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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신의 아이들 감상문 평가B괜찮아요
    “작은 신의 아이들” 을 보고..이 영화는 실제 청각 장애인인 말리 매틀린이 여자주인공으로 등장한다.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되었다.농인 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를 했다는 점, 그리고 손짓만으로도 감정의 기복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것들이었다.영화는 작은 항구 마을에 제임스 리드라는 능력 있고 열정적인 교사가 청각장애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찾아오면서 시작된다.그는 능력과 열정을 소유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학생들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 따라 점점 학생들이 마음을 열게 되고 구화를 하려는 의지를 보이면서 변화하게 된다.그런 생활 속에서 어느 날 그는 학교에서 사라 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고 처음에는 그 여자의 거칠고 반항적인 수화에 관심을 보이게 된다.제임스는 그녀에게 구화를 가르치려는 의지로 접근하지만 그녀는 마음을 열지 않고 그런 그녀의 아픔을 알기 위해 노력하던 그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어릴 적부터 항상 남자들의 성적인 도구로 농락당해 왔던 사라는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주는 제임스에게 마음을 열고 함께 살게 되지만 그녀에게 구화를 하게하려는 그의 시도를 번번히 거절하고 결국에 그로 인해 헤어지게 된다.그러나 시간이 흘러 서로를 그리워하던 제임스와 사라는 학교 졸업식에서 다시 만나 서로가 진정으로 사랑할 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진정한 언어소통이란 무엇인가를 깨달으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그저 소리를 듣지 못하는 한 여자와 평범한 남자의 사랑얘기를 그린 로맨스영화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청인들의 시각으로 본 농인의 고통과 농인들 스스로의 진정한 고통을 동시에 그리고 있다.사라는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오히려 농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당연시 여겨왔을 지도 모른다.그러나 그녀가 처음으로 말을 하려고 했을 때 청인이었던 언니의 친구들에게 놀림의 대상이 되고 만다. 그러면서 그녀는 점점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폐쇄적인 성향을 띄게 되어 구화를 할 줄 알면서도 제임스의 노력을 외면하고 만다.하지만 그녀가 정말 사랑하는 남자가 그토록 원하는 그것을 왜 그렇게 모질게 외면해야만 했을까. 그녀는 정말 구화를 하는 것이 싫었던 것일까?그러나 화장실에서 그녀가 거울을 보며 혼자 입을 벌려보는 장면은 그녀도 말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준다.제임스는 다시는 그녀에게 구화를 하도록 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자신이 한 말이 뭔지 말해보라고 요구한다.처음에 그는 단지 직업적인 본능으로 그녀에게 그런 부탁을 하지만 점차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사랑하는 여자가 불러주는 자신의 이름을 듣고 싶어하고 사랑하는 여자와 대화를 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된 것이다.이런 욕망이 점점 그녀와의 갈등을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등장하는데 이것은 사랑하는 사이에서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청인 들과 농인들 사이에서 쉽사리 일어나는 갈등 요소라고 생각된다.사실 나 또한 청인으로써 농인 들이 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들은 정말 적막만을 느낄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만약 농인을 만나게 된다면 그런 시도를 했을 것이다.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농인들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지만 청인보다 뛰어난 “느낌” 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특히 리디아라는 학생이 스피커에 손바닥을 대고 음악을 느끼며 박자를 맞추고 춤을 추는 장면 그리고 사라가 레스토랑에서 코로 음악을 느끼며 춤을 추는 장면은 정말 농인 만이 소유하고 있는 “느낌”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생생히 전해 주는 인상적인 것들이었다.그리고 쉽사리 우리가 단지 장애인이라고 치부해버리는 농인들은 그저 들을 수 없다는 것 외에는 청인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 아니 어쩌면 청인들 보다 감수성이 뛰어난 그런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청인인 제임스가 자신이 모르는 단어를 지화로 표현하는 장면이나 무의식 중에 뒤에서 농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같은 청인으로써 공감 가는 장면이었다.반대로 제임스가 농인 학생에게 입 모양을 보여주며 발음을 따라 하도록 하고 그것을 보며 전혀 다른 발음을 내는 농인의 모습을 보고 ‘아, 저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농인이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일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청인들이 어설픈 발음으로 말을 하는 자신들을 바라보며 바보 벙어리라고 생각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지껏 농인들은 원래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동일시 해 왔던 나에게 있어서 놀랍고 미안한 일이었다.또 자신이 받은 상처를 상처라고 인정하지 않으며 도리어 그것을 상처라고 여기는 제임스에게 반발하는 사라를 보면서 농인들이 어떠한 고통을 갖고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자신이 듣지 못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입었던 상처들이 상처라고 스스로 인정한다면 그것은 곧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을까.그러나 영화에서는 그것이 자존심도 아니고 상처를 인정하는 것이 스스로를 장애인으로 인정하는 것도 아니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다.사라가 제임스와 재회하면서 자신도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며 제임스를 보고 환히 웃는 장면이 그것인데 그 미소의 의미는 자신이 자존심을 버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고 자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상처를 받을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또 이 영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의사소통에 대한 갈등 역시 사라가 떠난 뒤에 진정한 언어란 무엇인지 그리고 소리를 내어 말하는 것만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제임스가 그녀와 재회하면서 해소된다.영화에서 말하는 진정한 언어가 무엇인지는 감독이 우리에게 남겨준 숙제이자 메시지인데 진정한 언어는 단지 입을 통해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 그리고 진실한 눈빛으로 나눌 수 있는 연결고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마치 제임스와 사라가 마지막에 서로의 손으로 연결고리를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
    독후감/창작| 2005.03.14| 3페이지| 1,000원| 조회(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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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문학] `안나 까레니나` 줄거리요약 및 감상문
    1부이야기는 오블론스키 가(家)의 사건으로 시작된다.오블론스키와 프랑스 인 가정교사의 관계를 알게 된 아내 돌리는 방 안에서 나오지 않고 오블론스키 역시 귀가하지 않은 채 사흘을 보내어 집 안은 한 마디로 엉망이었다.문제는 오블론스키 스스로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 보다 한 살 어린 아내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 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단지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그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뻬쩨르에 사는 여동생 안나를 불렀고 안나를 마중 나간 역에서 브론스키를 만난다. 브론스키 역시 자신의 노모를 마중 나온 길이었다. 안나를 맞이한 순간 역에서 역무원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그 사고에 대해 그녀는 불길한 느낌을 갖는다.오블론스키 가에 도착한 안나는 돌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을 하고 집안은 다시 그럴 듯 한 평화를 찾아간다. 그 곳에서 그녀는 오블론스키의 처제인 키티를 만나게 되고 두 여인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키티는 오블론스키의 친구인 레빈의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브론스키에 대한 마음 때문에 레빈의 청혼을 거절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브론스키가 청혼 해줄 것을 믿고 있었고 시골에서 생활하는 레빈보다 화려한 브론스키에게 더 호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녀가 안나에게 꼭 나와 줄 것을 부탁한 무도회에서 브론스키와 안나가 서로 교환하는 눈빛을 눈치 채고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안나는 곧장 뻬쩨르로 돌아가고 마중 나온 남편 카레닌을 본 그녀는 남편의 위선적인 태도와 유난히 징그러워 보이는 귀가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의 눈빛에서는 브론스키와 함께 했던 무도회에서의 빛나는 눈빛은 온데 간데없고 삶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한 편 브론스키 역시 뻬쩨르에 있는 저택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1부에서는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처한 상황이 그려지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인간의 위선과 가식이 등장인물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나타나. 키티가 결혼을 언제 하는지 물었던 레빈은 그녀가 브론스키의 배반으로 요양 차 외국으로 떠났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프지만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는 이 대목에서 ‘자기 자신을 인정 할 수는 없지만’ 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만큼 그의 심리를 잘 표현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브론스키와 안나는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졌고 급기야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이러한 상황에서 안나의 아들 세료쟈는 브론스키와 아버지 카레닌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고 오로지 어머니 안나에 대해서만 호의 적인 태도를 보인다.브론스키의 승마 경기에 안나와 카레닌이 오고 브론스키의 낙마 사고에 안나가 이성을 잃은 행동을 취하는 것을 본 카레닌은 안나에게 다시 한번 충고를 한다. 그는 아마도 안나가 처음 그의 충고를 들었을 때처럼 감정을 속이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남편에게 드러내고 이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와중에서도 카레닌은 자신의 체면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다.요양 간 키티는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특히 바렌카라는 여인을 만남으로써 삶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러시아로 돌아 온 키티에게 있어서 브론스키와의 일은 이제 추억으로 남았을 뿐이다.2부에서는 안나의 부정과 그 부정을 바라보는 카레닌의 반응에 대해 주로 다루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인간의 허영심과 남을 헐뜯는 속성을 볼 수가 있다.특히 안나가 평소에 행실이 바른 부인이었다는 사실을 회상하면서 그녀의 부정에 기뻐하며 그녀를 모욕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젊은 부인들의 등장에서는 인간 내면의 악함이 잘 드러나고 있다. 또한 카레닌이 그녀와 헤어지면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정기적으로 그녀와 만나려 하는 것은 얼마나 위선적이고 체면만을 중시하는 모습인가.3부레빈에게는 두 명의 형이 있는데 니콜라이와 코즈니셰프였다. 니콜라이는 병증이 있는데다가 레빈은 내심 그런 그를 부끄러워하고 귀찮아한게 내면의 성장 대신 겉모습, 지식만을 강요하는 모습에 실망하고 자신은 그러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그곳을 떠난다.한편 카레닌은 아내에 대한 애증으로 괴로워하고 그녀에게 아들과 함께 뻬쩨르로 돌아올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약간의 돈과 함께 보낸다. 그러나 편지를 받는 안나는 그런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하고 아들을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게다가 브론스키 역시 안나의 임신에 대한 부담감과 돈 문제로 괴로워하고 안나는 남편과 이혼을 하고 싶지만 아들을 잃지 않기 위해 우선은 카레닌에게 간다. 그녀는 자신이 나쁜 여자라는 사실을 그에게 강조하고 그런 그녀에게 증오심을 느낀 카레닌은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도록 그녀에게 명령한다.레빈은 키티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이 다시 청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녀에 대한 적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떨쳐버릴 수 없었고 때 마침 돌리의 부탁으로 키티에게 부인용 안장을 대신 가져다주기로 하지만 결국 그는 편지도 한 장 쓰지 않은 채 안장만을 보낸다. 그 후 그는 친구의 집으로 가서 새로운 농법과 농토 경영을 위한 방법을 다른 농민들과 의논하고 준비한다.3부에서는 레닌의 시선과 내면이 가장 두드러지는데 그의 모습은 다른 등장인물들과는 대조적이다. 그는 순수하며 가식적이지 않은-다른 이들에 비해서- 사람이며 가슴이 파인 옷을 입은 여자에게 일부러 시선을 주지 않는 그의 모습은 순진해 보이기까지 하다. 반면에 자신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것이 자신의 아내가 부정을 해서 자신을 떠났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카레닌의 모습에서는 혐오감까지 느껴진다. 사실상 부정을 저지는 것은 안나 인데도 그녀에게 동정심마저 드는 것은 카레닌의 위선과 허영에 대한 혐오스러움 때문이 아닐까. 비록 부정한 여자라 할지라도 안나는 적어도 자신의 감정에는 솔직하지 않은가.4부카레닌은 하인들이 제 멋대로 생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안나 와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대화하는 법도 없고 식사자신의 평안을 찾게 된다. 오히려 그런 카레닌의 모습에 브론스키는 죄책감과 회의를 느끼고 안나 역시 두려움을 느낀다. 어쩌면 3부에서 카레닌의 위선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혐오감마저 느끼게 한 것은 4부에서 인간은 오히려 모든 것을 용서하고 자비로워 질 때 자신의 마음도 편안해 진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인 표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5부레빈과 키티의 결혼식이 다가오고 결혼식이 가까워지자 레빈은 키티가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과 브론스키에 대한 기억으로 힘들어한다. 견디다 못한 그는 키티에게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다는 어리석은 말을 하고 키티는 그런 그에게 자신이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맹세한다. 레빈의 친구들 중 독신자인 몇몇의 친구들이 결혼을 하면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겁을 주고 레빈은 정녕 자신이 바라는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은 자유로움이 아닌 그녀와의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행복한 신혼 생활을 하지만 레빈은 자신이 결혼 전에 기대했던 행복과는 무언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꿈꾸었던 것들이 공상이었다는 환멸감과 동시에예기치 못한 색다른 일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의 결혼 생활에 대한 묘사는 브론스키와 안나의 그것과는 대조되는 것이었다.브론스키와 안나는 3개월 동안 유럽을 함께 여행하고 있다. 그 곳에서 브론스키는 유년시절의 친구인 골레니시체프를 만나고 그들은 재회를 매우 기뻐했지만 내심 서로에 대한 적대적인, 다소 경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브론스키는 친구에게 안나를 소개시켜주기로 결심하는데 그는 유럽에 온 3개월 동안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과 안나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지를 파악하고 ‘올바르게’보는 사람에게만 그녀를 소개시켜주었다.3개월여의 여행 동안 안나는 모든 것이 행복하고 건강도 회복되고 있었지만 브론스키는 자신이 기대하고 있던 행복에 미치지 못하는자신에게 애정이 식었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고의적으로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려고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 한다. 하지만 브론스키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얼마나 비웃고 있는지, 욕하고 있는지를 알기에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그녀는 공연을 보러 가서 모욕적인 말을 듣고 오고 그 일로 인해 브론스키와 안나는 다투게 된다. 화해를 하긴 했지만 그것은 단지 브론스키가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가식적인 사랑의 맹세를 했기 때문이었다.6부돌리는 자신의 땅에 있는 저택이 황폐해 져서 키티와 레빈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 곳에는 키티가 요양 중에 만난 바렌카와 레빈의 형인 코즈니셰프도 찾아오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코즈니셰프는 그의 아픈 과거-사랑하는 여인의 죽음- 때문에 여태껏 정신적인 생활을 해왔던 터라 금 새 현실(레빈은 바렌카를 ‘현실’이라고 표현한다.)로 돌아오는 것이 어렵다. 바렌카 역시 그의 청혼을 내심 바라고 있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두 사람은 서로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고 바라보기만 한다.오블론스키와 그의 친구인 베슬로프스키가 레빈의 집에 찾아오면서 레빈의 심경의 변화가 아주 잘 묘사 되는데 레빈은 베슬로프스키에 대한 적대심, 특히 그가 키티에게 대하는 행동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인다. (그는 친구 오블론스키를 보면서 ‘어제는 저 입술로 누구와 키스를 했을까.’라고 생각하고 돌리를 보면서도 남편의 애정을 믿지도 않으면서 뭐가 저리 좋은 걸까라고 생각하며 조롱한다. 또한 바렌카는 결혼하고 싶어 안달 난 여자라며 메스껍다고 생각한다.)그는 함께 사냥을 가서 베슬로프스키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키티에 관한 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그에게 떠나달라고 말한다.한 편 돌리는 남편에게서 안나의 소식을 듣고 찾아가보기로 한다. 키티는 안나의 얘기가 나오자 굉장히 불쾌해 하고 그녀의 어머니 역시 부정한 여자라고 욕을 한다.돌리가 안나의 집에 찾아갔을 때다.
    독후감/창작| 2005.03.14| 7페이지| 1,000원| 조회(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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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문화론] `마르탱게르의 귀향` 을 읽고
    Ⅰ. “마르탱 게르의 귀향” 에 대한 간략한 줄거리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화 한 것으로 16세기 중반 프랑스의 어느 농경마을에서 마르탱 게르라는 남자가 버트랑이라는 여자와 결혼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마르탱은 결혼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아내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아기가 태어났지만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항상 소심하고 말없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마르탱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사라졌고 그 이후로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게 된다.8년 동안 버트랑은 혼자 아이를 키우며 정절을 지키는데 마르탱이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전쟁터에 나갔었다고 말하는 마르탱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그를 다시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어느 날 마을에서 부랑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데 마르탱을 본 그들은 그가 마르탱 게르가 아니라 티힐 출신의 퐁세트라고 말한다.처음에는 그 말을 아무도 믿지 않지만 그가 숙부에게 자신의 땅에서 나오는 몫을 달라고 요구하자 그때부터 그가 돈 때문에 의도적 접근을 했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그 일로 법정에 서게 되고 버트랑은 처음에는 그가 진짜 마르탱이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가짜라고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너무나 완벽한 결백 주장으로 재판관들은 무죄로 판정을 내리게 되고 그 순간 다리 한쪽을 잃은 진짜 마르탱이 법정에 나타난다. 그로인해 가짜 마르탱이 아누드퐁세트라는 것이 밝혀지고 사형을 당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Ⅱ. “마르탱 게르의 귀향” 에 대한 단계별 해석1단계 : 진짜 마르탱이 가짜 마르탱에게 말했던 이야기아내와 자식 그리고 가족들을 버리고 말없이 떠난 진짜 마르탱은 전쟁터에서 가짜 마르탱을 만나게 되는데 같은 부대 내에 있었던 그에게 자신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자신은 마을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그런데 왜 그는 마을로 돌아갈 생각도 없었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추억하듯이 가짜 마르탱에게 이야기 해주었을까?가짜 마르탱이 후에 진짜 마르탱이 살던 마을에 갔을 때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자세히 이야기 했다면 그것은 진짜마르탱이 자신의 가족과 어린시절을 그리워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극 중에서 진짜 마르탱의 말없고 소극적인 성격으로 볼 때 그는 비록 애정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아내와 아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그리웠을 것이다.전쟁터라는 가장 극한 상황에서 그는 그런 모든 것들을 회상하는 것을 하나의 배출구라고 생각 했을 것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가짜 마르탱에게 들려줌으로써 자신이 살아있음을, 그리고 자신에게 가족이 있음을 한 번 더 느끼고 싶어 한 것이라 생각된다.2단계 : (영화가 아닌) 실제 가짜 마르탱의 진짜 흉내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 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면 실존 인물 이었던 가짜 마르탱이 왜 자기 자신을 버리고 진짜 마르탱 흉내를 냈는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단순히 영화상에서는 그가 굉장히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인물이지만 실제로 그의 삶은 어땠을까?비록 마을 사람들의 환대를 받고 아름다운 아내와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그런 동안에도 그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어쩌면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자신이 진짜 마르탱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을 지도 모른다.왜 그가 자신의 인생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택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진짜 마르탱의 이야기를 듣고 마르탱이 소유하고 있는 땅에 욕심이 났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본래 자신의 인생보다 진짜 마르탱의 인생이 더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바꾸어 말하자면 전자는 표면적이고 물질적인 욕심 때문이고 후자는 상대적으로 불행한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보고 싶은 내면적인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어쨌든 그는 가짜임이 들통 나는 순간까지 버트랑의 듬직한 남편이 되 주었고 마을의 성실한 청년으로써 진짜 마르탱보다 최선을 다해 그의 인생을 대신 살아준 것임은 확실한 사실이다.3단계 : 아내의 의심그녀는 끝까지 (진짜 마르탱이 법정에 나타나기 전까지) 가짜 마르탱을 진짜라고 믿으며 그의 지지자가 되 주었다.그러나 그런 그녀도 사실은 그를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이 영화의 후반부에서 드러난다.영화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판결이 난 후 재판관과의 밀담에서 그녀가 처음부터 마르탱이 가짜임을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그녀는 오히려 처음에는 그가 가짜라고 의심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반대로 진짜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녀는 그를 의심했지만 남편으로써 그를 받아들였고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가정을 꾸려왔다. 그가 가짜임이 밝혀진다면 그녀의 행복한 가정은 깨지게 될것이고 그녀 역시 불순한 여자로 낙인찍혀 살아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자신의 의심을 감추고 살아갔을 것이다. 또한 그녀는 가짜 마르탱을 진위여부를 떠나서 한 남자로써 사랑했지 때문에 잃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종반부에서 버트랑이 자신의 아이들을 위하여 원하지 않았지만 결국 가짜 마르탱을 고소하게 되는 장면에서는 이성적 사랑보다는 가족을 위하여 자신의 감정을 희생하는 것이 이 시대의 희생과 순종이 전부였던 여성상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여성의 감정이나 의사가 존중되지 않던 16세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비추어 볼 때 버트랑의 행동은 인정될 수 없는 것이지만 아마도 그 시기의 여성상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비록 8년 동안 정조를 지키며 살아온 그녀이지만 가짜 마르탱을 보고 남편으로써 받아들였다는 것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이며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보상받기 위함이었을 것이다.4단계 : 재판관 코라스의 기록재판관 코라스는 이 사건에 감명을 받아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아마도 그 기록이 후에 영화나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을 것이다.그는 이 사건을 집행하면서 가짜 마르탱이 가짜라고 확신하고 있었지만 확증이 없어 판결을 내리지 못한다. 나중에 진짜 마르탱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확실해 졌고 가짜 마르탱은 물론 버트랑 역시 죄인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그는 버트랑이 처음부터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확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런 비밀을 지켜준다. 비록 그녀의 행동은 인륜에 반하는 행동이었지만 그녀에 대한 연민과 동시에 여자는 감정이 흔들리기 쉬운 단순한 존재라는 남성적 우월의식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Ⅲ. “마르탱 게르의 귀향” 과 그 시대적 배경의 연관성1. 16세기 중반 프랑스의 사회적 배경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6세기 중반이다. 이 시기의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커다란 사건들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그것이다.우선 르네상스에 대해서 살펴보면, 이것은 십자군 전쟁의 결과로 사람들의 의식이 성장하면서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유럽에 각기 특색 있는 문화를 형성하였고 이 시기에 인간이 “모든 사물의 중심이자 척도”라는 새로운 자각이 대두되었다.기존의 사고방식에 비하여 개방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계속 받아들이게 되는 시기로 많은 문학, 예술작품들이 나온 시기이기도 하다.그리고 이때에 교회는 극단적으로 타락하기에 이르는데 면죄부가 그 큰 예이다. 이러한 타락에 대항하여 루터와 칼뱅이 종교개혁을 했고 이들도 각각 구교와 신교로 나뉘게 되었다.1세기에 걸친 구교와 신교의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이러한 시기에 절대왕정은 필연적인 것이었는데 그 시대의 가부장적인 사회분위기는 그 기본적 단위가 되는 것이었다. 이 시기에는 권위에 위배되는 가치와 사고는 있을 수 없었고 이 영화에 나오듯이 한 마을마다 사제가 있어 프랑스 절대 군주정의 대리인으로써 국민의 삶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또한 이 영화에서 돌아온 마르탱과 그를 진짜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신교도들 즉 프로테스탄트계급이라고 생각되며 그를 가짜라고 생각하며 토지를 소유한 숙부를 비롯한 세력이 구교도들 즉 보수적인 귀족계급이라고 여겨진다.2. 16세기 중반 프랑스의 결혼관과 여성상
    인문/어학| 2005.03.14| 4페이지| 1,000원| 조회(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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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정교와 한국 불교의 비교 평가C아쉬워요
    Ⅰ. 러시아 정교와 한국 불교의 역사오늘날 러시아의 국교는 그리스 정교 즉, 동방 정교회에서 시작되어 약간 변형된 러시아 정교이다. 동방정교회로 거슬러 올라가 그 역사를 알아보자면 그것은 로마제국에서 발생한 고대교회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고 원시 그리스도교의 정신을 잘 이어나가고 있다.후에 동로마 제국인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제국에 의해 멸망되면서 러시아가 988년에 동방정교를 수용해서 국교로 정하게 되었다.그 후 러시아 내에서도 타타르의 지배와 볼셰비키 혁명 등 수난을 겪게 되었지만 1000년이 더 지난 지금도 국교로써 자리 잡고 있다.반면 한국은 종교에 관해 굉장히 관대한 국가로써 현재 국교로 정해진 종교는 없지만 우리의 역사와 함께 뿌리내리고 숨쉬어 온 불교가 있다.불교는 우리 민족에게 종교라는 개념보다는 한국의 문화로 여겨진다. 또한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국교로써 우리 문화재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그러나 조선시대로 들어오면서 유학을 정치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불교도 탄압을 받았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불교는 대부분 삼국시대에 발전했기 때문에 한국 불교가 삼국시대의 불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Ⅱ. 러시아 정교회와 한국 불교의 비교1. 세계관980년 블라디미르 공이 키예프를 점령하고 나서 러시아를 국가적으로 통일하기 위해 보다 보편적인 종교를 찾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동방 정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그것은 동방 정교회의 세계관이 키예프인 들의 현세지향적인 민간 정통과 가장 유사했기 때문이다.또한 러시아 정교회의 기본 교리는 보편주의, 상호 의존성, 겸손,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교리는 평등 의식과 자발적으로 조직되는 단일한 공동의식을 불러 일으켰다.러시아 정교회는 인종(忍從)과 금욕적 생활을 중시했고 금욕으로 온건한 신앙에 도달하려고 했으며 서방 정교와 달리 운명에 순종하고 소극적인 수양을 한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러시아 정교의 세계관은 한국 불교의 세계관과 굉장히 흡사하다. 한국 불교 역시 토속신앙을 흡수하여 우)등의 소극적 수양을 통해 불교로의 정진을 하였다.이와 같이 러시아 정교회와 한국 불교의 세계관과 교리는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흡사한 성격을 띠고 있다. 동방 정교회가 서방 정교회와 가장 다른 점인 우상 숭배에 대한 관대함이 불교와 비슷한 점으로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나는 러시아 정교회와 불교의 교리가 유사한 이유를 그 민족의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왜냐하면 러시아, 정교회가 들어올 당시의 키예프 민족들의 특성이 현세 지향적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 러시아 정교회가 그들에게 잘 흡수되어 국교로써 발전할 수 있었고 이와 유사하게 우리 민족역시 현세 지향적인 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홍익인간 이념이나 무속신앙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데 이러한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민속신앙이 불교와 융합되어 우리 고유의 한국 불교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두 종교 모두 현세 지향적인 성격에서 시작되었으나 결론적으로는 전자는 현세 지향적이지만 후자는 내세 지향적인 성격으로 설명되고 있다.불교는 인연설, 즉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는 사상을 중시하는데 이것은 윤회설과 업보라는 개념과 연결지어 설명할 수 있다.현세에서의 삶이 원인이 되어 내세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점이다. 하지만 불교의 다른 개념인 해탈이 또 다른 내세를 설명해 주고 있는데 해탈이라는 것은 윤회의 고리를 끊어 업보를 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현세와 기독교적 관념에서 말하는 천국, 즉 내세를 모두 극복하여 둘 다가 아닌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엄밀히 따지자면 이 제3의 세계를 불교에서 말하는 내세라고 생각하여 결론적으로 불교는 내세 지향적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불교사상이 현세를 간과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윤회설을 통하여 잘 알 수 있다.2. 수도방법러시아 정교회, 넓게 말해서 동방 정교회가 서방의 교회와 수도방법에 있어 다른 점은 현세에서의 고통, 금욕과 자기 성찰이라는 점이다.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독교가 서방 교회인데 것을 통해 수양을 하기도 했는데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기도를 하루에 3000번, 6000번, 1만 2000번을 반복하게 하고 나중에는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기도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 방법은 서방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이것은 어쩌면 우리 불교에서의 염불과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른다.한국의 불교에서의 수도 방법은 고(苦)에서 해탈받기를 힘쓰는 것인데 이 역시도 고통스러운 수행을 통해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또한 앞서 말한 러시아 정교회의 내면의 기도와 비슷하게 염불 수행을 하기도 하는데 관세음보살명호를 반복적으로 외우면서 생각으로는 ‘모든 것에 감사 합니다.’라고 명상하는 것이다. 이 수행은 하루에 10000번씩 3일을 하면 행복해지기 시작한다고 한다.이렇게 러시아 정교회와 불교의 수행방식 또한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왜 기독교의 한 분파인 러시아 정교가 수행방법에 있어 매우 적극적인 서양 교회와 다른 것 일까?나는 이러한 이유를 국가적, 민족적 특성에서 찾아보고 싶다. 러시아는 예전 키예프 루시시대부터 구소련을 거쳐 현재까지도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운명에 순종하는 정신적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공산주의의 산물로써 개인의 이익을 사회의 이익에 복종시키는 집단주의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결국 개인에 대한 억압이 종교적인 면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소극적, 금욕적 성격을 띠는 것이라고 생각된다.우리 민족 역시 군주의 통치하에서 많은 억압을 받아왔으며 그 억울함을 참고 견디는 생활 속에서 현실의 개혁을 체념하고 불교에서의 수행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극기와 인내를 통한 수행만이 자기 자신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기게 되었다고 생각된다.러시아 정교회는 동양적인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긴 하지만 기독교의 분파이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보기 힘든 성스러운 만찬을 통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서양 교회보다는 그 정도가 약하지만 비슷하더라도 러시아는 공산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아 국가에 종속되는 것이고 반면 우리 민족은 근본적으로 유교정신과 효 사상이 깔려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국가에 종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3. 종교적 전례물러시아 정교와 한국 불교를 가장 대표하는 종교적 전례물을 꼽으라면 이콘과 불화일 것이다. 그림을 통하여 전자는 성경의 내용을, 후자는 경전의 내용을 묘사하고 교리를 전파했기 때문이다.서방 교회의 성상화는 단지 장식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동방 정교회, 구체적으로 여기서는 러시아 정교회를 뜻하는데 이 종교에서는 성상화가 그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고 문맹인들에게는 성경책의 역할까지도 하였다. 즉, 성상화 그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불교의 불화도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불화 자체가 불심(佛心)을 표출하는 대상이었으며 당시의 일반 민중들 중에서는 문맹인이 많았기 때문에 교리를 보다 쉽게 알려 줄 수 있는 그림 경전의 역할을 한 것이다.또한 국가를 지키기 위한 호국(護國)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이콘에서 가장 선호된 주제는 성모마리아인데 이는 마리아가 어머니의 이미지로써 헌신의 대상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세 러시아에서는 신앙과 전투, 예술과 군대사이의 밀접한 협력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 예로 보골류프스키는 도시의 방어를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성모 성상화를 모스크바로 가져오기도 했으며 이반 뇌제가 카잔에서 타타르를 물리친 것도 “카잔의 성모”라는 성상화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물론 우리나라의 불화도 호국신앙이라는 불교 신앙에 입각하여 나라를 보호하는 힘을 지닌 그림이나 조각상을 만들었는데 십이지도(十二支圖) 등이 그 예이다.하지만 각각의 종교에 있어서 성상화가 지니는 의미는 조금 다르다.근본적으로 포교를 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이콘이 예수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 그리고 몇몇의 성인들만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반면에 불화는 우리의 석가모니의 상(像)뿐 아니라 우리의 토속 신들까지도 주제로 삼았는 우리 민족의 홍익인간 개념과 무속신앙, 토테미즘등과 융합하여 불화에 그런 내용까지도 함께 담은 것으로 보인다.각 종교의 건축물에서도 비교할 점들이 있는데 건축물이자 종교적 전례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러시아 정교회의 꾸뽈(Купол)과 우리 불교의 풍경을 들어 이야기 하려고 한다.흔히 러시아를 생각하면 함께 떠올리게 되는 러시아 정교회 사원의 양파모양 지붕을 꾸뽈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러시아 정교회 뿐 아니라 러시아를 표현하는 건축물이다.이것은 신에 대한 간절한 염원뿐 아니라 그 모양은 신에 대한 기도가 하늘로 타올라 가는 것을 형상화한 촛불을 의미하며 그 위에는 초의 심지처럼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이 십자가는 흔히 우리가 보는 모양과 달리 가로 축이 두개, 그 중 하나는 경사지게 붙어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모습을 표현 한 것으로 맨 위의 가로축은 그리스도의 머리, 중간축은 팔, 아래 경사진 축은 두 발을 상징 한다고 한다.이는 러시아 정교회가 그리스도의 안식처이자 세계의 중심임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한편, 우리 사찰에서 처마 밑에 달린 종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풍경이라고 한다.이 종에는 대부분 물고기 형상이 매달려 있는데 이 물고기 형상은 불교의 가장 큰 사상인 윤회사상과 연관이 있다. 불교의 풍경뿐 아니라 목탁, 목어등과 같이 물고기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유도 모두 윤회사상을 중생에게 알기기 위함이다.4. 민족에게 끼친 영향러시아 정교회와 불교는 모두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그렇기 때문에 이 두 종교는 필연적으로 민족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그 중에서 축제를 들 수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러시아 정교회의 축제는 현재에도 민족 축제라고 할 만큼 크고 성대하다. 반면 불교의 축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민족 축제의 개념보다는 불교인들의 축제라고 해야 할 만큼 축소되었다.그러나 과거 고려시대나 삼국시대에는 불교가 국교였던 만큼 연등회, 팔관회 같은 의례를 통해 대대적인 축제를 벌이기도 다.
    인문/어학| 2005.03.14| 5페이지| 2,000원| 조회(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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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감상문]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보고.. 평가A좋아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봄”을 보고..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불교의 가장 주된 사상인 윤회(輪廻)사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사계절이 지나면 다시 봄이 시작되듯 사람 역시 죽으면 다시 태어나게 되어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다.이 영화가 처음에 나왔을 때 영화 포스터에는 “나쁜 감독 김기덕의 착한 영화”라고 쓰여 있었는데 사실 나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스타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전에 우연히 “해안선”이라는 영화를 보고 상당히 불쾌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가 종교를 다룬 영화를 과연 어떻게 “변질” 시킬까..하는 약간은 삐딱한 시선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그러나 영화는 나의 예상을 뒤엎고 차분하고 평범하게 시작되었다.◎ 봄 - 인간의 업보속세와 완전히 단절되어있는 작은 암자에 노승과 동자승이 살고 있다.그곳에서 동자승은 자연과 하나인 것처럼 약초를 캐고 뱀을 서슴없이 잡고 계곡과 산을 놀이터 삼아 살아간다.그러나 동자승은 그런 자연 속에서 물고기와 개구리 그리고 뱀의 몸에 돌을 달아 그들이 힘겹게 움직이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고 이를 지켜본 노승은 동자승에게 똑같이 돌을 매달아 그것들을 다시 찾아 살아있지 않다면 평생 마음의 업으로 남을 것이라고 호통을 친다.결국 물고기와 뱀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 동자승은 서럽게 운다.이것이 “봄”에서 우리에게 말해주는 “살생의 업” 이다.여기서는 내가 이 레포트에서 다루어야 할 “성담론” 에 관한 것은 없지만 노승이 말한 살생으로 인한 평생의 업이 앞으로 인간의 성욕과 집착이라는 업보로 연결되는 것이다.◎ 여름 - 인간의 욕망시간이 지나 동자승은 소년이 되었고 암자에 병약한 소녀가 요양을 하기위해 머무르게 된다. 소년은 소녀를 보고 무의식중에 성에 눈뜨게 되고 두 사람은 노승의 눈을 피해 나룻배를 타고 나가 성관계를 갖게 된다.처음으로 성관계를 가진 두 사람은 점점 욕망을 참지 못하고 같은 이불에서 자기도 하고 밤에 몰래 나가 관계를 갖기도 하며 서로의 몸에 집착을 하게 된다.소년과 성관계를 가진 소녀는 건강을 되찾고 이 사실을 안 노승은 소녀를 절에서 내보낸다.소녀가 떠난 후 견디지 못한 소년은 결국 암자의 작은 불상 하나를 짊어지고 절을 떠난다.사실 “여름” 부분을 보면서 나는 ‘역시 김기덕 감독의 영화답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님이 성에 눈을 뜨고 여자와 관계를 갖는 다는 것을 영화로 표현했다는 자체가 충격적이기 까지 했다.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어쩌면 “성담론”에 어긋나는 사상을 가진 것은 아닐까?남녀가 사랑을 하고 성관계를 갖는 것이 불순한 것도 아니고 숨겨져야 할 사실도 아닌데 나는 마치 내가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당황스러웠다.“성담론” 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성(性)에 대해 대담하고 진솔한 정의를 내린 것이라고 생각된다.스님이 성욕에 사로잡혀 절을 떠난다는 것은 성에 비교적 개방적인 현대에도 흔치않을 일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다.두 사람의 사이를 알게 된 노승은 호통을 치기는커녕 “저절로 그렇게 된 것 이니라” 라고 말한다. 또한 병이 다 나은 소녀에게 “그것(성욕)이 약 이었구나” 라고도 말하는데 이런 대사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에게 있어서 성(性)이라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해야 한다.비록 영화에서 그 주인공이 스님이라는 사실에 당황스럽긴 하지만 김기덕 감독은 의도적으로 이런 설정을 했을지도 모른다.속세와 단절된 곳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연을 느끼고 보며 자라온 소년이 때가 되어 성에 눈을 뜨게 된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을 죄스럽지 않게 여긴 것 또한 당연한 사실 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승은 소년을 호통 치지 않았고 오히려 당연한 이치라고 이야기 한 것이다. 그러나 노승은 그러한 욕망으로 인해 집착을 낳고 그것이 또 사리를 품게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녀를 내보내었고 소녀에 대한 집착에 눈이 먼 소년도 결국 절을 떠나 속세로 떠나버린다. 나는 앞에서 다룬 살생의 업이 소년에게 집착과 욕망의 업이 되어 돌아오게 되었다고 생각되었다.◎ 가을 - 욕망과 집착의 결과물시간이 흘러 소년은 아내를 살해한 살인자가 되어 절로 돌아온다. 그는 외도를 한 아내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이성을 잃은지 오래였다. 절에 와서도 그는 자살을 시도하고 노승은 처음으로 그를 때리며 호통을 친다. 그리고 그를 위해 반야심경을 새기며 마음을 다스리도록 시킨다. 하지만 형사들이 찾아오고 반야심경을 밤새 새긴 그는 차분한 마음으로 형사들과 절을 다시 떠난다. 그들이 떠난 후에 노승은 나룻배에 앉아 조용히 다비식을 치른다.“가을” 부분에서는 성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청년을 통해 욕망에 대한 집착이 낳은 결과물로써 간접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청년은 자신이 사랑한 아내가 외도를 하자 분을 참지 못하고 살인을 하게 된다. 그런 그에게 노승은 “가진 것을 놓아야 할 때가 있느니라” 라고 말하지만 청년은 그것이 집착으로 인한 결과라는 사실을 깨우치지 못한다.◎ 겨울 - 업보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수감생활을 마친 청년은 어느덧 중년이 되어 절로 돌아오고 꽁꽁 얼어버린 호수에 갇힌 나룻배 속에서 노승의 사리를 거두어들인다. 그는 마치 자신의 업보에서 벗어나려는 듯이 어린시절 몸에 돌을 매었던 것처럼 자신의 몸에 돌을 매고 거침없이 산을 오르고 무예를 연마한다. 어느 날 얼굴을 천으로 감싼 한 여인이 아기를 데리고 절에 찾아오고 아기를 놔두고 절을 떠나던 그 여인은 깨진 얼음을 밟고 물에 빠져 숨지게 된다.
    독후감/창작| 2005.03.14| 3페이지| 1,000원| 조회(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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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05일 일요일
AI 챗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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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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