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나는 인문대 2층 시청각실로 발걸음을 돌렸다.5시30분에 시인초청강의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늘 초청한 시인은이대흠 이라는 제 3회 현대시 동인상 수상 시인이란다강의실이 꽉 차고 시간은 30분이 넘었건만 그는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왜 오지 않나 하면서 친구와 얘길 나누고 있는데 이대흠 시인이 모습을 드러냈다.캐주얼한 옷차림에 머리를 길게 길러 끈으로 동여맨 모습...친구가 역시 시인답게 생겼구나 하고 했다.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그의 작품을낭독하는 순서가 되었다. 낭독은 같은 한국어문학부 학우가 했다. 조명을 끄고 음악을 깔고낭독을 하니 우리들은 시속으로 자연스럽게 빠져 들어갔다.낭독이 끝나고 이대흠 시인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제 강의를 하겠구나 생각하며정신을 바로잡았다. 그는 강의라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 생활상을 들려줬다.그는 원래 노동자였다. 속된말로 하면 노가다꾼 이라는 것이었다. 여러 해를 그렇게 보내면서 그는 힘든 일상 가운데 한 가지 낙이 있었다면 그것이 바로 글쓰는 것이었다고 한다.노동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 쓴 글들은 대부분 노동시 였다. 그렇게 생활하던 것이10년째 되던날 그가 문단에 등극 된 것이다. 시인이 된 것이다. 시를 쓰면서 노동생활을 하기가 힘들어 이제는 그만뒀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하나 운영하는데 각 지역의 방언과 그가 전국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을 다룬다고 한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방언을 조사해 올려놨다고 한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방언을 ks다면 표현의 방법이 훨씬 폭 넓어질 것 이 아닌가. 그의 그러한 배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그러한 행동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글을 쓰면서 생긴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한번은 컴퓨터가 고장나 A/S 하기 위해서맡겼는데 그가 1년여 동안 전국방방 곳곳을 누비며 찍은 사진이 천여 장 정도 있었는데 그걸 모두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그 말을 하면서도 그는 몹시 안타까워하였다. A/S해준 그사람을 죽여 살려? 이런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그랬을까? 정말 공감이 가는 부분 이였다.그의 시중에는 붉은시월 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것은 실제 그의 어머니를 다룬 작품이라고 한다. 4~5년전 어머니가 관절염 신경통 때문에 반쯤 서서 일을 보시는 광경을 보고는 할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단다. 치료를 받으셔서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다는데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외에 몇몇 에피소드를 들려주셨다.시간이 흘러 지정된 시간을 넘기자 주최측에서 끝내라는 사인을 보내자 그는 강의를 끝내고질문을 밭기 시작했다. 많은 질문 가운데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 무었이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그는 기막힌 답변을 들려줬다. 자신이 쓴 시중에 이틀 동안 쓴 시가 있는데 장편 시란다. 무려 1400여행이나 되는...구상은 10년 동안 햇지만 그것을 단 이틀 만에 밤샘으로 컴퓨터를 붙잡고 1400여행이나 되는 것을 모두 써 냈다는 것이다. 자신도 믿기지 않았다고 한다. 역시 그정도 미치지 않고서야 뭘 이루어 낼수 없는 것인가 보다.