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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 국악감상문
    홍주희 가야금 연주회를 다녀와서가야금이라는 악기를 포함하여 국악은 나에게 무척 생소한 장르이다. 원래 음악 쪽에 소질이 없어서 연주회 같은 곳에서 거의 가지 않았다. 그래서 수강신청을 할 때 서양 음악과 국악 강의가 있었지만 처음부터 제외시켜 놓고 생활 과학을 선택했었다. 그런데 생활 과학 강의에서 연주회, 그것도 가야금 연주회를 다녀와서 감상문을 제출하라니, 처음엔 정말 기운이 빠졌다. 그래도 서양 음악 연주회는 몇 번 가보았고 텔레비전에서도 본 적 이 있었다. 사실 국악이라고는 텔레비전을 통해 판소리를 접해본 것이 전부였다. 국악 음악 연주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구나 가야금 독주회라는 것은 정말 생소했다.한국인이면서 국악에 무관심했다는 부끄러움과 이제 드디어 국악을 접해본다는 설레임으로 연주회장에 들어섰다. 지하철에서 내린 후 조금 헤매긴 했지만 처음 가보는 유림 아트홀에 입장하여 연주를 기다렸다.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조심스럽게 앉아있었다. 잠시 후 무대위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한 사람은 연주자 홍주희 인 듯 했다. 분홍색의 화려한 한복을 입고, 사람 키 만한 가야금을 세워 들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장구를 들고 있었다.첫 곡은 황병기 작품의 숲 이었다. 이 곡은 총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악장에는 녹음, 뻐꾸기, 비, 달빛 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황병기의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충격이었다. 울창한 숲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가야금 소리에 이렇게 빠질 줄이야.요즈음 TV에서는 숲을 빗대어 에어컨 제품을 광고한다. 실제로 에어컨을 틀면 머리만 아프다. 환기가 전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숲은 단지 선선한 바람만 있는 곳이 아니다. 모든 사물이 조화롭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곳이다. 정말 숲을 느끼고 싶다면 에어컨을 틀지 말라. 대신, 황병기 제1가야금 작품집을 틀어 보라. 숲의 소리가 그대를 휘감는다. 녹음, 뻐꾸기, 비, 달빛, 이렇게 4악장으로 구성한 숲. 예술이란 자연의 모방이라는, 아주 구태의연한 정의가 있다. 숲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정의는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 알았다. 자연의 모방은 예술의 가장 기본이었다. 단지, 가야금의 줄을 퉁겨 실제 숲의 소리보다 더 생생하게 더 자연스럽게 더 매력적으로 음을 표현할 수 있다니!물론 같은 곡이기는 하지만 연주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가야금에 문외한인 나로써로 이렇다할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사실, 어느 부분까지가 1악장이고 2악장인지 구별하기 조차 쉽지 않았다. 그저 신기하다는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두 번째 곡은 침향무 라는 곡이었다.침향무, 목탁을 두드리는 듯 장구 소리가 난다. 그 뒤를 이어 가야금이 따라간다. 곡의 중반에 가서는 가야금이 마치 하프처럼 변한다. 그러더니, 서서히 가야금이 고조되기 시작한다. 그에 따라 장구가 따라간다. 악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때려부순다. 장구는 목탁이 되고, 가야금은 하프가 된다. 두 악기가 어울려서 전혀 새로운 소리가 만들어낸다.연주자의 손가락 끝이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무척 빠른 손놀림이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어렴풋이 가야금 연주에서는 줄을 튕기는 소리만 들을 줄 알았었는데, 이렇게 다양한 소리가 있다는 점에 놀랐다. 기타 같기도 하고 하프 같기도 한 가야금 소리에 점점 빨려 들어갔다.연주자가 무대에서 퇴장했다가 등장하는 것이 한 곡을 매듭짓고 시작하는 것이라는 것을 파악할 즈음, 갑자기 해금을 든 연주자가 나타났다. 해금으로 연주한 곡의 제목은 석양 이었다. 꿈을 꾸는 듯 했다. 자그마하고 악기같지도 않게 생긴 해금에 활을 켜면 음악이 되어 나왔다. 그냥 두 줄을 비비는 것처럼 보이는데 신기하다는 말 이외에는 나오지 않았다.다음 곡은 밤의 소리 라고 했다. 이 곡도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신비롭게, 흥겹게, 격정적으로, 애절하게 라고 이름 붙여져 있다.밤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곧 세찬 바람이 내 곁을 재빨리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 바람에 나붓기는 나뭇잎이 하늘높이 솟아 올랐다가 떨어진다. 소용돌이 치다가 사그라든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떨어지는 단풍잎을 보며 우수에 젖는다. 가야금으로 표현한 가을의 소리. 아니, 초가을의 쌀쌀함. 그에 따른 마음의 변화.
    독후감/창작| 2002.05.23| 3페이지| 10,000원| 조회(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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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철학] 듀이
    제12강의프래그머티즘(Pragmatism)과 교육프래그머티즘 (pragmatism)개요현대 미국의 대표적 철학.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관념이나 사상을 행위(그리스어로 pragma)와의 관련에서 파악하는 입장으로 실용주의(實用主義)라고 번역된다.1870년대에 C.S.퍼스에 의해 주장되었고 19세기 말에 W.제임스에 의해 전세계에 퍼졌으며 20세기 전반(前半)에 와서 G.H.미드와 J.듀이에 의해 더욱 구체화되었다.퍼스에 의하면 관념의 의미는 그 관념의 대상이 행위와 관련이 있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느냐에 있다. 예컨대 가소적(可塑的) 이라고 하는 관념의 의미는 그렇게 표현되는 것, 예를 들면 찰흙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그것은 손가락이 누른 대로의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념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는 관념의 대상에 실험을 가함으로써 어떤 결과가 생기는가를 생각해 보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실험을 생각할 수 없는 관념은 무의미한 관념으로서 철학상의 논의에서 제외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퍼스의 프래그머티즘은 관념의 의미를 밝히는 방법으로서 제기되었는데, 이 방법을 진리의 문제에 응용한 것이 제임스 프래그머티즘이다.제임스에 의하면 관념의 의미는 그 대상이 초래하는 결과에 있으므로, 예컨대 신(神)이라고 하는 관념도 신을 믿음으로써 용기가 생긴다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것이 바로 신의 관념의 의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를 갖는 한도 내에서 신의 관념은 진리이며 더욱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떠한 관념이라도 그것이 유용(有用)한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 관념은 진리라고 제임스는 말한다. 이 주장이 전세계에 퍼지면서 프래그머티즘은 유용한 것이야말로 모두 진리라는, 즉 유용설(有用說)로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그러나 제임스가 말하고자 한 것은, 한정적(限定的) 진리를 인정함으로써 설령 사실에 어긋나는 신앙이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믿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일이며, 그리고 가령 지금 몇 시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고, 오늘하기 위한 실험적인 가설(假說)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관념은 상황을 바꾸기 위한 도구로 취급되었다.이 밖에 제임스의 영향을 받고 자아와 사회와의 관련을 논하여 이론사회학(理論社會學)의 길을 연 미드, 논리학의 영역에서 퍼스와 듀이의 영향하에 있는 콰인 등을 프래그머티스트에 포함시킬 수 있다.Ⅰ. 프래그머티즘의 개념- 19세기 후반 미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사조로서, C. H. Peirce, W. James, J. Dewey 등이 대표적인 학자.- 경험을 환경과 유기체의 상호작용과정으로 보고, 의식, 이성 등은 이러한 경험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이해.- 절대적인 것, 선험적 원리, 불변의 자연법칙을 거부하고, 상대적인 것, 경험적 원리, 지속적인 변화를 강조.- 따라서 모든 지식과 진리, 신념은 일시적인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는 반성과 실험이 요구된다고 봄.- 그리고 이 반성과 실험을 위해 지성이 요구되는 바, 이 지성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생성, 발전하는 것이라고 생각.- 이러한 입장에서 프래그머티즘에서는 교육을 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험의 재구성 과정이라고 이해함.- 이러한 프래그머티즘적 사고 방식에 영향을 미친 사상들은 기원전 6세기 경의 헤라클레이토스 및 소피스트들의 회의주의와 도덕적 상대주의, 베이컨의 경험론(귀납적 인식방법), 꽁트의 실증주의(객관성과 과학성 추구) 등을 들 수 있음.- 19세기 후반에 퍼어스에 의해 프래그머티즘의 이론적 체계가 마련되고, 제임스에 의해 대중화되었으며, 듀이에 의해 확고한 철학적 위치를 확보함.-프래그머티즘의 근본원리는 다음과 같음.첫째, 이 세상에 영원, 불변하는 것은 없고 오직 변화만이 실재한다.둘째, 가치는 상대적이다.셋째, 인간은 사회적이고 생물학적인 존재이다.넷째, 모든 인간의 행동에 있어 비판적 지성의 가치가 발동되어야 한다.- 프래그머티즘은 그 성격에 따라 도구주의, 실험주의, 기능주의, 행동주의, 결과주의 등으로 지칭되나, 모두 프래그머티즘의 전이다. 학교에서는 협동적 감각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감각이 길러져야 한다. 이를 위하여 학교는 학생의 실험과 작업을 권장하고 실제적 활동과 수공적 기능을 교과와 관련시켜 제공해 주어야 한다.3. 반성적ㆍ실험적 사고 = 지성-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문제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실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과학적 사고 능력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과학적 사고는 '문제확인-방향모색-정보수집과 관찰-가설설정-가설검정'의 5단계를 거친다. 이는 실험실에서의 실험의 과정과 동일한 것이며, 동시에 일상적인 교육적 경험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사고능력 또는 태도가 바로 지성이다. 따라서 학교는 사회 구성원들의 지성을 함양시켜 주는 곳이어야 한다.4. 경험의 연속으로서의 교육- 모든 바람직한 경험은 서로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밀접한 상호관련성과 계속성을 지닌다.- 형이상학적 사고방식에 기초하고 있는 전통적 교육은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교과와 삶을 분리하고, 지식과 생활을 분리하고, 정신과 신체를 분리하고, 과거와 현재 및 미래를 분리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러한 분리성을 극복해야만 바람직한 교육이 가능한다.5. 사회성 함양의 도덕교육- 전통적 교육은 도덕을 생활과 분리된 하나의 교과로서, 고정되어 있는 덕목으로서 가르쳐왔다.- 그러나 진정한 도덕교육은 특정한 교과가 아닌 모든 교과에 녹아있어야 하며,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학교도덕과 사회도덕이 통일되어야 한다. 즉, 도덕교육은 특정한 교과 내에서 특정한 덕목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협동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이어야 한다.Ⅲ. 프래그머티즘의 교육원리첫째, 교육은 생명을 사회적으로 지속시켜 주는 활동 자체이다. 따라서 교육은 지역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야 하며, 사회에 적응하고 사회를 개혁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둘째, 어린이는 수용력과 잠재적 능력을 갖춘 발전적 성장 유기체이다. 따라서 학생은 성장 가다.여섯째, 학교는 변화하는 세계에 아동이 대처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기관, 사회적 공동체이어야 한다.일곱째, 교육방법은 아동 중심의 활동학습법이 주를 이루어야 한다.Ⅳ. 프래그머티즘에서 본 바람직한 교사상(듀이의 이상적 교사관)1. 교육전문가로서의 교사첫째, 교사는 지적 지도자이다.둘째, 교사는 학습자이다.셋째, 교사는 동반자 및 안내자이다.넷째, 교사는 현명한 부모이다.다섯째, 교사는 사회적 공복이다.여섯째, 교사는 예언자이다.일곱째, 교사는 의사이다.여덟째, 교사는 공학 기술자이다.아홉째, 교사는 개척자이다.열째, 교사는 예술가이다.2. 공동체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교사첫째, 교사는 민주적인 교원조합의 결성 또는 참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교원조합의 결성과 참여).둘째, 교사는 노동조합이나 농민조합 등 학교 외의 민주적인 사회개혁 세력과 긴밀한 협조와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교외의 민주적 단체들과의 연대).3.철학적 사유형식과 교육(3)프래그마티즘(pragmatism)과 교육가.프래그마티즘(pragmatism): 흔히 실용주의라 불리는 프래그마티즘(pragmatism)은 19세기말 피어스(Ch. S. Pierce), 제임스(W. James), 듀이(J. Dewey) 그리고 미드(J. H. Mead)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창안된 철학적 운동이었다. 프래그마티즘은 유럽대륙의 전통적 철학에 도전하면서 미국에서 새롭게 발전한 철학상의 한 조류로 철학내용으로서의 주제보다는 오히려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에 중심을 두는 것에 그 특징이 있다. 프래그마티즘이라는 말은 피어스가 처음 사용하였으며 밀(J. S. Mill)의 영향을 받은 제임스는 프래그마티즘의 의미를 설명하였다. 그러나 교육학의 영역에서 프래그마티즘의 영향력을 극대화한 사람은 듀이로서 그는 프래그마티즘 철학에 경험주의와 도구주의라는 용어를 소개하였다. 듀이는 미국의 모든 학교교육에 절대적인 영향을 남긴 사람이 되었다. 형이상학적 측면에서 프래그마티즘은 절대적인 실재, 선험적 원리, 불변의 자연법칙 등을 거부하고,주의 심리학과 지식에 대한 진보주의 이론을 통해 자신의 경험주의적 이론체제를 확립하였다. 그의 관점은 유기체의 진화이론, 인간의 도덕적 발전가능성에 대한 신념, 그리고 이상적 사회환경에 대한 생각을 포함하고 있다.*경험론의 입장에서 사회의 진화 와 경험적 방법으로서의 실험 을 중시하는 프래그마티즘은 유럽의 전통적 철학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신대륙 미국의 문화적 주체성과 개척정신을 표현하는 철학으로서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 철학을 모태로 하여 미국에서 전개된 교육사조인 진보주의 는 그 영향을 세계 곳곳에 미치게 되었으며 한국 역시 그 예외가 아니다. 프래그마티즘에 의하면 교육이란 한 마디로 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험의 재구성 과정으로서 필요와 욕구에 의하여 그 동기가 부여된다. 교육의 내용은 사회적 활동이어야 하고 교육방법은 공동의 경험과 문제를 풀어가는 활동이어야 한다. 결국 교육은 사회발전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수단이다.나.듀이의 교육이론: 듀이는 1925년에 출판된 자신의 저서 에서 철학이란 지식내용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의해 가치기능을 일반화하는 반성적 사고이며 또한 교육에 관한 일반 이론이라고 하였다.*듀이의 이러한 철학적 자세는 그의 교육이론 형성에도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그의 교육이론이 지닌 체계와 방법에 관한 내용은 그가 쓴 최초의 저술에 속하는 에 간결하고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듀이는 이 짧은 글에서 교육의 본질, 학교의 기능, 교육의 내용, 교육방법의 성격 그리고 교육과 사회진보의관계에 대해 논하고있는데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교육이란?: 교육은 개인이 종족의 의식에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진다.…참된 교육은 아동이 살고 있는 사회적 상황의 요구에 의해 그의 힘을 자극하는데 있다. …교육적 과정에는 심리학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이 서로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교육을 받은 개인은 사회적 개인이고 사회는 개인은 유기적 통합체이다. 아동에게서 사회적 요인을 빼어버리면 남는 것은 추상적 존재뿐이다. …학…
    인문/어학| 2002.05.17| 7페이지| 5,000원| 조회(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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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즈워드] 워즈워드
    We Are Seven------A simple Child,That lightly draws its breath,And feels its life in every limb,What should it know of death?I met a little cottage Girl:She was eight years old, she said;Her hair was thick with many a curlThat clustered round her head.She had a rustic, woodland air,And she was wildly clad:Her eyes were fair, and very fair;---Her beauty made me glad."Sisters and brothers, little Maid,How many may you be?""How many? Seven in all," she said,And wondering looked at me."And where are they? I pray you tell."She answered, "Seven are we;And two of us at Conway dwell,And two are gone to sea."Two of us in the church- yard lie,My sister and brother;And, in the church-yard cottage, IDwell near them with my mother.""You say that two at Conway dwell,And two are gone to sea,Yet ye are seven! I pray you tell,Sweet Maid, how this may be."Then did the little Maid reply,"Seven boys and girls are we;Two of us in the church-yard lie,Beneath the church-yard tree.""You run about, my little M 형제가, 꼬마 아가씨야,몇이나 되니?」「몇이냐구요? 모두 일곱이예요,」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야릇하다는 듯 나를 보았다.「그럼 어디에 있니? 말해봐」그녀는 말했다, 「일곱이예요 우린;우리들 중 둘은 콘웨이에 살고, 둘은 바다로 나갔어요.「우리들 중 둘은 교회묘지에 누워 있고요,언니와 오빠가;그리고 교회 오두막집에서, 나는어머니와 함께 그들 가까이 살아요.」「너는 말했지 둘은 콘웨이에 살고,둘은 바다로 나갔다고,그런데 일곱이라니! 말해 봐,귀여운 아가씨야,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그러자 꼬마 아가씨가 대답했다,「사내와 여자애가 일곱이에요 우린;우리들 중 둘은 교회 무덤에 누워 있어요,교회묘지 나무 아래.」「너는 뛰어 다니고 있잖니, 내 꼬마 아가씨야, 네 사지는 살아 있어;만일 둘이 교회 묘지에 누워 있다면,Then ye are only five.""Their graves are green, they may be seem,"The little Maid replied,"Twelve steps or more from my mothers door,And they are side by side."My stockings there I often knit,My kerchief there I hem,And there upon the ground I sit,And sing a song to them."And often after sun- set, Sir,When it is light and fair,I take my little porringer,And eat my supper there."The first that died was sister Jane;In bed she moaning lay,Till God released her of her pain;And then she went away."So in the church-yard she was laid;And, when the grass was dry,Together round her grave we played,Mydead; those two are dead! Their spirits are in heaven!"'Twas throwing words away; for stillThe little Maid would have her will,And said, "Nay, we are seven!"너희들은 기껏해야 다섯이잖니.「그들의 무덤은 푸르러요, 볼 수도 있어요,」꼬마 아가씨가 대답했다,「우리 어머니의 도어에서 열두세 발자국 가면,오빠는 나란히 있어요.「내 스타킹을 거기서 자주 뜨지요,내 행커치프 가장자리를 거기서 감치지요,그리고 거기 땅 위에 나는 앉아언니 오빠한테 노래 불러 줘요.「그리고 자주 해가 지고 난 후,날씨가 화창할 때면,내 작은 죽그릇을 가져가거기서 저녁을 먹지요.「맨 처음 죽은 이는 제인 언니였어요;베드에서 신음하며 누워 있었는데,마침내 하나님이 고통을 덜어주셨어요;그래서 언니는 가 버렸지요.언니는 교회마당에 묻혔지요;그리고 잔디가 말라버렸을 때언니의 무덤 주변에서 오빠와 나는 함께 놀았어요.「그리고 땅이 눈으로 되어 내가 달리고 미끄럼탈 수 있을 적에,오빠 존이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어요,그래서 언니 곁에 누워 있어요.」「그럼 너희들은 몇이니,」 나는 말했다,「그들 둘이 천당에 있다면?」얼른 꼬마 아가씨는 대답했다,「오 아저씨! 우린 일곱이예요.」「하지만 그들은 죽었어; 두 사람은 죽었단 말이야! 그들의 영혼은 천당에 있단다!」그건 말을 내던지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왜냐하면 여전히 꼬마 아가씨는 고집을 세우며 말했다, 「아녜요, 우린 일곱이예요!」Tintern Abbey다섯 해가 지나갔다. 다섯번의 여름과 기나긴 겨울이!그리고 나는 다시 듣는다.나직한 오지의 소리를 속삭이며 산천에서 흘러나오는 시냇물 소리를또다시 나는 바라본다.거칠고 한적한 풍경에 보다 깊은 은둔의 생각을 더해주며풍경을 하늘의 고요와 이어주는 이 험하고 높은 낭떠러지를어두운 단풍나무아래 내 몸을 쉬며,농가의 밭과 과수원의 숲을 바라볼 수 있는 날이 또다시 왔구나그 과수원은 이런 계절에는 고단한 시각이면 흔히이 경치로 해서 감미로운 정감을 핏줄과 가습속으로 느끼고또 보다 맑은 마음 속으로 흘러가 평안을 되찾아 줌을 느꼈다.이들 경치로 해서기억에서 사라진 지난 날의 기쁨도 느꼈다.이런 기쁨은 마음 착한 사람의 삶의 최상의 부분에 상냥함과사랑에서 나온 작고 이름없고 기억되지 않는 행동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다.게다가 이 경치로 해서보다 숭고한 모습의 선물을 지니게 된 것이리라수수께끼의 짐이, 알 수 없는 이 세상의 무겁고 고단한 짐이가벼워지는 저 정화된 심경이라는 선물이 잔잔하고 정화된 심경으로 사랑이 우리를 조용히 인도해서이 육신의 숨결과 피의 순환까지도 멎고우리는 육체속에 잠들어 살아있는 영혼이 된다.한편 조화의 힘과 기쁨의 깊은 힘에 의해 고요해진 눈으로우리는 사물의 생명을 들여다 본다.만약 이것이 헛된 믿음이라 할지라도아! 얼마나 여러번 어둠속에서, 또 재미없는 한낮의 많은 것 속에서실속없는 초조와 현실의 열광이 내 심장의 박동을 내리누를 때얼마나 자주 마음속에서 내 그대를 의지하였던가!아! 숲가의 와이강! 숲 사이의 방랑자여 얼마나 자주 내 그대를의지하였는가!그리고 지금 반쯤 꺼진 생각의 가냘픈 빛으로 얼마간 서글픈 당황감에서나온희미하고 가녀린 많은 회상과 함께 마음의 영상이 다시금 살아난다.여기 이렇게 서있는 동안, 현재의 기쁨뿐 아니라지금 이순간 미래를 위한 생명과 양식이 있다는 즐거운 생각을 함께 갖는다.그렇기를 나는 감히 바라노니처음으로 이 곳을 찾아왔을 때와는 내 많이 달라졌지만,그때에는 한 마리 사슴처럼 자연의 부름을 받아깊은 강, 외진 냇가를 지나 산을 뛰어넘고 하였다.사랑하는 것을 찾느니보다 무서운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처럼.그때엔 자연이(어린시절의 보다 사나운 재미와그 즐거운 짐승같은 행동은 벌써 지나갔지만)내게는 모든 것, 그때의 나를 지금 마음속에 그릴 수는 없다.소리치는 폭포수가 정열처럼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높다란 바위, 산,깊고 캄캄한 숲, 그 빛깔과 모양이 내게는 하나의 갈망이요, 정감이요,사랑이었다.명상이재를 느끼게 되었다.그것은 아주 깊숙이 스며있는 어떤 장엄한 것의 지각이었고그것이 머무르는 곳은 석양의 햇살, 둥근 바다와 살아있는 바람(공기),그리고 푸른하늘과 사람의 마음, 그것은 생각하는 모든 것,모든 생각의 대상을 밀고 나가며 만물속을 굴러가는 하나의 운동이자정신이다.그리고 나는 여전히 풀밭과 숲과 산을 사랑한다.그리고 이 초록의 대지에서 보게 되는 모든 것을,눈과 귀가 미치는 크나큰 세계를 눈과 귀가 받아들여 반쯤 창조해내는 모든것을 사랑한다.자연속에서, 감각의 언어 속에서 내 순수한 생각의 닻을내 마음의 유모를, 인도자를, 수호자를,내 정신적 존재의 요체를 알아보는 것이 참으로 기쁘다.그리고 설령내가 이런 가르침을 깨치지 못한다 하더라도내 창조의 힘이 쇠하도록 해서는 안되리.그대 소중한 벗이여, 이 아름다운 강언덕에 내 그대와 함께 있으니내 귀하고 소중한 친구, 그대의 목소리에서 나는 내 지난 날의 마음의언어를 듣고,그대의 야성의 눈길의 번쩍임 속에서 내 지난 날의 기쁨을 읽는다.아! 그대 속에 있는 내 지난 날의 모습을 잠시나마 바라보고 싶다!자연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버리지 않음을 알기에 소중한 내 누이여!나는 이런 기도를 드린다.이승에서의 오랜 세월동안 우리를 기쁨에서 기쁨으로 이끄는 것은 자연의특권이다.이렇듯 자연은 우리의 마음을 일깨워 주고 고요와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주고또 이렇듯 숭고한 사상으로 키워준다.간교한 말도 성급히 내린 판단도, 이기적인 이들의 비웃음도,퉁명스러운 인사말도, 일상의 따분한 교제도, 우리를 누를 수 없고기쁨에 찬 우리의 신념을 훼방할 수 없다.그리하여 우리가 바라보는 만물이 축복으로 가득 차 있다.그러니 달이여! 홀로 거니는 그대 위해 비추어라.안개 머금은 산바람이여! 마음대로 그대에게 불게하라그리하여 여러해 뒤, 이러한 거친 황홀이 무르익어 차분한 기쁨이 되고,그대의 마음이 온갖 사랑스런 형상의 대궐이 되고그대의 기억이 온갖 감미로운 소리와 화음의 거처가 될 때오! 외로움과 두려움과 고통과 슬픔이 그대 몫이 되면있어,
    인문/어학| 2002.05.06| 5페이지| 8,000원| 조회(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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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ordsworth] From Preface to Lyrical Ballads, with Pastoral and Other Poems 평가B괜찮아요
    From Preface to Lyrical Ballads, with Pastoral and Other Poems(1802)[THE SUBJECT AND LANGUAGE OF POETRY]이 시집의 첫 번째 권은 일반적인 읽기를 위한 것이며 실험작으로 간행되었다. 나는 즐거움이 있는 생생한 감동 상태에서 인간의 실제적인 언어의 선택과 운율의 배열이 얼마나 적합한지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 시들에 대한 전망에 대해 부정확한 평가를 한 적이 없고, 그 시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더 즐겁게 그 시들을 읽을 것이고 반면에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 많은 혐오감을 가지고 읽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더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왔다는 나의 기대와는 매우 달랐다.다양성과 나 자신의 나약함이 친구인 Samuel Taylor Coleridge에게 도움을 여청하게 하였다. 그 친구는 나에게 'Ancient Mariner', 'The Foster-Mother's Tale', 'The Nightingale' 등의 사랑을 주제로 한 시들을 함께 수록하게 하였다.나는 만약 내 친구의 시가 나 자신의 취향과 스타일에 아주 많이 같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면 나는 그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둘 사이에 차이점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문체의 색깔에 있어서 불일치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시의 주제에 대한 우리의 의견은 거의 완전하게 일치하였기 때문이다.몇몇 친구들은 이 시집의 성공을 걱정하였지만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러한 작업을 수행하였다. 왜냐하면, 나의 의견을 정확히 표현하고, 내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서문의 자연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충분한 공간이 요구되어 질것이기 때문이다.내가 허용하는 명백함이나 일관성으로 주제를 다루는데는, public taste의 현자상태를 완전히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public taste가 얼마나 건전한지 혹은 부패되었든지 간에 그러한 것에 맞추어 subject를 다룬다면 서로 간에lic한 상황을 맞추기 위해서 시는 현재에 주어진 것으로 쓰여져야 한다는 것이다.시를 짓는 행동으로, 작가는 이미 알려져 있는 기존의 사회적인 관습에 충족하여 들어간다는 공식적인 약속을 한다고 여겨지며, 그는 작품 속에서 계층에 따라 생각이나 표현을 독자에게 평가받을 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다른 것들은 신중하게 배제되어야 한다. 그만큼 작가가 작품을 쓰는 것엔 큰 책임이 따른다.나는 현재에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장황하고 공허한 표현에 익숙해진 근세의 작가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기존의 작가들은 분명히 어색하고 서투른 감정으로 애를 먹을 것이다. 그 때문에 독자들이 나를 비난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나의 의무를 다하고 있을 뿐이다.내가 시편에서 계획한 주요한 목적은 보통 평범한 일상생활에서부터 사건과 상황이 선택되고 그들과 관련하여 그려져야 하는 것이며, 가능한 한 그들이 동시대에 사용하는 언어로 쓰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너무 일상인이 쓸 수도 있을 만큼 너무 일반적이거나 볼품이 없어서는 안되고 그 속에 시인의 생각이 담기어 있어야 한다. 비록 소박하고 저급한 언어로 쓰여져 있는 것은 보다 솔직한 정열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쓰여진 시들은 독자의 주변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보다 더 이해되어지기 쉽고, 지속적인 감정의 공감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시들은 당연히 그 시인들의 좁은 범위의 계층들만의 교류이기 때문에 폭이 좁아지고 사회에 영향을 덜 미치며 공감을 얻기 힘들다. 그런 언어들로 쓰여진 글들이어야만 보다 보편화된 감정이고, 시의 생명이 더 길어질 수 있고, 더 삶이 철학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일상생활에서의 의미 없고 사사로운 것들이라도 현재의 생각이나 외침을 외면할 수 없다. 비록 그것이 해로운 것들이라도, 만약에 그렇다면 시의 목적에서 내 솔직한 감정을 담은 것들과 다른 것들은 쉽게 구분되었을 것이다. 좋은 시란 강렬한 감정의 자발적인 분출이다 라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우리 시인들은 우리의 현주소에서, 자응을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시의 수준도 향상된다.나는 시의 목적을 한 번 말한 적이 잇다. 그것은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더 적절한 언어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현재와 연관시켜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완곡한 정열을 가지며 인간을 포함해야 하며 보여주어야 한다. 나는 독자들에게 이 주제에 대해 더 이상 탐닉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현재의 인기 있는 시로부터 당시의 상황을 구분하기를 바라는 것뿐이다.주제는 진실로 중요한 것이다. 인간은 전체의 그리고 격렬한 연속적인 작용 없이도 즐길 수 있는, 고결한 것을 더 이상 알지 못하고서도 아름다움과 존엄성을 희미하게 느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문학에서의 주제나 사건은 특별한 것이어야 우리의 감각을 만족시키고 기쁨을 준다고 생각되어 왔다. 이러한 경향은 다만 그들 자신의 과시일 뿐이다. 이미 관습화된 과거의 고전을 다루는 것들은 늙은 작가의 가치 없는 작업일 뿐이다.인간의 감정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되어 전해져 오는 것들은 그들에게 확정할 수 없는 감정만을 전해주지만, 그들의 일장을 다르게 된다면 독자의 감동은 크게 될 것이다.이러한 시들의 주제와 목적이 오래도록 전해지도록 하려는 전통적인 장치는 고급의 언어를 사용하거나 인간의 최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며, 산문보다는 운율의 효과를 더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실로 중요한 것은 신선하며 열정적인 정열이다.시적이 말투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생산해내기 위해서 많은 창작의 고통을 경험하였다. 나는 나의 스타일로 글을 쓰고 이러한 글들이 독자에게 더 잘 와 닿도록 하여, 나의 생각을 표현해 내는 것뿐이다.물론 친근한 언어로 쓰여진 시가 좋은 시이긴 하지만, 실제로 정제된 언어가 필요하기도 하다. 물론 아름다운 언어적 표현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만, 그러한 제약에 얽매여서 그 자신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시는 몇 개의 이어진 행으로 이루어 질 수 있고, 그것과의 차이를 제시하기 위해서 당대의 언어는 시어가 아니라고 생각한 Thomas Gray의 시를 제시하였다.그 시에서는 산문의 문장과 시의 행의 운율의 차이점을 알 수 있도록 제시해 주었다. 그는 산문의 언어는 운문에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잘못된 생각임을 알 수 있었다.인용을 통하여 나는 좋은 산문의 언어는 또한 시의 언어 또한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 두 장르 언어의 차이점은 그 본질적인 언어나 단어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장르를 구성하는 운율의 차이에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시는 운율이 있는 prose라고 보아도 무방하다.[WHAT IS A POET?]시인이란 무엇(어떤 사람)인가? 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많은 일반적인 배경지식이 필요하며 또 그에 따라 많은 질문이 따른다. POET이란 단어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것이 어디에서 연루된 것이며, 그리고 그에게서 기대되는 언어의 사용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단정지어 그는 사람에게 말하고 있는 사람이다.그러나 그러한 말은 보다 생동감 있는 감성이 있어야 하며, 더 열광적이어야 하며, 인간 본연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부드러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더 정열적이고 순수한 의지를 가지는 자ㅓ세가 필요하다. 그에게 부과된 이러한 자질들은 그의 실제사건에 영향을 미칠만큼 영향력을 더욱 크게 한다. 그 만큼의 책임이 따르므로 그는 그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을 더욱 키워야 할 것이다.그러나 그에게 부과된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가 시에 사용하는 언어는 활기차고 진실되어야 하며 실제 생활에서 언급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독자는 그가 비록 모방의 언어일지라도, 시에서 나오는 강한 힘과 창작의 고통을 자가의 개성으로 소중히 여겨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작가는 그만의 언어가 필요하다. 고귀한 언어나 눈속임같이 현혹시키는 화려한 문구들만이 시의 가치를 빛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시인의 감정이나 깊은 신념을 표현해 주는 것에는 자기 자신만의 생활의 언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없다. 그가 빠져있는 감성의 표현은 다만 그 상황에 적절한 언어로 표현해 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그러한 언어는 독자에게 쉽게 이해되기 어렵기 때문에 끊임없는 토론이 일어날 것이고, 계속되는 재해석이 또한 있을 것이며, 그러한 과정을 거쳐 각자에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Aristotle은 시는 여러 언어로 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철학적이며, 개인적이고 지역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기능적이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이 각각에게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 질 수 있기 때문에 더 존엄성을 가진다. 시가는 인간과 자연의 상상에서 나온다. 시인에게는 모든 것들을 실제로 경험해 보아야 할 것 같은 제약을 가진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역사가나 전기 서술자들에게 맡겨두고 그는 나름대로의 상상력으로 표현해 내면 되는 것이다.시인의 예술은 그가 알고, 느끼고, 살아가고 움직이는 것에 의해서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지식이며, 사랑의 정신으로 세상을 보게 해주며 기쁨의 기본적인 원칙을 준다. 우리 시인들은 기쁨을 확대 전파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삶을 보는 어떠한 원칙 같은 것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기쁨에 의하여 시작을 한다면, 그러한 기쁨들은 우리의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전달되어 공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그의 일상생활 속에서의 시작은 그것이 독자들에게 행동과 재행동으로 이어져서 또 다른 고통과 기쁨으로 뒤섞이게 된다. 자연의 필요에 의해 생각과 감정의 복합적인 혼합으로 기쁨의 균형을 맞추게 될 것이다.우리의 일상생활은 자연에 의해 기쁨에 넘쳐흐르기 때문에 그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에게 본질적으로 적응되어 간다고 보았다.자신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시인은 자연과의 대화법을 통해서 영향을 미친다. 과학자와 시인의 지식은 자연적이고 서로 연관되어 있는 기쁨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과학자는 현재 존재하는 사물들을 분석하여 지식을 탐구하지만, 시인은 개인적이며 인간적인 감정을 우리에게 너무 관습화되지 않고 직접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게 천천 한다.
    인문/어학| 2002.05.06| 6페이지| 10,000원| 조회(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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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햄릿] 햄릿
    H a m l e t< 햄릿(Hamlet)의 성격에 중심을 두고>1)storya) 극의 무대는 덴마크의 엘시노어 (Elsinore)성이다. 왕자 햄릿(Hamlet)이 최근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가운데 그의 어머니 거트루드가 아버지의 동생인 클로디어스(Claudius)와 결혼하였다. 그 클로디어스(Claudius)가 덴마크의 현왕으로 자리하고 있다. 어머니가 서둘러 결혼한 것을 섭섭해 하는 햄릿(Hamlet)은 아버지의 유령을 만나 아버지가 클로디어스(Claudius)에게 독살되었음을 알고는 복수를 맹세한다. 하지만 망설이지 않고 복수를 수행하겠다던 햄릿(Hamlet)의 맹세와는 달리 복수는 금방 이루어지지 않는다. 햄릿(Hamlet)은 범행을 확신한 후에야 복수를 수행하려 한다. 그래서 그는 복수를 계속 미루고 주저하면서, 자신의 의도를 감추고 클로디어스(Claudius)의 범행을 확인하기 위해, 미친 체하기로 작정하고 사랑하던 오필리어를 박대하기까지 한다. 유령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왕 앞에서 극을 연출하는데, 그 내용은 유령이 말한 대로의 살해 장면과 유사하다. 이에 대한 왕의 반응으로부터 클로디어스(Claudius)의 범행임을 확인한 햄릿(Hamlet)은 그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지나, 마침 그 순간 클로디어스(Claudius)가 기도를 하는 중이어서 복수는 다시 지연된다. 이어 그는 어머니에게로 가서 그녀의 근친 상간적인 결혼을 심하게 질책하는데, 이를 엿듣느라 방장 뒤에 숨어있던 폴로니우스를 클로디어스(Claudius)로 생각하고 죽이고 만다. 햄릿(Hamlet)의 의도를 명확히 간파한 클로디어스(Claudius)는 햄릿(Hamlet)을 바로 처단하라는 편지와 함께 햄릿(Hamlet)을 영국으로 보내나, 항해 도중 해적이 습격하자 햄릿(Hamlet)은 도망하여 덴마크에 도착한다. 그가 없는 사이에 오필리어는 햄릿(Hamlet)으로부터의 배신과 아버지의 죽음에 상심하여 제정신이 아니었다가 익사하였다. 폴로니우스의 아들이자 햄릿(Hamlet)의 친구인 레아티즈(Laertes)가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귀국하는데, 클로디어스(Claudius)는 그를 이용하여 햄릿(Hamlet)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설득한다. 두 젊은이 사이에 펜싱 시합이 주선되는데, 레아티즈(Laertes)의 칼 끝에는 독이 묻혀 잇다. 레아티즈(Laertes)는 독이 묻은 칼로 햄릿(Hamlet)에게 상처를 입혀 그를 죽이는데 성공하지만, 그도 결투 와중에 뒤바뀐 독이 묻은 자신의 칼에 의해 죽게 된다. 레아티즈(Laertes)는 죽어가면서 그 비열한 음모를 고백하고, 햄릿(Hamlet)의 어머니 거트루드 또한 햄릿(Hamlet)을 위해 왕이 준비한 독약을 탄 음료수를 우연히 마시고 죽는다. 햄릿(Hamlet)은 독이 묻은 그 칼로 왕을 찌르고 거트루드가 마셨던 독배를 왕에게 억지로 마시게 하여 죽게 한다. 햄릿(Hamlet)을 비롯한 4명의 시체가 무대 위에 놓인 가운데 작품은 막이 내린다.b) 'Hamlet'은 복합적인 극이다. 셰익스피어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아들의 복수라는 주제를 다양한 대비를 통해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햄릿(Hamlet) 주위의 많은 인물들이 그의 성격과 문제를 조명해 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 레아티즈(Laertes)도 햄릿(Hamlet)의 행동을 조명하기 위해 설정된 인물이다. 가족에 대한 그의 감정, 햄릿(Hamlet)을 두려워하는 왕의 사랑을 받는다는 점, 복수를 위해서면 어떠한 저주도 감내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복수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점 등이 그것이다. 행동하는 인간으로서의 포틴브라스도 햄릿(Hamlet)과 대조되는 경우다. 오필리어의 미침은 햄릿(Hamlet)이 미친 체하는 것과 대비되며, 아무런 동기 없이 햄릿(Hamlet)이 지시한 대로 행동하는 배우들의 허구적인 슬픔은 충분한 동기가 있음에도 전혀 행동치 못하는 햄릿(Hamlet)과 대조된다. 폴로니우스가 죽고 로젠크란츠(Rosencrantz)와 길던스턴(guildenstern)이 죽는 것은 그들이 스파이 짓을 했기보다는 운명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며, 햄릿(Hamlet)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극중극 쥐덫 의 공연은 연기에 대한 긴 강의를 할 빌미를 제공하고, 오필리어의 죽음은 죽음에 대한 긴 명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예들은 햄릿(Hamlet) 의 구조를 길게 하고 복잡하게 하는 예라고 할 것이다. 모든 것이 극을 길게 만든다. 미친 체 하다가 우울해하는 등의 기분 변화, 방장 장면에서 충격을 받고 헤매는 어머니를 계속 다그치는 햄릿(Hamlet)의 격렬한 행동, 미친 이유에 대한 증거를 조작하여 폴로니우스는 그 이유가 사랑 때문이며 로젠크란츠(Rosencrantz)와 길던스턴(guildenstern)에게는 그것이 야심 때문이라고 믿게 하는 행위, 이 모든 것은 햄릿(Hamlet)의 사색의 결과이며, 햄릿(Hamlet)이 복수를 행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햄릿(Hamlet) 을 길게 만든다.2) character햄릿(Hamlet)은 세계적인 문호 Shakespeare의 4대 비극 중에서도 가장 높이 평가되는 작품이다. 햄릿(Hamlet)의 성격을 논하는데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보면 보다 현실성이 뚜렷하다고 본다.첫째, 이상주의자로서의 햄릿(Hamlet)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어딘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들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 정열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햄릿(Hamlet) 역시 이 특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이상적이 못된다고 생각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혐오하고 경멸한다. 작품에서 보여지듯이 그는 죽은 부친을 우상시할 만큼 존경하고 있었다. 이런 청년 햄릿(Hamlet)이 목격한 모친과 숙부인 Claudius의 근친상간적 재혼은 그들을 혐오하게끔 만든다. 특히 그의 숙부에 대한 감정은 그가 숙부를 짐승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끔찍하게 불신하며 혐오한다. 이렇게 햄릿(Hamlet)은 사람을 격렬하게 혐오하고 또 존경하는데 이것은 그가 극단적인 이상주의자임을 의미한다고 본다.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상과 상치되는 현실에 대해 그는 극단적으로 실망하고 원망한다. 그래서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염세관을 갖고 세상을 대하기도 한다. 그가 아버지의 상당한 소식을 듣고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겉과 속이 다른 부패한 고국의 왕궁 현실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부친의 상중에 사람들이 보이는 겉치레뿐인 슬픔의 표시에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1독백에서 자기 심중의 괴로움을 비통하게 토로한다. 그는 자살을 희구할 정도로 절망에 빠진 모습을 보이는데, 이 이유는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그것은 뜻하지 않은 부친의 죽음에 뒤이어 너무나 조급하게 치루어진 모친 Gertrude의 재혼이다.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이 사건은 그의 독백 속에 여러 번 반복됨으로써 그것이 강박관념이 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생전에 남달리 서로 사랑하였던 부친과 사별한지 채 두 달이 못되었는데, 그 장례를 지낸지 한 달도 못 되어 그토록 고결하였던 부친과는 비교도 안되는 숙부와의 근친상간적 재혼, 그것은 햄릿(Hamlet)에게 인생과 애정의 무상함, 여성에 대한 불신감을 안겨준다.이리하여 모친에게서 맛본 절망감은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환멸이 되어 그를 극단적인 비통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이런 햄릿(Hamlet)의 모습에서 나는 그가 얼마나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고 인생을 열렬하게 사랑해온 청년인가를 알 수 있었다. 햄릿(Hamlet)이 친구인 로젠크란츠(Rosencrantz)와 길던스턴(guildenstern)에게 말하는 대사 속에서 그가 얼마나 우주와 인간을 이상시해 왔는가를 알 수 있는데, 모친의 재혼은 그의 그런 아름다운 꿈을 송두리째 무너뜨려 버릴 만큼 깊은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사건 이였다.둘째, 합리적이고 행동적인 모습의 햄릿(Hamlet)햄릿(Hamlet)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만약 햄릿(Hamlet)이 신속히 행동을 취해 복수를 결행했더라면 그 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며 못내 아쉬워 할 것이다. 그러면서 햄릿(Hamlet)의 우유부단하고 확실치 못한 행동에 질책을 가할지도 모르겠다.햄릿(Hamlet)은 주로 돈키호테와 상반된 인물로서 비교가 되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작품 내에서도 이와 상반되는 인물들을 볼 수 있었다. 바로 노르웨이의 왕자 포틴브래스 왕자와 레어티즈(Laertes)인데, 세 젊은이는 아버지를 살해한 원수를 복수해야 하는 동일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레어티즈(Laertes)는 아버지의 살해 소식을 듣자마자 프랑스에서 달려와서는 궁궐 문을 부수고 침입하여 왕에게까지 대들면서 복수를 외친다. 보틴브래스 왕자는 계란껍질 만한 땅덩이 때문이라 해도 명분을 위해서는 군을 움직이고 죽음을 무릅쓰고 전지로 나간다. 레어티즈(Laertes)와 포틴브래스가 만약 햄릿(Hamlet)과 같은 입장에 놓였다면 지체 없이, 적어도 클로디어스(Claudius)가 기도하고 있을 때 그를 틀림없이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햄릿(Hamlet)은 죽이지 않고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에는 복수를 하지만 그것은 자기의 의지대로 한 것보다는 그러한 상황들 속에서 수동적으로 복수를 행한 것이 되어버렸다.그렇다면 이러한 햄릿(Hamlet)의 우유부단함과 수동적인 면은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 그것은 국왕측의 호위가 든든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일찍 복수가 끝나면 연극이 금방 끝나기 때문에 곤란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그런 진부한 곳에서 해답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더 깊이 들어가 햄릿(Hamlet)의 내면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그건 쉬운 말로 그렇지 그의 내면을 헤치고 들어가 보면 거기에도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심상풍경이 있어서 그 원인이 간단히 포착되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수동적이고 우유부단만 했을까. 그저 그렇게 상냥한 사람이었을까.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인문/어학| 2002.05.06| 6페이지| 10,000원| 조회(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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