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상 FINAL EXAM인간의 자유정치외교학과 3학년20002278 최선규요즘 우리들에게 “자유”만큼이나 보편타당한 가치로서 여겨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 만큼 자유에 대한 우리들의 신뢰는 두터운 것이지만 사실 자유에 대해서 정확히 무엇이라고 정의내리기는 상당히 까다롭다. 모두가 자유에 대해서 말하지만 아무도 자유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이제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다섯 명의 사상가가 제시한 자유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우리에게 있어 가장 유의미한 입장을 찾아보고자 한다.우선 밀은 과거 자유의 개념이 절대 권력에 의한 억압과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절대 권력의 제약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절대 권력에 의한 개인에 대한 침해가 일어나기 어려운 민주주의 정치체제임을 상기시키면서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수의 횡포’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다. 밀이 말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다수의 횡포’란 특히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소수의 사상이나 표현에 대해서 다수가 행하는 비아냥거림, 비난, 인신공격 등은 물론 교육이나 문화, 제도를 통한 암묵적인 강제가 모두 소수의 사상이나 표현에 대한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다수의 소수에 대한 횡포가 제재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밀은 다수의 생각이 항상 진리라는 보장이 없으며 따라서 진리일수 있는 소수의 사상을 보장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또한 다수의 생각과 소수의 생각이 서로 어느 정도 진리에 가까운 것이라면 이 둘을 잘 조합해야만 진리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에 역시 소수의 생각이 보장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수의 생각이 진리라고 하더라도 이것에 저항하는 논리가 없으면 다수의 생각이 정당한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 어려워지며 이 진리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그 의미는 희석될 수 있기 때문에 진리가 아니더라도 소수의 생각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이렇게 밀이 소수에 대한 생각의 자유를 보장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밀은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하나의 자명한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라는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는 점이다.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 타인에게 해가 되는 것으로 간주할 것인가? 이 판단을 누구에게 맡기느냐에 따라 자유의 의미는 심각하게 달라질 수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남는데 밀이 주장한 이성의 발휘를 위한 교육의 문제이다. 물론 밀은 사회의 직접적인 교육을 통한 이성의 발휘를 다수의 사상이라는 범위 안에 제한 할지 모르는 다수의 횡포를 경계하고 있다. 이것은 교육에 필요한 구조적인 도움은 주되 그 질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개인에게 맡기는 형식을 취한다. 문제는 교육의 내용을 다시 개인에게 맡긴다면 상반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사회성에 위배되는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로 사회가 교육의 내용을 정하게 되면 이 역시 다수의 횡포가 되고 만다. 자명한 진리만을 교육의 내용으로 삼아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도 역시 같은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과연 자명한 진리에 대해서는 누가 판단하느냐는 문제이다.밀은 교육을 통해 이성을 잘 발휘하면 개인의 자유가 사회성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조화를 이룰 것이라고 낙관하면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보장에 대해 역설하고 있지만 누가 교육의 내용을 정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사회성에 위배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개인의 자유라는 것은 이미 다수에 횡포에 의해 제한된 자유가 아니겠는가 하는 문제제기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다음으로는 마르크스가 말하고 있는 자유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자. 우선,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자유’보다는 ‘평등’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파악하고 있으며 계급이란 생산수단의 소유로 구분되는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계급투쟁의 역사로 파악하오직 생산수단에 대한 것으로 그것마저 매우 산발적이고 개별적인 것에 머문다. 비인간적인 착취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가 스스로의 계급성을 인식하고 착취의 본질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계급성을 강하게 인식하게 되면 프롤레타리아가 산업별, 혹은 국가별로 서로 대립하게 될 가능성은 없어진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의 부르주아에 대한 저항을 공산주의 혁명으로 정의하고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다면 더 이상 계급간의 지배-피지배 관계가 지속되지 않으며 전 인류가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고 살 것이라고 예상했다.이와 같은 마르크스의 사상은 ‘평등’에 관한 것이지만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최소한의 물질적인 토대가 필요하며 이 최소한의 범위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인간은 사실상 자신의 삶에서 자유가 제한된 것이라는 논리와 더불어 생각해 보면 ‘평등’의 구현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보장일 수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자신의 사상을 통해 인간이 배제되고 평등이 보장되지 않은 자유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로 하여금 반문하도록 한다.하지만 마르크스의 논의에도 문제는 있다. 그가 제시하고 있는 평등의 구현을 통한 실질적 자유의 보장이라는 주장에는 문제제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비판하고 있는 현실의 불평등한 물적 토대를 변화시켜야만 마르크스가 지향하는 자유가 구현될 수 있으며 이렇게 현실의 불평등한 물적 토대를 변화시키는데서 발생하는 개인에 대한 자유의 제한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마르크스가 지향하는 자유는 불가능한 꿈이 되어버리고 만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방법은 프롤레타리아의 공산주의 혁명을 통한 생산관계의 타파인데 이것은 지극히 경제적인 관점에서의 해결책일 뿐이다. 다시 말해, 공산주의 혁명 이후에 도래할 시대에서 경제적으로 평등을 이룬다고 해서 지배-피지배 관계가 완전히 소멸될 것이라고 우리는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물질적인 토대가 자유를 진정 유의미하게 하는데 중요한 것에는 우리 모두 동의할 것이다. 하지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칸트의 인식체계를 먼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칸트의 인식체계는 이렇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서 세상은 인식하지만 세상의 본질은 파악할 수 없으며 다만 그 본질이 세상에 투영되는 현상만을 파악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이성을 통해 세상에 투영되는 본질의 현상만을 파악할 뿐이며 따라서 자유는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는 없다. 하지만 포기하기는 이르다. 인간의 본질이 인간의 삶에 투영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의 본질은 도덕인데 역시 도덕의 본질은 이성으로서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도덕이라는 인간의 본질인 인간의 삶에 나타나는 현상은 파악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의무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본질인 도덕이 “~ 해야 한다.”라는 식의 명령으로 인간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 자유란 그 본질은 파악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인간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인간은 인간의 본질에 맞게 살아야 한다.”라는 정언명령으로 주어진다. 여기서 정언명령이란, 다른 조건과 관계없이 그 명령 자체로 자명한 것을 뜻한다. 이런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에게 있어 자유란 인간답게 사는 것이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란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며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란 이성에 의해 주어지는 정언명령에 따라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삶이라 하겠다.인간의 인간다운 삶과 도덕적인 삶, 다시 말해 자유로운 삶을 가능케 하는 것은 오직 자발적인 명령이며 이것은 이성에 의해 주어진다. 칸트에게 있어 인간의 이성은 보편적인 것이며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능력이다. 따라서 개개인이 각자 자신의 이성을 발휘해서 생긴 자발적인 의무를 실천하는 도덕적이며 인간적인 삶을 살면 모두가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보편적인 이성에 의해 주어진 자발적인 의무라는 것이 개인 사이에 서로 상충되는 일은 불가능하며 개인이 자신의 이성을 잘 발휘기만 하면 사회는 조화를 이루며 안정될 것이고 개인적으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런 가정 하에 전개된 논의에서 얻어진 인간의 자유란 엄밀히 말하면 인간의 자유라기보다 이성의 자유라고 하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해, 칸트가 제시한 자유는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인간을 이루는 한 부분일 뿐인 이성에 그 판단을 모두 위임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또한 이성이 보편적으로 주어졌는데 시대와 국가에 따라 도덕적인 삶의 표본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에 칸트는 그저 이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답만을 제시할 수 있으며 이것은 애초에 문제 삼았던 이성에 근거한 답변이므로 순환적인 논변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연 인간은 오직 이성적인 존재인지, 아니라면 어떻게 이성으로만 인간의 본질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인지 칸트에게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다음은 헤겔이 제시하는 자유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헤겔은 기본적으로 칸트의 인식체계를 공유하고 있다. 헤겔에게도 역시 인간의 이성은 본질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그것이 표상되는 것에 대해서는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하지만 헤겔이 칸트와 입장을 달리 하는 부분은 칸트가 인간의 이성을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이며 공통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파악한 데 비하여 인간의 이성이 사회적 조건, 즉 시대와 국가라는 조건에 따라 발휘되는 것으로 파악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칸트에게 있어 이성을 통해 이 세상을 인식하는 과정은 보편적이며 따라서 단 하나의 유형만이 존재할 뿐이지만 헤겔에게 있어 이성을 통해 이 세상을 인식하는 과정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며 특히 시대와 국가라는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칸트가 제시한 것이 보편적인 이성이라면 헤겔이 제시한 것은 사회적 이성이다. 헤겔은 칸트가 제시한 보편적인 이성에 따른 개인윤리를 실현하는 삶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오히려 그는 사회적 이성에 의한 사회윤리를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윤리를 실현하는 삶인 것이다. 헤겔은 개인이 이성을 발휘해 세상을 인식하는 주체.
정치사상중간고사정치외교학과 3학년20002278 최선규(문제 1)어느 화창한 오후였다. 숲 속에 조금은 오래된 듯한 하지만 그래서 멋스러운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운동장으로 보이는 넓은 공터에는 아이들이 쉴 새 없이 뛰어 다니고 있는데 수업이 끝난 듯한 교실에 3명의 어린이와 한명의 여인이 보인다. 아마도 선생님과 제자들이리라. 그런데 왜 이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처럼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놀지 않고 교실에 남아있는 것일까?“아~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도대체 언제쯤에야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겠니?”홉스라는 아이가 대답했다.“우리는 그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있었어요. 다만 칠판을 보지 않고 있었을 뿐이라구요. 로크와 루소랑 나눈 대화가 수업의 이해를 크게 도왔다는 걸 선생님도 아셔야 해요.”선생님으로 보이는 여인이 대답한다.“자. 그럼 선생님의 대답에 너희들이 잘 대답해야만 홉스가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거야. 맞지?”“네. 홉스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께 야단맞지 않으려면 잘 대답해야겠죠.”벌써 익숙하다는 듯이 로크가 대답했다.선생님은 엄숙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세 명의 아이들은 전혀 긴장하지 않는 눈치였다.“누가 대답을 해줄까?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홉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아! 자연상태에 대해 이야기해 보란 말인가요? 제가 기다렸던 질문인데요?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상황에 있었어요. 좀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정도가 적당하겠군요.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릴게요. 사람들은 모두 능력적으로 평등해요. 물론 제가 로크나 루소보다 조금 똑똑한 건 인정해요. 로크는 우리들보다 힘이 세지요. 하지만 이런 차이는 인간의 능력을 평가할 만한 것이 못 되요. 아무리 힘센 로크도 저와 루소가 편을 먹으면 이기지 못하거든요. 이제 능력적으로 평등하다는 이야기는 설명이 되었죠? 사람들은 비슷한 것을 바라는데 앞의 이유로 사람들은 자신의 소망을 포기하지 않아요. 그를 바탕으로 해. 다른 사람도 자연권을 갖고 있으니까 서로 해를 입히면 안 된다는 이성적인 판단이지. 하지만 인간은 정념에 휩싸인 존재라서 알면서도 충분히 안 지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게다가 누군가 자연법을 어긴다고 했을 때 나만 지키고 있는 것만큼 위험한 짓도 없지.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자연법을 잘 깨닫지도 못하고 알더라도 잘 지키지 않아.”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크가 말을 잇는다.“그건 오해야. 인간은 타인에게도 자연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연법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아. 문제는 그 정도를 스스로 판단한다는 거야. 자연법은 어디 적혀있거나 그런 것이 아니야.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거라고. 문제는 자연법이 제각각이라는 것이지. 즉, 공통의 기준이 없다는 것으로 분쟁이 일어났을 때 해결할 수 없게 되거든. 물론 욕심 때문에 자연법을 어기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그렇게 위험한 상황일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계속해서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루소가 말을 시작했다.“너희들은 뭔가 대단히 착각하고 있어. 자연상태가 아닌 사회상태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인간의 속성을 그대로 자연상태에 적용하는 건 무리야. 자연상태에서는 자연상태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속성이 있어. 잘 들어봐. 인간은 본래 혼자서 생활했을거야. 그는 배고프면 먹고 싶고 추우면 무언가 걸치고 싶은 정말이지 소박한 소망만을 가지고 있었고 충분히 그 소망을 채울 수 있었어. 혼자서 생활하는 것만큼 자유로운 게 있을까?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정말 자유롭고 평등해. 솔직히 여기서 평등은 별 의미도 없어. 비교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불평등하다고 여길 것도 없다는 걸 의미하거든. 문제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시작되는 거지. 예전의 소박했던 소망들은 점점 커져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야. 더 좋은 옷을 입으려 하고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 하고 더 맛있는 걸 먹고 싶어 하게 되는 거지. 물론 여기에는 점점 완전해지려는 인간의 속성이 작용해. 혼자서는 완전히 자유롭고 평등했던 인간들은 모여 뭔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홉스에게 이야기한다.“계약이 어려운 이유는 네가 말한 그 공권력이 나에게 불이익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야. 분쟁을 해결해줄 공통의 기준을 가지고 그것으로 판결을 내리고 처벌할 그 재판관이 자기 맘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게 가장 문제야. 따라서 그 재판관이 임의적으로 행동하고 판단하지 못하도록 법률을 제정하고 재판관도 이 법률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루소가 갑자기 발끈하며 말했다.“내가 아까 빼먹은 얘기가 있는데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전쟁상태에 놓인다고 했지? 그게 인류에 있어 불평등의 시작이야. 누군가 많은 성취를 이뤄내고 부자가 되는데 이 사람들은 항상 자기 재산이 뺏길까봐 두려워해. 그래서 그 재산을 지키기 위해 실제로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데만 이익이 되지만 모두에게 유익한 것 마냥 거짓으로 포장하고 속임수를 더해서 계약이란 것을 체결하지. 계약에 의해 만들어진 정부에서 정한 규칙들과 법들은 모두 부자들을 위한 것일 뿐이야. 내가 사회계약을 이야기 하는 것은 그저 자연상태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야. 인간은 오히려 자연상태에서 완전한 자유였지만 이미 이루어진 사회를 모두 해체하는 것은 불가능해.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기와 기만에 기반한 계약들을 공정한 규칙들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어.”선생님은 어느새 이 아이들의 이야기가 매우 심오하고 충분한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는 것을 핑계 삼아 세 아이의 긴장된 상황을 풀어보려는 애초의 생각 따위는 이제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이 아이들의 수준 높은 이야기에 심취되어 버린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물어보기 시작했다.“그럼 그 사회계약이란 것이 효과는 있는 거니? 그러니까 그 목적에 부합되게 작용하는 걸 묻고 싶구나?”홉스는 적극적으로 변한 선생님의 태도에 적잖이 놀라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다.“아까 공권력 이야기를 했잖아요. 계약 불이행자를 처벌할 “사회계약이 효과가 있느냐고 물으셨어요? 물론 사기와 기만에 의한 계약도 효과가 있죠. 불평등을 감추고 확정시키는 효과요. 하지만 선생님도 상식이 있다면 사기와 관련된 계약은 무효라는 걸 아실 수 있겠죠? 우리는 정말 정당한 계약을 체결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전부를 완전히 양도해야 해요. 자신의 모든 것을 양도한 상태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니까요. 평등이야 말로 자유의 기본 전제가 되고 이렇게 평등을 회복하게 되면 자연상태에서의 자유와는 다르지만 어쨌든 자유를 회복하는 거니까요. 이 자유를 사회적 자유라고 할 수 있는데 스스로 제정한 법률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하죠. 여기서 양도란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사회구성원 전체를 향한 것이에요. 사적인 특별의지를 전체의 일반의지의 지배 하에 두는 것이죠. 주권이란 일반의지를 실현시키는 힘으로 ‘전체’에 의해 부여된 것이기 때문에 나누거나 양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유념할 것은 일반의지는 대리되는 것이지 대표될 수는 없는 성질의 것이에요. 다시 말하면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의지가 일반의지로 대표될 수 없다는 얘기에요.”홉스와 로크, 루소는 이미 수업시간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를 설득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런데 관심을 보이는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생기자 선생님을 자신과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서로에게는 관심을 끊은 채 오직 선생님을 향해서만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더 진전시키고 싶었다.“자연상태와 자연권, 자연법, 계약을 걸쳐 주권까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구나. 그런데 선생님한테 의문이 생겼는데 해결해 줄 수 있을까?”마치 기다렸다는 듯 세 아이는 일제히 대답한다.“물론이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주권자가 잘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니? 주권에 복종하는 것이 계약이 갖는 구속력 아니니? 혁명이 가능은 한거니? 아까 로크는 입법자를 제거하거나 교체할 수 있다고 했지만 과연 가능할지 궁금하구나.”홉스가장 위험한 정치제도에요.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주권은 ‘리바이어던’만큼이나 강력해야만 인민의 평화로운 생활을 보장할 수 있어요. 상상해 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주권자라고 떠들어대며 자신에게 유리한 법률이나 제도 따위를 만들어 내려고나 하고 서로 다투는 모습을. 이건 전쟁상태와 다를 게 없어요.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다툼과 경쟁만 남길 삭막한 정치제도에요.”홉스는 정말 걱정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로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저는 오히려 민주주의야 말로 최고의 정치제도라고 생각해요.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주권을 행사하는 사람이나 집단은 그 주권을 위임받은 것이라는 계약의 내용을 가장 충실히 담고 있는 정치제도니까요. 엄밀하게 말하면 법치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것이죠. 법의 의한 지배야 말로 두말 할 나위 없이 명확한 기준이니까요. 다만 이 법치의 전제인 올바를 법률을 입법하는 행위가 인민들에 의해 감시되고 강제되는 민주주의야 말로 최고의 정치제도라고 할 수 있어요.”이제 마지막 루소의 차례였다. 이미 자신의 마지막 의견을 이야기한 두 아이는 루소가 마지막 말을 마치기 기다리고 있었고 선생님도 예상치 않았을 이 긴 토론의 끝을 자못 궁금해 하고 있었다.“우선 정치제도가 갖추어야 할 미덕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이것에 민주주의를 비추어 보면 되겠죠? 정치제도는 일반의지를 실현시키는 데 있어 유용한 구조여야 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일반의지는 전체의 의지에요. 또, 일반의지는 대표되는 것이 아니라 대리되는 것이죠. 이런 이유로 일부의 사람들이 전체의 의지인 일반의지를 알아내는 게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해요. 모든 개인들의 사적인 의지의 총합이 반드시 일반의지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의지를 찾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측면에서 살펴볼 때, 민주주의는 일반의지를 찾아내고 실현하는데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적합한 정치제도가 아닐까 생각해요.”세 아이의 토론이 모두 끝나자 선생님은 아이들을 돌려보냈다.“그래 이제 돌아가도 좋아. 처음 녕~”
한국정치사 정치외교학과20002278 최선규한반도에서 삼국시대를 이루었던 고구려, 백제, 신라. 이 세 나라는 각기 다른 시기에 출발하여 다른 시기에 전성기를 누리고 다른 시기에 멸망해갔다. 또한 각기 독특한 제도와 풍습을 가지고 있었던 이 세 나라는 아시아의 동쪽 끝에 존재했다는-이것은 대외적으로 중국, 왜와 관계를 가진다는 지리적인 공통점을 갖게한다-것 말고는 공통점이 거의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세 나라의 흥망을 비교하는 것은 물질적 조건이 상당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세 나라가 본질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공통적인 모습을 찾아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다면 세 나라의 흥망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본질적인 모습은 무엇일까?먼저 세 나라의 흥망의 모습을 살펴보자.우선 고구려는 한나라의 강압적 지배에 놓여있던 일대의 부족민들과 지역세력들을 통합해 나가며 성장한다. 그리고 한나라가 옛 조선의 땅에 설치했던 한사군을 몰아내면서 자신만의 기틀을 마련해간다. 이렇게 발전가도에 있던 고구려는 주변의 군소 부락민과 지역토착세력들, 이민족들을 규합해 나가며 강성한 국가로 발전해 나간다. 하지만 이렇게 강성했던 고구려는 대외적으로는 통일된 중국의 강력한 위협과 배후의 적으로 부상한 신라의 압박 그리고 신라를 견제해 주던 백제의 몰락, 대내적으로는 오랜 기간 수-당과의 전쟁으로 쇠약해진 국력과 연개소문 이후 지도층의 분열 등의 이유로 패망하고 만다.백제는 고구려로부터 갈라져 나온 일단의 정치세력이 한강유역을 시작으로 지역 토착세력을 규합해 나가며 발전해 나간다. 발전 초기 직접적으로 대결구도에 있지 않던 중국대륙과의 많은 교류를 통해 선진문화가 기술들을 도입했으며 이를 통해 기술이나 문화적으로 뒤떨어지는 더 많은 지역세력들을 복속해 나간다. 백제는 한 때 중국과 왜를 잇는 교역의 중심지로서 상당한 경제적 성취를 이루고 가야를 사실상의 지배에 놓았으며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고구려를 위협하는 성취를 보이지만 대외적으로는 나-당 연합군에 대항한 고구려-백제-왜의 연합세력의 긴밀하지 못한 대처와 고구려와 왜의 늦은 지원, 대내적으로는 왕권을 둘러싼 치열한 권력투쟁과 이로 인한 왕실내부와 왕실과 귀족과의 분열과 배신을 통해 패망하게 된다.신라는 당나라의 대외정책(한반도의 세력균형)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고구려와 백제를 위협하거나 그와 대등한 정도로 발전하는데 도움을 받게 되고 특유의 신분제도인 골품제를 통해 사회전반에 대한 통제력과 통합력을 높여나감으로서 강성한 나라로 발전해 나간다. 또한 당의 지원으로 삼국을 통일하고 한반도에 통일국가를 세우는 절정을 보여둔다. 하지만 비교적 잘 이어져 오던 왕권의 적통성이 깨지면서 왕권 다툼이 일어나며 수도의 지방에 대한 통합력의 상실과 과도한 세부담등에 의한 농민반란과 호족의 반발이 일어나고, 구체적으로는 후삼국의 성립과 후백제의 견훤과의 경쟁에서 도태되고 결국 왕건에게 귀의하면서 멸망하게 된다.삼국의 흥망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통합의 문제이다. 이것이 왕실에 의한 귀족에 대한 통합이든, 수도나 중앙의 지방에 대한 통합이든, 기존 국가의 유민들에 대한 통합이든, 새롭게 정복하고나 통합하는 지역의 토착세력이나 이민족에 대한 통합이든 통합의 성공은 국가의 발전과 성장의 원인이 되며 실패는 국력의 약화와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사회적 통합이란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국가가 유지되고 발전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사회적 통합이 국가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점은 인적자원의 동원이 가능하게 해 준다는 측면이다. 인적자원의 동원이라는 것은 직접적으로 군사력이나 거대한 규모의 공사와 관련되는 것이지만 포괄적으로 경제적 능력과 시장단위의 통합, 천연자원의 동원, 국가적 인재의 확보까지 포함하는 내용이다.인적자원의 동원이 국가의 발전에 중요한 요소이지만 동원의 방법은 간단하지 않으며 사실상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우선 강제적인 동원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매우 좁은 지역에서 단시간적인 동원만을 가능하게 한다. 강제적인 동원방법은 실력에 대한 검증이 부재하면 오히려 반발과 배신의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마이클 만의 권력분류 중 명령적 권력과 분산적 권력의 분류를 접목시키면 이해가 쉽다.) 따라서 광범위한 지역에 장시간에 걸친 동원이 가능해 지려면 인적자원동원에 대한 강제가 아닌 동의와 자발적인 태도가 필요한데 이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이념이다. 이러한 이념은 문화나 종교, 제도를 통해 교육되어지고 국가나 중앙, 왕실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국가나 왕실의 정당성을 피력하기 위한 신화에 가까운 건국설화부터 시작해 불교의 유입과 왕실의 권위를 불교 안에서 찾는 등의 모습은 이념적 통합을 위한 노력들이라고 볼 수 있다.이제 문제는 왜 삼국이 이념적 통합이나 정당성을 상실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위에서도 밝혔지만 이념적 통합과 왕실권력의 정당성은 인민들로 하여금 자발적이고 동의된 동원을 가능하게 한다. 다시 말해, 왕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에 나가기도 하며 자신이 생산한 것을 당연히 왕실에 바치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매우 적응을 잘 하는 존재이며 쉽게 싫증을 느끼는 존재이다. 건국 초기에는 조금 우월해 보이는 기술과 문화만으로도 쉽게 동의과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지만 그런 것에 익숙해지면 충성과 동원에 대한 대가로서 더 나은, 더 발전된 무엇인가를 왕실, 혹은 중앙정부에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적절히 왕실권력에 대한 이념적 정당성을 제시하지 못하면 왕실의 권위는 흔들리고 사회는 분열되고 국가는 약해지는 것이다. 삼국이 이념적 통합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크게 실패한 부분은 위압적이고 거대한 모습의 권력을 내세움으로서 인민들의 경외감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이념적 통합을 이루고 왕실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는 점이다. 더 강하고 더 크고 더 무서운 권력의 모습으로 치장하려는 경향은 거대한 왕성이나 높은 탑이나 웅장한 불전 화려하고 커다란 불상 등에서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이념적 통합은 더 강하거나 더 크거나 더 무서운 권력, 혹은 실제로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여겨지는 권력이 등장하게 되면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어있다. 또한 계속해서 익숙해져가는 인민들에게 계속해서 자발적인 동원을 이끌어 내려며 더 강하고 더 크고 더 무서운 권력으로서 계속해서 드러내야 하는데, 그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거대한 와성이나 높은 탑, 웅장한 불전과 커다란 불상 등 엄청난 경제력과 인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그 시대의 생산력을 넘어서게 되면 인적자원의 동원은 수탈적인 모습으로 바뀌며 수탈적인 동원은 동의된, 자발적인 동원을 불가능하게 만들며 오히려 강제적인 동원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처음에 살펴본 대로 광범위한 지역에서의 권력으로서 작용하기 어려우며 오랜 기간에 걸쳐 기능하기에 부적합한 모습이다.
한국정치사 20002278최선규고구려는 왜 당(唐)에 사대하지 않았을까?고구려는 분명 한 시대를 풍미한 강대국이었다. 하지만 고구려의 전성기는 중국대륙이 통일되지 못하고 사분오열하여 경쟁하는 시기였다. 고구려가 경험한 중국대륙의 통일국가는 한(漢), 수(隋), 당(唐), 이렇게 세 나라이다. 중국대륙의 통일국가들은 한결같이 동쪽으로도 팽창했는데, 한은 국력이 쇠퇴하고 있던 말엽이기 때문에 논의에서 제외한다면 수와 당의 팽창에 맞선 것이 바로 고구려이다. 수와 당의 여러 차례에 걸친 침공을 고구려가 막아내기는 하지만 수와 당의 침공은 질적으로 고구려에 미친 영향이 다르다. 먼저 수가 성립되던 시기, 혼란을 틈타 고구려가 요서까지 진출하고 이에 수에서는 대군을 파견하지만 계속 실패하고 만다. 무리한 침공이 감행되고 이것이 국력의 쇠퇴를 가져와 내분의 조짐이 일게 된다. 이 내분의 조짐 속에서 태어난 것이 당. 당의 건국에 지대한 공을 세운이가 바로 당태종인데 당태종의 고구려 침공도 끝내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하지만 당태종의 침공으로 고구려는 요동성을 빼앗기고 많은 수의 군사가 항복하는 등, 수나라의 문란하고 잘 조직되지 못한 대군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당의 침공이었다.새로운 중원의 주인으로, 동아시아를 호령하는 거대한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당에서 주변의 나라들이 사대의 예로서 외교관계를 맺은 것과는 달리 고구려는 왜 당에 사대하지 않았을까? 우선 우리는 고구려의 국가적 성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고구려는 척박한 땅에서 시작한 군사력에 의존한 국가였다. 생산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생산력이 좋은 땅으로 의 팽창을 고수했을 것이다. 또한 백제와 신라, 왜가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가 있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고구려는 중간에서 통행세를 받는 등의 ‘빼앗는 경제’에 기초한 국가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태종의 공격을 받은 고구려는 신라에게 한강유역을 빼앗긴 상황이었고, 당으로부터는 요동지방까지 찔린 상황이었다. 고구려의 당면과제는 빼앗긴 한강유역을 회복하는 것과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당과의 관계를 정상화 하는 것이다. 당태종의 고구려 침공 때부터 당이 안시성에서 패배한 뒤 돌아갈 때에도 당에 계속해서 인질과 사신을 보낸 연개소문의 의도가 이것이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당의 이해관계와 고구려의 이해관계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데 바로 당이 고구려에 신라와의 화친을 요구한 것이다. 이것은 고구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데, 신라와의 화친이 의미하는 것은 빼앗긴 한강 유역의 땅으로부터 얻어지는 경제적인 소출과 신라와 당의 교역의 중간에서 얻던 경제적, 문화적 이익을 모두 포기이기 때문이다.(당시 고구려는 백제, 왜와는 이미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었다.)
백범(白凡) 선생님,저는 공부하는 학생인데 선생의 말씀 중에 의문이 드는 것이 있어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초면의 무례에 대해 당당히 용서를 구하는 것은 당신이 그토록 지켜내고자 했던, 얻고자 했던 이 나라 혹은 이 민족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를 명확히 하고자 하는 내 의문이 당신의 일에도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덕분입니다. 하지만 선생께서 내 앞에 계시는 것도 아니고 또 내가 그 면전으로 달려가 뵈올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내게는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나 하신 행동으로 말미암아 선생의 생각을 유추해내는 길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나에게 실수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어리석은 자의 어리석은 질문에도 현명한 이는 현명하게 답하는 법이니 선생께서는 잘 대답해주시리라 믿으며 이렇게 적어가고 있습니다.나는 선생께서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과거에 응시한 사실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께서 겪은 고사장의 기억은 참담한 것이었다지요? 관직은 이미 정해놓고 과거시험은 그저 형식적으로 치루는 것이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지요. 그래서 양반과 상놈을 가르고 상놈으로 하여금 살아가기 힘들게 하는 이 세상을 바꾸어보려 동학당에 들어가신 게지요. 하지만 이 대목에서 저는 선생께 약간 실망했다는 것을 솔직히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동학당이 내건 기치가 틀렸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는 선생께서 과거시험을 통해 양반이 되려다가 그것이 실패하고 나서야 이 세상을 바꾸어보려 했다는 점이 실망스럽습니다. 과거를 치루기 전까지 계속해서 상놈의 신분으로 살면서 느껴지는 세상의 부조리는 없었습니까? 과거를 치루기 전에 이런 부조리를 느꼈다면 일신의 입신이나 가문의 양명이 아니라 상놈과 양반이 갈리어 어지러운 지경에 빠진 이 나라를 생각하셨어야 합니다. 물론, 선생께서는 당시에 어리었고 부모와 친척의 기대도 있었으며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한다고 해서 꾸짖을 만한 명분이 내게는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선생께서는 나라에 대한 생각이 없으셨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이후, 선생은 동학당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는 지도자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당시 동학군을 토벌하겠다고 분연히 일어났던 안 진사는 선생의 적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생께서는 안진사의 의병에 패하고 사전에 밀약을 맺어두었던 안 진사에게 몸을 의탁합니다. 선생께서는 그 때에 고 산림이라는 학자도 만나게 되지요. 선생께서는 안 진사의 큰 인격을, 고 산림의 의기 있는 훈도를 대단한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쳐부수어야 했던 적인 양반과는 이런 모양으로 화해해도 왜놈과는 절대로 화해할 수 없었나 봅니다. 적장의 집에서 몇 개월간 머물면서 적장의 논리인 양반의 학문에 경의를 표하던 선생께서도 안악 치하포에서 일본군 중위 스치다를 [국모보수]라는 명분으로 죽인 것을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스치다는 정말로 국모를 시해한 미우라의 잔당이었습니까? 그는 당신에게 해명할 기회를 가졌나요? 저도 그렇게 믿기는 어렵지만 그는 어쩌면 큰 인격자에 의기있는 훈도를 지닌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야말로 왜놈이어서 당신에게 죽은 것입니다. 여기서 난 선생께 다시 한번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양반들은 그의 의기나 인격을 통하여 용서하지만 일본인은 그의 의기나 인격을 통하여서는 용서하지 않는 선생께서 가지고 있는 기준은 상황마다 변하고 선생께 유리하게만 작용하는 그런 것으로 비추어집니다. 아니면 선생에게는 의기나 인격이 아닌 뭔가 다른 기준이 있는 것이겠지요. 제게는 뒤에 말씀드린 이유라 생각되는데 아마도 안 진사나 고 산림은 동포이지만 스치다는 왜놈이었던 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양반은 왜놈이 설치는 판국이라 동포라는 이유로 용서가 되는 것입니까? 그 알량한 동포라는 생각은 어디서 유래하는 건가요? 그래, 이제 선생께서 중하게 여기시는 나라는 상놈이 괄시받지 않는 나라에서 양반과 상놈이 왜놈들의 간섭 없이 사는 나라로 바뀐 것 같습니다.제가 선생의 과거를 들추다 말고 뜬금없이 ‘동포’얘기를 꺼냈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선생이 말씀하신 ‘민족’에 대해서 의문이 생겨 이 편지를 쓰는 것이니까요.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민족’은 피와 역사를 같이 하는 완연한 것이라고 하면서 철학도 변하고 정치, 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나 민족의 혈통만은 영구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선생의 이러한 말이 참 어색하게 들리고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이 ‘민족’을 위하여 70평생을 사셨다고 당당히, 그리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십니다. 어떤 가치나 정신을 위해 한 평생을 사는 것은 매우 자랑스러워 할만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선생께서 한평생을 바치신 ‘민족’이라는 것이 정말로 한평생을 바칠만한 것인지, 그럴 가치가 있는 것인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선생께서 붙들고 있는 ‘민족’이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의 생각이 선생께는 참람한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진정을 하시고 찬찬히 읽어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선생께서는 ‘민족’을 피와 역사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계십니다. 여기서 피로 이루어졌다 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민족’은 곧 내 형제요, 동포라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그러면 얼마만큼이나 나의 형제이고 동포입니까? 우리 옆집에 사는 나와 다른 성씨를 가지고 있고 우리 가문과는 일체 교류가 없는 이웃은 내 형제입니까? 왜국이나 청국에 건너가서 혼인하여 낳은 아이들은 우리 동포입니까 아니면 왜국이나 청국의 동포입니까? 저는 나와 피를 나눈 형제와 동포에게 애정을 느끼고 그 안에 나를 포함시켜 나와 일치시키고 가치를 두는 마음 씀씀이에 대해서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애정을 쏟고 정성을 다해야 할 나의 형제이자 동포인 ‘민족’이 과연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 나는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민족’이 역사로 이루어졌다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민족’은 공통의 경험과 교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그러면 양반과 상놈은 분리된 채로 따로 살아가는 데 이것은 같은 역사입니까 아니면 다른 역사입니까? 청국과의 경계에 사는 사람과 왜국과의 경계에 사는 사람들은 청국과도 혹은 왜국과도 공통의 경험을 가지고 교훈을 가지는데 우리나라와 청국과 왜국의 역사는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청국과 왜국에 사는 사람들도 우리 ‘민족’입니까?제가 온갖 조소와 비난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을 선생께 드리는 것은 ‘민족’이라는 것이 선생께서 말씀하신대로 피와 역사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실상 선생께서 붙잡고 계시는 ‘민족’이란 것은 ‘민족’ 그 자체가 아니라 ‘나라’에 기초한 ‘민족’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선생이 중하게 여기신 것은 ‘민족’보다는 ‘나라’이며 왜국이어도 아니 되고 청국이어도 아니 되는 것을 보면 우리 손으로 일구어낸 ‘우리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본래 안창호 선생에게 문지기를 청하였지만 경무총감으로 임명되었고 나중에는 국무령까지 지내신 임시정부로 말하자면 미국식이 아니던가요? 공자도, 예수도, 석가도 모두 성인으로 여겨 숭배하며 그들이 합해서 세운 천당 극락이 있어도 우리 민족이 세우지 않은 것이라면 가지 않겠다던 선생의 결의는 어디에 있는 건가요? 선생은 미국을 우리의 민족이라 보는 것인가요? 아아, 난 선생께서 그렇게 생각했으리라고 믿을 수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미국식의 민주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했습니다. 선생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세상의 모든 철학과 정치, 경제학설도 일시적인 것이며 변하지 않는 진실이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선생께서 붙잡고 계신 단 하나의 가치였던 ‘민족’에 대한 사람의 생각이 어찌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선생께서 ‘민족’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드리는 차원에서 이제 이야기를 옮겨보겠습니다. 자,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이 나라를 우리 민족의 것으로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의 나라가 되게 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선생께서는 자유와 부자유를 가르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국가의 법이 우리 모두의 의사인지 아니면 일부의 무리나 계급에서 나온 것인지에 달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공산당이 주장하는 소련식 민주주의가 실제로는 철학에 기초한 계급의 독재이며 독재를 하는 계급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노예에 머무르고 만다고 하십니다. 예전 조선에서의 양반들에 대해서도 유교 중에서도 특히 주자학이라는 철학에 기초한 계급독재를 행한 사람들로 보고 계십니다. 선생께서는 철학에 기초한 독재가 결국 하나의 철학만 존재하게 하는 결과를 낳지만 가을 산의 단풍이 아름다우려면 여러 가지 나무가 어울려 서로의 빛깔을 내야하듯 우리나라에서는 유교도 성하고 불교도 성하고 예수교도 성한, 그런 나라가 되어야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이런 선생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두 가지의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첫째, 철학에 기초한 계급독재를 주장하는 공산당들은 우리 민족에 해가 되므로 제거해야 하는 우리 민족 외부의 사람들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즉, 공산당은 우리 민족이 아니냐는 의문입니다. 선생의 말씀대로라면 양반도 공산당도 우리 민족은 아닌 것이 됩니다. 참으로 선생의 ‘민족’이란 것은 예전 양반들이 했던 것처럼 사람과 사람사이를 또다시 갈라놓고 차별대우를 하는 그런 것입니다.둘째, 양반도 공산당도 우리 민족이라면 우리 민족의 것인데 함부로 포기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유교도 성하고 불교도 성하고 예수교도 성해야 하는 이 자유의 나라에서 왜 공산당의 정치이념만은 구속받아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이 미국식 민주주의의 열렬한 추종자가 아니라 ‘민족’의 추종자라면 공산당이나 공산주의자, 혹은 소련식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무작정 적으로 돌려세우지 마시고 그들과 미국식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중재하셔야 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