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사회적 기대의 변화급격한 산업 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더욱 증가하였는데, 이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우선 20C 초까지는 대량생산, 분업, 공장화 등이 본격화되기 시작하기 전으로, 기업은 그 경제적 책임만 다할 뿐,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기업도, 그리고 시민들도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기업의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자, 시민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수정자본주의의 등장과 함께 가속화되었다. 즉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시민들은 데모 등을 통해 기업에게 그 사회적 책임에 대한 추궁을 하였고, 이것은 정부의 정책과 맞물려 환경청의 신설 등과 같은 정부의 간섭이 시작되었다.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비용 때문에 여전히 사회적 책임에 소홀하였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 정부를 더 이상 믿지 못한 시민들 스스로 NGO(Non Government Organuzation)와 같은 기구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에 나서게 되었다. 즉 소비자인 시민들의 바램은 기업이 스스로 사회적 책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료에 의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 창출의 감소와 무관하다고 제시되어 비용이라는 기업의 변명을 무색하게 만든다.Ⅱ. Patagonia & EspritPatagonia와 Esprit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실천과 동시에 경제적 성공을 이룬 대표적인 회사로써, 두 기업 모두 환경 문제를 기업의 일부로 생각하는 Green Business를 실현하고 있다.우선 Patagonia는 등산용 장비와 의류를 생산하는 업체로써, Green Business를 상품판매에 직접적으로 이용하진 않더라도, 기업의 정책에 대한 동의가 구매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기업이 사회의 모범으로써, 더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밑거름의 역할을 한다고 여긴다. 즉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이익이 창출되며, 따라서 Patagonia는 제품뿐만 아니라 이미지, 가치 등을 생산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예로 지구세 라는 것을 도입하여 언제나 환경 보호를 최우선시하는 기업으로 이미지화 시켰다. 그리고, 그러한 회사의 목표를 주민들과 사원들에게 확실히 전달하고, 모든 사원들이 지역사회운동에 참가하여 회사적 차원에서 그것을 실천하게 하였다.한편, Esprit은 스포츠 웨어를 생산하는 업체로, Patagonia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소비자의 신뢰를 획득하려 했다. 또한 자사의 환경감사를 외부에 맡김으로써, 회사 자체 내에서 환경에 대한 개선을 하고, 그에 대한 계획의 수립 및 실행을 스스로 하였다. 다시 말해서, Esprit은 환경 문제를 기업의 일부라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Esprit의 가치관에 맞는 회사와 같이 일했으며, 이에 힘입어 탄생한 ECOLLECTION이라는 제품은 이러한 Esprit의 의지의 구체화 , 사회적 걱정에 대한 표현 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Esprit은 환경에 맞는 새로운 방법을 고려하여 환경에 대한 최소한의 피해 범위에서 제품을 생산하려고 노력하는 회사인 것이다.이 두 회사는 성실한 회사, 즉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회사의 제품을 소비자가 선호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정책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기업이라는 것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이며, 기업의 모든 것은 사회를 고려하여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Ⅲ. 한국에서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1960년대와 1970년대, 우리나라는 선성장 후분배 라는 원칙 하에 급격한 경제성장을 해왔다. 그러한 결과, 경제적으로는 뚜렷한 성장을 하게 되었지만, 반대로 사회적 책임에는 소홀한 게 사실이다. 이러한 여파는 시일이 흐른 지금에서야 드러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책임을 다하지는 못하고 있다.우선, 기업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경제성장기에 정부 주도하에 성장만을 지향한 결과가 아직까지 기업에 잔재하고 있으며, 그 사회적 책임을 경제적 이익과 동등시하지 않은 채, 이익 창출 후에야 하는 것이라고 미루고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9950394 사회학과 김정환Ⅰ. 들어가는 말20세기는 문명사적 전환을 이룬 시기로써, 이전의 세계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현대 과학 기술의 발달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정보와 커뮤니티, 그리고 공동선의 관계도 이러한 점과 상당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다.우리는 21세기를 맞으면서, 지금의 시기를 정보화 혹은 세계화 사회라고 부른다. 이것은 즉 기술의 발달, 특히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한 의사소통의 혁명 및 운송, 수송 수단의 발달에 근거하는데, 따라서, 종래의 지역 단위의 공동체에서 국가 단위의 공동체로 그 영역이 확장된 것과 마찬가지로 다시 세계가 하나로 묶이는 세계 공동체로서의 면모를 지니게끔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은 실세계와는 동떨어진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등장시켰고, 이 공동체는 지금도 그 영역을 점점 증대시키고 있다.따라서, 이 글에서는 우선 정보화 사회에 대한 개념을 알아보고, 정보 공유로 인한 장·단점, 그로 인해 파생된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공동체를 살펴보면서, 공동선과 관련지어 보고자 한다.Ⅱ. 정보화 사회 및 사이버 공동체의 등장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보화 사회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정보 기술의 혁신을 강조하여 사회의 대부분이 정보 기술을 활용하고, 그 기술의 바탕 위에 새로운 사회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정보 사회의 경제적 특성을 잘 나타내 주는데, 즉 산업 중에서 정보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정보화 사회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도 증가됨을 의미한다. 또한 통신망의 확충 및 증가되는 정보의 양 등도 정보화 사회의 주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정보화 사회의 양적 특징 외에도 우리는 질적 개념을 생각할 수도 있다. 즉 정보를 취급하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 정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점이다. 이전에는 정보가 하나의 종속적, 부차적인 요소로 취급되었던 점에 반하여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가 중심적 요소로서 작용하며, 지식과 부를 창출하는 핵심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화 사회로의 변화에 가장 큰 요소는 정보에 대한 사고 양식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요컨대 이러한 점에서 현대인은 과거보다 더 많은 정보를 통해서 가치 판단의 근거를 마련하며, 또한 그것은 이후 설명하게 될 사이버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바로 이러한 정보화 사회는 정보 통신 기술과 멀티미디어 기술의 융합을 통해서 또 다른 세계의 커뮤니티인 사이버 공동체를 등장시켰다. 사이버 공동체는 수많은 정보 공유와 익명성이라는 양극적 요소를 동시에 가지며, 자유로운 공간적 개념에서 무한대의 자유를 가진다. 따라서, 사이버 공동체는 기존의 물리적 공간의 대안으로서의 기능을 하며, 현실 세계의 제약이나 규제를 벗어나서 존재한다. 즉 이것은 실체를 지니지 못한 허구의 세계인 가상 현실 안에서의 공동체인 것이다.사이버 세계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실제 세계와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정보의 중요성 및 기술 발달 등으로 인해 사이버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증가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가상 현실로서의 공동체도 공동선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며, 그러한 공동체의 긍정적, 부정적 요소를 두루 생각하여 공동선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Ⅲ. 사이버 공동체의 특성사이버 공동체는 그것이 정보화 사회에 기반을 둔 것이며, 실세계의 공동체와 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우선 정보의 공유라는 것은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여러 가지의 정보, 즉 개인들의 권리나 책임 등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인식될 때, 공동체는 더욱 원활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 또한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공동체가 발생하고 유지된다는 점에서, 사이버 공동체는 공간적 벽을 허물어버림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통된 목적을 가진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한 의사소통의 기민성은 공동체를 더욱 활발하고, 공고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사이버 공동체는 그러한 장점과 함께 여러 가지의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다. 사이버 공동체는 익명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한 익명성은 올바른 인격이 없는 거짓된 실체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진정한 실체가 없는 공동체는 공동선을 지향할 수도, 바람직한 공동체로서의 역할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정보 소유는 여러 가지 이유 - 기술활용능력, 인터넷의 보급율, 자본에 의한 기회의 차이 등 - 로 인해 불평등하게 배분될 수 있다. 이것은 사이버 공동체의 커다란 문제이며, 소수의 정보 독점으로 인해 자칫하면 공동체가 나눔의 정신이 아닌 하나의 개인적 이익의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지닌다.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특성들 말고도 사이버 공동체는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특성들을 이해하고 파악함으로써, 사이버 공동체가 공동선을 지향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Ⅳ. 공동선을 통한 바람직한 사이버 공동체의 모색이와 같이 기술 혁신에 의한 정보화 사회는 사이버 공동체라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탄생시켰고, 그것은 지금까지의 공동체와는 사뭇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사이버 공동체가 지닌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선이 추구되는 바람직한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사이버 공동체가 공동선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가 필요하다. 한편에서는 이것을 위해 정보 공유화 운동이 발생되기도 하였다. 즉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란 정보를 하나의 상품이, 개인의 독점적 소유물이 아닌 나눔의 정신으로 대할 때, 공동선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보의 독점 없는, 자유로운 정보의 공유는 개개인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 가능하게끔 하며, 그것을 통해 공동체를 이루어나갈 때, 사이버 공동체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며, 바람직한 공동체로서의 면모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즉 공동선이 공통의 목적을 달성함과 동시에 소수의 이익도 반영해야 한다고 할 때,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는 그것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 서 론로버트 니스베트는 그의 저작 《사회학과 예술의 만남》에서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사회학적 문제들을 제시하고, 시대적 배경과 관련하여 이를 다룬다. 예를 들어 대중, 권력, 대도시, 자본가 및 노동자, 관료, 소외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회학적 현상 및 문제들은 사회학이 시작된 이래 사회학을 성숙시키고, 활발히 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특히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다루고 접근할 때, 사회학을 예술과 비교하여 설명한다. 다시 말해서, 당대의 사회적·시대적 배경의 묘사 및 인식에 대한 사회학과 예술의 연관성을 비교하고 설명하는 방법을 취한 것이다. 더군다나 사회학적인 저술과 예술 작품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한 면을 보인다. 특히 그것을 표현하는 수단인 "양식"(style)의 중요성도 간과하지 않고 있다. 즉 스타일은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으로써 사회학에서나 예술에서나 유사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사회학적 풍경화', '사회학적 초상화' 등과 같은 《사회학과 예술의 만남》의 소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저자는 논의가 자유로웠던, 또한 시대적 혼란기이며 근대적 사회에서 무수한 혁명 및 산업의 발달을 통해 현대적 사회로 변모하는 과도기적 상태인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엽의 시대를 묘사하고 설명한다. 그 중 사회학사에서 큰 획을 긋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토크빌, 마르크스, 퇴니스, 베버, 뒤르케임, 짐멜 등의 저작 및 그들의 이론을 토대로 그 동시대에서 드러나는 예술 작품들과 비교하였다.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이 서평에서는 저자가 생각하는 사회학적 주제들을 알아보고, 그 주제들이 그 당시 지니고 있는 사회학적 의미와 동일하게 예술에서도 의미되어진다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더 나아가서 그 당시의 의미 방식을 넘어서서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 사회학적 주제들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지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본 론《사회학과 예술의 만남》에서 저자는 많은 사회학자들이 이돌라) 지워진 보편적 방식이라 할 것이다.이러한 상상적 창조력은 이미지를 통해 구축된다. 즉 이론적 방법론에 우선하여 이미지에 의한 독창적 사고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 및 그 시대적 배경에 의해 이러한 상상력은 제한되어진다. 따라서 상상력은 예술에 있어서 창조와 이미지를 구성하고 사회 형성에 선행되어지는 것이며, 사회학적인 의식의 본질적 수단이라 할 수 있다.또한 과학과 예술은 현실 이해라는 공통된 탐구를 지니며, 이런 맥락에서 유사한 주제를 가지게 된다. 즉 예술과 과학은 어떤 공통의 리듬을 가지며, 그러한 공통점 사이의 본질적 친화성으로 인해 나름대로의 창조적 문맥을 지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한편 저자는 창조 및 상상력에서 더 나아간 방향으로서의 주제와 스타일을 강조한다. 그 중에서 스타일은 예술적 활동의 양식(patterns) 내지 형태(configuration)를 말하는 것으로 흔히 시대적 유행 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일정한 분야의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반복적 리듬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스타일은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향성 - 물론 주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와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발생되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스타일을 식별하는 능력은 시대를 통찰하는 능력이며, 현실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주제는 스타일보다 더 활동적이고, 적극적, 역동적인 성격을 지닌다. 또한 주제는 현실에 대한 인식의 차원[신화]에서, 인식에 대한 방법론적인 차원[은유]에서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서, 예술과 과학의 주제의 배후에 신화나 은유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학적 주제들은 우선 현실 내지는 현실의 부분에 관한 명시적 또는 함축적인 가정에서 출발한다. 또한 이러한 주제는 외적 세계와의 관계에서 '구조'(structure)를 중시한다. 즉 환경과 정신 사이에서 존재하고 발생되는 사고의 구조에 중점을 두며, 이러한 의미에서 주제는 그 시대 현실을 반영하고 그들 사이에서 상호 작용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뜻한다. 특정한 시각 안에서만이 풍경을 관찰하고 묘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19세기 사회학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풍경 즉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특출한 방식이자 관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사회학적 주제들 및 전반적 사회상을 전개하는 것은 이론적, 경험적 방식이 아닌 예술가의 통찰력에 근거한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학과 예술 사이의 많은 공통점, 다시 말해서 사회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사고에 있어서 그들 사이의 유사성(resemblance)을 발견할 수 있다.19세기 주요한 사회 풍경 중 하나인 '대중'(masses)은 그 양적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요소로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대중은 19세기 사회적 배경 안에서 분단된 군중, 원자화된 민중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며, 수평화·원자화·추상화의 제 과정을 겪는다. 특히 사회적 저작에 있어서 콤뮤니티와 대중사회의 대조는 더 뚜렷한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분단된 군중으로서의 대중을 탈피하여 콤뮤니티의 속성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한편 19세기에 그 형태와 강렬성에 관해 인식된 권력은 18세기의 이성, 권리, 정의란 절대적 정치 권력과는 다른 궤도를 그린다. 특히 19세기의 사고는 이러한 유럽의 풍경을 낡은 권위의 윤곽이라는 점에서 묘사하며, 여기에서 '권위'란 사회적, 문화적 특질을 가진 것으로 권력과는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우리들이 이미지와 상징에 의해 지배된다고 할 때, 19세기 유럽의 공장제도에 대한 이미지는 '어둡고 거대한 공장'이라 할 수 있으며, 특히 마르크스의 《자본론》에는 노동자의 빈곤, 황폐한 노동 환경, 노사간의 갈등 등의 풍경이 잘 묘사되어있다. 이렇게 형성된 공장의 어두운 이미지는 아노미적, 병리적인 분업 형태를 함축하며, 사회를 더욱 더 비개성적, 계약적, 세속적으로 변모시킨다.한편 19세기의 도시는 불신과 회의 등의 부정적 인식으로 비추어진다. 즉 도시가 개인간의 유기적 관계에서 이기적, 탐욕적, 피상적으시 사회학적 풍경의 묘사에 주요한 양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시대에서 보여지는 당시의 이미지(image)를 초상화란 예술적 스타일을 통해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초상화는 사회학뿐만 아니라 문학 같은 예술에서도 나타나며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 하지만 '사회학적 풍경화'와는 달리 초상화는 개인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즉 '사회학적 초상화'를 통해 개인이 사회에서 가지는 공통적 특징을 발견하고, '역할 유형' 또는 '이념형'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사회학의 구조와 과정적인 문제를 이해하려고 한다.이러한 초상화 중 자본가라는 개념은 19세기 여러 사상 및 예술적 측면에 의해 희화화되어 나타난다. 특히 마르크스는 자본가라는 사회적 초상이 시대의 지배적 현실인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것으로, 경제적 범주 및 특정 계급의 관계와 이해에 있어서 의인화, 형상화시킨 것이라 하였다.이에 반해 자본가와 더불어 19세기의 보편적 초상의 하나인 노동자는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그 당시의 사회적 빈곤을 대변한다. 이러한 노동자의 이미지는 어둡게 묘사된 도시와 더불어 황량하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억압과 착취에서 언젠가는 벗어나 역사에 있어서 혜택받는 지위가 될 것이라는 낙관적, 긍정적 이미지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여기에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이미지에 시대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적 암시를 주어 사회에서의 노동자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 했다.특히 베버에게 있어서 자본가,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관료는 대중들의 실제와는 많은 모순을 가지고 있다. 경제와 자본의 산물인 자본가와 달리 행정적 전문성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존재로써, 특히 베버의 관료에 대한 사회적 초상에 드러나듯 "순수 이성을 모든 인간적 관계에 적용하려는 존재"를 의미한다.19세기의 또 다른 역할 유형으로써, 우리는 지식인을 들 수 있는데, 지식인은 그 당시 사회에 대한 적대적 입장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소외된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 특히 그러한 지식인들에게 (정치적으로) 새로운 사회에 대제들을 설명하는 근거가 되며, 특히 19세기 진화론과 같은 비대칭적 변화는 그들에게 파노라마적인 운동의 환영을 제시하였다. 여기에서 파노라마는 시간적 개념이며, 서로 이질적인 존재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지속적인 동일체 안에서 변화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19세기에 유행된 진화론자의 저작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파노라마와 운동의 환영은 사물의 특징을 방대하게 나열한 것으로써 연속적인 진보의 원리에 직관적 통찰을 가해 완벽하게 구성되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파노라마는 철학 및 과학에서 시간의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이에 반해 디오라마는 파노라마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인식할 수 있다. 파노라마가 시간의 흐름 및 운동과 발전의 원리를 방대한 나열로서 설명하는 데 반해, 디오라마는 파노라마의 무질서한 광경 속에서 균제, 조화, 운동을 부여하는 수단 및 원리를 발견하고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파노라마적 고찰과 함께 디오라마는 더 고도로 체계화된 사고의 구조물이며 세부적 표현을 통해 '생성감'을 형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학적 풍경이라는 배경 속에서 그 시대에 맞는 질서 및 원리를 발견하는 사회학의 목적과 일맥상통 하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정적이고 간헐적이며 우발적으로 발생되는 풍경의 양상 속에서 동적 원리 및 운동의 법칙을 찾게 해주고 그것을 변경시켜 주는 역할을 파노라마와 디오라마가 하는 것이다.'녹슬은 진보'에서 우리는 19세기의 양면적 시대상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전과는 다른 급격한 진보의 이면에 일종의 불안감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 불만들은 진보의 산물인 산업 사회의 많은 요소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이루어 놓은 진보에 대한 반동으로 불안이 발생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불안감은 진보가 아닌 회의적인 철학과 산업주의 및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및 고발을 가져왔고, 파노라마적 희망 대신 좌절 및 파멸이라는 진보의 어두운 이면을 부각시켰다.콤뮤니티의다.
▶ 머 리 말신화(神話)란 말은 희랍어 미토스에서 유래된 말로 神에 관한 이야기를 말한다. 이러한 神話들의 敍述이 우리에게 중요시 되는 것은 그 神話가 人類 精神 文化의 母胎이자 根源이기 때문이다.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神話와 現實》에서 神話는 신성한 歷史이며, 原初의 時間이라 정의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超自然的 行爲를 통해 實在의 存在를 설명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神話가 實在와 創造의 이야기이며, 언제나 神聖한 이야기, 나아가서는 진실한 歷史로 생각되어 온 것을 의미한다. 또한 傳統 社會와 集團에 대한 現實的 體驗을 포함하는 呪術的·宗敎的 信仰이며 慣習이자 生活 樣式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고리키는 神話 역시 自然 現象의 일종으로 自然에 대한 人間의 鬪爭인 동시에 社會 生活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神話는 단순한 虛構的 이야기로써 구비·전승되어 온 것이 아니라 특정한 歷史時期의 産物로써 無形의 財産이자 한 民族의 혼이 담겨있는 精神 文化의 總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간략히 말해서 神話는 初期 人類 文化의 産物로, 古代人의 의식 상태의 綜合的인 表現 내지는 反映의 所産인 셈이다. 또한 神話는 祭·儀禮 등을 통해 보다 높은 영역으로 지향하기 위한 古代人의 手段이었을 것이다.위에서 보듯이 우리는 神話를 통해 古代人의 生活 樣式과 삶을 엿볼 수 있으며, 그러한 점에서 神話의 硏究는 충분한 價値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우리에게 미치는 神話의 一般的 機能을 살펴보고, 우리 民族의 檀君神話와 중국의 古代神話를 比較·說明하고자 한다.▶ 神話의 機能神話의 機能 중 가장 代表的인 것은 人間 生活의 模範的 모델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즉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가 말하는 神話의 目的처럼, 神話를 통해 이 세상을 설명함으로써 矛盾 및 葛藤을 마술처럼 해결하는 論理的 모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또한 人間은 神話에서 보이는 神들의 行爲를 模倣하고 反復함으로써 삶의 스타일을 형성해 나간 드물다. 게다가 우리가 중시하고 가꾸어 온 신화는 거의 다 族祖 發生 神話인 建國神話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오랫동안 中國의 諸侯國으로써 주변에 위치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더군다나 그 내용조차 너무 단순하고 싱거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물론 韓國에 創世 神話가 存在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韓國에도 創世 神話가 전해 내려온다. 다만 우리의 創世 神話가 獨自的인 文獻으로써 傳承된 것이 아니라, 오랜 期間의 口頭 傳承物로 전해 내려 왔으며, 敍事 巫歌의 형태로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것이다. 특히 함경도와 제주도의 創世 神話는 傳承 資料 및 形式에서 잘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創世 神話는 高麗時代 이전, 옛 神話들의 기록 정리기에 氏族 始祖 神話들을 중심으로 기록하면서 제외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族祖 發生 神話가 보여준 태의(太儀)의 내용에서 古代人의 宇宙 發生論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創世 神話는 宇宙 創造가 모든 創造의 根源이며 典型이었기 때문에, 世界의 많은 民族들이 治療, 孕胎, 誕生, 結婚, 農耕 活動 등의 儀禮에서 歌唱 해왔고, 그 歌唱은 古代人의 太初로의 回歸와 再現을 表現해 준 하나의 宗敎的 觀念의 所産物이었다는 점{) Mircea Eliade에서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創世 神話의 重要性이 느껴지며, 우리 民族에게 獨自的 樣式을 갖춘 創世 神話가 없다는 점이 더욱 아쉽게 생각된다.우리 民族에게 전해 내려오는 神話 중 가장 代表的인 것은 古朝鮮의 建國神話인 檀君神話라 할 수 있다. 建國神話는 人間에 대한 社會的 關係가 바탕이 되는 만큼 現實의 支配 隸屬 關係를 전제로 하여 성립되며, 이를 반영한다. 현재 전하는 檀君神話는 13세기 후반 일연(一然)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인용된, 〈古記〉에 原形에 가장 가까운 내용이 남아 있으며, 이는 당시까지 우리 民族이 歷史 過程을 통해 變化·發展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고기(古記)』에는 이렇게 말했다.옛날에 환인(桓因)의 아들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사람이 될 것이다.곰과 범은 이것을 받아서 먹었다. 곰은 환웅이 시킨 대로 금기사항을 지키니 삼칠일 즉 21일 만에 여자의 몸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범은 능히 이를 지키지 못해서 사람이 되지 못했다.여자가 된 곰은 그와 결혼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항상 단수(壇樹) 아래에서 어린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축원했다. 환웅은 이에 거짓 사람으로 변해서 그와 결혼해 주었다. 마침내 여인은 임신해서 아들을 낳았으며, 그 아이의 이름을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했다.왕검은 당고(唐高)가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庚寅年)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불렀다.(『三國遺事』 卷 1, 古朝鮮)물론 檀君神話의 내용이 記錄 文獻마다 동일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三國遺事에는 단군(壇君)이라고 표기되어있는 것이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단군(檀君)으로 표기되어있고, 내용 면에서도 세부적인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朝鮮의 神話 硏究에서 가장 큰 문젯거리였으며, 지금까지 그 問題는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文獻마다 내용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檀君神話의 價値를 떨어뜨리지는 못하며, 地理的 斷絶感이 많았던 時代에 생겨난 神話들이 이렇듯 긴밀한 相關性을 지녔다는 점은 그것이 現實的으로 存在했던 것의 包括的 表現이라는 것을 입증한다고 할 것이다.檀君神話의 基本 構造는 3段階로 요약할 수 있다.1 天神의 庶子 桓雄이 人間 世上에 뜻이 있음을 안 天神 桓因은 三危太伯이 弘益人間 할 만한지라 天符印 3개를 주어, 世上을 다스리게 함2 桓雄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정 神檀樹 하에 下降하여 神市를 건설하고 人間의 360여 事를 맡아 人間 世上에 살며 다스리고 敎化함3 桓雄이 熊女와 結婚하여 檀君을 낳으니, 이가 都邑을 아사달에 정하고 나라를 開倉함이와 같이 檀君神話의 基本 構造를 살펴보면 檀君神話는 天神의 人間 救濟思想 에 重點을 둔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超自然的 存在인 桓因, 地上의 歷史를 象徵하는 桓雄, 하늘과의미한다. 특히 檀君神話에서는 國家 制度的 特徵을 엿볼 수 있는데, 그것은 곰과 호랑이에 관한 부분이다. 즉 곰은 戒律과 禁忌의 時間을 지키고 견딤으로써 행복해지는 上昇的 類型인 반면 호랑이는 거부함으로써 불행해지는 挫折 背反의 下向的 類型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社會的 制度의 障壁에서 지킴 과 위반 을 규정하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주는 특징을 보여주며, 後代 文學{) 《춘향전》, 《선녀와 나무꾼》 등의 경우에서 발견됨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天神的 意味인 桓雄을 핵심으로 하는 檀君神話에서 우리는 自主 精神 및 民族 意識을 느낄 수 있다. 즉 檀君神話가 단지 古朝鮮의 建國神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民族의 自主, 獨立 意識과 統一 意志를 象徵하는 求心點의 役割을 하며 우리에게 矜持를 갖게 해준다는 것이다. 요컨대 古代神話는 다른 種族과 民族에 대한 自民族의 排他的 優越 意識의 表現으로 그 神聖的 意味를 더한다. 또한 民族 全體의 內的 統合과 民族 自存이 중요한 時代的 問題로 떠오를 때, 古代 建國神話는 時代史的 役割을 담당하게 되고 우리 民族의 生存權을 유지시켜 준다는 점에서 檀君神話의 民族史的 意味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神話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는 自我 正體性을 가지는 동시에 삶의 진정한 의미 또한 확보할 수 있다.덧붙여서 檀君神話의 宗敎史的 意味를 考察해 본다면, 이러한 建國神話는 실상 神話와 歷史를 仲介하는 位置로써 文化史的 痕迹을 가지게 되고, 또한 創世 神話의 본래 機能인 宗敎的 機能을 담당하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인 政治的 統制의 機能으로 작용되어졌다.▶ 中 國 神 話中國이나 인도, 그리스, 이집트 등과 같은 古代 文明國家들은 나름대로의 풍부한 神話를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그리스나 인도는 그들의 神話를 매우 완벽히 保存하고 있으나, 이에 반해 中國에서만은 그렇지 못하다. 전해지는 過程에서 斷片的인 것들만 남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中國은 완정(完定)한 神話 體系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이 中國神話가 斷요 類型이 다 보여진다고 할 것이다.또한 中國의 上古神話는 못 神들을 통솔하는 主神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中國이라는 民族 자체가 他 部族을 吸收·融合하여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 과정 속에서 系統이 다른 神話가 서로 融合된 結果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神話 속의 神의 모습은 대다수가 짐승 또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형상을 지니는데, 이것은 中國神話에 原始 토테미즘적 요소가 가미되어 복잡한 外形的 特徵을 지니게 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한편 中國의 神話에는 勞動的 要素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의 藝術觀{) 마르크스는 모든 문학예술이 노동에 기원을 두고 있다. 고 말한다.을 볼 수 있다. 고리키는 原始人의 觀念 속에서 神은 결코 抽象的인 槪念이거나 幻想的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勞動을 하는 도구를 지닌 매우 現實的인 人物이었다. 그러므로 神은 어떤 방면의 技術에 능한 자{) 하늘과 땅을 갈라놓은 반고(盤古), 약초들을 발견한 신농(神農), 농사 짓는 법을 가르친후직(后稷) 등이 있다.였고, 사람들의 스승이자 동료였다. 라고 말하는데, 中國神話에서는 이러한 具體的 事實들이 발견된다.다음으로 나타나는 中國神話의 特色은 英雄들에게서 보여지는 不屈의 精神이다. 요컨대 어떠한 理想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에서 中國의 傳統的 民族性을 찾을 수 있다.마지막으로 中國神話에는 封建制度 및 階級社會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特色이 있다. 그 중 하나가 暴君에 대한 反抗으로 民衆들의 鬪爭을 神話를 통해 敍述한 것이며, 나머지는 이에 對比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고무시키는 積極的 浪漫主義 精神이라 할 것이다.中國의 創世 神話는 宇宙, 人類, 洪水 등 3종의 起源 神話가 질서 있게 배열되어 서술되며, 天地의 形成, 人類의 起源, 洪水로 인한 文化의 再創造가 순서대로 언급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宇宙의 起源에 관한 創世 神話를 통해 中國의 全般的 神話를 알아보고자 한다.태초에 우주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는데, 누가 이 허무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