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 중앙 박물관을 다녀와서아마 도예문화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국립중앙박물관에 갈 기회가 그다지 쉽게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집을 나섰다. 경복궁 역에 내려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경복궁 앞에서는 전통의식을 재현하는 행사를 하고 있었고 일찍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한 5분쯤 기다리고 있을때쯤교수님께서 오셨다. 박물관은 나에게 그다지 친근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항상 박물관 가면 보이는 석기, 도자기, 금속공예품등이 너무 식상해 보였고 지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도예문화 수업을 들으면서 우리나라의 도자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슬라이드로만 보던 도자기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우리나라의 도자기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기대와 설레임을 안고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건물로 들어갔다.처음은 2층 전시실이었는데 선사실과 고대 삼국 시대의 각 전시실 그리고 통일 신라 시대의 전시실까지였다. 선사실을 둘러보면서 조그만 돌 조각이나 토기 조각들이 선사 시대 것이라고 써져서 전시되있는 것을 보았다. 언뜻 보면 그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돌들 같은데 과연 저것이 선사인들이 썼던 것일까? 하는 의문도 생겼고 그걸 밝혀낸 학자들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기들 앞에 설치되있는 돋보기를 이용해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한 무늬들이 그려져 있는것들도 있었고 농사를 짓는 과정이나 일들을 그려 넣은 것들도 있었다. 구석기 시대의 토기들은 바닥이 뾰족한 것이 특징이며 노천소성으로 만들었다는 교수님의 설명을 들을수 있었다. 신석기를 거쳐 청동기 시대로 가면서 바닥이 넓어지는 특징을 보이고 있었다. 선사시대의 토기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 세월의 무상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수천년전의 사람들이 만들었던 물건들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한 시대의 박물관에 전시되 있다니 참 이상야릇한 감정이었다. 선사실을 지나 삼국시대 전시실에서는 수업시간에 배운데로 동물의 모양을 본뜬 상형형태를 띤 토우들이 눈에 띄었다. 다산을 기원하는 여자의 몸의 형태를 빚어서 만든 것, 남녀간의 애정행각이나 남근모양의 토우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작아서 돋보기로 봐야 자세히 볼수 있을 정도였다. 그밖에 말안장고리, 왕관, 금속세공품, 칼, 반지등 무덤에서 출토된 많은 양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복제품이라고 쓰여진 것들이 많아서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일부러 만든 듯한 유물들이 과거 선조들의 기술과 노력에 대한 감탄과 감동을 상당 부분 약화시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1층 전시실은 고려 시대 청자와 조선 시대 분청사기, 그리고 백자가 전시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색깔이 누런 청자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산화소성을 이용한 고려초기의 것들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말 옥으로 자기를 칠해 놓은 것 같은 푸른 빛깔의 고려청자를 볼수 있었다. 고려 시대 고려인들의 도자기 굽는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고려청자를 실제로 보고 있자니 너무나 아름다웠다. 더군다나 수업시간에 슬라이드로만 보다가 실제로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세히 살펴보니 청자 고유의 귀족적인 분위기와 맑고 그윽한 빛깔, 아기자기하게 빚은 모양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고려청자실을 지나면서 아쉬웠던 점은 임진왜란 등의 불안한 시대상을 반영하듯 전성기때의 고려청자가 계속해서 만들어지지 못하고 고려후기에는 그 빛깔이나 모양에서 다소 퇴색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들어선 조선 분청사기실은 고려청자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소박하면서도 아담한 분청사기들이 옛 선조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 했다. 마지막으로 조선백자실에 들어와서 한바퀴를 둘러보니 그야말로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이 여러 가지 종류의 백자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새하얀 백자항아리는 조선백자 특유의 넉넉한 여유와 풍만함이 잘 살아있는 듯 했다. 그리고 비싼 코발트를 수입해서 화원들로 하여금 백자에 그림을 그리게 했다는 청화백자는 깔끔하고 담백하며 군더더기 없는 백자와 정교하며 귀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고려청자와는 또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특히 시대를 지나면서 청화백자에 그려진 용의 자태가 너무나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백자는 그야말로 조선 선비들의 하얀 도포 자락과 순수하고 깨끗함, 청렴한 느낌을 너무나도 잘 나타내고 있는 듯 했다.박물관을 나오면서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들을 하나하나 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 선조들의 찬란한 문화를 엿볼수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지만 그토록 아름다운 고려의 청자를 더 이상 만들어 낼수 없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고 앞으로 전통문화의 계승과 보존에 더욱더 힘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사동 갤러리를 다녀와서토요일 오후 2시 수업을 같이듣는 친구 2명과 함께 영풍문고에서 만나서 인사동으로 향했다. 푹푹 찌는 여름날씨에 걱정부터 앞섰지만 일단 교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갤러리들을 하나씩 둘러보기로 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인사동 거리에는 발디딜틈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광주요였다. 생각보다 작은 샵에 단아한 도자기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광주요라는 이름이 궁금해서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1963년 전통도자문화의 재흥과 조선시대 광주관요의 기술과 정신을 잇기 위해 광주요라 명명하고 경기도 이천에 설립한 단체라는 것이었다. 그곳에 전시되어 있는 도자기들은 전체적으로 깔끔하면서도 단아하며 품격이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청화백자매화문이라는 자기였는데 형태는 고려청자의 참외형 주전자의 모양을 본 뜬 것 같았고 매화모양이 그려져 있는 그야말로 백자의 여백미와 단아함을 그대로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도자기를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건지 생각보다 비싼 가격표를 보고 사실 좀 놀랐다. 다른곳으로 가기전에 이곳에서 맘에 드는 도자기 몇 개를 촬영하려 했지만 직원의 만류로 포기하고 문을 나섰다.
◆ 동서양의 주도문화와 그 개선방안 ◆1. 서론 - 세계 여러나라의 다양한 주도문화와 음주문화의 세가지 유형세계각지의 여러나라마다 그 나라 고유의 문화와 전통이 있듯이 음주문화가 서로 다른 동서양 그리고 각 나라마다 각기 다른 주도문화가 존재하며 이는 각국의 다양한 문화를 엿볼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음주문화의 유형은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볼수 있는데 첫번째로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술잔을 주고 받으며 마시는 음주문화를 수작문화라고 하는데 수작문화는 술마시는 양이나 시간을 자의대로 조절할수 없는 타의성의 음주문화이다. 우리나라가 그 대표적인 문화권이며 우리 음주문화에 시원을 둔 일본 역시 수작문화이다. 두번째로 독작문화는 서양인들 중 구미인들의 문화로써 제잔에 제술을 따라 마심으로써 술의 분량이나 마시는 속도를 자의대로 조절할 수 있는 주체적 음주법이다. 그들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종류의 술을 선택하여 그가 원하는 양을 잔을 채워 대접하고 술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양과 시간을 조절하여 마시며 술잔을 서로 교환하지 않는다. 세번째로 대작문화는 중국이나 러시아, 동구 사람들의 음주문화로써 각자 술을 따라 건배를 하거나 같이 마시는 절차를 거치지만 양은 스스로 조절한다. 대작은 마시는 시간에 의해 지배받기도 하지만 마시는 분량은 자의대로 할 수 있는 자의반 타의반의 음주문화이다. 마시기 전에 건배하는 음전대작은 주로 러시아 사람들이 즐기며 마신 후에 건배하는 음후대작은 중국 사람들이 즐겨온 문화이다. 이제 동서양 각국의 주도문화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2. 본론 - 동서양의 주도문화 비교분석(1) 서양의 주도문화1 미 국자유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는 미국, 하지만 술에 관한한 무한정 자유로울 것으로 생각했다간 큰코 다치기 쉽상이다. 미국에서는 기본적으로 옥외에서는 술을 마실수 없다. 미성년자의 음주 또한 주 알콜 통제국(State Liquor Control Board)의 검열을 통해서 철저히 규제하고 있다. 미국인의 음주형태를 보면 우리 음주문화와는 너무나 상이하다.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더라도 서로 잔을 권하거나 2차를 가는 일은 거의 없고, 취해서 비틀거릴 정도로 마시는 사람도 드물다. 술값도 특정인이 사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각자가 계산한다.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에 비해 활동적이며 많은 사람과 만나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국민으로 이들의 개방적인 기질이 만들어 낸 것이 칵테일파티다. 여러 사람이 모여 점심이나 저녁 식사 또는 홈 파티를 가질 때는 모든 사람이 식탁에 좌정해서 식사를 하기 전에 식탁 한 쪽 코너에 별도로 바를 설치하여 이른바 '프리 런치(디너) 칵테일'을 갖는 것을 좋아한다. 모두 서서 칵테일 잔을 들고 돌아가면서 담소를 하여 어느 정도 분위기가 익어가면 테이블로 옮겨 식사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2 독 일맥주의 나라 독일은 음주가 생활의 일부이다. 맥주가 이들의 기록에 나타난 것은 10세기경, 그러니까 천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맥주를 마신 역사가 오래된 만큼 술 문화 또한 상당히 성숙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성숙된 독일의 음주문화는 크게 세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첫째, 음주는 대화를 즐기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맥주는 대화를 윤기있게 하는 촉매제 역할만을 하는 것이다. 둘째, 음주는 하되 법 테두리를 지킨다. 독일에는 곳곳에 비어카르텐으로 불리는 맥주집이 산재해 있고 주택가에도 술집이 자리잡고 있다. 주택가의 비어카르텐이 인기를 끄는데는 음주운전을 피하려는 독일인들의 지혜도 배어있다. 엄격한 독일 경찰의 법 집행과 그에 걸맞는 독일인의 합리적인 음주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셋째, 더치페이로 음주량을 조절한다. 남에게 술을 강요하고 싶으면 자기가 술을 사야한다. 이것이 본인의 음주량을 책임지게 한다.3 스코틀랜드스카치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의 술집들은 대낮부터 발디딜 틈도 없다. 시끄러운 음악과 떠드는 소리, 또한 앉을 의자가 별로 없는 술집의 풍경이다. 이들은 술을 마시러 온 것인지, 수다를 떨기 위해 온것인지 구별이 안된다. 안주 없이 맥주 한병, 그리고 평균 두시간 정도 머물며 남녀불문하고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은지 수다만 떨고 있다. 수다만 이렇게 떨고 있으니 술이 취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술을 즐기되 대화용이지 취하기 위해 마시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음주문화인 것이다. 진열대엔 위스키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위스키 마시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나 온더락스로 마시는 사람도 없고 물에 타 홀짝거릴 뿐이다. 역시 한잔을 마시는데 최소한 한시간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와도 술을 병으로 주문하는 경우는 없으며 그렇게 팔리지도 않는다. 위스키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는 상상도 못한다.4 러시아러시아인들은 유난스럽게 보드카를 좋아하는데 식사를 할 때 보드카를 한잔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그 식사가 잘 먹은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을 정도로 식사와 함께 즐겨 마신다. 특히 식사를 하기 전에 주정이 강한 보드카를 식전주로 마신다. 이 점에서 구미 사회에서는 주정이 약한 칵테일을 식전주로 마시는 것과 다르다. 또한 러시아인들은 보통 본격 요리가 나오기 전에 작은 잔에 독한 보드카를 따라 단숨에 마신 후 요리를 먹기 시작한다. 무색, 무취의 보드카는 러시아인에게 자연스러움과 깨끗함을 의미하며 러시아인의 순수한 정신을 나타낸다. 러시아인들은 이 정신을 마심으로써 진짜 러시아인으로 다시 태어난다고들 말한다. 러시아인들이 보드카를 마시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하나의 예식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맺어주고 이 관계를 깊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2) 동양의 주도문화1 일 본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일본은 술잔을 권하는 모습이 우리와 비슷하지만 아주 작은 잔으로 홀짝홀짝 마시는 것에서 섬나라 기질을 엿볼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도는 술을 적게 마실수 있고 술의 과소비를 억제하는 등의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일본의 안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빛깔이다. 공식처럼 술상에 올려지는 생선회는 가지가지 색의 예술품이며 술상에 같이 앉는 여색 또한 빛깔로 단장한 의상이다.일본사람들이 술을 마실때는 술잔을 돌리거나 못하는 술을 강요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각자 자기가 즐기고 싶은 만큼 즐기고 술을 시켜 주량만큼만 마신다. 술자리는 보통 한시간이나 길어야 두시간 정도이다. 따라서 일본의 선술집에서는 큰 소리를 내거나 취해서 주정하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무엇보다 꺼려하는 문화속에서 형성된 일본식 음주문화이다. 이런 모습은 술값을 계산할때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와리깡'이라고 해서 일행이 똑같이 나누어 내는데 술값은 기본적으로 참석한 사람의 수대로 나누어서 계산한다. 예를 들어 10인이 마셔서 3만엔이 나오면 적게 마시거나 많이 마시는 것과 상관없이 각각 3천 엔씩 나누어 내는 것이다. 이점은 자기가 마신 것만 내는 구미의 더치페이(dutch share)와는 조금은 다른 일본만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술좌석에서는 '무례강'이라고 해서 상하관계 구분없이 마시는데 시중들어 주는 예의작법 등이 아니라 오히려 젊은 사람을 떠받들어 마시게 하는 것으로서 일본적인 주도문화의 단면일수 있겠다.2 중 국중국에서는 술자리에 앉아 있어도 각자 자기 잔에 술을 가득 부어 마시고 '건배'하면서 잔을 다 비워야 한다. 또 술을 마시면서 상대편의 기분도 복돋아 주어야 하므로 조금만 마셔야 할때는 '스위(조금이라는 뜻)'라는 말로 양해를 구하면 다시 권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술을 마시는데 있어서의 세가지 법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사람들은 술잔을 바꾸어 마시지 않는다. 둘째, 상대방의 술잔에 술이 얼마가 남아있든지 간에 계속 부어 잔을 항상 가득 채우는 것이 예의로 되어 있다. 셋째, 술을 마실때 부지런히 상대방에게 권한다. 자기가 혼자 잔을 들어 마시고 내려놓는 법이 없으며 본인이 마시고 싶은 경우에라도 상대방에게 먼저 한 잔을 권해야 하는 것이다. 중국인들의 주량은 대단하지만, 그 내면은 대도와 자연을 터득키 위한 그들의 대륙적 기질과 통하는 일면일지도 모른다. 비록 내일 삼수갑산(三水甲山)을 갈망정 오늘의 이 술좌석 만은 충분히 즐기려 하고 주빈(主賓)에게 그러한 즐거움을 흠뻑 맛보여 주려는 성의가 엿보이는 술이기도 한 것이다.3 우리나라우리나라의 주도는 마시는 사람끼리 술잔을 주고받거나 술잔을 돌려 마시는 문화이다. 이러한 음주문화는 음주를 동질감 형성과 결속의 매체로 보는 것에서 비롯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술 마시는 양이나 시간을 자의대로 조절할 수 없는 타의성의 음주문화이기도 하다.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술의 문화가 대단히 고상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속을 이루어 왔다. 술을 음식 가운데 가장 고귀한 음식물로 인정한 우리 민족은 술 자체를 숭상할 뿐만 아니라 술에 따른 그릇까지도 중시하여 특별하게 제작하였다. 우리조상들의 음주예절중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바로 향음주례(鄕飮酒禮)이다. 향음주례는 세종대왕이 주나라 예법을 바탕으로 그 절도를 가다듬어 각 향교나 서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했던 6례중 하나로서, 어른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예의를 표하면서 술을 마시는 법도이다. 나라에서 법도를 정하고 학생에게 교육시킨 것으로 보아, 주도가 인격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 중요성을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향음주례에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주도는첫째, 의복을 단정하게 입고 끝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말 것둘째, 음식을 정결하게 요리하고 그릇을 깨끗이 할 것셋째, 행동이 분명하여 활발하게 걷고 의젓하게 서고 분명하게 말하고 조용히 침묵하는 절도가 있을 것넷째, 존경하거나 사양하거나 감사할 때마다 즉시 행동으로 표현하여 절을 하거나 말을 할 것 등이다.즉, 술을 바르게 마시는 주도의 진수는 취흥을 그대로 살리면서 지킬 것은 깍듯이 지키는 깨끗한 매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소학에서 술에 임하는 예법을 익힘으로써 술로 인한 추태나 분쟁이 거의 없는 풍속의 고장, 예의의 나라가 되었다. 요즘의 세태와 비교해 볼 때 지금이라도 우리가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