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시시포스)는 그리스신화의 인물인데 신들에게서 바위를 산꼭대기에 운반하는 형벌을 받았다. 이 바위는 산꼭대기에 도달하면 굴러 떨어져서 시지프는 영원토록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운반하는 작업을 되풀이해야만 한다. 무익하고 희망이 없는 노동보다 더 무서운 형벌은 없다고 신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카뮈는 시지프 안에서 부조리한 인간의 전형을 보았다. 인간 존재의 무의미성을 자각하면서 이 부조리에 대하여 반항을 기도하는 인간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지만, 이 인간의 운명에 비참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행복을 발견하고 있는 데 그의 독자성이 있다.신들은 시지프에게 끊임없이 산꼭대기까지 바위 덩어리를 굴려 올리게 하는 형벌을 내렸다. 그러나 돌덩이는 그 자신의 무게로 인하여 꼭대기에서 다시 굴러떨어지곤 하였다. 그 무익하고도 가망 없는 일보다 더 끔찍한 형벌은 없다고 신들은 생각한 것은 일리가 있었다. 호머의 말에 의하면, 시지프는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가장 신중한 사람이있다. 그러나 다른 설화에 의하면, 그는 `도둑'이었다고도 한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교활한 코린트의 왕으로 하데스에서 언덕 정상에 이르자마자 굴러떨어지는 무거운 돌을 다시 정상까지 거듭 밀어올리는 벌을 받았다. 〈일리아스 Iliad〉에서는 에피레(훗날의 코린트)에 사는 인물로, 아이올로스(아이올리아족의 원조)의 아들이자 글라우코스의 아버지로 나온다. 호메로스 이후 시대에는 오디세우스의 아버지로 불렸으며, 이스트미아 경기의 창시자로도 유명했다. 그뒤의 전설에 의하면, 그는 자신을 데리러 온 죽음의 신을 묶어버렸다고 한다. 이때문에 아레스가 죽음의 신을 도우러 올 때까지 아무도 죽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죽음의 신이 풀려나자 그는 할 수 없이 지하세계로 가야 했는데, 죽기 전에 아내 메로페에게 일상적인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자기의 시체도 묻지 말라고 말했다. 지하세계에 도착한 후 그는 아내의 소홀을 징벌하기 위해 되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일단 집으로 돌아온 후 그는 2번째로 죽을 때까지 오랫동안 살았다. 그는 아우톨리코스와 프로메테우스처럼 위대한 사기꾼 또는 대도(大盜)로서 죽음의 신을 속인 죄로 영원한 벌을 받게 된 민간전승의 인물이었다.나는 이 점에 모순이 없다고 본다. 그를 지옥의 무익한 노동자가 되게 한 동기에 관해서는 의견이 구구하다. 첫째로 그는 신들을 경시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신들의 비밀을 누설했다는 것이다. 아조프의 딸 에진은 주피터에게 호소했다. 이 납치 사건을 알고 있던 시지프는, 아조프가 코린트 성에 물을 대준다는 조건으로 그 사건의 진상을 알려주겠다고 제의했다. 하늘의 노여움보다는 그는 물의 은총을 택했던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그는 지옥에서 벌을 받게 되었다. 호머는, 시지프가 사신을 쇠사슬에 얽어맸다는 것도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플루토(지옥의 왕인 죽음의 신)는 황량하면서도 고요한 자기 왕국의 모습에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전쟁의 신을 급파하여 사신을 그의 정복자의 손에서 해방시켰다. 또한 시지프가 죽음에 처해 있으면서 자기 아내의 애정을 무모하게 시험해보려고 했다고도 한다. 그는 아내에게 자기의 시신을 매장하지 말고 광장 한복판에 던질 것을 명령했다. 시지프는 지옥에 떨어졌다. 인간적인 사랑과는 너무나도 어긋나는 아내의 복종에 화가 난 그는 아내를 벌하기 위해서 지상으로 되돌아갈 허락을 플루토에게 얻어냈다. 그러나 다시금 이 세상의 얼굴을 보고, 물과 태양, 뜨거운 돌과 바다의 맛을 보았을 때, 그는 이미 지옥의 그늘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소환, 분노, 경고는아무 소용이 없었다. 또다시 여러 해 동안, 그는 하구의 연안과 찬란한 바다, 그리고 대지의 미소 앞에서 살았다. 신들의 체포가 필요하게 되었다. 머큐리(주피터의 아들인 신들의 사자)가 이 파렴치한 자의 목덜미를 잡고 그의 기쁨을 빼앗고는,바위가 이미 준비되어 있는 지옥으로 강제로 끌고 갔던 것이다. 시지프가 부조리한 영웅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이해했다. 그는 그의 고통으로서만이 아니라 정열로서도 영웅인 것이다. 신들에 대한 멸시, 죽음에 대한 증오와 삶을 향한 정열은, 온갖 존재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는 일에 전념해야 되는 형용할 수 없는 형벌을 그에게 내린 것이다. 이것은 이 지상의 정열을 위하여 지불하지 않으면 안될 대가다. 지옥에 있는 시지프에 관해서는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 전혀 없다. 신화란 상상력으로 그 명백이 이어지는 것이다. 신화에서는 단지 거대한 바위를 들어올리기 위하여 수백 번 되풀이하여 언덕으로 돌을 굴려 올리는 긴장된 육체의 노력이 보일 뿐이다. 경련이 인 얼굴, 바위에 비벼대는 뺨, 진흙으로 뒤덮인 바위 덩어리를 떠받치는 어깨, 그 바위 덩어리를 고정시키려고 버틴 다리, 다시 시작하려고 쭉뻗은 팔, 아주 인간적이고 믿음직스런 흙투성이의 양손이 보인다. 하늘 없는 공간과 깊이 없는 시간으로 측량되는 이 기나긴 노력 끝에 목적은 달성된다. 이때 시지프는 순식간에 이 돌이 아래 들판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꼭대기로 다시 끌어올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벌판으로 다시 내려간다. 시지프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이 돌아오는 동안이고 멈춰 있는 동안이다. 바로 바위 곁에 있는 기진맥진한 얼굴은 이미 바위 그 자체인 것이다! 나는 이 사람이 무거운, 그러나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끝도 알지 못하는 고뇌를 향하여 다시 내려가는 것을 본다. 그의 고통처럼 어김없이 되돌아오는 휴식시간, 이 시간은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신들의 소굴로 차츰차츰 빠져 들어가는 순간마다, 그는 자기의 운명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바위보다 더 강하다. 만일 이 신화가 비극적이라면, 그것은 영웅이 의식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성공하리라는 희망에 부풀었다면, 그는 과연 고통스러웠겠는가? 오늘날의 노동자는 날마다 같은 일에 종사하면서 삶을 영위하고, 그 운명은 부조리하다. 그러나 그 운명은 어쩌다 의식을 갖게 되는 순간에만 비극적일 뿐이다. 신들의 프롤레타리아인 무력하고 반항적인 시지프는 그의 비참한 조건의 전모를 알고 있다. 그가 산에서 내려오는 동안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조건에 대해서다. 그의 고뇌를 이루게 했을 명찰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성취시킨다. 멸시로 극복되지 않는 운명은 없다. 만일 이처럼 시지프의 하산이 어떤 날에는 고통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또한 기쁨 속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 말은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나는 또한 바위를 향해 되돌아오는 시지프를 상상해본다. 그런데 고통은 시초에 있었다. 대지의 영상들이 기억에 너무나 생생하고 행복의 부름이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질 때, 슬픔이 인간의 마음속에 싹트게 된다. 이것은 바위의 승리이며 바위 그 자체이기도 하다. 엄청난 비탄은 감당하기에 너무 힘겹다. 이것은 우리들의 겟세마네(예루살렘 동쪽 근교, 감람산 서쪽 기슭의 동산, 예수가 유다의 배반으로 포박당한 곳으로, 처형당하기 전날 최후로 기도를 드린 곳이다)의 밤이다. 그러나 진리는 압도적으로 인식됨으로써 소멸된다. 이와 같이 오이디푸스도 처음에는 그것을 모르면서 운명에 복종한다. 그가 알게 되는 순간부터 그의 비극은 시작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눈멀고 절망에 빠진 그는 자기를 세상에 연결시키는 유일한 끈은 한 젊은 처녀의 싱싱한 팔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 터무니없는 말이 울려 온다. " 그처럼 많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내 고령과 내 영혼의 위대성은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은 좋다고 판단하게 한다" 이렇게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키릴로프처럼 부조리한 승리의 비결을 제시한다. 고대의 예지가 현대의 영웅주의와 합치된다. 행복의 어떤 개요를 쓰려는 시도 없이는 부조리가 발견되지 않는다. " 뭐라고! 그렇게 좁은 길을 통해서.....?"그러나 거기에는 단 하나의 세계만 있다. 행복과 부조리는 같은 대지의 두 아들이다. 이들을 떼어놓을 수가 없다. 행복은 부조리한 발견에서 필연적으로 태어난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부조리한 감정은 행복에서 생겨나기도 한다. " 모든 것은 좋다고 나는 판단한다"라고 오이디푸스는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은 신성하다. 이 말은 인간의 야성적이고 한정된 세계 안에서 울려나온다. 이 말은, 모든 것은 탕진되지도 않았고 탕진된 일도 없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말은 불만과 무용한 고통에 대한 감식안을 가지고 이 세계로 들어온 신을 추방한다. 이 말은 인간들 사이에서 해결되어야만 하는 인간의 문제를 운명으로부터 이끌어낸다.
1. 들어가며 - 청계천이 어딘데? 뭘 어쩐다는데?I. 청계천 소개II. 청계천의 역사III. 문제의 제기2. 환경적 측면에서 본 청계천 복원I. 청계천을 복개한 이유는 무엇일까?II. 청계천이 복개되어 환경에 미친 영향은?III. 청계천이 복원된다면 어떤 환경적 이득을 줄까?IV. 청계천이 복원될 때 발생하는 환경적인 문제도 있을까?V. 소결3. 청계천 복원의 비용.수익적 측면 분석 - 얼마니, 얼마면 되니?I. 청계천 복원비용II. 청계천 복원시 경제적 이익4. 청계천 복원 계획 - 누구를 위하여 추진되는 것인가?I. 청계천 복원 사업 계획에 대한 전반적 고찰II. 예상되는 문제들III. 서울시가 제시하는 해결책에 대한 고찰IV. 대책에 대한 평가V. 결론1. 들어가며 - 청계천이 어딘데? 뭘 어쩐다는데?I. 청계천 소개청계천은 중랑천의 제1지류인 지방1급 하천이다. 서울의 서북쪽에 위치한 인왕산과 북악의 남쪽 기슭과 남산의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도성 안 중앙에서 만나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유로 연장 10.92㎞의 도시하천으로 무교동?광교?장교?수표교 등을 지나 방산동?청평화시장 등을 관류하여 흘러간다. 이 물줄기의 북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성북천과 정릉천이 차례로 합류하고, 마장동 견인 이동차보관소를 지나 중랑천 본류의 서쪽으로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청계천 유역내의 빗물과 생활하수를 전량 하수관거를 통해 집수하여 배수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청계천 유역은 총 유역면적 50.96㎢로 서울시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394년 서울이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정해진 이후 지금까지 600여년 이상 우리 나라의 정치?사회?문화?경제의 중심권을 담당해 온 유서 깊은 지역이다. 청계천과 그 지류의 유역을 포함하고 있는 오늘날의 행정구역은 한강 이북의 성북구?강북구?동대문구?성동구?중구?종로구의 총 6개 구에 달한다. 오늘날 청계천의 지천이 대부분 복개되어 도로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약 14개의 지천이 청계천으로 합류되어 흘러내리고건설한 아현 고가도로의 경험을 살려 청계천 고가도로 공사를 동시에 추진하였다. 1967년 8월 15일에 공사에 착수 1971년 8월 15일에 완성하였다.III. 문제의 제기그러나 복개공사로 인한 환경오염과 복잡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풍겨 도시미관상 이제는 되려 도시 미관상 좋지 못하다는 평을 들으며 복원 공사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군다나 민선 3기로 서울 시장에 당선된 이명박 시장이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며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던 청계천 복원을 실행에 옮기려 함에 따라 찬반 양론이 분분한 상황이다. 이제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도시미관상으로나 청계천이 다시 흐르는 것이 서울시민들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왔다. 지금부터 청계천 복원의 허와 실을 알아보도록 한다.2. 환경적 측면에서 본 청계천 복원Ⅰ. 청계천을 복개한 이유는 무엇일까?청계천은 6?25전쟁 후 판잣집이 들어서면서 악취가 진동했다. 1955년 서울시가 전쟁복구사업으로 시작한 광교 상류 135.8m의 청계천 암거공사는 청계천이 시멘트 도로로 변하는 시발점이었다. 1958년에는 광교에서 공사를 시작해 79년 마장교까지 시멘트로 덮고 그 위에 고가도로를 설치했다. 이것은 오염되어 악취를 풍기는 폐수가 흘러 위생상의 해는 물론이고 도시미관상 수도의 면모를 크게 손상시키던 청계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해진 공사였다. 오염된 청계천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으니까 눈에 보이지 않게 덮어 버리자는 것이었다.Ⅱ. 청계천이 복개되어 환경에 미친 영향은?1. 도시의 대표적 오픈 스페이스인 하천의 다양한 기능을 상실하는 결과를 낳았다.하천은 물을 방류하는 본연의 기능에서부터 오염 자정 기능, 다양한 생물종의 서식지 제공, 도시에 자연 경관 제공, 각종 도시위락의 장소 제공, 미기후(작은 지역의 기후) 조성, 지역 이미지 형성 등의 부차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하천은 그 생태적 환경 상태와 수변지역의 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도북한산, 관악산, 고황산, 우장산 등의 환상녹지축이 이를 둘러싸 전체적으로 밭전자 모양의 녹지축을 형성하려는 계획을 마련했다. 청계천 복원은 이런 서울의 녹지축을 잇는 작업의 첫단추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녹지축이란 산, 숲, 물을 이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걸어다니고, 동물과 곤충들도 그 길을 따라 동서남북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생태네트워크이다.3. 인간과 자연이 서로 공존함으로써 서울을 환경 친화적인 도시로 발전시킬 수 있고 복원된 청계천은 효과적인 생태체험교육장이 될 것이다. 체험적인 교육을 통해 친환경적인 생활 태도를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물을 맑게 하고 접근성만 높여주면, 청계천도 공원이나 녹지가 모자라는 도시사람들의 휴식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4. 노후화된 고가도로와 시멘트 구조물이 사라지고 자연하천이 경관요소로 자리하게 됨으로써 도시의 미관을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도시의 열섬화를 억제해 줄 것이다.5. 충분한 물의 공급이 이루어진다면 자연의 물 순환 과정이 이루어질 것이다.예) 복원사업이 성공한 예양재천의 경우 물이 흐르던 곳과 양쪽 둑에 덮혀 있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자연하천으로 복원된 것은 1995년 7월이었다. 악취나는 하수도였던 양재천의 물은 자갈과 물풀을 이용한 수질정화시설로 하루 3만2천여t을 걸러 5급수에서 2급수로 좋아졌고, 메기, 모래무지, 피라미 등 물고기는 18가지로 늘어났다.제주도 산지천은 66년 콘크리트를 씌웠던 474m의 복개 구간 위에 있던 낡은 주상복합건물과 구조물을 뜯어냈다. 복개된 지 36년 만에 전체 길이의 3분의 2정도가 제 모습을 찾아 이곳에는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하천이 복원되어 관광명소로 부상한 예이다.대구 신천의 경우는 60년대 산업화와 인구 증가에 따른 오염으로 악취가 나기 시작했고 80년대부터 건천으로 변했다. 1987년에 계획을 수립하여 10년간 노력 끝에 97년 2월 신설된 신천 하수처리장의 방류수를 상류로 퍼올려 신천을 살아있는 하천으로 만들었다. 맑은 신천을 가꾸기 위한 대구시민의가까우며 10조원 이상 재개발 비용으로 예상이 되고 있다. 서울시 1년 예산이 10조원 가량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재정적 부담이 되는 것이 확실하다. 그 만큼 경제적 비용은 청계천 복원에서 우리가 정확하게 파악해야 문제이다.Ⅰ. 청계천 복원비용1. 청계천 복개 상태(현 상황)에서 드는 비용.청계천 복원 비용을 따지려면 우선 현 상황에서의 고가도로 보수비나 공해에 따른 경제적 비용, 그리고 청계천 수질 악화에 따른 위험 비용 등을 따져야 하겠다. 우선 고가도로에 대한 보수비용은 94~99년 사이에 468억원이 들어갔고, 올해 서울시가 청계고가도로보수공사에 1천원억을 사용할 예정이다. 시정개발연구원의 황기연 선임연구원은 “해마다 일상적인 보수 공사로 수억~수십억원이 들어간다”며 “복개?고가 도로를 걷어내는 것만이 안전을 보장하고 비용을 줄이는 근본적인 방안”이라고 밝혔다. 한편, 뒤의 두 항목은 정확한 시장가치로 측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공해나 수질오염에 대한 경제적 가치는 결과적으로 보면, 보수비용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2. 청계천 순수 복원 비용복원을 하기 위해서는 복개된 콘크리트 도로를 걷어내고, 자연하천을 복원한 후에 운하를 건설하고 교량을 완성해야 한다. 그 후에 청계천에 물을 대고 조경까지가 순수 복원 비용에 포함된다. 복원 비용은 우선 ‘청계천살리기연구회’에 따르면 철거비용이 3500억원, 자연하천 복원 1천억원, 운하 건설 3천억원, 교량 900억원, 물처리 900억원이고 조경 100억원으로 9400억원이다. 이중에 논란이 되고 있는 운하건설비를 빼면 총 6400억원이 된다. 한편 서울시가 책정한 비용은 이보다 훨씬 적은 3600억원이다. 세부 항목 비용은 철거 2060억원, 자연하천 복원 720억원, 교량 186억원, 물처리 145억원, 조경 121억원, 도로정비 198억원, 설계?감리 170억원 등이다.한편 서울시가 책정한 비용은 이보다 훨씬 적은 3600억원이다. 세부 항목 비용은 철거 2060억원, 자연하천 복원 720억원, 교량 1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전문가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환경과 경제 문제를 조화시켜 최대한 청계천 복원의 생태적 의의를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다.Ⅱ. 청계천 복원시 경제적 이익1. 환경적 측면연세대 유정식 교수는 청계천 복원의 경제적 가치를 환경과 수질개선 효과로 각각 150~1500억원, 6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서울 여의도 공원 392억원, 대구 앞산 63~445억원, 수도권 그린벨트의 720~3000억원 등으로 분석한 기존의 조사를 예를 근거로 한 것이다. 또한 한강 수질개선을 위한 시민들의 지불의사액이 1인당 6000원이었던 조사를 토대로 청계천 복원에 따른 수질개선효과를 약 600억원으로 추산한 것이다.2. 산업적 측면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계천 복원과 재개발 등 건설사업에 따른 파급 효과는 생산 유발 9조9925억원, 부가가치 유발 4조765억원, 조세913억122만원(전국) 등 모두 14조1603억원이다. 취업 유발 효과는 15만1168명이라고 발표하고 있다.또한 청계천 복원과 재개발이 이루어진 뒤 산업활동에 따른 기대효과도 생산 유발 약 1조5521억원, 부가가치 유발 약 6268억원, 조세 약 250억원(전국) 등 약 2조2084억원이며, 취업 유발 효과는 2만9481명으로 추정되었다.따라서 청계천 복원과 재개발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는 생산 11조5446억원, 부가가치 4조7033억원이 된다. 그러므로 앞서 본 청계천 복원에 따른 비용을 초과하여 약 4천억원의 개발이익이 생기는 것이다.Ⅲ. 소결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청계천 복원에 대한 경제적 측면은 청계천 복원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이다. 복원 비용과 재개발 비용이 총 16조원가량 드는 대규모 사업이다. 또한 청계천이 재개발 되었을 때의 서울시에 있어서 이 지역이 차지할 경제적인 비중은 엄청 높아질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뒤에 이어질 발표가 지적하는 것처럼 너무 성급한 추진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깊은 논의와 민간단체와 시 조직 간의 원활한 소통을 통고찰
개화이후 한국은 세계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치이고 일제 치하를 거쳐 미군정 시대를 통하여 지금까지 미국이라는 나라에 구속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사회에서 국제법이라 함은 이러한 세계 열강들에 의한 힘의 논리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국제법은 그리 관심을 끌지도 못하고, 국제법에 대한 인식조차 미미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곧 있을 월드컵과 또 계속 진행되어 가는 세계화에 발 맞추어 한국사회에서 국제법에 대한 인식이 왜 미미한지를, 그리고 국제법에 대한 인식 제고 방안을 생각해 보아야하겠다.우선 국제법이 우리 사회에서 그리 큰 관심거리가 못 되는 것은 외국과의 마찰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문제되는 범인 인도에 관한 것들과 세계적인 이슈를 끌 만한 사건도 없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잘 몰라서 그럴수도 있으나, 국제법 희망자 숙제에서 같은 하라국 사건 등이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없다. 다만 우리는 독도 문제나 남북분단 문제 정도가 국제법적으로 의미있는 일들이 될 것이다. 물론 다국간 조약의 건수는 매우 많지만 그런 것들은 내가 생각하기론 그리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다만 우리는 계속하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물결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국제법은 국가간, 개인과 국가간 등 여러한 형태로 관계지어지는 세계화 시대에서 구체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일본과의 독도 문제도 결국엔 국제법에 의해 해결이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단순히 국민 감정을 얘기해서는 안 된다. 국제법에 대한 치열한 인식과 논리적인 이론으로 독도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국제법이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통일 문제 역시 헌법에서는 북한을 대한민국에 포함시키고 있으나, 북한도 엄연히 UN가입국이고 이 역시 국제법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통일문제도 역시 국제법의 역할이 중요하다.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우선 전문가들의 활발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국제법이란 말 자체가 생소할 수 있다. 또한 국제법은 국내법과는 달리 아주 모호한 부분이 많고, 아직 논의해야 할 점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국제법에 대해 충분히 연구를 하고 잘못된 인식은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헌법학에 있어서 이론과 실천1. 序論헌법이란 무엇인가? 사실,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또한, 나의 헌법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대한민국의 법 중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법이며 적어도 내가 보기엔 너무도 '당연한 내용'의 조문들로만 구성된 법이라는 추상적인 것이었다. 헌법 수업을 들으면서, 또 이번 과제를 위해 「헌법 연구 I」을 읽으면서도 헌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더 명확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의문 투성이가 되어버렸다. 헌법학에서 사용하는 개념들도 처음이라 그런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이처럼 헌법과 헌법학에 대한 기초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지만 지금부터 헌법과 헌법학에 대한 의문들을 차근차근 풀어내어 가 보려 한다.2. 憲法이란 무엇인가?헌법이란 무정형의 공동체에 질서와 틀을 부여하여 그 공동체를 정형화하는 규범을 말한다. 그렇다면 헌법이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공동체에 굳이 인위적 '틀'을 가하는 것은 힘든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질서와 틀을 정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기 때문이다.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무질서한 상태에서는 강자에 의해서 약자가 지배당하기 때문에 강자의 행복과 약자의 행복이 두루 실현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강자의 억압을 없애고 모든이들의 행복을 공평하게 달성하기 위해 '국가'를 떠올리게 되고 거기에 조직 원리와 권력을 부여한다. 이것이 헌법인 것이다. 또, 헌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무엇'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인 것이다.3. 憲法學에 있어서 理論과 實踐헌법의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의 행복'에 있다면, 헌법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헌법학의 '이론'보다는 그 이론을 통해 실제로 행복한 인간 사회를 만드는 '실천'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발생했다. 헌법학도 분명히 하나의 학문임에 틀림이 없다면 헌법학자의 역할은 실천력 있는 '이론'을 만드는 것이지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의 실천은 법학자의 몫이 아닌 법실무가 내지는 정치가의 몫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실천력 있는 '이론'을 정립하는 것이므로 무게 중심은 다시 '이론'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이런 의문은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식의 답을 내기에 매우 모호한 순환적 의문으로 다가왔다.여기서 '통합 과학으로서의 헌법학'이라는 개념과 '헌법 문제의 헌법정책론적 인식'은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는데 있어 상당히 도움이 된다.먼저, 헌법학은 통합과학이기 때문에 여러 학문 분야 사이, 법학자와 법실무가 사이에 막힘없는 의사소통은 필수적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이론에 기반한 헌법이라 할지라도 그 헌법이 현실에서 규범력을 상실한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하여 이론의 문제보다 실천의 문제에 더 비중을 둘 수만도 없다. 기본권 보장의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을 보장 받기 위한 길은 모두가 기본권 보장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주장하는 것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는가 또한 정확하게 정립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론이 실천에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이다. 이런 관점에서 헌법학에 있어서 이론과 실천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양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영역이다. 무엇이 무엇에 앞서고 더 궁극적이고 하는 구별은 무의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