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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언어 특징] 문학언어의 특징
    문학 언어의 특징은 무엇인가1. 언어의 창조물예술 갈래에서 음악의 재료가 소리이며, 회화는 선과 색채, 조각은 나무나 돌, 무용은 동작인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은 언어에 의해서 비로소 그 형체를 드러낸다. 즉 문학은 언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언어가 있어야만 문학이 이루어질 수 있기에 문학의 출발점을 언어라 할 수 있다. 문학이 현실을 반영하고 표현하는 인간정신의 한 양상이라고 정의할 때에도 언어를 매체로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또한 작가는 언어를 가지고 독자와 의사소통을 하고 독자는 작품을 자신의 언어로 읽는다. 작가는 남들이 사용한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자신이 새로 개발한 언어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기도 하며 이 언어가 어떤가 따지는 것 또한 언어를 가지고 하는 작업이다. 이처럼 문학과 언어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언어는 문학의 본질 조건이다.2. 언어의 본질과 문학 언어문학의 기본 조건인 언어를 언어학자들은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음성적 기호의 체계라 하며 언어는 자의성을 띠기 때문에 사물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의사소통의 도구인 언어를 가지고 만든 문학은 의사소통의 또 다른 도구인가 하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만의 언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언어가 있고 그 이후 문학이 존재한다. 기호 체계인 언어를 조직하여 만든 문학은 기호의 기호라는 특성을 지녀 다른 예술과 달리 추상적인 속성을 지닌다. 문학에서 활용되는 언어는 상징적 의미를 특성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이해를 할 수 있다. 문학적으로 활용된 언어는 일상언어란 자원을 조직하고 긴장시키며 때로는 파괴하기까지 한다. 하나하나의 언어는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일상적인 언어가 문학작품이라는 구조 속에 들어왔을 때 본래의 형식적 의미 이외에 작가가 의도한 문맥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문학적 언어는 결코 일상의 언어와 다른 형태는 아니다. 다만 문학예술의 창조를 위해 쓰여진 언어로서 문학 작품 속에서 색채와 차가운 색채도 있다. 문학작품에서 작자는 어떤 감정에 적합한 언어 상황을 구성하기 위해, 흔히 작품 전체 혹은 문단에서 어떤 정감적 색채를 가진 단어를 선택해서 쓴다. 예를 들면 노신은 《고향》에서 길가의 풍경을 묘사할 때, 한겨울?누르스름함?소슬함?어두움?처량함 등의 정감적 색채가 어두운 단어를 써서 억눌린 듯한 느낌을 주는 가라앉은 정조의 언어 상황을 만들어 독자가 침울한 느낌을 받도록 했다. 문학언어의 정감성은 표현하는 단어의 선택에서 뿐만 아니라 언어의미군의 조합방식에서도 나타난다. 때로는 급박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몇 문장 혹은 한 문장의 표현방식을 쓰기도 하고, 감정에 사로잡힌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빙빙 돌거나 왔다갔다 하는 표현방식을 쓰기도 한다. 이백의 시는 호방하고 표일하며 이상을 추구하고 세력가와 지체 높은 사람을 멸시하며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미워하는 감정이 뜨거운데, 길고 짧은 구절과 기복이 많은 시구 형식을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두보는 항상 생활 장면의 “실제 기록”에서 통치 계층의 부패와 백성들의 괴로움을 반영하여 감정이 침울하고 풀이 죽어 있는데 시구 형식이 엄격하며 격률이 규범화된 율시를 많이 사용하여 표현했다.문학의 언어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살아 있는 언어라는 데 그 진가가 드러난다.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의미를 공유하고, 의견을 조정하며, 이념을 실천한다. 의미의 공유는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에서부터 어떤 사실에 대해 설명하고 설명을 알아듣는 것 등에 이르기까지 언어의 기본적인 기능이다. 이는 언어의 지시 기능처럼 진리치가 확실하다는 특징이 있다. 의견을 조정하는 것은 물건값을 정하는 데서부터 정치적 협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념의 실천은 언어를 통해 좌우명을 제시한다거나 국가의 정체를 선언하는 등이 그 예이다. 이처럼 언어는 인간 삶의 본질적 조건을 형성한다.언어의 이러한 기능을 문학으로 전이시켜 생각해 보면 문학은 일종의 언어적 제안이다. 나는 이런 주장을 가지고 있으니 따르라고 명령한다든지면」에서는 민족의 해방과 독립이 성취되는 날이 온다면 자신의 등 껍질이라도 벗겨 북을 만들에 등에 지고 민족의 해방에 환호하는 그 대열 앞에 서겠다는 태도를 보여 준다. 조지훈의 수필 「지조론」에서는 지조 없는 정치인들을 통매함으로써 스스로 지조를 지켜나가는 선비로서의 이념을 선언하고 있다.어느 작품에서 언어의 이러한 기능이 단 하나만 작용하는 경우는 상정할 수 없다. 어떤 기능이 두드러지는가 하는 점을 분별해 볼 수 있을 것이지만 이들은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대체적인 방향만 드러나는 것이 실상이다. 한 작품에 구현되는 언어의 기능은 다면적으로 읽히게 마련이다. 다만 어느 기능이 지배적인가 하는 점은 늘 주의해서 살펴야 한다. 그것이 작품의 양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3. 문학 언어의 분화 양상언어를 운용하는 방식에 문학적인 것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출발할 필요가 있다. 문학의 범위를 너무 좁게 잡아 문학을 신비화하거나 어느 계층에 한정되는 정신적 산물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머릿속에 형성되어 있는 문학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의 존재까지 무시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서정주의 「석남꽃」이라는 수필이 있다. 이 작품은 '수삽석남(首揷石南)'이라는 한문으로 된 이야기를 번역한 것이다. 그 이야기에 감동한 내용을 글로 적고, 그 감동을 바탕으로 시를 써 제시하고 있다. 한 편의 글에 희곡을 제외한 나머지 장르가 모두 포괄되어 있다.먼저 「석남꽃」의 전문을 읽어 보도록 하자.머리에 석남(石南)꽃을 꽂고네가 죽으면머리에 석남꽃을 꽂고나도 죽어서나 죽는 바람에네가 놀래 깨어나면너 깨는 서슬에나도 깨어나서한 서룬 해만 더 살아 볼꺼나죽어서도 살아서머리에 석남꽃을 꽂고서룬 해만 더 한번 살아 볼거나내 글 써 논 공책을 뒤적거려 보니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라 제목한 이 시(詩)는 1969년 7월 15일 새벽 한 시에 쓴 것으로 되어 있으니, 이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관악산 밑으로 이사오기 바로 한 해 전 일인데, 그때의 공덕동 집에도 나무와 풀섶이 南)꽃을 꽂고 있었는데, 그걸 나누어서 그 여자한테 주며, "내 아버지 어머니가 너하고 같이 살아도 좋다고 해서 왔다"고 했다. 그래 둘이는 항의 집까지 가서, 항은 잠긴 대문을 보고 혼자 먼저 담장을 넘어 들어갔는데 밤이 새어 아침이 되어도 웬일인지 영 다시 나오질 않았다. 아침에 항의 집 하인이 밖에 나왔다가 홀로 서 있는 여자를 보고, "왜 오셨소?" 하고 물어, 여자가 항과 같이 왔던 이야기를 하니, 하인은, "그 분 세상 떠난 건 벌써 여드레나 되었는데요. 오늘이 묻을 날입니다. 같이 오시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했다.여자는 항이 나누어 주어 자기의 머리에도 꽂고 있었던 석남꽃 가지를 가리키며, "그 분도 이걸 머리에 틀림없이 꽂고 있을 것이다"고 했다.그래, 그런가 안 그런가 어디 보자고 항의 집 식구들이 두루 알고 따지게 되어, 죽은 항이 담긴 널을 열고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항의 시체의 머리에는 석남꽃 가지가 꽂혀 있었고, 옷도 금시 밤 풀섶을 거쳐온 듯 촉촉히 젖은 그대로였고, 벗겼던 신발도 다시 차려 신고 있었다.여자는 항이 죽었던 걸 알고 울다가 너무 기가 막혀 잠시 숨이 넘어가게 되었다.그랬더니 그 기막혀 숨 넘어가려는 바람에 항은 깜작 놀라 되살아낫다. 그래 또 서른 핸가를 같이 늙다가 갔다.이것이 『대동운옥』에 담긴 그 이야기의 전부를 내가 재주를 몽땅 다해 번역해 옮기는 것이니, 이걸 저 아돌프 히틀러의 비단 팬츠보담야 한결 더 좋은 걸로 간주해서 입건 안 입건 그건 이걸 읽는 쪽의 자유겠지만, 하여간 별 가진 것이 변변치 못한 내게는 이걸 읽은 뒤부턴 이게 몸에 찰싹 달라 붙은 대견한 것이 되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그래 나는 이것을 읽은 뒤 10여 년 동안 이야기 속의 그 석남꽃을 찾아 헤매다가 겨우 올봄에야 경상도 영주(榮州)에서도 여러 날 걸어 들어가야 하는 태백산맥의 어떤 골짜기에서 나온 쬐그만 묘목 한 그루를 내 뜰에 옮기어 심고, 이것이 자라 내 키만큼 될 날을 기다리며 신선반(神仙班)의 영생(永生 수필은 쓴 사람 자신을 표시하는 문장이지만 자기 폭로가 아닌 엄격하게 정제된 자기 표출의 형식을 견지해야 한다.3. 「석남꽃」은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데에 어떤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가?「석남꽃」에는 시에서처럼 리듬을 형성한다든가, 행과 연을 구분해야 하는 등의 특별한 방법이 없다. 소설이나 희곡은 주제의 부각, 구성의 완결성 등을 위하여 언어적 조탁을 기하거나 문맥을 철저하게 계획하게 된다. 그러나 수필은 작자의 사유에 떠오르는 그대로의 대상을 표현하면 된다. 소설이나 희곡은 허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데 반하여 수필은 사실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글쓴이의 체취가 우러나는 솔직함으로 서술해 나가면 된다. 수필이야말로 일상 언어와 가장 닮은 언어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한다는 점이 문학으로서 수필의 언어적 특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2) 시의 언어소설이나 희곡의 경우도 언어를 표현수단으로 하는 것이지만, 시의 경우처럼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소설과 희곡은 의미의 전달, 곧 사상성의 표현에 상당한 포인트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는 전적으로 언어의 묘미를 살려 독자를 감동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그 특질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석남꽃」의 첫 연은,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네가 죽으면/머리에 석남꽃을 꽂고/나도 죽어서"라고 되어 있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데 네가 죽을 때 석남꽃을 꽂고 죽은 것인지, 네가 죽으면 내가 머리에 석남꽃을 꽂는다는 것인지 선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를 삶과 죽음이 하나의 고리로 순환적이어서 앞뒤를 가릴 수 없다든지, 반복을 통해 리듬을 만들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면 그 의미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는 시적 언어의 함축성이라고 설명되는 부분이다. 문학에서 언어가 예술형상을 빚어낼 때는 과학저작이 사물을 설명할 때처럼 분명하고 명확하며 전면적이지는 않지만 사물간의 복잡한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복잡미묘한 사상, 감정의 변화과다.
    인문/어학| 2005.05.04| 7페이지| 1,000원| 조회(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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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의 역사] 일제 식민지하의 한국 교육과 교육의 기능 평가B괜찮아요
    일제 식민지하의 한국 교육과 교육의 기능1. 일제 교육정책의 폭력성일제의 대(對) 한반도 식민 지배는 무력에 의한 강제 지배를 넘어 궁극적으로 민족 말살책을 기도하였고 한국 민족 문화를 왜곡 폄하하고 민족 언어의 사용을 금하여 민족 정체성의 모든 싹을 배제하기 위한 온갖 술책을 동원하였다.일제는 1906년 2월 통감부 설치와 더불어 이미 한민족에 대한 교육지배에 돌입하였다. 갑오개혁 정부의 법 제도를 의도적으로 단절하면서 모든 교육관계 법령을 다시 공포하여 일본인의 그것과 차별화한 후, 친일 반민족교육의 제도적 터전을 공고하게 다져 놓은 상태에서 총독부가 이를 계승한 것이다. 그들은 1910년 8월 한일합병조약을 강제하여 총독부를 설치하고 일본군 대장급의 총독을 최고 권좌로 하는 폭압적인 중앙집권적 군정을 통해 본격적으로 한반도 경영에 돌입하였다. 초대 총독인 데라우찌는 도 장관회의 석상에서 식민지 교육 보급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가운데 시세와 민도에 맞는 교육을 실시함으로 교육이 유용한 지식과 온건한 덕성을 함양하여 제국신민이 될 자질과 품성을 갖추게 하는 데 그 목표가 있다는 것을 천명하였다.이같은 방침을 담은 조선교육령이 1911년 8월에 일제의 칙령으로 제정 공포되었다. 이후 일제는 향후 35년간 조선교육령을 총 3번에 걸쳐 개정하였다.1차 조선교육령의 요지는 제1조에서 조선에 있는 조선인의 교육에 적용된다고 하여 법의 대상범위를 밝히며 교육은 교육칙어(敎育勅語)의 취지에 따라 충성스런 일본 제국의 국민됨을 목표로 하였다. 교육칙어란 일본 국가주의 교육의 대강을 천명한 명치유신 시절의 산물이며, 1968년 12월에 공포된 우리 국민 교육헌장의 성격과 유사한 것이다.이 법령은 교육의 크게 보통교육, 실업교육, 전문교육의 3영역으로 구분하였다. 보통교육은 보통의 지식, 기능을 베풀고, 특히 국민된 품성을 함양하며 국어(일본어)를 보급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범주에 포함되는 학교는 4년제 보통학교, 4년제 고등보통학교, 3년제 여자고등보통학교가 된다. 실업교육기라 5, 4년으로 단축할 수 있어 법령상 기준에 불과하였다. 조선어를 필수로 격상하고 실업과를 수의과로 격하하는 등의 조치는 한국인 감정을 고려한 것이며, 6년제 보통학교에 2년제 고등과를 둘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일본의 고등소학교 체제를 따랐다. 고등보통학교는 종래의 4년제에서 5년제로 연장하고 일본의 중학교에 준하여 외국어를 첨가하는 등 교과 편제 일부를 조정하였으며, 조선어를 추가 배치하였다. 여자고등보통학교 역시 1년을 연장하여 4년제로 확대하였으며, 조선어를 필수로 하는 외에 일본의 고등여학교에 준하는 과목으로 조정하였다. 실업학교 역시 수업 연한을 3, 5년으로 확대하였다. 독립교육기관으로 분리된 사범학교는 남자 사범학교 6년, 여자 사범학교 5년으로 하되, 특과 2년의 단기 과정을 설치를 허용하였다. 또한 대학은 예과 2년에 본과 3-4년의 수업 연한을 규정하고 한국인과 일본인의 공학을 허용하였다.2차 조선교육령은 학교 명칭은 그대로 둔 채, 수업 연한을 일본의 그것에 준하여 확대하고 교과 편제 역시 민족의 정서를 고려하여 다소 충실하게 조정하였으나 대부분 규정에 그쳤다. 그러나 이 법령에 근거하여 관공립 사범학교가 대부분 특과 단기 과정으로 지역의 거점도시에 설치됨으로써 교사 양성 체제가 전국적 규모로 갖추어지게 되었다. 1924년에는 경성제국대학의 예과가 1926년에는 본과가 개교되었으나 일본인 위주로 한국인의 수학을 제한하고, 한국 문화를 왜곡하는 등 통치이념 연구 기능을 수행하는 제국주의 학술 기관이라는 오명과 역기능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2차 교육령에 의해 최대 17년까지 수업연한을 허용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완결된 근대 학제의 외양을 갖추게 되었다.일제는 보통학교 증설 정책을 추진하여 1919년에서 1922년까지 보통학교의 3개면 1교라는 목표치를 달성한 후, 1929년부터 1936년까지 1면 1교로 확충하는 1차 계획을 수립하여 이를 밀고 나갔다. 보통학교 증설 계획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친일적 관념)을 내걸고, 「황국신민의 서사(誓詞」를 암송시키며, 일어 사용을 강제하고, 신사참배, 궁성요배(宮城遙拜), 창씨(創氏)개명 등을 강요함으로써 일본인화의 마지막 수순을 밟아나갔다. 눈앞에는 바야흐로 학도병과 정신대, 근로보국대 등의 함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태평양전쟁이 눈앞에 닥친 상항에서 일제는 1941년에 심상소학교 명칭을 다시 초등학교로 바꾸는 조치를 취하였다.태평양전쟁에 빠져든 일제는 이념 통제와 인력 동원의 수단으로 교육을 더욱 옥죄어 들어왔다. 그 결과가 1943년 10월에 공포된 「교육에 관한 전시 비상조치령」으로서, 학제의 근간을 재편하였다는 점에서 4차 조선교육령에 해당한다. 그 요지는 전시 체제에 각급 학교를 짜맞춘 것으로 다음과 같다.1 먼저 국민학교의 의무교육제 시행을 서두를 것, 2 중학교는 일본에 준할 것, 3 대학 예과의 문과 정원을 축소하고 이공과 정원을 늘릴 것, 4 이공계 전문학교의 정원을 늘릴 것, 5 문과계 사립전문학교는 이과계로 바꾸고 이공계와 통일할 것, 6 문과계의 여자전문학교는 여자실무자, 여자지방보도원 양성소로 바꿀 것 등을 그 내용으로 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전시 인력 동원 체제에 따른 것이며, 교학 연수소를 만들어 교사 재교육을 강화하고, 국가 총동원법을 공포하여 교육기관에까지 그 적용 범위를 확대 시행하였다.일제의 교육지배관행은 군국주의의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자체였으며, 아직도 관료 사회는 그 흔적을 완전히 씻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일본 교육 정신의 표상이 되는 관학우위책을 조장함으로써 교육의 다양성을 억제하고 획일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구한말 이후 훌륭한 전통은 철저히 유린 당한 채, 제1고, 제2고 하는 식의 제국주의적 관학이 절대 우위를 차지했던 것은 우리의 왜곡된 근대사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우리 근대교육의 기본 패턴이 식민주의 교육에 유래한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해방 후에는 이 패턴에 미국 일방의 교육이론의 하향식 적용에 익숙함으로써 교육의 자생성을 고사시키고 교육에서 자기 철학의 소생을정리하기는 어렵다. 1905년에 이미 미국과 일본은 소위 「태프트-가츠라 밀약」이라는 외교 밀약을 통해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용인하는 대신, 일본의 한국 경영을 묵인하는 상호 묵계가 맺어진 것이다. 빈사 상태에 빠진 조국의 현실을 민중의 눈과 귀를 개인의 삶의 문제로 축소 지향하게 만든 것이 제국주의 종교의 우민화 방책이 아닌가를 재고할 필요성이 상존한 것이다. 이 무렵 일제는 선교사들에게 각종 세제상의 혜택, 치외법권적 지위 안정, 유리한 통상 조건 등의 특혜를 부여해 환심을 사는데 바빴으며, 일부 지도급 선교사들이 일제의 식민 정책을 지지하는 친일적 태도를 보이기까지 하였다.그러나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 지방의 미국 북장로교측 선교사들, 그 중에서도 평북 선천의 신성학교 교장이던 맥큔(G. S. McCune) 같은 인사는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여 다윗의 고사를 인용하여 위로하였으며 '십자가 군병' 등 전투적인 노래를 불러 용기를 북돋았다. 미국적인 자유와 자주 정신으로 무장된 선교사들의 정신적 뿌리가 프로테스탄트의 인권사상과 인간 해방에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큰 힘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 같은 사태를 눈치 챈 일제는 이 지역 반일적 기운과 관련 인사를 뿌리 뽑기 위한 공작에 들어갔다. 1910년 11월 거행될 압록강 철교 낙성식에 참가하기 위해 신의주를 방문하는 데라우찌를 암살하려 한다는 날조된 사건을 빌미로 비밀결사 신민회를 척결하고 서북 지방 기독교 지도자를 투옥하며 이들을 비호하는 선교사들을 축출하여 배일적 사학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신성학교 맥큔과 평양 숭실학교 모펴 교장 등을 주모자로 몰아, 선교계 학교의 교직원과 학생 다수가 검거되는 사태를 맞게 되었다. 재한 선교사들이 영국 에딘버러 종교회의 상임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미국 장로교 외국 전도국에서는 주미 일본대사에게 항의함으로써 가까스로 신성, 숭실, 신안, 한영 등 기독교계 학교의 폐교를 막고 선교사들의 구속은 모면할 수 있었다. 이 때 검거되어 옥고를 치른 이가고, 기독교계 학교가 이를 계속 거부함에 따라 1936년 6월 당시 숭실전문학교 교장이던 맥큔과 함께 평양숭의여중의 스눅 교장의 인가를 취소하는 강경책을 취하였다. 교측 학교들이 불참의 입장을 확고히 함으로써 1937년 9월 6일 광주의 숭일, 수피아, 목포의 영흥과 정명, 군산의 영명 등 5교를 폐교 조치하였으며 순천의 매산, 전주의 신흥은 자진 폐교하는 최악의 사태로 발전하였다. 이를 지켜 본 북장로교측은 동년 10월 평양의 숭의전문, 숭실중, 숭의여중, 등 삼숭(三崇)의 자진 폐교원을 제출하였으며, 대구의 계성, 성신, 재령의 명신, 선천의 신성, 전신 등이 차례로 문을 닫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남장로계 10교, 북장로교계 8교 등이 문을 닫는 비운을 맞게 된 것이다. 3차 조선교육령 공포 이후 일제는 국체명징(國體明徵)의 시책에 따라 종교계 학교의 모든 종교교육과 종교 의식의 시행을 금하는 종교 탄압상 초유 사태가 발생하면서 선교사들의 교육인퇴문제가 제기되었으며, 결국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인 1940년 10월 미국공사로부터 완전 철수 명령을 받기에 이르렀다.외국인 선교사들이 한국 민족주의의 중심에 설 수는 없다. 그것은 한국인 자신의 문제이고 우리 삶의 날줄과 씨줄일 뿐이다. 100년 안팎의 세월 이후 지금 저들의 선교 활동과 교육사업이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를 드리우고 있음을 보지만, 자체적인 근대화 에너지를 갖지 못한 정체 상태에서 우리 민족에 근대적 가치 확산과 계몽에 크게 기여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폐교 조치된 학교들은 해방 직후 1946년을 즈음하여 모두 복교되었다. 이제는 한국인 자신들이 근대의 주역으로 과거의 발아하지 못했던 씨앗을 모두 일깨워 가야 할 차례이다.3. 민족의 저항적 교육운동근대교육의 핵심은 민족 자신의 내면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고양하려는 각성된 주체적 행동 양식을 통해 나타난다. 그 교육이 삶의 주체의 각성을 촉발하고, 그 주체는 근대 가치를 확산하는 자율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독자문화와 역사를 형성해 나간다.1905년다.
    교육학| 2005.04.29| 8페이지| 1,000원| 조회(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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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 사회학의 기초] 교육의 사회적 기능과 역기능,기능론,갈등론의 사회관,교육관 평가B괜찮아요
    교육의 사회적 기능과 역기능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하고, 기능론과 갈등론의 사회관과 교육관을 비교 논하시오.1. 교육의 사회적 기능(1) 문화유산의 전달기능 - 문화는 사회적 유산이고 교육은 이 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사회적 유산이다. 인간은 유전을 통해 존재의 영속이 가능하지만 사회는 다만 교육이 사회의 영속을 위한 유전의 역할을 한다. 모든 문화유산이 학교에 의해서만 전달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질서 있게, 정확하게, 다량적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기관은 학교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교육없이는 사회의 존속은 어렵고 소멸의 위기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2) 사회통합의 기능 - 인간 하나하나는 동일하지 않고 각자는 독특한 생물학적 유전과 특이한 개인적 경험에 의해서 특유한 개성을 발전시키고 있지만 사회는 그러한 개성화의 형태와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문화를 학습하고, 생활하고 있는 사회에 적응을 잘 하도록 사회적 존재로서 통합된다. 사회 구성원들을 지적, 정서적으로 일체화시켜 사회를 통합한다.(3) 사회충원의 기능 - 사회 각 분야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갖춘 인력을 양성, 제공한다.(4) 사회선발 및 이동의 기능 - 교육이 개인의 상승적 사회이동을 촉진시키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퍼져 있다. 능력과 업적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능력을 계발함과 동시에 능력을 평가하여 인력을 선발한다. 이와 함께 사회이동을 가능하게 한다.(5) 사회개혁 및 발전의 기능 - 교육은 문제해결을 통해 사회의 변화, 발전 및 개혁과 함께 미래의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을 세우는 기능을 수행한다.2. 교육의 기능에 대한 비판적 시각많은 교육자들은 학생 및 청소년 문제와 밀접히 관련된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로 오늘날의 학교교육의 병폐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러한 학교교육의 병폐는 최근 활발하게 거론되고 있는 소위 집단따돌림 학교붕괴 교실붕괴 로 나타나고 있다.급격한 사회의 변화는 학생들의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사회와 학생이 변화하는 속도만큼 학교가 변화되지 못하고 있다. 늘 똑같은 형태의 학교교육 예를 들어 주입식교육, 대학준비 교육 등은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를 떨어지게 만든다. 이러한 학생들의 수가 증가함으로 학교수업은 파행으로 치닫고 교사와의 대화를 멀리하며 학교교육의 효과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학교교육의 병폐는 학생들의 중퇴, 무단결석, 유해환경과의 접촉 등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 중퇴나 무단결석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많은 연구(예를 들면, 조혜정, 1996)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교를 중퇴하거나 무단결석하는 이유 중 대부분이 학교가 싫어서 , 재미가 없어서 가 차지한다.학교교육의 병폐에 따른 학생들의 중퇴나 무단 결석의 증가는 자연히 학생 및 청소년비행이나 범죄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사실은 청소년비행이나 청소년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 중 많은 비율이 학교를 중퇴한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결과에서 잘 알 수 있다(문화관광부,2000).국가의 힘과 관료적인 조직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학교교육은 학생 개인의 자유로운 요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없으며 따라서 아동 중심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예: 라이며(E. Reimer)의 비판: 『학교는 죽었다』(1971) 현대사회는 학교의 네 가지 기능(학생을 보호 감독, 사회적 역할을 선별하는 기능, 이론, 원리, 사상을 주입하는 기능, 일반적인 지식, 기술을 함양하는 교육기능)을 결합시켜 학교교육을 값비싸게 만들며 또한 이로써 학교가 전체주의적인 제도로 흐르기 쉽게 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체제에 순응하는 방식을 배우며 학교는 효과적으로 이념을 주입시키고 있다.3. 사회관(1) 기능론의 사회관기능주의 이론은 사회학이나 교육사회학의 많은 이론적 접근방법들 중의 하나로 구조기능이론, 합의이론, 평형이론이라고도 불리운다. 기능론에서 사회를 인간 신체의 생물학적 기능에 자주 비유한다. 유기체의 생물학적 기능과 마찬가지로 사회도 수많은 여러 기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상호의존적이며 또 모든 부분들은 존재의 생존과 존립에 상당한 공헌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기능론에서 사회를 부분의 합으로 보고 각 부분은 사회 전체의 생존을 유지하는데 기여한다고 본다. 그리고 사회에는 구조와 각 구조는 맡은 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어떤 사회도 항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으며 어느 정도의 사회변동은 있을 수 있으나 사회는 급진적인 변동의 힘보다는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안정을 꾀하려는 힘이 더 강하다고 주장한다. 사회 여러 부분들은 서로 통합되어 있어서 전체 사회체제의 유지를 위하여 함께 활동하고 있으며, 사회는 사회 구성원들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가치, 신념, 감정, 규칙 등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가 있다고 본다. 이런 합의는 기본적으로 학교나 가정 등과 같은 기관에서 사회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기능론의 사회에 대한 기본관점은 사회가 독립된 존재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사회와 사회구조는 중요한 체제욕구나 체제기능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사회구조는 체제나 하위 체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균형지향적이거나 또한 안정 지향적이라 주장한다. 사회는 그 환경에 대하여 적응적이며 사회는 새로 출현하는 새로운 성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2) 갈등론의 사회관갈등론은 기능론에 반발하여 나온 이론으로 현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갈등론에서 사회의 재화는 일정하나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여 모든 사회는 이를 둘러싼 갈등과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본다. 또한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의 대립적 관계도 계속적인 긴장과 갈등을 유발시킨다. 사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변동하고 개인 및 집단 간의 계속적인 투쟁과 갈등은 사회의 변동을 불가피하게 만들며 사회변동의 원인이 된다. 외관상으로는 평온할지 모르나 내면적으로는 활기차게 변동이 일어나며 때로는 표면화되거나 폭력화되기도 한다. 사회는 사회구성원의 일부에 의한 다른 이들의 강압에 그 토대를 둔다. 지배집단은 피지배지단을 강압적으로 억압하고 동시에 정신적 교화를 통해 지배체제를 효과적으로 통제한다. 지배집단은 자신들의 위치가 위협받지 않기 위해 계속적으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고 노력한다고 본다. 기능론이 사회적, 역사적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권력투쟁과 계급갈등, 일탈행위 등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사회의 강제적인 속성과 사회변동, 혁신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갈등론의 기본관점은 사회의 모든 요소를 긴장, 경쟁,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보고 있다. 갈등의 원인은 사회계급간의 권력의 차이에서 비롯되며, 지배집단은 피지배집단과 언제나 불일치와 갈등을 보이고 이것은 사회분열과 사회변동을 초래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질서의 유지는 지배집단의 강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4. 교육관(1) 기능론의 교육관기능론에서 교육을 전체 사회에서 하나의 하위체제로서 사회의 존속과 결속을 위해 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본다. 현존 사회의 문화와 가치를 유지, 계승하는 사회화 기능과 사회 각 분야의 역할을 가장 잘 담당할 수 있게 구성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사회적 선발 및 배치의 기능이 교육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기능론에서는 교육체제를 적응체제의 하나로 보고 사회화와 인력양성 및 선발의 기능을 강조한다.이러한 측면에 기초하여 기능주의 이론은 학교를 한 사회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하여 존재하는 합리적 기관으로 간주하고 있다.기능론의 교육에 대한 중요한 관점은 교육을 사회와 연관시켜 거시적인 관점을 취한다. 교육과 사회와의 관계를 비교적 긍정적, 낙관적으로 보며, 학교교육의 기능은 자질 있는 사람들을 분류하고 선발하는 합리적인 방법을 통하여 업적주의, 능력주의, 전문가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고 한다. 학교는 전문가 사회에 필수적인 각종 지식, 기술, 가치규범을 가르쳐야 하며, 학교는 능력 있는 사람을 분류, 선발하는 합리적 방안으로 가장 능력 있는 사람들이 높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주장한다. 능력별 분류에 의한 서로 다른 교육적 성취는 장래 성인사회의 직업적 분화에 도움을 주며 능력주의 사회, 엘리트중심 사회, 학력주의 사회 등과 같은 사회는 기능주의 이론의 관점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고, 기능주의 이론가들은 교육이나 학교의 혁신적 기능보다 보수적 기능을 더 중요시 여긴다고 볼 수 있다.이러한 기능주의 이론의 교육에 대한 관점에 따라 교육의 기능과 사회와의 관계를 볼 때 교육기회평등 능력과 환경에 맞는 재능개발 효과적인 선발기능 업적과 능력에 따른 사회진출 업적 및 능력주의 사회의 건설로 연결할 수 있다(이종각,2000).(2) 갈등론의 교육관갈등론에서 보는 교육에 대한 관점에 기농론에서의 그것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주류를 이룬 기능주의 이론은 교육을 통해 개인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으며, 사회의 안전과 질서유지를 이룰 수 있고 나아가 사회평등을 실현할 수 있다고 비교적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교육의 역할과 기능을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주장은 그 당시의 사회 및 국가발전의 실현과 맞물려 많은 호응을 얻었다.그러나 196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인종문제나 사회불평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 기초로 기능주의 이론은 많은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였고 교육의 역할이나 기능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갈등론에 반영된 것이다. 갈등론은 개인이나 사회발전을 위한 교육에 대해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다. 즉, 학교교육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가? , 학교교육이 사회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고 사회평등화를 도모하고 있는가? , 학교교육이 요구하는 사회적 질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등의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교육학| 2004.10.26| 4페이지| 1,000원| 조회(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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