지에 대한 침탈을 일삼아 왔다.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침략 근성이 나는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그들의 태도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일본의 근대화일본의 개혁자들은 서양의 자유민주와 과학 합리주의의 정신을 수용하는 대신에 천황을 신으로 신격화시킨 국가종교와 그러한 신화의 역사로의 왜곡에 따른 지배구조로 군사 국가를 만들어 갔다. 그들은 신의 명령으로서 천황의 명령을 따르도록 교육받았다. 이것이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국가의 정신인 것이다. 침략과 만행도 천황인 신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인도적 가책이 없었다. 이 무책임과 비양심의 정신 구조는 천은 문호를 개방하고 서양 문물을 도입 서양의 제국주의 대열에 빠질 수 없는 국가가 되었다.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口))라 해서 서양제국주의의 추종을 주로하고 아시아를 면하자는 정책을 밀고 나갔고 마침내 아시아 민족에 대한 멸시와 모멸의 자세를 취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아시아를 정복의 대상으로 보게 된 일본은 아시아 정복 정책을 정당화하고 일본자체의 열등감을 벗어나고 국가주의 이념을 확립 강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의도적으로 조성한 정치신화가 왕이 태양신의 자손이고 일본이 신의 나라라는 황국사관(皇國史觀)이었다.)- 일본의 우익 국수주의일본의 동아시아주의는 처음부터 많은 모순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더욱 큰 문제는 전후 일본의 아시아 아시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하지 못한(혹은 않은) 점이다. 일본의?굴절된 아시아 인식?의 근본적인 원인은 역사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바탕위에 급속하게 발전한 자본주의와 산업화에서서 일본민족의 우월의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일본 사회에서 급속도로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일본 우익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일본에서 문제가 된 것은 한국과 중국 정부를 비롯한 각 국가들의 강력한 항의와 일본의 민주 평화 세력이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를 한 때 이러한 많은 반발로 후퇴하는 듯 입장을 표명한 적이 있었으나 실제로 이제와 따져보면 그것은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지배층은 패전 전이나 패전 후이나 그대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실권 주체였다. 따라서 일본제국의 아시아 패권주의는 일본에 잠재적 모습과 야망으로 계속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은 패전 후 한국의 민족간 전쟁으로 벼락부자가 되었고 군국주의 우익이 복고되어 갔다. 또한 미국의 월남전쟁에도 참여하여 이득을 취하며 미국과 군사동맹국으로서 지위를 굳혀 나갔다. 일본은 자신들이 자행한 조선 병합과 식민지화의 역사과정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역학과 그 국제관계에 일익을 담당했던 일본이 의무로서 관여한 것이었다고 말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제국주의 세력들은 동북아시아의 제국주의 권력구조에 기여하게 되었고, 동북아시아에서의 주도권쟁탈을 위하여 서로 경쟁하였으며, 직?간접적으로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였다. 중국과 한국은 "내적 분출압력" 낮은 나라였고 따라서 "내적 분출압력" 강한 제국주의 세력들의 표적물이 되었다. 동북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세력들은 자국의 이익을 확장하려고 하였으며, 특히 이들은 자국보다 약한 "내적 분출압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을 정복하려 하였고, 만약 단독으로 점령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에는 경쟁국가들과 연합하여 그것을 분할점령하거나, 또는 그 나라의 이익이 2차적인 것이면 주요 이익으로 생각하는 다른 제국주의 세력과 그 이득을 교환하려 했다. 또한 제국주의 세력들은 어떤 한 행위자나 연합한 세력들이 패권을 장악하는 것을 견제하려 했고, 권력정치를 기본개념으로 힘을 바탕으로 한 세력균형을 상호이익과 평화유지의 수단으로 삼았다.한국이 일본에 의해 합병되고 식민지화된 것은 바로 이러한 권력구조의 논리 속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제국주의 외교"를 통해서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의 인정받게 되었던 것이다.중국, 러시아, 일본 등은 한국에 대하여 중요 직접-중심적인 행위자들이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주변행위자였다. 이 직접-중심적인 행위자들은 한국이 그들과 매우 밀접해 있기 때문에 전략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국가든지 한국에 대한 일방적 지배는 다른 국가들에게 안보위협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 중국, 러시아는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을 통하여 한반도의 주도권쟁탈을 위해 경쟁하였고, 반면 주변행위자들은 동북아시아 전체의 일반적인 세력균형 정책을 중요시하였던 것이다. 중국, 일본, 러시아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한국에 그들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한국의 취약성과 내부의 불안정을 경쟁적으로 이용하였다. 보수적인 친청파와 진보적인 친일파간의 권력투쟁은 외국의 제국주의 세력을 이용하은 그들의 국가이익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일본이 동북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봉쇄하려는 데에 어느 정도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일찍이 1820년대 초 미국은 북미의 북서해안 쪽으로 팽창해 오는 러시아를 「먼로독트린」의 선언을 통해 러시아의 팽창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청일전쟁 이후 증강되는 러시아세력은 미국의 "개방"정책에 위협으로 생각했다. 특히 만주에서 더욱 그러하였다. 미국은 러시아화된 한국보다는 일본화된 한국을 더 선호하였다. 한편 영국은 1885년초 한국에서 러시아의 팽창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삼국간섭은 중국본토에서 영국의 영향력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미국과 영국은 일본과 연합하여 동북아시아에서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1902년과 1905에 있었던 영?일동맹은 그러한 논리적 결과였다. 그들은 일본을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와 질서의 제공자로 생각했다. 일본 또한 유럽세력들을 따라서 제국주의 세력으로 등장한 이후 그들 국가들의 협조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그리하여 1905년에 있었던 태프트-카쯔라(Taft-Katsura)협정과 1908년의 루우트-다까히라(Root-TAkahira)협약과 같은 미국과 일본의 비밀협정을 통하여 필리핀에 있는 미국의 이익에 대하여 일본이 어떠한 침해도 하지 않겠다는 일본의 약속을 얻어내는 대가로 미국은 일본의 한국합방과 동북아시아에서의 일본세력의 우위를 인정하였다. 영국은 1905년에 새로 재체결한 영?일동맹을 통하여 한국에서 일본의 우세한 이권을 인정한 반면, 일본의 팽창주의자들이 동남태평양에서 영국의 현상유지에 도전하지 않도록 중립화를 시도하였고, 일본과 함께 앞으로 러시아의 진출에 대항하는 장벽을 강화하려했다.일본에 패한 중국과 러시아는 각각 1895년의 시모노세키(Shimonoseki)조약과 1905년의 포츠머스(Portsmouth)조약으로 이미 한국에서 일본의 정치 및 경제적 이권과 지배적 우위 없다.
    인문/어학| 2006.06.28| 8페이지| 1,500원| 조회(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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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 사회]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애미매이션을 보고.
    단편의 애니메이션이 주는 여운이 이리도 클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실상 TV조차 자주 보지 않는 나에게 만화라는 것은 어린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늘 지배적이었고 조금 더 교양 있어지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한 페이지를 두 세 번씩이나 읽어야 이해가 되는 어려운 책을 가슴팍에 품고 다녔던 것이다.낮잠-귀엽고 천진한 아이의 얼굴.. 꿈나라에서 어떤 여행을 하는지 평화스럽게만 보인다. 하지만 화면이 비추는 대상이 점점 넓어지며 보여지는 아이의 불편한 손과 발과 다리.. 장애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각인되는 순간이다. 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얼마나 높은가.’일 것이다. 꼬마 아이가 주인공이 됨으로써 사회의 그릇된 편견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었는데 사실 내가 교육을 받을 때만 해도 장애인은 마치 우리와는 별개의 세상에 살아가는 것처럼 인식되어 있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보면 도와줘야 한다는 둥, 시험 문제에 출제되는 뻔하디 뻔한 교육만을 받아왔지, 실질적으로 장애인들이 어떠한 도움이 필요로 하는지 그들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교육받지 못했던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겠지만 나는 3년째 입시학원에서 강사로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얼마 전에 일을 예로 들자면 수업 중 한 아이가 새 학기가 되어 반 배정을 새로 받았는데 자기 반에 장애인이 세 명이나 있다며 “재수없다.”라는 말을 내뱉는 것이었다. 당혹감에 그 아이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뒤에 상황이 더욱 가관이었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아이들이 한 마디씩을 거들었다. ‘그런 아이는 두들겨 패서 학교를 못나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둥, 전학을 가게 만들라는 둥..’물론 철이 없어 하는 말이겠지만 중학교 3학년인 녀석들 입에서 나오기에는 너무나 실망스러운 말들뿐이었다. 참다못한 나는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 따끔하게 혼을 내어 지적한 다음 타이르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러한 생각이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의 냉대는 그들에게 또 하나의 장애로 시련으로 더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 속히 이러한 인식이 전환될 수 있는 사회로 변모해 가길 바래본다.육다골대녀(肉多骨大女)-그녀를 보며 나는 잠시나마 우월감에 젖어들었다. 큰 머리, 곱슬 머리카락, 넓은 어깨, 아톰 다리, 풍만한 살들.. 그러고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인가 생각되어 피식 웃음을 토해내었다. 시내에 가면 예쁘고 긴 다리의 그녀들이 거리를 당당하게 활보하고 있다. 유행하는 헤어스타일과 의복, 신발, 액세서리까지 나도 그녀들처럼 하면 저렇게 예뻐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나 뿐만이 아닌 대다수의 여성들이 그녀들의 패션 코드를 쫓게 되고 그것이 곧 유행이 된다. 하지만 뭔가 어색하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더니 옛 속담이 그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깨닫는 순간이다. 예쁘면 다 통한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인상 좋은 이를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외모에만 집착하는 현대인들의 잘못된 생각에 있다. 박색이 아닌 다음에야 부모 주신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도 보람된 일이거늘 여기저기서 연예인을 따라한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그 덕택에 시내에는 즐비하게 성형외과가 생겨나고 그 곳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내 돈 주고 예뻐지겠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냐만..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다움’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20살 이후 줄곧 다이어트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내가 이런 얘길 한다는 게 조금 어패가 있지만, 어쨌든 ‘나다움’이라는 것. 올바른 나만의 정체성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이런 개인의 생각 전환이 사회에 전반으로 확산될 때 외모지상주의의 만연 풍조가 사라지는 그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자전거 여행시내에 가면 지하상가를 주변으로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볼 수 있다. 사실 나는 번잡한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많은 외국인들이 주로 어느 곳에서 활동하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옛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랬던 것 같다. 단 한번이라도 외국인 노동자와의 인연을 가진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들의 생활을 좀처럼 접할 기회가 없었다. 다만, 매스컴의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보는 그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만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15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한국에 왔다는 검은 피부의 말라깽이 남자, 몽골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좀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왔다던 순해보이던 그 여자.. 하지만 그들에게 한국의 냉혹한 현실은 열심히 일한 만큼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꿈의 나라가 아니었다. 그들이 동경하던 한국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대신 이기적 집단 의식으로 똘똘 뭉친 한국인들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인권 유린은 세계 12위의 경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도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단일 민족 사상으로 똘똘 뭉친 민족주의적 의식위에 타인들의 설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막연한 얘기일 테지만 이제 그들을 향해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라는 인식보다 우리와 함께 일하는 동료로 상호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인문/어학| 2006.06.28| 2페이지| 1,000원| 조회(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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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이용악의 문학 세계
    이용악1. 생애1914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생1935년 『신인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옴1937년(24세) 동경에서 제1시집 『분수령』을 펴냄1938년(25세) 동경에서 제2시집 『낡은 집』을 펴냄1939년(26세) 일본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 최재서가 주관하던 잡지 『인문평론』의 편집기자로 근무1942년(29세) 고향으로 돌아감1945년(32세) 해방되자마자 귀경1946년(33세) 조선문학사동맹 회원으로 가담, 활약. 『중앙신문』 기자1947년(34세) 제3시집 『오랑캐꽃』을 펴냄1949년(36세) 제4시집 『이용악집』을 펴낸 후,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됨1950년(37세) 6·25 동란 중 월북함2. 작품 분석풀버렛소리 가득차 있었다우리집도 아니고일가집도 아닌 집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 최후의 밤은 : 객사의 처참함풀버렛소리 가득차 있었다 : 슬픔의 절제 → 죽음의 극한 슬픔 극대화ㄱ노령을 다니면서까지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한마디 남겨두는 말도 없었고ㄴ아무을만의 파선도설룽한 ㄷ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 ㄱㄴㄷ 아버지의 죽음은 개인 차원이 아니라 목침을 반듯이 벤 채 사회 차원임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깔앉고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를 가르쳤다때늦은 의원이 아모 말 없이 돌아간 뒤이웃 늙은이 손으로눈빛 미명은 고요히낯을 덮었다 : 모더니즘적 일면. 임종을 보지 못했으면서도 실제로 임종한 것처럼 그림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 최후의 밤은 : 유랑의 설움 강조풀버렛소리 가득차 있었다*노령(露嶺) : 러시아의 영토, 시베리아 일대*아무을만(灣) : 헤이룽당 하류의 아무르 지역(러시아, 몽고 접경)*니코리스크 : 시베리아 하구의 항구도시 니콜아예프스키이 시는 아버지의 죽음을 직설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사실은 그 얘기가 아버지의 죽음에 한정된 단순한 토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오는 개인적 슬픔을 넘어서는 아픈 소외가 있기 때문이다.죽어서 드러누울 알량한 땅뙈기조차 없는 침상 없는 최후 를, 우리집도 아니고/일가집도 아닌 집/고향은 더욱 아닌 남의 나라 땅 아라사 에서 마치고 간 아버지의 주검이 놀랍도록 싸늘한 객체로서 형상되어 있다. 그 아들이자 작중화자인 나 의 아버지에 대한 시선은 무서우리만큼 차갑고 엄격하다. 이러한 사실전달적 어조와 냉정한 시선을 통해, 그 시기 시베리아 유이민 현실의 참담한 실상을 예리하게 형상한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 최후의 밤은/풀버렛소리 가득차 있었다 라는 구절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서정성에 매개되어 보다 명료한 이미지를 획득하고 있다.{) 윤영천 編, 「이용악 시전집」, 창작과 비평사, 1988, p. 212이 작품의 전경은 풀버렛소리 가득찬 밤 으로 나타나 있다. 반면에 원경은 고통스럽게 지내온 삶의 이야기, 노령을 다니면서까지 자식들을 애써 키워온 아버지가 고난에 찬 아무을만의 파선도/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잊고 침상 없는 최후 최후의 밤 을 맞는 이야기로 드러난다. 이용악의 시는 이렇게 서사적 특성을 지니는 한편 이미지를 전경으로 내세우며 삶의 갖가지 이야깃거리들을 극도로 함축하여 암시하고, 그것을 가시적인 전경과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서사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Paul Hernadi, 김준호 옮김, 《장르論》(문장, 1983), p. 87 참조.☞ 자아와 현실의 갈등 양상- 이향(離鄕)과 귀향(歸鄕)의 악순환첫시집과 둘째시집에 고루 나타나는 주관적 요소는 비극적 현실인식이다. 이 시인의 의식을 어둡게 지배하는 현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직접적인 것으로서 아버지의 이른 죽음과 그 때문에 겪게 되는 생활고이며, 다른 하나는 당대의 정치·사회적 현실과 관련된 궁핍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시인으로 하여금 실존적 괴로움과 회의에 흔들리게 하는데, 결과는 이향과 귀향의 악순환이다. 즉 막막한 고향 → 떠남 → 막막한 타향 → 고향으로의 귀환 → 막막한 고향 → 떠남 이라는 유랑의 삶이다. 초기시에 두드러진 자의식적 시편들은 바로 이런 개인적 유랑의 삶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전라도 가시내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골가시내야나는 발을 얼구며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북간도 술막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눈포래를 뚫고 왔다가시내야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가난한 이야기에 고히 잠거다오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없이 새기는 보조개가시내야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인문/어학| 2006.06.28| 5페이지| 1,000원| 조회(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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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 복제] 생명복제에 대하여 평가A좋아요
    Ⅰ 서론Ⅱ 본론ⅰ. 인간복제의 정의ⅱ. 인간복제의 현황(주요사건)ⅲ. 인간복제의 순기능적 측면ⅳ. 인간복제의 역기능적 측면ⅴ. 인간복제 문제에 대한 해결책Ⅲ 결론Ⅰ.서론1997년 2월, 스코틀랜드의 로슬린연구소의 윌머트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복제양을 만들었다는 발표 이후,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여 상업적인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특허가 국내에도 출원되었다는 소식과 2002년 영국에서는 이러한 복제기술과 간(幹)세포배양기술을 결합시키는 배아복제 기술의 개발이 허용되었다. 2002년 12월 26일 클로네이드의 브리지트 부아셀리에 박사는 자신에 의해 첫 복제아기가 탄생되었다고 발표한 후 2003년 3월 16일까지 모두 5명의 인간복제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면서 수일 안에 이를 입증할 과학적 증거를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첫 번째 복제인간 이브는 이스라엘에 살고 있으며 나머지는 네덜란드,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클로네이드사의 발표이후 복제아기가 태어난 과정과 클로네이드사가 복제를 추진한 배경, 앞으로 벌어질 사회적 파장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은 복제아기에게 신체적, 정신적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으며 복제아기의 권리와 새로운 생명관 뿐 아니라 도덕과 윤리, 종교적 차원의 논쟁이 급속도로 빠르게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러한 복제기술의 발전은 자동차 등 인류가 개발한 다른 기술과는 달리 그 연구대상이 연구를 추진하는 주체인 인간일 뿐 만 아니라, 그 결과가 자자손손 전달되는 인간의 형질을 임의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기술개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므로 이 레포트를 통하여 인간복제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나름의 소신대로 제시하여 보고자 한다.Ⅱ.본론ⅰ.인간복제의 정의인위적으로 이미 태어난 사람의 쌍둥이 동생을 만들어 내는 기술을 말한다.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인간복제는 어떤 인간과 모든 면, 즉 유전형질뿐 아니라 외모, 성격, 감정, 재프로그래밍 시킨 후 수핵세포질(사람, 혹은 다른 동물의 난자)과 수정시켜 새로 분화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이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킨다면 핵을 떼어낸 성체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새로운 아기가 탄생하게 된다.{체세포 핵이식법의 그림▶인간배아복제(human embryonic cloning)인간배아복제는 인간개체복제와 기술적으로는 동일하나 그 목적이 개체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분화되기 전의 배아기간세포(embryonic stem cell)를 얻거나 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연구하려는 것이다. 일반적인 발생학의 관점에 의하면 인간의 수정란은 수정 후 대략 14일에 원시선(primitive streak)이 나타나면서 배아단계로 들어간다. 이때부터 8주째까지는 각종 기관이 형성되는데 이 시기를 배아기(embryonic period)라고 부르며 이후로는 이미 형성된 기관과 신체부위가 자라는 태아기(fetal period)로 넘어간다. 이 배아의 형성과정은 임상의학과 기초 생물학의 발전에 매우 커다란 의미가 있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여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배아기간세포는 알츠하이머{) 노인에서의 치매(痴)의 원인 중 가장 흔한 형태이다. 병리조직학적으로는 뇌의 전반적인 위축, 뇌실의 확장, 신경섬유의 다발성 병변(neurofibrillary tangle)과 초로성 반점(neuritic plaque) 등이 특징이다. 미국 전 대통령이었던 R.레이건이 이 질환을 앓고 있다고 알려지면서 세인의 관심을 더욱 끌고 있다., 당뇨병 등 여러 질환을 치료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ⅱ.생명·인간복제의 현황(주요사건){▷1952년개구리 수정란 시용한 복제 성공. 미국▷1962년개구리 체세포 복제 첫 성공, 영국▷1983년수정란의 세포를 나눠 생쥐 복제(생식세포복제)▷1986년면양복제(생식세포복제)▷1990년 10월미국국립보건원(NH), 인간게놈프로젝트(HGP)착수▷1997년 2월첫복제양 돌리 탄생( 영국, 포유류 체세포 복제 첫 성공)▷1998년인간유전자 들어간 송아지복제(미 짐을 덜기 위해 인간복제를 이용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다른 모든 수단을 쓴다고 해도 불임을 극복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훨씬 유용하다고 볼 수 있다.둘째로 인간복제는 부부 중 한쪽이 심각한 유전병을 앓고 있을 때, 그 병을 자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번식할 수 있게 해준다. 지금도 기증된 정자나 난자를 이용하면 인간 복제를 이용하지 않고서도 그런 유전적 위험 정도는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에게 부부 중 한쪽의 유전자를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제3자의 유전자를 도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거나 그보다는 차라리 인간 복제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부부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인간복제는 유전병이 자손에게 이어지는 것을 막는 합리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다.셋째로 상당한 시차를 두고 쌍둥이를 만드는 인간 복제는 이식용 장기나 조직을 제공 할 수 있다. 인간복제는 일치하는 장기나 조직을 가진 제공자를 찾아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이식 거부 반응이 일어날 위험을 아예 없애거나 현저하게 줄여줄 것이다. 이러한 목적의 인간 복제는 특정치료를 가능하게 해주는 일종의 보험에 해당한다.넷째로 인간 복제는 죽은 아이처럼 특별한 의미를 가진 누군가를 복제하도록 할 수 있다. 인간 복제가 가능해진 시점, 그것을 이런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틀림없이 나타나고있으며, 그들의 욕망이 대개 심각한 정신적 혼란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인간 복제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사람을 복제할 수 있게 해주고 그렇게 해서 깊은 만족감을 줄 수 있다면, 인간 복제를 원하는 이유와 그들이 얻은 만족감이 혼란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그들에게 이익을 줄 것이다.다섯째, 인간 복제는 위대한 재능, 천재성, 인격 등 귀감이 될 만한 품성을 지닌 개인을 복제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앞의 네 가지 이유가 특정 개인에게 이익을 주는데 반해, 이 이유는 모차르트, 아인슈타인, 간디, 슈바이처 같은 비범한 사람들을 복제함으로써 사회 전체에 이익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재능 없는 음대 대학원생은 음악가로서는 상당히 다른 가치를 지니지만, 인간으로서는 평등한 도덕 가치와 존엄성을 공유하는 것이다. 도구적 가치로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한 명의 원본에서 대량의 클론을 만드는 일이 그런 잘못된 인식을 부추긴다면, 그것은 한 사람에게서 만들어질 클론의 수를 제한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될 수도 것이다.둘째, 인간복제는 뒤늦게 태어난 쌍둥이에게 심리적 압박감과 피해를 줄 것이다. 앞서 태어난 쌍둥이가 어떤 인생길을 걸었는 지 알았을 때, 정신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자기 스스로 자유롭게 자신의 운명과 인생을 솔계하고 그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느끼기 어려울 것이며 뒤늦은 쌍둥이가 경험하고 느끼는 자율과 자유, 자신이 유일한 존재라거나 고유의 개성을 지닌 존재라는 감정은 줄어들 것이다. 뒤늦은 쌍둥이가 어떤 특별한 능력과 업적을 지닌 인물의 클론(clone){) 단일세포 또는 개체로부터 무성적(無性的)인 증식에 의하여 생긴 유전적으로 동일한 세 포군 또는 개체군.이라면, 그는 앞선 쌍둥이에 버금가는 높은 수준의 능력과 업적을 보여줘야 한다는 과중한 압력을 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가해지는 다양한 정신적 영향은 뒤늦은 쌍둥이에게 과중한 희생을 강요하고 심각한 부담을 줄 수 있다. 이것은 분명 우리가 인간복제의 행위를 피할 윤리적 이유가 될 수 있다.▶사회적 측면첫째, 인간복제는 상업적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과학소설에서 보면, 상업적 이익이 유전적으로 인증되고 보증된 판매용 배, 즉 다양한 재능, 능력, 기타 바람직한 특성을 지닌 개인들로부터 복제한 다양한 배의 상품 목록이 시장을 통해 제공되는 것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이것은 모든 사람들을 시장에서 서로 다른 가격이 매겨지고 매매되는 대상으로 취급함으로써, 그들이 소유한 평등한 도덕가치와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행위일 것이다. 비록 배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관점에 상응해 본다해도 그것들이 매매될 한다. {) 「인간복제; 윤리적 찬반 논쟁의 평가」, 클로닝 엔드 클로닝 2000, Dan w.Brock셋째, 혈연과 가족 공동체에 기반하는 법적 관계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새로운 구성원이 생겼을 경우 과연 그 사람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지, 나의 쌍둥이로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나의 아들, 딸로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혼란이 올 것이다. 그리고 또한 결혼과 가족제도에 많은 변형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게이나 독신자들이 부모가 되는 것처럼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등장할 것이고 친족 구성원에 있어서도 그 개념이 모호해질 것임이 분명하다.▶종교적 측면신의 섭리에 대한 거역이다. 생명의 인위적 조작은 신에 대한 도전이기에 옳지 않다는 것이다. 생명을 창조주의 고유 영역이라는 교리에 의거하여 인간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행위를 신에 대한 모욕으로 보는 입장이다.(이 부분은 다분히 종교적인 주장이다.)ⅴ.인간복제 문제에 대한 해결책첫째, 새로운 가치관(윤리관)의 정립이 필요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필연으로 받아들여야 할 기술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감이나 경탄을 갖는 태도를 버리고 새로운 문명으로 맞기 위한 중립적인 가치관이 서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는 변해왔고 또 변화할 것이기 때문에 변화에 걸맞게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복제아기 탄생은 새로운 사회 질서와 생명관에 대한 논쟁에 불을 지필 것으로 보인다. 정자나 난자 없이 세포만으로 새로운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다면 생명을 바라보는 가치관을 크게 수정해야 할 것이다. 가족 제도 등 기존의 사회 질서도 변할 수 있다. 인간복제의 과학적 본질과 문제점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에 따라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가치관과 윤리관을 확립해야 한다. 생명과학의 자기반성과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둘째, 연구자의 올바른 윤리의식의 필요성이다. 연구자가 지녀야 할 올바른 윤리의식의 확립이다. 복제를 연구해서 얻은 모든 것들은 단순히 자신의 것만이 아니다. 이제는 그의 생각이나 행위와 관련하여 인간의 존엄과 것이다.
    자연과학| 2003.06.05| 9페이지| 1,000원| 조회(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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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에 관련된 서적을 읽고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조르주 뒤크로 지음최미경 옮김눈빛 2001《신복룡 교수의 이방인이 본 조선 다시 읽기》신복룡 지음플빛 2002오래 간 만에 맡아보는 책 냄새다. 얼마 만이던가.. 매일 줄긋기(실내건축; 제도)에 여념이 없던 내가 도서관에 들린 것이... 한국역사 라고 표기되어 있는 주변을 한참 서성거렸다. 도대체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망설이고 있는 터다. 너무 오래간 만에 읽는 책이라 설레임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이유도 있겠지만, 늦게 제출하는 레포트니 만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열성적 태도를 기울이고 있는 차다. 수없이 많은 책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한참을 서성거리다 드디어 손을 뻗어 책을 들었다.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 ...프랑스의 조르주 뒤크로라는 외국인이 쓴 것을 우리나라 사람이 번역해 놓은 책이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역사를 우리의 시각으로만.. 우리나라 역사가들이 쓴 책만을 보고 배웠던 거야.. 이방인이 본 우리나라의 조선을 보고 싶어.. 그리고 또 다른 한 권의 책을 집었다. 신복룡 교수의 『이방인이 본 조선 다시 읽기』.. 멋지다.. 이 두 권의 책이 조선에 대한 나의 편견을, 편협된 나의 시각을 바꿔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조심스레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본다...1904년 조르주 뒤크로(1874~1927) 가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을 출판할 즈음에 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이웃의 두 대국 일본과 러시아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표적이었다. 이 책은 조선의 지정학적 상황에 대한 자료들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조선과 한민족, 조선문화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각 장의 주요 내용을 차례대로 나열하여 보자면 조선의 가옥, 한민족의 얼굴, 한민족의 의복, 행복한 조선 사람들의 모습, 한양거리의 상가, 조선의 장례식과 결혼식, 한국의 자연, 조선의 문인들(양반), 조선 속담, 한양의 남쪽에 위치한 남산에 대한 것들이다. 다른 이방인의 관찰자, 기자, 분석가, 전략가들이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관계, 지배·소유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때, 이 책의 저자 조르주 뒤크로는 조선과 한민족에 대해 곧고 따뜻하며 편견이나 계산이 배제된 시각을 가지고 접근한 것이다.이 책은 조선의 풍광을 담은 몇 폭의 사진들로 앞 부분이 채워져 있는데 사진을 보면 볼수록 흥미롭다. TV 연속극에서나 보던 것과는 달리 매우 소박하다는 표현이 적절한 듯 싶다. 사람들의 표정은 대부분 조금 어두운 것 같은데(흑백사진이라 그럴 수도 있다.) 주로 서민들의 사진이기에 그들의 찌들린 생활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 이상한 연민 같은 것을 느끼게도 한다.이 책의 내용 중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이 글의 저자가 조선의 속담에 대해서 쓴 부분이다.{) p108∼110 조선의 문학은 격언조로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속담을 많이 사용했다한다.속담들이 분별력 있고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물론 아는 속담도 많았지만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속담이 있었기에 웃음이 절로 나왔는데 그러면서도 서민들의 생활이 측은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던 속담들에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뒤크로는 조선 속담이 이 나라가 가난한 나라이며 그래서 무엇이든지 계산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배 주고 속 빌어 먹는다 , 아주머니 술도 싸야 사 먹는다 같은 속담이 바로 그런 것이다. 왕지네 회쳐 먹을 비위 를 가진 철면피인 권세있는 사람(양반가)을 경계한다는 뜻이며, 왕의 힘도 한계가 있음을 경고하는 왕도 포도밭에서 당황한다 라는 은유의 속담과, 한양의 멋쟁이를 비웃는 속담으로 단삼 적삼 벗고 은가락지 낀다 는 속담도 있었다. 또한 오랜 숙고 끝에 얻어낸 지혜를 소박하게 표현한 것으로, 못난 것이 조숙하다는 뜻의 산살구 지레 터진다 라는 속담도 있었다.또 다른 하나, 비분강개할 만한 일은 아니더라도 나를 많이 실망케 했던 것은 역시나 이방인인 뒤크로의 눈에도 조선의 양반들은 서민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뒤크로는 이 책에서 이용익(1854~1907)이라는 자를 말하고 있는데 그는 부정을 적발해내고 스스로 쌀가마니와 금전을 관리하는 등 고관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는 고관들이 횡령한 공금을 회수하고 국고를 채우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뒤크로는 그에 대해서 아마도 제명에 죽지 못할 것이다. 그는 암살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한양 거리를 혼자 걸어서 다닌다. 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만큼 조정의 안팎이 매우 혼란스러움을 말하고 있으며 그는 또한 양반의 신분, 학식, 고관의 직은 모두 일치된 것이다. 서민들에게 양반은 주인이며, 돈을 엿보는 눈초리를 의미한다. 세금과 부역은 이 나라에서 아주 무겁다. 때때로 고관들은 황제에게 일정한 수의 호랑이 가죽을 상납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사냥꾼들에게 사냥명령이 떨어진다. 어떤 경우는 고관이 마을을 지나다 새로 지붕을 이운 집을 눈여겨본다. 그러면 그 지붕을 새로 한 사람은 돈을 바쳐야 한다. 이런 가차없는 징세 제도 때문에 차라리 백성들은 빈둥거리며 노는 편을 택한다. 그러나 조국을 떠나 시베리아에라도 가게 되면 한두 푼 저축을 한다. 만약에 정부가 덜 가혹하게 군다면 백성들은 덜 게으를 것이다. 그렇게 무섭게 백성에게서 뺏은 돈은 황제의 기분풀이, 환영행사, 만찬, 불꽃놀이, 성대한 외출, 코끼리 구입, 한양의 백성들을 위한 쌀배급, 군대의 월급 등으로 쓰인다. 조선이 유럽식 군대를 키우기 위하여 자국 군대를 해산한 이후부터 군대에 대한 지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신식 군대는 매일 아침 왕궁의 뜰에서 훈련을 하는데, 진전이 전혀 없어서 군인들은 여전히 발도 제대로 못맞추며, 나팔수는 항상 음정이 틀린다. 징집된 장병들은 꼭 달라붙어 활동이 불편한 제복을 입고 난처해 하며, 상투 위에 얹은 군모, 흔들흔들하는 말총모자, 군화 때문에 발이 아파한다. 목도리를 두르고 손은 주머니에 찔러넣고, 총은 팔밑에 낀채 군인들이 훈련을 받으러 간다. 기병대도 신통치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작은 국산 조랑말은 대담하고 거세어 어떤 산길이라도 달리며 매복전에서 훌륭하게 한몫을 할 터인데도 황제는 전쟁시에는 사실상무용지물이며 평화시에는 거추장스럽기만한 덩치가 큰 호주산 말을 군인들에게 지급했다. 조선군이 활을 쏘아 가며 일본군을 퇴각시키던 그 시절은 도대체 언제였던가? 라는 글로 조선의 계급 사회 모순과 양반사회의 타락을 말하고 있다.{) p115∼120 ;고관대작들의 생활상과 저자의 입장에서 본 양반과 서민사이의 괴리에 대해 말하 고있다.신복룡 교수의 『이방인이 본 조선 다시 읽기』라는 책은 서구인들의 시각을 통하여 한국사를 다시 해석해 보고자하는데 그 의의가 있으며 또한 그것을 통한 한국사 자성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조선을 거쳐간 여러 고고학자, 역사학자, 생물학자, 전도사 등이 쓴 고서적들을 인용, 그것에 나와있는 내용과 그들의 시각을 통해서 한국사를 다시 돌아보고 있다. 각 단락 단락마다 모두 새로운 책들로 그 화제를 달리하고 있으며 이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사색할 수 있는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바다를 버려 나라를 잃었다」는 전쟁을 맞서 싸우고자 하기보다는 오히려 피하려고만 하였던 조선의 상황을 외국인의 눈을 통하여 말하고 있다. 해상방위를 꽤하기 보다 오히려 바다를 황폐히 만들어 왜구나 서양오랑캐와의 전쟁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던 조선의 정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멜이 저술한 하멜 표류기(Narrative and Description of the Kingdom of Korea)의 이야기를 통해 하멜이 우리나라에 표류했을 시기 일본과 다르게 그들을 노리개감으로 밖에 여기지 못한 사실을 크게 아쉬워하고 있다. 「조선은 황금이 넘쳐나는 나라」는 뒤 알드라는 프랑스 신부가 이라는 책에서 왜곡된 우리나라의 실상을 기록, 서방세력들에 조선을 모험해볼 만한(약탈심을 부치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치가 있는 나라로 인식시켜 많은 전쟁을 불러 일으켰다는 내용이다. 「서세동점기의 교두보 서해5동 의 풍물」은 1816년 영국의 홀 선장이 백령도에 상륙함에 따라 홀이 남긴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순한 도굴범이 아닌 문화인류학자로서의 조선 견문기」는 대원군의 무덤을 도굴한 오페르트라는 사람에 대해 역사적 오해의 부분을 말하고 있다. 특히 로마의 네로 황제를 들어 인용한 부분이 흥미로웠는데 네로 황제가 로마를 불태웠다는 것이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학정으로 인해서 그의 로마방화설은 이미 기정 사실이 되어버렸다 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오페르트가 대원군의 묘를 도굴한 것은 천주교도의 탄압을 묵과 할 수 없었던 탓이라고 덧붙여 말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이 책은 단락 단락마다의 새로운 주제들로 새로운 역사적 시각을 요구하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이방인이 조선을 거쳐갔으며 그들이 조선을 어떠한 시각으로 보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 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라는 인물을 통해 서방국가 중 한국과 국교를 맺은 최초의 국가인 미국이 조약문에서 한국의 안전과 이익을 보장한다고 약속해놓고도 일본과의 이해관계를 약삭빠르게 계산, 대한제국의 멸망을 묵살했다고 신랄히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대한제국 멸망의 묵시적 방조자 라 몰아붙인다. 그리고 미국이 한국의 좌파인지 우파인지 물음과 동시에 두 인물을 들어 개화기 미국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또한 와그너(1881~1957)라는 여성 학자가 우리의 남존여비 사상을 안타까워하며, 뿌리깊은 남아 선호와 아동 학대의 나라 라고 규정, 어린이가 우는 사회에는 행복이 없다 라는 표현을 남긴 것에 아직까지 잔재해 있는 우리의 남아선호사상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와그너,『한국 아동 생활』 (Children of Korea, London, 1911)
    독후감/창작| 2003.06.05| 5페이지| 1,000원| 조회(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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