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역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보다는 국내 선교의 비전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먼저 우리 나라의 믿는 자들이 바로 서야 선교가 이뤄지는 것이라 생각을 하면서 국내에 크리스천이지만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자들을 위하여 헌신하고자 하는, 그들에게 선교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나의 선교관이었다. 그리고 근 20년간 섬겨 오던 교회 또한 해외선교에 큰 비전이 없었던 터라 나 개인에게 있어서의 해외선교는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그러나 사역을 시작하고 나서 해외선교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국내선교는 각 개교회가 짊어지고 가야 할 사명이었다. 그리고 그 교회는 보내는 선교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나는 직접 가는 선교사만이 진정한 선교사라 각했었는데 선교신학 수업을 통해 보내는 선교사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지나간 여름방학때 중국선교를 다녀오고 난 후 절대적으로 해외선교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앞으로 선교에 더욱 힘써야겠다.’는 비전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 접한 선교에 관한 책이 바로 “하나님을 향해 홀로선 여인들”이다.책을 읽어나가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첫 번째로 소개되어진 독신 여성선교사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서 바른 여성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4대째 기독교 집안이었지만, 아버지의 집안은 엄격한 유교집안이었는지라 가부장적인 모습들이 진하게 나타나 있는 집안에서 자란 탓인지 겉으로는 아닌 것처럼 표현을 하지만 은근히 남성 우월적인 것들이 내 마음속에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주 안내와 다투는 것이 밥상을 누가 차리느냐...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깨달았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돕는 자’로 만드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 섬긴다는 것이 말 그대로 여자가 남자를 섬겨야 하는 것이 성경적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럼 까? 라는 생각을 하며 읽던 도중 이러한 문구를 읽게 되었다. “성경에는 여성의 직분에 대해 구분은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동등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고대 유대사회에서의 여성은 문화적으로 남성의 소유였다. 당시 여성의 지위는 문화적 산물이지 신적인 명령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문구를 통해 남성우월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이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었음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그리고 독신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서 정말 많은 것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다. 독신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요 소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마 19:11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마 19:12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만한 자는 받을지어다이 성경구절을 통해 독신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우리들의 선택이라 생각했었는데 더 많은 성경구절을 연구한 자료를 통해 독신선교는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며 특별한 은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결혼에 대한 경고부분에서 지금의 독신의 선교사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그 외에 성경에 나타난 독신에 대한 부분들에 대해서도 새롭게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선교에 있어서 ‘독신선교사들의 필요가 절실하다.’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편애하지 않으신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그런데 결혼이 하나님의 궁국적인 뜻이 아니고, 독신선교가 하나님의 궁국적인 뜻인 것처럼 묘사되어져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신, 구약에 나타난 여성관을 통해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동등한 위치에 있고, 예수님과 바울의 여성관을 통해서도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위치에 있으며, 상호 의존적이며, 상호 보완적인것을 알 수 있었다. 성선교사에 대한 편견과, 편애를 버리고 그들도 여느 선교사들과 동등한 대우를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책 내용을 통해 본 한국 교회의 선교지원은 주로 남성이나, 가족선교사들에게 집중되어있고, 이렇게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독신 여성선교사들은 찬밥신세를 지고 있다.2장의 독신 여성선교사의 사역에서 보면 독신 여성선교사들의 사역이 다른 선교사들의 사역보다 월등한 사역을 하고 있고, 독신 여성선교사만이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사역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우선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으로 사역을 시작한 선교사이기에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데 있어서 진정으로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고, 담대하게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독신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낼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고 보내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사역에 사용되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무슬림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무슬림여성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일 같은 일을 감당해 나갈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이러한 독신 여성선교사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만이 할 수 있는 많은 사역들이 있고, 새로운 사역의 길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그들의 리더쉽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려는 병폐를 저지르고 있다.3장의 독신 여성선교사 사역의 실제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처음에는 남성선교사들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19세기 말에 이르러 여성선교사들의 숫자가 남성선교사들의 숫자를 능가했다. 여성선교사 중 대부분이 독신 여성선교사가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선교에 있어 큰 공헌을 세우며 세계선교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OMF와 EWF라는 선교단체에서의 독신 여성선교사의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1980년 이후의 한국인 독신 여성선교사의 사례를 통해 독신 여성선교사를 희망하고 있는 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붙돋우어 주고, 독신 여성선교사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들에있다.그리고 독신 여성선교사들이 그 사역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그들의 사역을 위한 제안을 하고 있다. 기본적인 신학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영어와 현지어에 능숙해야 한다. 전문사역을 개발해야 한다. 현지인 교회 지도자들과 바른 교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동역자들의 사역을 파악해야 한다. 선교지의 역사와 문화, 법 등을 기본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파송받은 선교지역에 충실해야 한다. 팀 사역에 있어서 실제적인 조화를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전문적인 기술의 훈련을 받는다. 교육과 사회사업에 관한 경험과 상식을 쌓는다. 등의 독신 여성선교사들의 사역을 위해 준비되어져야 할 것들을 소개하고 있다.그러나 여기에 소개되어진 것들은 모든 선교사들에게 다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가져 본다. 그리고 독신 여성선교사들만의 준비되어져야 할 것들이 소개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가령, 약한 여성이기 때문에 현지 남성들의 공격에 대처 방법이라든지, 아니면 독신 여성선교사들만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것들이 소개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그리고 4장에서는 독신여성선교사들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소개함으로 그들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그들의 학력은 대부분이 고학력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주거형태는 가족선교사와 함께 생활하는 형태가 있는데 이는 별로 지혜롭지 못한 처사라 소개하고 있다. 다른 독신 사역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형태가 있는데 이는 안전과 경제적 이유에서 이러한 형태를 취한다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은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기도 하며, 혼자서 생활하기도 한다.다음으로 이 책에서 소개하려는 부분의 중심적인 내용이라 생각되는 독신 여성 선교사들의 특권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혼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역을 하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 가정선교사들의 가장 큰 걸림돌이 해소되는 것이다. ○현지인들을 향해 항상 열려 있기 때문에 현지인들과 더 친밀할 수 있다. ○가정선교사들 보다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현지로 언어에 더 능통할 수 있다. ○혼자 다니기 때문에 선교여행이 자유롭다. 여섯 번째, 지원하는 경비가 가족선교사들 보다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통해 가장 효과적인 선교비 투자가 바로 독신 여성선교사들을 위한 투자라 주장하고 있다. ○은사대로 막힘없이 일하며, 무엇이든지 주님의 뜻에 따라 추진할 수 있다. 그리고 자유롭게 자기 개발을 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더 가까이 교제할 수 있으며, 그의 특별하신 보호와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불러 사용하시는 사역자이기 때문이라 판단된다.이러한 특권에 비해 독신여성선교사에 있어서 어려운 부분이 있다.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이 그들을 어떤 결함이 있는 인간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문화의 차이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그리고 선교의 현장에서 함께 거주할 동료를 선택할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동료 부인선교사들의 오해를 살 수 있으며, 그러기에 외로움의 감정이 있다. 그리고 특정국가에서는 여성의 지위가 대개 별 볼일 없기 때문에 사역과 목회의 효율성에 한계가 있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여성 혼자이기 때문에 이성의 유혹이 있을 수 있고,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대화가 부족하여 정서가 불안해 지고, 혼자 여행할 때 안전하지 못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남편이 있는 부인 선교사보다 사회적 지위가 불안정하고, 혼자이기 때문에 오는 많은 어려움들이 그들 가운데 있다.그리고 그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동료 남성선교사들과, 독신의 여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인 측면과, 여성선교사 스스로의 문제로 인해 많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한국교회나 선교단체에서 이러한 사정을 이해하고, 파악하여 그들의 장점을 살려 선교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중도하차 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과 체계를 구축하고, 그들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구체적인 조직체가 마련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안식년과 노후의 생활을 보장해 줌으로서 그들이 전심 한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서문과 끝에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함 이였다. 이 책은 스캇 펙이란 정신과 의 사가 자신의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얻어진 것들을 정신치료라는 이론을 보다 쉽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끔 쓴 책임을 알 수 있었다. 나도 처음엔 이 책을 읽기 전엔 정신치료라는 딱딱한 이론 속에 몇 가지 실례를 들어 설명하는 따분한 책이려니 하면서 대충 빨리 일고 레포트나 써야 겠다 라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 가면서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첫 시작부터 나와 관계된 내용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기에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면서 그 훈련이 어떻게 전개되어져 갈지를 설명하면서 나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우리들이 그 고통스런 문제를 건전하게 겪어 내는 수단을 배움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면서 네 가지의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을 살펴보면서 나와 접목시켜 보았다. 내가 어려서부터 고민해 오던 것들이 하나하나 풀려가기 시작하면서 이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나의 시간관리를 잘 못해 왔었다. 시간표는 멋드러지게 짜지만 항상 그 시간표대로 생활해 본적은 거의 없었던 거 같다. 항상 놀기 좋아했고,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만을 하기 좋아했었다. 이제서야 이 책을 통해 왜 그렇게 행동하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참 고생을 많이 하신 분들이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같이 있는 시간이 적었고 그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도 알 수 가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들은 항상 나를 위해 그러하셨다는 것을 알기에 또 우리 부모님들은 이러한 것들을 배우시지 못하셨기에 부모님을 원망한다거나 이런 일이 부모님의 잘못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정상적이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도 부모님의 바른 생활의 모델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나와 있다. 어렸을 때 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그 고통을 회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 것을 선택하는 자유는 우리에게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선택으로 인해 생기는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책에선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정신이 성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고통을 이겨내야 우리의 정신이 성장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만약 그 고통을 회피하려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면 우리의 정신은 성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쇠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고통에 대해 해결책을 찾아 그 고통을 이겨내는 훈련을 계속 해 나간다면 우리의 정신은 많은 성장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정신의 성장을 이루게 하는 방법이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지도를 예로들어 설명하고 있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 우리들의 지도는 완성된다. 물론 어렸을 때의 지도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통했던 지도가 과연 이렇게 변화된 세계에서 과연 통할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면서 이 지도를 새롭게 수정해야 됨을 말하고 있다. 나의 경우에도 어렸을 때 화가 나면 우선 주먹부터 올라가는 못된 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성장해서도 가끔 이런 욱하는 성질로 인해 많은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이런 지도를 나이가 더 들어 중년의 나이에도 이런 지도를 계속 가지고 있다면 사회에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 주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린 이런 지도를 수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이 책에서 말하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면서 이 지도를 수정해 나가야 겠다. 그리고 이 쉽지 않은 일을 하기 위해선 과감하게 도전하는 모험을 해야 한다. 우리 자신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생각하고 나의 능력을 성찰해 보면서 이러한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부딪혀 보는 것이다. 과감하게... 이 책에선 또 거짓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위해 어느 하나를 포기하려 할 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울해 한 적이 있는데 지극히 정상적이고 포기는 부활이란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 쉬어 본다.이 책에는 또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누군가가 나에게 사랑에 대해 얘기하라면 난 사랑은 너무나 크고 깊어서 완전히 이해될 수도 , 그 깊이를 측정할 수도,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랑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내가 사랑으로 힘들어하고 어려워할 때 다시 이 책을 잡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정의해온 사랑은 누군가에 대한 나의 끊이지 않는 배려와 관심과 희생이며 그것을 통해 나의 행복과 마음의 편안함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지금은 정말 진정한 사랑 을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확신한다. 여기서 말한 진정한 사랑 이란 우리가 흔히 자신이 하는 사랑에 가져다 붙이는 그런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누군가는 정말로 그런 진실하고 참된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사랑이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사랑은 알려고 할수록 깊으며 또한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사랑 이라는 말을 너무 일상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그 특별한 의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어렵게 하며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얘기함과 동시에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이며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자신의 환자치료를 통한 경험을 토대로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사랑을 자기자신 뿐 아니라 상대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나가려는 의지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사랑을 통해 우리의 자아영역(자신의 한계)을 확장하는 것이며 이것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성숙을 도와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자신의 한계를 확대시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성장할 수 없었던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으므로) 취미, 생활, 사고 방식 등의 차이를 실감하고 하나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상대방이 서로의 개성과 그들은 서로 별개의 개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정신적 성장과 더불어 인간적 발전을 가져오며 참사랑을 차츰 실현하게 된다. 두 번째로 그릇된 개념은 의존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선택의 자유로운 실행이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서로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상대방과 함께 살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의존성에 대한 욕구와 느낌을 가지고 있다. 보통 자신이 선택할 배우자는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 이라고 대부분이 말을 한다. 이것은 누구나 의존에 대한 욕구와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하겠다. 의존성에 얽매어 사랑을 정의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정신적 성장은 고려하지 않으며 진정한 사랑을 위해 수반되는 고통을 견디려하지 않는다. 자신만을 보호하고 사랑하도록 매어두려고만 한다. 서로에게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결혼생활이 오래 지속되고 안전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건전하거나 순수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수동적인 의존은 적절한 시기에 부모의 애정과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결과이다. 이것은 남녀간의 사랑 이전에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한사람의 완전한 인격체로서 진정한 사랑을 이루느냐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의존으로 사랑을 이루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기 자신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자기 훈련을 통해 이것이 실현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애착을 또한 사랑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애착은 사람이 아닌 사물이나 동물에게도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사물에 애착하는 것은 감정적인 친근감도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의지 발전도 없으며 의존성만 더해 갈 뿐이다. 그래서 정신적 성장과는 다른 단순들어주고 집중해주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다. 자신의 마음속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일시적으로 나를 상대의 세계로 들어가 그 사람에게 나 자신 안에 공간을 만들어 그의 체험을 함께 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을 분리하는 것과 완전히 정신 집중하는 훈련은 엄청난 노력이 요구되는 것으로, 사랑을 토대로 상대방을 점점 확대시켜나가려는 의지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들어주는 것 외에 진심으로 상대와 함께 시간을 하는 것도 관심을 가지는 하나의 훌륭한 방법이 될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사랑을 통한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노력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에 따르는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많은 것을 인생에서 포기하고 살아야한다. 그리고 항상 변화하는 삶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독립과 자기 결심에로 뛰어드는 일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큰 용기와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이런 변화에 대해 보이는 반응은 자신을 사랑하는 행동이다. 사랑은 자신을 위해 크고 의미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동기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시도할 용기를 준다. 결국 자신의 심리적 독립과 미지의 세계로 뛰어 들어 자신을 찾는 길을 선택해 나가는 사람만이 자유로이 정신적인 성장의 길을 따라 전진해 나가면서 진정한 사랑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진정한 사랑의 관계에서 기반이 되는 것은 크든 작든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다. 책임감이 사랑에 빠진 감상적인 상태에서 진정한 사랑으로 전환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이 자신의 모습에 직면하도록 일깨워 주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적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사실 그대로를 당당하게 직면해야한다. 상대의 개성과 고유한 특성을 알아주고 존중해주며 그 존중을 바탕으로 그 사람의 문제를 일깨워 주어야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끔 사랑하는 상대의 삶을 그 자체로 그대로 존중하는 것과 그 삶에 대해 사랑으로 충고해 주어야하는 책임사이에 난처해질 수 있다. 이것은 자기 성찰-.
1. 서론어원학적으로 정경이란 단어는 원래 갈대 라는 뜻을 가진 셈어에서 빌어온 외래어이다. 이 단어는 길이를 재는 갈대 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기준 , 규칙 , 표준 을 의미한다. 처음 3세기 동안 교회에서는 기독교 신앙의 교리와 윤리적 내용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다가, 4세기에 와서 신·구약 성경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정경 은 권위 있는 성경을 이루는 완성된 문서들의 모음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4세기경의 의미가 현재 압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경에 관한 신학적인 문제는 여러 면에서 역사적인 질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논란이 많이 되고 있다. 정경과 권위의 관계는 무엇인가? 정경으로서의 위치가 먼저인가, 기능적인 권위가 우선 인가? 원문의 권위와 정경으로서의 위치를 인정하는 교회의 권위의 관계는 무엇인가? 정경의 윤곽에 대해 초대 교회가 취한 근거들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한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내린 결론 자체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닌가? 이 단원에서는 최근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점들만 간단하게 소개한 후에, 그 증거들이 우리들을 인도하는 길만을 제시하고자 한다.2. 구약 정경과의 관계신약 정경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표본이 될 수 있는 완성된 구약 정경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가?아주 최근에 이르기까지 지난 2세기 동안의 일반적인 의견은 구약이 히브리 정경의 세 구분에 따가 세 단계를 거쳐 정경으로 인정되었다는 것이었다. 즉 토라는 주전 5세기경에 정경으로 인정되었고, 선지서는 주전 200년경에, 그리고 성문서는 주후 1세기경 얌니아 공회에서 정경으로 채택되었다는 것이다.이러한 중론이 최근에는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이 문제에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점들은 다음과 같다.1 얌니아 공회의 역할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2 요세푸스나 필로, 그 밖의 다른 자료들은 1세기경 히브리 정경이 셋으로 구분되어 있었음을 증거 하지만, 정경으로 인정되는 과정이 이 세 가지 구분의 순서대로 되었다는 가정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는 거의 없다.3 위의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흔히 사용하는 논증은 사마리아인들이 모세오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인데, 사마리아인들이 분리된 것은 4세기 말엽으로 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사마리아인들의 교리가 신학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결정적인 시기는 주전 3세기에서 1세기 사이라고 주장한 코긴스와 의견을 같이 할 것이다.4 성문서의 후기 정경 채택을 주장하는 가장 강력한 논증 중 하나는 다니엘서에 기록된 마카비 연대와 다니엘서가 선지서가 아닌 성문서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보수적인 학자들이 다니엘서의 6세기 저작을 주장하는 사실과는 별도로, 존 발톤은 최근에 모세오경을 제외하고는 인정된 구약성경 순서라는 것은 없었다고 매우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5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문서들에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다니엘을 선지자로 본 증거들이 상당히 많다.6 그러나 선지서와 성문서가 1세기경에 성서로, 따라서 권위 있는 말씀으로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경으로 채택되지는 않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7실제로 기독교 이전의 유대교에서는 전통적인 예언이 끝났다고 믿었다는 증거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구약 정경의 완성 연대에 대한 의견은 주전 500년경부터 200년까지 분분하지만, 주전 1세기 이후를 완성 연대로 보는 견해는 많은 증거들에 의해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8주후 4-5세기경부터 사본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승된 70인역에 외경이 포함되어 있음은 디아스포라 유대교, 최소한 알렉산드리아 유대교는 다른 정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하며, 따라서 정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셈어의 자료를 연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알렉산드리아 정경설에 대한 그의 입장이 매우 설득력이 있음을 인정한다.9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구약의 대부분의 책들을 성서로 인용하지만, 신약의 기자들이 구약 성경을 정경의 완성으로 보았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보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침묵으로부터의 논쟁은 상당히 애매할 때가 있다. 또한 그들이 완성된 정경을 인정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듯한 증거들이 신약에 여럿 있다.그렇다면 신약 성경의 정경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표본 역할을 한 완성된 정경이 존재했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합당한 증거들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것이 문제가 된다 할지라도, 토라와 선지서가 주후 1세기경에 완성된 권위로 간주되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는 있다.3. 신약 정경의 형성만일 신약 정경을 인정된 책들의 완성된 목록으로 본다면, 주요 쟁점은 이미 잘 알려진 것들이고 그렇게 크게 논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이 완성된 목록으로 우리에게 전승된 최초의 정경은 말시온 정경이다. 시리아의 이원론에서 막대한 영향을 받은 이 정경은 구약을 완전히 부인하며 오직 한 복음서(누가복음)와 목회서신을 제외한 10개의 바울서신만 인정한다. 말시온을 비롯한 다른 이단들의 작업은 결국 교회로 하여금 좀더 종합적인 고유의 목록을 만들도록 했음에 틀림이 없다.2세기 말엽의 무라토리안 정경은 그것이 가리키는 신약성경의 근원에 대한 지침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현재 우리의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신약 정경을 인정하는 대교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교부들의 경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료는 아마도 알렉산드리아의 교부인 클레멘트와 오리겐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신약 성경의 정경에 대해 논하면서 유세비우스는 다음의 세 가지 구분을 소개했는데, 인정된 책들, 논란이 되는 책들, 그리고 이단들에 의해 사도들의 이름이 붙여졌으나 유세비우스가 정통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부인한 책들이다. 유세비우스는 첫 번째 부문에 사복음서, 사도행전, 14개의 바울서신, 베드로전서, 요한일서, 그리고 외관상 계시록을 포함시켰고, 논란이 된 책들은 일반적으로 인정된 것들과 일반적으로 부인된 것들로 다시 구분하였다. 세 번째 부문은 이단의 문서임이 분명한 것들로서 베드로복음, 도마복음, 안드레와 요한의 행전, 그리고 이와 비슷한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다.다시 말해, 4복음서, 사도행전, 13개의 바울서신, 베드로전서, 그리고 요한일서는 일반적으로 아주 초기에 인정되었고, 유세비우스 시대에는 신약 정경의 나머지 윤곽도 어느 정도 잡혀 있었던 것 같다. 어거스틴이 참석했던 제3차 칼타고 공회도 신약성경 27권을 모두 인정했으며, 그 이후로 서방교회에서는 이 입장에 큰 변함이 없었다. 중세 시대의 교황권처럼 어떤 결정을 강요하는 교회의 기간이 없었음에도 범교회적으로 거의 모두가 똑같은 27권의 신약성경을 인정했음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교회가 정경을 결정하는 데 사용한 기준은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였다.첫째, 믿음의 규범 과의 일치, 문서와 정설, 즉 교회에서 기준으로 인정한 기독교 진리와의 일치이다. 둘째, 사도와 직접 접촉이 있었던 사람들을 포함한 사도성 이다. 셋째, 약간 덜 중요한 기준은 온 지역에 흩어진 교회들이 하나의 문서를 폭넓고 지속적으로 인정하고 사용했는가의 여부이다.4. 신약성경 정경의 중요성아주 처음부터 특별한 권위와 절대적인 종결이 모두 인정되었다. 신약 정경의 시작은 궁극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배후에 둔 복음과 사도를 향한 호소에 있다, 따라서 만일 언제 어떻게 정경이 완성되었는가 하는 질문이 아닌 언제 어떻게 신약의 여러 책들이 복음에 대한 권위 있는 증언으로 받아들여졌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추구하나다면, 우리는 교부들에 의해 만들어진 후기 시대의 정경 목록보다는 초대 교부들이 신약 성경을 언제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antilegomena 조차도 널리 인용되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음 몇 가지의 중요한 논증을 살펴보자.
요한 복음*요한 복음의 저자는 공관 복음을 알고 있었나?1. 공관 복음을 읽으며 그 내용에 영적인 부분을 심화시켜 요한 복음이 탄생하였다.2. 공관 복음이 쓰여진 후, 시간이 많이 흘러 신앙인들의 수준이 진보되어 그 붑ㄴ에 맞추어 요한 복음을 저술하였다.3. 마지막 시대를 바라보며 저술. 1세기 마지막 때에(A.D 95년) 2세기의 성도들에게 새로 운 비젼을 제시하기 위해 저술. (계시록과 저자가 동일 인물로 추정하게 하는 견해)-저자가 공관 복음을 모른다고 할 때..: 공관 복음들이 여러 전승들을 토대로 기록하였듯이 요한 복음도 어느 전승 부분들과 초기 문서를 참조하여 탄생되었다는 견해본문 1:1-'태초'는 역사, 시간, 공간의 태초(창 1:1)를 넘어선 영원한 시간, 공간의 태초. 전 우주적설명. mysterious. 우리의 삶과는 거리가 먼 해설로서 시작 되어짐.이러한 분이 바로 The Word! (1:14 The Word→humanity)창조는 전 우주적인 말씀이 역사로 들어오는 것!말씀이 역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빛(생명)으로 들어오심(1:4) 이 빛이 각 사람에게 비추어진다.(1:9)→커다란 선교의 역사. '어둠에 빠진 사람들에게 빛으로..'1:10- 말씀→부정적. 어두움에 빠진 세상,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 예수는 음지를 향한 빛.1:12-13-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 하나님의 사람1:14- 말씀→Incarnation(성육신)→Dwell live among people! (위에서 내려와 밑에서부터 일어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 가운데서 일어나신다.)1:18-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누가 하나님을 볼수 있는가? →도울 수 있는 자: 계시자→하나님의 가슴에서 나온 사람.1:18- 세례 요한의 사명: 증인.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제사장을 세례 요한에게 보내어 세례 요한이 메시아인가에 대한 질문. 확인 및 기대→'I'm not christ!1:21- 네가 엘리아냐?→I'm not 자기 자신이 갖게 되는 정체성(외치는 소리)을 분명하게 하는 행동. *세례 요한: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 자신의 정체성이 뚜렷하고 자신의 사명에 성실함*Jesus Baptism→공관 복음: 세례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줌이 명시되어 있음.요한 복음: 철저히 낮아짐. 자신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셔서 세례 주었을 뿐이라고 언급1:36- 세례 요한이 예수를 증거, 세례 요한의 제자가 예수의 제자가 됨. 세례 요한의 증거는 진실하였고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1:38- '무엇을 원하느냐?'(제자도를 묻는 질문) →예수께서 이 땅에 내려와 처음 언급(요한 복음에서)'어디 계시오니이까?'→ 당시의 시회구조 반영(신분, 출신 중시 사회)Where are you staying? →내가 진정으로 거할 곳이 어디입니까?1:40- 예수를 처음 만난 사람 '안드레'→첫 요한의 공동체 (안드레, 다른 제자, 베드로)*요한 공동체→동등한 공동체, 제자들은 모두 동등하다.참고)마태복음에서는 베드로의 권위가 우월하게 드러남요한 공동체의 신학적 개념1. 이름이 있는 공동체, 2. 이름이 없는 공동체→이름을 드러내든 안 내든 공동체는 모두 동등하다.1:43- '나가려 하시다가' [어떠한 의지를 가지시고 갈릴리로 나가신다. 신적 의지] 제자를 삼는 것이 예수의 의지가 된다.*갈릴리- 예수께서 이방 지대로 들어가신다는 것을 의미.*빌립과 안드레- 이방 선교의 첫 창구[이름이 헬라어] 예수의 전도 영역을 넓히기 위해 빌립을 선택. 빌립과 안드레는 헬라어 이름(이방적 대표성 강조), 베드로, 나다나엘은 히브리 이름→이방인과 유대인의 unity 강조.1:45- 예수에 대한 상세한 설명, 유대적 관점을 가지고 나다나엘에게 접근[나다나엘은 유대적 대표성 강조]1:46- 지역적 차별 발견→신적인 요소를 부정→네 제자를 통해 이방선교와 유대선교가 함께 출발하고 있음을 전제.1:48- 무화과나무→의심을 상징하는 나무. 두꺼운 나뭇잎이 특징. 이것은 그늘, 사색을 위한 그늘로 사용되어짐.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다.'(1:46에서 모세와 선지자를 빼 버림. 유대주의 자체속에서도 어울리지 못하는 존재. 유대주의에 회의적이고 의심하는 존재.)*나다나엘의 멘트1. Son of God: Jesus와 하나님과의 관계 의미2. 이스라엘의 왕: 이스라엘과 예수와의 관계의미→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통로 예수!*예수의 멘트: 인자→예수의 인성 강조. 그러나 내 위에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리라무화과 나무에 갇혀있던 나다나엘이 세상으로 나와 하늘이 열리고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2:11. 하인들의 믿음→기적을 경험하게 되고 알게 되고 믿게 된 자들-Listen and obeyed-Not without risks-Hard working llabor2. 예수의 능력(권위와 능력)3. Wine/social activity (Wedding)→인간의 사회속에서 그들의 필요한 것을 채워주신다.4. 항아리 [정결법. 죄를 씻기 위한 도구. 유대주의]→이 항아리에 물을 채우자, 포도주가 된다.→유대주의시대에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함을 암시. 이방의 넓은 세대까지 결혼식 포도주(구원, 정결)를, (새 포도주의 역할)맛보게 할 것이다.*성전 청결 사건2:13~15- drove→scattered→overturned*표적→'About Jesus'(예수의 영과, 믿음을 불러내다)유대인의 표적→가시적인 기적*니고데모3:3→ Born A[gain](다시→니고데모의 이해)A[bove](위에서→예수의 의도)Born~Water and Spritsprit like windbeing lifted up3:16~21주제: 1. 하나님의 사랑-예수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음을 통한 영생의 부여.2. 예수임의 사랑-3:14-15 Being lifted up[들려져야 한다]1. Realized Eschatology(실현 종말론)→요한복음에서 강조→영생을 지금 경험하라!2. Future Eschatology(미래 종말론)3:22~361. Authority/PowerJesus /John29-30절→신랑의 음성을 듣는 자→종의 자세4:1→바리새인들이 예수와 세례 요한을 감시하고 있다.4:4→[반드시 -해야한다] '반드시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한다' 이방선교의 시작4:20→'이 산' 'Sanballat'라는 사마리아 지도자가 Gerezim 산에 기원전 332년에 바벨론 왕에게 허가를 받고 예배 캠프를 세움.*니고데모 사건과 사마리아 여인 사건과의 대조장소: 예루살렘 / 사마리아도시 / 시골밤 / 낮남성(유대인) / 여성사회적 존경 / 부도덕대화의 시작 니고.가/ 예수가 시작이해하지 못함 / 믿음을 갖게 됨구세주를 발견못함 / 구세주로 믿음*사마리아 여인 사건-"Bethorthal scene-type" [약혼식 형태]→야곱과 라헬, 이삭과 리브가, 모세와 십보라→첫 만남은 '우물가'신랑(대리자)의 먼 여행 시작→여성들을 우물가에서 만남→생수사마리아 여인=흐르는 물→misunder standing예수 =성령*Topic-물→생수→loving life→worshipin sprit(신령)- 성령의 인도하심(요 14:26)in Truth(진정)- 예수의 인간, 인격, 개인적인 관계(요 14:6)→예수의 몸으로 드려지는 인격적인 관계=Worship2:13-22-성전(New Temple.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과의 관계. 사마리아 여인의 예배-조상들을 중시. 그리심 산에서의 예배예수- New Temple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4:26- 'I am' 자신의 신성을 알림'물동이를 버려두고'(말씀을 전하러 감)-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 다른 형태의 변화성(제 자도 대표)6:5- '눈을 들어'→ 사람들의 내적인 것을 본다는 의미6:3- 산상수훈과 유사. 차이점-요한복음에서는 가르침이 아닌 함께 함이 목적으로 나타남6:21-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예수를 맞이하는 순간, 어떠한 인생의 파도도 바 람도 없이 예수의 품으로 들어간다.]*9장- 인간의 질병을 율법의 관점으로 죄라 생각하는 바리새인인간의 질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적극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언급하는 예수 그리스도9:6~7-예수의 특별한 치료 방법 (창조의 사역)*실로암- '보냄을 받는다'의 의미9:8~12-고난과 고통 (어둠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창조의 사역)9:13- 안식일 문제예수의 안식일 관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목적두 가지 쟁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닌가에 대한 바리새인들끼리의 쟁론9:35- '쫓아냈다' 유대 공동체에서 쫓겨난 사람들→ 예수가 찾아가심9:39- 영적인 소경 상태를 드러냄*9장의 특징- 요한 공동체의 역사적 사실이 드러남 (유대 공동체에서 출교당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등장)*7:1- 예수와 유대인의 명절과의 관계→ 예수는 누구인가? 성령을 공급하시는 분초막절- 장막(광야를 가기 위한 조건, 하루만에 갈 수 없는 가나안을 위한 조건.)*예수와 유대인의 명절과의 관계→만나. 유대인은 모세가 준 것이라고 말하지만 예수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는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한다. 구약시대에는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일시적으로 생명을 연장하였으나 만나와 대조되는 예수를 먹는자는 세상의 광야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서 구속받는 유월절의 새로운 해석을 말한다.
공관복음처음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Synoptic Gospels)이라고 한 사람은 18c말엽 독일의 신학자인 그리스바흐(J.Jj Griesbach)였다. 공관(synoptic)라는 단어는 "함께 본다"라는 뜻을 지닌 헬라어 (sysnopsis)에서 유래된 것으로 마태, 마가, 누가가 예수님의 사역을 매우 유사하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이 단어를 선택하였다.마태, 마가, 누가는 예수님의 사역을 지리적인 경로에 의해 소개하고 있다.지난 두 세기에 걸쳐 학자들은 공관복음을 여러 각도에서 다른 결과를 가지고 면밀히 연구해 왔다. 이 세 복음서는 역사의 중요성과 각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건, 득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소개하고 있다.※요한복음 ->예수님의 예루실렘 에서의 사역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길게 교훈 하시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싶어했던 요한은 보다 명상적인 어조를 띄고 있다.1. 공관복음의 발달 과정공관복음은 복음서의 숫자와 본질은 문학적, 역사적 질문을 일으킨다. 복음서 저작자들은 그들이 사용한 예수님에 관한 자료를 어디에서 수집을 했는가? 왜 세 기록이 어느 부분에서는 매우 흡사하다가도 어느 부분에서는 매우 다른가? 저작자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저작자들은 단순이 내려오던 이야기를 기록한 자들에 불과한가, 아님 자신의 주장을 가지고 있는 저자들인가?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기 시작은 것은 18c 말이라 볼 수 있다.누가복음의 누가는 그의 저작의 유래에 대한 세 단계를 그의 복음서에 소개하고 있다.우선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된 자들, 그 내용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자료들을 자세히 미루어 살핀 후에 차례대로 편집. 누가가 언급한 조사 과정은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런 방법들을 구전의 방법, 자료의 방법, 편집의 과정으로 알아보자.(1) 구전의 단계:양식비평(:구전시대에 중점을 둠)- 구전의 시대: 구전의 시대는 예수님의 생애나 가르침에 대한 기록된 문서들이 생기기 전, 현재 우리의 복음서가 된 내용들인 양식비평가들에 의한 양식비평의 반역사적 적용에 대해서도 보다 철저한 비판이 가해져야 한다.ⅰ. 초대교회가 지상에서의 예수님과 부활하신 주님을 구분하지 않고 지상에서 예수께서 직접 하신 말씀과, 초대교회 선지자들이 한 말을 동일시했다는 말은 억측에 불과하다.ⅱ. 약 20년에 걸친 복음서 내용의 전승이 양식 비평가들이 복음서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 있는 다른 내용과 비교할 수가 없다.ⅲ. 전승의 법칙에 대한 유효성에 대한 의문.ⅳ. 증인들의 문제, 즉 그들 중에는 복음서의 사건과 가르침을 꾸며내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을 사람들도 있었으리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맥네일(McNeile): 양식비평가들은 마치 원래의 증인들은 모두 승천해 버렸고 기독교 는 황폐한 섬에 홀로 남아 있었던 것처럼 기록한다ⅴ. 1c의 유대인들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행하신 일들을 정확하게 말로 전달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과소 평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2) 문헌 자료의 단계: 자료비평1) 서론자료비평은 복음서가 형성되었던 기록단계의 연구에 그 중점을 두며, '복음서 기자들은 복음서를 편집하기 위해서 어떠한 기록된 자료들을 사용하였는가?'와 같은 질문을 하고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 초대 교회 운동에 대한 역사가에게 속한 질문흔치 않은 신기한 구도의 반복은 복음서 기자 세 사람, 혹은 두 사람이 정확하게 같은 단어, 같은 순서로 기록하는 구절들과 함께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이러한 일치와 불일치의 조화가 복음서들의 커다란 구조를 이루고 있다.2) 주요 해결안1하나의 원복음서에 대한 공통적인 의존독일의 문학비평가인 레싱(G.E. Lessing)의 '만일 그들이 희브리어나 아람어로 기록된 어느 한 복음서를 각자 독단적으로 사용하였다면 공관복음의 관계의 설명이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 제안.2 구두로 전해진 자료에 대한 공통적인 의존독일의 비평가 헤르더(J.G. Herder)의 '공관복음이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어느 정도 정리된 구전자료에 의존했다'라는 주장3 점차음에 19,376단어가 기록된 반면, 마가복음에는 11,025단어가 기록되어 있다. 짧은 것이 항상 우선이 될 수는 없지만 마가복음의 단어중 97%가 마태복음에 나와 있고, 마가복음의 88%가 누가복음에 나와 있다. 두 복음서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마태, 누가복음의 내용을 압축해서 인용하였을 것이라 반발을 했지만 이 복음서에서 취한 다른 이야기들은 길게 늘여 기록했으며, 산상수훈, 탄생에 관한 이야기, 부활하신 주님의 출현 등에 관한 것은 생략하면서 압축시켰다는 것은 확실히 의심할 만 하다.=> 그러므로 마태와 누가가 마가복음을 보고서 그 내용을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내용과 합하여 늘였다고 보는 것이, 마가가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내용을 생략하고 간추렸다고 보는 것보다는 논리적이다.ⅱ. 복음서들의 문자적 일치세 복음서 중 세 복음서가 모두 일치하는 부분이 있고 마태-마가, 누가-마가 가 일치하는 곳은 있지만 마태-누가 가 일치하는 곳은 거의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마가복음이 중간 위치에 있을 때에만 설명이 가능하다. 마가복음이 제일 먼저 기록되지 않았다고 할 경우는 설명이 더욱 어려워진다.ⅲ. 사건의 순서공관복음의 순서를 비교해 볼 때 문자적 일치와 같은 현상은 마가복음이 먼저 기록되었어야만 그 상황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경우도 역시 마가복음 우선설이 복음서 기자중 한 사람이 별로 가능성이 없는 구성과정을 취했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다.ⅳ. 마가복음의 미숙하고 서투른 문제마가나 누가나 마태 보다는 문법적으로 불규칙하고 구성도 서투르다는 데에는 사람들이 대체로 동의한다. 아람어의 사용에 있어서도 헬라어를 사용하는 독자들에게 아람어를 사용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마가가 미숙하게 사영한 아람어를 누가나 마태가 마가와의 병행구절에서 훨씬 적게 사용한 것을 보면 마가복음이 우선 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ⅴ. 마가의 원시적인 신앙마가복음에는 신학적으로 난해한 부분들이 많은데 이것은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기록되었음을 제시한다.모든 것이한 곳에 모으고 있다는 사실 에 기인한다.4) 결론두-문서 가설이 공관복음서의 곤계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최선의 설명을 제시하고 있지만, 결론을 내리기 전에 복음서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너무 복잡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정교하다 할지라도 그 문서 비평 가설은 그 상황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제시할 수 없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이러한 복잡성과 두-문서설이 만족스럽게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끊임없는 도전을 의식하면서, 우리는 두-문서 가설을 하나의 완성된 결론으로 보기보다는 연구중인 학설로 취급해야 한다.그러므로 특정 부분에 있어서 마태가 마가보다 우선일 수도 있고, 누가가 마가복음이 아닌 다른 특별한 목격자의 증언을 따랐을 수도 있으며, 마태가 Q문서가 아닌 자신의 메모나 기억에 의존했을 수도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3) 마지막 구성 단계: 편집비평이제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복음서 기자들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1) 묘사편집비평은 복음서 기자들이 문서를 사용한 방법을 분석해 봄으로서 신학적 목적을 설명해 보려는 시도를 한다. 복음서 기자들이 나름대로의 신학을 가지고 창조적이고 의도적으로 하나의 문학작품을 구성한 저자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음서 기자들은 단순히 구전과 자료를 수집해서 붙여 놓은 것이 아니라, 그러한 내용에 나름대로 수정을 가했고 그 과정에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에 나름대로 특별히 강조한 내용이 있었다.1 전승은 복음서 기자가 그의 복음서를 기록하기 앞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의미하며 편집은 복음서가 실제로 쓰여지면서 그 전승이 수정된 과정을 말한다. 편집비평은 이 편집과 전승을 구분한다.2 복음서 기자들의 편집 활동ⅰ. 복음서 기자들 나름대로의 중요시하는 것들이 달라서 각자 불필요한 내용이나 추구하지 않는 부분은 삭제했다.ⅱ. 마태, 마가, 누가의 내용에 있어서 각자의 강조성의 내용을 의도적으로 재배치했다.ⅲ. 복음서 기자가 그의 전승을 서로 엮어 이은 자리, 혹은 변천이 때로는 저자의 중요한 관심을 나타낸다.ⅳ. 들의 자료에 행한 수정이 모두 신학적인 동기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고 가정하고 있다.3 마태, 마가, 누가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의 비중이 각자의 독특성보다 훨씬 더 비중이 크다는 것, 그리고 각자가 가르치는 전체적인 그림도 염두해 두어야 하는데편집 비평가들은 종종 "편집상의 강조"를 복음서 기자의 신학과 동일시하고 있다.4저자의 신학에 근거해서 특별한 복음서의 배경을 찾아내는 것이 때로는 실제 자료가 제시하는 것 보다 훨씬 구체적인데 그들은 대체로 증거의 일부분에 의존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증거는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5 편집 비평은 종종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길로 연구되곤 한다. 많은 편집비평가들은 복음서 기자들이 이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음을 전제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편집비평은 극단적인 양식비평의 진정한 후계자이다. 양식비평과 마찬가지로 편집비평도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을 공격하는 방법이라는 평을 듣게 된 것은 많은 유명한 변집비평가들의 반역사적(antihistorical) 편견에 기인한다.재배열하고 첨가하고 생략하고 단어를 바꾸는 것이 반드시 가르침과 사건의 역사성을 손상시키는 것은 아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요약하고 발췌하고 다른 단어로 표현했다고 해서 복음서 기자들이 역사적으로 정확성을 띠고 있지 않다고 비난할 수 없다. 비록 그들이 선별하고 재표현 했다 하더라도 복음서 기자들의 편집상의 수정이 실제 사건이나 예수님의 실제 가르침과 일치하는 한 역사적 상태보존은 인정되어야 한다.그렇다면 문제는 문장 표현이나 실제 편집 작업에서 나타난 복음서 기자들의 의도로 좁혀진다. 편집비평이 복음서의 역사적 정확성을 반드시 파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복음서 기자들이 그들의 편집 과정에서 역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는 일부 편집비평가들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이다.·편집비평학파의 긍정적인 요소들...1 복음서를 만들어 내는 데 있어 마지막 저작 단계에 역점을 둠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